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2015년)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내한공연/3.10.화/예술의전당

나베가 2015. 3. 9. 00:30

 

 

 

[프로그램]

Beethoven String Quartet No. 12 in Eb Major, Op. 127
베토벤 / 현악 4중주 12번 Eb장조, Op. 127

최영섭 / 그리운 금강산

-Intermission-

작곡가 미상 / 아리랑

Brahms Piano Quintet in F Minor, Op. 34
브람스 / 피아노 5중주 F단조, Op. 34

*프로그램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 시대부터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거쳐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현재까지 28년간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스타브라바가 이끄는 이 콰르텟은 ‘베를린 필하모닉 12 첼리스트’와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공식 앙상블이다.
20여 년전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의 데뷔 콘서트 이후 영국 언론으로부터 “최고 가운데 4인 _ Four of the Best”라는 찬사를 받은 이 콰르텟은 지난 20여년간 세계 곳곳의 권위 있는 무대에서의 연주와 30여종의 음반을 통해 세계 최정상의 스트링 콰르텟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데뷔 이래 유럽 전역과 북남미, 아시아 지역에서의 꾸준히 연주를 하고 있는 이들의 연주에 대해 세계 곳곳의 유력 언론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예후디 메뉴인경은 “나는 당신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항상 듣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1984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악장인 다니엘 스타브라바와 현악 파트의 수석들을 멤버로 결성된 이 콰르텟은 뉴욕의 카네기홀, 런던의 위그모어홀과 같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 콘서트홀은 물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실내악 페스티벌은 물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베를린 페스티벌과 같은 정상급 페스티벌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이 콰르텟은 베토벤, 멘델스존,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레거 등의 현악 4중주 곡들로 20여장에 이르는 음반을 발표하였으며, 레거 곡들의 음반은 ‘독일 음반 평론가협회상’을 받았으며, 다른 음반으로는 최고 권위의 음반상인 ‘Echo Klassik’을 두 차례 수상하였다.
이 콰르텟은 1984년 창단 이래, 2009년 첼리스트인 얀 디쎌호스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첼리스트가 현재의 디트마르 슈발케로 바뀐 것을 제외하곤 현재까지 멤버 교체 없이 완벽한 앙상블을 자랑하고 있다.


[프로필]

제 1 바이올린 _ 다니엘 스타브라바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악장

- 1955년 폴란드 크라코프 출신
- 1979년 크라코프 방송교향악단 악장
- 1983년부터 현재까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활동 중
- 1986년 대지휘자 카라얀에 의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발탁되어 현재까지 수석악장으로 활동 중
베를린 필하모닉의 많은 연주회에서 솔리스트로 협연
- Prokofiev, Weill, Szymanowski의 협주곡을 주로 연주
- 1994년부터 독일 부롬버그의 Capella Bvdgostiensis의 음악감독으로 활동


제 2 바이올린 _ 크리스티안 스타델만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 2 바이올린 수석

- 1959년 독일 베를린 출신
- Berlin Conservatory of Arts에서 Th. Brandis 교수를 사사
- 이후 여러 콩쿠르 우승
- German Chamber Philharmonic Bremen의 창립 멤버로 활동
- 1985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멤버로 합류
- 1987년부터 현재까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제 2 바이올린 수석
- 베를린 필하모닉 아카데미의 교수로 재직 중


비올라 _ 나이하르트 레자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역임

- 1950년 독일 베를린 출신
- Schwalbe 교수 Max Rostal 교수의 제자
- Cologne Music Conservatory 졸업, DAAD 장학생으로 미국으로 유학하여
과르네리 콰르텟의 멤버인 Michael Tree를 사사
- 1978년 독일 음악재단 주최의 `Young Artists Competition` 에서 우승
- 1987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수석으로 영입되어 현재까지 활동 중


첼로 _ 디트마르 슈발케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첼로파트

- 1959년 독일 피엔버그 출신
- Arthur Troester, Wolfgang Boettcher와 Pierre Fournier를 사사
수 차례의 콩쿠르에 입상 후 1981년 베를린 필하모닉홀에서 슈만의 콘체르토로 솔로 데뷔
- 1988년 Kreuzberg String Quartet 멤버 역임
- 1994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합류
- 2009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첼리스트로 활동 중


피아노 _ 조재혁 / 피아니스트

- 강원도 춘천 출신
- 서울예고 재학 중 미국 유학, 맨하탄 음대 예비학교,
줄리어드 음악원 학.석사, 맨하탄 음대 박사
- 뉴욕 프로피아노 영아티스트 오디션 우승,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국제콩쿠르 1위,
몬테카를로 피아노의 거장 국제콩쿠르 2위 외 국제콩쿠르 다수 입상
- 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음악> 라이브 렉처 콘서트 `위드 피아노` 고정출연과
아리랑 라디오 `It Classic` 의 고정코너 `Jae-hyuck`s Music Box’ 출연
- 독주와 협연 및 실내악 연주자로 연 60회 이상의 연주활동

