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2015년)

2015 교향악축제/서울시향/정명훈&조성진/4.10.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5. 4. 10. 17:20

 

 


 


4. 10 (금) 8:00 p.m.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 정명훈
피아노 | 조성진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5번 E장조 Op.73, “황제”
L. v. Beethoven / Piano Concerto No.5 in E Major, Op.73 “Emperor”

브람스 / 교향곡 제4번 e단조 Op.98
J. Brahms /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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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석 오픈안내]
4/10(금) <2015 교향악축제 -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합창석 티켓판매가
3월 30일(월) 오후 2시부터 시작됩니다.


2015 교향악축제 CONCERT SCHEDULE * 클릭하시면 각 교향악단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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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wed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4.2 thu 대구시립교향악단
4.3 fri KBS교향악단
4.4 sat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4.5 sun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4.6 mon 과천시립교향악단
4.7 tue 충남교향악단
4.8 wed 광주시립교향악단
4.9 thu 대전시립교향악단
4.10 fri 서울시립교향악단
4.11 sat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4.12 sun 춘천시립교향악단
4.14 tue 울산시립교향악단
4.15 wed 원주시립교향악단
4.16 thu 수원시립교향악단
4.17 fri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
4.18 sat 부산시립교향악단
4.19 sun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패키지 할인 : ⑴ 골드회원 6회 25% / 9회 30% / 12회 35% / 18회 40% 할인 ⑵ 블루회원 6회 20% / 9회 25% / 12회 30% / 18회 35% 할인 ⑶ 일반 6회 15% / 9회 20% / 12회 25% / 18회 30% 할인

 지휘 | 정명훈
Myung-Whun Chung, Conductor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뉴욕 매네스 음대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1979년 거장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보조지휘자로 경력을 시작하여 2년 후 이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정명훈은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유럽과 미국 등지의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을 지휘하였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파리 바스티유, 라스칼라, 빈 슈타츠오퍼를 비롯한 세계 오페라 유수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지휘를 하였다.

1984-1990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87-1992년 피렌체 테아트로 코뮤날레 수석객원지휘자, 1989-1994년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1997-2005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및 2001-2010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을 역임했다. 2011년에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역사상 최초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00년부터 프랑스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2005년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고문을 시작으로 2006년부터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선정한 ‘프레미오 아비아티 상’ 과 이듬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 프랑스 극장 및 비평가 협회의 ‘올해의 아티스트 상’, 1995년 프랑스에서 ‘브루노 발터 상’과 프랑스 음악인들이 선정하는 ‘음악의 승리상’에서 최고의 지휘자 상을 포함 3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2003년에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일본의 ‘레코드 아카데미상’,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문화훈장인 ‘금관 훈장’을 수상했으며, 2011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코망되르 레종 도뇌르 훈장’, 2013년 이태리 베니스의 ‘평생음악상’ 등 수 많은 세계적 권위의 상을 수상했다.

1990년부터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수 많은 음반을 레코딩하며 유명 음반상을 휩쓸었다. 특히, 메시앙이 그에게 헌정한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비롯하여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발매한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과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등은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11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아시아 교향악단 역사상 최초로 서울시향의 5년 전속 음박계약 체결을 이끌었으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말러 교향곡 1번, 2번, 9번 등 서울시향과 지금까지 총 8장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인도주의적 대의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오고 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서 2010년 서아프리카의 베닌을 방문하여 에이즈, 식수 위생 및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였다.

피아노 | 조성진
Seong-Jin Cho, Piano

 

조성진은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그 이름을 알렸으며, 2009년 일본에서 열린 제7회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 그리고 최연소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함으로써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콩쿠르뿐만 아니라 연주활동에 있어서도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아래 서울시향과 수차례 협연하였으며,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뮌헨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 NHK Symphony Orchestra, Nagoya Philharmonic Orchestra, the Pacific Music Festival Orchestra in Sapporo, Ural Philharmonic Orchestra, Israel Camerata Jerusalem, 코리안 심포니오케스트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협연무대를 가진바 있다.

또한 대관령국제음악축제와 서울스프링 페스티벌에서 실내악 연주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실내악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국내는 물론 일본과 러시아, 독일, 폴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등 국내ㆍ외에서 매년 수십 차례 독주무대를 선보이는 등 매우 광범위한 연주활동을 하고있다.

조성진은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7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서울시향은 2005년 재단법인으로 독립 이후,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예술감독의 리더십 아래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음악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부지휘자 최수열과 세계적 명성의 객원지휘자, 협연자,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자인 상임작곡가 진은숙이 함께하는 정기연주회는 탁월한 음악적 성과와 프로그래밍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주도하고 있다.

