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5번
말러 교향곡 1, 2번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내놓아 호평을 받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가장 대중적인 말러 교향곡'으로 꼽히는 <교향곡 5번>을
지휘합니다. 4악장 아다지에토가 부인 알마에 대한 말러의 '애정고백'으로 알려져 있으며, 독일 이상주의적인 '암흑에서 광명으로'의 구성 원리에
충실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정명훈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이 2년 4개월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리는 이번 연주는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 발매를 위한
레코딩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1악장 서두의 트럼펫 단음계 팡파르는 전세계 교향악단 트럼페터들의 속을 타들어가게 만드는 유명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현역 세계 최고 트럼페터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트럼펫 수석을 지낸 알렉상드르 바티 수석의 솔로 연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Chopin : 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말러: 교향곡 5번
Mahler : Symphony No.
5
지휘 정명훈 Myung-Whun Chung, conductor
지휘자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피아노 부문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하였다. 뉴욕 매네스 음대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를 거쳐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1984~1990),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감독(1989~1994)을 지내며 세계적인 지휘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을
지휘하였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을 비롯한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또한 1990년부터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20여 장의 음반을 레코딩하며 음반상을 휩쓸었으며, 특히,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하기까지 한 메시앙의 음반들(<투랑갈릴라 교향곡>, <피안의 빛>, <그리스도의
승천> 등)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베르디의 <오텔로>,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등은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8년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선정한 '아비아티 상'과 이듬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받았으며, 1991년 프랑스 극장 및 비평가
협회의 '올해의 아티스트 상', 1992년 프랑스 정부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95년 프랑스에서 '브루노 발터 상'과 프랑스
음악인들이 선정하는 '음악의 승리상'에서 최고의 지휘자상을 포함 3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2003년에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1995년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는 정명훈은 음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문화훈장인 '금관 훈장'을 받았고,
1996년 한국 명예 문화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한 바 있다. 2002년 국내 방송사에서 실시한 문화예술부문 전문가 대상 설문조사에서 음악분야
최고의 대표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피아노 임주희 Ju-Hee Lim,
piano
2000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난 임주희는 36개월부터 피아노
선생이었던 모친으로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6년부터 피아니스트 장형준을 사사하고 있다. 2009년 야마하 리틀 피아니스트 시리즈
리사이틀 데뷔를 시작으로 2010년 6월 러시아 백야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발레리 게리기에프 지휘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으며, 같은
해 8월 독일 라인가우 뮤직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폴란드 칼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0월 중국 상하이 신포니에타 콘서트 시즌 오프닝 연주에
초청되어 협연을 하였다. 2011년 8월에는 프랑스 앙시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데니스 마츄에프와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오른 임주희는
기성 연주자 못지 않은 기량으로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으며 2012년 2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에 깜짝 게스트로 초대되어
발레리 게리기에프의 지휘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였다. 2010년 6월 러시아에서 18일, 19일에 걸친 연주 후 바이올리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의 대타로 22일, 23일 이틀에 걸친 연주제의를 발레리 게리기에프로부터 갑작스럽게 받은 임주희는 22일에는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
23일 카발레프스키 협주곡을 발레리 게리기에프 지휘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성공적으로 협연하였다. 그날 연주를 본 러시아 언론은 잘 알려진
천재음악가 에브게니 키신과 바딤 레핀이 12세, 13세에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으나 한국의 꼬마 연주자가 9살의 나이에 전례 없는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5월 23일 공연 협연자, 피아니스트 임주희 인터뷰 (An Interview with pianist Ju-Hee Lim)
혹시 당 타이 손(Dang Thai Son)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아시는지요? 베트남 출신인데 국적은 캐나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980년에 우승해 화제로 떠올랐던 인물이지요. 왜 화제였는고 하니, 1927년 막을 올린 이 국제 콩쿠르에서 아시아인으로는 당 타이 손이 최초의 우승자였기 때문입니다.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콩쿠르가 명 피아니스트들의 산실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요. 당 타이 손 직전에(1975년) 우승했던 피아니스트는 크리스티안 치머만, 직후에(1985년) 우승했던 피아니스트는 스타니슬라프 부닌입니다. 1960년대에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습니다. 하나같이 쟁쟁한 이름들입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스타들을 배출해 온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당 타이 손은 우승뿐 아니라 3개의 특별상(폴로네즈 상, 마주르카 상, 콘체르토 상)까지 휩쓸었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떠오릅니다. 지금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1980년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는 매우 공정한 심사가 이뤄졌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페어 플레이’ 시스템이 살아 있었던 것이고, 당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피아니스트들도 ‘예술가의 자존심’이라는 중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지요.
