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003년 국내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로 성공을 거둔 뒤 베토벤, 브람스, 슈만, 브루크너 등의 교향곡 전곡 시리즈로 바람을 일으켜온 임헌정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서울시향의 지휘대에 오릅니다. 연주곡은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서곡>과 '리듬의 성화(聖化)'로 일컬어지는 베토벤 <교향곡 7번>. 빈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중인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중기 낭만주의가 피워낸 한 송이 꽃과 같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국내 최초로 플루트로 협연합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 채용으로 화제를 낳았던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활동은 1년간의 실험으로 끝났지만 그의 자신만만한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프로그램]
슈베르트: 로자문데 서곡
Schubert: Rosamunde Overture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플루트 버전)
Mendelssohn: Violin Concerto (Flute ver.)
베토벤: 교향곡 7번
Beethoven: Symphony No. 7
[프로필]
지휘 임헌정 Hun-Joung Lim, conductor
지휘자 임헌정은 국내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희망의 상징이다. 완벽을 향한 열정과 진지함, 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끊임없는 노력으로 음악 하나만을 생각하고 클래식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의 고집은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꾸준히 지속될 예정이다. 그는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부천필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해냄으로써, 우리나라 클래식계에 '말러 신드롬'이라는 커다란 붐을 일으켰다. 또한 그는 부천필이 음악단체로는 처음으로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호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이밖에도 동아일보가 국내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최고의 지휘자'로, 한겨레신문이 기획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개혁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 중에서 뽑은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한국음악협회 '한국음악상',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우경문화예술상', '서울음악대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상)', '대원음악상 특별공헌상'을 수상하며 음악적 성과를 입증했다. 이어 부천을 문화예술도시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강희대 부천시민상'을 수상하였다. 지휘자 임헌정은 서울대 음대 졸업 이후 미국 매네스 음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고 1985년 귀국하였다. 귀국한 해부터 서울대 작곡과 지휘 전공 교수로 28년째 재직하고 있는 동시에 1989년부터 부천필의 상임지휘자로 24년 동안 부천필을 이끌고 있다.
플루트 최나경 Jasmine Choi, flute
최나경은 플루트라는 악기의 고정관념이나, 한국인 관악 연주자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전세계를 무대로 당차게 활동하고 있는 플루티스트이다. 올 시즌에도 큰 활약이 기대되는 최나경은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첫 한국인 관악주자, 미국의 저명한 플루트잡지 'Flute Talk' 커버를 장식한 첫 한국인, 국내에서 공식으로 '팝 리사이틀'을 시도한 첫 클래식 연주자, 그리고 112년 전통의 빈 심포니에 입단한 역사상 첫 한국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시내티 심포니 활동 당시 신시내티 심포니와 솔로이스트로 협연하였고, 빈 심포니 활동 당시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오프닝 콘서트에서 빈 심포니와의 오스트리아 생중계 협연을 통해 현지에서도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최근 빈 심포니를 떠나 솔로이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플루트의 거장 줄리어스 베이커로부터 '커다란 센세이션'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만 16세에 미국 커티스 음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며,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 석사과정 뒤 졸업과 동시에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으로 활동하였다. 그밖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체코 필하모닉 챔버, 줄리어드 심포니, KBS교향악단, 유라시안 필하모닉, 서울, 부천, 부산, 인천, 대전 시립교향악단 등과 협연하였고, 미국과 유럽, 한국에서 수차례 독주회를 가진 바 있다. 미국 아스트랄 재단의 '라이징 스타'시리즈의 일환으로 뉴욕의 카네기 홀과 필라델피아의 킴멜센터에서 연주하였고, 그밖에 런던 위그모어홀, 비엔나의 무지크페라인 골든홀, 콘체르트하우스 모차르트홀과 슈베르트홀을 비롯해 프라하의 드보르작홀, 스메타나홀,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홀, 필라델피아의 아카데미 오브 뮤직, 킴멜센터의 버라이즌홀 등에서 솔로이스트로 연주한 바 있다. 그는 소니클래시컬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을 비롯해 비르투오조 플루트 소품집인 'Fantasy', 그리고 클로드볼링 재즈모음곡 음반에 이어 빈 심포니의 현악 수석멤버들과 함께한 모차르트 플루트 콰르텟 음반이 발매되었으며, 모두 언론과 음악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다.
