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의 시벨리우스 협주곡
2월 6일 (금) 오후 8:00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이 2009년에 이어 5년 만에 북구의 겨울 분위기 흠씬 풍기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
합니다. 2005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하차투리안은 당시의 쾌거에 앞서 2004년 나이브 레이블로 동곡
앨범을 발매하며 시벨리우스 해석에 대한 자신감을 일찌감치 드러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출신이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수제자인 지휘자 라파엘 파야레는 2014년 북아일랜드 얼스터 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지명된 바 있습니다.
지휘 라파엘 파야레 Rafael Payare, conductor
바이올린 세르게이 하차투리안 Sergey Khachatryan, violin
프로그램
슈트라우스, 돈 후안 Strauss, Don Juan, Op. 20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Sibelius, Violin Concerto, Op. 47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Dvořák, Symphony No. 8
지휘 라파엘 파야레 Rafael Payare, conductor
오슬로 필하모닉이 꼽은 ‘주목해야 할 지휘자’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 파야레는 2012년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슬로 필하모닉, 몬테 카를로
필하모닉, LA 필하모닉,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등 유명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왔다. 2013년
10월 영국 얼스터 관현악단을 지휘해 깜짝 데뷔한 그는 공연 직후 수석 지휘자 자리를
제안받아 2014/15년 시즌부터 활동한다. 이 시즌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로는 런던 심포니와
데뷔 연주, 뮌헨 필하모닉, 서울시립교향악단, 덴마크 국립 심포니와의 무대 등이 있으며
스웨덴 왕립 오페라와는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지휘한다. 그는 한편으로 2013년
11월 폴란드에서 마련된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80세 생일 축하 공연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
샤를 뒤투아, 레너드 슬래트킨, 이르지 벨로홀라베크 등의 당대 최고 지휘자들과 나란히
초대되어 지휘한 바 있다.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베토벤 축제 데뷔 무대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으며, 2012년 7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개슬턴 축제에서 로린 마젤로부터 직접 지휘를 요청받기도 했다. 베네수
엘라의 유명한 엘 시스테마를 졸업한 파야레는 2004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로부터 공식적인 오케스트라 지휘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스승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부지휘자로서
활동했다. 이밖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부지휘자로서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을 지휘했으며,
2012년 9월 다니엘 바렌보임의 베를린 국립 오페라 ‘지크프리트’ 연주의 부지휘자로도 발탁된 바 있다.
바이올린 세르게이 하차투리안 Sergey Khachatryan, violin
아르메니아 태생인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은 2000년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이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후 2005년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다. 밤베르크 교향악단, 뮌헨 필하모닉,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파리 관현악단 등과 협연했으며 또한 베를린 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네덜
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로테르담 필하모닉,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NHK 교향악단, 시드니 심포니, 그리고
멜버른 심포니 등과도 함께 연주했다. 최근에는 미국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 워싱턴
내셔널 교향악단과 함께 공연한 바 있으며, 이밖에도 뉴욕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오케
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콘서트를
비롯해 라비니아 페스티벌,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 등에 출연했다. 2014/15 시즌에는
크레디트 스위스 영 아티스트 어워드의 수상자로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 아래 빈필하모닉과 함께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함부르크 심포니,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토론토 심포니, NHK 교향악단 등과의 연주가 계획되어 있다. 또한 콘세르트허바우, 비엔나 콘체르
트 하우스, 마린스키 콘서트홀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첼리스트 나레크 하크나자리안, 또한 그의 누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루진 하차투리안과의 삼중주도 예정되어 있다. 음반으로는 엠마누엘 크리빈 지휘 바르샤바 신포니아와 함께 작업한
‘시벨리우스와 하차투리안 협주곡’, 쿠르트 마주어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바흐
‘무반주 소나타&파르티타’ 전곡 음반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아르메니아 음악으로 구성된 음반이 2015년에 발매될 예정이다.
그는 일본음악재단으로부터 1740년 이자이 과르네리산 바이올린을 대여해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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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하차투리안
Sergey khachatryan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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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에서 태어난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은 2000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였으며, 200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우승하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뮌헨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런던 필하모닉, 버밍엄 심포니, BBC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톤할레,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LA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등과와 협연하였고, 하이팅크, 게르기예프, 도흐나니, 마렉 야노프스키, 제임스 콘론, 쿠르트 마주어, 자난드레아 노세다, 다니엘 하딩, 마이클 틸슨 토마스 등과 한 무대에 서고있다.
