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 이상의 기인 여정의 끝자락에 있는 ....지친자에게는 태산처럼 높아보이는 깔딱 계단...어떤 등산객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계단 초입에 하염없이 서 있던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온다는...ㅋㅋ>
벽소령 대피소에서만도 햇살이 강하게 내리비쳐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고 난리를 쳤건만....
언제 그랬냐싶게 다시 구름이 온 산을 다 휘감아 눈 앞의 근경만이 보인다.
"그려~~
여기가 어디여~ 우리가 그렇게도 꿈꾸던 지리산이 아니여~
그것도 지금 우린 종주를 하고 있잖여~
이렇듯 아련한 구름에 휩쌓여 깊은 산속을 걷고 있자니
왠지 신령한 기운이 흐르는것 같아 더 좋구먼~~ㅋㅋ
분명 내 안엔 지금 형언할 수 없는 무한의 에너지가 들어와 꿈틀대고 있을겨~
밤을 새고 걸어도 조금도 힘들지 안잖여~ㅋㅋ"
해발 1651m 영신봉이다~
사실 영신봉이란 현 지명보다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대피소까지
0.6km 남았다는게 더 눈에 화악 들어온다. ㅋ~
조금만 가면 되겠군~
산길은 1km걷는데 1시간이 걸리니
30분 정도....
좀 빨리 걸으면 20분??
눈 앞에 세석대피소가 보이는 것만 같다.
걸음걸이가 더욱 빨라진다.
비가 계속 온탓에 가는 길목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다.
그래도 오랜 가뭄끝에 내린 비로 초목은 마냥 푸르르고
들꽃들은 앞다투어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모습....그 예쁜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잖아~
한 컷씩 찍어주고 가야지~
ㅎㅎ
아~
세석대피소다~
드디어 다 왔다.
어젯저녁 8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버스에서 조금 졸다 깨다 하고
새벽 3시부터 걷기 시작...종일 걸어서
오후 5시50분...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연하천에서 일행들을 기다리느라 좀 시간을 보냈고, 벽소령 대피소에서도 무거운 배낭때문에 우리보다 많이 늦으신 가브리엘 형제님을 기다리느라 한참을 보냈고,
경치 좋은 곳에서 간식먹고, 음악듣고 맘껏 쉬다 온것을 생각하면 성적이 아주 좋은 편이다. ㅎㅎ
대피소에 들어오니
많은 등산객들이 벌써 도착해서 맛있는 저녁들을 먹고 있었다.
사방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연하천에서 11시에 도시락 달랑 하나 먹고는 종일 걸었으니 삼겹살 굽는 냄새에 갑자기 뱃속이 요동을 친다.
급격한 배고픔....
잠깐 앉아있는 사이 순식간에 땀이 식으며 온 몸에 한기가 돈다.
거위털 쟈켓을 꺼내입고 그 위에 고어쟈켓까지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속옷이 젖어있어서 한기는 전혀 가시지 않고 점점 더 몸에 냉기가 도는것만 같다.
말할 수 없이 춥고...
정신못차리게 배고프고...
ㅠㅠ
로베르토 형제님께 뭐 좀 먹을 것좀 사오라고....ㅋㅋ
형제님도 온 몸에 피곤함과 냉기가 한꺼번에 도니 꼼짝도 못하겠다고...ㅠㅠ
배낭을 뒤져 쵸코바 한개를 꺼내준다.
그걸로 요기가 될 리가 없다.
결국 매점에 가서 쵸코파이 4개와 복숭아 통조림을 사가지고 온다.
허겁지겁 단숨에 2개를 먹어치웠다.
일행들과 연락을 해보니 아직 도착하려면 시간반에서 2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가브리엘 형제님 배낭의 무게가 아킬레스건인것 같다. 그나마도 다 함께 움직이고 있는것 같아 다행이다.
우린 그 사이에 신선산악회 대장을 찾아서 입실표와 담요쿠폰, 그리고 저녁도시락과 아침도시락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빨리 와서 식사를 마친 테이블을 잡아 자리를 사수하고 있었다.
몸에 도는 한기는 점점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옷을 싸악 갈아입어야 할것만 같다.