서울시향은 2007년 태국 및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유엔의 날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2010년 이탈리아, 독일, 체코, 러시아 등 유럽 4개국 9개 도시 투어, 2011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등 유럽 페스티벌 투어, 2012년 로스앤젤레스 등 북미 투어에서 기립박수와 호평을 받았다. 2013년 4월에는 서울과 베이징의 자매도시 20주년을 기념하여 중국의 국가대극원(国家大剧院)무대에 올랐으며, 2014년 8월에는 핀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 등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 무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영국 BBC 프롬스 공연은 현지 유력 일간지로부터 최고 등급의 평가와 함께 ‘깊은 감동을 주는 매우 품격 있는 연주’라며 찬사를 받았다.

한편, 서울시향은 전문 공연장에서의 콘서트 외에도 다양한 공익 공연을 펼치며 서울시민과 호흡하고 있다. 병원, 교도소, 구민회관 등을 방문하는 ‘우리동네 음악회’, 능동 숲속의 무대에서 펼치는 ‘어린이날 음악회’, 한강변의 ‘강변음악회’ 등 대형 야외공연은 서울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그밖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술학교’를 비롯하여 공연관람 고객을 위한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 차세대 지휘자 양성을 위한 ‘지휘 마스터클래스’, 작곡 전공생을 위한 ‘작곡 마스터클래스’, 금관 연주자 양성을 위한 '바티 브라스 아카데미'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는 물론 전문 연주자 양성을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향은 2011년 아시아 교향악단으로는 최초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DG)과 5년 동안 매년 2장의 음반을 출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2013년에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교향곡 5번을 함께 담은 음반을 포함해, 베토벤 교향곡 9번 음반을 출시했으며, 2014년 상반기에는 진은숙 상임작곡가의 3개의 협주곡(피아노, 첼로, 생황 협주곡)을, 하반기에는 말러 교향곡 9번을 발매했다.

 

 


 

 

 


 

 

 

 

공연후기....

 

4월이면...

꽃보러 산으로 내달림과  동시에 또 욕심을 내는게 있다.

바로 교향악 축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화려한 오페라의 향연과 '로열 콘체르토 헤보우'의 베토벤 전곡 시리즈(20일~23일)까지 이어져 정말 정신줄을

꽉 잡고 있어야만 해낼 수 있는 4월의 스케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올해는 교향악 축제의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다.

 

19일까지  펼쳐지는 18개의 공연중

4월1일 코리안 심포니의 오프닝 콘서트를 시작으로 조진주 협연의 KBS 오케스트라와 윤홍천 협연의 대전 시립 교향악단,

정명화 협연의 부천 필하모니, 그리고 오늘 조성진 협연의 서울 시향 공연을 예매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조성진을 선택한 것을 보니 조성진에 대한 그의 애정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왜 아닐까...

저 어린 녀석(?)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단박에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마니,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면 더욱 기특하고 대견스러워 보일것도 같다.

 

오늘 그가 연주할 곡은 1악장만 무려 20분이나 되는 40분이 넘는 대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중 가장 유명하고 걸작이기도 하지만 모든이가 단박에 매혹되는 그런 아름다운 곡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수트가 왠지 조금은 아기같은 이미지에서 조금은 성숙한 청년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기인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연주되는 동안 꽉 다물고 있는 그의 입모양새가 당차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손이 건반위에 올려지고...

이내 홀에 울려 퍼지는 소리란...

웅장하고...더없이 명징하고...유려하다.

 

곡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가!

특히 2악장이 울려퍼질땐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이 온 감성을 뒤흔들지 않는가~

굽이 굽이 선율따라 내가 그동안 히말라야 깊은 속살을 누빌때의 풍광이 절로 무대뒤로 펼쳐지고...

감동은 배가 되어 목젖이 아파올 지경이다.

 

어느새 3악장이 울려 퍼진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겠지??

까마득한 추억이 이리도 생생하게 떠오 르는것이...

 

대학시절...

한창 클래식에 미쳐 엄마 몰래 용돈을 아껴 매일같이 음반을 사들고 들어오던 벅찬 시절에 휩쌓였고,

눈뜨면 내 방안을 메우고 온 집안으로 퍼져 나가던 영롱하고 매혹적이던 피아노 선율은 귓가를 쟁쟁하게 울리며 가슴을 에리게 한다.

바로...

이 선율이었어~

가슴을 한없이 파고드는 너무나도 영롱하고도 아름다운 선율....그리도 좋아서 눈뜨면 틀어놓았었지.

 

매니아 초보시절...

이 곡 황제를 비롯해서 특히 좋아해 늘 나를 에워싸고 있던 곡들이 있었지.