위그모어홀, 마드리드 국립극장, 카네기홀, 파리 샹젤리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등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2003년의 시벨리우스 협주곡 녹음 이후 나이브 레이블에서 쿠르트 마주어 지휘로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을 녹음하였으며, 2008년에는 누이인 루신 하차트리얀과 함께 쇼스타코비치와 프랑크의 소나타를 녹음하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864~1949)
돈 후안, Op. 20(1888)
<연주시간: 17분>
‘돈 후안’은 17세기의 티르소 데 몰리나와 몰리에르로부터 20세기의 버나드 쇼를 거쳐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동안 예술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온 캐릭터이다. 돈 후안은 14세기
무렵 스페인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바람둥이로, 일생 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여인들을 유혹하고, 사랑을 나누고, 떠나 버리는 일을 무수히 반복했다. 그런 돈 후안을 어떤
이는 몹쓸 호색한으로 묘사했는가 하면, 어떤 이는 허식과 색욕으로 가득한 궁정 및 귀족사회
를 풍자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중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부파 ‘돈 조반니’
는 돈 후안이라는 캐릭터의 한 전형을 음악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19세기 중엽에 활약한 시인 니콜라우스 레나우는 돈 후안을 사뭇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보았다. 레나우는 1843년에 쓴 극시에서 돈 후안을 지고의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낭만주의자
이자 이상주의자로 그렸던 것이다. 레나우의 시 속에서 돈 후안은 끊임없이 이상의 여인을 동
경하며 모험을 감행하지만, 끝내 궁극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한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
한다. 슈트라우스가 1887~1888년에 교향시 ‘돈 후안’을 쓰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도 레나우
의 세계였다. 그는 레나우가 그린 돈 후안의 이상주의자적 면모에 호감을 느꼈고, 특히 그 심
리 묘사에 강하게 이끌렸다.
정열적인 D장조로 시작되어 음울한 E단조로 마감되는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는 레나우의 시
에 나타난 ‘이상의 여인을 찾기 위한 돈 후안의 모험과 좌절의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 보
이고 있다. 곡은 먼저 ‘열락의 회오리’를 나타내는 격렬한 주제로 출발하며, 빠르고 열광적인
흐름과 느리고 부드러운 흐름이 수차례 교대로 나타나 서로를 희롱하며 진행된다.
빠른 부분에서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상징, 광대한 마의 나라’를 나타내는 선율과
‘돈 후안’을 나타내는 주제가 복잡하게 얽히는 가운데 돈 후안이 종횡무진 세상을 누비는
습이 그려지고, 느린 부분에서는 매혹적인 여인의 등장(바이올린 독주), 아름다운 여성 앞
무릎을 꿇는 돈 후안의 모습, 돈 후안의 구애와 유혹 등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부친의 뜻을
스르며 그에게 순종하려는 여인, 그가 정열을 바치지만 그를 거부하는 여인, 어둠 속에서
에게 속아 유혹을 당하는 여인, 그의 열정적인 독백 속에서 떠오르는 여인, 그로 인해 상심
나머지 갑자기 죽어 버린 여인 등 레나우의 극시 속에서 암시되는 다양한 유형의 여인들 사
를 헤매며 ‘이상의 여성’을 찾아 방황하는 돈 후안의 모습이 압축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돈 후안의 희망과 실망, 그리고 한 때의 영웅적 승리 등이 한 폭의 장
하고 화려한 프레스코화처럼 펼쳐지는 이 정열적이고 매혹적이며 변화무쌍한 음악은, 그
나 결국 허무를 암시하듯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며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Richard Strauss - Don Juan op. 20 (Karajan - Osaka 1984)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1904)
교향곡 8번 G장조, Op. 88(1889)
<연주시간: 34분>
드보르자크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고향인
보헤미아의 자연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곡가의 애틋한 시선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신세계 교향곡’과 ‘첼로 협주곡’의 장엄한 스케일과 눈부신 박력이 우리의 오감을 휘감을 때
조차도, 그 이면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며 다소곳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고향을 그리는 드보
르자크의 한없이 소박하고 진솔한 애정,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잠시 그가 미국에서 ‘첼로 협
주곡’을 작곡하던 당시에 고향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이제 첼로 협주곡의 피날레를 끝냈습니다. 비소카에 있을 때처럼 한가하게 일할 수 있었더
라면 훨씬 이전에 완성했겠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 간단히 말하자
면 가장 좋은 것은 비소카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는 소생하고, 휴식하고, 행복합니다. 아,
다시 한 번 그 곳에 있을 수 있다면!”
어떤가? 구구절절 고향을 애달프도록 그리워하는 드보르자크의 마음이 배어나오지 않는가?
이 편지에 등장하는 비소카는 보헤미아의 아름다운 산간 마을로 그의 동서인 카우니츠 백작
의 영지가 있었던 곳이다. 드보르자크는 비소카에 별장을 짓고 여름휴가 기간을 비롯 많은 시
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곳의 한적하고 풍요로운 자연 환경은 그에게 무한한 창작의
에너지를 제공하여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그의 여덟 번째 교향곡 역시 1889년의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비소카에서 작곡되었다.
