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중 발췌
Sergei Prokofiev, Selections from Romeo & Juliet Suites
I. The Montagues and Capulets
II. Juliet - The Little Girl
III. Masks
IV. Romeo and Juliet
V. The Death of Tybalt
VI. Friar Laurence
VII. Dance
VIII. Dance of the Maids from the Antilles
IX. Romeo at Juliet’s Grave
X. The Death of Juliet
휴식 (Intermission)
요하네스 브람스, 교향곡 4번 E단조, Op. 98
Johannes Brahms, Symphony No. 4 in E minor, Op. 98
I. Allegro non troppo
II. Andante moderato
III. Allegro giocoso - Poco meno presto
IV.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 Piu allegro
정명훈 감독이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자기 버전의 모음곡으로 소개합니다. 가장 고전적인 러브스토리가 즉물적이기까지 한 현대적 감수성 속에 표현된 이 작품은 프로코피예프가 3개 묶음의 관현악모음곡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정 감독이 세심하게 새롭게 선택한 묶음으로 선을 보입니다. 브람스 교향곡 4번이 후반부 곡목으로 오릅니다. 브람스가 만년의 완숙한 기법과 심오한 감수성을 결합하고, 과거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명작입니다.
[프로필]
지휘 정명훈 Myung-Whun Chung, conductor
지휘자 지휘자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피아노 부문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하였다. 뉴욕 매네스 음대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거쳐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1984~1990),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감독(1989~1994)을 지내며 세계적인 지휘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을 지휘하였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을 비롯한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또한 1990년부터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20여 장의 음반을 레코딩하며 음반상을 휩쓸었으며, 특히,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하기까지 한 메시앙의 음반들(<투랑갈릴라 교향곡>, <피안의 빛>, <그리스도의 승천> 등)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베르디의 <오텔로>,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등은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8년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선정한 '아비아티 상'과 이듬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받았으며, 1991년 프랑스 극장 및 비평가 협회의 '올해의 아티스트 상', 1992년 프랑스 정부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95년 프랑스에서 '브루노 발터 상'과, 프랑스 음악인들이 선정하는 '음악의 승리상'에서 최고의 지휘자상을 포함 3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2003년에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1995년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는 정명훈은 음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문화훈장인 '금관 훈장'을 받았고, 1996년 한국 명예 문화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한 바 있다. 2002년 국내 방송사에서 실시한 문화예술부문 전문가 대상 설문조사에서 음악분야 최고의 대표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Sergei Prokofiev: Romeo and Juliet : excerpts from the ballet - Claudio Abbado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1891~1953)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중 발췌(1938)
<연주시간: 약 40분>
셰익스피어의 동명희곡에 기초한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은 프로코피예프의 최고 인기
작이자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프로코피예프는 이 작품을 쓰기 한 해
전인 1933년,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모스크바로 귀환했다. 그리고 소비에트 당국의 요구
에 부응하는, 보다 간결하고 표현적이며 서정성 풍부한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
에서 영화음악 ‘키제 중위’,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 등을 내놓게 되는데, 특히 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서는 자신의 작풍을 실험주의에서 자연주의로, 모더니즘에서 로맨티시즘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막 상연에 2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장대한 작품이다. 아마 이 유
명한 러브스토리를 다룬 여러 클래식 음악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원작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
을 것이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원작에 담긴 다양한 요소들을 매우 효과적이면서도 개성
적으로 묘파해냈다. 그 세밀하고 다채로운 묘사적 필치는 원작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발레무대 없이도 주요 등장인물들과 장면들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절
묘하다. 본 공연에서는 그중 일부 곡들이 발췌・연주된다. 다음은 그 진행순서에 따른 제목과
곡의 내용이다.
Prokofiev: Romeo and Juliet Suite (excerpts)
Yuri Simonov conducts the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in "Tableau" and "Minuet" from Prokofiev's Romeo and Juliet Suite.