우린 교대로 자리를 지켜가며 탈의실에 올라가서 옷을 싸악 갈아입고 나왔다. 그제서야 몸에 따듯함이 감돈다.
이젠....
배고픔과 기다림에 따듯함이 감도니 졸음이 쏟아진다.
방에 올라가 잠이나 잤으면.....ㅠㅠ
그러나 우린 자리를 사수하고 있어야 한다.
잠깐 방에 올라가 담요를 받아 자리를 찾아 깔아놓고 다시 내려왔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 나타난 일행들....
감동의 물결이 인다.
"수고 했어요~"
얼마나 고생을 했을 지.... 눈에 선연하다.
몸에 한기가 돌기 전,오자 마자 아직 몸에 열기가 남았을때 얼른 옷을 싸악 갈아입고 나오라고 탈의실로 보냈다.
그 사이 나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늘 배낭무게의 주범이었던 훈제 오리 한 마리도 썰고,
돼지고기와 도시락안에 있는 김치를 모두 꺼내 고추장을 듬뿍 넣고 김치 찌게를 끓였다.
역시 추위에는 뜨끈 뜨끈한 국물이 최고다. 더우기 돼지고기 김치찌게....라면 사리까지 넣어 술 한 잔과 먹으니 추위가 단 숨에 싸악 녹아든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 지, 낼 새벽 천왕봉 산행은 모두 안하겠단다. 헐~~~~
그리고 피곤함을 참을 수 없었는 지 바울라와 요세피나는 저녁을 먹자 마자 아침 도시락도 챙기지 않은 채 그대로 놔두고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
굽던 오리를 기름을 닦아내며 마저 구워서 낼 간식으로 먹으려고 라면 봉지에 쌓아두고, 먹다 남은 잔반과 점심,저녁 먹은 도시락 잔반....
이 남은 쓰레기들을 어찌 처리를 해야할 지 한 참을 난감함에 빠져있는데,,,오 마이 갓!! 전기불 마저 소등이 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혀하는 순간, 다시 불이 들어오더니, 주의사항을 알리기 위해서 집중을 요하려고 그랬다고 한다. 다행히 식사를 하는 곳은 9시에 소등되지는 않았다.
잔반 처리장을 찾아 잔반을 깨끗이 모아 처리하고 점심, 저녁 도시락 그릇을 일일이 찢어 포개어 정리해서 담고(쓰레기를 되 가져와야 하기때문에....)식탁까지 정리하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10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로베르토 형제님도 낼 천왕봉에 오를 지 반반이라고....그래도 일단 약속을 하고는 먼저 방으로 올라가 버리고....
오늘 죽도록 고생하신 가브리엘 형제님과 나만 덜렁 남게 되었다.
쓸쓸함이 엄습했다.
산중에서의 밤을 이렇게 보내다니...
이건 내 계획에 전혀 없었던 상황....아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별이 쏟아지는 밤 하늘을 보며, 아주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술에도 취하고....진한 커피향에도 취하고(그래서 원두커피도 갈아가고 커피 내리는 깔대기까지 가져갔는데....ㅠㅠ) 그리고 오순 도순 이야기꽃이 밤새 피어날 줄 알았지~
그래서 꼭 산장에서 자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상들이 얼마나 철없는 이 여자의 소망이었는 지....
밤을 새고 하루 종일 체력의 한계의 극점까지 다 소진된 상태에서 별 헤는 밤을.... 이야기 꽃을 피우며 보낼 거라고 꿈을 꾸다니....ㅠㅠ
그것도 그 담날 또 한 밤중에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건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꿈을 꾸는 순간 모든 잡념, 근심, 고통,힘듦이 싸악 사라지는 여자....
낭만에 빠지면 밤을 새고 또 밤을 새고도....고통을 못느끼는 위험한 이 여자....
진한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나 혼자서라도 밤 하늘을 보며 지리산의 깊은 정기에 심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종일 죽도록 고생하신 형제님앞에서 이미 꾸린 짐의 버너에 코펠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마시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정리를 하고, 얼굴을 물휴지로 씻고 로션,크림 바르고...이빨 닦고...화장실까지 다녀와 일행들 아침 도시락을 모두 챙겨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것을 방에다 들여놓으면 상해버릴것 같아 고민하다가 밖의 복도 보관함 위에 얹어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거의 11시가 되어 있었다.
