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K2bc,낭가파르밧.45일(2014

60.K2.../고로 2(Goro2 4,350m)까지 가는 카라코람 발토로빙하의 환상적 풍광...

나베가 2014. 12. 24. 02:02

 

 

 

오늘은 비가 살짝 오고 말아 천만 다행이긴 했지만 종일 구름이 끼어 있어서 사진이 아쉽긴 하다.

가셔브룸 산군이 훤히 보여야 하는데....

 

하긴, 산군의 이름들을 나열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빙하위에 종일 비가 내리고 그 빗속을 추위에 떨면서 걸었을 생각을 하니 그저 이만한 날씨에도 감지덕지다.

아니, 이제껏 운무에 휘감긴 모호하고 아련한 풍광에 열광해놓고는....

괜한 욕심을 부린다.ㅠㅠ

 

 

 

 

 

 

 

 

 

 

 

 

 

 

 

한 무리의 힘겨운 모습의 포터들이 지나가고...

또 한 무리의 나귀떼들이 나타났다.

 

알록 달록한 색깔의 짐들을 잔뜩 싣고 나란히 줄지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얼음덩이를 골에 품고 있는 거대한 암산과 하얀 눈 쎄락을 배경으로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이곳 카라코람 발토로 빙하의 주인공은 바로 이들인것 같다는 생각 마저 든다.

 

 

아니, 그러고 보니 생뚱맞긴 하다.

야생화가 반발한 푸른 초원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어야 가장 멋질 나귀들이...

생물이 살 수 없는 험준한 빙하의 땅을 걸어오는데 이리도 멋지다는게...

글쎄....혹시 현실이 아닌 판타지 같아서 저리 멋지게 보이는 걸까??

 

 

 

 

 

하긴 어디 나귀뿐이랴~

거대한 암산과 눈쎄락앞에서 한 점이 되어 모호한 운무속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또한 현실이 아닌 판타지 같다.

 

 

 

다시 크레바스가 심한 빙하 지대로 들어섰다.

아니, 계곡 처럼 휘돌아쳐 뻗은 수 미터의 크레바스가 보기만 해도 무시 무시하다.

저곳을 지나치는게 아니라 요리 조리 길을 찾아 건너야 한다.

뒤에 따라 건너는 일행들이 걱정이 되는 지, 앞선 포터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서 있다.

 

 

 

 

 

 

 

 

 

 

 

 

 

 

 

 

 

 

아!!

정말 멋지다!!

 

거대한 설산은 운무속에 가려졌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눈이 시릴만큼 기막힌 풍광이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광활함속에 시야에 잡힌 설산과 암산,하얀 눈 쎄락...그리고 그 속에 있는 우리들...

 

카메라 들고 넋을 잃고 서 있는 나를 보고 알쏭이 깜찍한 포즈를 취한다.

오늘 컨디션이 안좋아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에너지GU 젤로 견디면서도 씩씩하다.

역시 40대의 젊음에 우리나라 대간, 정맥, 지맥을 찾아다닌 산꾼답다.

 

 

 

 

ㅋㅋ

그럼 이참에 나도 한바탕 모델이 되어 볼까나~

 

 

 

 

 

드디어 고로 2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시야는 흐리지만 가셔브룸 산군이 저만치에 보이고, 모레인 너덜 빙하위 여기 저기 쫙 쫙 벌어진 크레바스 위로

우리들의 짐을 날아다 준 나귀들이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을 보니, 그 풍광 또한 기막히다.

 

1시40분.

예상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했다.

사진도 많이 찍고, 김재수 팀을 만나 한 동안의 시간을 보낸 걸 생각하면 오늘도 걸음은 매우 빨랐던것 같다.

 

 

 

카고백을 텐트에 들여놓은 채 말벼룩 스프레이를 뿌려 냄새가 너무 독해 환기를 시키려 양쪽 문을 열어 놓으려 했더니,

바람이 심한 곳이어서 인 지, 반대쪽 텐트 문은 커다란 돌로 완전히 막아놓았다.

그걸 눈치 챈 버럭이가 어느새 와서 문을 열어준다.

텐트도 젖어서 축축했는데, 얼마나 고마웠는 지....

