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새도록 비바람이 몰아쳤다.
방안의 천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밤이 깊어질수록 얼마나 더 거세지는 지...
마치 태풍이라도 불고 있는 듯한....
그렇게도 그 빗소리가 낭만적이고 좋더니만
밤새도록 내리니까 갑자기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낼 아침까지 계속되면 어쩌나...
트렁크를 끌고, 배낭을 매고 비바람을 뚫고 터미널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아득해지는 거다.
걱정 반으로 잠을 깼다.
거짓말 처럼 잠잠하고 맑은 아침이다.
오늘은 드디어 마젤란 해협을 건너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로 간다.
장장 16시간이 걸리는 기인 이동이다.
하지만 분명 그 기인 이동시간에 난 또 흥분과 감동을 반복하며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우수아이아에 도착할 것이다.
페루에 도착해서 지금 이 순간....남미의 최남단에 들어서기 까지 환상의 풍광을 보여주지 않을 날이 단 하루도 없었으니까...
민소매를 입고 리마에서의 첫 투어를 시작했건만...
지금 패딩을 입고 있다니....
버스에 몸을 싣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달린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더니, 하늘이 붉은 기운으로 가득해져온다.
일출이다.
넓은 평원에서 오로지 끝없이 가야할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쭉 뻗어있는 길이
멋진 일출에 한 몫을 더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모든것을 놓아둔 채
오로지 음악에 실려
시공을 넘나들며 추억속을 헤메이었는 지...
드디어 마젤란 해협에 도착했다.
갑자기 묘한 감정에 복받침이 온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만 대했던
그래서 너무나 익숙한 마젤란 해협앞에 서 있는 것이다.
저 해협을 건너자고...
그래서 지구 최남단 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가기 위해...
거대한 배는
우리 버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차량을 싣는다.
거대한 무게를 실은 배가 바다를 가르니
그가 일으키는 파도 또한 끝없이 널리 퍼져간다.
갑판에서 보는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이제는....
날씨가 아주 추워졌다.
패딩을 입고 지퍼를 까지끝 올려도 바닷 바람이 얼마나 찬 지....
우수아이아에 도착하면 한 겨울이 우리를 맞이할 것만 같다.
그려~
조금 더 늦으면 파타고니아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했었어.
파타고니아에 4월 중순을 넘겨 도착하면 안된다고~
그 말이 이제 실감이 나는군~
까페에 가서 뜨거운 커피를 한 잔 샀다.
갑판에 서서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마시는 따끈한 커피는
최고의 맛을 느끼게 한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도 좋고...
귓에에 울려퍼지는 음악도 좋고..
우수아이아에 대한 기대감도 충만하고...
그저 다 좋다!!
중간에 버스를 갈아탔다.
순번대로 돌아가는 버스 좌석에서
이번엔 맨 앞자리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좌석이 없다.
앞자리가 넘 비좁아서 문 입구쪽 의자 하나를 떼어버린 것이다.
오 마이 갓!!
맨 앞자리라고 좋아했더니....ㅠㅠ
그나마 좌석에 여유가 있어서 다행..
참으로 난감한 일을 당할 뻔 했다.
나는 좋아하는 맨 뒷자리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이번 버스엔 2층에 화장실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지....
음악속에 또 실려서 시공간을 날아다니며
꿈결같은 시간을 보낸다.
가끔씩은 졸며 꿈나라도 비상하고....
점심 도시락과 간식도 먹어가며
편안한 자세로 두다리 쭈욱 뻗고
온 몸을 뒤로 뉘인 채...
반쯤은 하늘을 보고...
그 반은 영화스크린 처럼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풍광을 보며
온갖 상념에 빠져드는 그 느낌은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것일까....
일출을 보며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이제 저녁 나절의 그 푸르스름한 빛을 띄우며 달린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예사롭지않다.
거대한 호수....
하얀 설산을 이고 그 아래로 펼쳐진 붉은 기운이 저녁의 푸르스름한 빛과 뒤섞여
보랏빛으로 가득하다.
그 느낌...
그 색깜이 신비롭다.
산 정상으로 넘어가는 구불 구불한 길은 또 얼마나 판타스틱한 지...
카메라를 들고 잡아보지만, 어두워서 그 흔들림이 너무 크다.
아!!
우수아이아....
기막힌 풍광이 펼져질것만 같아~
첫 인상이 ...
그 색감이,,,예사롭지 않아~
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가장 먼저 근처에 있는 슈퍼에 가서
장을 보았다.
작은 슈퍼였지만,온갖 종류의 고기와 햄, 치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낙농국가 칠레에 왔으니, 오늘 저녁 메뉴는 스테이크로 하자. 샴페인도 한 병사고...내일 점심으로 샌드위치에 넣을 햄과 치즈도 사고...과일과 우유도 사고...
잔치상이라도 차릴 량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화려한 시장를 봐가지도 들어왔다.