내일 아침 천왕봉에 오르려면 1시50분에는 일어나야 2시15분에 로베르토 형제님을 만나 출발할 수 있을 터였다.
깜깜한 방에는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가까스로 내 자리를 찾아들어 주변 사람들을 깨울까봐 대충 배낭을 놓고 살금 살금 침낭라이너를 꺼내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이 쉬이 올리가 없었다.
오늘 밤은 진짜 자야하는데....지금 잠들어도 3시간을 채 못자는데....ㅠㅠ
걱정은 되었지만 뭔가 아쉬움이 가득해서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알람을 진동으로 하고 핸폰을 손에 쥔 채 잠을 청해본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미 날이 훤히 샜다. 지리산은 다른 곳보다 해가 일찍 뜨는것 같다는....>
꼭 일어나야 한다고 맘을 먹고 잠들면 우리 몸에 알람기능이 있어서 스스로 깬다고 하더니,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이 시간이면 사람들 대부분이 일어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대피소는 깊은 수면중.....
어둠속에서 대충 담요를 정리하고, 배낭과 침낭라이너를 둘둘 말아 살금 살금 방을 빠져나왔다.
요세피나에게 아침 도시락 위치만을 알려준 채....
대청마루 처럼 생긴...뭐라고 해야하나~ 일종의 거실??
방에서 나오면 환하게 불이 켜져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어둠...그리고 사람들이 그곳에서도 자고 있는 거였다.
할수없이 복도로 나와 짐을 꾸리고 준비를 했다. 시간이 꽤 여유가 있을 거라고 늦장을 부렸더니, 오~~ 벌써 2시반이 지났단다.
다행히 로베르토 형제님이 준비를 하고 나오셨다.
좀 걸어 내려가야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챙기고 우린 예상시간 보다 좀 늦은 2시 50분에 출발을 했다.
<동이 트자 시야에 나타난 기막힌 지리산의 운해....무겁다고...16mm 단렌즈 하나만 가져가서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 사진이 너무 아쉽다.>
대피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렬로 주욱 줄서듯이 그렇게 천왕봉으로의 산행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천왕봉으로 가는 그 길은 그저 어둠뿐이었다.
오직 우리 둘이 걷는 발자욱 소리뿐....
한 참을 가서야 우리보다 앞서 가던 두 사람이 잠깐 서서 뭔가를 다시 챙기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뿐....
얼마를 갔을까....
장터목 대피소와 천왕봉 표지판이 눈에 보였다.
지시대로 갔는데도 계속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왠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렇게 아무도 없을 수가 있을까....우리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기는 한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래서 우린 가던 발길을 되돌려 표지판까지 다시 올라왔다. 확실히 맞는거지?? 다른 길이 없는 거지?? 스스로 묻고 또 물어보며 확인하고 다시 걸었다.
그러다가 잠시 또 발걸음을 멈춰섰다. 좀 기다렸다가 아까 그 서있던 사람들과 함께 가자고....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둘은 오지 않았다.
우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으니 또 그 밤길을 걷는 순간이 너무나 좋은 것이다.
적막감....
고요....
터엉 빔...
완벽한 쉼....
한 치 앞만 보이는....그 한 치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순간 스치는 생각....
우리 삶도 이렇게 아주 단순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누군가가 지금 헤드랜턴에서 쏘아지는 불빛처럼 내 앞을 환하게 비추며 인도해주는 삶....
절대 샛길로 가지않고 목적지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확신에 찬 삶....
그럼 또 너무 재미없을까?? ㅎㅎ
잠깐 발길을 멈추고 서서 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 떠 있다.
와아~ 천왕봉의 일출을 볼 수 있겠는 걸~~
어느새 짙은 어둠이 벗어지고 있었다.
시야도 조금은 넓어졌다.
아!! 저 들꽃들 좀 봐~~
길 섶 좌우로 좌악 피어있는 야생화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이렇게 이쁜걸 하나도 못보고 깜깜한 어둠속을 걸어만 가고 있다니~~
순간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이내 마음이 달라졌다.
