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2015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이반피셔 베토벤교향곡(6,7번) 전곡시리즈2/4.22.수/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5. 4. 22. 11:24

 

 

 

 

베토벤 교향곡 6번 F장조 Op.68 '전원‘
BEETHOVEN_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e’

“자연은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지.” “숲 속에 있으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다네.” 베토벤이 한 말이다. 이 밖에도 베토벤은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말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세속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자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위안을 얻었다.
베토벤은 1802년 빈 근처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귓병 때문에 요양했다. 당시 자신감을 잃고 절망한 나머지 동생에게 보내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베토벤은 1808년 여름에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자연에서 받은 감명을 작품에 담았다. 그것이 바로 교향곡 6번 ‘전원’이다.
요제피네에 대한 열정은 이 작품을 쓸 무렵에는 식어 있었다. 교향곡 3번을 쓸 무렵의 나폴레옹 같은 인물도 없었고, 쾌적하지 못한 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었다. 사랑의 종말, 어수선한 인생사는 전원으로의 도피로 이어졌던 것일까.
항상 마음의 고뇌와 격렬한 감정, 몸의 병 때문에 고생을 하던 그에게는 자연이야말로 평안함과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천국이었을 것이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베토벤의 일과는 아침이 밝아옴과 동시에 일어나 오후 2시까지 일을 한 후 저녁때까지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가끔은 모두가 잠든 후까지 산책만을 할 때도 있었다고 하며 그는 이때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이시여. 숲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기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이곳은 얼마나 장엄합니까!”
‘전원 교향곡’은 자신을 잃어 절망한 나머지 유서를 쓰기까지 했던 베토벤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욕구를 심어 준 자연에 대한 사랑 고백인 셈이다. 그가 이 곡을 특별히 ‘전원’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창작 당시의 베토벤의 상황과 곡에서 받은 느낌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베토벤 자신은 '전원생활의 회상'이라고만 했고, ‘듣는 사람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베토벤이 38세 때인 1808년 12월 22일 교향곡 5번 ‘운명’과 함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됐고, ‘운명’과 같은 해의 작품이어서인지 이 두 교향곡에서는 어딘가 비슷한 예술적 연관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교향곡 5번이 인간을 표현하고 남성적이며, 지극히 집중적인 곡임에 비해 이 곡은 자연을 표현하고 여성적이며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라는 설명으로 두 곡을 상반되게 보는 평론가도 많다. 하지만 전개부 구성이나 곡 전체의 구성 모두 두 곡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을 비교하여 듣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운 감정이 깨어남’
표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원(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감정을 나타냈다. 베토벤 교향곡 사상 최초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이다. 그만큼 힘을 빼고 느긋하게 연주한다.
첫머리의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민요에서 유래한 듯하지만 슬로베니아나 모라비아에서도 비슷한 민요가 존재했다고 한다. 교향곡 5번 ‘운명’ 첫머리와 마찬가지로 페르마타가 사용됐다. 시종 즐겁고 밝은 분위기이다.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 ‘시냇가의 정경’
시냇가에서 본 자연의 모습을 묘사했다. 저음 현악기에서 시냇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모습을 암시하는 듯한 미세한 움직임을 묘사한다. 여기서 관악기들이 새의 울음소리를 묘사하는데, 플루트는 나이팅게일, 오보에는 메추리, 클라리넷은 뻐꾸기를 나타내고 있다.

 


3악장 알레그로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스케르초에 해당하지만 즐겁게 농부들이 춤추는 무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고유의 춤곡이 들려온다. 연주하는 사이 술에 취해 잠든 악사도 있고 소박한 악기를 가져온 악사도 있다.

4악장 알레그로 ‘천둥, 폭풍우’
3악장 끝에서 쉼 없이 연결된다. 저음현이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를 나타낸다. 춤추던 농부들은 놀라서 대피하고 천둥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번개가 내리치고 폭우가 쏟아진다. 베토벤 특유의 박력과 다이내믹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잠시 후 천둥소리는 멀어지고 밝은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역시 쉼 없이 5악장으로 연결된다.

 

5악장 알레그레토 ‘목동의 노래, 폭풍우가 지난 뒤의 감사’
클라리넷과 호른이 목동 피리소리를 내고 그에 이어 바이올린이 우아한 선율로 노래한다. 가볍고 청량한 제2주제에 이어 제1주제가 여러 번 모습을 드러낸다. 베토벤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흔히 보이는 강렬함은 없지만 평화롭고 목가적인 모습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마무리된다. 그 모습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oven: Symphony No.6 - Haitink/RCO(2009Live)

 

 

 

Beethoven: Symphony No. 7 -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Iván Fischer 

 

