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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 <마술피리> 밤의 여왕의 아리아

나베가 2014. 5. 18. 02:11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③ <마술피리> 밤의 여왕의 아리아

그 남자를 처음 본 건 도이치오퍼 베를린에서였다. 베를린에는 모두 세 개의 오페라 극장이 있는데, 동베를린 지구에만 두 개가 있어서 장벽이 들어서자 부랴부랴 서베를린 시민을 위해 건립한 극장이 도이치오퍼다. 그는 <일 트로바토레> 공연 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블랙수트를 완벽하게 차려입은 젊은 독일 남자가 오페라를 본다.’ - 이 생경한 광경이 신기해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는 대단한 오페라 매니아였는데, 그 중에서도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두 명의 남자가 진정한 인격완성을 목표로 가혹한 시험에 도전한다. 침묵의 계율을 준수하고 고통을 참아내며, 최후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왕자 타미노는 이 과정을 묵묵히 감내하지만, 새잡이 파파게노는 불평불만이 가득이다. 그들의 모험은 한 편의 판타지 영화와도 같아서 마법의 아이템인 피리와 마술종이 주어지고, 숲 속에선 새와 들짐승들이 인도해준다. 사막에선 선지자들이 지친 두 사람의 나태함을 꾸짖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는 용기도 전해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줄거리다.

 

 

 

(<마술피리>의 코믹담당. 파파게노가 부르는 아리아 ‘나는 새잡이라네’. 바리톤 사이먼 킨리사이드)


<마술피리>는 이중적인 드라마이다. 어떤 이는 이 오페라를 밝은 동화로 해석하여 ‘가족용 오페라’로 소개한다. 또 다른 이른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 불리는 비밀결사의 입회과정 등이 묘사된 상징주의 오페라로 해석하기도 한다. 모험과 도전의 동화 오페라 혹은 음모와 밀교의식으로 가득 찬 ‘모차르트 코드’식의 복잡한 상징 오페라. 어느 쪽이 이 작품의 진실된 모습인지는 그 누구도 단정하기 힘들고, 사실 이제와선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오페라가 초연된 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정말 깊은 감동을 주는 최고의 명작이라는 사실이다.

 

 

 

(왕자 타미노의 모습에는 독일 가곡풍의 담백한 서정이 깊게 투영되어 있다. 아리아 ‘이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테너 폴 그로브스)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들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일종의 캐릭터 오페라라 할 수 있는데, 왕자 타미노와 공주 파미나 커플은 단정하고 성실한 인물들의 전형이다. 거기에 완전히 반대되는 코믹 캐릭터가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커플. 파파게노는 온갖 계율을 모두 어기고, 성실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시도 때도 없이 중도포기를 마음먹는 나약한 인물이다. 그러나 착한 심성을 지니고 있는 그에게 모차르트는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라는 이야기일까. 당신은 두 커플 중 어느 쪽에 마음을 ‘동기화’시키고 싶어지는가?
 
 
자애로운 어머니에서 사악한 마녀로 표정이 돌변하는 밤의 여왕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자식의 손에 칼을 쥐어주며 원수의 목을 쳐 돌아오라는 어머니인데, 줄거리만 보면 저돌적이고 처절한 그리스식 복수극 같지만 목관 오블리가토처럼 현란하게 구성된 모차르트의 음악이 (다행히도) 그런 숨막히는 전개를 조금 피하게 해준다.

여왕이 부르는 단 두 곡의 아리아, 그 중에서도 2막의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을 불태우고’는 극한의 기교를 앞세운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아리아로 손꼽힌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기교 위주의 스타일도 있고, 벼락처럼 내려치는 격정적인 노래도 가능하다.

프랑스의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은 최근 레코딩에서 색다른 해석을 선보였다. 음악적으로 완벽하지만, 그렇게 차갑고 기교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격정이 폭발하여 사나운 표정도 아니다. 마치 생제르멩데프레의 어느 카페에서 만난, 잘 뽑아낸 그윽한 카페오레 같은 느낌의 부드러움이 살아있다고나 할까.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에서 불타오르고’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
도이치오퍼에서 만난 그 독일남자는 베를린의 세 극장 전부를 오가며 <마술피리>를 챙겨 본다고 했다. 도이치오퍼와 슈타츠오퍼의 음악성 짙은 ‘피리’들도 좋고, 코미쉐오퍼의 아방가르드한 접근도 즐겁다고 한다. 그는 잘츠부르크에서 <마술피리>를 보는 것이 꿈이었다. 타미노형 인간이어서 꼬박꼬박 저축을 해 이미 그 꿈을 이뤘을지, 아니면 파파게노 스타일이라 전진과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마술피리>를 들으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접근방법이라는 모차르트식 넉넉함을 한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