이렇듯 어둠속에서 잠시동안 내 눈앞에 나타나 보여줌이 훨씬 그 아름다움이 강렬하고 오래 간다는 걸 ...
시간이 제법 흐른것 같은데....이제 장터목 대피소가 나와주어야 하는데....
그때 저만치서 불 빛이 보였다.
아!! 사람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만났다.
자기들은 이미 어제 천왕봉에 올랐고, 우리와는 반대코스로 종주를 진행하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장터목 대피소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딱 20분 걸렸다고....
오오~~ 20분??
14시간을 넘게 걷고 세석대피소를 20여분 남겨두고 표지판이 나타났을때 보다도 어쩌면 더 반가웠을지도 몰랐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오직 표지판 하나 보고 '지금 잘 가고 있는 지...'.불안함 속에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속에서 단숨에 장터목 대피소까지 온것 같다.
그 곳 역시 고요함으로 정지된듯 한 분위기였고, 몇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물도 마시고 땀도 식힐 겸, 잠깐 쉬는 사이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말을 건네온다.
"세석에서 오셨지요? 올라올때 두 사람 만났지요??"
"네~"
"저 보다 늦게 출발한거 같은데 빨리 오셨네요.세석에선 저희만 온것 같습니다."
ㅎㅎ
그렇겠지~ 깜깜한 밤중에 사진을 찍을 일이 있나~ 늦은 출발에 뭐가 여유롭다고 멈춰서서 얘기를 할 일이 있나~
더우기 초행길에 조금은 불안한 맘으로 불빛따라 아무 생각없이, 한 마디 말도 없이 걍 걷기만 했으니.....
아마 축지법이라도 쓴 양 그렇게 왔을 거야~ ㅋㅋ
장터목 대피소에서 나오니 벌써 날이 훤히 새고 있었다.
저만치 하늘 끝에서 벌써 붉은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거였다.
그 아래로 자르르 흐르는 운해는 그 자체로 천상의 세계였다.
와아~
탄성을 지르며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별이 총 총 보이다가 또다시 안개에 휩쌓이기를 수없이 반복해 과연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반신 반의하며 올라왔는데....
"와아!! 지금 이 순간을 맘껏 느껴야 해~ 모르잖아, 조금뒤에 또 구름이 완전히 덮어 버릴 수도 있어.
와아~~ 어찌됐든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너무나 판타스틱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바래~"
전망대에 오르니 지리산의 운해가 정말 기가 막히게 보였다.
가까운 산 사이로는 마치 화산이라도 폭발한것 처럼 구름이 하얗게 그것도 빠른 속도로 뿜어져 올랐고.
그런가 하면 머얼리 굽이 굽이 능선에는 마치 다른 세상처럼 잔잔한 운해가 흘렀다.
우린 너무나 아름다운 이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곳을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다 떠난 줄도 모르고....
길 섶에는 야생화 천지였고, 그 나무들 사이로 시야만 터지만 천상의 세계...지리산 운해의 장관이 펼쳐졌다.
단렌즈 하나 달랑 달린 카메라를 가지고 걷지를 못한다.
그거 어떻게 담아보려고...
저 멀리 좌악~~ 펼쳐져 있는 깊은 운해를 어떻게든 잡아보겠다고...
삼각대도 없이 조리개를 꽉 조이고 시간을 길게 잡아 찍었더니, 되려 다 흔들려 사진이 더 엉망이 되어 버렸다.ㅠㅠ
이렇듯 운해와 야생화에 미쳐있는 사이 로베르토 형제님은 저 만치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젠 날도 환히 샜겠다~ 무서울 일도 서둘 일도 없었다.
난 천천히 이 모든것들을 즐기고 가슴에 담으며 걸었다.
전망대에서의 경치가 하도 장관이라 천왕봉이 거의 코앞에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전망대에서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더우기 길은 완전히 너덜길....
험준한 바윗길로 이어졌다.
천왕봉에 가까워질수록 고도가 높아지니 시야에 펼쳐지는 운해는 더욱 장관으로 펼쳐졌다.
