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2015년)

서울시향/미코 프랑크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2.27.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5. 2. 27. 00:00

 미코 프랑크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지휘 미코 프랑크 Mikko Franck, conductor
플루트 아담 워커 Adam Walker, flute


 

[프로그램]

라우타바라, 숭배 Rautavaara, Apotheosis
이베르, 플루트 협주곡 Ibert, Flute Concerto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Sibelius, Symphony No. 2


 

2009년 21세의 나이에 영국 클래식FM 선정 ‘세계 5대 플루티스트’의 하나로 꼽힌 아담 워커가 이베르의 협주곡을 들고 서울시향 무대에 데뷔합니다. 서울시향을 정기적으로 객원지휘해 온 핀란드의 미코 프랑크는 정명훈의 후임으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수석지휘자에 지명됐던 인물. 특히 시벨리우스와 현대 핀란드 최고 작곡 거장으로 꼽히는 라우타바라의 탁월한 해석가로 꼽힙니다. 이번 무대에서도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2번 교향곡과 라우타바라의 ‘숭배’를 지휘합니다.


 지휘자 미코 프랑크명료함과 직관, 폭발력
핀란드 지휘계의 ‘젊은 소리’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맞아 서울시향도 그의 작품들을 연주한다. 2월 27일 교향곡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교향곡 2번과
핀란드 작곡가 아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의 ‘숭배’가 준비되었다. 핀란드 출신의 35세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지휘하고
런던 심포니 수석 플루티스트 출신인 아담 워커가 이베르의 플루트 협주곡을 협연한다. 시벨리우스의 나라인 핀란드 출신 지휘자들이
세계 지휘계에서 강세를 이룬지도 이제 오래다. 에사페카 살로넨, 유카페카 사라스테, 오스모 벤스케, 사카리 오라모,
레이프 세게르스탐까지 맹활약중이다. 여기에 아직도 늘 ‘젊은’이란 수식어가 붙는 미코 프랑크를 추가해야 할 것이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지휘  미코 프랑크  Mikko Franck, conductor
미코 프랑크는  콘서트 무대와 오페라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30세가
되기  전에  성공적인  지휘  경력을  달성한  아티스트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모차르트, 바그너, 무소륵스키, 푸치니 등의 오페라 작품과 차이콥스키, 시벨
리우스, 라우타바라 등의 콘서트 작품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으며 필하
모니아,  런던  심포니  그리고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을 지휘하였다. 2002년 9월에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
자로 임명되었으며, 온딘 레이블로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시벨리우스의 ‘전설(En
Saga)’과 ‘네 전설곡(레민카이넨 모음곡)’이 수록된 첫 음반을 발매하였다. 국제적 
활동  이후  고국  작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정한  그는 2004년  핀란드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 후보로 지명, 2006년 8월에 동 직책에 임명되었다. 이듬
해에는  예술감독과  음악감독  후보에  지명되었으며, 2008년부터 2013년 8월까지 
두 직책을 수행하였다. 2015년 9월부터는 정명훈의 뒤를 이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는 5세  때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3세  때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스웨덴,  뉴욕,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음악을 공부하였다. 그는 16살이 되던 1995년 하이든의 교향곡 지휘를 처음 시도했고 이후 지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였다. 초기에는 요르마 파눌라로부터 개인 강습을 받았고, 2년 뒤에는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지휘 수업을 받았으며,
1년만에 졸업하였다.