그가 친구에게서 새로운 교향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8월 초의 일이었는데, 같은
달 26일에 작곡에 착수한 그는 놀라운 속도로 작업을 진척시켜 9월 23일에는 전곡의 스케치
를 마쳤다. 전 4악장의 총보는 11월 8일에 완성되었고, 작품은 이듬해 2월 2일 프라하 루돌피
눔에서 국민극장 관현악단이 주최한 ‘음악가를 위한 기금’ 모금 연주회에서 드보르자크 자신
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교향곡 제8번’은 총 아홉 편에 달하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들 중에서도 보헤미아의 민속색
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훗날의 ‘신세계 교향곡’과 ‘첼로 협주곡’에 머나먼
이국땅에서 보헤미아를 꿈꾸는 그의 향수가 담겨 있다면, 이 작품에는 보헤미아의 한복판에
서 그 풍요로운 정취를 한껏 만끽하는 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한편 이 곡과 관
련해서 ‘영국’이라는 별명이 거론되기도 하는데, 이는 작품의 악보가 영국의 노벨로사에서
출판된 탓일 뿐, 정작 악곡의 내용과 영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제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첫 악장은 첼로와 클라리넷, 그리고 호른이 한 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우아하
면서 애조 띤 선율로 시작된다. 이것은 마치 서주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제1주제의 첫 번째 악구에 해당한다.
각각 두 부분으로 나뉘는 두 개의 주제를 바탕으로 다채롭게 전개되는 이 소나타 형식 악장은 마치 보헤미아
사람들의 소탈하고 활기 넘치는 생활상을 그린 듯하다. 시종일관 풍부한 활력과 생동감으로 넘쳐나는 흥미
진진한 악장이다.
제2악장: 아다지오. 보헤미아의 자연 경관과 풍토를 소박하고 유려한 필치로 묘사한 한 편의 전원시와도 같은
느린 악장이다. 불규칙적인 3부 형식 속에 조용하고 한가로운 전원의 정취가, 사랑스러운 새들의 속삭임이,
그리고 그것들을 비추는 햇살의 눈부신 광채가 담겨있다. 여기에 드보르자크 특유의 아련하고 우수 어린
동경의 분위기와 드라마틱한 고조가 깊고 풍성한 맛을 더한다.
제3악장: 알레그레토 그라치오소. 통상적인 스케르초가 아니라 우아하고 선율적인 춤곡이다. 독일-오스트
리아의 민속춤곡인 왈츠나 렌들러를 연상시키는 사뿐하고 촉촉한 리듬이 인상적이며, 민요의 내음이 담뿍
스며있는 가락도 신선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제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트럼펫이 연주하는 행진곡풍의 힘찬 팡파르로 시작되는 피날레 악장. 이후
에는 첼로가 꺼내놓는 선율(제1악장 제1주제의 두 번째 악구에서 파생된)에 기초한 변주곡 형식으로 전개되
는데, 그 안에는 소나타 형식의 논리도 개입돼 있다. 처음에는 짐짓 차분하게 출발하지만 점차 속도와 열기를
더해가며 역동적이고 눈부시게 전개되며, 마지막에는 광포한 질주의 정점에서 후련하게 마무리된다.
Antonín Dvořák Symphony No 8 [No 4] G major Karajan Wiener Philarmoniker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시벨리우스 / 바이올린 협주곡
Jean Sibelius 1865∼1957
애국적인 교향시 [핀란디아]로 유명한 핀란드의 국민 작
곡가, 장 시벨리우스는 일생 동안 일곱 편의 교향곡과 다수의 교향시를 발표했다. 반면 협주곡은 바이올린을 위한 것을 단 하나 남겼을 뿐인데, 그가 원래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못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한 곡만으로도 시벨리우스는 협주곡사에 불멸의 족적을 새겼다.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스타일과 작품성 면에서 베토벤과 브람스의 걸작들에 비견될 만하며, 공연장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명곡에 버금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
시벨리우스가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작곡한 것은 30대 후반의 일인데, 당시 그는 여러모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그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가족은 경제난에 시달렸으며, 그에 따라 창작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어 고심했다. 무엇보다 [교향곡 제2번]의 대성공에 즈음하여 찾아든 불청객, 귀의 통증이 4년 동안이나 그를 괴롭혔다. 그 동안 그는 혹시 베토벤처럼 청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어쩌면 이 협주곡에 투영된 고뇌 어린 표정과 고통스런 몸부림은 그 암울했던 시절의 반향인지도 모른다.
