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2013교향악축제/코리안심포니/최희준 지휘,임효선 협연/4.16.화/예술의전당

나베가 2013. 4. 16. 00:30

 

 


전곡 연속 듣기
Artur Rubinstein, Piano
Fritz Reiner, Conductor
Chicago Symphoy Orchestra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배경 & 해설

 

1934년 7월 3일에 착수되어 8월 24일에 완성되었고, 같은 해 11월 7일, 미국 발티모어에서 작곡자 자신이 피아노 독주를 하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가운데 초연 되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비록 변주곡이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그 틀에 얽메이지않고 자유롭게 작곡자의 감성과 악기의 기교적 측면을 적절하게 조화시켜서 결과적으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매우 환상적인 것으로 이끌어 갔다는데 있다.

 

주제는 일반적인 관례를 깨트리고 제1변주 뒤에 선을 보이고 있는 것도 특이한 아이디어로 간주되고 있는데, 24개의 변주 가운데서도 유독 제18변주는 그 짙은 로맨티시즘 때문에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노 곡으로, 그의 걸작이라 인정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이 분야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 것은 작곡가인 동시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곡은 1934년, 7월 3일부터 8월 24일까지의 짧은 시일에, 스위스에서 완성되었다. 이 곡은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되어 있다. 주제로서 채택된 것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던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치오 작품 1'의 마지막 곡 a minor의 곡으로, 그것을 스물 네 번 변주하고, 짧은 서주와 코다가 붙어 있다. 곡은 단순한 변주곡의 범위를 벗어난 복잡하고 기교적인 것으로, 피아노의 화려한 솜씨와 교묘한 관현악법을 구사한 상당히 정성들인 작품이다. 변주적 처리에 너무나도 민감한 파가니니의 주제는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작곡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인지 이 곡의 주제에 사용된 파가니니의 곡은 이외에도 리스트와 브람스에 의해서 다루어진 것도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서주 (Allegro vivace)는 주제를 암시하듯이 강하게 연주된 후, 일반적인 변주곡의 틀을 깨뜨리고 주제 제시에 앞서 먼저 제 1변주가 나타난다.

제 1변주 (Precedente)는 오로지 관현악으로서 연주되는 단순한 리듬만이 연속된다. 주제는 여기에 이어서 이 곡의 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제 2변주 (L'istesso tempo)는 처음에 혼과 트롬본의 반주로 피아노가 주제를 연주하고, 이윽고 현도 이에 곁들어 그대로 제 3변주로 옮겨진다.

제 3변주 (L'istesso tempo)는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서로 엇바꿔, 16분 음표 음형으로 주제의 단편을 연주하고, 피아노는 거기에 표정을 갖고 대위법적인 선율을 연주한다.

제 4변주 (Piu vivo)는 피아노가 뚜렷하게 주제를 연주한다. 목관과 현이 주제의 단편을 연주한다.

제 5변주 (Tempo precedente)는 피아노가 힘차고, 보다 자유분방하게 주제를 변주한다. 그리고 현과 목관이 스타카토로 이것을 반주한다.

제 6변주 (L'istesso tempo)는 피아노가 눈부신 기교로 주제를 변주하고, 마지막에 잉글리시 호른이 주제의 단편을 두 번 유연하게 연주한다.

제 7변주 (Meno mosso, a tempo moderato)는 피아노가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의 선율을 장중하게 연주하고, 파곳,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주제가 연주된다. '디에스 이레'는 파가니니 주제와 더불어 이 곡에 몇 번 등장하는 주제로써, 중세의 종교 음악에서 취한 것이다.

제 8변주 (Tempo I)는 피아노가 스타카토로 기세등등하게 주제를 변주하지만 그 수법은 리스트 풍이며, 관현악에도 주제가 나타난다.

제 9변주 (L'istesso tempo)도 같은 리스트 풍이며, 관현악은 시종일관 셋잇단음표로 반주하고, 그것을 반주로 피아노가 기교적으로 주제를 변주한다.

