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이제 천국에서 하산 할 약속 시간이 되었다.
추워서 덧입었던 패딩도 벗고, 이제는 다시 뜨거운 태양열에 대비한 가볍고 시원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출발이다.
오를땐 꼬불 꼬불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것 같은데 그저 길도 사통팔달 4차선으로 뚫린 것 마냥 줄까지 나있다.
마치 그 선을 넘으면 안될것 같은 모양새로 일렬로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도 재밌다.
인간의 내면에 깊이 내재되어있는 질서의식 같은건가?? ㅎㅎ
힘차게 걷던 발걸음도 꽃과 바위가 있는 곳에선 또 쉬어야 할것 같았는 지, 모두 서서 쉬고 있다.
오를때 가파르게 느껴졌던 길이 내려올땐 상대적으로 매우 편하고 속도감도 있다.
어느새 나즈막한 돌집들이 군락을 이루어 파아란 농경지 군데 군데 들어선 마을이 보인다.
너무 빠른속도로 내려가서 보이지도 않던 일행들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개울가 낮은 꽃나무들을 그늘막 삼아 쉬고 있다.
잠깐 쉬어야겠다는 생각대신 도랑가에 핀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느라 난 또 여념이 없다.
청보라빛 야생화가 마치 우리나라의 호롱꽃 같이 생긴것 같기도 하고...
졸졸 흐르는 도랑물 소리와 함께 시원한 청량제를 마신 듯한 느낌이 든다.
뙤약볕 길을 걸어 내려오느라 지친 여행자에게 이 초라한 작은 공간이 더없이 이쁜 휴식처가 아닐 수 없다.
야생화와 노는 사이 일행들은 또 다 떠나 버렸다.
일찍 내려가면 뭐하나 싶어 카메라를 맡긴 미르자를 가이드 삼아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길섶 꽃을 만나면 꽃을 찍어주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또 찍어주고...
파아란 하늘에 일제히 한곳으로 퍼져나가는 뭉게구름.....
내리막 길이라 쉽게 시선이 닿는 하늘의 풍광이 매혹적이다.
밭인 지, 들녘인 지...구분이 어려운 들판에는 오를때 보았던 야생화들이 햇볕을 받아 더욱 눈부신 자태로 내게 손짓한다.
세상 어디에 이처럼 강한 유혹이 있을까....
스틱을 집어 던진 채 들녘에 엎어져 그 유혹속에 마음껏 빠져든다.
강렬한 햇살이 닿는 곳은 모두 빨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더없이 재밌는 풍광이다.
아니, 뜨거울 정도로 뽀송 뽀송 마른 옷가지들을 생각하니 그 기분좋음이 부럽기 조차 하다.
아!! 나도 숙소에 도착하면 옷가지와 침낭등를 햇볕에 널어 뽀송 뽀송 거풍을 해야지~
헤를리코퍼BC에서 출발해서 내려올때와는 달리 금방 도착할것 같았던 타르싱 마을은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네~~??
여기까지 올때는 금새 왔고, 그 이후 마을을 벗어나면서 부터 헤를리코퍼BC...그리고 라토보BC까지 가는 길이 그리도 힘이 들었었거늘..
순식간에 라토보에서 헤를리코퍼로 나온것 같고,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또 마을입구까지도 순식간에 내려온것 같은데....
확실히 고도가 3,000m 이상으로 올라가면 발걸음이 무거워져 매우 힘들다는것을 증명이라도 하는것만 같다.
꽃속에 파묻혀 사진을 찍느라 늦장을 부리기도 했지만, 일행들은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올라갈때 들러 야채도 사고, 음료수도 사먹던 가게에 있을것만 같더니....
그곳도 그냥 지나쳤다.
그도 그럴것이 가게 문이 닫혀있다.
갈증이 나는 터라 음료수라도 사 마시려고 했더니만...ㅠㅠ
커다란 나무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나도 좀 쉴겸....어르신을 모델삼아 사진찍기 놀이도 하고....
내리막이 길어서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꽃과 사람들을 맘껏 카메라에 담으며 걷는 여유로운 하산 길이 좋다
드디어 타르싱 마을에 들어섰다.
마치 시위라도 하듯 마을 골목길을 사람들이 꽉 메우고 있는 것이 뭔가 예사롭지 않다.
알고보니, 오늘이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이라서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것이란다.
글쎄~
뭔가 회의를 하고 있는것이 분명한것 같은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의 절제-오랜 금식기간의 라마단을 끝내고 흥겨운 한마당 파티라도 벌일 양 회의를 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당장 카메라에 담고 싶은 독특한 풍광이었으나, 사진을 찍으면 절대 안된다는 엄명이다. ㅠㅠ
그뿐만이 아니라 그곳으로 지나가도 안되어서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숙소앞 작은 가게에 들러 시원한 콜라와 포도를 한 웅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동네 어귀를 흐르고 있는 작은 도랑으로 나가 빨래도 하고....
내려오면서 맘먹었듯이 카고백에 있는 침낭과 옷가지들을 꺼내어서 햇볕에 거풍을 했다.
그리고....
과일과 간식들을 풀어 헤쳐놓고 발코니에 나와 앉아 이야기 꽃을 또 피웠다.
마치 집에 돌아온것 같은 푸근함과 여유로움에 마냥 즐거운 시간이다.
드뷔시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3곡 '달빛' - 유진 오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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