1907년 시벨리우스의 모습 <출처 : wikipedia>
협주곡은 1903년 가을에 완성되었고, 초연은 이듬해 2월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초연은 독주자의 능력 부족 탓에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어느 유력한 비평가의 지적처럼 곡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했다. 낙담한 시벨리우스는 악보(초판)를 거둬들이고 ‘연주 불가’를 선언했다. 그리고 1905년 여름에 작품을 대폭 손질하여 ‘개정판’을 마련했다.
보다 간결한 구성에 교향악적 색채를 강화한 개정판은 동년 10월 베를린에서 공개되었다. 카렐 할리르의 독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이루어진 이 또 한 번의 초연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후 시벨리우스와 친분이 있었던 러시아의 위대한 바이올린 스승 레오폴드 아우어와 그의 제자들, 특히 야샤 하이페츠와 같은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지지 덕분에 작품은 차츰 그 진가를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이 곡은 고금의 바이올린 협주곡들 중에서도 특히 바이올린다운 기능과 미감을 잘 살린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한 때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던 시벨리우스였기에, 악기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다각적인 고찰을 토대로 오직 바이올린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음악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북유럽의 음산한 기운, 신비로운 마력의 협주곡
이 곡은 바이올린이 아니면 불가능한 여러 표현들과 다채로운 기교적 패시지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양단 악장들에서 약음기와 하모닉스의 효과적인 사용을 바탕으로 빚어낸 인상적인 음향들, 중간 악장에서 절묘하게 부각되는 바이올린 특유의 끈질긴 선율선 등은 특히 돋보인다. 비록 구성적⋅내용적인 면에서의 불균형, 부자연스러운 전조 등 일부 약점도 발견되지만, 북유럽 작곡가다운 개성적인 표현과 논리적인 어법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와 강력한 마력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제1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d단조, 2/2박자
내용적으로 가장 심오할 뿐 아니라 전곡의 절반을 점유하는 장대한 규모로도 돋보이는 악장.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며 구축해가는 이 교향악적 악장의 구조는 상당히 독특하다. 전체의 구도는 일종의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제시부 직후에 놓인 대규모의 카덴차(독주 바이올린의 기량 과시를 위한 무반주 부분)가 마치 발전부와도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밖에도 도입부에서 관현악의 신비로운 속삭임과 독주악기의 서정적 선율의 절묘한 어울림, 전편에 걸친 긴장감 넘치는 흐름, 그리고 재현부와 코다에서의 거대한 극적⋅교향악적 움직임 등등. 이 첫 악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주악기와 관현악의 섬세하고 긴밀한 짜임새와 인상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치열하고 격정적인 몸짓으로 가득하면서도 기저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악장을 '북구의 빙산 속에서 타오르는 백열의 불꽃'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이 곡은 북유럽의 서늘한 분위기, 숲과 호수의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출처 : NGD>
제2악장 : 아다지오 디 몰토, B♭장조, 4/4박자
마치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울창한 침엽수림을 펼쳐 보이는 듯한 목관 파트의 앙상블로 시작되는 아다지오 악장. 전편에 걸쳐 면면히 흐르는 바이올린 독주의 서정적 선율선에는 인간 영혼의 진솔한 고백과 깊숙한 내면의 토로가 서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중간부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이제까지의 응어리를 일거에 터트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제3악장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D장조, 3/4박자
기묘한 느낌으로 가득한 스케르초 풍의 춤곡 악장. 다소 묵직한 리듬 위에서 사뭇 정열적인 춤곡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베버나 멘델스존의 요정음악을 연상시키는 독주 바이올린의 경묘한 움직임 위로 북유럽의 환상이 아련히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북유럽적인 음산한 기운이 서려 있어 신비롭고 마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황장원 | 음악 칼럼니스트클래식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 역임.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Jean Sibelius 1865-1957
Sarah Chang plays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full)
아직 로맨틱한 맛이 깊었던 초기 무렵의 작품의 하나이다. 1903년에 만들어져 1904년 2월 8일 헬싱키에서 초연되었으며, 그 후 1905년에 정정 완성되었다. 같은 해 10월 19일에 결정판이 베를린에서 초연되었고, 다음 해 1906년 11월 30일에 여류 바이올린 주자 모드 포엘과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다.
모든 바이올린협주곡 중에서 명협주곡으로 손꼽히고 있고, 전곡을 통해 시적 정서가 넘쳐 흐르는데, 전원 음악의 점철은 시벨리우스의 조국 핀란드에 대한 애국적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제1악장 Allegro moderato.
넓고 자유로운, 오히려 환상적인 악장이다. 소리를 죽인 관현악 위에 바이올린이 주제를 높게 연주한다.