> 1809년경 전쟁에 의한 불안한 경제적 상황, 건강 악화 등으로 베토벤은 매우 좋지 않은 시기를 보내게 된다. 점차 주변 상황이 나아지면서 1811년, 베토벤은 테플리츠에 휴양을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안정을 취하게 되고, 이전에 이미 스케치해 두었던 교향곡을 완성해 나가게 된다.
안정을 이루고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상황 덕분인지 이 <제7번 교향곡> 은 밝고 쾌활한 낭만성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인 즐거움이 묻어나며 명쾌한 리듬감을 가득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공개 초연 시 대성공을 거두었고, 2악장이 앙코르로 연주가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다.
>> 곡은 강렬한 울림으로 시작한다. 이어 오보와 클라리넷이 등장하며 플룻이 제1 주제를 연주한 후 이어 경쾌한 제2 주제가 나타나면서 강한 움직임의 무곡을 보는 듯한 인상을 전해준다. 이어 영화에도 쓰인 바 있는 2악장이 등장하는데 조용히 비올라와 첼로가 시작을 끌어가며 이후 클라리넷이 등장하여 소박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한다. 3악장 프레스토는 차분한 2악장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활기차다. 스타카토를 이용하여 흥겨운 느낌을 전해주고 있으며 곡 중간에는 관악을 이용하여 부드럽게 이어가는 부분도 찾을 수 있다. 끝으로 4악장은 러시아 민요에서 그 주제를 따온 것으로 알려진 부분의 흥겨움과 격렬함을 느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강한 생명감이 느껴지는 악장이다.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의 교향곡 제7번 A장조 작품 92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악성 베토벤은 고전 음악의 최대의 완성자인 동시에 그 완전한 형식적인 예술에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영웅적인 백절불굴의 투지로서 모든 난관을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철학자이며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는 모짜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였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인으로 갔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792년 22세 때에 그가 비인에 나타났을 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습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814년 이래 그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습니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정했으며 안정된 형식미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1786-1803) 초기의 작품으로서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을 받은 때입니다. 교향곡 제1,2번이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제2기(1804-1816)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독창적인 시기입니다.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의 작품입니다.
제3기(1817-1827) 초인간적인 최고의 예술인데 영감의 창작기입니다. 청각을 거의 잃어버린 이후의 감각을 초월한 시대의 작품을 보였습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9번 등이 있는데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음악사상 최고에 속합니다. 베에토벤이야말로 많은 유산을 우리 인류에게 남겼다고 하겠습니다.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이 교향곡은 1812년 42세 때의 작품인데 그는 불안한 생계와 귓병, 위병 등으로 몹시 괴로웠을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쉴 사이도 없이 계속 명작을 써냈습니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무도의 신화라 했으며 지금까지 세계의 예술이 창조 하지못했던 명쾌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군이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여 유럽을 휩쓸던 때였으며 온 유럽의 모순이 집결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은 그 구성과 수법, 내용, 악기의 편성 등에서 볼 때 그의 교향곡 중에서 제1위에 꼽힌다는 것입니다.
리듬의 요소가 강하다는 점 등은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1813년 봄에 루돌프 디공의 집에서 사적인 발표회가 있었고 그 해 2월 8일에 비인 대학 강당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1 Poco sostenuto vivace
2 Allegretto
3 Presto
4 Allegro con brio
Karl Bohm (1894-1981 Aust.)