저는 한 6~7년쯤 전에 당 타이 손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연주회를 위해 내한한 차였고, 그날 식사 자리는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충모 교수(현재 줄리아드 음대 교수)의 주선으로 마련됐습니다. 두 사람은 쇼팽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만나 우정을 쌓은 듯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세 남자가 모였지요. 당 타이 손은 저보다 세 살, 강 교수는 한 살 위였기 때문에,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옛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약간 수다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주 기분 좋은 저녁 자리였지요. 여전히 자신의 오리지널 네임을 고집하고 있는 당 타이 손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등태산’(登泰山)입니다. 그는 제가 가진 수첩에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썼고, 저는 태산에 몇 번이나 올라가 봤냐는 썰렁한 농담을 던지면서 화기애애하게 놀았지요. 제가 본 당 타이 손은 한마디로 착하고 따뜻한 사람, 남자라기보다는 거의 여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그와의 추억을 되짚어보는 까닭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들을 음악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인 까닭입니다. 쇼팽의 피아노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당 타이 손의 변함없는 장기 중의 하나지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 음반도 당 타이 손의 LP입니다. 1992년에 폴란드의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에서 녹음한 연주인데, 일본 음반사 빅터(Victor)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이 음반을 추천음반 목록에 올리기에는 오케스트라 부분의 연주가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당 타이 손과의 만남 이후, 가장 즐겨 듣는 쇼팽의 협주곡 음반 가운데 하나로 자리했습니다. 당 타이 손의 연주는 서정미가 정말 빼어납니다. 남자의 피아노 터치가 어쩌면 이렇게까지 섬세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특히 1악장의 두 번째 주제 선율, 또 녹턴(야상곡) 스타일의 2악장에서 보여주는 칸타빌레(노래하는 듯한) 풍의 선율을 듣다보면 가슴이 아릿해지곤 합니다.
39년을 살다간 쇼팽의 음악적 생애는 피아노에서 시작해서 피아노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협주곡은 모두 두 곡을 남겼습니다. 오늘 듣는 1번 E단조 Op.11은 스무 살이던 1830년에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2번 F단조 Op.21은 그보다 1년쯤 전에 작곡했지요. 말하자면 1번 E단조를 더 나중에 썼습니다. 하지만 출판을 먼저 했기 때문에 ‘1번 협주곡’으로 자리했습니다.
아름다운 봄의 달빛이 어린 밤처럼... 고향을 떠나는 스무 살 청년의 마음
이 곡은 쇼팽이 조국 폴란드를 떠나면서 가졌던 ‘고별 연주회’에서 초연한 음악이었습니다. 1830년 10월 11일 바르샤바 국립극장, 피아니스트는 물론 쇼팽 본인이었지요. 이 곡에 대한 쇼팽 스스로의 언급은 친구인 보이체호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됩니다. 쇼팽은 1830년 5월 15일의 편지에서 이 곡의 2악장에 대해 이렇게 기술합니다. “이 새로운 협주곡의 아다지오는 E장조라네. 여기서 나는 강렬한 힘을 추구하지 않았어. 로맨틱하고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 약간의 우울함을 느끼면서, 많은 추억들을 되살리는 장소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지. 아름다운 봄의 달빛이 어린 밤처럼 말이야.”▶쇼팽이 파리에 머물던 시절에 사용하던 피아노. 쇼팽은 자신의 연주회에서 1번 협주곡을 자주 연주했다.