제2악장 Adagio di molto.
가장 아름다운 노래. 그것은 시정에 싸여 아름다운 색채로 빛난다.
제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시벨리우스의 은근한 열정을 숨긴 악상이, 신비로운 맛과 많은 매력을 느끼게 한다. 바이올린과 관현악이 빚어내는 유머는 시벨리우스 특유의 맛을 보여 주고 있다.
애국적인 교향시 [핀란디아]로 유명한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는 일생 동안 일곱 편의 교향곡과 다수의 교향시를 발표했다. 반면 협주곡은 바이올린을 위한 것을 단 하나 남겼을 뿐인데, 그가 원래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못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한 곡만으로도 시벨리우스는 협주곡사에 불멸의 족적을 새겼다.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스타일과 작품성 면에서 베토벤과 브람스의 걸작들에 비견될 만하며, 공연장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명곡에 버금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
시벨리우스가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작곡한 것은 30대 후반의 일인데, 당시 그는 여러 모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그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가족은 경제난에 시달렸으며, 그에 따라 창작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어 고심했다. 무엇보다 [교향곡 제2번]의 대성공에 즈음하여 찾아든 불청객, 귀의 통증이 4년 동안이나 그를 괴롭혔다. 그 동안 그는 혹시 베토벤처럼 청력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어쩌면 이 협주곡에 투영된 고뇌 어린 표정과 고통스런 몸부림은 그 암울했던 시절의 반향인 지도 모른다.
협주곡은 1903년 가을에 완성되었고, 초연은 이듬해 2월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초연은 독주자의 능력 부족 탓에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어느 유력한 비평가의 지적처럼 곡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했다. 낙담한 시벨리우스는 악보(초판)를 거둬들이고 ‘연주 불가’를 선언했다. 그리고 1905년 여름에 작품을 대폭 손질하여 ‘개정판’을 마련했다.
보다 간결한 구성에 교향악적 색채를 강화한 개정판은 동년 10월 베를린에서 공개되었다. 카렐 할리르의 독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이루어진 이 또 한 번의 초연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후 시벨리우스와 친분이 있었던 러시아의 위대한 바이올린 스승 레오폴드 아우어와 그의 제자들, 특히 야샤 하이페츠와 같은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지지 덕분에 작품은 차츰 그 진가를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이 곡은 고금의 바이올린 협주곡들 중에서도 특히 바이올린다운 기능과 미감을 잘 살린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한 때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던 시벨리우스였기에, 악기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다각적인 고찰을 토대로 오직 바이올린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음악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북유럽의 음산한 기운, 신비로운 마력의 협주곡
이 곡은 바이올린이 아니면 불가능한 여러 표현들과 다채로운 기교적 패시지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양단 악장들에서 약음기와 하모닉스의 효과적인 사용을 바탕으로 빚어낸 인상적인 음향들, 중간 악장에서 절묘하게 부각되는 바이올린 특유의 끈질긴 선율선 등은 특히 돋보인다. 비록 구성적?내용적인 면에서의 불균형, 부자연스러운 전조 등 일부 약점도 발견되지만, 북유럽 작곡가다운 개성적인 표현과 논리적인 어법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와 강력한 마력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이 곡은 북유럽의 서늘한 분위기, 숲과 호수의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제1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d단조, 2/2박자
내용적으로 가장 심오할 뿐 아니라 전곡의 절반을 점유하는 장대한 규모로도 돋보이는 악장.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며 구축해가는 이 교향악적 악장의 구조는 상당히 독특하다. 전체의 구도는 일종의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특히 제시부 직후에 놓인 대규모의 카덴차(독주 바이올린의 기량 과시를 위한 무반주 부분)가 마치 발전부와도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밖에도 도입부에서 관현악의 신비로운 속삭임과 독주악기의 서정적 선율의 절묘한 어울림, 전편에 걸친 긴장감 넘치는 흐름, 그리고 재현부와 코다에서의 거대한 극적?교향악적 움직임 등등…. 이 첫 악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주악기와 관현악의 섬세하고 긴밀한 짜임새와 인상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치열하고 격정적인 몸짓으로 가득하면서도 기저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악장을 '북구의 빙산 속에서 타오르는 백열의 불꽃'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Mischa Lefkowitz,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Jean Sibelius, Allegro moderato,
