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레퀴엠....
Verdi, Messa da Requiem Op.48 베르디 ‘레퀴엠’ Giuseppe Verdi 1813-1901 Leontyne Price, soprano Fiorenza Cossotto, mezzo-soprano Luciano Pavarotti, tenor Nicolai Ghiaurov, bass La Scala Chorus of Milan La Scala Orchestra of Milan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La Scala, Milan, 1967.01
Karajan conducts Verdi's Messa da Requiem
“다양한 색채와 차원, 통일성과 방백을 지닌 연극처럼 다루어진 이 <레퀴엠>은 ‘망자(亡者)를 위한 오페라’처럼 보인다. 그것은 진한 감동을 주는 한 편의 멜로드라마로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의 환영을 보는 듯한 힘과 함께 죽음의 신비와 맞닥뜨린 고통을 승화시킨다.” ― 알랭 뒤오
‘망자(亡者)를 위한 오페라’ 베르디가 예순 즈음에 작곡한 <레퀴엠>은 오페라 <돈 카를로>, <아이다>, <오텔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소 특별한 작곡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베르디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두 위인의 죽음이었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인 조아키노 로시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곡 ‘리베라 메(Libera me)’를 썼고, 역시 이탈리아의 대문호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서거 1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위해서 전곡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완성된 부분은 마지막 곡인 ‘리베라 메’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원래 베르디는 1868년 11월 13일에 세상을 떠난 선배 로시니를 위해서 특별한 ‘레퀴엠’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 레퀴엠은 12명의 작곡가들의 협력 작업으로 완성되어 로시니 서거 1주기에 초연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마지막 단계에서 차질이 생겨 무산되었고, 베르디가 완성해놓은 ‘리베라 메’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책장 속에 잠들어 있던 ‘리베라 메’는 몇 년 뒤에 빛을 보게 되는데, 그 계기는 만초니의 죽음이었다. 만초니는 이탈리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작가로서 이탈리아 근대문학의 기틀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제 하에 신음하던 이탈리아 민중의 애국심과 독립심을 고취시키는 작품 활동으로 모든 이탈리아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만초니가 1873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에 대해 존경을 넘어 경외심마저 품고 있었던 베르디는 큰 충격을 받았고, 로시니를 위해서 써두었던 ‘리베라 메’를 바탕으로 혼자서 만초니를 위한 ‘레퀴엠’을 작곡해서 그의 영전에 바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왼쪽]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 조아키노 로시니.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 작, 1870, 브레라 미술관. [오른쪽] 이탈리아 대문호 알렉산도르 만초니, 프란체스코 하예즈 작, 1841, 브레라 미술관. 이듬해 4월, 작품은 예정대로 완성되었고, 만초니의 서거 1주기인 5월 22일에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초연되었다. 베르디 자신이 지휘봉을 잡았고, 소프라노 테레사 스톨츠, 테너 주제페 카포니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독창을 맡았다. 국내외에서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룬 초연은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고, 그 사흘 후에는 인근의 스칼라 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재공연이 진행되었다.