제10변주 (Poco marcato)에는 또다시 피아노에 '디에스 이레'의 선율이 나타나 관현악에 주제의 단편이 연주된다. 그리고 파트를 바꾸어서 피아노가 눈부신 기교로 주제를 전개한다.

제11변주 (Moderato)는 여린 현악기의 트레몰로에서 시작되며, 피아노는 주제의 단편을 리스트 풍의 카덴차로 연주한다. 또한 주제는 목관악기에 나타나, 마지막에는 피아노에도 나타난다. 여기의 하프의 글리산도는 효과적이다.

제12변주 (Tempo di Minuetto)는 일단 차분함을 되찾고 율동적인 움직임이 넘치고 있다. 주제는 주로 목관에 나타난다.

제13변주 (Allegro)에서는 또 다시 활기를 띤 주제가 오로지 관현악에만 나타나고, 피아노는 강한 연주로 화음을 계속 연주한다.

제14변주 (L'istesso tempo)는 관현악만의 포르테로 변주를 시작하여, 피아노가 부가되어 강한 리듬으로 연주되는 행진곡 풍의 변주이다.

제15변주 (Piu vivo, Scherzando)는 피아노의 독주로 발랄하게 변주가 시작되어, 현악과 목관이 부가되어진다. 극히 자유로운 변주이다. 피아노의 패시지 가운데에서 주제가 변주되고 있다.

제16변주 (Allegretto)는 오보에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고 피아노가 이것과 화합하여 주제의 단편을 연주한다.

제17변주는 극히 소극적인 관현악을 배경으로, 거의 피아노가 혼자 자유로운 변주를 계속하는 조용한 변주이다.

제18변주 (Andante Cantabile)도 계속하여 피아노만이 극히 풍부한 표정으로 새로운 가락을 노래하며, 이윽고 현과 목관이 거기에 곁들어, 현악이 선율을 이어받아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은 현악을 반주한다.

제19변주 (L'istesso tempo)는 현악의 피치카토에 실려서 피아노가 시종일관 셋 잇단 음표를 달리듯이 연주한다.

제20변주(Un poco piu vivo)는 바이올린의 섬세한 음형 위에 피아노가 나는 듯이 가볍게 주제를 변주한다.

제21변주 (Un poco piu vivo)는 피아노가 셋잇단음표를 스타카토로 눈부시게 연주한다. 극한 기교가 요구되는 변주곡이다.

제22변주 (Un poco piu vivo, alla breme)는 전체의 변주곡 중 가장 길고, 또한 기교적인 변주곡이다. 행진곡풍으로 시작하여 현악에 주제의 단편이 나타나 피아노가 화음을 연주면서 절정에 이르면, 피아노는 셋잇단음표의 음형으로 바뀌어 또 다시 현악에 주제의 단편이 나타난다. 그리고 피아노가 이것을 장식하게 되는데 마지막은 강한 포르티시모로 피아노가 카덴차를 연주한다.

제23변주(L'istesso tempo)는 처음에 피아노의 독주로 뚜렷하게 주제의 단편이 연주되고 관현악에 이어진 후, 다시 피아노로 되돌아간다. 여기에서도 마지막에 카덴차가 연주된다.

제24변주 (A tempo, un poco meno mosso)는 피아노가 셋잇단음표를 스타카토로 연주하고, 목관에 주제가 나타나는데, 뒤에 이것을 피아노가 이어받는다. 코다는 점점 세게 연주되어 정점에서 관현악이 '디에스 이레'를 포르티시모로 연주하고 피아노가 주제의 단편을 연주하여 장대하게 전곡을 맺는다.

 

루빈스타인 [Rubinstein, Artur, 1887.1.28~1982.12.20]

 

1887. 1. 28 러시아 제국령 우지(지금의 폴란드 로지)에서 출생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연주해석으로 인정받은 국제적인 피아니스트. 일찍이 3세 때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8세 때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이듬해에는 베를린에서 하인리히 바르트의 제자가 되었다. 6세에 처음 연주회를 열었으며, 13세때 베를린에서 요아힘이 지휘하는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데뷔하였다.