베토벤 4번, 생상 1,2번, 쇼팽 1,2번....ㅋㅋ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전으로 돌아가 꿈결을 헤메다 보니, 연주가 끝났다.

피날레 또한 장관이잖아~

환호성이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고, 내 주변 어디선가는 목쉰 소리로 브라보를 쉴새없이 외쳐댄다.

 

에구~~기특한 녀석!!

어느새 세월은 흘러 또 금새 청년이 되어 더욱 성숙된 연주를 들려주겠지?

내 시간이 이리도 빠르니, 금새 그리 될거야~

순간 수많은 우리나라의 꽃같은 젊은 연주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난다.

뜬금없이 '키신' 연주자도 스쳐 지나고...

 

***********************

 

짧은 시간에 천안 언니의 생일파티(?)에 끼어서 맛있는 요리를 먹느라 타가지고 간 커피도 못 마신 터라

인터미션에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일종의 공연을 보기 전 정신을 맑게 가다듬기 위한 '정결례식' 같은거라고나 할까...ㅋㅋ

 

이제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이다.

머릿속엔 머물던 베토벤에 대한 이미지와 어릴적 추억,,,히말라야의 깊은 속살...

1부 내내 내 머릿속과 가슴을 메웠던 것들을 지워버리고

온전히 무대에 집중한다.

서울 시향과 정명훈 지휘자....

 

아~

브람스 교향곡 4번의 서주는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 곡을 들을때 마다 항상 오래 전 '금난새'씨의 포스코 로비 음악회에서 듣던  연주가 생각난다.

너무나 생생하게...

 

해설 음악회 처럼 시작되던 연주회였어서 몇 테마의 곡을 연주하고 설명을 덧붙이고는 본 연주에 들어갔었는데....

그때 이 매혹적인 첫 테마의 연주를 하면서 브람스의 클라라를 향한 사랑을 상상해 보라 했었거든~

그때만 해도 젊은 시절이라 그랬는 지, 그 선율이 정말 그리도 아름답고 애절하게 들렸다니~

어쩌지 못하는 클라라를 향한 애절한 사랑의 테마처럼...

 

그리고 브람스 전기를 읽으면서 뇌리에 박힌 그의 이미지...

그의 어릴적 조금은 우울했전 시절의 운무낀 고향의 분위기...등

 

이렇게 매혹적인 선율로 시작된 연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폭풍처럼 거대하게 변모해 간다.

한 순간에 다 휩쓸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듯.....

 

그렇게 연주는 끝을 냈다.

예술의 전당 홀은 환호성으로 가득하다.

근래 시끄러웠던 서울 시향의 사건과 정명훈에 대한 갖가지 언론으로

맘고생이 심했을거란 생각때문일까...

저 들의 노력으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듣고 있는데....

대중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이 모든것들이 안타까워서 일까...

 

그냥...

서울시향과 정명훈을 바라보는 내 맘이 좀 아프다.

 

앵콜곡 연주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우울한 맘을 잠깐 토로했었는데, 잘 안들려서....ㅠㅠ

미국 순회 연주가 취소가 되었다는 건지, 거기서 할 앵콜곡 이었다는 건 지...

암튼...

 

기막힌 앵콜곡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 을 듣고나서는

환호하는 청중들의 커튼 콜에 정명훈은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쳐 달라는 제스처를 했다.

처음 그가 서울 시향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말러 전곡' 연주를 하면서 보냈던 제스처이다.

날로 발전하고 노력하는 서울 시향이 마땅히 '기립박수'를 받을 만 하기도 하고,

또 그리 격려를 해 달라는 뜻으로 보이기도 하여 감동적이었던 현장 스케치였는데....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그의 오늘 이 제스처는 왠지 좀 안스럽고 맘을 더 아프게 했다고나 할까...

 

서울 시향이 이렇게 훌륭한 연주단체가 되고 년중 수많은 연주회를 펼치면서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 희망이

얼마나 대단하던가!!