플루트  아담 워커  Adam  Walker, fute
아담 워커는 관악기 독주자의 신세대 선두주자 중 한 사람이다. 영국 클래식 FM은 
그를 ‘세계 5대  플루트  연주자  중  한  명’이라고  칭송하였다. 2009년에는 21세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수석으로  임명되었고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미뎀(MIDEM)  클래식에서 ‘뛰어난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2010년 ‘보를레티 
뷔토니 펠로우십 상(Borletti-Buitoni Trust Fellowship Award)’을 받았고, 로열 
필하모닉 협회의 뛰어난 젊은 예술가상 최종 후보자에 올랐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하고 있는 그는 2011년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렛 딘의 ‘시두리 
댄스’를  세계  초연했고, 2013년에  지휘자  마린  알솝과  카브릴로  페스티벌에서 
케빈  풋츠의  플루트  협주곡  세계  초연을  협연하였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BBT가 휴 왓킨스에게 공동 위촉한 플루트 협주곡을 2014년 2월에 다니엘 하딩의 
지휘로 초연을 했고, 수개월 후 동곡을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비엔나 체임버 오케스트라, BBC스코틀랜드 교향악단,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본머스 심포니, 노던 신포니아, 버밍엄시 
교향악단, 그리고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도 공연하였다. 2014/15 시즌의 주요 일정으로는 
미국에서  마린  알솝이  지휘하는  시애틀  심포니와  볼티모어  교향악단과의  협연무대가  예정되어  있으며,  아일랜드의 
국영방송 국립오케스트라와 함께 왓킨스의 플루트 협주곡을 연주한다. 그는 2013년에 ROH 오퍼스 아르테 레이블로
첫 음반을 발매하였으며, ‘보칼리즈’와 풀랑크, 메시앙, 버르토크, 바버, 슈베르트의 작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라모폰
리뷰는 ‘섬세한 뉘앙스가 있는 표현과 상당히 아름다운 기교를 갖고 있는 뛰어난 연주자’라고 평하였다.

미코  프랑크는 1979년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레스토랑의  피아니스트, 어머니는 보모였다. 5세  때 바이
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 미코 프랑크는 겨우 7세 무렵 다
른 책보다도 오케스트라 총보를 손에 들고 읽는 것에 흥미
를 보인 천재였다. 당시 그가 가장 좋아한 스코어는 차이콥
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었다. 프랑크는 늘 음악을 틀어놓
고 악보를 보며 지휘를 하곤 했다.
“저도  잘  알아요.  제  자신도  믿기지  않죠.  예닐곱  살  때 
차이콥스키 ‘비창’이라든지  푸치니 ‘토스카’를  틀어놓고
지휘를 하고 있었다니 말이죠. 음악을 들으며 화가 났던 것
이 기억나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음악이 흘러가지 않았기 때
문이죠. 하하. 저는 그때 바이올리니스트 아니면 지휘자가
되고 싶었어요.”
이후 프랑크는 어린이 배역을 맡아 오페라 무대에 서기도
하고 TV와 핀란드국립극장의 연극 무대에 내레이션을 맡
기도  했다.  또  유스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투어
를 갖기도 했다.
1992년 헬싱키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시작하면서 프랑크에게 기회가 왔다. 음악원생들은 모두
일정시간 지휘 수업을 받았는데, 하이든 교향곡을 지휘하
던 프랑크의 모습이 요르마 파눌라 교수의 눈길을 끈 것
이다. 요르마 파눌라는 핀란드의 명지휘자이자 지휘 명교
수로  사카리  오라모,  오스모  벤스케,  유카페카  사라스테,
에사페카 살로넨을 비롯한 명지휘자들을 길러냈다.
그의 제자 중 하나인 지휘자 성시연은 스승 파눌라에 대해
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파눌라 선생님은 제게 필요한 것들을 단 몇 마디로 일축해
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곡을 복잡하지 않게, 간단명료하게
생각하는 법, 호흡 하는 법도 그렇고요. 특히 그 분의 비디
오 해석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무엇보다 앞서 음악을 생각하라’ 입니다. 당연한 얘기 같
지만 참으로 많은 순간에 음악 이외의 것들 때문에 그 사
실을 잊어버리곤 하지요. 멀리서 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분
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인간미  넘치고  솔직한  분입니다.
특히, 천 마디의 말보다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높이 사시는 분이지요.”


미코 프랑크도 파눌라 선생 앞에서 지휘했을 때를 결코 잊
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때 처음 지휘대에 섰을 때, 왠지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그 전부터 몇 년 동안 거기 섰었던 것처럼 말이죠.”


핀란드 지휘 대부 요르마 파눌라의 선택
이후 프랑크는 요르마 파눌라에게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
했다. 17세  때인 1996년  가을부터는  파눌라  교수의  지휘
수업에 참관했다. 1998년 졸업 자격을 받지는 못한 채 음
악원에서 공부를 끝냈다. 미코 프랑크가 이미 국제적인 지
휘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배울 것이 없고 스케줄
이 빡빡해져 ‘하산’한 것이다. 1996년 그는 핀란드 국립오
페라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로  지휘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로열 스톡홀름 심포니와 스웨덴 방송관현악단의 포
디움에 섰다.