일행들이 먼저 주방을 쓰고 난 뒤 여유롭게 저녁시간을 갖고 싶어 우린 내일 짐을 먼저 꾸리고 천천히 주방으로 내려갔다.
가장 맛있는 부위를 사서 육질이 연해 더욱 맛있었던 소고기 스테이크와 핑크빛이 감도는 샴페인은 맛과 향, 색깔까지 우리에게 황홀한 맛을 선사했다.
방으로 들어오며 시야에 잡힌 밤바다...
이쁘다!
아니, 소박한....
그래서 또 너무나 한적한 느낌을 갖게 하니 더욱
좋다!!
날씨가 예견한 대로 너무 추워서 히터를 틀고 잤더니
그 위에 널은 옷가지들도 뽀송뽀송한 것이 더없이 좋다.
오늘의 일정은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을 하루 종일 트래킹 하는 것이다.
환하게 밝아진 아침....
숙소앞 풍광이 너무 이쁘다.
지척에 하얀 눈을 이고 그 아래로 빨갛게 든 단풍...그리고
이쁜 집들이 어우러져 어디를 바라봐도 한결같이 동화의 나라다.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바다를 끼고 오늘 트래킹은 시작된다.
그렇게 종일 걸어서 최남단 끝에 설것이다.
날씨가 흐리다.
아무래도 비가 종일 추접 추접 내릴것만 같다.
연중 비나 눈이 온다고 하더니만...
역시 우수아이아군!
숲이 너무 조용했다.
아무래도 시즌을 조금 지나서 그런 듯...
그 조용함이...
숲의 속삭임이...
내 발자욱소리까지 다 들리는 것만 같다.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서....
일행들과 좀 멀찍이 떨어져 천천히 걸었다.
두려움보다는
한없이 가벼워졌고...
한없이 편안했고..
너무나 고독했다.
내 안의 저 밑바닥 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귓가로 울려 퍼진다.
완전한 힐링...
무지개가 또 떴다.
비가 그치려나~~??
기대를 해 보지만....
진짜 빗줄기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여준다.
저 만치 앞서 가시던 어르신 내외가
점심을 드시고 계신다.
길다랗게 쭉 쭉 뻗어있는 나무등걸 아래로
입고 계신 빨간 우비가 넘 귀엽다.ㅎㅎ
해안가를 걷다가 숲으로 들어오니,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쓰러져 있는 고목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 위에 자라고 있는 희귀한 식물들....
그 수많은 생명들이 신비롭고 이쁘다.
잠깐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을때
우리도 점심을 먹고 가자고 멈춰섰다.
주변이 모두 젖어있어
우린 선 채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날씨도 춥고...
비도 오고...
보온 도시락의 김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뜨끈한 쌀밥에
뜨끈한 국물이 그리웠지만....ㅠㅠ
아냐~
샌드위치 넘 맛있어~
얼마나 좋은 재료로 맛나게 만들었는뎁~
ㅋㅋ
바다를 좌로 끼고...수시로 나무 등걸사이로 다니며 바닷가로 길이 있어 걷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 지....
멀리 펼져진 설산은 어제 밤에 우수아이아에 들어오면서 나를 매혹시켰던
하얀색과 붉은색의 오묘한 자태... 그 모습으로 나를 현혹시키고...
운무처럼 내리는 비에 촉촉히 젖은 나무들은 잿빛 분위기에서 유독 자신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비쳤다.
그 촉촉함, 그 선명한 빛깔이 얼마나 좋은 지....
그러나 결국 나는 또 일을 냈다.
한 참을 잘 갔는데, 어느 순간 길이 끊겨져 있는 것이었다.
다시 길을 찾아 들어섰지만 방향 감각을 잃고 만것이다.
한 참을 걷고 있는데, 발자욱이 거꾸로 나 있는거다.
그래도 나는 너무나 제 길을 잘 가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거꾸로 트래킹해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문득 바다가 오른쪽에 있다는걸 눈치챘다.
그제서야 지도를 다시 보았다.
혹시 오른쪽에 호수가 있나 싶어서....
아!! 역시...
난 다시 거꾸로 길을 가고 있었던 거였다.
이런 이런.... 난 정말 위험인물이야~
뭐에 빠져들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거든~
다행히 정신차려 다시 되돌아 나서는데 그제사 저 만치서 이풀과 어르신 내외가 나타났다.
한참을 앞서 가던 내가 그곳에 있으니....의아해 하는 이풀...
나...순간 길을 잃었는데, 다시 나와 길을 찾아 걸은것이 계속 거꾸로 걸었어~~ㅠㅠ
아이구~~너...혼자 걷게 하면 안돼겠다~
아!!
이제 숲을 빠져나왔다.
뭔가 엄청난 일을 하고 나온 듯한 기분....ㅎㅎ
우린 까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고 가자고...코스를 로카호수 쪽으로 돌렸다.
Cesaria Evora - Xandinha(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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