우리 매니아들의 그들을 향한 애정이 더욱 간절한 시간이기도 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Beethoven, Piano Concderto No.5 E♭Major Op.73 ‘Emperor’ 특성 | ‘황제’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베토벤의 가장 장대하고 화려한 협주곡<br>정보 | 1809년 빈에서 작곡되어 1811년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됨

1809년 초, 베토벤의 생활은 비로소 든든한 반석 위에 올라선 것처럼 보였다. 일단 3월 1일부터 '평생 연금'을 받기 시작했는데, 세 명의 젊은 고위 귀족, 로프코비츠 공작, 킨스키 공작, 루돌프 대공이 그에게 매년 4천 플로린이라는 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다만 베토벤이 "빈(Wien) 혹은 오스트리아 황실 폐하의 다른 세습영지를 거주지로 하는 대신"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로써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확보한 베토벤은 들뜬 기분에 여행이나 결혼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고, 특히 친구인 글라이헨슈타인 남작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의 신붓감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 해 5월,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바이에른 침공에 대한 대응에 나선 프랑스 군이 에크뮐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한 다음 내친 김에 빈까지 진격해왔고, 그러자 오스트리아의 왕족과 귀족, 부유층들은 서둘러 빈을 탈출했다. 뒤에 남은 시민들이 나름대로 도시를 수호하겠다고 나섰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무기가 턱없이 부족해서 극장에 있던 총과 창, 칼 등의 소품들까지 꺼내왔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빈은 포위된 지 일주일 만인 5월 13일에 함락당하고 말았다.

장대한 스케일, 왕성한 추진력, 찬란한 색채

빈에 남게 된 베토벤의 상황은 절박했다. 적군의 포탄이 쏟아지는 동안에는 약해진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베개를 머리에 두르고 있어야 했다. 또 프랑스 군이 도시를 점령한 뒤에도 한 동안 오스트리아 군의 반격으로 인한 전투가 계속되어, 그는 사방을 뒤덮은 전쟁의 참화와 진군의 북소리, 군화소리로 인해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후원자들이 모두 도시를 떠나면서 경제적 원조가 끊기는 바람에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힘겨웠는데 피난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가까스로 동생의 집에 의탁한 그는 여름에 쓴 한 편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가장 심각한 형태의 비참함을 겪고 있었습니다. 5월 4일 이후 나는 일관성 있는 작품을 거의 하나도 쓰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단편 이것저것 뿐입니다. …… 바로 얼마 전에 내가 쌓아올린 생존의 기반이 불안정해 졌습니다. …… 주위에서는 온통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행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온통 북소리, 대포소리, 모든 형태의 비인간적인 처참함 뿐입니다.”

 

나폴레옹의 빈 함락 시기에 작곡된 이 곡은 베토벤의 시대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출처: wikipedia>

그의 마지막 협주곡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9월에 베토벤은 자선 연주회에서 [영웅 교향곡]을 지휘했고, 전황이 정리되어 감에 따라 빈의 질서와 생활도 점차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아갔다. 일련의 상황은 10월 14일 쇤부른 궁전에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단락 되었고, 베토벤도 다시금 기지개를 켰다. 그 전란의 와중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진 [피아노 협주곡 제5번 E♭장조]는 베토벤 최고의 역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의 장대한 스케일, 왕성한 추진력, 찬란한 색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베토벤 자신조차도 이 정도로 대담하고 격렬한 협주곡은 쓴 적이 없었다. 그는 이 곡에서 특유의 강력한 피아니즘을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게 펼쳐 보였고, 그 결과 이전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장조]에 이어 다시 한 번 피아노 협주곡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영웅적인 기개와 경이로운 조성 전개

이 협주곡은 베토벤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훗날 슈만과 브람스가 계승하게 되는 ‘교향적 협주곡(Symphonic Concerto)’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이 곡은 분명 ‘협주곡’이지만 관현악부가 독주부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며, 두 파트가 긴밀하게 어우러져 더없이 절묘하고 역동적인 음악세계를 펼쳐 보인다. 발터 리츨러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작품은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서 영웅적인 기개를 과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로운 조성 전개의 극치를 보여준다. 강렬한 개시 화음들은 경이로운 조성 전개의 건물 안으로 이끄는 웅장한 입구와도 같다.”

 

제1악장 - Allegro
약 20분간에 걸친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첫 악장은 시작부터 특별하다. 관현악의 힘찬 화음에 이어 피아노가 곧바로 등장하여 화려하고 당당한 카덴차를 연주해 보이며 출발하는 것. 협주곡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난 이런 개시법은 이후 슈만, 그리그, 차이콥스키 등 수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혁신적인 개시부에 이어 관현악이 강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제1주제와 스타카토 리듬에 실려 등장한 후 유려하게 펼쳐지는 제2주제를 제시한다. 이후 피아노가 다시 등장하고 음악은 때로는 충만한 열기와 긴장감 속에서 강력하게, 때로는 섬세하고 유연하면서도 멋스럽게 진행된다. 이 악장은 두 차례의 장쾌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후 힘차게 마무리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통상 재현부와 종결부 사이에 놓이는 독주자 임의의 카덴차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베토벤은 '카덴차는 필요 없음. 그대로 계속해서 연주할 것'이라고 지시하는 대신 카덴차에 상당하는 독주부를 직접 채어 넣었다. 즉, 자신이 의도한 흐름이 독주자의 기교과시에 의해서 단절되거나 왜곡될 위험을 차단했던 것이다. 이 역시 슈만과 브람스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부분이다.

