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앵콜곡 : 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공연후기
오늘도 어제의 벅찬 감동속에 일찌감치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바우하우스에 들어가 아예 잡지책을 수두룩 쌓아놓고 탐독하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시간의 흐름을 놓칠새라 알람을 맞춰놓고...
그런데 바우하우스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으로 가득하다.
아직 공연시간이 되려면 멀었거늘...
내겐 모두들 마리스 얀손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으러 온 사람들로 보였던 게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순간 바우하우스가 터엉 비는거다.
순간 아찔 했다.
오늘 공연시간이 혹시 8시가 아닌가?? 하고.....중증이다.ㅎㅎ
오늘은 어제와 반대쪽 똑같은 자리다.
글쎄...그렇게도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던 제1 바이올린과 베이스가 자리한 쪽이니 좀 더 소리가 부드러울까??
암튼 시작전 부터도 감동에 겨운 자세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6,7번 교향곡을 들을 생각을 하니, 아니 그러겠는가~
드뎌 객석의 불이 꺼지고 위인의 모습을 한 얀손스는 지휘대위에 섰다.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서 있더니, 드뎌 그의 팔이 올라갔다.
유려하기 이를데 없는 전원의 풍광속으로 한없이 끌고 들어간다.
아!! 현....
어제 시종일관 현의 울림에 매료되었던 난 오늘 6번에선 더욱 그 빛의 아름다움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갔다.
얀손스에게 망원경을 고정시켜 놓고, 오로지 그의 온 몸이 표현해내는 소리만을 탐닉했다.
그만 바라보고 있어도...
아니, 일체의 다른것들은 시야에서 배제해놓고,
오로지 그의 얼굴과 두 팔과 다리...만을 바라보고 있을때 훨씬 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의 모든 것과 완전 일치하는....
그의 몸속에 오케스트라 전체가 들어 있는 양 .....
얀손스가 느끼고 추구하는 완벽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정말로 짜릿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이 울려 퍼지는 순간....
아!!
나는 갑자기 감정이 폭발했다.
현.....
드뎌 일을 낸것이다.
어제부터 주체할 수 없이 내 가슴속을 헤짚고 들어오더니만,
오늘 6번 2악장을 연주하는 이 순간...그만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관....
플릇...오보에...클라리넷...파곳...
가슴 저 밑바닥으로 부터 끝없이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주체할 수 없이 가슴에서 부터 솟아 흐르는 눈물...
감동....
환희....
베토벤이 귓병으로 절망에 휩쌓였을 아픔이라던가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 이렇듯 아름다운 대곡을 썼다는 대단함과 감동때문이 아닌....
정말로 음악이외의 그 어떤 감정도 없이 오로지 연주로 이렇듯 눈물이 복받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3악장에 들어서 목관의 앙상블은 그야말로 넋을 완전히 빼앗아 갔다.
오보에의 소리는 매혹적이었고...
플릇, 클라리넷, 파곳과 이뤄내는 앙상블은 찬란했다.
"신이시여, 숲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여기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이곳은 얼마나 장엄합니까!"
아!! 베토벤이 치유중에 들은 나무들과 꽃들이 내는 신의 말....
그것이었어~ 신의 말....
찬란하고 장엄한 신의 말....
얀손스도 그 베토벤이 들은 신의 말을 들은게야~
오보에와 플릇, 클라리넷의 기막힌 연주를 뒤로 하고, 이제 현과 관, 팀파니가 장렬하다.
가슴에 폭풍우가 이는 듯 더욱 거센 감동이 폭발한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 지....
정말 눈물이 가슴 가득 범벅이 된 채로 전원은 끝을 맺었다.
역시 오늘의 최고의 연주자...아니, 세계 최고 오보이스트
89년생 라몬 오르테가.
12살때 발렌보임에게 발탁되어 웨스트이스트디반 오케스트라에 들어갔고, 뮌헨 콩쿨 역사상 40년만의 1등 수상자.
그를 일으켜 세우자 객석이 환호로 들끓었다.
이어서 플루티스트, 클라리네스트.....
목관주자 전체....
혼 주자...그리고 금관 전체....
객석의 환호소리는 예당을 뚫고 나갈듯 했다.
갑자기 얀손스가 합창석 H블럭을 향해 두 손을 치켜 든다.
합창석 H블럭 관객이 열렬히 환호...
이어 F블럭, G블럭....