그의 말처럼 이 곡은 강렬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우울함, 추억의 장소에 대한 회상, 달빛이 고즈넉한 아름다운 봄밤의 정취…. 말하자면 고향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로 마음을 굳힌 쇼팽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울러 우리는 이 곡을 작곡하던 시기에 쇼팽이 갓 스무 살의 청년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의 쇼팽은 음악적으로 아직 무르익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협주곡 1번과 2번은 오케스트레이션 부분에서 음악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또 스무 살 청년들이 흔히 그렇듯이 감상주의의 편린을 음악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적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쇼팽이 남긴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은 듣는 이의 마음을 툭툭 건드립니다. 쇼팽 이전의 음악사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피아노의 독특한 뉘앙스, 음을 밀고 당기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미, 아울러 듣는 이의 가슴 속으로 곧바로 스며들어 오는 직접적인 낭만성 같은 것들이야말로 쇼팽 음악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정서적 매력이 존재합니다. 게다가 이 곡은 고향을 떠나는 스무 살 청년의 마음을 담아내면서, 이후의 쇼팽이 죽는 날까지 앓아야 했던 ‘향수병’을 미리부터 예감케 합니다. 1831년 9월 파리에 당도한 쇼팽은 폴란드 억양이 짙은 프랑스어로 말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노상 그리워했던 고향에는 죽는 날까지 결국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쇼팽의 많은 음악이 그렇듯이,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는 아무런 설명 없이 들어도 가슴으로 잔잔하게 밀려들어옵니다. 애상이 깃든 가요적 선율이 빈번히 등장하는 까닭에 서너 번만 반복해 들으면 음악이 그대로 외워집니다. 1악장은 관현악이 당당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의 첫 번째 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하지요. 두 번째 주제는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가요풍의 선율입니다. 다시 첫 번째 주제가 연주되다가 마침내 피아노가 등장해 두 개의 주제 선율을 잇달아 펼쳐냅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좀 더 끌어당기는 선율은 역시 두 번째 주제입니다.
2악장: 로망스 - 라르게토
2악장은 느린 템포의 로망스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여리게 도입부를 이끌고, 이어서 피아노가 노래하는 듯한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쇼팽이 친구 보이체호프스키에게 얘기했던 바로 그 악장이지요. 약간의 우울함과 회상의 분위기, 달빛의 느낌 등으로 가득한 악장입니다.
3악장: 론도 - 비바체
중단 없이 아타카(attacca)로 이어지는 3악장은 생기 넘치는 도입부로 시작하는 론도 악장이지요. 론도(Rondo)라는 것은 하나의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사이에 에피소드 풍의 삽입구가 끼어들지요. 도입부가 끝나면 피아노가 스케르찬도(scherzando, 익살스럽게)로 연주하는 민속음악 풍의 발랄한 선율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3악장의 론도 주제입니다. 그 선율을 잘 기억하시면서 마지막 장면까지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글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 시절에는 음악을 멀리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Krystian Zimerman. Frederic Francois Chopin - Piano Concerto №1
Chopin-Piano Concerto no.1 in E minor,op.11:Daniil Trifonov&the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Mahler, Symphony No.5 in C sharp minor
말러 교향곡 5번
Gustav Mahler
1860-1911
Claudio Abbado, conductor
Lucerne Festival Orchestra
Lucerne Festival 2004
Claudio Abbado conducts Mahler Symphony No.5