아울러 이 악장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의 활약을 통해서 팡파르 풍의 울림과 행진곡풍 리듬이 유난히 부각된다. 또한 전편의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흐름은 다분히 전투적이다. 그래서인지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이 협주곡을 ‘군대 개념의 변증론’이라고 불렀는데, 혹시 베토벤은 이 곡에서 나폴레옹 군대, 혹은 그로 상징되는 '적군'에 대한 자기 나름의 투쟁을 전개했던 것은 아닐까?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했던 시절, 베토벤은 프랑스군 장교와 마주친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대위법만큼 병법에 정통했더라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도처에서 포탄이 터지는 듯한 장면마저 연출하는 이 곡을 들으며 (물론 비유적인 견지에서) 관현악을 병사들로, 피아노를 그들을 이끄는 장수로 상정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클림트가 그린 [베토벤 프리즈]의 한 장면. '황제'라는 별칭은 영웅적인 기개가 돋보여 붙여졌다. <출처: NGD>

 

제2악장 - Adagio un poco mosso
앞선 악장과 사뭇 대조적인 완서악장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온화하게 이어지는 흐름, 그리고 그 위에 신중하게 얹히는 독주 피아노의 선율. 이 명상적인 악장에는 숭고하고 성스러운 기운마저 서려있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에 따르면 찬미가풍의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순례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이 빈에서 물러간 얼마 후인 11월 22일에 베토벤이 라이프치히의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격렬한 파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난을 겪은 뒤에 우리는 약간의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몇 주 연속해서 작업했지만 불멸성보다는 죽음을 위한 작업으로 여겨집니다……. 이 죽어버린 평화에 대해 당신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나는 이 시대에 더 이상의 안정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확실성은 우연한 기회 뿐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다시 한 번 절망을 딛고 일어섰다.

이 악장은 그 극복의 통로가 아니었을까? 여기서 그는 반추하고, 기도하고, 음미한다. 그리고 새 희망을 꿈꾼다. 그의 후기음악에 나타나는 영적인 차원의 환상적인 음률이 이미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악장은 베토벤이 남긴 가장 심오하고 감동적인 음악 가운데 하나이다.

 

제3악장 - Rondo. Allegro
앞선 악장의 끝부분에서 중단 없이 이어지는 이 악장에서 음악은 다시금 첫 악장의 기세와 분위기로 복귀한다. 이 '승리'를 향한 행진곡에서, 춤곡풍의 주제는 마치 곡예를 펼치는 듯하며, 피아노와 관현악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술래잡기를 하는 듯하다. 협주곡 고유의 경쟁의 묘미와 돌파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박진감 만점의 멋진 피날레이다.

흔히 이 곡의 제목처럼 통용되는 '황제'라는 별명은 정작 베토벤 자신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베토벤이 한 때 존경하던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 격노하여 [영웅 교향곡]의 원래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일화를 떠올리자면, 베토벤의 가장 돋보이는 걸작 중 하나에 '황제'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은 심히 불경스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별명을 누가 붙였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설에는 J. B. 크라머라는 영국의 출판업자가 거론된다. 그는 이 작품이야 말로 모든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황제'의 자리에 놓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꽤나 그럴듯한 발상 아닌가? 더구나 젊은 시절에는 혈기왕성했던 베토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보수적인 성향으로 변해갔으며 한 때 '황실 악장'의 직함을 원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굳이 거부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닌가 싶다.


추천음반

다른 어떤 곡보다도 이 곡에 있어서만큼은 근래의 음반들보다 왕년의 거장들이 남긴 음반들이 먼저 떠오른다. 모노 시절의 명반으로는 역시 에트빈 피셔를 가장 먼저 거론해야 할 것이고, 이후에도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루돌프 세르킨, 클라우디오 아라우, 프리드리히 굴다, 알프레트 브렌델, 에밀 길렐스, 레온 플라이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등등이 남긴 기라성 같은 명연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낸다는 건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는 그 후대의 음반들 중에서 피아노와 관현악의 조화, 독주 스타일의 다양성, 그리고 음질적인 측면 등을 고려하여 이 곡의 입문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권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음반들을 아래 4종 꼽아보았다.

