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2년)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11.20.화)/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2. 11. 23. 14:37

마리스 얀손스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11.20)

 

 

 

20일 앵콜곡 : 하이든 현악4중주 17번 <세레나데> (관현악 버전)

 

공연후기....

얀손스....얀손스...얀손스....

아무리 되내이어도 부족한....

내게 얀손스는 치명적일 만큼 대단한 ..아니,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나는 지난 2010년 '로열 콘체르트 허바우'와 함께 내한했을때의 얀손스에게 완전 반했었다.

그런 그를 이렇게 빨리 다시 볼 수 있을 줄이야~

비록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로열 콘체르트 허바우'와 함께 하는 공연을 아니지만

그가 오히려 더 일찍 상임지휘자로 맡고 있던 독일의 명문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내한이 아니던가~

프로그램이 양 이틀간 베토벤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약간 아쉽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얀손스...

그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소리가 나올 지...훤한 그 기막힌 지휘자-얀손스를 보고 싶었으니까...

그의 눈동자 만으로도 소리를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하고도 섬세한 소리가

또 얼마나 감동적일 지....눈에 선했으니까....

 

그렇게 티켓창이 열리는 그 순간 예매를 해놓고는 오랜 시간이 흘러 연주날이 된것이다.

혹여라도 늦을까..아예 일찌감치 예술의 전당으로 가서 종일토록 그곳에서 보냈다.

한가람 미술관을 1층부터 3층까지 둘러보고...

디자인관의 고흐 전시도 둘러보고...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정결례식으로 커피를 다시 한 잔 하면서 공연시간에 맞추어 홀로 입장했다.

마치 내가 연주자인 양 긴장감으로 얀손스를 맞았다.

아!! 망원경에 들어온 얀손스는 역시 어릴적 위인전에 나오는 큰바위 얼굴같이 거대해 보였다.

 

첫곡으로  2번 교향곡이 시작되었다.

오케스트라 편성은 2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울려퍼짐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특히 현의 울림이 얼마나 섬세하고 감미로운 지....

순간 순간 퍼스트 바이올린의 아름답고 미려한 소리에 놀라 신음소리가 나올정도....

2악장은 내가 또 얼마나 좋아하는 곡이던가...

감미로움이 극에 달한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2번 교향곡보다 3번 영웅 교향곡에서 나는 완전 빨려들어갔다.

2번 교향곡에서 가졌던  놀라움은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기막히게 연주를 하는 지...

지휘자와 연주자들간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호흡...

그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내는 소리....

망원경에 들어온 얀손스의 표정만으로도 완벽한 소리와 느낌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가 표효하면 소리도 표효를 했고,

그가 슬프면 음악도 슬펐고

그가 환희에 젖으면 소리도 환희에 피어올랐다.

두 팔에서 뿜어져 내는 소리 빛깔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얼굴의 미세한 떨림, 입의 모양새, 심지어 눈 빛까지....

얀손스의 온 에서 세상의 모든 소리가 피어났다.

연주회를 보면서 이렇듯 지휘자와 연주자들간의 완벽한 일치감을 보고 느낀다는건 그 어떤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감동이다.

3관으로 편성이 확대된 영웅교향곡에선 소리가 훨씬 더 풍성해졌고 연주도 더 기막혔다.

현은 매 순간 가슴을 절절하게 했고,

목관... 오보에와 플릇, 클라리넷, 파곳은 그야말로 찬란했다.

그중에서도 오보에.....

아니, 오보에와 오케스트라의 앙상블....

늘상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황홀하게 피어나는 목관이지만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앙상블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아니, 얀손스가 만들어 내는 영웅은 가슴이 복받칠 만큼 감동적이었다.

특히 피아니시모 연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소리를 낼 수 있지?? 매 순간 감탄사가 날 만큼.....

 

어느 순간 나는 남극으로 향하는 비글해협을 달리고 있었다.

망원경에 비친 얀손스 뒷편의 흐릿한 객석이 마치 자욱한 안개와 운무...차가운 세찬 바람으로 휩쌓인 거친 비글해협이 되어있었고...

그 한 가운데 거대한 얀손스가 두 팔을 휘두르며 항해를 지휘하고 있는 듯...

배경음악으로는 당연히 영웅이다.

 

아!!

한기가 뼈속까지 들어오고,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추웠던....