The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David Amos, Conductor
제2악장 : 아다지오 디 몰토, B♭장조, 4/4박자
마치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울창한 침엽수림을 펼쳐 보이는 듯한 목관 파트의 앙상블로 시작되는 아다지오 악장. 전편에 걸쳐 면면히 흐르는 바이올린 독주의 서정적 선율선에는 인간 영혼의 진솔한 고백과 깊숙한 내면의 토로가 서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중간부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이제까지의 응어리를 일거에 터트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Jean Sibelius -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 II: Adagio di molto
Second Movement - Adagio di molto
Philharmonia Slavonica Carlo Pantelli,
conductor Bruno Zwicker, violin
제3악장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D장조, 3/4박자
기묘한 느낌으로 가득한 스케르초 풍의 춤곡 악장. 다소 묵직한 리듬 위에서 사뭇 정열적인 춤곡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베버나 멘델스존의 요정음악을 연상시키는 독주 바이올린의 경묘한 움직임 위로 북유럽의 환상이 아련히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도 북유럽적인 음산한 기운이 서려 있어 신비롭고 마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Jean Sibelius -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 III: Allegro ma non tanto
Third Movement - Allegro ma non tanto
Philharmonia Slavonica Carlo Pantelli, conductor
Bruno Zwicker, violin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북방의 대자연에서 찾은 해답
2015년은 오로라와 호수, 산타의 이미지로 친숙한 북쪽 나라 핀란드의 거장 시벨리우스의 탄생 150주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은 3개의 관현악 및 협주곡 레퍼토리와 1개의 실내악 레퍼토리 등 네 개의 시벨리우스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후기낭만주의적 창작정신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태어나 20세기를 살았던 시벨리우스는 신화와 민족의식에서
그 예술세계를 출발시켜 광활한 북유럽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포용하는 유기적인 음악세계로 나아갔다.
글 유윤종(SPO 편집위원)
모더니즘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도 지나갔다. 직선과 스피드를 강조했던 20세기는 친환
경적 정신과 지속가능성, 생명의 공존을 모색하는 21세기적 정신으로 대체되고 있다. 자연
과 영성(靈性)의 강조가 시대의 흐름 속에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음악의 소리로 다시 창조해낸 시벨리우스의 음악세계에서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시대정신을 향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북구의 자연을 그리는 ‘음의 화가’를 꿈꾸다
시벨리우스는 1865년 12월 핀란드의 헤미린나에서 태어났다. 당시 핀란드는 1809년 스웨덴
으로부터 이 지역의 지배권을 넘겨받은 러시아 지배하의 공국이었다. 시벨리우스의 집안은
스웨덴 지배시기의 영향을 받은 많은 상류층과 마찬가지로 스웨덴어를 사용했지만 당시
러시아의 가혹한 지배에 저항하는 의식은 스웨덴어 사용자들에게도 핀란드어 사용자와 차이
가 없었다.
헬싱키 음악원 졸업 후 베를린과 빈에서 유학생활을 보내던 중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어 서사시
‘칼레발라’를 접하게 된다. 19세기 중반 문헌학자인 엘리아스 뢴뢰트가 핀란드 동부의 민요
들을 토대로 편찬한 방대한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청년 시벨리우스의 작품세계에 깊고 넓
은 영향을 끼쳤다. 초기작인 ‘쿨레르보 교향곡’(1892)과 비슷한 시기의 ‘전설(En Saga)’,
‘네 전설곡(레민카이넨 모음곡)’이 모두 칼레발라의 줄거리에서 발췌한 내용을 토대로 쓰였다.
‘칼레발라’는 천지 창조의 이야기로 시작해 젊고 야심적인 모험가 레민카이넨이 예언자, 대장
장이와 함께 북쪽 나라 포횰라의 공주에게 구혼하러 가는 내용과 부족장의 아들 쿨레르보가
헤어진 누이와 불운한 인연으로 엮이는 이야기 등을 중심으로 많은 갈래의 전설을 담고 있다.
이 서사시에서 저승과 북방의 경계는 흔히 사라지며, 눈과 폭풍우 같은 자연현상이나 새와 같
은 자연물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북구의 자연을 연상시키는 적막함이 그의 음악에 담기게 된 것은 그의 성장환경도 물론이지만
‘칼레발라’의 음악화가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93년, 그는 갓 결혼한 부인
아이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음의 화가가 되고 싶다. 나의 음악관은 프란츠 리스트와 유사
하다”고 설명했다. 영웅적 주인공을 내세운 서사적 세계의 음악화가 초기 시벨리우스의 중요
한 목표였음을 보여준다.
민족의 표현자로 기대받은 30대
1899년, 작곡가 나이 34세 때 발표된 교향시 ‘핀란디아’는 젊은 거장이 핀란드 국내 전체,
나아가 유럽 전체에 이름을 알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그를 보는 시각에
‘애국적 작곡가’라는 필터를 제공했다. 이는 ‘핀란디아’와 같은 해 발표된 교향곡 1번 및 2년
뒤인 1901년 작곡된 교향곡 2번에 대해서도 비슷한 해석을 불러왔다. 그러나 작곡가 자신은
두 곡의 교향곡, 특히 2번에 대해 지휘자 카야누스가 말한 ‘탄압에 반하는 애국적 작품’이라는
해석에 표면적으로 찬동하지 않았다.