 
펌/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869
황장원 |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에서 보다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기 위해서 머리와 가슴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체험과 상상력, 감동을 중시하는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노트 필자, 네이버캐스트 ‘음악의 선율’ 필진이며, 서울 예술의전당, 성남아트센터, 대구 수성아트피아, 무지크바움, 풍월당 등지에서 클래식 음악감상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Brahms,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브람스 교향곡 4번 E단조 Op.98

 

Johaness Brahms

 

1833-1897

 

Carlos Kleiber,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Musikverein, Grosser Saal, Wien

 

1980.03

 

 

Carlos Kleiber/WPh - Brahms,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완벽주의자 클라이버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이다. 필청반이다. CD가이드가 20세기 명반 리스트에 올렸던 이 음반은, 아마도 지금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일 성싶다. 예스24의 음반 차트에서도 역시 그렇다. 클라이버의 브람스 4번 해석은 베토벤을 연주할 때와는 달리 약간 무뚝뚝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카라얀처럼 냉엄한 분위기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카라얀이 브람스 4번을 한겨울의 추운 음악으로 연주한다면, 클라이버의 연주는 만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유주의자 클라이버, 당연히 브람스처럼 고독감을 느꼈을 이 지휘자의 정신성이 느껴지는 명연이다.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일 악장을 하나만 꼽자면 3번 교향곡의 3악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먼저 첼로가, 이어서 바이올린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관과 호른이 연주하는 주제 선율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지요.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 서정적인 악장입니다.

교향곡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아마도 4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곡입니다. 브람스가 50대 초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러니까 1884년에서 이듬해까지에 걸쳐 작곡한 음악입니다. 브람스는 52세에 이 곡을 완성하고 나서 12년 뒤인 1897년에 세상을 떠나지요. 교향곡으로는 4번이 마지막 곡입니다. 이후의 브람스는 교향곡은 물론이거니와 관현악이 들어간 곡도 거의 쓰지 않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독주악기로 등장시킨 ‘2중 협주곡 A단조’가 관현악을 포함한 곡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브람스는 그렇게 생애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관현악보다는 실내악에 한층 마음을 기울입니다. 특히 말년의 그는 클라리넷을 주인공으로 삼은 5중주, 3중주, 소나타 등에 집중했지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뮈르츠슐라크(M?rzzuschlag)라는 전원도시가 있습니다. 산세가 아주 빼어난 아름다운 곳이지요. 브람스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놀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당신과 함께 마법과 같은 달밤의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표현은 거의 애정 고백에 가깝지요. 하지만 제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브람스에 대해 종종 언급했듯이, 브람스는 클라라와 ‘사고’(?)를 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승의 아내’라는 부담이 당연히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브람스라는 사람 자체가 결혼을 두려워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성싶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겨운 결혼생활을 목격해야 했으니까요.

50대에 들어선 브람스는 여전히 독신이었지만 음악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도 상당히 얻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1894년 여름에 복잡한 빈을 떠나서 뮈르츠슐라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곡을 썼지요. 교향곡 4번 E단조 Op.98이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브람스는 두 해의 여름을 뮈르츠슐라크에서 보내면서, 빈에 있는 지인들에게 어떤 곡을 작곡하고 있는지를 일체 함구한 채 교향곡 4번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또한 브람스의 성품입니다. 신중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웬만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어찌 보자면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자신의 곡에 대해 스스로 자신 없어 했던 것이기도 하지요.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

그가 교향곡 4번의 작곡 사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1885년 8월에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겐베르크(1847-1892)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습니다. 이 여인은 제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 Op.83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활약했던 피아니스트입니다. 한때 브람스의 피아노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으나 브람스가 거절했다는 여인이지요. 일설에는 브람스가 그녀의 빼어난 외모에 마음을 뺏길까봐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브람스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여자친구’였습니다. 브람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좋은 조언자의 역할을 하곤 했지요. 브람스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향곡 4번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언을 청하고 있는데, 그 주저하는 어투에는 브람스 특유의 성품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곡의 단편을 보내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한마디 해주겠습니까? (중략) 내가 보기에 썩 좋은 곡은 아닙니다. 몇 군데 수정할 곳도 있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괘념치 마십시오.”

하지만 이 곡의 반향은 컸습니다. 브람스는 1885년 10월 25일에 마이닝겐 궁정 관현악단을 자신이 직접 지휘해 초연하는데요, 이 초연을 리허설할 때는 한스 폰 뷜로(1832-1902)가 브람스를 대신해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물론 브람스가 참관한 리허설이었지요. 이 장면도 참 재미있습니다. 리허설은 뷜로가, 실제 연주는 브람스가 한 것이지요. 그런데 뷜로는 리허설을 마친 첫날(22일), 공연 기획자로 이름이 높았던 헤르만 볼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방금 연습을 마치고 왔습니다. 4번 교향곡은 굉장합니다. 무척 새롭고 개성이 뚜렷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릅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브람스의 팬이었던 마이닝겐 백작의 요청에 의해 1주일 뒤에 같은 장소에서 또 연주됐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일련의 연주회가 곧바로 펼쳐졌습니다. 다음 해 4월까지 거의 20개 가까운 도시에서 교향곡 4번이 연주됐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교향곡 4번 E단조는 50대에 접어든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했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입니다.

