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제1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발/2010.6.25.금/예당

나베가 2010. 6. 19. 16:34

 

베르디의 18번째 오페라이며 '리골레또', '일 트로바토레'에 이어 사회적 신분 때문에 억눌려 온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비극이다. 그러나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윤락녀라는 처지는 많이 희석되어 그의 작품 중 드물게 피를 흘리는 일이 없는 서정적인 내용을 지닌 작품이다. 원제 'La Dame aux Camelias(동백꽃을 단 여인, 동백꽃 부인)'는 여주인공이 언제나 가슴에 동백꽃을 달고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오페라에서는 La Traviata(잘못된 길에 들어선 여인, 타락한 여자)로 제목을 바꾸었고 여주인공도 마르그릿트에서 비올레타로 고쳤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오페라 작곡가의 지위를 확고히 쌓아온 베르디는 이 '라 트라비아타'에서 혹평을 받고 주춤한다. 그 까닭은 작품의 소재가 오페라 세리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당시)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그대로 썼다는 것. 소위 신성해야 할 무대 위에 윤락녀를 여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점, 그리고 그 여주인공이 폐병으로 죽는 장면도 전에 없이 역겨운 데다가 초연 때 노래한 소프라노 가수가 도저히 폐병환자라고는 볼 수 없는 뚱보였다는 사실 등을 꼽는다. 물론 베르디 자신은 초연 실패에 낙담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 오페라는 머지않아 세상을 휩쓸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과연 오늘날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의 변함없는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줄거리>

전주곡

베르디의 모든 전주곡 중 가장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명곡이다. 특히 현악 4중주로 연주되는 서두부분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몇 소절을 듣기만 해도 황홀한 기분에 젖어 버린다. 곡은 후에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에게 이별을 고할 때 울리는 선율이며 또 제 3 막에서 병들어 누운 비올레타를 암시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

제 1 막 「비올레타의 집 응접실」

구슬픈 전주곡이 잦아들면 화려한 음악으로 바뀌며 막이 오른다. 응접실은 파티 손님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합창한다. 이 집의 주인인 비올레타가 미소를 뿌리며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가스통 자작이 함께 온 청년을 소개한다. 그는 남부 프랑스 지방 한 갑부의 아들 알프레도 이다. 유흥가에 경험이 없는 순진한 그에게 문득 비올레타의 눈길이 머문다. 주위의 요청에 못이겨 알프레도는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그가 부르는 '축배의 노래(Birndisi: Libiamo, libiamo ne'lieti calici)' "행복의 잔을 들어 건배하자"를 비올레타가 따라하고 사람들도 다 함께 술과 노래와 일락을 칭송한다. 이윽고 응접실에 무곡이 흐르면 손님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 춤을 추려고 일어나다 비올레타는 갑자기 어지러워 의자에 쓰러진다. 염려하는 손님들을 괜찮다고 내보내고 혼자 창백한 얼굴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동안에, 갑자기 알프레도가 나타나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호소한다. 둘은 2중창 '어느 행복한 날(Un di felice)'을 부른다. 비올레타는 처음에 그의 말을 곧이 듣지 않고 웃으며 가볍게 흘려버린다. 그러나 너무도 순진한 호소에 감동하여 가슴에 달고 있던 동백꽃을 건네주며 "그 꽃이 시들 때"하고 내일을 약속한다. 밤은 지새고 손님들이 하나 둘씩 돌아간다. 홀로 응접실에 남은 비올레타는 야릇한 마음의 동요를 느끼며 아리아 "이상하다! 이상해!..(E strano! e strano!...)"를 부른다. 그 노래는 어느새 자기 처지를 한탄하는 자조 섞인 내용으로 바뀐다. 그 때 갑자기 알프레도의 사랑의 노래가 멀리서 들려 온다. "아, 그이인가..(Ah, fors'e lui)"하고 그 소리에 이끌리지만 미친 듯이 그의 사랑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며 그녀는 "언제나 자유롭게(Follie! Follie!.. Sempre libera)"하고 쾌락을 찬양한다.

제 2 막

[제1장 ㅣ 파리 근교의 시골집]
석달이 흘러갔다. 일프레도의 지극한 사랑에 마음을 연 비올레타는 파리의 생활에서 벗어나 둘이 이 집에 와 살고 있다. 사냥복 차림의 알프레도가 들어와 아리아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Lunge da lei)... 내 끓어 오르는 마음(De' miei bollenti spiriti)"을 노래한다. 파리에 나갔던 하녀 안니나가 돌아온다. 그녀에게서 생활비 때문에 비올레타가 물건을 내다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알프레도는 직접 돈을 구하려고 파리로 떠난 다. 이어 알프레도의 아버지 죠르주 제르몽이 찾아온다. "발레리 양입니까?" "네"하고 둘은 인사를 나누며 2중창을 펼친다. 그는 비올레타가 아들을 유혹하여 재산을 빼앗을 속셈을 품은 줄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실은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위해 자기의 온 재산을 탕진하고 있음을 알고 감격한다. 그렇지만 둘의 동거생활은 딸의 결혼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므로 제발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부탁한다. 울며 어쩔 수 없이 청을 받아들인 그녀는, 한 여자가 자기의 행복을 희생했음을 딸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한다. 죠르주는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한 뒤 그 자리를 떠난다.
곧 비올레타는 작별의 편지를 써 놓고, 돌아온 알프레도에게 아버지가 찾아왔던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는 슬픔을 참고 그를 껴안으며 "나의 알프레도, 당신을 사랑해요!"하고 미친 듯이 외치면서 밖으로 달려나간다. 얼마 후 비올레타가 마차로 파리에 갔음을 안다. 그 때 그에게 편지가 도착한다. 의아해 하며 겉봉을 뜯어보니 뜻밖에도 이별을 알리는 비올레타의 편지였다. 비올레타가 잠깐 있다 돌아올 줄 알았던 알프레도는 몹시 슬퍼한다. 때마침 아버지가 돌아와 고향 프로방스(프로벤자)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한 아리아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Di Provenza il mar)"를 노래하며 슬픔에 잠긴 아들을 위로한다. 알프레도는 아버지의 위로따위는 아랑곳도하지 않고 자신을 배신한 비올레타에게 "복수하겠다!"며 뛰쳐나간다.