Ⅰ. 몬태규 가와 캐퓰렛 가: 극 속에서 오랫동안 반목해온 베로나의 두 가문을 가리키는 이 곡의 제목은 모
음곡이나 발췌판에서 사용되는 것이며, 원래는 발레 속에서 따로 등장하는 ‘대공의 포고령’과 ‘기사들의
춤’이라는 두 곡을 하나로 연결해놓은 것이다. 먼저 단계적으로 중첩되는 금관악기들의 신호에 이어 강렬
한 화음이 터져 나온다. 이는 베로나의 평화를 선언하며 두 가문의 다툼을 금지하는 영주의 준엄한 포고령
을 나타낸다. 이어서 캐퓰렛 가의 무도회장에서 기사들과 귀부인들이 쌍을 이루어 춤을 추는 장면에 흐르
는 음악이 펼쳐진다. 마치 서로 적대하는 두 가문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부각시키듯 장중하고 위압적인
음악이다.
Ⅱ. 소녀 줄리엣: 줄리엣이 무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 흐르는 음악이다. 처음엔 인형을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귀여운 소녀 줄리엣의 모습을 생기발랄한 음률에 실어 그려 보인다. 그러나 잠시 후 어머니가 들어와
파리스와의 정혼 소식을 알리자 그녀는 당황스러워 한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를 거울 앞에 세우고는 ‘너도
이제 어엿한 숙녀란다’라고 타이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나가자 줄리엣은 다시 인형을 집어 들고 춤을 춘다.
아직 그녀는 천진난만한 소녀인 것이다.
Ⅲ. 가면들: 캐퓰렛 저택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가면을 쓰고 잠입하는 로미오와 친구들의 유쾌하고 장난기 어
린 모습을 나타낸 곡이다.
Ⅳ. 로미오와 줄리엣: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두 주인공, 그들의 풋풋하고 감미로우며 애틋한
사랑을 그린 곡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발레 무대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발코니 장면’의
음악을 바탕으로 진행되는데, 이 곡은 프로코피예프만의 독특한 색채와 개성적인 어법이 가장 아름답게 표
출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먼저 달빛 내리비치는 줄리엣의 발코니가 모습을 드러내고, 잠시 후 그 아래 정원으로 숨어든 로미오의 모
습이 보인다.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 유려하고 몽환적인 2인무가 펼쳐진다. 약음기를
끼운 바이올린 선율이 로미오의 테마를 연주하며 격정적으로 물결치듯 오르내리고, 줄리엣의 주제는 플루
트에서 잉글리시호른과 첼로로 옮겨가면서 사랑에 눈뜸과 동시에 소녀에서 여인으로 거듭난 그녀를 부드
럽게 떠올린다.
Ⅴ. 티볼트의 죽음: 비극적 파국의 기폭제가 된 결정적 사건이 격렬한 필치로 숨 가쁘고 전개된다. 절친한 친
구 머큐시오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로미오가 친구를 죽인 줄리엣의 사촌오빠 티볼트에게 달려들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싸움 끝에 결국 로미오의 칼이 티볼트를 쓰러뜨린다.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린 로미오는 비탄에 빠
진 캐퓰렛 부인에게 매달리다 자리를 뜨고, 티볼트의 시신은 흥분한 캐퓰렛 가문 사람들이 몬태규 가문에 대
한 복수를 맹세하는 가운데 영주 앞으로 옮겨진다.
Ⅵ. 로렌스 신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결혼으로 맺어주고,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
는 로렌스 신부를 나타내는 곡. 바순 솔로가 그의 종교적 이미지와 따뜻한 인간미를 나타내고, 그 사이에서
젊은 연인들의 사랑이 애틋하게 굽이친다.
Ⅶ. 춤: 베로나 거리의 활기차고 떠들썩한 모습을 나타낸 곡. 극 속에서는 머큐시오와 티볼트 사이에 시비가
붙기 직전에 나온다.
Ⅷ. 안틸 제도에서 온 소녀들의 춤(백합꽃 든 소녀들): 줄리엣과 파리스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서기 위해서
온 소녀들이 방에 들어와 춤을 춘다. 하지만 가짜 독약을 마신 줄리엣은 침대 위에 죽은 듯 누워 있다. 사뿐사
뿐 움직이는 리듬을 타고 하늘거리는 선율에서 야릇한 기운이 묻어난다.
