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E minor OP.64
제 1 악장 알레그로 몰토 아파시아나타
마 단조 2/2 박자 /소나타 형식
서주부터 부드럽고도 우아한 곡선같이 바이올린이 연주되면서 화려한 선율에 의한 순수한 아름다움과 발랄한 정서가 가미되어 그윽한 향기를 내뿜습니다. 이 곡이 최고의 명곡으로 인정 받는 이유가 바로 1악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작곡 당시의 멘델스존의 악상 표시에는 정열적인 연주로 요구되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우리들이 익히 감상하고 있는 대로 실제로는 우아한 분위기로 연주되고 있기도 합니다.
현악기의 화음을 타고 먼저 제2소절부터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인 일말의 우수가 감도는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이에 이어서 독주악기가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면 전 관현악이 다시 힘차게 제1주제를 노래합니다. 우아한 느낌의 제2주제는 오보에와 바이올린의 화음을 따라 목관악기(클라리넷과 플루우트)의 앙상블로 아주 여리게 이어집니다. 전개부에서는 주로 제 1주제가 활약하며, 멘델스존 자작의 카덴짜가 연주되는데, 이와같이 전개부와 재현부 사이에 카덴짜를 삽입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카덴짜에 뒤따르는 재현부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동안 플루우트와 클라리넷의 선율을 타고 제1주제가 다시 나타납닌다. 이는 최약주(pp)에서 전 관현악의 최강주(ff)로 이어지고 이어 코다로 들어갑니다. 이 코다는 매우 긴데, 특히 여기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종횡무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템포도 점점 빨라져서 정열적인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Julia Fischer - Mendelssohn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 Myung Whun Chung
Hilary Hahn -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제 2 악장 안단테 알레그로 논 트로포다 장조 8/ 6박자 / 3부 형식
경건하고도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름답고 맑은 선율이 서정적으로 연주되는데 중반부에서 약간의 긴장국면이 조성되다가 어느새 다시, 한여름 밤 별빛을 타고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같은 곱디고운 선율로 돌아 와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치 멘델스존의 음악적 혼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듯한 부분이며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감동을 주는 악장이기도 합니다.
제1악장의 끝에서부터 계속해서 울리는 파곳의 선율을 깔고 지극히 우아하게 주제가 노래됩니다. 이 부분은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멘델스존의 곡 중에서도 특히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관현악은 독주 바이올린에 반주만을 하는 정도로 간간히 이어지다가 중간부에 이르러서 한 번 장중하게 울립니다. 그런 뒤 독주 바이올린이 이를 다시 받아서 채색하면서 변주로 이끌어 갑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다시 바이올린이 최초의 주제를 은은히 반복하는데 이 때에 그 동안 조용하던 관현악이 비로소 약간의 활기를 띄웁니다.
마 장조 4/4박자 / 소나타 형식
1악장처럼 우아하게 시작하다가 다시 분위기를 바꾸어 관현악의 반주 위에서 바이올린이 강렬하고도 화려하게 약동을 하면서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소나타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악장은 바이올린이 경쾌한 리듬을 타고 정열적으로 박력있게 진행되는, 그야말로 바이올린 음악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악장입니다. 처음에는 14소절의 서주가 붙어있는데 이는 제2악장 중간부 주제에 바탕을 둔 것으로 제2악장과 제3악장과의 강렬한 대조를 교묘하게 이곳에서 완화시켜주고 있습니다. 주부에서는 최강주(ff)의 관악기와 팀파니가 지금까지의 조용함을 깨뜨리며, 독주 바이올린은 그 사이를 누비면서 제1주제 모두(冒頭)의 동기를 4번 반복한 후, 발랄하게 제1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이 주제는 점점 경쾌하게 취급되며 빛나는 기교적인 경과악구를 거쳐 제2주제가 B장조에서 관현악의 강주(ff)로 힘차게 나타납니다. 전개부는 독주 바이올린에 의한 제 1주제로서 시작된 뒤, 이어서 전연 새롭고 장중한 주제가 이에 이어서 연주됩니다. 이에 대해 관현악은 제1주제의 부분동기를 계속 연주한 다음 자리를 바꾸어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의 부분동기를 연주합니다. 재현부에서는 제1,2주제가 함께 E장조로 나타납니다. 코다는 극히 화려하며 독주 바이올린이 홀로 긴 트릴을 낸 뒤, 갑자기 활기있고 힘찬 트레몰로를 연주하면서 전 관현악을 동원하여 곡을 끝냅니다.