고향인 그라츠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1919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편 그보다 2년 전에 그라츠 시립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 21년부터는 뮌헨으로 활동거점을 옮겨 발터의 초청에 의해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모차르트 작품이 레퍼토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34년부터 43년까지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는데, 이때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인 '말 없는 여자'와 '다프네' (뵘에게 헌정)를 초연한 바 있습니다.
53-56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으며, 그 이후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세계 각국의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항상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였습니다.
녹음에서도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연주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일 때 이상으로 뛰어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튜디오보다 라이브에서 잔가를 발휘한 지휘자였습니다.
1악장 Poco sostenuto-Vivace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Staatskapelle Dresden
director:Karl Bohm (1894-1981 Aust.)
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 92 (1812)
글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
<연주시간 : 36분>
베토벤의 작품 중에는 대개 특별한 별명이나 부제가 붙은 곡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피아노 소나타 ‘월광’이나 피아노3중주 ‘대공’, 바이올린소나타 ‘크로이처’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이 교향곡에는 아무런 부제도 붙어있지 않지만 그 역동적인 에너지와 휘몰아치는 리듬의 활력 덕분에 누구나 이 교향곡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매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집요하리만치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리듬의 활력은 이 교향곡의 각 악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곡가 리스트는 이 교향곡을 가리켜 ‘리듬의 신격화’라 표현했고, 영국의 작가 조지 그로브는 ‘거칠고 야성적인 본성’이라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교향곡이 ‘노다메 칸타빌레’나 ‘킹스 스피치’ 등 여러 영화에 등장하는 것도 이 곡이 전해주는 강렬한 인상과 즉각적인 호소력 때문일 것이다.
1813년 12월 8일,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이 초연될 당시에도 사람들은 이 곡의 매력에 즉각 빠져들었다. 당시 청중은 특히 장송행진곡 풍의 2악장에 열광해 베토벤이 지휘한 오케스트라는 앙코르로 2악장을 다시 연주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교향곡 7번의 전 악장 가운데 특히 2악장이 인기가 있는 걸 보면 베토벤 당시나 오늘날이나 음악을 듣는 귀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초연 당시의 관객들이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보다 함께 연주된 ‘웰링턴의 승리’에 더 열광했다는 사실은 조금 놀랍다.
흔히 ‘전쟁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하는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는 메트로놈의 발명가 멜첼이 고안한 ‘판하르모니콘’이란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으로 종결부의 클라이맥스가 대단하다. 아마 당시 청중이 이 작품에 더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낸 것도 이 곡의 종결부에 나타난 어마어마한 음향효과 덕분이었던 것 같다. ‘웰링턴의 승리’보다 교향곡 제7번이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했던 베토벤은 청중의 이런 반응에 실망했을 뿐 아니라 빈 신문에서 교향곡 제7번을 가리켜 “‘웰링턴의 승리’의 들러리 작품”이라고 칭한 것에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이 ‘웰링턴의 승리’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성공적인 무대였던 교향곡 7번의 초연 당시 베토벤은 청력이 매우 악화된 상태였음에도 직접 지휘봉을 잡고 연주를 이끌었고, 그의 격정적인 지휘는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연주 당시 부악장을 맡은 작곡가 슈포어는 베토벤의 지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온몸으로 지휘했다. 악센트가 나올 때 그는 팔을 잡아채듯 흔들었으며 여린 부분에선 그는 몸은 낮게 구부렸고 그가 원하는 여린 소리가 나올 때까지 더 낮게 구부렷다. 크레셴도에서 그는 점점 일어났고 포르테에 도달했을 때 그는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랐다.(중략) 하지만 이 불쌍한 사람은 여리게 연주되는 부분에서 음악을 거의 들을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 1악장의 서주는 그때까지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길고 거대한 음악이다. 베토벤의 서주가 시작되는 지점에 ‘포코 소스테누토(Poco sostenuto)’, 즉 약간 음을 충분하게 길게 끌어서 연주하도록 지시한 후 무려 62마디에 걸쳐 신비로운 화음과 계속되는 음계, 목관악기에 의해 반복되는 모티브들을 엮어낸다. 