마치 보물섬을 찾아 자욱한 운무속을 헤치고 들어가는 듯 했던 비글해협 투어....

귓가에 아니, 내 온몸을 감싸고 울려퍼졌던 베토벤 전곡 교향곡...

홀로 갑판에 서서 세찬 바람을 뚫고 베토벤 전곡 교향곡을 들었던 벅찬 감동이....

그대로 이 순간 예술의 전당에 재현되고 있었다.

갑자기 감동의 크기가 주체할 수 없이 커져서 목젖까지 아파왔다.

영웅은 더욱 거세게 치달아 올랐다.

 

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 지....

그의 두 팔이 높이 들려져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소리가 홀안을 가득 메웠을때서야 현실을 인지했다.

그야말로 내 생애 최고의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울려 퍼진 앵콜곡....하이든의 세레나데....

세상에~ 이렇게 단순한 곡을 가지고 이렇게 숨을 쉴 수 없게 만들다니...

이걸 보여주려고....

퍼스트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이 기막힌 소리와 연주를 들려주려고....

그렇게 처음부터 내 귀를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었어.

아!! 아주 작정한게야~

한번 기절해 보라고....

 

현으로만 연주한 세레나데는

특히 퍼스트 바이올린의 소리는 입을 헤~ 벌린 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홀안의 모두가 숨을 멈춘 채...아니, 마술에 걸려 얼음땡이 된 채로 ...,

오직 홀안엔 퍼스트 바이올린 소리만이 피어나고 있었다.

 

생애 최고의 바이올린 소리...연주였다고...

연주가 끝나자 사방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정말 그랬다.

아름다운 세레나데가 아닌 전율에 휩쌓인 세레나데...

 

 

 

 

 

 

 

 

  

 

 

 

    

    

 

 

 

 

 

 

베토벤 교향곡 2번 D장조 Op.36
 베토벤이 귀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1798년 무렵부터다. 여기저기서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베토벤은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머물면서 요양했다. 그는 이곳에서 10월 6일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 베토벤이 동생들에게 보내려고 쓴 유서로 일반적인 유서와는 달리 죽기 직전에 쓴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비통한 심정과 분노에 찬 마음을 절절하게 밝히는 글이었다.
이 이전인 1800년 무렵부터 교향곡 2번 1악장의 서주와 주요부를 스케치해놓고 있던 베토벤은 이 곡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완성했거나, 최소한 빈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완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음악가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귓병. 그로 인해 고뇌하던 시기에 작곡된 곡이다. 이로 인한 비극적인 어두움이 1악장의 서주나 2악장의 일부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곡 전체를 봤을 때 따스한 온기가 자리하고 있고 희망적인 성격이 지배적이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혹은 ‘고뇌를 극복한 후의 기쁨’이라는, 베토벤의 트레이드마크를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맥락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곡의 스케치를 시작할 무렵 베토벤은 경제적으로 매우 순조로운 상태였다. 1800년 이후 카를 리히노프스키 후작으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었으며 악보 출판 전망도 좋은 상태였다. 게다가 하일리겐슈타트는 조용하고 마음에 드는 마을로 베토벤이 좋아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한 곳에서 베토벤은 요양하며 귀를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아래 베토벤은 격렬한 곡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교향곡과 나란히, 혹은 전 후에 작곡된 (교향곡 아닌) 작품들은 어둡고 격정적이기보다는 밝은 분위기의 장조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당시 베토벤의 이성관계도 알아둘 만하다. 당시 베토벤 주변의 여인으로는 먼저 브룬스비크 집안의 딸로 동생 요제피네와 함께 1799년 5월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 테레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테레제의 사촌이며 1800년 베토벤의 제자로서 줄리에타 귀차르디가 있었다. 요제피네는 곧 다임 백작과 결혼해 유부녀가 됐기 때문에 이 곡과 연관된 문제의 여인 후보에서는 탈락이다. 줄리에타는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헌정받은 여인이다. 어쨌든 1799년부터 베토벤의 주변에는 화사한 연애의 냄새가 났다. 그러므로 이런 화사한 감정이 이 시기의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이따금 격렬한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32세의 젊은 나이였기에 예술적 열망과 더불어 여인에 대한 관능적인 욕망도 불타올랐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삶에 대한 의욕은 그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불행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열중하는 것'이란 경구를 새기며 베토벤은 작곡에 열성을 다하는 것으로 자신의 불행에 맞섰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양식 면에서 놀랄만한 진보를 성취한다. 연달아 작곡한 교향곡 1번과 2번 사이에도 양식적인 변화가 충분히 나타난다. 외관적으로도 1악장의 서주가 매우 장대해졌다. 3악장에서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더구나 서주는 교향곡 1번보다 훨씬 깊은 내용과 풍부한 감정을 보여주며 소재면에서도 이어지는 주요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 교향곡에서 스케르초는 여기서 처음 사용하지만 다른 장르, 피아노 소나타나 실내악곡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아직 훗날에 볼 수 있는 교향곡에서의 스케르초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지는 않지만 악기 사용법이 가볍고 묘한 변화를 보여주며 셈여림의 급작스러운 변환, 조성 변화, 쉼표의 활용 등 일찍이 스케르초적인 효과를 내는데 성공한다. 
 악기편성은 교향곡 1번과 완전히 같지만 용법에서는 목관악기, 특히 클라리넷의 활약이 눈에 띈다. 낭만적인 도취감이나 따스한 감정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작품은 리히노프스키 후작에게 헌정됐으며, 1803년 4월 5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다.

