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험준하지만 여전히 야생화가 만발한 아름다운 길을 걸어 올랐다.
그 길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서 자꾸 가던 발걸음을 멈추다 보니,
어느 순간 일행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헐~
순간 놀라움에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 아무리 빨리 치고 올랐어도 사방 어디에도 일행들은 보이지 않는 거다.
순간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리가 야생화의 유혹에 빠져서 계속 오르고 있을때
일행들은 저 아랫 길로 갔을것이 분명했다.
우린 그냥 멀리 보이는 빙하를 따라 올랐다.
가다 보면 분명 또 길이 있을 테니까....
언덕 꼭대기까지 차고 오르니 저 만치 아래에 길이 보인다.
그랬다.
빙하로 가는 길은 바로 저 길...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의 뜨레 라 떼뜨 빙하의 조망은 기가 막히게 환상적이었다.
사진 한 컷씩 찍고,
우리는 깍아지를 듯한 내리막을 걸어 빙하 앞으로 갔다.
코앞에 터억 자리하고 있는 빙하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이곳 빙하도 수면위에 떠 있는 남미 파타고니아 지역의 수정같이 투명한 에메랄드 빛 빙하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오랜 세월....수천,수만년을 거쳐 형성된 설산 계곡 사이에 쌓인 빙하....
언뜻 빙하라기 보다는 웅장한 바위산 처럼 보인다.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고...
그 다음엔 하염없이 앉아 그 어마 어마한 알프스 설산의 수백만년이나 된 빙하와 장엄한 바위산의 기운에 빠져드는 거다.
엄청난 에너지가 내안으로 스멀 스멀 들어올 수 있도록
터엉 빈 마음으로...
한 동안 그곳에 있다가 자리를 떴다.
신기하게도 산은 같은 길을 걸어도 오르막일때와 내리막일 때의 풍광이 완전히 다르다.
사실 풍광은 저 아래 끝까지 훤히 시야에 잡히는 내리막일 때가 훨씬 더 멋지다.
힘들지도 않으니 좀 더 여유로운 맘으로 풍광에 젖어들 수도 있고....
오를때 보지 못했던 하얀 목화솜 같이 생긴 야생화의 군락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람결에 한들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는 하얀 꽃이 얼마나 매혹적인 지...
그 어떤 화려한 빛깔보다도 품위가 있고 아름답다.
내려가야 할 길이 끝없어 보인다.
험준한 바윗길을 조심 조심 걸어 내려간다.
내리막 길에서 사고가 나고 무릎이나 발목에도 훨씬 더 무리가 오기때문에 아주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드디어 다시 뜨레 라 떼뜨 산장으로 내려왔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고픈건 ..
한 잔의 맥주....
비에게 맥주타임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단다.
이곳은 이렇듯 햇볕이 쨍쨍 비추다가도 오후 4~5시가 되면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소나기가 오기때문에
그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표정이 너무나 간절해 보였는 지
다시 수정....
우리에게 20분의 시간을 주었다.
그거면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아!!
이곳의 생맥주 맛....
판타스틱한 맛...
지금 이 순간
힘든 산행을 하고 난 뒤의 한 잔의 시원한 맥주는 차라리 맛을 따지기 보다 행복을 가득 채우는 보약에 가깝다.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부터 낭 보랑까지는 1시간 20분....
긴 시간은 아니나 내리막이니 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거대한 바위 중턱에 집이 보인다.
저게 뭘까....우리끼리 점 쳐본다.
결국은 비의 몫.
수력 발전소란다.
빙하가 흘러내리는 엄청난 낙차를 이용한 발전소겠지~
순간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계 곳곳의 모든 빙하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녹아 흘러내리고 있음이 걱정스러워 졌다.
관리인은 1주일씩 저곳에 머무는데, 헬기를 타고 수송한다고....
한 참을 걸어 내려오니,
저 아래로 까마득한 마을이 보인다.
저 마을이 우리가 오늘 묵을 산장이 있는 낭 보랑이 틀림없어 보인다.
눈 앞에 마을이 보여 금방 내려갈것 같아도
내리막은 한없이 길어보인다.
특히 스위치 백으로 모든 길이 만들어져 있어 보기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는 것....
드디어 다 내려온 듯하다.
작은 폭포가 나타났다.
저 위에서 부터 빙하가 녹아서 흘러 내려가는 물이다.
절대 마시면 안된다는.....
<Combe Noire폭포다>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낭보랑 샬레다>
폭포를 지나 나타난 또다른 매혹적인 길,,,
하늘까지 닿을 듯 쭉 쭉 뻗으며 자란 나무숲 앞으로
마치 억새풀 처럼 생긴 자잘한 야생 수풀들이 얼마나 멋진 지...
숲으로 그냥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길이다.
이제 내가 나타났다.
이도 역시 빙하가 녹아 내린 물....
석회가루가 있어서 절대 마시면 안되는 물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손만 잠시 담궈본다.
드디어 우리의 오늘 산장 낭 보랑 샬레에 도착했다.
'이쁘다'
숙소는 한 방에서 다 같이 묵는 6인실 도미토리...
오늘 정숙언니가 빠져서 침대 한 개가 남는다.
각자 침대 한 칸씩 맡아 짐을 풀고, 복도에 한개만이 있는 콘센트를 얼른 차지해 충전기를 꽂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욕실에 순번을 기다려 씻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음에 손 발에 모터를 달고 하듯 재빨리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건물 모든 내부가 조금은 투박한 나무로 되어있다.
그 질감과 느낌이 좋다.
오늘 저녁은 역시 치즈요리...
저녁내내 마치 우리네 시금치 된장국 끓이는 냄새가 나더니만....이 수프요리 였나부다.
구수한게 여간 맛있지 않다.