Mahler, Symphony No.5 in C# minor
말러 교향곡 5번
Gustav Mahler
1860-1911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말은, 구스타프 말러의 어록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많이 회자됩니다. 주지하다시피 그것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습니다. 말러가 네 살 아래의 슈트라우스를 처음 만났던 때는 1888년이었습니다. 스물여덟 살 때였지요. 성악가 요한나 리히테르를 향한 사랑이 실연으로 끝나고 첫 번째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작곡했던 것이 그로부터 4년 전, 이어서 그 연가곡의 선율을 모티브로 삼아 교향곡 1번 ‘거인’을 완성했던 해가 바로 1888년이었습니다. 당시 말러는 ‘바흐의 도시’로 유명한 라이프치히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일하고 있었지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의 마음속 경쟁
이 시기에 첫 대면한 두 청년은 독일 후기 낭만음악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바흐와 헨델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음악사의 라이벌’이라는 후대의 평가인 셈이지요. 하지만 말러와 슈트라우스를 바흐와 헨델에 비유하는 것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바흐와 헨델은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서로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지요. 그저 서로의 존재를 알았을 뿐이었고 실제로 생전에 대면한 적도 없습니다. 반면에 말러와 슈트라우스는 달랐지요. 두 사람은 서로를 강하게 의식했습니다. 기질과 음악적 스타일이 매우 달랐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경쟁했습니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의식의 정도는 슈트라우스보다 말러 쪽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말러가 성격적으로 더 내향적인데다 내면적으로도 복잡한 사람이었기에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앞에서 인용한 말러의 발언이 등장합니다. 그의 아내였던 알마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정확한 문장을 옮겨보자면 이렇습니다. “그의 시대가 가고 나면,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문장 속에 등장하는 ‘그’가 슈트라우스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겠지요. 아내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는 내밀한 언어에서나 가능한 표현이었을 겁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을지라도 아내인 알마가 살아남아서 ‘자신의 시대’를 목격할 것이라고 예감합니다. “나의 빛이여, 당신은 바라건대 확실히 그 시대를 보게 될 거야. 당신은 안개 사이로 태양을 알아본 사람이니까.”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말러의 ‘말’은 알마가 말러 사후에 쓴 세 권의 책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이름을 내건 책을 평생에 걸쳐 세 번 썼습니다. 1924년, 1940년, 1960년에 각각 쓰인 그 책들은 때때로 상충되는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오늘날 ‘인간’으로서든 ‘음악가’로서든 말러 연구의 기초 자료로 빈번히 인용됩니다. 앞의 언급들은 첫 번째 책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같은 책에는 말러가 쾰른에서 <교향곡 5번>의 초연을 준비하던 1904년 5월 알마에게 보낸 편지에서 했던 언급도 등장합니다. “아, 내 교향곡들을 내가 죽은 지 50년 후에 초연할 수 있다면.”
말러의 현세적 자기 부정이 개인적 기질에서 비롯함은 널리 알려진 해석이지요.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분열적 자아상은 이미 유년기에 똬리를 틀었습니다. 술집 포주라는 직업을 갖고 있던 마초적인 아버지 베른하르트, 만성두통과 심장병을 앓았던 심약한 어머니 마리, 부모의 불화와 술집에서 노상 들려오던 주정과 매춘의 소음, 열다섯 살에 겪었던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 등등. 훗날 말러가 “나는 3중의 의미에서 고향이 없다”고 술회했던 그 이면에는 ‘유태인’과 ‘가톨릭’, 그리고 ‘보헤미아 태생’이라는 세 가지 사실 이외에 이미 유년의 상흔들이 존재했음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말러는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이었던 1910년 여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를 만나 평생토록 자신을 지배해 온 트라우마들을 털어놓고 시인하지요.