서주의 후반부로 가면 목관악기와 현악기가 E음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며 주의를 끌고, 어느새 템포가 매우 빠른 비바체로 바뀌면 플루트와 오보에가 마치 춤곡과도 같은 리듬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면서 본격적으로 춤곡 풍의 음악을 전개해간다. 바로크 춤곡 ‘지그(Gigue)’를 연상시키는 6/8박자의 주제는 처음엔 소박하고 경쾌하게 시작하는 듯하지만 점차 여러 악기가 가세하며 힘을 더하고 팀파니까지 등장해 광포함을 더한다.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라는 다소 애매한 템포지시어가 설정된 2악장은 그 성격을 볼 때 일종의 장송곡 풍이다. 처음에 목관악기의 불안정한 화음에 이어 저음 현악기들이 장례행진을 연상시키는 리듬 주제를 연주할 때까지만 해도 선율이라고 할 만한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단지 일정한 리듬이 우리 귀에 각인될 뿐이다. 그런데 제2바이올린이 저음현이 연주하던 주제를 받아 연주하기 시작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제2바이올린이 단조로운 리듬으로 주제를 연주하는 사이 저음현악기들이 놀랄 만큼 아름다운 선율을 꺼내놓는다. 점차 더 많은 악기가 연주에 참여하면 할수록 분위기가 더욱 고양되면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한껏 고조시킨다. 2악장 중간 부분에선 클라리넷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잠시의 위안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이 장면에서도 귀를 기울여 잘 들어보면 저음 현악기들은 계속해서 장송 음악의 리듬을 반복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3악장은 베토벤 음악의 역동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한 스케르초라 할 수 있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만으로 흥분을 일으키며 그 과격한 리듬은 21세기 청중에게도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준다. 때때로 강한 악센트와 제2호른의 갑작스런 돌출 등 예상치 못한 반전에서 베토벤 특유의 블랙유머도 느낄 수 있다.
4악장 역시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와 강렬한 리듬으로 충격을 주지만 마치 완벽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의 합주에서는 어느 정도 규칙성마저 느껴진다. 약박을 강조하는 규칙적인 악센트와 반음 모티브를 통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저음현의 독특한 용법은 다른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흥을 전해준다. 마치 거칠고 사나운 소용돌이와 같은 4악장은 베토벤의 가장 자극적인 교향곡을 마무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압도적인 결론부이다.
1995년 New York Philharmonic 의 Kurt Masur과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
장영주(당시 15세)의
Sarah Chang: Mendelssohn Violin Concerto Mvt.1 Part1
Sarah Chang: Mendelssohn Violin Concerto Mvt.1 Part2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플루트 버전, 최나경 편곡) (1844)
글 :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
<연주시간 : 26분>
바이올린이란 악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명곡을 꼽는다면 역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일 것이다.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호소하듯 연주되는 제1주제는 바이올린 특유의 가냘프면서도 감각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그 뿐인가. 마치 오페라의 프리마돈나의 노래처럼 서정적인 2악장의 주제는 19세기의 모든 음악작품 가운데서도 최고의 멜로디로 꼽을만하며 톡톡 튀는 3악장의 주제에선 재기발랄함이 묻어난다. 전 3악장이 하나로 연결된 통일감 있는 구조와 선율의 아름다움 역시 이 협주곡의 돋보이는 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멘델스존이 결코 직업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었음에도 이토록 바이올린에 적합한 협주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멘델스존에게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트(1810~1873)의 충실
한 조언이 없었다면 멘델스존이 이토록 뛰어난 바이올린협주곡을 완성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다비트는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활동하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자 멘델스존의 절친한 친구로, 멘델스존이 바이올린협주곡을 작곡할 당시 연주법에 관해 많은 조언을 했다. 특히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었던 다비트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멘델스존이 이미 1838년경부터 이 협주곡을 구상했지만 매우 신중한 태도로 작곡에 임해 1844년이 되어서야 이 곡을 완성했던 것도 바이올린의 연주법과 표현력에 대해 그만큼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 멘델스존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준 다비트에게 이 곡을 헌정했고, 1845년 3월 13일에 게반트하우스에서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도 다비트가 협연자로 나섰다.
