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피곤함의 누적....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여럿이서 방을 사용함에 따른 예민함...감정 폭발...
코곯음...
이 모든것이 누적되어 예민함의 극점을 찍었다고 할까..정말 잠을 한 숨도 못잤다.
어찌 코곯음 소리를 막아볼까...
이어폰으로 부르크너 교향곡을 듣다가 잠깐 졸았나....꿈을 꾸었다.
여권을 안 가져가 마추픽추를 들어가지 못한것이다.
너무나 황당해서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깼다.
컨디션도 안좋은데다가 잠깐 존 사이에 또 이런 불안한 꿈까지 꾸었으니 기분이 여엉 찜찜하다.
오늘 오를 와이나픽추가 깍아지를 듯한 절벽이고 해마다 인사사고까지 일어나는 위험지역이라고 했는데....
여행와서 지금까지 제대로 푸욱 잠을 이룬적이 하루도 없는데다가 어젯밤은 거의 새다시피해서 불안한 마음이 극점을 이룬다.
아무래도 작년에 북한산 등반중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친 이후 늘 바위가 많고 가파르다고 하면 노이로제 증상을 보이는것 같기도 하고....
그나마 꿈에서 엉엉 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니
마음을 놓아도 될까....
날이 새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다행히 기차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올때까지는 비가 그쳤었지만, 어제도 제법 비가 많이 왔고, 밤새 빗소리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창밖의 풍경이...
기막힌 구름이 걸려있는 우뚝솟은 첩첩산중이라니...
와아~
무겁기만 했던 마음에 다시금 신선한 바람이 들어찬다.
커피를 내렸다.
여전히 방안을 가득 메우는 커피향은 그 어떤 아로마테라피 보다도 내겐 더 효능이 크다.ㅎㅎ
커피를 마시며 마추픽추에 갈 준비를 했다.
오후 5시...하산할때까지 먹을데가 없으니 점심준비를 해야했다.
식당에서 가지고 올라온 빵 1개, 삶은 계란 2개,포도, 몽키바나나 4개, 물을 챙겨 배낭에 넣고 남미여행의 최고봉 마추픽추를 향해 출발했다.
돌아올때는 각자 알아서 와야했기때문에 숙소에서 부터 동네를 사진을 찍어가며 위치저장..마추픽추행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아!! 이제 진짜 출발이닷~
잠시 뒤면 세계 7대 불가사이중 하나인 공중도시 마추픽추에 도착을 하는것이다.
아!! 얼마를 달렸을까....
내 입에선 감탄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지그재그 길을 오르며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은 가히 상상이상 이었다.
책자에서 본것은 언제나 마추픽추의 정상에서의 모습 뿐이었으니까....
아무도 찾을 수 없었던 해발 2500미터의 공중도시이니 당연히 첩첩 산중 꼭대기에 있을 진데 왜 그 가는 길이 이렇듯 판타스틱한 깊은 산중일거란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것일까...
설레임은 더 커져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콩딱거렸다.
드디어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흥분을 감출 수 없어
가슴이 자꾸만 두근거렸다.
이게 감정의 복받침때문인 지, 컨디션이 나빠서 인 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와이나 픽추는 입장시간이 하루 2번뿐이다.
새벽 7시, 오전 10시...
그래서 우린 먼저 와이나픽추를 오르기로 했다.
와이나 픽추로 가는 길에 펼쳐진 마추픽추의 정경은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 잡아 맸다.
산허리를 휘감은 하얀 구름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신선들이 사는 곳...
우린 지금 신선들이 사는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자욱을 떼고 있는거야~
아니, 아주 아주 오래 전 잉카인들의 영혼이 저 구름너머에 있을까??
그들이 신선이 되어...
늘 이렇듯 구름을 휘감은 채 아스라한 역사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
<마추픽추 발견일지...>
안데스와 아마존을 헤맨 탐험가 가운데는 비록 파이치치는 아닐지라도 유적을 발견한 사람도 몇 있다. 오늘날 남아메리카의 고대 유적지 가운데 관광객을 제일 많이 끌어모으는 마추픽추(Machu Picchu)를 발견한 하이럼 빙엄이 대표적인 사례이다.잉카인들은 글자,쇠,화약,바퀴를 몰랐지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강한 군대를 유지했다.
제국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산맥을 따라 남북을 관통하는 두 갈래 길 (잉까로드)을 2만km나 만들어 광대한 영토를 통제했다. 황제의 명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두루 미쳐 새 한 마리도 황제의 명령없이는 날지 않는다고 했다.