Ⅸ. 줄리엣 무덤가의 로미오: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캐퓰렛 가묘로 달려온 로미오. 그는 말없이 누
워 있는 줄리엣을 부둥켜안고 탄식하며 눈물 흘리다가 준비해온 독약을 마시고 숨을 거둔다.
Ⅹ. 줄리엣의 죽음: 깊은 잠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이내 로미오의 시신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그리고 로미오
의 단검을 꺼내 스스로를 찌르고 사랑하는 이 위로 쓰러진다. (출처:SPO팜플릿)
Prokofiev - Romeo & Juliet - Leningrad / Mravinsky
요하네스 브람스 (1833~1897)
교향곡 4번 E단조, Op. 98(1885)
<연주시간: 약 39분>
Brahms,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브람스 교향곡 4번 E단조 Op.98
Johaness Brahms
1833-1897
Carlos Kleiber,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Musikverein, Grosser Saal, Wien
1980.03
Carlos Kleiber/WPh - Brahms,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일 악장을 하나만 꼽자면 3번 교향곡의 3악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먼저 첼로가, 이어서 바이올린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관과 호른이 연주하는 주제 선율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지요.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 서정적인 악장입니다.
교향곡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아마도 4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곡입니다. 브람스가 50대 초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러니까 1884년에서 이듬해까지에 걸쳐 작곡한 음악입니다. 브람스는 52세에 이 곡을 완성하고 나서 12년 뒤인 1897년에 세상을 떠나지요. 교향곡으로는 4번이 마지막 곡입니다. 이후의 브람스는 교향곡은 물론이거니와 관현악이 들어간 곡도 거의 쓰지 않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독주악기로 등장시킨 ‘2중 협주곡 A단조’가 관현악을 포함한 곡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브람스는 그렇게 생애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관현악보다는 실내악에 한층 마음을 기울입니다. 특히 말년의 그는 클라리넷을 주인공으로 삼은 5중주, 3중주, 소나타 등에 집중했지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뮈르츠슐라크(Mürzzuschlag)라는 전원도시가 있습니다. 산세가 아주 빼어난 아름다운 곳이지요. 브람스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놀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당신과 함께 마법과 같은 달밤의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표현은 거의 애정 고백에 가깝지요. 하지만 제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브람스에 대해 종종 언급했듯이, 브람스는 클라라와 ‘사고’(?)를 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승의 아내’라는 부담이 당연히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브람스라는 사람 자체가 결혼을 두려워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성싶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겨운 결혼생활을 목격해야 했으니까요.
50대에 들어선 브람스는 여전히 독신이었지만 음악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도 상당히 얻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1894년 여름에 복잡한 빈을 떠나서 뮈르츠슐라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곡을 썼지요. 교향곡 4번 E단조 Op.98이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브람스는 두 해의 여름을 뮈르츠슐라크에서 보내면서, 빈에 있는 지인들에게 어떤 곡을 작곡하고 있는지를 일체 함구한 채 교향곡 4번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또한 브람스의 성품입니다. 신중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웬만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어찌 보자면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자신의 곡에 대해 스스로 자신 없어 했던 것이기도 하지요.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
그가 교향곡 4번의 작곡 사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1885년 8월에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겐베르크(1847-1892)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습니다. 이 여인은 제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 Op.83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활약했던 피아니스트입니다. 한때 브람스의 피아노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으나 브람스가 거절했다는 여인이지요. 일설에는 브람스가 그녀의 빼어난 외모에 마음을 뺏길까봐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브람스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여자친구’였습니다. 브람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좋은 조언자의 역할을 하곤 했지요. 브람스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향곡 4번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언을 청하고 있는데, 그 주저하는 어투에는 브람스 특유의 성품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곡의 단편을 보내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한마디 해주겠습니까? (중략) 내가 보기에 썩 좋은 곡은 아닙니다. 몇 군데 수정할 곳도 있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괘념치 마십시오.”