그런데 이토록 바이올린에 잘 어울리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목관악기 플루트로 연주하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이번 음악회에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 플루티스트를 비롯한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거의 대부분 레퍼토리 부족에 시달린다. 잘 알려진 플루트협주곡을 떠올려 보아도 10곡을 채우기가 힘들다. 그러다보니 플루티스트들은 독주회나 협연 무대에서 종종 바이올린협주곡이나 바이올린소나타를 플루트버전으로 편곡해 연주하기도 하는데, 때때로 이렇게 악기편성이 바뀐 편곡 연주를 들을 때면 원곡의 느낌과 많이 달라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악기 편성을 바꾼 편곡 연주로 그 작품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대개 플루트 연주로 편곡된 바이올린 곡을 들으면 바이올린 소리의 날카로움이 완화되는 대신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풍성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어 색다른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이번 공연에서 바이올린과 잘 어울리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플루트 연주로 감상한다면 바이올린 연주로 익숙한 이 작품이 더욱 새롭고 참신하게 다가올 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출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직접 편곡을 맡아 주목된다.
Rosamunde Overture
슈베르트 / 로자문데 서곡
Franz Peter Schubert 1797∼1
밝고 로맨틱한 서곡은 겹세도막 형식으로 서주는 안단테, 3/4박자로, 주부는 알레그로 비바체, 2/2 박자로 연주된다. 서곡은 당시 시간에 쫓기던 슈베르트가 23세 때 썼던 '마법의 하프'라는 음악 극의 서곡 부분을 인용하였다고 한다. 제1간주곡은 알레그로 몰토 모데라토 알라 브레베, 2/2 박자의 구성이고, 제 2간주곡은 안단티노 2/4박자로써 이들은 관현악곡 중에서도 주옥편으로 일컬어 질만큼 매혹적인 우아함과 간드러진 목관 악기의 연주가 아름다운 부분이다.
극음악 '로자문데' 서곡 그가 26세인 1823년에 여류 작가 셰지의 희곡 '시페른의 여왕 로자문데'에 붙인 로맨틱한 음악이다. 여류 작가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 담긴 희곡을 로맨틱하게 작곡한 이 곡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서정성에 있어서는 최고라는 평을 듣는다. 서정적인 음악의 대가 슈베르트의 작품 속에서도 최고라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이 곡은 빈에서 초연 됐을 때 큰 호평을 받았고, 슈베르트는 무대에 안내되어 갈채를 받기도 했는데 이는 생전에 그가 영광스런 자리에 서 본 몇 안되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후 그는 이 곡을 선반 깊숙이 숨겨 둔 채 세상에 내놓으려 하지 않았는데, 슈베르트가 죽은지 40년쯤 지난 후 슈만이 이 곡을 발견했고, 1867년 그로보아 설리반에 의해 세상에 발표되었다. 슈베르트가 발표한 '로자문데'의 음악은 제1, 제2막의 간주곡, 제3막의 무용곡, 제2, 제3막 사이의 간주곡, 제2막의 로만체, 제2막의 요정의 합창, 제3, 제4막 사이의 간주곡, 제4막 속의 양치기 아리아, 양치기들의 합창, 무용곡 등 10곡이며, 이 중에서 주로 다섯 곡이 뽑혀 연주되곤 한다. 그리고 전체 음악 중 서곡, 간주곡, 합창곡 및 무용곡이 가장 유명하여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연주회에서는 서곡과 그 이하의 곡이 따로따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 데 서곡을 제외한 부분만을 '로자문데' 음악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로자문데 [Rosamunde] 작품 26 작품번호 26. H.von 셰지의 극 《키프로스의 여왕 로자문데》를 위하여 작곡한 것으로 1823년에 완성, 빈에서 초연되었다. 서곡과 이에 이어지는 8곡, 즉 로맨스 <보름달은 빛나고> <사냥꾼의 합창> <망령의 합창> <양치기의 합창> <간주곡 B단조> <간주곡 B♭장조> <발레음악 G장조> <발레음악 D단조>로 이루어졌는데, 서곡과 그 이하의 곡들과는 각각 따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적으로 서곡을 제외한 부분을 로자문데라고 한다. 현재는 9곡 가운데 2개의 간주곡과 2개의 발레음악이 많이 연주된다. |
‘로자문데’ 서곡(1823)
글 :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
<연주시간 : 10분>
슈베르트는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 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가 완성한 가곡만도 600곡이 넘으니 평소에 작곡을 하느라 얼마나 바빴을지 짐작할 수 있다.