잉까인들이 돌을 다룬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들은 20톤이나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수십 km떨어진 산 위로 날라다가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면돗날도 들이밀 틈없이 돌을 잘 쌓았다.(그들이 사용한 가장 큰 돌은 높이 8.53m 무게 361톤이다) 평야가 적었지만 산비탈을 계단처럼 깍아 옥수수를 경작함으로써 그들은 넉넉히 먹고 살았고,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는데 그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제국은 겨우 100여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의 문명과 패망과 저항에 얽힌 수 많은 사연을 집약해 보여주는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속의 해발 2400미터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있는 옛 도시 마추픽추이다.
".....우리는 비탈에 납작 붙어서 아래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땀에 손가락을 찔러 꽂은 뒤 미끄러운 풀을 밀어 헤치면서 몸을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아득한 낭떠러지 저 아래에서는 우리가 밧줄을 잡고 건너온 우루밤바강의 성난 급류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디언 안내인이 이 근처에는 사냥가을 뒤에서 공격하는 페루드란스 독사가 많다고 신음하듯이 일러주었다."
미국 예일 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가르치던 서른다섯살 난 하이럼 빙엄이 마추픽추를 발견한 1911년 7월 24일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탐험대는 빙엄과 그의 대학 동료 두 사람, 통역과 길안내를 맡은 페루군 하사관 1명, 거기에 노새 몇 마리....
그들은 잉카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빌카밤바를 찾으려고 들끓는 모기와 지독한 더위와 위험한 급류를 무릎쓰고 우루밤바강을 따라 폐허들을 모조리 조사하고 있었다. 어느날 일행이 빌카밤바 계곡에서 야영하고 있을때 한 인디언이 나타나 그들의 바로 앞에 깍아지른 듯이 솟은 바위산 등성이에 거대한 폐허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꽤 높이 올아갔는데도 폐허 같은 것은 없었다. 모두가 몹시 지쳤다. 그때 인디언 몇 사람이 샘물을 담은 호리병을 가지고 다가왔다. 물을 정신없이 들이키고 가슴 가득히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자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인디언들은 조금 더 가서 산모퉁이를 돌면 폐허가 있다면서 한 소년을 딸려 주었다.
빙엄 일행이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과연 잉카시대의 계단식 경작지가 보이고 돌 건축물이 나타났다. 거대한 계단 같은 것을 몇 단 겹쳐 쌓은 큰 건축물은 나아갈 수록 더 많아졌다.모두 길이 30m가 넘는 돌벽이 3m 높이로 쌓여있었다. 한 건축물의 끝까지 걸어가니 맞은편 나문가 이끼 낀 돌벽에 솟아 있었다.
"엄청나게 큰 돌들이 서로 꽉 맞물려 있었다. 그 벽은 가옥의 일부였다. 벽은 옆에도, 그 맞은편에도 있었다. 바위 선반 아래에 동굴이 있었다. 벽에 벽감이 나란히 설치된 왕족의 무덤이었다, 그 위쪽에는 꾸스코에 있는 태양의 신전처럼 바깥 벽이 경사진 반원형 건물이 있었다. 돌계단은 광장으로 이어졌고, 거기에는 흰 화강암으로 지은 대사원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맞배지붕 건물이 제사장의 주거주지였으리라.비탈아래에는 건물들이 미로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안데스산 중에 해발 4570m 높이로 우뚝 솟은 바위산...그 중턱에 만여명이 살 수 있는 비밀 도시가 있었다니!! 바퀴를 모르던 잉카인들은 흙과 돌을 사람이 지고 날라다가 이 도시를 세웠다. 길이가 수백m나 되는 축대를 100개나 쌓고 거기에 흰 화강암을 빈틈없이 이어 쌓은 벽과 집들...
샘에서 수돗물을 끌고, 계단식 밭을 일구어 외부의 도움없이 살 수 있도록 신전과 묘지까지도 갖춘 완벽한 도시....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바깥 세상과 소식을 끊은 채 수십 년 동안 살다가 늙어 죽은 듯 했다. 어떤 군대라도 막아 낼 수 있도록 3면이 낭떠러지인 이 요새는 그 뒤로 400년 동안이나 사람 그림자가 얼씬하지 못한 채 두꺼운 이끼에 덮여 있었다. 빙엄은 빌카밤바를 찾았다고 확신했다. 눈 앞의 옛 도시가 스페인군에 쫒긴 잉카의 황제의 피난처이자 저항의 근거지로 삼은 최후의 수도라고...
산 위에서는 계곡이 다 내려다 보이지만 계곡에서는 어디에서 올려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요새.... 바위산 꼭대기에 있으면서도 천여 명이 상주한 자급자족 도시. 빌카밤바 계곡 일대에 흩어져 있는 만여 명을 관장한 거점도시. 신전 중심의 시설로 가득한 신성한 도시.
마추픽추는 누가 세웠고 언제 버려졌을까....