수프에 치즈를 썰어서 담가 먹는데
이것만 먹어도 맛있고, 빵과 함께 먹어도 아주 맛있다. 치즈가 고급이고 맛있으니 모든 요리가 맛있다.
치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일 매일 다른 종류의 고급치즈를 먹는 식사가 여간 신나지 않다.
저녁식사에 와인이 빠지면 안돼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아름다운 알프스를 걸은 것을 축하하며....
건배~~
매 식사때 마다 와인이라...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이곳에서의 하우스 와인은 정말 너무나 싸다.
맛은 정말 좋다.
ㅋㅋ
감자와 양파...등을 볶아 치즈를 얹어 구운 그라땅과 수제 소시지가 오늘의 메인요리...
정말 맛있다. ㅋㅋ
하긴 난 워낙에 아무거나 잘 먹는 전천후 여행체질이라서리....ㅋㅋ
디저트로 나온 애플파이.....
이것도 당근 맛있지~
푸하하~~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
마침 해영씨도 나와있어 함께 걷기로 했다.
조금 걸어 나오니 폭포가 보인다.
눈 아래로 까마득한 깊이의 폭포에 간담이 다 서늘해 진다.
길을 따라 걸어내려 오다 보니 이런 장관의 물줄기가 여럿 눈에 띤다.
잠깐씩 그 모습에 탄성을 지르며 머무르다가 걷기를....
우린 하염없이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얼마를 걸어내려 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런 저런 삶의 보따리를 풀며 걸었다.
얼마를 걸었는 지도 모른다.
단지 저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는 것...
우린 그 마을까지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마을엔 아담한 성당도 있었다.
제일 먼저 문을 밀어보았으나
굳게 잠겨있었다.
조금은 섭한 마음이 있었지만....이곳까지 발길 닿는대로 왔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한 바퀴 마을을 돌고 발길을 숙소를 향해 돌렸다.
어느새 어둠이 사박 사박 찾아들고 있었다.
그 어둠이 살포시 드리우는 그 느낌이...
그 호젖함이 얼마나 좋은 지....
우리의 입에선 '너무 좋다~'란 말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려갈땐 얘기꽃을 피우느라 얼마나 가파른 산 길을 내려갔는 지 느끼지 못했는데, 오르막을 오르려자니
얼마나 우리가 제법 높은 산에서 바닥까지 내려갔었는 지...헤아려 보니 북한산 봉우리 하나쯤엔 올라갔을 법한 거리였다.
그것도 슬리퍼에 스커트를 입은 채....ㅎㅎ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꽤 짙게 드리웠다.
멀찌감치서 바라보니 벌써 불이 꺼진 창마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의 해가 지는 시간이 밤 9시나 되야 어둑해지는걸 보면 지금 시각이 꽤 지난 시간이라는 것....
우린 서로 크게 웃었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오늘 힘든 산행에 더해서 북한산을 하나 더 넘은 우리의 행동이 대단해서 이기도 하고....
이 곳... 너무나 모든게 완벽하게 아름답고 평화롭고 호젖한 곳에서의 만끽함에 더없는 행복감 이기도 할것이다.
우리 방도 이미 소등...
모두들 깊은 수면에 빠진 상태였다.
살금 살금 침대에 찾아들어가 오늘도 행복한 여정을 잇는다.
어젯밤 늦게 잠들었음데도 불구하고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보나마나 내 파트너 이풀일것이 분명했다.
예측은 정확했다.
빨리 나와보라고 손짓을 하며 흥분하는 모습이 ....
그렇다!!
분명 쏟아지는 별일것이다.
우린 이불을 둘둘 말고 밖으로 나갔다.
산장에서 조금 멀찌감치 가 안락의자에 몸을 완전히 젖히고 반쯤 누우니 그야말로 이곳이 또다른 천국....
칠흙같이 까만 하늘에서 커다란 별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매혹적인 지....
우린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이불로 온몸을 감싼 채 얼음 땡에 휩쌓여 꼼짝 못하는 사람 처럼 누워 있었다.
자연은 이렇듯 매 순간 단 한 순간도 같은 것이 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신비체이면서도 가장 진리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나 자신도 어쩌면 단 한 순간도 같지 않기때문에....
매 순간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각과 느낌, 감촉, 청각...그 모든것이 다르기에 절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집트 사막캠프에서 본 별....
아프리카 마사이마라 사파리 캠프에서 본 별....
타자라 열차에서 본 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간드룽에서 본 별....
볼리비아 해발 5000m에서 본 별....
칠레 바릴로체 야간 투어에서 본 별....
그리고 이곳....알프스 낭 보랑에서 본 별....
아!!! 모두가 탄복할 만한 순간이었는데...그 느낌은 어쩌면 이렇게도 다를까....
매 순간 생애 처음 경험하는 것 처럼....
신비로움 속에 휘말려서 마치 외계 행성을 타고 잠시 우주를 유영하고 온 듯한....
문득 별빛이 약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
아!! 새벽 4시...
그 시간이 지나니 벌써 별빛이 약해지는 구나~
아직 주변은 어둠으로 가득한데도...별빛이 약해졌어.
우린 주섬 주섬 이불을 챙겨들고 다시 방으로 살금 살금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 밤도깨비 같은 행동을 누가 알랴~~ㅎㅎ
평소에도 늘 밤에 잠을 안자 아침잠을 깊이 자는 내가
오늘 아침 늦잠을 잔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잘된 일이다.
피곤이 좀 풀렸기를.....
하긴....이 어마 어마한 에너지를 받고는 무슨 피곤.....ㅋㅋ
오늘은 모든 TMB일정중 가정 빡센 코스 일정이란다.
출발도 여늬때 8시에서 오늘은 7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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