하지만 이 곡의 반향은 컸습니다. 브람스는 1885년 10월 25일에 마이닝겐 궁정 관현악단을 자신이 직접 지휘해 초연하는데요, 이 초연을 리허설할 때는 한스 폰 뷜로(1832-1902)가 브람스를 대신해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물론 브람스가 참관한 리허설이었지요. 이 장면도 참 재미있습니다. 리허설은 뷜로가, 실제 연주는 브람스가 한 것이지요. 그런데 뷜로는 리허설을 마친 첫날(22일), 공연 기획자로 이름이 높았던 헤르만 볼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방금 연습을 마치고 왔습니다. 4번 교향곡은 굉장합니다. 무척 새롭고 개성이 뚜렷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릅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브람스의 팬이었던 마이닝겐 백작의 요청에 의해 1주일 뒤에 같은 장소에서 또 연주됐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일련의 연주회가 곧바로 펼쳐졌습니다. 다음 해 4월까지 거의 20개 가까운 도시에서 교향곡 4번이 연주됐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교향곡 4번 E단조는 50대에 접어든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했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입니다. ▲빈의 중앙공원묘지에 있는 브람스의 묘. 1896년, 브람스는 교향곡 4번의 악보를 펼치고 1악장의 첫 4음인 B-G-E-C 위에 ‘오! 죽음이여, 오 죽음이여!’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7년에 브람스는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특히 이 곡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지요. 1896년 5월 20일에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브람스가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리워했던 그녀가 뇌졸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맙니다. 클라라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브람스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지요. 아버지가 앓았던 간암이 아들인 브람스에게도 찾아와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에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회,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렸던 음악회에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그날 연주됐던 곡이 바로 교향곡 4번 E단조였습니다. 그 연주회는 아직 살아 있는 브람스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 행사였습니다. 그날 브람스의 모습은 뼈만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3일, 브람스는 친구나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눈을 감습니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가정부가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Bernard Haitink/COE - Brahms,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Bernard Haitink, conductor
Chamber Orchestra of Europe
Royal Albert Hall. London
Proms 2011
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1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빠르되 지나치지 않게). 서주 없이 곧바로 현악기가 첫 번째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첼로와 호른이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 선율은 좀 더 환하고 서정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체념과 슬픔의 분위기가 감도는 악장입니다.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2악장은 안단테 모데라토(적당히 느리게). 호른과 목관이 잔잔한 애수를 노래하면서 시작합니다. 중세 교회음악에서 많이 사용했던 프리기아 선법의 음계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굳이 프리기아 음계를 모르더라도 그냥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어서 바이올린의 피치카토와 어울리며 클라리넷이 첫 번째 주제 선율을 노래합니다. 두 번째 주제는 첼로가 연주합니다. 약간 몽환적이면서 중세적인 느낌이 감도는 악장입니다.
3악장: 알레그로 지오코소
3악장은 알레그로 지오코소(빠르고 즐겁게). 앞의 악장들과 달리 활달하게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관현악 총주로 박력 있는 첫 번째 주제를 제시하고, 춤곡 풍의 두 번째 주제는 바이올린이 연주합니다. 관현악의 힘찬 연주 속에서 들려오는 트라이앵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4악장: 알레그로 에네르지코 에 파쇼나토
4악장은 알레그로 에네르지코 에 파쇼나토(빠르고 힘차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관악기가 묵직하게 문을 엽니다. 바흐 시절에 유행했던 샤콘(chaconne) 풍의 비장한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그것을 30회 변주하는 독특한 악장입니다. 바흐의 칸타타 150번 ‘주여, 저는 우러러봅니다’에서 영향을 받은 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종결부는 비장하고도 단호합니다.