 

Beethoven, String Quartet No.12, Op.127

베토벤 현악4중주 12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현악4중주 11번 ‘세리오소’(1810)는 확실히 베토벤의 중기 현악4중주에서 벗어나 양식상 커다란 변화의 조짐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베토벤에게 현악4중주는 없었다. 발표만 안한 것이 아니라 작곡에도 손을 놓고 있었다. 베토벤이 다시 현악4중주 장르로 돌아온 것은 50세 초반. 대작 '함머클라비어'를 비롯한 피아노 소나타 작곡이 모두 끝나고 실내악 주요 작품도 모두 나온 뒤인 1823년 교향곡 9번과 장엄 미사를 작곡하던 시대였다. 이후 Op.127, Op.130, Op.131, Op.132, Op.135 등 다섯 곡의 현악4중주를 작곡하게 됐는데, 우리가 베토벤 만년 예술의 심오함을 이야기할 때 그 증거로 대는 후기 현악4중주곡들이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10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발표한 현악4중주

그렇다면 베토벤이 10년의 긴 침묵을 마치고 다시 움직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갈리친 후작이 작곡을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음악애호가이자 귀족이었던 갈리친 후작은, 상트페테르부르크 4중주단을 조직해 자신이 직접 첼로를 맡아 연주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연주가이기도 했다.

베토벤의 후기 양식은 더 깊고 원숙해진 음악성, 형이상학적 사색을 반영한다.

1824년 말경 베토벤은 갈리친 후작으로부터 현악4중주 두세 작품을 써달라는 의뢰를 1825년까지 그는 작곡 순서대로 12번 Op.127, 15번 Op.132, 13번 Op.130 등 세 곡을 작곡했다. 그 중 한 곡은 적어도 1822년쯤 대략 구상을 끝냈던 것으로 보인다. 1822년 6월 베토벤의 서신 중에 ‘가까운 시일 내에 현악4중주를 출판할 것 같다’는 말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향곡 9번의 마무리에 바빴던 베토벤은 1824년 우선 이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마치고 나서야 현악4중주 작곡에 착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마침 그때 갈리친 후작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왔다. 후작을 위한 첫 번째 4중주 작품인 12번 Eb장조는 1825년 2월 완성되어 3월 6일, 슈판치히 4중주단에 의해 초연됐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현악4중주 12번은 베토벤 후기 현악4중주의 양상을 살필 수 있는 관문과도 같은 작품이다. 구석구석 깊은 사색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구조적으로 딱딱하게 구획된 중기 4중주와는 달리 부드러운 선율이 성부 사이에서 번갈아가며 노래하고 진행되는, 형식의 진화와 차원 높은 고매함이 엿보인다. 고전의 틀을 녹이는 낭만성, 죽음에 대해 초탈해진 만년의 인생에 대한 사색은 이 현악4중주라는 형식에서 있어서 괄목상대할 진보였다. 그 아득한 예술성은 이후 어떤 작품도 근접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을 비롯한 후기 현악4중주의 명곡들은 귀가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이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개척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동안 베토벤에게 쌓이고 쌓인 성숙한 음악적 콘셉트가 전대미문의 독창적인 표현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1악장 - Maestoso-Allegro

소나타 형식이다. 중후하고 힘차며 투명하게 시작된 서주는 제1바이올린의 리드에 따라 알레그로 주부로 들어간다. 상냥하고 부드럽게 연주되는 제1주제는 아름답고 대위법적인 첼로 선율에 실렸다가 점차 발전하여 제1주제의 두 번째 선율로 옮겨가며 이후 제2주제가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제1주제로 연주하는 코데타로 제시부가 끝나고 제1주제로 자유롭게 펼치는 발전부에 이어 얼마 후 재현부로 들어간다. 제1바이올린은 한 옥타브 올려 제1주제를 연주한다. 재현부는 제시부와 비슷하지만 더 밝고 경쾌한 감정으로 코다로 들어간다. 제1주제로 코다가 연주된다.