말러의 음악적 본령은 당연히 교향곡이다
말러의 음악적 본령은 당연히 교향곡입니다. 그는 피아노곡이라든가 실내악, 오페라 등의 작품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가곡을 여러 작품 남기긴 했지만 그 가곡들의 상당수도 종국에는 교향곡 속으로 들어옵니다. 한데 말러의 교향곡들은 이전의 교향곡들이 보여줬던 전통적 형식,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멀찌감치 벗어납니다. 오히려 이중적 자아에 시달리는 개인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울러 삶의 우연성이나 감정의 즉흥성 같은 요소들, 예컨대 계몽주의가 아직 건재하던 시절에만 해도 비이성적인 것으로 손가락질 받던 요소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런 까닭에 그의 교향곡들에는 ‘돌연한 변화’가 빈번히 등장하고, 듣는 이에 따라서는 장황하다고 느껴질 만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에게 내려져 있는 음악사적 평가는 아마도 ‘낭만파적 교향곡의 마지막 작곡가’일 겁니다. 뒤집어보자면 근대음악의 입구에서 과도기의 혼란을 겪어야 했던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러는 그 과도기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분열적 자화상을 음악에 투영했습니다. 그렇게 근대로 접근해 갔습니다.
오늘 듣는 교향곡 5번에서 나타나는 악장들 사이의 급격한 변화들도 말러가 지녔던 짙은 고뇌를 보여줍니다. 물론 그 분열의 양상을 오로지 말러 개인의 내면으로만 읽어낼 수는 없겠지요. 당대적 현실 속에서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교향곡 5번이 보여주는 분열의 양상은 ‘세기말’이라는 외적 요인의 개입 없이는 온전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미 검증됐다시피 세기말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맞이한 첫 번째 좌절 혹은 위기였으며 머잖아 다가올 공황의 전조(前兆)였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거인’으로 다가와 있는 말러가 오스트리아 빈에 있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자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 곡을 쓰던 20세기 초반, 정확히 말해 작곡에 착수했던 1901년에 말러는 이미 ‘40대’라는 나이에 들어서 있었으며, 그는 세기말의 모든 양상이 집약된 도시 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1898년 빈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취임한 말러는 1907년 빈 궁정오페라극장을 떠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지휘자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약 10년간 빈에 머물렀습니다. 당시의 빈은 베네치아와 더불어 세기말을 대표했던 도시였지요. 제국주의가 꿈꿨던 이상향은 적어도 겉으로는 실현된 것처럼 보였지만, 도시와 사람들의 외양을 수놓은 화려한 탐미주의는 황폐한 속살을 간신히 감춘 외피였습니다. 당시의 40대가 오늘의 동년배에 비해 얼마나 더 성숙했는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말러는 유년기의 불안의식에 더해진 시대의 균열을 이미 특유의 촉수로 감지한 상태였습니다.
스스로 ‘4부작’이라고 칭했던 앞의 교향곡들(1번부터 4번까지)과 확연히 다른 다섯 번째 교향곡은 바로 그 시점에서 탄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가 <나머지는 소음이다>라는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언급은 적확합니다. 그는 교향곡 5번을 작곡하던 무렵에 말러가 처해 있던 심적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 도시의 표면 뒤에 숨어 있는 균열이 곧 터져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말러는 “교향곡은 하나의 세계와 같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예민했으나 양심적인 음악가였던 그는 청년 시절에 자신이 동경했던, 적어도 세계의 일부라고 믿었던 이상주의적 서정과 평화로운 목가 풍을 마침내 손에서 내려놓습니다. 그리하여 5번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으로 막을 올립니다.
1악장: 장송 행진곡
1악장은 특이하게도 장송 행진곡(Trauermarsch, Funeral March)이 10분 넘게 펼쳐지는 ‘해괴한’ 악장입니다. 게다가 군대의 행진 나팔처럼 들려오는 도입부의 트럼펫 팡파르. 그것은 오늘날 매우 감각적인 록음악처럼 들려오기도 하지만, 적어도 당대의 빈 사람들이 듣기엔 진부하다고 느낄 만큼 ‘보편적인 나팔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말러는 별다른 음악적 가공 없이 ‘날것’ 그대로의 나팔소리를 교향곡의 입구에 깃발처럼 내걸었습니다. 게다가 이어서 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하는 가요 풍의 선율은 또 어떤가요? 마치 ‘저잣거리의 엘레지’와도 같은 그 선율은 군대의 행진 나팔과 어울리면서 혼돈과 광란, 때로는 절규의 장면들을 펼쳐놓습니다. 말러는 그렇게 통속을 끌어들이면서 당대 사람들에게 여전히 익숙했던 ‘음악다움’과의 결별을 시도했거니와, 아울러 화해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치달려가는 세상의 단면들을 복잡하게 뒤엉킨 리듬과 선율로 묘사했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 첫 번째 악장에서 어떤 파탄을 예감하는 “불길한 꿈”을 읽어내지요.
