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시티에 들어섰다.
오오~~
마을로 진입했을때의 처음 느낌 그대로 건물 지붕들이 회색톤이다.
뾰족하고 반듯한 고딕양식의 건축물이....
부드럽고 낭만적이며 자유분망할것 같음 대신에 고지식할것만 같은 느낌...ㅋㅋ
차에서 내려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으로의 바쁜 종종 걸음을 걸으며 도시 풍광 몇 컷을 담아본다.
역사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중앙역사의 건물이 시선을 잡아맨다.
휴일이라서 건물 자체가 문을 닫아서 에어컨도 돌아가지 않는,,,우리만을 위해 잠시 연 식당에서 땀을 흘리며 점심을 먹고는
마치 미로를 찾아 헤메듯 또 출구를 찾아 나와 본격적으로 룩셈부르크 투어에 나섰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페트류스 계곡의 언덕위에 있는 헌법광장( Place de la Constitution)....
아돌프 다리나 페트류스 강가에 있는 신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깊은 계곡의 울창한 숲과 머얼리 보이는 성의 우아한 자태와 아름다운 아돌프 다리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돌프 다리는 페트루세 계곡의 아르젯트 강에 있는 높이 46m, 길이 153m 의 거대한 석조 아치교로
1903년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치교로 이름 날렸던 다리다.
파세렐 다리와 함께 신,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로서
가을엔 그 어느때 보다도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해 유럽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고 한다.
룩셈부르크.....
유럽에서 세번째로 작은 나라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은 10만달러가 넘는 부유한 나라...룩셈부르크는 삼권분립에 의해 국가 권력이 행사되며,
입헌 군주제와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는데, 입법과 행정의 분립은 여타 국가에 비해 불분명한 편이다.
대공은 국가원수로 수상 및 각료를 임명할 수 있다.
국가 원수는 2000년 10월 즉위한 앙리 대공이며, 융커 총리는 2004년 7월 3기 총리로 취임하여 내각을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좌파를 자처하고 있고, 유럽연합(EU) 북대서양 조약기구와의 협력을 기조로 하여 유럽의 통합을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하나로 삼고 있다.
또한 베네룩스 동맹을 통해 네덜란드,벨기에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유럽 연합의 수도로 EU집행 위원회 서비스(번역,출판,통계) 사무실과 EU 회계감사원, EU사법 재판소, EU투자펀드, EU의회사무국이 모두 이곳에 있다.
(알제트 계곡)
룩셈부르크의 건국은 963년 모젤 계곡 출신의 지크프리트 백작에 의해서였다.
2개의 주요한 로마 도로가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이곳에 지크프리트 백작은 트리어 지역의 성 막 시민 사원과 교환한 보크 바위산에 성을 지었고,
그의 하인과 부하들이 성 주위에 살게 되면서 비외마르셰 광장 에서부터 현대 도시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원주민들은 성 인근에 있는 알제트 계곡에 살았으며, 그들의 주거지는 시간이 지난 후 그룬트와 파펜달이라는 저지대 도심을 이루는 중심 지역이 되었다.
페트류스 계곡과 아돌프 다리
도시는 12세기 말경에 두번째 방어벽이 축성될 정도로 커졌고, 15세기에는 세번째 방어선이 구축되었으며 이 방어선은 그룬트 저지대 도심지역을 에워싸게 되었다. 1443년까지 백작령 및 공작령으로 존속되어 오다가 1443년 부르군디 공작이 점령한 뒤, 1815년까지 지배하였다.
1815년 빈회의에서 공국에서 대공국으로 승격되면서 독립국이 되었으나, 네달란드 국왕이 대공을 겸하게 되고, 프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게 되어 네덜란드와
프러시아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1867년 1월 1일 재독립하였고, 1867년 5월 11일에 성립된 런던조약에 의해 독립과 영세 중립의 지위를 얻었다.
이에 프러시아 군대가 철수하였으며, 1868년 10월 17일 헌법을 제정하였다.