추천음반
1.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빈 필하모닉, 1980, DG. 완벽주의자 클라이버가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이다. 필청 음반이다. CD가이드가 20세기 명반 리스트에 올렸던 이 음반은, 아마도 지금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일 성싶다. 예스24의 음반 차트에서도 역시 그렇다. 클라이버의 브람스 4번 해석은 베토벤을 연주할 때와는 달리 약간 무뚝뚝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카라얀처럼 냉엄한 분위기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카라얀이 브람스 4번을 한겨울의 추운 음악으로 연주한다면, 클라이버의 연주는 만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유주의자 클라이버, 당연히 브람스처럼 고독감을 느꼈을 이 지휘자의 정신성이 느껴지는 명연이다.
2.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베를린 필하모닉, 1991, DG.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 내려가는 강물처럼, 이리저리 구비치고 출렁거리는 연주다. 하지만 그 물결이 거칠지는 않다.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 감돈다. 정확한 구조와 다이내믹스를 겸비한 음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에 따라서는 브람스의 고독과 슬픔을 너무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다. 1악장이 가장 빼어나고 3악장에서는 밀어붙이는 박력에서 다소의 아쉬움을 남긴다. 무겁게 가다가 어느 순간 날렵해지고, 우울한 느낌이 충만하다가 슬며시 햇살이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3.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2011, BR Klassik. 마리스 얀손스는 무슨 음악을 연주하든 구조와 디테일을 모두 장악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처럼 ‘모범적인 연주 스타일’은 브람스 교향곡에서도 여전하다. 악기 하나하나의 표정이 세밀하게 살아 있는 동시에 전체적인 곡의 구조에서도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다. 얀손스뿐 아니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지닌 특색도 그러하다.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오래도록 단련된 그들은 음표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지휘자와 악단의 신뢰감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그리하여 듣는 이들에게도 신뢰를 전해주는 녹음이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커플링됐다.
글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 시절에는 음악을 멀리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출처: 문화웹진 채널예스>칼럼>음악>‘내 인생의 클래식 101’ 2013.11.12
정명훈의 브람스 교향곡 4번
옛 것에서 찾아낸
가장 좋은 아이디어
봄이 완연한 가운데 정명훈 감독이 가장 고전적인 러브스토리를 선보인다. 프로코피예프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현대적 감수성에 기대 새롭게 표현했다. 후반부 곡목인 브람스 교향곡 4번은 만년의 브람스가 완숙한 기법과
감수성을 결합한 작품으로, 과거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 독창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브람스는 단 네 편의 교향곡을 남겼을 뿐이지만, 그 비중과 의의는 그보다 많은 교향곡을 남
긴 대작곡가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네 곡이 공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데다 저마다 확실한 개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어느 하나 버릴 곡이 없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작곡 시기에 따른 순차적 발전과정은 발견되며, 따라서 네 곡 중 가장 훌륭
한 작품이라면 통상 마지막에 나온 ‘4번 E단조’를 꼽게 된다.
브람스는 이 작품에 이르러 흔히 ‘낭만적 내용과 고전적 형식의 융화’로 일컬어지는 독자적
교향곡 양식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곡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교향곡’은 남기지 않았다. 사실
이 곡은 브람스의 ‘비장의 카드’가 아니었나 싶은데, 작곡 과정에서 상당 기간 친한 친구들에
게조차 그 진척 상황이나 정보를 비밀에 부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런 행동이 브람
스에게 있어서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 곡에 대한 보안에는 좀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그 이
유는 그가 이 곡에서 당시로서는 무척 과감한 모험을 감행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것은 마치 너도나도 “전진 앞으로!”를 외치는 전장에서 홀로 “뒤로 물러서!”를 외치는 행동과
비슷한 것이었다. 즉 그는 여기서 중세 교회선법을 도입하고 바로크 변주곡을 구사하는 등 과
거의 음악양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브람스가 이 곡을 완성한 후 빈의 살롱에서 친구 브륄과 함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곡판
을 연주했을 때 참석자들은 당혹감을 내비쳤다. 비평가 한슬릭은 “지독히 영리한 두 사람에
게 머리를 두드려 맞은 느낌”이라고 말했고, 전기작가 칼베크는 브람스에게 스케르초 악장을
휴지통에 던지고 피날레는 따로 출판하라고 충고했다. 심지어 절친했던 클라라 슈만과 헤르
초겐베르크 부인마저 지나치게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1885년 10월 27일의 마이닝
겐 궁정악단에 의한 정식 초연은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공작은 대만족을 표시하며 제1악장
과 제3악장의 재연을 청하기도 했다.