“두  오케스트라와  공연은  아주  좋았어요.  두  오케스트라
모두  제게  음악감독직을  제안했지요.  제가  거절했어요.
저한테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죠.”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 아니라 ‘맞지 않았다’는 프랑크
의 대답에서 그 특유의 당찬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많은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  전에  오페라  극
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가수들이 지휘자에게 무엇
을 원하는지는 알고 있었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오
페라나 관현악 공연이나 똑같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되
었죠. 물론 오페라를 지휘하는 건 엄청난 일이었죠.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몇 분 안에 모두 친근한 음악
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마치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결혼
까지 가야 하는 미션 같아요.”
영국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1997년 미코 프랑
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썼다. 헬싱키의 음악평론가

 세포  하이킨하이모는  레브레히트에게 “에사페카  살로넨
이 가진 모든 것,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을 지닌 18세 지휘자
를  보았다”고  얘기했다.  스웨덴  방송관현악단의  단원은
“옛  거장처럼  차이콥스키를  지휘한다”고  프랑크에  대해
일러 주었으며, 미국의 어느 지휘자는 “모차르트 ‘마술피
리’를 딴 세상의 음악처럼 지휘한다”고 미코 프랑크의 이
름을 댔다고 한다.
프랑크는 약관의 나이에 지휘 활동의 핵심으로 걸어 들어
갔다. 23세가 되기 전까지 미코 프랑크는 필하모니아 오케
스트라, 런던 심포니, 뮌헨 필, 베를린 국립 오페라, 이스라
엘 필, 그 외에 북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에서 지휘 데뷔
를 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수록한 그의 첫 녹음은 그
래미상 최우수 오케스트라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작곡가
라우타바라와 각별한 프랑크는 그의 작품을 많이 지휘하
고 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프랑크는 2004년 핀란드 국립오페라 극장의 음악 총감독
에  임명됐고 2006년 8월에  공식  취임했다.  그  당시 2005
년 핀란드 국립 오페라의 ‘파르지팔’(하리 쿠퍼 연출)에서
는 마티 살미넨의 기용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핀란드 국립 오페라의 수석 지휘자로 재임하기 1년 전부터

프랑크는 특유의 음악적 감수성과 극적인 폭발력을 과시
하는 지휘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미코 프랑크는 매니지먼트와 갈등을 빚어 2007년
핀란드 국립오페라 수석 지휘자직을 사임했다. 그 후 다시
오페라 극장 측으로부터의 초청을 받아들여 2007년 12월
정식으로 예술감독과 음악총감독이라는 두 개의 포스트에
취임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재임했고, 임기가 2년 더
연장돼 2013년 7월까지 핀란드 국립오페라에서 지휘했다.
“핀란드  국립오페라  시절을  돌이켜보면  매우  보람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만만치 않은 시간들
이기도 했죠. 취임 초창기에 오케스트라가 재정적인 위기
를 맞고 있었고, 예산 삭감에 힘이 빠졌죠. 하지만 그에 아
랑곳 않고 하나씩 하나씩 예술의 기본을 찾아갔죠. 우리가
함께 이룬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좋은 핀란드 가수
가 많이 있었어요. 앙상블도 훌륭했죠. 하지만 그보다 뭔가
더 매력을 끌 수 있는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공연의 질은 기
본이고, 그보다 더한 것을 청중에게 줄 수 있어야죠. 뛰어난
가수들을 부르려 했습니다. 베이스 마티 살미넨, 소프라노
카밀라 닐룬드 등을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나 마리칸토의
‘유하’ 등에 출연시켰죠. 야나체크의 ‘마크로풀로스 사건’에
카리타 마틸라를 몇 년 만에 데려온 것도 멋진 일이었죠.”
미코 프랑크는 핀란드 국립오페라 시절 테너 조란 토도로
비치나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그트 등도 기용했다. “세계적
가수들의 개런티가 비싸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
서 말한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협상을 잘 해야죠. 그런
면에서 저는 꽤 좋은 협상가라고 생각합니다.”
2001년  미코  프랑크는  스웨덴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녹음한 시벨리우스의 ‘전설’과 ‘레민카이넨 모음곡’으로 
디아파종상을  수상했고,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미코 
프랑크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처음  지휘한  것은
2003년이었다.
미코 프랑크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은 2007년에 발매
된 장 마르크 루이사다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RCA)
의 반주를 맡았다. 고급스런 색채감과 세련된 뒷받침으로
활력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정명훈 대타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2012년 12월, 미코 프랑크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측으