빈의 중앙공원묘지에 있는 브람스의 묘. 1896년, 브람스는 교향곡 4번의 악보를 펼치고 1악장의 첫 4음인 B-G-E-C 위에 ‘오! 죽음이여, 오 죽음이여!’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7년에 브람스는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특히 이 곡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지요. 1896년 5월 20일에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브람스가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리워했던 그녀가 뇌졸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맙니다. 클라라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브람스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지요. 아버지가 앓았던 간암이 아들인 브람스에게도 찾아와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에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회,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렸던 음악회에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그날 연주됐던 곡이 바로 교향곡 4번 E단조였습니다. 그 연주회는 아직 살아 있는 브람스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 행사였습니다. 그날 브람스의 모습은 뼈만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3일, 브람스는 친구나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눈을 감습니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가정부가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I. Allegro non troppo

1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빠르되 지나치지 않게). 서주 없이 곧바로 현악기가 첫번째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첼로와 호른이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 선율은 좀더 환하고 서정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체념과 슬픔의 분위기가 감도는 악장입니다.

II. Andante moderato

2악장은 안단테 모데라토(적당히 느리게). 호른과 목관이 잔잔한 애수를 노래하면서 시작합니다. 중세 교회음악에서 많이 사용했던 프리기아 선법의 음계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굳이 프리기아 음계를 모르더라도 그냥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어서 바이올린의 피치카토와 어울리며 클라리넷이 첫번째 주제 선율을 노래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첼로가 연주합니다. 약간 몽환적이면서 중세적인 느낌이 감도는 악장입니다.

III. Allegro giocoso

3악장은 알레그로 지오코소(빠르고 즐겁게). 앞의 악장들과 달리 활달하게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관현악 총주로 박력 있는 첫번째 주제를 제시하고, 춤곡 풍의 두번째 주제는 바이올린이 연주합니다. 관현악의 힘찬 연주 속에서 들려오는 트라이앵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IV.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4악장은 알레그로 에네르지코 에 파쇼나토(빠르고 힘차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관악기가 묵직하게 문을 엽니다. 바흐 시절에 유행했던 샤콘느(chaconne) 풍의 비장한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그것을 30회 변주하는 독특한 악장입니다. 바흐의 칸타타 150번 ‘주여, 저는 우러러봅니다’에서 영향을 받은 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종결부는 비장하고도 단호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른다 - <교향곡 4번 e단조 op.98>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

 

글 | 문학수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일 악장을 하나만 꼽자면 3번 교향곡의 3악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먼저 첼로가, 이어서 바이올린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관과 호른이 연주하는 주제 선율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지요.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 서정적인 악장입니다.

 

교향곡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아마도 4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곡입니다. 브람스가 50대 초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러니까 1884년에서 이듬해까지에 걸쳐 작곡한 음악입니다.

브람스는 52세에 이 곡을 완성하고 나서 12년 뒤인 1897년에 세상을 떠나지요. 교향곡으로는 4번이 마지막 곡입니다. 이후의 브람스는 교향곡은 물론이거니와 관현악이 들어간 곡도 거의 쓰지 않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독주악기로 등장시킨 ‘2중 협주곡 a단조’가 관현악을 포함한 곡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브람스는 그렇게 생애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관현악보다는 실내악에 한층 마음을 기울입니다. 특히 말년의 그는 클라리넷을 주인공으로 삼은 5중주, 3중주, 소나타 등에 집중했지요.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출처: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뮈르츠슐라크(Murzzuschlag)라는 전원 도시가 있습니다. 산세가 아주 빼어난 아름다운 곳이지요. 브람스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놀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당신과 함께 마법과 같은 달밤의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표현은 거의 애정 고백에 가깝지요.

하지만 제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브람스에 대해 종종 언급했듯이, 브람스는 클라라와 ‘사고’(?)를 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승의 아내’라는 부담이 당연히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브람스라는 사람 자체가 결혼을 두려워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성싶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겨운 결혼 생활을 목격해야 했으니까요.