한편 이 교향곡은 빈에서 남서쪽으로 85km 정도 떨어진 뮈르추슐라크에서 작곡되었다. 브람
스는 1884년과 1885년에 여름휴가를 보내며 ‘교향곡 4번’과 여러 가곡을 쓴 이 산간마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언급들을 남겼다. 우선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놀랄 만큼 아름다
운 곳입니다. 마법과 같은 달밤의 하루를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어지는군요.” 또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나는 이 작품이 이곳 기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몹시 두
렵습니다. 여기서 생산되는 버찌들은 결코 단맛을 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죠.”
뮈르추슐라크의 버찌는 정녕 이런 맛이었을까? 이 교향곡은 대체로 어두운 색조와 무거운 분
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쌉싸래한 여운을 남긴다. 이 곡은 작곡 시기상으로 소위 ‘브람
스 만년의 작풍’에 속하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만년의 작품들에 드리운 ‘짙은 우수와
적막감’을 내포하고 있다. 이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브람스의 나이 어느덧 50대 초반! 어쩌면
그는 지나온 고독한 삶을 미련과 회한 가득한 시선으로 반추하면서 그 궁극적 귀결점을 바라
보며 음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1악장: 첫 악장은 무척 단순한 모티브로 출발한다. 곡이 시작되면 바이올린이 하행 3도 및 상행 6도 음정
을 번갈아 꺼내놓으며 흐르기 시작하는데, 이 모티브는 악장을 구성하는 기본 소재로서 마치 건물을 짓는 벽
돌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에 부수적인 선율들이 어우러지면서 제1주제부를 형성하고, 강한 리듬 위에
서 사뭇 비장하게 흐르는 제2주제(호른과 첼로), 한결 부드러운 오보에 선율 등이 대비를 이루면서 고도로
건축적이고 드라마틱한 흐름을 구축해 나간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브람스가 그 단순한 모티브들의 연결과 확장을 통해서 짜놓은 제1주제 안에 불어넣
은 숨결은 짤막한 음표들 사이사이에 놓인 쉼표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그 탄식과도 같은 허전함,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시린 느낌이야말로 이 곡의 기저에 흐르는 정서를 대변한다 하겠다.
제2악장: 발전부가 생략된 소나타 형식을 취한 이 악장에서 브람스는 중세 교회선법(프리기아 선법,
Phrygian mode)에 기초한 선율을 사용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악장을 가리켜 “달빛 비치는 언덕
맞은편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장례행렬 같다”고 했는데, 분명 이 악장에는 어스름한 빛이 스며있고 종교적인
기운이 흐른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우리는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한 고독한 인간의 회한과
번민을 마주하게 된다.
제3악장: 스케르초에 해당하지만 소나타 형식을 취한 악장으로 가장 늦게 완성되었다. 힘찬 리듬과 화려한
색채로 넘쳐나는 축전적인 곡으로서 음악은 시종 활기차고 강렬하게 타오른다, 마치 젊은 날의 불꽃처럼.
제4악장: 바흐의 칸타타 “주여, 당신을 갈망하나이다(Nach dir, Herr, verlangt mir, BWV150)”의 종곡(‘내
모든 고통의 나날들은 신에 의해 기쁨 속에서 마감될지니’)에서 가져온 8마디의 베이스 주제를 가진 파사칼
리아(바로크 변주곡의 일종)이다. 치밀하게 설계되고 긴밀하게 연결된 30개의 변주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간부(에스프레시보, 3/2박자)는 차분한 4개(12~15)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온갖 상
념과 사유, 감정의 편린들이 새겨진 변주들의 연결이 드라마틱한 기복을 형성하며 전개되다가 통렬한 클라
이맥스를 도출해내는 장엄하고 심오한 음악이다.(출처:SPO팜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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