당시 시벨리우스의 스타일은 후기낭만주의의 풍부한 색채와 호소력 있는 멜로디, 열정에 넘친
클라이맥스 같은 특징을 담아내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강력히 어필한 애국적 성격은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이 가진 극적 성격, 확장지향적인 음악적 서사 또는 스토리텔링이 가져온 일종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시벨리우스의 작곡 스타일은 확대에서 응축으로, 환상적 서사
에서 구조적 견고함의 중시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의 작곡 스타일에 확고한 변화를 가져온 작품은 1907년 초연된 교향곡 3번이었다. 이 작품에서
앞선 교향곡들의 피날레에 보이는 장대한 선율이나 강력한 튜티(모든 악기가 울리는 합주)는
자취를 감춘다. 2악장 주선율을 제외하면, 긴 선율보다는 서너 음표씩으로 된 동기들의 조합이
전체 악곡을 구축하는 재료가 된다.
주제보다는 동기의 조합을 통한 발전, 그리고 전통의 소나타형식에 대한 해체는 이미 1번과
특히 2번 교향곡의 앞부분 악장들에서 뚜렷한 싹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3번
교향곡에서 앞으로의 작품들에 나타날, 탈 후기낭만적이면서 고전적 정신과 유기적 전개원리
가 펼쳐지는 새 길을 뚜렷이 했다.
이런 시벨리우스 작품의 변화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 1907년 구스타프 말러와의 만남
이다. 당시 핀란드에 연주여행을 온 47세의 말러는 북유럽의 떠오르는 교향곡 거장으로 주목
받던 시벨리우스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시벨리우스는 확장에서 간결함으로 변화를
시도한 3번 교향곡을 마친 상태였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말러에게 나는 교향곡의 스타일과 그 형식의 엄정함을 존중하며, 동기들의 연결을 중요시한
다고 말했다. 말러의 의견은 반대였다. 그는 ‘아니오,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하고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유럽 음악계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던 말러의 자신감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유니버설’한 교향곡
형에 모든 것을 걸게 만들었다. 반면 유럽의 변두리인 핀란드에서 작업하던 시벨리우스는 한층
‘로컬’한 것, 자신만의 특성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 열쇠는 작품의 응축성,
견고하게 짜인 형식성이었다. 그가 교향곡이라는 형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 시기
였다. 그는 4번 교향곡을 작업 중이던 1910년, 일기에 “교향곡은 통상적인 의미의 작곡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여러 단계에 있어서의 신앙고백과 같다”고 적었다.
축소와 절약, 단순성에서 진리를 찾다
그러나 시벨리우스가 의도한 견고한 형식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고전적 교향곡처럼 사전에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는 테마들의 포로일 뿐이다. 이 테마들이 형식을 결정
한다”고 말했다. 즉 응축되고 간결한 형식을 취하되, 그것은 작품마다 선택한 주제 또는 동기
들의 성격에 따라 새롭게 규정되어나가는 것이었다. “테마들의 배치, 이 중요한 작업은 나를
신비롭게 매혹시킨다. 신께서 하늘로부터 모자이크 조각들을 흩뿌리고, 나에게 패턴을 찾아
보라고 하시는 것 같다”라고 그는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강은 여러 줄기와 굽이가
있고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가지만, 결국 강의 모양을 만드는 것은 물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물론 강은 악곡 전체를, 물은 개별 테마들을 뜻한다.
형식의 축소와 절약은 4번 교향곡(1911)에서 정점에 달한다. 기존의 교향곡을 고원에서 풍장
(風葬)시켜 골격만을 남겨놓은 듯한 이 작품에서 동기들은 발전하는 듯하다가 오히려 복잡한
전개와 변형들을 떨어뜨리고 원형의 음소(音素)들로 단순화된다.
이어 5번부터 7번에 이르는 후기 교향곡들은 외견상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발표
시기도 비교적 긴 시점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 세 작품은 1914년부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여러 동기들의 스케치에서 유래하고 있다. 작곡가 자신은 이 세 작품을 ‘세 자매 교향곡’
이라고 불렀다.