로부터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콘서트 버전을 지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
독 정명훈의 대타였다. 그 1주일 전 장남인 지휘자 정민이
사고를 당해 정명훈은 라디오 프랑스 필과 베를린 필의 지
휘를 모두 취소한 상태였다. 공연일을 불과 나흘 남겨놓고
받은 제의. 이 대타 지휘는 미코 프랑크에게도 중요한 도전
이었다.  프랑스  뮈지크를  통해서  생중계되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당시  서른두  살의
미코 프랑크가 처음 지휘하는 레퍼토리였다. 그럼에도 공
연은 대성공이었다. 전례 없는 휘몰아침과 급박함의 낙차
로 살 플레옐의 청중에 미코 프랑크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의 지휘 스타일은 과장이나 효과 없이 음악을 명료하고
심플하게 직선적으로 지시하고 있었다. 공연을 지켜본 청
중들은 강렬함이 지속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에서
부터 악단과 지휘자의 성공적인 결합을 예견했고 미코 프
랑크가 왜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는지를 직감적으
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한다.
이졸데 역의 니나 슈템메는 오늘날 중요한 바그네리안다
운  완숙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녀와  더불어  타이틀  롤인
테너  크리스티안  프란츠는  오케스트라  텍스처와  맞추는
균질함이 부족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 외에 마르케왕 역의
베이스  피터  로즈,  쿠르베날  역의  베이스  데틀레프  로스
등이 출연했고,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은 프랑스의 메이
저 오케스트라로서 위상을 굳건히 했다. 목관과 금관은 장
관을 이루었고 바셋 클라리넷이 주목할 만했다. 3막의 호
른 솔로도 빼어났다. 공연 몇 개월 뒤인 2013년 4월, 미코
프랑크는 2015년 9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라디오  프랑
스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정명훈의 뒤를 잇는다는 뉴스
가 전해졌다.


수술 후유증으로 앉아서 지휘

“수술을 받는 병원에서 늘 ‘비창’ 악보를 읽었어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비창’에서는 포르말린 냄새가 나죠.
모든 레퍼토리를 통틀어 제겐 가장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곡이에요.”

 

우리나라 팬들에게 그는 ‘공연을 취소하는 지휘자’로 각인
돼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지난 2010년의 공연 취소는 많
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이같이 공연 취소가 잦은 까닭은 미코 프랑크가 몸이 아프
기 때문이다. 그는 앉아서 지휘한다. 12세 때 축구경기 도
중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수 차례 받았는데, 그 후유증이
등으로 번진 것. 현재 다리는 괜찮지만 등쪽의 통증은 여전
하다.
“전혀 지장 없어요. 지휘는 발로 하는 게 아니고 손으로 하
는 거니까요.”
그러나 그의 지휘에는 어린 시절의 고통이 배어있다. 찬사
를 받은 시벨리우스 레코딩을 마친 후 미코 프랑크는 곧바
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녹음하자고 요청했다.
음반사가  망설이자  그는 ‘비창’을  녹음하기  전까지는  어
떤 곡도 녹음하지 않겠노라 엄포를 놓았다. 그 결과 녹음한
‘비창’에는 고통을 겪은 그의 감정이 이입돼 있다. “수술을
받는 병원에서 늘 ‘비창’ 악보를 읽었어요. 그래서 제가 느
끼는 ‘비창’에서는 포르말린 냄새가 나죠. 모든 레퍼토리를
통틀어 제겐 가장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곡이에요.”
비교적  자유롭지  못한  신체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코 프랑크의 지휘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미래에
기대를 건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직관을 이번 무대에서 확
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고
국 작곡가들의 작품이니까.
“나이가 몇 살이든 당면하게 되는 문제는 다를 게 없습니다.
저는 연주자 모두가 자유로움을 느끼길 바랍니다. 그래야
제가 설정한 프레임 안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죠.
그건 완전히 준비돼 있는, 프로로서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아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 (1928~)
숭배(1996)