2악장: 아주 격렬하게 폭풍우가 일듯이
수많은 음악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듯이 2악장은 추락의 악장입니다. 치솟아 오르거나 가득 차올랐다가 힘없이 주저앉아 소멸하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주제를 재현하다가도 중간에 고개를 푹 떨군 채 그대로 침잠하고 맙니다. 아도르노는 이 뻥 뚫린 듯한 공허함을 중세의 신비주의에서 빌려 온 개념으로 설명했거니와, 이른바 ‘파현’(破顯, Durchbruch)이 바로 그것이지요. “거대한 세상에 대한, 인간이 기계 부속처럼 맞물려 들어가 있는 사회의 맹목적 세계 운행에 대한 대응”이라는 해석입니다.
3악장: 스케르초
호른이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는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스케르초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주시간이 약 20분에 달하는 이 악장에는, 말러의 교향곡에서 빈번히 얼굴을 내비치는 왈츠 풍 무곡이 역시 등장하지요. 그러나 그 춤은 빈의 은성한 무도회를 연상케 하기보다는 오히려 해골들의 괴기한 춤처럼 들려옵니다.
4악장: 아다지에토
이어서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덕분에 유명세를 얻은 악장이지요. 하지만 말러가 “사랑의 고백”이라고 아내 알마에게 설명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 이 악장은 유명 인사들의 장례식장에서 빈번히 연주되면서 ‘엇갈린 수용’의 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5악장: 론도. 알레그로 - 알레그로 지오코소
마지막 5악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적 악장’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인이었던 말러는 마지막 악장에서 결국 한계를 보이고 맙니다. 앞의 3개 악장에서 ‘세계와의 갈등’이라는 측면을 극한까지 묘사했던 말러는 마침내 마지막 악장에서 힘이 빠진 모습을 드러내지요. 음악사적으로는 베토벤 이후부터 낭만까지를 관통해 온 ‘어둠에서 광명으로’의 이데올로기에서 그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도르노는 이 절충주의적인 마지막 악장에 대해 “강요된 화해”라는 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말러의 교향곡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가장 널리 알려진 4악장부터 먼저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출처 : 문화웹진 채널 24>칼럼>음악> 내 인생의 클래식 101 2014.11.24
http://ch.yes24.com/Article/View/26671
Mahler Symphony No 5 C♯ minor Leonard Bernstein Wiener Philarmoniker
Overture to 'Die Heibriden' in B minor, Op.26
멘델스존 / "핑갈의 동굴 (Fingal's Cave)" 서곡
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 1809∼1847
헤브리디스 여행의 강렬한 인상
1829년 4월, 멘델스존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런던에서 그는 연이은 무도회와 연회 참석, 연극 및 오페라 관람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한편으론 자신의 교향곡을 직접 지휘한 연주회로 대성공을 거두고 필하모니 소사이어티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약관의 천재 음악가는 영국인들의 환대에 크게 고무되었고, 이후 아홉 차례나 더 영국을 방문하며 헨델과 하이든에 비견되는 거장으로 대접받게 된다.
같은 해 7월 말, 멘델스존은 런던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을 뒤로 하고 내친 김에 스코틀랜드까지 돌아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스코틀랜드는 그를 한껏 고무시켰다. 깎아지른 바위 위의 ‘아서왕의 자리’에 올라가 에든버러의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멋진 풍경을 자신의 스케치북에 담았고,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비운이 서려 있는 홀리루드의 폐허를 방문하여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도입부 악상을 떠올렸다.
여정은 계속해서 하일랜드 지방까지 이어졌고, 그는 때로는 마차나 짐마차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바위산과 폭포수, 황무지를 누비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8월 7일, 헤브리디스 제도를 향하여 출항한다.