나는 버럭이를 향해 노래를 불렀다.

 

"버럭이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ㅋㅋ"

 

바람이 얼마나 세찬 지 순식간에 환기가 되었다.

내 입에서 노랫가락이 절로 흘러나오듯 버럭이는 또 와서 텐트를 잘 고정시켜주고 간다.

 

 

추워서 가장 두터운 취침용으로 옷을 갈아입고는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2시도 채 안되어서 도착했으니 여유로운 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헤마옛과 포터가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염소를 잡다가 손가락을 크게 베인것이다.

얼마나 상처가 깊은 지 피가 솟구쳤다.

나는 약품 가방을 들고 튀고, 이풀은 항생제를 가지고 나섰다.

탈지면으로 피를 닦아내며(너무 크게 다쳐서 알쏭의 도움까지 받으며...)소독을 하고,연고를 바르고 멸균거즈를 대고는 반창고로 칭칭 감았다.

서둘러 지혈을 해야했다.

그리고 베인곳이 물에 젖으면 안되기때문에 비닐 장갑을 끼워 주었다.

그는 다시 가서 염소를 잡아 손질했다.

 

이 모습을 보고는 알쏭이 크게 감동을 받았는 지,자기도 다음 여정부터는 꼭 의료 용구를 챙겨가야 겠다고 다짐한다.

 

 

 

내일 이들은 하산한다.

총 4명, 8-스테이지,

팁을 이들 임금의 10%를 우리 4명이 합해서 주는....똑같은 방법으로 계산해서 주었다.

 

저녁땐 예상대로 만찬이다.

염소내장을 한국식과 파키스탄 식으로 볶아 왔는데, 두가지 다 정말 맛있었다.

스프와 라비올리 파스타도 했다.

우리가 매우 맛있다고 칭찬을 하니,주방 팀들이 얼마나 고마워 하는 지....

 

헤마옛을 보니, 손가락이 많이 나았다.

치료 효과가 정말 좋다,

다시 치료를 해주고 날씨가 추워져 키친 도우미 미르자에게 의료용 고무장갑과 짐 옮길때 쓸 수 있도록 목장갑을 주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이 빙하위에서의 일정을 모든 스텝들이 무탈하게 잘 보내야 할 일이다.

 

 

굿나잇 인사를 하고 들어왔는데, 버럭이가 텐트 마다 돌면서 좀 허술한 부분의 텐트를 잘 마무리 시켜주고 간다.

혹시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커다란 돌로 입구를 막아주며, 나올때 옆으로 조심해서 잘 나오란다.

그러면서 '자기가 꼭 아버지가 된 느낌'이라나~ ㅎㅎ

 

나이 50대에 개구장이라니... 천사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순간 들었다.

 

1리터들이 물병 2개에 뜨거운 물을 담아 침낭에 넣으니, 4,350m 빙하위 캠핑이 천국이다.

등에 핫팩을 하나 붙이고, 패딩바지에 털양말, 몽글이 셔츠,폴리스 쟈켓에 털모자를 쓰고, 침낭 위는 우모복과 고어패딩쟈켓으로 덧 덮었다.

울퉁불퉁한 돌덩이 빙하위지만 성능 좋은 에어메트가 빙하에서 올라오는 냉기도 막아주니, 안락함이 극에 달한다.

빙하위 극한 지역에서  안락함의 극을 느끼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시간여를 그리 누워 행복을 만끽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힘듦이 극에 달했을텐데....무슨 이야기가 저리도 많을까...

포터들의 이야기 소리에 깼다.

극한 안락함속에서의 한 숨 잠에 피곤이 싸악 풀린 듯한 기분이다.

그냥 다시 잘까...잠시 생각하다 일기를 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계를 보니, 밤 11시다.

어느사이 포터들도 잠이 들었고...문득 세상이 정지된 듯한 절대 고요가 나를 에워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씩 빙하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는 차라리 고요함을 더 극적인 순간까지 달하게 했다.

 

완벽한 평화로움이군!

온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져 이 절대고요 속에 잠겨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

진짜 좋다!

 

 

Gounod (1818 - 1893)
Ave Maria
(Arr. Gib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