말러에게 있어 교향곡 5번은 새로운 출발이다. 불혹을 넘긴 그는 새로운 기악 교향곡의 첫 작품인 교향곡 5번에서 고도로 세련된 작곡 기법을 구사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교향곡의 구성을 살짝 비틀어 특유의 음악적 풍자와 냉소를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냈다. 자신의 삶과 음악을 밀접하게 관련시키곤 했던 말러는 교향곡 5번에서도 그가 경험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교향곡 5번에 착수하던 1901년에 말러는 심각한 장출혈로 위기를 겪은 데 이어 교향곡을 완성하던 1902년에는 미모의 알마 신틀러와 결혼하면서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뒤섞여 있는 비극적 음악과 환희의 음악
비록 그 자신은 교향곡 5번에 어떠한 표제도 붙이지 않았지만, 비극적인 장송 행진곡으로 시작해 유난히 밝고 경쾌한 5악장으로 마무리되는 교향곡 5번은 죽음의 위기와 결혼의 행복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나타내는 듯하다. 비극적인 음악에서 환희의 음악으로 마무리되는 전개 방식은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전통적인 독일 교향곡의 구성과 닮았지만, 말러는 이 교향곡 곳곳에 자신의 가곡에서 따온 선율을 암시하며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말러가 교향곡 5번에서 이뤄낸 가장 놀라운 업적은 작곡 기법에서의 성취가 아닐까 싶다. 말러의 교향곡 5번에선 그 어떤 선율도 단순하게 등장하는 법이 없다. 하나의 주제가 또 다른 주제와 동시에 제시되는가 하면 조그만 반주 음형이 거대하게 자라나 전체 음악을 압도하기도 한다. 1, 3악장에선 트럼펫과 호른이 마치 협주곡의 솔리스트인 양 전면에 드러나고, 3, 5악장에선 여러 악기들이 매우 정교한 ‘폴리포니’(polyphony)를 만들어내며, 2, 5악장 마지막 부분에선 금관악기들이 통쾌한 코랄을 연주한다. 물론 교향곡 5번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인 4악장 ‘아다지에토’의 아름다운 음악은 영화음악으로 사용될 정도로 로맨틱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말러가 교향곡 5번에서 그토록 다양하고 세련된 작곡 기법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말러가 J. S. 바흐의 작품을 깊이 연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01년 3월경, 말러는 바흐의 악보 전집을 들여 놓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봤으며 여름휴가 때도 바흐가 사용했던 코랄에 다양하게 화성을 붙이며 하루 일과를 보내곤 했다. 바흐 음악을 통해 새로운 작곡 기법에 눈을 뜬 말러는 교향곡 5번을 작곡하면서 “초보자처럼 새롭게 곡을 썼다.”고 증언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교향곡 5번은 그의 초기 교향곡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음악이다.
말러의 교향곡 5번은 교향곡 5, 6, 7번으로 구성된 ‘중기 3부작’의 새 시대를 연 작품이다. 이 세 교향곡은 순수 기악곡으로, 일종의 ‘교향악적 칸타타’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 2, 3, 4번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새로운 3부작은 가사도 가수도 합창도 없이 진행된다. 또한 교향곡에 자신의 가곡을 인용하곤 했던 말러는 교향곡 5번에서는 단지 ‘암시’만 할 뿐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중기 3부작 교향곡의 새 시대를 연 작품
새로운 3부작을 여는 교향곡 5번은 악장 구조 역시 독특하다.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졌으나, 1악장은 마치 2악장의 서주와 같은 역할을 하며 제1부를 구성하고, 3악장은 제2부, 그리고 4, 5악장이 연결되어 제3부를 구성한다. 제1부는 인상적인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한다. 곧이어 마치 고통스러운 발걸음처럼 무겁고 침통한 장송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팡파르와 행진곡으로 이루어진 두 가지 악상은 곧이어 폭발적인 슬픔으로 중단되며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팡파르와 행진곡, 슬픔의 폭발이 교대되는 동안 이 음악을 듣는 이들 역시 감정적인 고양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악장 말미에 터져 나오는 탄식의 울부짖음에서 절정에 달할 것이다. ▶1악장 장송 행진곡의 비극성은 탄식과 슬픔의 절정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2악장은 1악장과 몇 가지 악상을 공유하고 있어 사실상 1악장에 연결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 이 악장은 격렬한 분노를 담은 제1주제와 평화를 갈망하는 듯한 제2주제로 중심으로 전개된다. 2악장의 핵심은 이 악장 말미에 금관악기들이 연주하는 통쾌한 코랄이지만 이는 오래지 않아 불협화음과 반음계적인 추락 모티브들로 좌절되면서 쓸쓸한 결말에 이른다.