 

1906년 카네기 홀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함으로써 미국에서 데뷔했지만 청중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8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런던에서 군 통역사로 복무했고 바이올린 연주자 유진 이자이와 협연하기도 했다. 1916년 스페인을 방문해서 파야와 엔리크 그라나도스의 작품을 소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1919년에 가진 2번째 미국 연주에서는 활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1920년대에는 국제적 명사로서 명성을 굳혔으나 1928년 훗날 아내가 된 아니엘라 믈리나르스키를 만난 이후 자신의 예술성을 진지하게 연구·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롭게 음악에 헌신하여 매일 6~9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이전에 습득한 화려한 기교에 새로운 훈련을 쌓았다. 그는 1937년 다시 한 번 미국 카네기 홀에서 천재적인 연주로 갈채를 받았다.

 

그후 베토벤·모차르트·알베니스·라벨·스트라빈스키·쇼팽 등의 작품을 두루 섭렵한 방대한 레퍼토리로 명성을 떨쳤고, 특히 쇼팽 해석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46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재치있고 외향적이던 그는 달변으로도 유명했지만 일단 무대에 서면 연주에 몰두하는 진지한 연주자였다.

 

자신있게 연주한 쇼팽곡뿐만 아니라 모든 곡에서 당시 유행한 안이한 템포 루바토에 따르지 않고, 균형 잡힌 구조 속에서 어택이나 음색에 의하여 선율(旋律)을 조성하였는데, 그의 연주방법은 지금도 인정받고 있다.  풍부한 음량과 변화가 많은 음색을 갖춘 20세기의 대표적 피아니스트로서, 쇼팽, 드뷔시 ·라벨 ·프랑크 ·로보스 등의 작품에 뛰어난 해석을 보였다.

 

200장이 넘는 음반을 취입하였고 1976년 미국 자유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2권으로 된 자서전인 〈나의 젊은 시절 My Young Years〉(1973)과 〈오랜 나날들 My Many Years〉(1980)을 남겼다.

 

Pletnev, Piano

 

Part 1

 

Part 2

 

Part 3

 

드보르작 교향곡 8번 듣기/

http://blog.daum.net/solista/2595

 

체코의 민족적, 정서적 배경이 적극 드러난 교향곡

아홉 곡의 교향곡을 작곡한 드보르자크에게 있어서 특히 교향곡 8번이야말로 작곡가 자신의 민족적, 정서적 배경이 전면으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영국 방문을 마치고 체코로 돌아온 그는, 프라하 서남쪽 고원지대에 위치한 비소카라는 작은 산간마을에 별장을 지었다. 여름이면 여기에 머물렀던 드보르자크는 이 고장의 자연에서 비롯한 보헤미안적인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곤 했는데, 바로 여기서 작곡한 교향곡 8번에는 비소카 마을에서 경험한 작곡가의 심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렇듯 보헤미안적인 풍경과 선율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창작해냈기에 드보르자크에게 있어서 주저함이란 없었다. 1889년 여름 독일과 러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작품 구상에 들어간 드보르자크는 불과 3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8일에 이 교향곡을 마무리 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교향곡은 친구들이나 브람스의 조언을 거의 받지 않고 작곡한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체코인으로서 자신의 유전자가 반응하여 울려낸 악상을 고스란히 오선지 위로 옮겨낸 셈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0년 2월 프라하에서 작곡가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아마도 특유의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때문에 1890년 4월 런던에서 초연을 가진 뒤, 런던 타임스는 이 교향곡을 ‘전원 교향곡’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 드보르자크는 작곡가로서 가장 원숙한 작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한 만큼 드보르자크는 지금까지 내려왔던 교향곡 전통과는 조금 다른 파격적인 모습을 이 교향곡에 담아내고자 했다. 첫 악장에서 전개부와 재현부를 연결해 주는 형식이나 단조로 시작하는 슈베르트풍의 서주 등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특히 2악장에서의 브루크너를 연상시키는 특징적인 휴지부와 바이올린 파트의 리드미컬한 상승, 이와 대조적인 장송 행진곡을 연상케 하는 장중한 발전부와 금관이 주도하는 스케일 큰 클라이맥스의 긴장감 등은 드보르자크가 바그너적인 극적 전개와 브루크너적인 발전 양식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드보르자크가 작곡한 아홉 개의 교향곡들은 한동안 그 ‘번호’가 혼동되어 사용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드보르자크 생전에는 다섯 개의 교향곡만이 출판되었기 때문에 현재 ‘교향곡 9번’이라 불리는 <신세계로부터>는 상당히 오랜 동안 ‘5번 교향곡’으로 불렸고, 그 순서에 따라 ‘교향곡 8번’은 ‘4번 교향곡’으로 호칭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앞선 네 개의 교향곡들이 모두 출판, 연주되고 있어 구 번호체계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소나타 형식으로서 첼로와 호른에 의해 유도되는 비장한 첫 번째 주제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어 목관악기에 의해 비소카 마을 풍경을 연상케 하는 전원적인 선율이 흘러나오며 축제 분위기의 주제가 펼쳐진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주제 역시 행복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1악장: Allegro con brio

