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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문화여행노트] 클라우디오, 위대함과의 영원한 이별

나베가 2014. 1. 23. 13:57

 

 

 

마에스트로 클라우디오 아바도 (1933 - 2014) 추모특집

지난 20일의 일입니다.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시의 여성대변인 라파엘라 그리마우도가 담담히 부고 성명서 하나를 읽어 내렸습니다.

“우리 시대의 마에스트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오늘 자택에서 지병으로 영면하셨습니다. 볼로냐시를 대표해 이 위대한 거인의 죽음에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빕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롬바르디아의 아들’은 그 특유의 섬세하고 고결하며, 또 귀족적인 우아한 해석으로 우리 시대 음악사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1966년 라 스칼라 음악감독 시절의 아바도. 벨리니의 <카풀레티와 몬테키>에 출연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밀라노의 유명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아바도는 밀라노와 빈에서 공부한 후 1960년 겨우 27살의 나이에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데뷔합니다. 그리고 196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라 스칼라에서 그는 단 한번도 푸치니를 지휘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로시니와 벨리니, 베르디의 오페라에 ‘고결한 이탈리아의 영혼’을 불어넣었습니다.
(베르디 <맥베스> 전주곡.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1975년 라 스칼라)

특히 그가 1978년 연출가 조르지오 스트렐러와 함께 만들어낸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는 20세기 오페라 무대의 가장 기념비적인 위업으로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 2막 3중창.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바리톤 피에로 카푸칠리, 테너 베리아노 루케티,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 1978년 라 스칼라)

이후 빈필하모닉, 빈국립오페라극장에서 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 빛나는 활약을 펼쳤던 아바도는, 1979년부터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으며 수많은 명연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드뷔시 <녹턴>,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 중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1989년부터 아바도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사후의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자리에 오릅니다. 사상 최초로 단원들의 투표에 의해 선임된 음악감독이었습니다.

특히 2001년에는 치명적 위암 투병의 와중에도 포디엄에 올라 베르디의 <레퀴엠>을 지휘했습니다. 앙상히 말라버린 가녀린 몸으로 영육을 오가는 장엄한 진혼의 음악을 지휘했던 당시 그의 모습이 아직도 영상기록으로 남아 있어 숭고한 전율의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베르디 <레퀴엠> 중 ‘리베라 메’,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2001년 베를린)
베를린필 이후 아바도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가장 순도 높은 말러 음악의 진수를 들려주게 됩니다. 그 고결한 우아함이 또한 간절히 생각나는 오늘입니다.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04년 루체른)

(루체른 페스티벌에서의 클라우디오 아바도)
2012년의 일입니다. 그해 여름 루체른에서 말러의 <교향곡 8번>을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던 아바도는 주치의의 권유 등에 의해 건강상의 부담이 보다 적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지휘하게 됩니다. 단 한순간조차, 단 하나의 음조차 일체의 허위와 과장 없이 순수에의 지극한 몰입과 헌신을 보여주었던 그 공연 - 콘서트 현장을 지켰던 관객들은 진혼미사곡의 마지막 음이 끝나고 악기의 잔향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거의 1분여를 미동도 하지 않으며 ‘가장 위대한 침묵’으로 마에스트로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모차르트 <레퀴엠> 중 피날레 ‘코무니오’(제찬성령),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12년 루체른)
작년 5월 베를린에서 그가 지휘하는 콘서트를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베를린필을 리드한 아바도는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하이라이트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지휘하며 다시 없을 최고의 앙상블을 엮어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아니, 그 음악은 그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작년 5월 아바도의 베를린필 공연에서 직접 찍은 사진. 결국 이 콘서트가 아바도의 마지막 베를린 공연이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감격이, 그때의 그 감동이 마지막일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당시 필하모니홀 합창석 객석의 한 쪽에는 베를린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 부부도 함께 와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도, 저도, 또 저와 함께 공연을 보았던 일행들도, 그때 그 관객들도 그날 밤 들었던 그 음악이 아바도가 베를린에서 남긴 마지막 음악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을 것입니다. 삶이란 이렇듯, 늘 준비되지 않은 마무리를 향해가는 작은 여정인 것일까요?
(위대한 이탈리아 음악가 3인방. 좌로부터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가 루이지 노노,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1975년 밀라노)
마지막으로 루이지 노노의 음악을 소개합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현대음악 작곡가인 그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가장 절친한 음악적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노노의 <일 칸토 소스페소(중단된 노래) Il canto sospeso>는 2차 대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문제적 음악입니다. 지금은 노노도, 아바도도 모두 우리 곁을 떠나 불귀의 객이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위대한 예술은 내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아 영원히 불타오를 것입니다.
(루이지 노노 <중단된 노래 Il canto sospeso>,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아바도를 추모하며 옛 공연을 회상해 보다.

카톡으로 날라온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별세 소식'을 듣고는 식구들이 다 놀랄정도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오래 전에 암투병을 이겨냈고, 예전의 잘생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라버린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무대에 선 그분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는 그분의 별세 소식을 이렇게 빨리 들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다시 아바도를 볼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건강이 좋지않으니 우리나라에서 그분의 연주를 볼 기회는 없을것 같고...

거금을 들여 루째른 페스티발을 보기위해 스위스까지 날아갈 용기도 없고...

예전처럼 혹시나 또 중국에서 제2의 루째른 페스티발을 개최하지는 않을까....고대를 했던...

 

그러나 이제는 다시는 그분의 실황 연주를 볼 기회는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내 평생에 그분의 실황 연주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후의 명연- 루째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의 말러 1번 연주를...

그리고 '유자 왕'과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3번의 연주를....

 

얼마나 소름이 끼쳤었던가!!

단 1초도 그분에게 클로즈업된 망원경을 뗄 수 없었다.

마치 그분의 영혼이 내 영혼과 일치를 이룬 듯 나의 존재 마저 잊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꿈을 다 꾸었다.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혼신을 다해서 연주하는 그분의 모습을...

그러나 끝내 그 엄청난 연주를 아바도는 감당해내지 못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던 손수건을 합창석 맨 앞자리에 앉았던 나는

안깐힘을 다해 무대 뒤로 들어가던 그분의 손수건을 받았다.

그리고 연주회는 그 다음날 다시 개최된다는 꿈....

아바도의 건강이 연주를 해내지 못할 만큼 나빠졌다는 가슴아픈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꿈에서도 그분의 연주를 보고, 또 그분이 흘린 땀을 닦던 손수건까지 받았으니,,,,

평생에 이보다 더 감동적이고 행복한 꿈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 지 모른다.

그분이 아프다는 걱정이 항상 잠재하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

그분의 연주를 다시 보고 싶어서 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 한 동안은 모든 무대에서 아바도를 보았다.

그분이 지휘하던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어디서든 그분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뉴욕필하모닉이 내한해서 같은 곡인 '말러 1번'을 연주했는데....

아바도의 연주가 너무 강렬하여 뉴욕필 공연은 끝내 내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공연장이 떠날 듯한 함성에 휩쌓였음에도 불구하고.....ㅠㅠ

 

얼마나 오랫동안 이 연주가 내 가슴을 울릴까...

아마 평생을 갈것이다.

천번을 넘게 간 공연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선두에 선 압도적인 연주회였을 뿐아니라

다시는 볼 수 없는 연주가 되어 버렸으니까....

 

오늘...서울 시향 연주회에서 말러 10번 연주회가 있다.

그리고 내일은 KBS오케스트라...말러 1번 연주회가 있고...

아마 온통 아바도의 모습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지 않을까....생각든다.

 

2014.1.23. 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