1890년에 네덜란드 왕 윌리엄 3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함에 따라 독자적 왕가를 가지게 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때는 독일에 점령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복 포대 (Casemates du Bock)
그룬트 저지대 위의 샤토 다리를 지난 곳에 복이라고 하는 깍아지른 절벽이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때 3만 5천여 명의 사람들이 폭격을 피했던 곳으로, 지하도와 저잘실들이 연결되어 있다.
18세기경 오스트리아 병사들이 이 절벽을 뚫고 설치한 포대를 복 포대하고 하는데, 일찌기 룩셈부르크의 전쟁사를 말없이 대변하고 있다.
이처럼 중세 봉건제의 산물로서 또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완충국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전략 요충지인 룩셈부르크는 16세기부터 도시 성벽이
해체된 1867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요새 중의 하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부르고뉴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프랑스 및 에스파냐 왕들 그리고 나중에는 프러시아인에 이르기까지 유럽 열강들이 거쳐 가면서
계속해서 발달하였다. 일부가 파괴되기는 했으나 이 요새는 수세기에 걸친 훌륭한 군사 건축물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룩셈부르크의 유일한 세계유산이다.
헌법 광장 중앙에 있는 제 1차 세계대전 전몰자 위령탑 ....(너무 높아서 가까이에선 잡히지 않아 아예 그냥 밑둥만....ㅋㅋ)이 있다.
광장 아래에는 총 길이 24km에 달하는 지하 요새와 페트류스 포대로 나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그룬트와 복 포대를 지나는 미니 트레인 승강장도 이곳에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시티 투어 버스....
역시나 다른 유명 관광 도시의 활기 넘치는 붉은 색의 버스색깔이 아닌 연두색이다.
회색 지붕의 건축물앞의 연두빛 투어 버스.....너무 차분하다. ㅎㅎ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헌법 광장 맞은 편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1613년에 예수회 수사이자 건축가인 장 데 브룩에 의해 세워졌다.
바로크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던 당시 후기 고딕 양식으로 간결하고 위엄있는 성당을 세웠으나, 이후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었다.
높은 세 첨탑이 인상적이며, 국가적 행사나 대공가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행해지며, 현 대공인 잔 대공과 벨기에의 공주인 조세핀 샬로트와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성당 내부는 다음편에 ....)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나 보다.
어느 사이 일행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급한 마음으로 골목을 따라 주변 건축물들을 대충 보며 걸어나오니, 기욤2세 광장이다.
기욤 광장에는 룩셈부르크 대공국 창시자인 기욤 2세의 기마 동상이 있었다.
기욤이라는 말은 윌리엄의 프랑스식 표기인 Guillaume 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광장은 원래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있던 곳인데 프랑스 혁명 시기인
1797년 프랑스 군인들이 점령해 수도원을 해산시켰다.
광장의 설립은 나폴레옹과 관련이 있다. 1804년 나폴레옹의 방문에 맞춰 현재의 광장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1829년 벨기에 건축가 쥐스틴 레몽의 설계로 광장에 새로운 시청사 건설계획이 세워졌고 같은 해 수도원 건물이 해체되었으며
해체된 건물 재료는 시청사 건축에 사용되었다.
1838년 시청사 건설이 완공된 후 우선 시의회가 사용했으며 공식 준공식은 벨기에 혁명으로 인해 지연되다가 1844년 7월 15일에야 빌럼 2세에 의해
치러졌고 광장의 상징인 빌럼 2세를 닮은 기마상이 함께 세워졌다.
광장에 들어서니 일행들이 그곳에 모두 모여있다.
반가움에 함께 모여 단체 사진 한 컷 찍고.....
또 정신없이 주변을 탐닉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이뤄낸 골목길....
그리고 쇼윈도우에 있는 이쁜 물건들이 또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
꽃무늬 패브릭 넘 이쁘다!!
그와 어울리는 꽃무늬 커피잔 set와 접시들....
아웅~~사고싶당~~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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