2악장: 아다지오

보헤미아 지방의 자연과 그 다채로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악장. 전원풍의 멜로디가 현악기에 의해 전개되고 이어 목관악기 군이 이를 받아 전개시킨다. 특히 새의 소리와 같은 미묘한 음색이 이 신비로운 자연을 묘사한 음악 사이에서 광채를 더한다. 드보르자크는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에서 우수와 동경을 담아내며 향수감을 자극하곤 하는데, 이 8번 교향곡의 아다지오 또한 전형적인 동시에 발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악장: Adagio

3악장: 알레그로 그라지오소

스케르초 악장으로서, 전통적인 스케르초라기보다는 왈츠 리듬이 물결치듯 넘실거리는 특이한 형태의 트리오라고 말할 수 있다.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첫 주제 선율과 중간에 이어서 등장하는 민요적 선율의 리듬이 교차로 엮어내는 우아하면서도 신선한 기운이 인상적이다.

3악장: Allegretto grazioso - Molto vivace

4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변주곡 형식으로서 힘찬 트럼펫이 먼저 등장하고 18마디 뒤에는 타악기가 짧은 마무리를 짓는다. 곧바로 시작되는 첫 번째 주제는 전형적인 보헤미아적인 주제로서 첼로에 의해 제시되고 이어 전체 오케스트라가 이를 모방한다. 다음 주제가 플루트에 의해 나타나고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반주가 뒤따른다. 이렇게 변주들이 진행된 다음 마지막 피날레에서는 다시 트럼펫이 팡파르를 울린 뒤 모든 것이 빨라지며 극적인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Los Angeles Philharmonic Orchestra Zubin Mehta 1977

Dvorak: Symphony No.8 Mov.I (Mehta) 1/4

 

Dvorak: Symphony No.8 Mov.I (Mehta) 2/4

 

Dvorak: Symphony No.8 Mov.I (Mehta) 3/4

 

 

Dvorak: Symphony No.8 Mov.I (Mehta) 4/4

 

 

스메타나 / `팔려간 신부` 서곡

(Smetana / `The Bartered Bride` Overture)

 

 

 

