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1번 C장조 Op.21
교향곡이라는 장르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가 됐던 베토벤. 1800년 4월 2일,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그가 이 곡을 지휘하며 이 장르에서 첫 번째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 만 서른이 안된 나이였다. 교향곡 1번의 작곡시기를 볼 때 차이코프스키나 말러보다 1년 늦었으며, 하이든보다는 2년, 모차르트보다는 21년이 늦은 나이다. 당시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이름은 널리 퍼져 있었다.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현악 4중주, 8중주, 6중주 등 실내악, 가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작곡하며 다양한 음악적 근육을 키웠던 그는 신중하게 교향곡 작곡가로 출범을 알렸다.
베토벤 교향곡의 출발점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교향곡 장르에 남긴 고전적인 양식을 정(正)으로, 그리고 베토벤 자신이 새롭게 길을 연 19세기의 새로운 교향악 어법을 반(反)으로 하여 나아간 합(合)이라는 변증법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교향곡 3번 ‘에로이카’ 이후에 나타나는 완전히 독보적인 베토벤의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전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새로운 자신만의 씨앗을 뿌리는 신중하고 균형 있는 모습이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악기 편성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비슷해도 관악기 취급 방법과 같은 경우 두 선배에게 없는 신선함이
있다.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2대씩 사용한 것도 보다 확대된 편성이다.
1악장 Adagio molto—Allegro con brio
1악장은 아다지오로 시작해 알레그로 콘 브리오로 변화를 가져간다. 서주는 명암 변화와 강약 대비의 느낌을 준다. 이후 활기찬 주요부는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훨씬 더 진취적이고 거친 야성의 느낌이 있다.
2악장 Andante cantabile con moto
2악장은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역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2악장의 첫 부분과 비슷해 화제가 됐다. 느린 악장답지 않게 리듬감이 넘치는 가운데 팀파니의 역할이 혁신적이고 인상적으로 두드러진다. 소나타 형식으로 재현부는 제시부보다 대위법적으로 짜임새가 있다.
3악장은 ‘이름만 미뉴에트’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등 고전주의 교향곡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미뉴에트와는 조금 달라 성격적으로는 스케르초에 가깝다. 우아함에 박력을 더한 스케르초라고 보면 되겠다. 강약을 대조시키고, 레가토와 스타카토를 대비시키며 약동감과 분방함, 격렬함을 보여주는 악장이다.
4악장은 아다지오로 된 서주와 주요부인 알레그로 몰토 에 비바체로 이루어져 있다. 서주는 강렬한 G음의 유니즌 뒤에 바이올린이 차례로 음계를 구성해가며 주요부의 제1주제를 이루고, 주요부의 제2주제는 바이올린에 의한 밝은 선율이다. 소나타 형식인 주요부는 이 두 주제를 사용하고 피날레에서는 관악기들이 두드러진다. 하이든에게 없는 강한 개성을 가지고, 만년의 모차르트가 선보였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개를 이어받으려는 베토벤의 의욕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한 교향곡의 출발선이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BEETHOVEN, Symphony No. 5 in C minor
한편, 비평가들은 ‘운명’ 교향곡의 특징을 ‘불규칙성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베토벤이 당시 곡을 구성하기 위해서 으레 지켜지던 모티브의 구성이라든지 리듬의 진전, 악장의 구성 규칙을 넘어서서 그로부터 벗어나 뛰어난 곡을 썼기 때문이다. 프레이즈나 리듬의 구성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뒤바뀌기도 하고 끝악장에서 발휘되는 놀라운 힘도 큰 의미에서 리듬의 불규칙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베토벤은 “더 아름다운 것을 위해서 파괴하지 못할 규칙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는 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로 다가선 베토벤의 혁신을 대표하는 하나의 슬로건이 되었다.
교향곡 4번이 5번보다 먼저 완성되기는 했지만 교향곡 4번 작곡이 착수되기 전부터 교향곡 5번의 스케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시기는 늦어도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완성한 후인 1804년 4월경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은 1808년 완성됐다.
1805년부터 1808년은 베토벤 창작 중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여러 편의 걸작이 작곡된 반면, 귓병이 악화돼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도 힘들어졌다. 반면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명성은 확고해지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이루었다. 창작에 대한 의욕도 강하게 일어났다. 교향곡 4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1807년경 요제피네와의 사랑도 끝이 났다. 베토벤이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격렬한 투쟁과 승리를 노래한 곡을 쓰기에 충분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 곡의 부제인 ‘운명’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제목은 제자 쉰틀러가 1악장 도입부 네 음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 베토벤이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고 답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첫머리 동기를 ‘운명의 동기’라고 부르게 됐다.