1823년, 슈베르트가 셰치(Helmina von Chézy, 1783~1856)의 희곡 ‘로자문데, 키프로스의 여왕 (Rosamunde, Fürstin von Zypern)’의 연극 부수음악을 작곡할 당시에도 그는 작곡할 시간이 매우 부족했다. 결국 ‘로자문데’를 위한 서곡을 완성하지 못한 슈베르트는 1823년 12월 20일에 이루어진 연극 ‘로자문데’의 초연 무대에서 어쩔 수 없이 1년 전에 완성한 오페라 ‘알폰소와 에스트렐라(Alfonso und Estrella, 1822)’ 서곡을 ‘로자문데’ 서곡으로 재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825년, ‘로자문데’의 피아노 연탄 편곡판이 출판될 당시 슈베르트는 다시 마음을 바꾸어 ‘알폰소와 에스트렐라’ 서곡 대신 그의 오페라 ‘마법의 하프(Die Zauberharfe, 1820)’ 서곡을 ‘로자문데’ 서곡으로 출판했고, 오늘날 ‘로자문데’서곡이라고 하면 바로 이 ‘마법의 하프’ 서곡을 가리킨다.
슈베르트가 ‘로자문데’의 악보를 출판할 당시 ‘마법의 하프’ 서곡을 선택한 걸 보면 그는 이 서곡이 연극 ‘로자문데’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서곡의 서정적인 선율과 경쾌한 성격은 연극 ‘로자문데’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본래는 공주로 태어났으나 가난한 어부의 과부에게 맡겨진 공주 로자문데는 크레타의 왕자 알폰소와 사랑하게 되지만 연금술사인 폴겐티우스의 방해를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로자문데는 폴겐티우스의 계략을 피해 알폰소 왕자와 결혼에 성공하고 공주의 신분도 되찾게 된다. ‘로자문데’ 서곡의 주부를 장식하고 있는 발랄한 주제와 명랑하고 산뜻한 종결부를 들어보면 연극 ‘로자문데’의 행복한 결말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자문데’ 서곡의 매력은 그 뿐만이 아니다. 사실 이 서곡의 진정한 음악적 매력은 경쾌한 주제가 나오기 전에 먼저 연주되는 느린 서주라 하겠다. 마치 운명적인 질문처럼 강렬하게 다가오는 첫 세 개의 코드에 이어 그에 답하는 네 개의 코드가 연주되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구슬픈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단조와 장조를 오가며 슬픈 듯 기쁘고 기쁜 듯 슬픈 성격을 보여주는 그 선율은 묘한 이중성을 뿜어내며 우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섬세한 화성 변화로 인한 색채감과 서정적이고 경쾌한 선율에 이르기까지 이 서곡은 작곡가 슈베르트의 음악적 개성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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