잉카의 초대 황제 비라코치 잉카가 안데스산맥 일대의 여러 부족을 합병해 제국을 세운때는 1438년.
계속 영토를 넓히고 도로를 닦고 제도를 정비해 오던 잉카제국은 제 12대 후아이나 카팍 황제가 죽자 내분에 휩쌓였다. 적자인 후아스카르와 서자인 아타왈파의 싸움에서 아타왈파가 이겨 13대 황제가 되었는데, 내전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페인군에게 무너졌다.
스페인 군의 꼭두각시로 황제에 오른 망코 잉카는 기회를 엿보다가 수십만 명을 동원해 봉기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우루밤바강 기슭의 빌카밤바 요새로 도망가 스페인군에 맞섰지만 그마저도 함락되었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망코 잉카가 살해되고 1571년 마지막 잉카 투팍 아마루가 스페인군에 처형되자 40여년에 걸친 잉카인들의 저항은 막을 내렸다.그로부터 340년이 지난 1911년 하이럼 빙엄이 마추픽추를 세상에 알리자 사람들은 마추픽추야 말로 망코 잉카가 머물렀던 빌카밤바라고 믿었다. 그러나 마추픽추은 잉카인이 처음 세운 도시는 아니었다. 1912년 빙엄의 발굴보고서에도 잉카시대 이전에 만든 옹기와 접시가 많다고 나와 있지만,1988년 카본 테스트를 해보니 마추픽추에는 서기 800년에 정착해 산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잉카 이전에 세워져 버려졌던 마추픽추를 쫓기던 망코 잉카가 다시 건설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밖에도 마추픽추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을 몇 가지 지니고 있다.
마추픽추의 풀리지 않은 의문점
* 태양의 신전에 있는 지하계단이 중간에 끊겼다. 혹시 잉카의 보물이 감추어진 통로가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닌가.
* 황금이 모두 사라진 까닭은? 20세기 이전에 도굴된 것이 아닐까? 실제로 빙엄이 마추픽추를 발견하기 이전인 1894년에 두 탐험가가 이곳을 다녀갔고, 세 사람이 바위에 자기들 이름을 새겨 놓았다.
* 마추픽추에서 나온 미라중에 남성 미라가 거의 없다.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서 죽었을까? 100명이 넘는 태양의 처녀가 매장되었는데, 잉카 병사들은 왜 그들
을 데리고 도망치지 않았을까? 유물과 미라만 놓고 추측한다면 마추픽추는 방어요새가 아니라 여사제들이 태양의 신을 섬긴 금남의 종교도시였다고 볼 수도
있다.
1911년 빙엄이 왕궁과 신전 따위를 복원한 두로 1956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발굴과 복원이 1974년에 끝나 마추픽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고대유적 관광지가 되었다.
하늘의 반쯤 뒤덮고 있는 하얀 뭉게 구름은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와이나 픽추에 올랐을때의 조망이라던가....
와이나 픽추를 배경으로 한 마추픽추의 전체 조망이라던가...
그런건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이 불가사이한 공중 도시를 더욱 몽환적으로 만들어줄 뿐...
이곳에서 우리가 서로 번갈아 가며 모델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
와이나픽추 입장시간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기네들도 모두 사진을 찍겠다고 빨리 비켜달라고 한다.
헐~~
이제껏 가만히 있다가....
우리가 넘 멋져 보였나??
그렇다면 비켜줘야지~~ ㅋㅋ
얼마나 흥분속에 휩쌓여서 걷고... 사진을 찍었는 지...벌써 허기가 진다.
입장 시간 10시가 되려면 아직 남았으니 일단 바나나 한개를 간식으로 먹자.
그러나 저러나 오늘 하루 종일 이 넓은 13평방 킬로미터나 되는 ...3000개가 넘는 계단을 다 오르내리고,
와이나 픽추에 오르고....잉카 브리지, 썬 게이트까지 다 돌려면 ....
아!! 아무래도 점심을 너무 적게 준비해온것 같아~
허기져서 다 못돌면 어쩌지??
가능하면 내려갈때도 버스타지 않고 샛길로 내려갈까 하는데....
벌써 바나나 한개 먹었어~ㅠㅠ
와이나 픽추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바위인데...
가만히 손을 대어 보란다~
꿈틀대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대나~~
오옷~ 정말 손바닥에 열기같은 에너지가 꿈틀대는 것이.....
허어걱!!
이거 신령한 바위인가봐~~
혹시 제단??
맞단다. 의식용으로 쓰이던 거대한 돌 Roca Ceremonial 이다.
Beethoven / Piano Concerto No.5 "Emperor"
Arthur Rubinstein, Piano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Daniel Barenbo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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