Verdi's Messa da Requiem from BBC Proms 2011 Marina Poplavskaya, soprano Mariana Pentcheva, mezzo-soprano Joseph Calleja, tenor Ferruccio Furlanetto, bass BBC Symphony Chorus BBC National Chorus of Wales London Philharmonic Choir BBC Symphony Orchestra Semyon Bychkov, conductor BBC Proms 2011
원숙기의 기법이 집약된 대작 <레퀴엠>은 베르디가 남긴 종교음악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연주에 네 명의 독창자, 혼성 4부 합창,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며, 총 연주시간은 통상 80~90분에 달한다. 참고로, 초연 당시에는 무려 110명으로 구성된 관현악단과 120명의 합창단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품은 외형상 가톨릭의 전통적인 라틴어 가사에 의한 ‘진혼 미사곡’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규모가 이례적으로 장대하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극적 성격이 다분해서 성당보다는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전곡의 구성과 각곡의 연주 형태는 아래와 같다. 제1곡. Requiem et Kyrie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 합창, 4중창 제2곡. Sequenza (속송) 1. Dies irae (진노의 날) - 합창 2. Tuba mirum (최후심판의 나팔소리) - 합창, 베이스 3. Liber scriptus (적혀진 책은) - 메조소프라노, 합창 4. Quid sum miser (가엾은 나) - 메조소프라노, 소프라노, 테너 5. Rex tremendae (위엄의 왕이시여) - 합창, 4중창 6. Recordare (자비로우신 예수님)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7. Ingemisco (저는 탄식하나이다) - 테너 8. Confutatis (심판받은 자들) - 베이스, 합창 9. Lacrymosa (눈물의 날) - 4중창, 합창 제3곡. Offertorio (봉헌송) - 4중창 제4곡. Sanctus (거룩하시다) - 합창 제5곡.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합창 제6곡. Lux aeterna (영원한 빛) - 메조소프라노, 베이스, 테너 제7곡. Libera me (저를 구원하소서) - 소프라노 독창, 합창
1873년 5월 25일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지휘로 재공연을 하였다. 좌측으로부터 오르몬도 매니, 주세페 카포니, 마리아 ?트만, 테레사 스톨츠. 이 작품에서 베르디는 바야흐로 원숙기에 이른 작곡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신의 오페라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그는 정력적인 리듬과 벨칸토 풍 선율을 적극적으로 구사했고, 각곡들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도록 배치했다. 무엇보다 세쿠엔차(Sequenza)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유명한 ‘디에스 이레(Dies irae)’의 음악을 전곡의 중간과 마지막에도 반복하도록 했는데, 이것은 마치 전편을 관류하는 사상과 정서의 구심점을 ‘심판의 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설정한 것처럼 보인다. 아울러 강력하고 절묘한 관현악법도 돋보이는데, 특히 ‘투바 미룸(Tuba mirum)’에서는 무대 바깥에 별도의 브라스 밴드를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서라운드 효과를 내도록 했다. 이것 역시 ‘죽음과 심판’이라는 필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암시한다 하겠다. 이 밖에도 베르디는 카논, 푸가 등 오페라에서는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고난도 기법들을 한껏 투입하여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장엄한 ‘레퀴엠’을 빚어냈다.
Abbado conducts Verdi's Messa da Requiem Margareth Price, soprano Jessye Norman, mezzo-soprano Jos? Carreras, tenor Ruggero Raimondi, bass Edinburgh Festival Choir London Symphony Orchestra Claudio Abbado, conductor Edinburgh, 1982
인간의 숙명에 관한 강렬한 드라마 그런데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종교음악이라기보다는 오페라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즉 지나칠 정도로 장대한 규모와 화려한 작풍, 강렬한 어조와 풍부한 노래들로 채워진 특유의 극적 흐름이 ‘레퀴엠’이라는 장르 고유의 차분하고 경건한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TV, 라디오, 영화 등에도 자주 차용되는 ‘디에스 이레’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격렬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런가 하면 테너에 의한 ‘인제미스코(Ingemisco)’ 등 몇몇 독창곡과 중창곡은 오페라 아리아로 전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고, 소프라노 독창이 리드하는 ‘리베라 메(Libera me)’는 실로 비극적 오페라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1911 하지만 이런 면들을 그저 단점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작품만의 고유한 특징이자 매력으로 간주하는 편이 한결 타당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독창-중창-합창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이 작품에 포함된 여러 노래들이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섭리와 마주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절박한 호소를 너무도 생생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면은 더없이 인간적이고,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수성을 자극하고 호소하는 베르디의 오페라들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어쩌면 이 <레퀴엠>이야말로 베르디의 심오한 내면세계가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된 작품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일찍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다. 그 결과 젊은 시절부터 가슴 깊숙이 자리한 ‘인간의 숙명’이라는 명제를 두고 평생 동안 고민했고,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을 자신의 오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풀어냈다. 그리고 바로 죽음이라는 숙명 그 자체에 관한 음악인 <레퀴엠>의 작곡에 즈음해서는, 존경했던 위인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다시금 깊은 비탄과 치열한 고뇌에서 우러난 질문들을 신 앞에 던졌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 인간의 삶에 대한, 나아가 신의 존재와 섭리에 대한 질문들을. 그에게 있어서 그러한 의문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그 어떤 오페라보다도 강렬한 극적 모멘트들로 넘쳐나는 한 편의 드라마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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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3.94.15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25373&leafId=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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