Smetana, Bedrich (1824-1884 Cz.) Smetana, Bedrich (1824-1884 Cz.)
의 '팔려간 신부' 서곡
'The Bartered Bride' Overture
를 감상하겠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족 음악 작곡가인 스메타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천품을 나타낸 신동으로, 국민적인 음악 양식을 광범위한 예술적 음악 형식에 도입하였다. 6세 때 소년 피아니스트로 대중 앞에서 연주를 했는데 4세 때 벌써 4중 주곡의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맥주 양주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843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 공부를 위해 프라하로 갔습니다. 당시 프라하에는 프로크시 (Josef Proksch)라는 유명 피아니스트가 있었는데 스메타나의 재질을 인정하고 보수 없이 피아노와 작곡 이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때 어떤 백작 집에서 악장으로 일했는데 이 때부터 생활도 안정되어 음악인들과 교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휴가를 이용하여 여러 지방을 여행하여 농민 음악에 접촉하여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보히미아 (현 체코슬로바키아)는 오스트리아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이에 반항하는 혁명이 일어났지만 결국 실패하여 압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스메타나도 이 혁명에 참가하여 애국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여 요 시찰 인물로 지목되기도 하였습니다. 1859년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와의 싸움에서 패하자 비인 정부는 독일 계통이 아닌 소수 민족에 대하여 탄압 정책을 완화하였습니다.
첵코슬로바키아에서는 이에 따라 국민 문화 건설의 기운이 점차 높아져 프라하를 중심으로 민족 예술 부흥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라하에는 국민 극장이 건설되었습니다.
스메타나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프라하로 가서 문인들과 손을 잡고 국민 오페라 창작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보히미아 음악의 창설자로서 스메타나는 음악계를 이끌어 민족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슈만과 리스트의 영향이 크게 반영되어 낭만적인 색채가 강하고 슈만 풍의 풍부한 화성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 다시 비교적 단순한 선율을 더하여 깊이와 실질이 겸비된 스메타나 특유의 음악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교향시에서는 그 구상과 주체의 자유로운 발전을 보아 리스트의 영향을 보이고 있지만 <나의 조국>에서는 그것을 탈피하여 스메타나 특유의 민족적인 경지를 개척하였습니다.
스메타나는 8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이탈리아식과는 달리 자기 나라의 민족적 정서에서 소재를 얻고 있습니다. 그의 오페라 중 <팔려간 신부>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오페렛타입니다. 그의 작품은 오페렛타 <팔려간 신부>를 비롯한 8개의 오페라와 교향시 <나의 조국> 현악 4중 주곡 <나의 생활로부터>, 그 밖에 많은 피아노곡과 성악곡이 있습니다.
만년에는 귓병으로 인하여 귀머거리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정신 착란증이 생겨 정신병원에서 1884년 5월에 생을 마쳤습니다.

'The Bartered Bride' Overture


1859년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 참패를 하며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완화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체코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스메타나는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조국의 소식을 듣고 1861년에 귀국하여 국민적 오페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곡은 이러한 의도에서 작곡된 2번째 작품으로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향토적인 민속무곡을 재치 있게 살리고 야성적인 농민들의 꾸밈새 없는 열광이 즐겁기 만한 작품으로 1863년 완성되었습니다.

Overture(서곡)

 

Overture


서곡은 화려한 악곡의 팡파르로써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데서 유래하는데, 곧 어떤 오페라, 오라토리오, 발레, 연극 혹은 다른 대규모의 작품에 대해 작품의 본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그 내용을 미리 간략히 소개하는 음악을 의미하게 됩니다. 또한 이 용어는 종종 극음악이나 표제음악인 하나의 독립된 합주음악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과 거쉬인의 <쿠바 서곡>같은 작품이 그 예입니다. 첫 번째 공식적인 오페라 서곡은 륄리의 프랑스 오페라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장려한 리듬의 악구로 시작하고 이어서 주선율을 모방하는 빠른 악구가 잇따르는 악곡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식의 서곡은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세 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770년대 후반에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프랑스식 서곡과 이탈리아식 서곡은 모두 다른 형식의 음악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프랑스식 서곡은 특히 독일 작곡가들에 의하여 기악을 위한 모음곡의 첫 악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탈리아식 서곡은 초기의 교향곡에서 빠르게-느리게-빠르게식의 악장 구성에 사용하였습니다.

(서곡이 없는 오페라 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보다도 서곡으로 유명한 오페라 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 ,롯시니의 윌리엄 텔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