한때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운명’이라 부르는 것은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통용된다고 부정적으로 얘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독일어 해설서에도 ‘Schicksalsymphonie(운명교향곡)'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요즘은 영미권 음반이나 프로그램에도 ’Destiny'라고 표기돼 있는 경우가 많으니, ‘운명’은 세계인의 보편적인 명칭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작품의 초연은 1808년 12월 22일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이루어졌다. 이 때 교향곡 6번 ‘전원’도 함께 초연되었는데(당시 교향곡 5번과 6번은 번호가 바뀌어 있었으나 출판할 때 현재의 번호로 자리잡았다), 미사 Op.86, 피아노 협주곡 4번, 합창 환상곡 Op.80도 함께 연주되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쳐도 마라톤 음악회다. 너무 많은 곡을 한꺼번에 연주했고 예정됐던 출연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초연은 실패로 기록됐다.
초연 당시 베토벤은 이 곡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고 악보가 인쇄된 뒤에도 여기저기 수정이 가해지고 추가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리허설을 할 때에도 그 수정작업이 끈질기게 계속되었으므로 초판본은 쓸모없이 되었고 1809년 3월에야 수정본이 나왔다. 후원자였던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다.
1악장 도입부 ‘자자자 잔!’ 하는 강렬한 ‘운명의 동기’는 전 작품을 통해 일관되는 통일성을 갖게 한다. 마치 모든 것을 생성시키는 근본과도 같은 의미심장함을 품고 있다. 베토벤 이전에도 이것과 유사한 동기가 수난곡이나 오라토리오, 오페라에서 이따금 등장했었다. 베토벤 이후에는 슈베르트의 가곡, 바그너나 베르디의 오페라, 브람스 교향곡 1번이나 가곡 등에도 이런 종류의 동기가 사용됐다. 그러나 ‘운명’에서 베토벤만큼 효과적으로 이 동기를 쓴 경우는 드물다. 베토벤은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 동기를 시험했다. 피아노 소나타 ‘열정’ 1악장, 교향곡 3번, 피아노 협주곡 4번, 바이올린 협주곡 등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2악장은 조용하고 명상에 잠긴 듯한 선율이 느긋하게 세 번의 변주를 거쳐 코다에 이른다.
3악장은 이제 자리를 잡은 스케르초이다. 이 악장에서 시시각각 임박해오는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주제는 두 개 있는데 빠른 템포의 춤추는 듯한 리듬이 즐겁기보다는 비통하게 절규하는 듯한 역설로 다가선다. 자체적으로 맺힘과 풀림을 반복해가며 4악장으로 끊김 없이 넘어간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편성된 악기의 종류가 훨씬 많아져 폭넓은 음색과 음량을 내준다. 교향곡 사상 최초로 피콜로, 콘트라 바순, 세 개의 트롬본 등이 보강되어 당당한 울림을 선보인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진군하는 대군처럼, 이 기념비적인 교향곡의 최후를 장식한다.
베를리오즈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두고 “베토벤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내적인 사상이며, 그의 남모를 고뇌이기도 하고, 억압된 분노이자 실의 속 몽상과 환영이며 그의 환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에게 크나큰 영향과 뛰어넘을 수 없는 좌절을 함께 준 인류 불멸의 역작,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다.
Beethoven - Symphony No. 5 (Proms 2012)
베토벤 교향곡 2번 D장조 Op.36
베토벤이 귀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1798년 무렵부터다. 여기저기서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베토벤은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머물면서 요양했다. 그는 이곳에서 10월 6일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 베토벤이 동생들에게 보내려고 쓴 유서로 일반적인 유서와는 달리 죽기 직전에 쓴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비통한 심정과 분노에 찬 마음을 절절하게 밝히는 글이었다.