마지막으로 전체 관객을 향해....합창석에 뒤질세라 객석의 관객들도 열렬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마치 박수 경쟁이라도 하듯....
깜짝 이벤트였다고 할까.....ㅎㅎ
인터미션이 끝나고 이젠 2부 7번이다.
아!!
2악장....
가슴이 또 폭발할듯 하다.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면서 꺼억 꺼억 울게 만들었던 2악장....
현이 찬란하기 이를데 없다.
신음소리를 멈출 수 없을만큼 가슴을 에이면서 파고든다.
3악장은 또 어쩔거나~~
1부에서의 찬란한 연주를 보여주었던 목관 주자들이 모두 바뀌었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목관주자들의 앙상블은 기막히다.
마지막 4악장은 지휘자나 연주자, 관객까지
모두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그저 블랙홀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곡 자체도 그렇지만 이들의 연주는 그야말로 판타스틱했다.
숨이 막히도록 빛나는 음악....
정교함과 섬세함이 녹아들어가 눈물을 솟아오르게 한....
끝까지 흐르러짐 없는 완벽함...
연주가 끝나자 객석은 거의 들끓는 수준이었다.
그럴수 밖에 ....
베토벤이 그렇게 만들었고...
얀손스는 그 결정타를 날렸으니까....
어제의 연주와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기립이다.
아!!
나 역시 기립박수치며 열광....ㅎㅎ
손바닥이 아플정도로 열광을 하며 커튼 콜을 했다.ㅎㅎ
평소엔 7번을 더 좋아했었는데, 오늘은 6번에 완전 양손이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현으로만 앵콜곡을 연주했다.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어쩌면 오늘도 현?? 그럴지도 모를거라고....예견했기 때문이었을까??
어제의 전율만큼은 아니었다는....ㅎㅎ
당연한것을.....
아!!
이들은 이제 일본에 가서 베토벤 전곡 연주회를 연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베토벤 전곡 실황음반 녹음까지....
아!! 단단히 벼르고 연습한게 확실했어.
그 전곡 연주는 아니었어도 가장 좋아하는 액기스 연주만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음반이 나오면 하나 장만할까부다.
오늘도 감동받아 얀손스의 음반을 2개 샀다.
하나는 얀손스와 로얄 콘체르트 허바우와의 쇼스타코비치 음반
또 하나는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부르크너 음반....
다음엔 이들이 연주하는 이 두 곡을 꼭 듣고 싶다.
쇼스타코비치와 부르크너....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거 같다.
베토벤 교향곡 6번 F장조 Op.68 '전원‘
BEETHOVEN_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e’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Conductor : George Richter
“자연은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지.” “숲 속에 있으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다네.” 베토벤이 한 말이다. 이 밖에도 베토벤은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말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세속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자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위안을 얻었다.
베토벤은 1802년 빈 근처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귓병 때문에 요양했다. 당시 자신감을 잃고 절망한 나머지 동생에게 보내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베토벤은 1808년 여름에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자연에서 받은 감명을 작품에 담았다. 그것이 바로 교향곡 6번 ‘전원’이다.
요제피네에 대한 열정은 이 작품을 쓸 무렵에는 식어 있었다. 교향곡 3번을 쓸 무렵의 나폴레옹 같은 인물도 없었고, 쾌적하지 못한 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었다. 사랑의 종말, 어수선한 인생사는 전원으로의 도피로 이어졌던 것일까.
항상 마음의 고뇌와 격렬한 감정, 몸의 병 때문에 고생을 하던 그에게는 자연이야말로 평안함과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천국이었을 것이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베토벤의 일과는 아침이 밝아옴과 동시에 일어나 오후 2시까지 일을 한 후 저녁때까지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가끔은 모두가 잠든 후까지 산책만을 할 때도 있었다고 하며 그는 이때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이시여. 숲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기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이곳은 얼마나 장엄합니까!”
‘전원 교향곡’은 자신을 잃어 절망한 나머지 유서를 쓰기까지 했던 베토벤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욕구를 심어 준 자연에 대한 사랑 고백인 셈이다. 그가 이 곡을 특별히 ‘전원’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창작 당시의 베토벤의 상황과 곡에서 받은 느낌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베토벤 자신은 '전원생활의 회상'이라고만 했고, ‘듣는 사람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베토벤이 38세 때인 1808년 12월 22일 교향곡 5번 ‘운명’과 함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됐고, ‘운명’과 같은 해의 작품이어서인지 이 두 교향곡에서는 어딘가 비슷한 예술적 연관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교향곡 5번이 인간을 표현하고 남성적이며, 지극히 집중적인 곡임에 비해 이 곡은 자연을 표현하고 여성적이며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라는 설명으로 두 곡을 상반되게 보는 평론가도 많다. 하지만 전개부 구성이나 곡 전체의 구성 모두 두 곡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을 비교하여 듣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운 감정이 깨어남’
표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원(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감정을 나타냈다. 베토벤 교향곡 사상 최초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이다. 그만큼 힘을 빼고 느긋하게 연주한다.