배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넘실대는 파도 저편으로 차츰 헤브리디스의 군도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멘델스존 일행은 뱃멀미와 폭풍우를 견뎌내며 스태퍼 섬에 도착했다. 마침내 들어선 핑갈의 동굴은 압도적인 인상으로 그들을 덮쳐왔다. 동행했던 친구 클링게만은 그 동굴을 “거대한 오르간의 내부처럼 어둡고 소리가 울리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져 있으며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어쩌면 멘델스존이 받은 감흥은 몇 년 전 역시 그곳을 다녀갔던 시인 키츠의 그것에 더 가까웠으리라. “바다가 끊임없이 그곳에서 부서지고 있다. … 장엄함과 웅대함, 그리고 광활함…. 그것은 가장 훌륭한 대성당을 능가한다.”
멘델스존은 그 자리에서 하나의 주제를 떠올려 스케치했고, 나중에 그 여행에 관하여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그 악보를 동봉했다. “헤브리디스가 내게 얼마나 엄청난 감동을 주었는지, 조금이나마 공유하기 위하여 그곳에서 떠오른 악상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 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는 한 편의 연주회용 서곡을 작곡한다. 그 서곡은 이듬해 로마에서 ‘외로운 섬’이라는 제목으로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후 개정을 거쳐 ‘헤브리디스’라는 제목으로 런던에서 발표되었다. 이 곡이 바로 오늘날 [헤브리디스 서곡] 또는 [핑갈의 동굴 서곡]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바다의 위험을 연주회장으로 옮겨놓다
서곡 [핑갈의 동굴]은 ‘음의 풍경화가’로 일컬어지는 멘델스존의 절묘한 작곡기법이 가장 잘 발휘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을 담은 한 폭의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넘실거리는 파도, 불어오는 바람, 외로이 떠있는 섬과 바위들, 푸른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시커먼 동굴,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 등등…. 이 모든 광경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음악은 은근한 일렁임으로 시작된다. 처음에 파곳, 비올라, 첼로로 제시되는 b단조의 중심주제는 파도를 연상시키는데, 이 주제는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곡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 파도가 점차 진폭을 확장해 가는 동안 목관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선율은 그 위에 떠있는 바위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하다. 이제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어오고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파동이 잠시 가라앉으면 이윽고 파곳과 첼로가 D장조의 칸타빌레 주제를 차분하게 꺼내놓는다. 느긋하게 노래되는 이 선율은 잔잔해진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의 모습, 또는 항해하는 나그네의 객수와 기대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하지만 이내 바다는 다시 거칠어지고 코데타에 등장하는 새로운 주제는 마치 배를 뒤엎어 버리기라도 할 듯이 격렬한 기세로 휘몰아치는 폭풍우와도 같다.
전개부로 들어가면 갖가지 의성음이 들려오며 배가 섬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바닷새의 울음소리, 바다표범의 포효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서지는 파도와 물보라 소리, 어디선가 홀연히 불어와 귓가를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의 감촉도. 이후 음악은 계속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과 그 항해 동안 멘델스존이 체험했던 긴박한 순간과 바다의 운치, 또 핑갈의 동굴에서 느꼈던 강렬한 감흥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바그너는 이 곡을 듣고서 멘델스존을 ‘일류의 풍경화가’라고 상찬했다. 물론 이 곡에 가장 열광했던 것은 영국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이 위대한 작품이 자기네 나라의 자연환경을 그렸다는 사실을 뿌듯해했던 것이다. 특히 한 작가는 “이 곡은 바다의 위험을 곧장 연주회장으로 옮겨왔다.”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트롬본 없이 고전적인 2관 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작곡된 이 서곡은 소나타 형식의 구성원리를 따르는 등 형식면에서는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바다의 율동과 그 위의 갖가지 형상들을 세밀한 필치로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미래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순수한 기악음악을 통해서 회화적?문학적?철학적 내용을 표현하는 표제음악은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장르 가운데 하나였고, 그 중에서도 [핑갈의 동굴]처럼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연주회용 서곡’은 1850년대 리스트가 창시하게 되는 ‘교향시’의 원형이었다.
Mendelssohn - Hebrides Overture (Fingal's Cave) (Abb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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