정말 기가 막혀서 걸음을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한 발자욱 걷고 끝없이 서 있기를....
저 운해를 타고 시야가 닿는 끝까지 실려가기를...
헐~~
그런데 갑자기 내려오는 사람들과 맞닥드리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난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위해 우리가 그렇게 한 밤중 2시 반에 출발했음을 눈치챘다.
'아~~ 일출이 끝났구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섭섭함이 하나도 들지 않는거였다.
이제 마악 어둠을 벗어낸 산 정상 길목에 홀로서서..... 하염없이 신선세계의 흐르는 운해에 실려 비상했음이...
그 순간의 감동과 감격은 더이상 발랄것도 미련도 없었다.
험준한 바윗길을 오르고 내리면서 정체현상이 빗어졌다.
그리고 이제서야 오르는 나를 보고 한 마디씩 한다.
"아~ 조금 늦으셨네요~ 오늘 기가 막힌 일출을 온전히 다 보여줬는데...."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줄까요?"
네~ 하고 대답하려는 순간...옆의 남자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전화번호 받으려고 작업거는것 좀 봐라~ㅋㅋ"
"헐~ 들켜버렸네~"
ㅋㅋ
한 바탕 웃음으로 지나쳐 버렸다.
그러나 올라오면서 못내 아쉬움이 드는 건...
환상의 일출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서다.
일출을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눈 앞의 풍광에 사로잡혀 있던 나 자신의 바보스러움이 자꾸 생각나서다.
내 일상의 삶도 이처럼 눈 앞에 펼쳐진 것에만 급급하며 사는건 아닌가...더욱 바보같아서다.
정상이 눈앞이다.
와아!! 멋드러지는데~~
일부러 깔아놓은 것 같은 잔잔한 돌 바닥에 우뚝 솟은 천왕봉...
내려가는 이들이 장터목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어?? 이들은 그럼 어디에서 올라온 이들이지??
정상에 올라서 아래를 보니 장터목 대피소에서 중산리로 빠져나가는 길 이외에도 또 천왕봉 이곳에서 바로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또 있는거였다.
그러니까 내려가던 이들은 이 깍아지른 듯한 죽음의 깔딱 고개....중산리에서부터 올라온 이들이었던 거였다.
드이어 지리산 천왕봉....정상에 올랐다.
한 무리의 외국인 애들이 타국의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감동의 파티를 벌이며 한바탕 소동을 피고 있다.
가까스로 그들을 피해 정상에서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
바람이 어찌나 센 지....균형을 잘 잡고 서 있어야지 자칫하다간 사고로 이어질듯 위험스럽다.
먼저 오른 로베르토 형제님이 보이지 않더니 저만치 아래에 내려가 있다.
역시...카메라 들이밀고 감동의물결에 빠져 있는 듯 하다.
외국인 애들도 이제 다 내려가고....
정상에는 다시 위엄이 찾아들었다.
세찬 바람속에 서 있음이... 지리산 천왕봉의 위용을 대변해 주듯...싫지 않다.
바람을 피할만한 곳을 찾아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마침 커다란 바위 사이로 작은 공간이 하나 있다.
겨우 엉덩이를 붙일 자리를 마련해 도시락을 펼쳤다.
천왕봉 자락에서 눈만 돌리면 운해가 기막히게 흐르는 모습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한다는 건
산행 못지않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가장 아쉬운 거....
따끈한 커피 한 잔....ㅠㅠ
이제 중산리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중산리로 내려가는 끝까지 내리막으로 되어있는 이 내리막길이 힘들거라고 하셨는데....
아닌게 아니라 시작부터 헉 소리나는 가파른 경사길이다.
내리막으로 향하는 길도 험준한 돌길...
숨이 목젖까지 차 올라 헐떡임과 지침의 극점에 닿아 오르고 있는 이들이 안스러울 정도다.
"아이구~ 고생하십니다. "
만나는 이들에게 저절로 쏟아져 나오는 말이었다..
내려가는 길에도 판타스틱한 풍광은 계속 이어졌다.
바위에 잠깐 누워서 삼매경에 빠져들기를....