첫머리의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민요에서 유래한 듯하지만 슬로베니아나 모라비아에서도 비슷한 민요가 존재했다고 한다. 교향곡 5번 ‘운명’ 첫머리와 마찬가지로 페르마타가 사용됐다. 시종 즐겁고 밝은 분위기이다.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 ‘시냇가의 정경’ 시냇가에서 본 자연의 모습을 묘사했다. 저음 현악기에서 시냇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모습을 암시하는 듯한 미세한 움직임을 묘사한다. 여기서 관악기들이 새의 울음소리를 묘사하는데, 플루트는 나이팅게일, 오보에는 메추리, 클라리넷은 뻐꾸기를 나타내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7번 in C Minor Op. 92 Eugene Ormandy-Philadelphia Orchestra.
베토벤은 교향곡 6번이 작곡된 뒤 3년이 지난 1811년에 교향곡 7번의 작곡에 착수했다. 그 3년동안 베토벤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우선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다. 1809년 4월 9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했고, 5월 12일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침입했다. 베토벤의 후원자들은 빈에서 다른 곳으로 피란갔고, 베토벤은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곡도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뜩이나 귀를 앓고 있었던 베토벤은 연이어 울리는 포성에 귀를 보호하기 위해 지하실에 웅크리고 베개를 머리에 대고 있기도 했다 한다. 1809년 10월 전쟁이 끝나고 11월 프랑스군이 퇴각하지만 베토벤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귀족들은 1810년 1월에 빈으로 복귀했다. 이 시기의 심정을 그린 피아노 소나타 ‘고별’을 작곡하면서 베토벤의 창작력은 서서히 회복되고 심리 상태도 안정을 찾게 됐다. 연금도 다시 지급 받았다. 전쟁 다음으로 겪은 일은 사랑이다. 1809년부터 베토벤은 테레제 말파티(브룬스비크 백작의 딸 테레제와는 다른 여성이었다)라는 여인과 알게 됐다. 베토벤은 테레제와 결혼을 고려하고 있었으며 현악 4중주 10번 ‘하프’에 나타나는 밝은 악상도 그녀와 관련 있다고 한다. 테레제를 위하여 쓴 유명한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와 Op.38의 두 가곡이 1810년 봄 작곡됐고 이 해 여름에 작곡된 현악 4중주 11번 ’세리오소‘는 40세 가까운 남자와 18세 여자의 결혼이 실현 불가능해지면서 내면적이고 심각한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랑도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1811년 여름, 베토벤은 휴양을 위해 경치가 좋은 온천지 테플리츠에 갔다. 그곳에서 베토벤은 아말리아 제바르트라는 가수와 다시 만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베토벤은 마음에 들었는지 이듬해에도 다시 방문하여 제바르트의 신세를 졌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에 테플리츠는 좋은 곳이었다. 즐겁고 밝은 분위기를 점차 되찾은 베토벤은 1806년경부터 해오던 이전의 스케치를 꺼내 작곡을 시작했다. 교향곡 7번도 그 중 하나로 1811~1812년 베토벤은 대부분 밝은 장조곡들만을 쓰고 있다. 이렇게 나온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와 흥겨움으로 넘친다. 경쾌하게 밟는 명쾌한 리듬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흥분시킨다. 바그너는 이 곡을 두고 “성스러운 경지에 이른 춤”이라고 했다. 이 곡을 들어보면 강하고 뚜렷한 의지가 느껴진다. 귓병 때문에 생긴 절망감을 떨치고 교향곡 3번을 쓴 것과 바깥세상에서 느낀 실망감 때문에 교향곡 5번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다. 전쟁과 실연으로부터의 정신적인 극복과 관계가 있다. 따지고 보면 실연은 내면을 파괴하는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초연 때는 ‘전쟁교향곡’이라 불리는 ‘웰링턴의 승리’ Op.91도 함께 연주됐다. 두 곡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2악장이 앙코르로 연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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