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오르프의 까르미나 브라나 (Carmina brana)
BEST EVER O Fortuna - Carl Orff Carmina Burana
Carl Orff (1895 ~1982)
칼·오르프(CARL ORFF)는 1895년 7월 10일 뮌헨에서 출생한 현대 독일의 대표적인 작곡가의 한 사람이며 교육자이다. 일찍부터 음악적인 자질을 발휘하여 피아노, 오르간, 첼로를 배웠으며, 어렸을 때는 자작의 인형극에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16세 때인 1911년에는 벌써 50곡 이상의 가곡과 니체의「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의한 합창, 관악 오케스트라, 2대의 오르간, 2대의 피아노, 2대의 하프를 위한 대작을 완성하였다.
1913년 일본의 가부끼에 따른 최초의 오페라「희생」을 작곡했다. 1914년 뮌헨 고등음악학교를 졸업 후, 1915년 -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 후 뮌헨·만하임·다름시타르 가극장의 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1921년에는 뮌헨에서 카민스키(HEINRICH KAMMISKY1886∼1946)에게 사사했다.
1924년 도로테킨터(DOROTHEE G NTHER)에 의하여 창설된 고전교육·음악·무용을 위한 <귄터학교>의 음악 교육부에서 교편을 잡음으로써 교육자로서 출발했다. 1930년 - 1933년에는 뮌헨 바하협회의 지휘자로써 재직하여, 바하의「마태 수난곡」을 무대극으로 연주했다.
1937년 그의 대표작인 무대 형식에 의한 칸타타 3부작「승리」의 제1부인「카르미나 부라나」를 완성,
초연하고, 1939년「달」(DER MOND), 1943년에는「승리」의 제2부인「카툴리·카르미나」, 1953년에는 제3부인「아프로디테의 승리」를 초연했다.
1943년에는 오페라「재치여인」(DIE KLUGE), 1949년에는 오페라「안티고네」(ANTIGONAE)등을 계속 발표하여 오페라 및 극음악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구축하였다. 1950년 - 1955년에는 뮌헨 고등음악학교 작곡가 주임교사가 되었으며, 1955년에는 튀벙겐 대학, 1972년에는 뮌헨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후에 바이에른 미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82년 3월 29일 그의 고향 뮌헨에서 사망하였다.
지휘자 및 교육자로서도 명성이 높았던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 칼 오르프(Carl Orff)는 일찍이 음악적 자질을 발휘하여 16세에 이미 50여 곡의 가곡과 수많은 합창곡을 완성하였다. 1930년경부터 독자적인 작곡 양식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36년에는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를 내놓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1942년에 작곡된 “카툴리 카르미나(Catuli Carmina)", 1951년에 작곡된 “아프로디테의 승리(Trionfo Di Afrodite)”와 더불어 무대 형식에 의한 칸타타의 3부작 “트리온피(Trionfi:승리)”의 제1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주제가 되는 소재를 전개시키지 않고 반복함으로써, 간결한 형식과 하모니, 그리고 일관된 리듬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대위법적 수법을 완전히 배제하여 단순한 구성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카르미나 부라나”에 의해 확립된 칼 오르프 특유의 작곡 양식은 이후 그의 모든 작품을 규정짓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무대 음악으로서 현대음악의 한 분야를 개척한 것이 되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라틴어로 “보이에른(Beuern:현재의 바이에른)의 시가집”이란 뜻이다.
중세(11-13세기) 유랑승이나 음유시인들이 노래한 도덕, 사랑, 유희, 종교 및 외설 등에 관한 시가집이 1803년 뮌헨 남쪽에 위치한 바이에른 지방의 베네딕트보이에른 수도원에서 발견된 연유로 “카르미나 부라나”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칼 오르프는 이 시가집에서 24곡의 가사를 채택하여 새로운 대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한 자를 위한 칸타타
詩人의 음악 읽기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독일 지휘자 오이겐 요훔은 카르미나 부라나를 초연했다. 1952년에 모노로, 67년엔 스테레오(사진)로 두 차례 녹음도 남겼다. 둘 다 뛰어나지만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67년 음반은 오늘날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박목월 시에서 바람은 ‘니 머라카노, 머라카노’ 하면서 불고, 김춘수 시에서 어린 소년의 북소리는 ‘살려다오, 죽여다오’ 하면서 둥둥 울린다고 표현됐다.
한겨울밤 내리는 눈은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쌓인다고 미당 서정주는 썼다.
총선은 끝났고 당장이라도 나꼼수의 김용민을 만나 이 시들을 들려주고 싶다. 특히 ‘괜찮다, 괜찮다…’ 하는 구절을 읊어주고 싶다. 몇 해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무턱대고 포옹했는데 정말 하마같이 컸다.
지금 주저앉은 그 덩치를 보듬어 안고 괜찮다, 괜찮다 말해 주고 싶다.
낙백(落魄)이라는 낱말을 아는가. 넋을 놓는 것, 처지가 형편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생에 한번쯤은 낙백을 한다. 그러나 그래도 어떻게 시간은 간다. 정히 괴롭다면 공지영의 오래된 에세이집
정말로 낙백했을 때 위로를 주는 음악이 있을까.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것은 없었다.
약혼식 올리고 유학 떠난 그녀를 8년 반이나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돌아온 말이라고는 같은 학교의 어떤 ‘형’을 사랑한다는 거였다. 아, 미국유학! 그때 나는 어디서든 영어만 들려오면 가슴이 찢어져 미친듯이 울부짖고는 했다. 음악? 음악이 무슨 개뼈다귀라는 말이냐!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절망한 주인공 트레비스가 말한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몇 년이 흘러갔다고. 낙백은 그런 것이다.