 

 베토벤 교향곡 2번 in D major (Op. 36)
 

베토벤 교향곡 2번 -1악장
아다지오 몰토 - 알레그로 콘 브리오 

 느린 템포의 장엄한 서주에는 서정적인 윤기가 흐르며 극적인 힘도 존재한다. 주부는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대담하면서 명랑하며 신선한 맛이 풍기는 경쾌한 악장이다. 코다는 악장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구축한다.

 

 

                                                                             
 베토벤 교향곡 2번-2악장
라르게토
절묘한 아름다움을 지난 악장으로 특히 그 선율은 빈의 춤곡과 관련 있다. 제1주제는 대위법적인 풍부한 울림을 수반하며 먼저 현이 풍부한 정서를 지니고 노래한다. 이것이 목관으로 옮겨져 발전하며 경과부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제 2주제를 바이올린이 애정어린 선율로 연주한다. 발전부는 제 1주제를 주로 취급하고 있으며 격렬함을 보여준다. 재현부는 두 개의 주제를 차례로 보여주지만 음색에 대위법적 처리 면에서 제시부와는 약간 다르다. 부드러운 감촉에 낭만적인 서정미가 풍긴다.
 베토벤 교향곡 2번-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기존의 미뉴에트와는 분명 다른, 스케르초의 해학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분방한 청년 베토벤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중간부에 해당하는 트리오는 교향곡 1번의 미뉴에트처럼 기본 조성이 D장조이다. 목관에서 부드럽게 시작하며 잠시 후 현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옮겨간다
 
 
베토벤 교향곡 2번 -4악장
알레그로 몰토 
 
소나타 형식인데, 주제가 두드러지며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론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극도로 예리한 제1주제로 시작하며 잠시 후 첼로에 부드러운 선율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힘을 증대시켜 가면서 그 클라이맥스에서 제시부가 끝나도 곡은 발전부로 들어간다. 이 발전부는 제1주제를 이용하여 유머러스한 효과와 극적이고 강력한 힘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 1주제가 본래의 모습대로 등장하여 재현부로 들어간다. 재현부는 제시부처럼 진행하면서 화려하고 정열적으로 곡이 마무리 된다. 극적인 환희에 차 있으며 유머와 환희, 행복감에 넘쳐 있다.

 

베토벤_교향곡 제3번 Eb장조 Op. 55 ‘영웅’
BEETHOVEN_Symphony No. 3 in Eb Major Op. 55 ‘Eroica’