<연주시간: 8분>
1928년 헬싱키에서 태어난 라우타바라는 시벨리우스 이후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
히는  인물이다.  그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다음  줄리아드  음악원과  탱글우드, 
쾰른 등지에서 수학하였다. 초기에는 음렬주의의 영향이 짙은 작품을 썼으나, 그 시기의 작품
들조차 ‘브루크너적’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후 음렬주의
를 버리고 신비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했고,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성악 등 광범위한 장르에 걸친 창작활동을 통해서 국제적 명성을 획득했다.
라우타바라의 1996년작 ‘숭배’는 작곡가 자신의 교향곡 제6번 ‘빈센티아나’(1992)의 마지막
악장을 개정한 작품이다. 그의 여섯 번째 교향곡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와
예술을 다룬 오페라 ‘빈센트’(1986~1987년 작곡, 1990년 초연)에 사용했던 음악을 교향악적
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오페라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암시하던 신디사이저가 제외되었으나
기본적 구상과 음악적 내용은 그대로 가져왔다.
곡은 처음에 중・저현부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면 그 위로 바이올린이 유려한 선율선을
펼쳐놓고 목관이 가세하면서 내향적인 어조에 이어 강렬한 이미지가 부각된다. 이후 선율을
넘겨받은 목관이 구슬픈 분위기의 목가를 노래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장엄한 금관의 코랄이 울려 퍼진다. 마지막에는 새의 지저귐을 연상시키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조용히 마무리된다.

 

 


자크 이베르 (1890~1962)
플루트 협주곡(1932)
<연주시간: 18분>
자크 이베르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지휘자 겸 작곡가로, 젊은 시절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
하며 앙드레 제달주의 클래스에서 공부하며 아르튀르 오네게르, 다리우스 미요 등과 교분을
쌓았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6인조’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전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저명한 ‘로마 대상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대전 후 최초의 유
학생으로서 로마에 머물면서 ‘오스카 와일드에 의한 레딩크 감옥의 시’, ‘목관 오중주를 위한
2악장’, 오페라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피아노 모음곡 ‘이야기’ 등을 작곡하여 호평을 받
았다. 특히 로마에서의 세 번째 제출 작품이었던 ‘기항지’의 대성공은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
을 가져다주었다.
이베르의 작곡경력이 무르익어갈 무렵의 작품인 ‘플루트 협주곡’은 그의 대표작 ‘기항지’와 
통하는  면이  있다.  특히  시정  어린  느린  악장은  일종의 ‘관현악적  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 
‘기항지’처럼  마치  그림엽서와도  같은  풍경을  플루트와  관현악의  음률을  빌어  우리  앞에 
펼쳐놓는  듯하다.  또 1934년 2월 24일,  파리에서  이  곡이  초연될  때  이베르는  엉뚱하게도 
파리의 공연장이 아닌 마르세유의 한 호텔에 있었다. 자신을 쫓아온 신문사 기자와의 인터뷰
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언제나 여행을 좋아해왔죠. … 나는 만일 내가 음악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선원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자신의 협
주곡이 초연되는 걸 들었다. 혹시 그는 이 협주곡을 여행지에서 들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편  이  협주곡은  당대  프랑스  최고의  플루트  연주가였던  마르셀  모이즈에게  헌정되었다. 
초연 역시 모이즈의 플루트 독주와 필립 고베르가 지휘한 파리 음악원 콘서트 협회 오케스트
라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초연 당시 모이즈의 연주에 대해서 작곡가는 “마치 그는 이 음악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연주하는군요. 그는 다만 즐거움을 가지고 그것을 발견해나가고 있네요.”
라고 평했는데, 이 또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에 비견할 수 있을 듯싶다. 그런데 이 협주
곡은 초연 이후 한 동안 거의 연주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있었다. 심지어 피헌정자인 모이즈
조차 이 협주곡을 자주  연주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협주곡을 연주하기가 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악장은 독주자에게 극한의 도전을 요구하기에 파리 음악원 학생들의
과제곡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베르는 어떤 특정한 유파나 운동에 속하기를 거부했기에 시대를 감안할 때 다소 보수적이
었던 작곡가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수적이라고 해서 그 음악의 독자적 개성과 매력까
지 평가절하 당할 이유는 없다. 특히 이 플루트 협주곡은 이베르 음악의 경쾌하고 산뜻하며
유희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며, 전편에 걸
쳐 프랑스 음악 특유의 감각적인 음률 속에서 흥분과 평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도모하
고 있다.