 

50대에 들어선 브람스는 여전히 독신이었지만 음악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도 상당히 얻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1894년 여름에 복잡한 빈을 떠나서 뮈르츠슐라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곡을 썼지요. <교향곡 4번 e단조 op.98>이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브람스는 두 해의 여름을 뮈르츠슐라크에서 보내면서, 빈에 있는 지인들에게 어떤 곡을 작곡하고 있는지를 일체 함구한 채 교향곡 4번을 써내려갔습니다. 그것이 또한 브람스의 성품입니다. 신중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웬만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어찌 보자면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자신의 곡에 대해 스스로 자신 없어 했던 것이기도 하지요.

 

그가 교향곡 4번의 작곡 사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1885년 8월에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겐베르크(1847~1892)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습니다. 이 여인은 제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 op.83>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활약했던 피아니스트입니다. 한때 브람스의 피아노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으나 브람스가 거절했다는 여인이지요. 일설에는 브람스가 그녀의 빼어난 외모에 마음을 뺏길까봐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브람스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여자친구’였습니다. 브람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좋은 조언자의 역할을 하곤 했지요. 브람스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향곡 4번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언을 청하고 있는데, 그 주저하는 어투에는 브람스 특유의 성품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곡의 단편을 보내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한마디 해주겠습니까? (중략) 내가 보기에 썩 좋은 곡은 아닙니다. 몇 군데 수정할 곳도 있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괘념치 마십시오.”

 

하지만 이 곡의 반향은 컸습니다. 브람스는 1885년 10월 25일에 마이닝겐 궁정관현악단을 자신이 직접 지휘해 초연하는데요, 이 초연을 리허설 할 때는 한스 폰 뷜로(1832~1902)가 브람스를 대신해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물론 브람스가 참관한 리허설이었지요. 이 장면도 참 재미있습니다. 리허설은 뷜로가, 실제 연주는 브람스가 한 것이지요. 그런데 뷜로는 리허설을 마친 첫날(22일), 공연기획자로 이름이 높았던 헤르만 볼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방금 연습을 마치고 왔습니다. 4번 교향곡은 굉장합니다. 무척 새롭고 개성이 뚜렷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릅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브람스의 팬이었던 마이닝겐 백작의 요청에 의해 1주일 뒤에 같은 장소에서 또 연주됐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일련의 연주회가 곧바로 펼쳐졌습니다. 다음해 4월까지 거의 20개 가까운 도시에서 교향곡 4번이 연주됐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교향곡 4번 e단조>는 50대에 접어든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했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입니다.

 

특히 이 곡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지요. 1896년 5월 20일에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브람스가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리워했던 그녀가 뇌졸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맙니다. 클라라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브람스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지요. 아버지가 앓았던 간암이 아들인 브람스에게도 찾아와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에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필하모닉의 연주회,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렸던 음악회에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그날 연주됐던 곡이 바로 <교향곡 4번 e단조>였습니다. 그 연주회는 아직 살아 있는 브람스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 행사였습니다. 그날 브람스의 모습은 뼈만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3일, 브람스는 친구나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눈을 감습니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가정부가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Brahms Symphony N° 4 (Jansons)

 

 

 

Johannes Brahms (1833 - 1897) Sinfonie Nr. 4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GMJO) Luzern (Lucerne), die Schweiz (Suisse) 2001

 

 

I. Allegro non troppo

1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빠르되 지나치지 않게). 서주 없이 곧바로 현악기가 첫번째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첼로와 호른이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 선율은 좀더 환하고 서정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체념과 슬픔의 분위기가 감도는 악장입니다.

II. Andante moderato

2악장은 안단테 모데라토(적당히 느리게). 호른과 목관이 잔잔한 애수를 노래하면서 시작합니다. 중세 교회음악에서 많이 사용했던 프리기아 선법의 음계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굳이 프리기아 음계를 모르더라도 그냥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어서 바이올린의 피치카토와 어울리며 클라리넷이 첫번째 주제 선율을 노래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첼로가 연주합니다. 약간 몽환적이면서 중세적인 느낌이 감도는 악장입니다.

III. Allegro giocoso

3악장은 알레그로 지오코소(빠르고 즐겁게). 앞의 악장들과 달리 활달하게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관현악 총주로 박력 있는 첫번째 주제를 제시하고, 춤곡 풍의 두번째 주제는 바이올린이 연주합니다. 관현악의 힘찬 연주 속에서 들려오는 트라이앵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IV.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4악장은 알레그로 에네르지코 에 파쇼나토(빠르고 힘차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관악기가 묵직하게 문을 엽니다. 바흐 시절에 유행했던 샤콘느(chaconne) 풍의 비장한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그것을 30회 변주하는 독특한 악장입니다. 바흐의 칸타타 150번 ‘주여, 저는 우러러봅니다’에서 영향을 받은 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종결부는 비장하고도 단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