 
교향곡 3번 ‘영웅’는 교향곡의 선배들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고 그들을 모방하던 시기에 벗어나 독창적인 색채가 짙어지던 시기의 베토벤(1770~1827)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강한 개성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큰 스케일과 양식의 균형이 자리잡고 있는 걸작이 탄생하면서 베토벤 교향곡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베토벤은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한낱 사관 신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를 평정하고 1799년부터 프랑스 국내 질서 회복과 대외 문제의 해결에 나선 나폴레옹을 높이 평가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제군주정치의 폐해를 실감하던 그는 나폴레옹을 공화적이고 민주적인 이념의 화신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베토벤은 프랑스 공사 베르나도트 장군으로부터 나폴레옹에게 신작을 헌정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흠모하던 영웅을 위해 대곡을 작곡하려는 마음으로 베토벤은 1803년부터 이 곡의 작곡에 착수해 1804년 초 완성했다. 베토벤은 이 곡에 원래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 나폴레옹이 제1집정관에 오르자 베토벤은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들을 떠올리며 기대에 부풀었었다고 제자인 페르디난트 리스는 전하고 있다.
그간의 경과를 보면 프랑스 혁명 정부는 붕괴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몰렸지만, 의용군을 만들어 대 프랑스 동맹군을 격파하고 네덜란드, 남부 네덜란드, 라인란트,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정복했다. 프랑스의 역대 왕들이 품어 왔던 영토의 야욕을 순식간에 해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이 새로운 시대의 최고 권력자로 떠올랐다. 여기까지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작곡을 북돋운 상황이다.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804년 나폴레옹은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며 즉위했다. ‘나폴레옹 제정’의 시작은 기치를 올려가던 공화국 자체의 종식을 의미했다.
믿었던 나폴레옹에 배신감을 느낀 베토벤은 불같이 화를 내며 책상에 놓여있던 총보의 표지를 찢었고 표지는 새롭게 ‘신포니아 에로이카’로 붙여졌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은 표지를 찢은 것은 아니며 표지에 글자를 지운 흔적이 있다고 한다. 1806년 출판된 악보에는 ‘신포니아 에로이카’라는 제목과 ‘어느 영웅을 회상하기 위해’라고 적혀 있다.
교향곡 3번의 편성은 호른을 3대 사용하는 것 외에는 교향곡 2번과 같다. 늘어난 호른은 곡에 중량감을 부여하고 있다. 1805년 4월 7일 테아터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됐다.

 

I. Allegro con brio 13:38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 전체적으로 웅혼하고 당당한 느낌을 준다. 확신에 찬 빠른 템포로 대담하고 활기차게 연주된다. 관과 현에 의한 2개의 힘찬 화음이 서주로 나타나고 성격적인 테마가 저음역 현악기로 개시되며 주제를 종횡무진 다채롭게 활용하고 있다. 발전부는 정성스럽게 대위법으로 짜여지고 큰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제시부의 재료를 다시 보여주는 재현부를 지나 충실한 코다에서 당당한 악장을 마무리한다.

II. Marcia funebre. Adagio assai 15:07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Agadio assai)
유명한 ‘장송행진곡’이다. 위대한 용사를 추모하는 듯한 느낌이 흐른다. 현제 주제가 나타나며 장중한 걸음걸이로 나아간다. 중간부는 C장조로 밝아지며, 영웅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듯하다. 체르니는 이 ‘장송행진곡’이 넬슨 제독이나 애버크롬비 장군의 죽음을 추도하면서 쓴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베토벤은 별다른 구체적인 의미 없이 1악장과 대조적으로 이 ‘장송행진곡’을 썼을 수도 있고, 영웅이 출현하게 돼 그 때문에 전사한 많은 사람을 추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단절하고 나아간다는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 코다도 인상적인데,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다가 체념한 것 같이 점차 진정되어 가는, 종교적으로 정화된 듯한 마무리다.

III. Scherzo. Allegro vivace 5:23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Allegro Molto)

베토벤이 교향곡 3악장에서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를 시도했다는 사실은 다 아실 것이다. 1부는 현악기의 빠른 스타카토 리듬으로 시작해 점차 힘을 증대시켜 나아간다. 중간부 트리오 호른의 낭랑한 선율이 매우 아름답다. 이후 다시 1부가 반복된다.

IV. Finale. Allegro molto  11:36


4악장 알레그로 몰토

짧은 경과부와 푸가의 발전부를 가진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인데, 이런 피날레는 전대미문의, 베토벤의 독창적인 면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치카토 선율로 된 제1주제와 오보에, 클라리넷에 의해 제시되는 제2주제는 1799~1801년 작곡된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끝곡과 1801년 ‘12개의 콩트르당스’ 7곡에서 대위법적으로 결합돼 사용되고 있다. 1802년 피아노를 위한 15개의 변주곡과 푸가 Op.35에서도 이 두 개의 주제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훗날 ‘에로이카 변주곡’이라 불렸다.
전체적으로 푸가토와 대위법적인 기교들이 나타나 정점을 향해 전진한다. 중간에 긴장이 한 번 풀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압도적인 승리를 연상시키는 코다로 악장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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