 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Op. 92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베토벤은 교향곡 6번이 작곡된 뒤 3년이 지난 1811년에 교향곡 7번의 작곡에 착수했다. 그 3년동안 베토벤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우선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다. 1809년 4월 9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했고, 5월 12일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침입했다. 베토벤의 후원자들은 빈에서 다른 곳으로 피란갔고, 베토벤은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곡도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뜩이나 귀를 앓고 있었던 베토벤은 연이어 울리는 포성에 귀를 보호하기 위해 지하실에 웅크리고 베개를 머리에 대고 있기도 했다 한다.
1809년 10월 전쟁이 끝나고 11월 프랑스군이 퇴각하지만 베토벤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귀족들은 1810년 1월에 빈으로 복귀했다. 이 시기의 심정을 그린 피아노 소나타 ‘고별’을 작곡하면서 베토벤의 창작력은 서서히 회복되고 심리 상태도 안정을 찾게 됐다. 연금도 다시 지급 받았다.
전쟁 다음으로 겪은 일은 사랑이다. 1809년부터 베토벤은 테레제 말파티(브룬스비크 백작의 딸 테레제와는 다른 여성이었다)라는 여인과 알게 됐다. 베토벤은 테레제와 결혼을 고려하고 있었으며 현악 4중주 10번 ‘하프’에 나타나는 밝은 악상도 그녀와 관련 있다고 한다.
테레제를 위하여 쓴 유명한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와 Op.38의 두 가곡이 1810년 봄 작곡됐고 이 해 여름에 작곡된 현악 4중주 11번 ’세리오소‘는 40세 가까운 남자와 18세 여자의 결혼이 실현 불가능해지면서 내면적이고 심각한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랑도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1811년 여름, 베토벤은 휴양을 위해 경치가 좋은 온천지 테플리츠에 갔다. 그곳에서 베토벤은 아말리아 제바르트라는 가수와 다시 만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베토벤은 마음에 들었는지 이듬해에도 다시 방문하여 제바르트의 신세를 졌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에 테플리츠는 좋은 곳이었다. 즐겁고 밝은 분위기를 점차 되찾은 베토벤은 1806년경부터 해오던 이전의 스케치를 꺼내 작곡을 시작했다. 교향곡 7번도 그 중 하나로 1811~1812년 베토벤은 대부분 밝은 장조곡들만을 쓰고 있다.
이렇게 나온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와 흥겨움으로 넘친다. 경쾌하게 밟는 명쾌한 리듬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흥분시킨다. 바그너는 이 곡을 두고 “성스러운 경지에 이른 춤”이라고 했다.
이 곡을 들어보면 강하고 뚜렷한 의지가 느껴진다. 귓병 때문에 생긴 절망감을 떨치고 교향곡 3번을 쓴 것과 바깥세상에서 느낀 실망감 때문에 교향곡 5번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다. 전쟁과 실연으로부터의 정신적인 극복과 관계가 있다. 따지고 보면 실연은 내면을 파괴하는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초연 때는 ‘전쟁교향곡’이라 불리는 ‘웰링턴의 승리’ Op.91도 함께 연주됐다. 두 곡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2악장이 앙코르로 연주됐다.

1악장 포코 소스테누토-비바체
포코 소스테누토(조금 속도를 늦추어)로 연주하는 서주는 뒤에 나올 주요부의 주제로 발전시켜간다. 충실하고 당당하게 곡의 성격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주요부는 소나타 형식인데 발전부는 매우 대위법적이다. 재현부에 이어지는 코다는 지속저음(바소 오스티나토)을 동반한다.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 ‘시냇가의 정경’
자유로운 3부형식. 끊임없이 서정적인 성격이 흐른다. 1부에서는 대위선율을 수반한 부드럽고 아름다움이 듣는 이를 조용히 뒤흔든다. 마치 비장한 장송행진곡 같이 흐르면서 점층적으로 커지는 음의 덩어리가 가슴을 두드린다. 2부에서는 훨씬 밝아짐 대조적인 행복감을 나타낸다. 3부는 1부의 변주같이 느껴지는데, 푸가토도 두고 있다. 많은 면에서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장송행진곡’과 비슷하다.

 

3악장 프레스토
까부는 듯한 스케르초에 해당한다. 트리오가 두 번 나오는데, 이 트리오에서는 밝고 따스하며 민요적인 분위기가 나타난다. 오스트리아 지방 순례의 노래에서 따왔다고도 하는데, 베토벤은 강약대비나 휴지, 스타카토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4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힘찬 화음에 이어 연주되는 제1주제는 러시아 민요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베토벤은 라주모프스키 현악 4중주를 작곡하기 이전에 이미 러시아 민요집을 갖고 있었다). 제2주제는 약동하는 듯하며 유머러스하다. 발전부는 제1주제의 전개로 이루어지고 재현부는 제1주제가 조를 바꿔 재현되고 제2주제가 첼로로 재현된다. 장대한 코다로 끝을 맺는다.



 

 

 

Carlos Kleiber Beethoven Symphonies 7 (Complete) / Concergebouw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