 


제1악장:  알레그로.  첫  악장에서  플루트는  숨이  가쁠  정도로  바삐  움직인다.  변덕스러운  춤곡과도  같은 
이 악장은 크게 두 개의 주제에 의존하고 있는데, 첫 번째 주제는 무척 쾌활하면서 신고전적인 형태를 띠며
두 번째 주제는 조금 느린 템포로 다소 울적한 기분을 자아낸다.
제2악장: 안단테. 이베르 특유의 달콤한 서정성과 이국적 색채를 담고 있는 매혹적인 인상주의 풍의 느린 
악장이다. 현악 파트의 부드러운 반주를 배경으로 플루트가 호흡이 긴 선율을 느긋하게 노래한다.
제3악장: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전곡 가운데 가장 긴 악장으로 다시금 변화무쌍한 춤곡이 펼쳐진다. 다만 
이번에 그 리듬은 때로는 역동적이고 때로는 소박하여 보다 서민적인 느낌을 전달하며, 때로는 재즈 풍의 
음률도 끼어든다. 아울러 흥분과 평정 사이의 대비도 더욱 극명하게 부각되는 이 피날레 악장은 고난도의 
카덴차를 거친 다음 힘차게 마무리된다.

 

 


얀 시벨리우스 (1865~1957)
교향곡 2번 D장조, Op. 43(1901)

<연주시간: 43분>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얀 시벨리우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국민악파 작곡가이다. 덕분에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적・애국적 의미가 부여되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사례로 그가 필생의
화두로 삼았던 핀란드의 전승 서사시 ‘칼레발라’에 기초한 일련의 교향시들은 핀란드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켜 놓았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이 애국애족 정신의 발로였던
것은 아니며, 특히 일부 교향곡은 조금은 다른 지점을 가리키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1902년 3월,  시벨리우스는  헬싱키에서  자신의  두  번째  교향곡을  직접  지휘하여  초연했다. 
그  직후  핀란드의  저명한  지휘자  로베르트  카야누스는  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대해서, 
그 드높이 고조되는 악상이 당시 러시아의 압정 하에 있던 핀란드인들의 애국심을 대변한다
고 해석했다. 또 게오르그 슈네빅트는 각 악장에 다음과 같은 표제적 해석을 붙이기도 했다.
“제1악장은  압제,  압박이라든가  사상에  번민하지  않는  핀란드인의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나타내고, 제2악장은 러시아의 잔인한 압박에 시달리며 애국심에 불타는 핀란드인의 심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제3악장은 국민적 감정을 환기시키면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국가 조
직에 대한 요구를 말하고 있다. 이어서 제4악장은 구세주의 출현을 예상하는 위안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작곡  당시의  정황을  돌아보자면  이런  식의  해석들에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시벨리우스가 이 교향곡의 작곡에 매달린 것은 1901년 2월부터 3월 사이, 이탈리아의 라팔로에
서였다. 당시 그는 카르페란 남작의 도움으로 가족들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라팔로는 제노바 
동쪽해안에  면한  작은  도시로,  야자수가  무성한  남국의  아름다운  휴양지였다. 2월임에도 
온갖 유실수와 과일, 꽃들이 주위를 둘러싼 이국의 환경은, 긴 겨울에 갇힌 북유럽의 생활에
익숙했던 시벨리우스에게 일종의 경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그 ‘마법 같은 나라’를 대하며 
느꼈던  감동을  표현할  음악을  구상했다.  그  구상은 4악장  구성의  교향시로  출발해서  결국 
‘교향곡’으로 귀결되었다.