2악장 - Adagio ma non troppo molto cantavile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이다. 저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를 거쳐 조용한 주제를 제1바이올린과 첼로가 연주한다. 제1변주에서는 첼로와 제1바이올린 사이에서 선율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제2변주는 비올라와 첼로의 리듬 위에서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선율을 펼쳐 보인다. 제3변주는 주제와 매우 멀어진 느낌으로 전반부에서는 제1바이올린이, 후반부에서는 첼로가 중심이 되어 연주한다. 제4변주에서는 제1바이올린과 첼로가 주제를 뚜렷하게 변주한다. 제5변주는 중간에 F#단조의 악절이 삽입된 자유로운 변주다. 이어서 코다로 들어가 변주를 계속하다가 고요히 끝낸다. 5개의 변주로 진행되는 2악장은 마치 느리게 흐르는 물결과도 같이 느껴지는데, 기존의 현악4중주를 넘어선 베토벤 현악4중주의 새로운 경지를 이야기할 때 인용할 만한 부분이다.

3악장 - Scherzando vivace

3부 형식이다. 피치카토의 네 개 화음 뒤에 첼로가 연주하는 주제가 발전하고 주제에서 비롯된 활발한 악절이 유니즌으로 연주된다. 피아니시모로 시작해 중간 부분에서 폭넓게 포르티시모로 이어지는 대비가 일품이며, 짧은 경과부 뒤에 처음 주제가 다듬어져 재현된다. 2부 트리오는 프레스토로 4마디의 도입부에 이어 제1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주제가 후반부 중 장조로 조옮김되었다 다시 원래의 단조로 바뀌어 스케르초인 제1부로 돌아간다. 특색 있고 익살스런 이 악장은 흥미로운 베토벤의 독특한 기지와 열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4악장 - Finale

악보에는 빠르기말이 없지만, 알레그로 또는 프레스토로 연주된다. 하이든을 연상시키는 쾌활함과 유머러스함을 교묘하게 배합시켰다. 소나타 형식으로, 포르테로 시작해 곧 피아노가 되며 유니즌으로 연주하는 서주부는 짧지만 아름답다. 제1바이올린이 편안하면서도 활발한 제1주제를 연주한다. 제2주제가 나오기 전에 발랄하고 표정이 풍부한 선율이 연주되며, 제2주제는 네 개의 성부가 다성적인 화성으로 진행되며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재현부는 도입부를 심플하게 만든 형태이며, 약간 느려졌다가 코다로 들어간다. 차츰 강렬하게 고조됐다가 원래의 조성으로 마무리된다.


 

Beethoven String Quartet No. 12 in E-flat Major, Op. 127 - Orion String Quartet (Live)

 

브람스, 피아노 5중주 F단조 Op.34 Brahms, Piano quintet, F minor, Op.34 특성 | 브람스의 독창성과 서정성이 만개한 브람스 실내악의 최고봉<br>정보 | 1865년 최종적으로 피아노 5중주 형태로 출판되어, 안나 공작부인에게 헌정

슈만이 20세의 젊은 브람스에 대한 예언적인 기사를 썼을 당시, 성장기에 있던 이 젊은 작곡가의 작품들은 그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의 밸런스보다는 혈기왕성함을 절제하는 모습이 특징적이었다. 초기 작품들을 작곡한 다음 브람스는 자기성찰과 더불어 보다 난이도 높은 훈련이 필요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베토벤을 비롯한 다른 위대한 거장들과 비교당할 수 있는 작품들을 작곡하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갖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일찍부터 실내악을 파고들어 현악 4중주 보다는 현악 6중주나 피아노 4중주와 같은 비주류적인 장르에 손을 댔다. 그가 교향곡 장르에 과감하게 도전하기 이전, 오케스트라 모음곡이나 [하이든 변주곡]을 먼저 작곡한 것도, 젊은 시절 작곡한 거대한 D단조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의 첫 번째 교향곡으로 편곡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의 첫 번째 [현악 4중주(Op.51)]와 [교향곡 1번(Op.68)]이 그의 작품목록 가운데 비교적 늦게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초에는 현악 5중주 형태로 작곡

 

1861년부터 62년 사이에 작곡된 F단조의 [피아노 5중주 Op.34]는 처음에는 슈베르트의 C장조 [현악 5중주]처럼 두 대의 첼로가 가세한 현악 5중주 형태로 작곡되고 있었다. 전곡이 완성되기 전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에게 세 개의 악장을 보내 그녀의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그녀는 이 작품에 대해 “1악장에 들어 있는 힘의 세계와 아다지오의 위대함을 보라! 악보의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주부는 화려하고 2주제는 1주제와 완벽한 대비를 이루기도 하며 전개부 주제의 마무리 또한 절묘하기 그지없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작품은 걸작입니다!”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그 편성에 있어서는 다섯 개의 현악기들로는 견고한 반주부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몇몇 주제들과 전개부에는 반드시 피아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탰다.