낙백한 영혼이 긴 잠에서 깨어나 기력을 찾아갈 때 들을 만한 음악이 있다. 장담한다. 경험담이니까.
너무나 유명한 곡이라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원시전례의 분위기로 타악기와 복수의 독창자 및 합창으로 구성된 무대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란 원래 중세 유랑승들의 방종한 행각을 담은 시로 200여 편 남아있는데 1936년 오르프가 현대적 해석으로 새롭게 창작한 곡이다.
모두 3장 구성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운명의 여신, 달처럼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여신,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면서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에게 드리는 기도가 그 내용이다.
이 유명한 곡에서 세 가지 측면을 말하고 싶다. 먼저 고도의 단순성. 하나의 강렬한 리듬패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데 그 흥분한 듯 고양되어 진행되는 단순함이 일종의 오토마티즘이라고 할까, 매우 헝클어진 반지성적 정서반응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미치광이 백수 광부의 외침을 떠올려 보자.
또 하나 이 곡의 파쇼적 성격이다. ‘집단적 굴종의 테마’라 부르며 ‘카르미나 부라나’를 비판하는 음악학자들이 있다. 집단성을 표상하는 합창이 독주자를 압도하면서 복잡한 사적 내면성을 비웃는 것 같다.
실제로 히틀러 전성기에 발표되어 각광받았고 오르프는 제3제국 공인 음악가이기도 했다(하지만 나치 부역자에서 그는 면제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곡의 육체성이다. 예술적 승화 이전의 상태. 그 생경한 날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므로 곡에 반응하는 태도 또한 요즘으로 치면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즐기듯 몸으로 느끼는 것이 옳다.
아, 잘 표현을 못하겠다. 낙백한 자에게 왜 ‘카라미나 부라나’가 힘을 줄 수 있다는 건지. 앞서 말한 단순성·집단성·육체성이라는 명제가 절망한 인간에게 어떻게 치유책이 될 수 있는지. 그냥 쉽게 말해서 아무리 복잡한 생각에 빠져있어도 그 생각을 무력화시키는 힘을 지닌 곡이라는 것.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오르프의 아내였던 작가 루이제 린저의 회상.
‘나는 날마다 남편의 죽음을 대비해야 했다.’
카를 오르프는 한밤중에 집을 나와 죽음의 속도로 차를 몰아대는 취미가 있었다. 엔진이 터져나갈 듯 최고 속력으로 아우토반을 달리다 새벽녘에 돌아와 기진해 쓰러져 자곤 했다는데 그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죽음의 질주로 견뎌야 했던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 긴장이 ‘카르미나 부라나’를 배태했을 것이다.
세간에 발가벗겨져 손가락질 받게 된 김용민이건 울며불며 맥주컵을 씹어 어금니를 모조리 망가뜨린 한때의 내 꼬락서니건 또는 모르는 누구건 겪어 보면 안다. 절망은 멋이 아니다. 그냥 죽음이다. 그 죽음에서 깨어나면 다른 인간이 되어있는데 아주 더럽다. 강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강인한 인간을 참 더럽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절망하지 않는 내성 같은 건데 순결을 잃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 에효….
‘카르미나 부라나’의 거창한 도입부는 이런 대사로 시작한다.
“오, 운명의 여신이여!”
1. 칼·오르프의 생애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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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여신
아, 운명이여!
그 변덕이 마치 달과도 같아
차오르다가도 이지러지누나!
가증스러운 인생
시련을 주었다가 위로하기도 하지
온갖 굴욕과 영광
마치 얼음처럼 사라져버리네
운명, 기괴하고 공허한 것.
스스로 바퀴를 돌리며 악의에 차
언제나 나에게 고통을 주네
그늘에 숨고 베일에 가리운 채로
항상 나를 시험하나니
이제 승부에서 벗어나
너의 사악함으로부터 등을 돌리리라.
운명은 나를 배반하여
내 몸의 건강과 영혼의 미덕을 빼앗아가네
남음도 모자람도
너의 뜻에 묶여 항상 노예상태라네
이젠 물러서지 않고 흔들리는 끈을 잡아 당기리
운명은 항상 강자를 쓰러뜨리나니
모든이가 나와 함께 눈물을 흘리네...
Carl Orff - Carmina Burana (Full HD) (Full Concert)
Carmina Burana, Carl Orff, Zubin Mehta
공연후기....
대규모의 합창 극음악인 '칼 오르프'의 '까르미나 부라나' 공연이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다.
2007년 아람누리에서 완전한 극음악으로 봤을때 만큼 전율이 일진 않았어도...
여전히 가슴을 쓰러내릴 만큼 박진감 넘치고, 숨 넘어가듯 간절함이 느껴진 연주였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운명의 여신의 장난...
바퀴가 구르면 높이 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와
완전한 둥근달이 되었다가 다시 완전하게 줄어드는 달에 비유하며 연주와 노래는 흐른다.
칼 오르프가 말하려는 그 운명...
그 속에서 나의 오만을 찾았고, 겸손해야 함을 간절하게 느꼈다면 오늘의 공연을 본 보람이 있었다고 말할까...
아니 분에 넘쳤다고...??
문학 평론가 김갑수가 말한....
인생 낙백의 고통에서 오로지 헤어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음악이었다고 말한 이유도 알것 같았다.
삶의 흐노애락이 소리로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음이...
그 어떤 드라마 보다 가슴을 치고 들어왔음도 놀랍다.
소프라노의 숨이 멎을 듯 잦아드는 초고음... 간절함....
과연 테너의 목소리인가...믿기 힘든 초절정 고음과 변화무쌍한 표현을 자유자제로 구현한 바리톤...
모두가 훌륭했고 놀라웠다.
2007년 아람누리의 공연을 보고나서도 이 엄청난 대곡을 하루만 연주한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콘서트 버전으로라도 다시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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