  어쩌면 시벨리우스가 이 교향곡을 쓰게 된 동기는 매혹적인 신세계를 마주한 감동과 환희가
아니었을까? 그는 곡을 쓰면서 이탈리아에서 접한 영감과 음악적 요소들 즉, ‘돈 후안의 전설’
(제2악장)과 단테의 ‘신곡’, 팔레스트리나의 대위법 등을 고려했다. 이 작품은 그가 핀란드로
돌아간 후에 완성되었는데, 그렇다면 곡의 마지막 대목에서 떠오르는 감회에 젖은 듯한 기분은 
남국에서의 나날들에 대한 동경 어린 회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애국적인 해석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록 작곡가 자신은 작품의 정치
적・표제적 성격을 부인했다지만, 당시 러시아의 압제에 저항하고 있었던 핀란드인들의 가슴
속에서 이 곡은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향한 선언으로 메아리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제1악장
의 정경적인 묘사와 제2악장의 어두운 환상은 분명 핀란드의 자연과 민족성을 환기하는 일면
을 지니고 있고, 감동적인 피날레는 종종 단순한 개인의 감회로 보기에는 너무도 뜨겁고 드높은, 
집단적 고양감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이 작품이 핀란드의 자연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나아가 시벨리우스의 ‘전원 교
향곡’이라고 불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여기에 남국의 풍광이 담겨있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본 시벨리우스는 결국 핀란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남국’은
시벨리우스 혹은 핀란드인이 지향한 미래의 상징이었을 지도 모른다.

 


제1악장: 알레그레토. 단순한 음계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8마디의 서주에 이어 ‘전원의 테마’로 불리는 주요
주제가  클라리넷과  오보에로  제시된다.  이  경쾌하고도  소박한  주제의  후반부는  호른의  고즈넉한  울림이 
장식한다. 이후 곡은 이 주요 선율에 다양한 모티브들이 어우러지며 자유로운 환상곡풍으로 전개된다.
제2악장: 템포 안단테, 마 루바토. 사뭇 어둡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비극적인 악장. 시벨리우스가 라팔로
에서 읽은 책에서 얻은 주제, 즉 ‘돈 후안과 석상 손님’에 기초한 교향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석상 손님’은
보통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죽음의 이미지는 파곳이 꺼내놓는 음산한 단조 주제로 표현되며, 
이것을 바탕으로 긴장감 넘치는 극적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와 대비를 이루는 유려한 장조 주제는 시벨리우
스가 피렌체에서 떠올린 그리스도의 이미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3악장: 비바치시모-(아타카). 질주하는 스케르초와 목가적인 트리오가 독특한 대비를 이루는 악장이다. 
이 악장은 흔히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스케르초에 비견되는데, 그 곡처럼 이 곡도 스케르초와 트리오(중간
의 삽입구)로 이루어져 있고 중단 없이 다음 악장으로 연결된다. 다만 베토벤의 경우에는 스케르초의 재현이
확대되며  피날레로  넘어가는  데  비해,  이  곡에서는  트리오가  한  번  더  재현된  뒤에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점이 다르다.
제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모데라토. 앞선 악장의 말미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이 영웅적인 피날레는 찬란하
고 감동적인 동시에 사려 깊다. 지극히 단순하기에 즉각적으로 뇌리에 각인되는 첫 번째 주제는 때로는 힘차
게 노래되고 때로는 점진적으로 고조되면서 듣는 이에게 가슴 벅찬 감흥을 안긴다. 그 흐름은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서처럼 좌절과 혼돈의 시간을 떨치고 승리와 확신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반면에 핀란드 민요풍의 두 번째 주제는 비감에 잠긴 듯한 인상을 주는데, 시벨리우스의 부인인 아이노의 
말에 따르면 이 선율에는 안타깝게 요절한 처제에 관한 상념이 녹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모든 
고뇌와 역경을 딛고 희망의 미래를 향해서 의연하게 전진하는 발걸음이 그려진다. 그 절정에서 오보에, 트럼펫,
트롬본 등이 함께 연주하는 찬가는 실로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