5번 교향곡은 외견상 2번으로 회귀하는 듯한 영웅적 피날레를 갖추고 있지만 음형들은 한결
조성적, 화성적으로 파악하기 쉬우며 단순하다. 1923년 발표한 6번 교향곡에 대해 그는 “다른
작곡가들이 칵테일을 만들 때 나는 맑은 생수를 내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음악계에 만개한 전위주의와 형식적 다원주의에 비교할 때 그의 ‘단순에의 회귀’는
특히 두드러져 보인다. 3번 교향곡에서 기존의 3, 4악장을, 5번에서 1, 2악장을 융합시켜 전체
세 개 악장으로 마무리한 데 이어 마지막 7번 교향곡은 20분 남짓한 길이에 단일 악장으로
그 형식을 압축시켰다.
자연의 원리를 악곡에 담다
관현악법(오케스트레이션)에 있어서 시벨리우스는 특히 독창적이었다. 스스로 지휘자이기
도 했던 그는 말러와 달리 평생 자신의 작품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렸지만 관현악 음향과 전개
의 본질을 꿰뚫는 본능적인 천분을 갖고 있었다.
그의 관현악이 가진 특색을 요약하기란 간단하지 않다. 긴 오르간포인트(길게 지속되는 베이
스음), 현의 트레몰로나 금관의 두터운 화음과 함께 나타나는 크레셴도 등이 흔히 특징으로
거론되지만, 이런 특징들 역시 순간순간 모습을 보였다 사라지며 다양한 개성적 요소가 중첩
되고 뒤섞이고, 전면에 나왔다가 다시 배경으로 숨어든다. 다채로운 음색의 조합은 듣는 사람
으로 하여금 순간순간 바람과 함박눈, 해넘이와 해돋이, 구름, 폭풍우와 같은 자연의 유기적
인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사용하는 음계와 리듬도 자연을, 때로는 북방의 ‘원시’를 떠올리게 한다. ‘칼레발라’에
몰두하던 초기 시절 시벨리우스는 동부지방 유목민들의 낭송양식에 깊이 빠져있었다. 음악과
낭송의 중간에 가까운 민요로부터 그는 규칙적이다가 순간 불규칙해지는 음표들의 분절,
단순성에서 유기적으로 발전해나가는 반복적인 변화, 기원이나 선언에 가까운 샤먼적인
감정표현을 받아들였고 이를 음악적으로 모방하거나 형상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일생 자연음계(주로 7음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장단조의 구속에서는 비교적 자유로
왔다. 6번 교향곡에서 특히 장단조 체계를 벗어난 도리아 선법을 활용한 것으로 분석되지만,
다른 작품에서도 장단조의 주음(도 또는 라)의 인력에 크게 이끌리지 않는 그의 음계 사용은
서너 음표로 구성된 단순한 동기들이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도록 속박을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특성들은 그의 창작 선율들에 민요적, 나아가 중세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는
실제의 민요나 중세 선율에서 아이디어를 빌어오지 않았다. 전통적인 듯 보이는 소재들은 실제로
그의 머리속에서 나왔다.
만년에 이를수록 자연에 대한 시벨리우스의 경외와 탐닉은 깊어갔다. 동시대의 드뷔시나 말러
도 자연을 중시했지만 시벨리우스의 자연은 외부의 자연을 모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자연과 유사한 발전원리를 가지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표제성을 거부하고 절대음악이기를 원했던 후기의 교향곡에서도 자연에 대한 영감은 분명하다.
전기작가인 타와스트예르나는 “시벨리우스는 자연의 분위기와 계절 변화에 예외적일 정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반응했다. 쌍안경으로 거위들이 얼은 호수 위로 날아가는 것을 살폈으며, 학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봄꽃의 향기를 하나하나 맡았다”고 말했다.
보수적? 음계만 그렇지 않은가
시벨리우스는 대략 1927년경을 기점으로 음악활동을 그만두었으며 이후 30년간의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1차대전 종전 이후만 셈해도, 8년에 달하는 비교적 긴 활동기간을 그는 음렬주의와
야수주의로 대표되는 전위성의 혼란 가운데서 눈에 띄는 보수적 작법의 작곡가로 남았다.
그는 시대를 외면하고 퇴행적인 작품을 쓴 인물이었을까. 작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작품에 대해
‘반모던적 모더니즘’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작곡가 모튼 펠드먼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을
언급하며 “급진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수적일 수 있고 보수적으로 여겨진 사람이 급진적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확고하게 전통적 조성에 근거하고 있기에 때로는 ‘절망적으로 보수
적인’ 작곡가로 해석되어 왔지만, 그의 조성을 인정하고 남은 요소들만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급진적이고 현대적인데다 효과적이기까지 한 음향과 구조가 드러난다.
새로운 예술사조와 경향들의 홍수 속에서 확고한 자연음계의 바탕 위에 새로운 형식과 자연의 구
조를 닮은 소리를 끊임없이 실험했던 북구의 거인 시벨리우스. 오늘날 20세기의 광활한 잔해더미
속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잊고 있던 길을 그가 제시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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