이 이전인 1800년 무렵부터 교향곡 2번 1악장의 서주와 주요부를 스케치해놓고 있던 베토벤은 이 곡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완성했거나, 최소한 빈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완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음악가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귓병. 그로 인해 고뇌하던 시기에 작곡된 곡이다. 이로 인한 비극적인 어두움이 1악장의 서주나 2악장의 일부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곡 전체를 봤을 때 따스한 온기가 자리하고 있고 희망적인 성격이 지배적이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혹은 ‘고뇌를 극복한 후의 기쁨’이라는, 베토벤의 트레이드마크를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맥락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곡의 스케치를 시작할 무렵 베토벤은 경제적으로 매우 순조로운 상태였다. 1800년 이후 카를 리히노프스키 후작으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었으며 악보 출판 전망도 좋은 상태였다. 게다가 하일리겐슈타트는 조용하고 마음에 드는 마을로 베토벤이 좋아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한 곳에서 베토벤은 요양하며 귀를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아래 베토벤은 격렬한 곡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교향곡과 나란히, 혹은 전 후에 작곡된 (교향곡 아닌) 작품들은 어둡고 격정적이기보다는 밝은 분위기의 장조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당시 베토벤의 이성관계도 알아둘 만하다. 당시 베토벤 주변의 여인으로는 먼저 브룬스비크 집안의 딸로 동생 요제피네와 함께 1799년 5월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 테레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테레제의 사촌이며 1800년 베토벤의 제자로서 줄리에타 귀차르디가 있었다. 요제피네는 곧 다임 백작과 결혼해 유부녀가 됐기 때문에 이 곡과 연관된 문제의 여인 후보에서는 탈락이다. 줄리에타는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헌정받은 여인이다. 어쨌든 1799년부터 베토벤의 주변에는 화사한 연애의 냄새가 났다. 그러므로 이런 화사한 감정이 이 시기의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이따금 격렬한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32세의 젊은 나이였기에 예술적 열망과 더불어 여인에 대한 관능적인 욕망도 불타올랐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삶에 대한 의욕은 그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불행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열중하는 것'이란 경구를 새기며 베토벤은 작곡에 열성을 다하는 것으로 자신의 불행에 맞섰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양식 면에서 놀랄만한 진보를 성취한다. 연달아 작곡한 교향곡 1번과 2번 사이에도 양식적인 변화가 충분히 나타난다. 외관적으로도 1악장의 서주가 매우 장대해졌다. 3악장에서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더구나 서주는 교향곡 1번보다 훨씬 깊은 내용과 풍부한 감정을 보여주며 소재면에서도 이어지는 주요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 교향곡에서 스케르초는 여기서 처음 사용하지만 다른 장르, 피아노 소나타나 실내악곡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아직 훗날에 볼 수 있는 교향곡에서의 스케르초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지는 않지만 악기 사용법이 가볍고 묘한 변화를 보여주며 셈여림의 급작스러운 변환, 조성 변화, 쉼표의 활용 등 일찍이 스케르초적인 효과를 내는데 성공한다.
악기편성은 교향곡 1번과 완전히 같지만 용법에서는 목관악기, 특히 클라리넷의 활약이 눈에 띈다. 낭만적인 도취감이나 따스한 감정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작품은 리히노프스키 후작에게 헌정됐으며, 1803년 4월 5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다.
1악장 아다지오 몰토 - 알레그로 콘 브리오
느린 템포의 장엄한 서주에는 서정적인 윤기가 흐르며 극적인 힘도 존재한다. 주부는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대담하면서 명랑하며 신선한 맛이 풍기는 경쾌한 악장이다. 코다는 악장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구축한다.
2악장 라르게토
절묘한 아름다움을 지난 악장으로 특히 그 선율은 빈의 춤곡과 관련 있다. 제1주제는 대위법적인 풍부한 울림을 수반하며 먼저 현이 풍부한 정서를 지니고 노래한다. 이것이 목관으로 옮겨져 발전하며 경과부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제 2주제를 바이올린이 애정어린 선율로 연주한다. 발전부는 제 1주제를 주로 취급하고 있으며 격렬함을 보여준다. 재현부는 두 개의 주제를 차례로 보여주지만 음색에 대위법적 처리 면에서 제시부와는 약간 다르다. 부드러운 감촉에 낭만적인 서정미가 풍긴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기존의 미뉴에트와는 분명 다른, 스케르초의 해학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분방한 청년 베토벤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중간부에 해당하는 트리오는 교향곡 1번의 미뉴에트처럼 기본 조성이 D장조이다. 목관에서 부드럽게 시작하며 잠시 후 현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옮겨간다.
4악장 알레그로 몰토
소나타 형식인데, 주제가 두드러지며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론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극도로 예리한 제1주제로 시작하며 잠시 후 첼로에 부드러운 선율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힘을 증대시켜 가면서 그 클라이맥스에서 제시부가 끝나도 곡은 발전부로 들어간다. 이 발전부는 제1주제를 이용하여 유머러스한 효과와 극적이고 강력한 힘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 1주제가 본래의 모습대로 등장하여 재현부로 들어간다. 재현부는 제시부처럼 진행하면서 화려하고 정열적으로 곡이 마무리 된다. 극적인 환희에 차 있으며 유머와 환희, 행복감에 넘쳐 있다.
공연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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