제1부가 장송 행진곡과 분노의 폭발이라면, 스케르초로 된 제2부는 일종의 춤곡이다. 시골풍의 거친 ‘렌틀러’와 도시풍의 세련된 ‘왈츠’가 교대되는 이 스케르초는 말러 자신의 표현대로 “우리는 삶의 한 가운데서도 죽음 속에 존재한다.”(media vita in morte sumus)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겉으로는 행복한 삶을 누리는 듯하지만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집요한 시간의 추적이 ‘♪♪♩♩’의 반복되는 리듬과 광포한 춤곡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결코 삶에 대한 확신이 아니다. 온갖 모티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거대한 폴리포니를 이루고 있는 이 음악은 죽음의 추격에 쫓기며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혼란스러운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3악장의 난폭한 죽음의 춤을 거쳐 제3부의 첫 악장인 ‘아다지에토’에 이르면 지극히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음악이 현악기만으로 연주된다. 어떤 이들은 이 음악을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 악장의 마지막 부분의 베이스 파트에 암시된 음악은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의한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라는 가곡이다. 이 곡은 말러가 “이 곡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가곡이긴 하지만 사랑을 노래한 음악에 왜 이런 쓸쓸한 노래를 인용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아다지에토’ 악장은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로맨틱한 선율과 쓸쓸한 정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4악장에 곧바로 이어지는 5악장은 지나치게 밝고 경쾌한 음악이다. 5악장에서는 2악장 말미에 잠시 등장했던 코랄이 완전한 승리로 끝나고 있어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을 보여주는 음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5악장 도입부에서 목관악기들이 연주하는 선율의 단편들 중에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멜로디를 잘 분석해보면 놀랍게도 그 성스럽고 장엄한 코랄 선율임이 드러난다. 5악장 도입부에서 툭 내던져지듯이 연주되는 선율의 단편이 교향곡 5번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성스러운 코랄의 단편이라는 사실은 어쩐지 신성모독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5악장 도입부에서 연주되는 바순의 상행 모티브는 말러의 뿔피리 가곡집 중에서 ‘높은 지성의 찬가’(Lob des hohen verstands)에서 따온 것으로 그 내용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이 가곡에서 당나귀는 귀가 크다는 이유로 뻐꾸기와 나이팅게일의 노래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초청된다. 그는 단순하게 두 음만 반복하는 뻐꾸기의 노래가 더 훌륭하다고 판정한다. 이는 나이팅게일의 멋진 노래와도 같은 말러의 훌륭한 작품이 당나귀와 같은 당대 비평가들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말러의 자조인 듯 느껴진다. 말러의 냉소적인 풍자는 계속된다. 말러는 4악장에서 그토록 간절하고 안타깝게 표현했던 아름다운 사랑의 주제를 5악장의 제2주제로 가져와 지나치게 가볍고 경쾌한 음악으로 바꿔 놓으면서 진실한 사랑을 회피하려는 듯하다. 이것 역시 코랄의 신성모독 못지않은 충격을 전해준다. 과연 말러가 교향곡 5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지만, 말러가 이 교향곡에서 표현한 그 현란한 폴리포니와 화려한 기교는 오늘날의 음악 애호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Mahler - Symphony No 5 in C-sharp minor - Gergi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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