 

피아노 5중주 구성(피아노, 바이올린 2대, 비올라, 첼로) <출처: Corbis>

요하임의 권유로 두 대의 파아노를 위한 소나타 형식으로 변경

 

브람스와 많은 음악적 교감을 나눈 ‘요제프 요하임’ <출처: wikipedia>

 

한 달여가 지난 1862년 9월 브람스는 하노버에 있는 요제프 요하임에게 작품 전체를 보냈다. 브람스가 하노버를 방문했을 때 요하임은 그의 5중주를 다른 편성으로 편곡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요하임은 브람스에게 현악 5중주 편성만으로는 브람스가 적절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들에 힘을 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의 폭 역시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하임 또한 이 작품이 걸작임을 알아보았다.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의 각 악장들은 하나의 전체로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다”라고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요하임의 논리에 설득을 당한 브람스는 이 작품을 곧바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변경했다.

이듬해인 1863년 이 작품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Op.34b)]로 완성되어 브람스와 리스트의 애제자인 칼 타우지히에 의해 초연되었고 바덴-바덴에서는 클라라 슈만에 의해 여러 차례 연주되었다. 그녀는 루빈스타인이나 헤르만 레비, 이따금씩 브람스와 함께 연주했는데, 이 연주회에 참석했던 헤센 지역의 안나 공작부인은 이 소나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에 브람스는 이 작품이 출판되면 공작부인에게 헌정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판본은 1872년이 되어서야 출판되었다. 왜냐하면 브람스는 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라는 형식에 계속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라 슈만은 편지에 이 판본에 대한 생각을 적어 보낸 바 있다. “이것은 훌륭한 작품이긴 하지만 소나타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악보는 완전한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 악상으로 가득 차 있는 만큼, 당신이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검토해 주었으면 합니다.” 결국 브람스는 1864년 내내 이 작품에 매달린 끝에 헤르만 레비가 제안한 피아노 5중주 형태로 변경했다. 레비는 피아노 5중주 버전에 대해 “이 5중주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 현악 5중주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이 애초에 피아노 5중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1828년 이래로(슈베르트의 서거 이후)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은 없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마침내 피아노 5중주 형태로 출판

 

1866년 당시 브람스(32살) <출처: wikipedia>

 

1865년 이 작품은 최종적으로 피아노 5중주 형태로 출판되었지만 헌정자 만큼은 변하지 않고 안나 공작부인으로 인쇄되었다(그녀는 그 해 4월 출산 후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이 작품은 연주되지 않다가 브람스의 오랜 친구인 루이제 랑한스-야파가 1868년 3월 24일 파리의 살르 에라르에서 연주했고 이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브람스의 독창성과 서정성이 만개한 이 피아노 5중주는 낭만주의 시대를 산 작곡가가 얼마나 고전주의적인 모범을 따르고자 고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1악장 Allegro non tropppo
첫 번째 악장에서 가장 충격적인 모습은 풍부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주제들일 것이다. 분위기를 지배하고자 하는 엄격한 주제와는 별로도, 일련의 부가적인 아이디어들이 브람스의 상상력 넘치는 전개와 다이내믹한 음악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악장 Andante, un poco adagio
부드럽고 서정적인 악장으로서 특히 흔들리는 듯한 멜로디가 슈베르트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3악장 Scherzo (Allegro)
강력한 어조의 세 도막 형식의 스케르초로서 성격을 달리하는 C단조의 세 개의 주제가 번갈아 등장하고 트리오 부분에서는 C장조의 서정적인 민요풍의 주제가 앞뒤 단조 부분과 훌륭한 대조를 이룬다.

4악장 Finale (Poco sostenutoAllegro non tropppo)
슈만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신비로움을 더하는 도입부(poco sistenuto)와 전개부가 론도처럼 다루어지는 생동감 넘치는 Allegro non troppo가 화려한 종악장을 장식한다. 코다에서는 다이내믹한 클라이맥스를 수반하며 이 거대한 구조의 5중주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추천음반

루돌프 제르킨이 남긴 두 장의 앨범은 이 작품의 구조와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준 훌륭한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부쉬 4중주단과의 녹음(EMI)과 부다페스트 4중주단과의 녹음(SONY)이 그것으로서, 엄격하고 집중력 높은 제르킨과 각기 다른 고전주의적 앙상블을 보여주는 부쉬와 부다페스트의 환상적인 일체감이 돋보이는 역사적인 명연이다. 보로딘 4중주단과 엘리조 비르살라제의 극단적인 감수성이 돋보이는 감동적인 연주(Teldec)와 이탈리아노 4중주단과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현대적인 감수성에 의한 벨칸토적인 음향을 자랑하는 연주(DG) 또한 추천할 만하다..

출처/네이버캐스트

 

Brahms - Piano Quintet in F minor, op. 34 - Rashkovskiy Ilya and the Ariel String Quart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