아~~ 그러나 자꾸 끼어드는 잡념...
커피 마시고 싶어~~ㅠㅠ
다음엔 버너와 작은 코펠을 하나 사야겠어~
작은 보온병도 가져와서 새벽에 커피를 끓여가지고 나와야겠어~
일행들에게 전화를 했다.
헐~ 모두들 지금 천왕봉을 향해 가고 있단다.
새벽 5시반에 일어나서....
와우~~
그렇구나. 일출을 볼게 아니면 꼭 2시반에 출발할 이유는 없었던게야~
그제서야 세석대피소에서도 장터목 대피소에서도 우리가 가고 있던 그 순간 절간처럼 고요와 적막만이 메우고 있었던 이유를 알것 같았다.
어쨋든 여기까지 힘들게 와서 천왕봉에 오르지 않고 돌아간다는게 안타까웠는데 잘되었다 싶다.
그러나 저러나 가파른 내리막길은 정말 '악'소리 나게 이어졌다.
이제는 올라가는 이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무릎이 좀 좋지않은 나로서는 이 만만찮은 죽음의 오르막이 훨씬 쉬워보였다.
혹시라도 무릎에 무리가 가서 얼마뒤에 떠날 몽블랑 트래킹길에 장애가 될까봐서이기도 하고...
이때 로베르토 형제님이 미끄러졌다.
아아악!!
그나마도 스틱이 지탱해 줘서 굴러떨어지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스틱이 결국 체중에 실려 휘어지고 부러지기까지 했지만...ㅠㅠ
정말 모든 사고가 내리막 길에서 생기는걸 생각하면 얼마나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 지...한번 사고를 당한 나로서는 새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끝...
중산리에 도착했다.
세찬 물줄기를 흘려보내는 계곡에 들어가 온 몸을 풍덩 담그고 싶었지만, 들어갈 수 없도록 모든 곳을 통제해놓았다.
아쉬움을 안고 약속장소로 찾아 갔다.
놀랍게도 그곳엔 일행들이 벌써 와서 동동주를 마시고 있는 거였다.
헐~~ 어떻게 된거야??
자기네들이 날라서 왔다고...
왜 못 만났지?? 이러면서 능수레를 떤다.
중산리로 내려오는 길은 좁은 돌길을 끊임없이 내려오는데 절대 못만날 수가 없는 길이었다.
알고보니 내려오는 길에 절앞에서 갈라지는 길이 있었던게 생각이 나는거다.
그곳 절에서 중산리까지 버스로 5.4km 내려가는 길과 계곡으로 내려오는3.4km 길....
우리는 당연히 짧은 3.4km길을 선택했다.
사실 5.4km길이 버스길이었다는 걸 알았어도 당연히 걸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 지리산을 종주한 것이므로...
어쨋든 우린 모두 지리산 종주에 성공했다.
감동의 순간을 시원한 동동주와 파전, 도토리 묵으로 완결지우며 기쁨과 감동을 나누었다.
더욱 좋은 것은 산악회와 연결짓고 있는 민박까지 겸하고 있는 이 식당에서 씻고 쉴 수 있다는 것...
아예 룸의 키를 주어서 혼자 들어가 더운물로 깨끗이 씻고 옷까지 싸악 갈아입고 나오니 지리산 종주를 했다는 기쁨과 함께 몸까지 날아갈 듯 한것이다.
아직 내려오지 못한 버스 동지들을 기다리는 동안 민박의 방에서 누워 쉬다가 버스에 오르니, 늦은 사람이 아이스크림까지 돌린다.
와우~~
모든게 그저 퍼펙트하군!!
ㅋㅋ
한 숨 잠을 자며 여유로운 모습으로 양재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한 토마스 회장님과 통화를 했다.
벌주차 우리의 지리산 종주를 추카해 주시겠다고 한 턱 쏘시겠다는 거다.
아이구 좋아랑~~~ㅋㅋ
역시 회장님이 짱입니다용~~
ㅋㅋ
모두에게서 감동의 겨움과 또다른 도전의 설레임에 상기된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어려움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해냄의 기쁨을 얻는...그래서 삶의 에너지를 채워가는
어쩌면 모든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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