[제2장 ㅣ 파리, 플로라의 응접실]
흥겹게 파티가 열리고 있다. 알프레도가 불쑥 나타나 카드놀이 판에 끼어든다. 비올레타와 손을 잡고 들어온 두폴 남작을 보고 내기를 하자고청하여 결국 계속 돈을 따낸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려고 다른 방으로 몰려간 사이에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에게 정말 마음이 변했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죠르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남작을 사랑한다고 거짓말 한다. 화가 치민 알프레도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고 큰소리로 그녀를 모욕한 뒤 놀음에서 딴 돈을 얼굴에 뿌린다. 비올레타는 너무 놀라 기절하고 사람들은 무례한 그의 행동을 나무란다. 그 때 죠르주가 들어와 아들을 힐책한다.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고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는 알프레도,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그를 잊지 못하는 자기의 깊고 깊은 사랑을 읊는 비올레타, 알프레도를 비난하는 남작, 그리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비올레타를 향한 동정어린 격려 등 각기 저마다의 사연을 노래하는 일대 합창속에 막이 내린다.

제 3 막 「비올레타의 침실」

아름답고 비극적인 제 3 막 전주곡이 끝나면 막이 오른다. 비올레타는 폐병이 도져 소지품을 팔아 약값을 대다 못해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있다. 의사 그랑빌이 찾아와 하녀 안니나에게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비올레타는 죠르주가 보낸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이제야 모든 사정을 알고 알프레도가 시죄하러 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비올레타는 너무 늦었다고 한숨을 쉬고는 즐거웠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아리아 "지난날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꿈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bei sogni)" 을 부른다. 드디어 알프레도가 찾아온다. 그는 비올레타에게 용서를 빌고 그녀를 따뜻이 껴안으며 다시 한 번 파리를 떠나 시골에서 살자고 2중창 "사랑하는 이여, 파리를 떠납시다(Parigi, o cara, noi lascermo)"를 함께 노래한다. 비올레타가 자기의 초상이 든 목걸이를 그에게 건네준다. 아버지 죠르주가 달려 들어와 둘의 사이를 허락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비통한 앙상블이 된다. 비올레타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의식이 아득해져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이상해요!.. 갑자기 고통이 없어졌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활력이.. 온몸에 되살아나요! 아! 다시 살아나는 거에요... 기뻐요! 하고 절규한 뒤 갑자기 고개를 떨구고 숨을 거둔다.


<주요 아리아 및 중창 합창>

1. [축배의 노래] 행복의 잔을 들어 건배하자(Libiam ne'lieti calici) [제1막 , 알프레도(테너), 비올레타(소프라노), 합창]

[알프레도] "행복의 잔을 들어 건배하자. 그 잔에서 아름다움이 꽃 피고 잠시동안 일락(逸樂)속에 취하게 만든다. 달콤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잔을 들자. 그 두근거림이야말로 사랑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눈동자가 (비올레타를 가리키며) 전능의 힘을 지니고 마음 속에 파고 들기 때문이다. 잔을 들자. 사랑은 술잔 사이에 있으며 보다 뜨거운 입맞춤을 받으리라."

[모두들] "잔을 들자, 사랑은 술잔 사이에 있으며 보다 뜨거운 입맞춤을 받으리라."

[비올레타] (일어나서)"내 즐거운 시간을 여러분가 나누는 것은 행복입니다. 쾌락 이외의 것은 이 세상에서는 모두 미친 짓입니다. 관능의 즐거움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니까요. 즐기지 않으면 그 사이에 꽃은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법, 시든 후에는 다시는 즐길 수 없죠. 즐깁시다. 뜨겁고 요염한 말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모두들] "즐기자.. 술과 노래로, 밤은 다채롭게 미소짓는다. 이 낙원에 있는 동안, 밤이 지새리라."

[비올레타] (알프레도에게) "인생은 쾌락이예요."

[알프레도] (비올레타에게) "참된 사랑을 하기 전에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비올레타] (알프레도에게) "참된 사랑 따위를 모르는 내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알프레도] (비올레타에게) "그렇지만 내 숙명은 그렇습니다."


2. 이상하다! 이상해!... 아, 그이인가.. 언제나 자유롭게(E strano! e strano! ... Ah, fors'e lui ... Sempre libera) [제1막 , 비올레타(소프라노)]

베르디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일 뿐 아니라, 모든 소프라노 레퍼토리 중에서도 남달리 극적이며 어려운 기교가 요구되는 동시에 마음 속에 깊은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기복이 심하여 뛰어난 노래 솜씨와 표현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파티가 끝나 손님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비올레타는 참된 사랑을 안 기쁨을 읊는다. 그러나 곧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 자기가 윤락녀임을 새삼 깨닫고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심한 자조에 빠진다. 마침 집으로 향하는 알프레도의 노래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지만 애써 뿌리치듯이 몸부림치며 쾌락을 예찬한다.

"이상하다! 이상해! 그의 말이 마음 속에 깊은 자국을 남겼어! 진짜 사랑따위는 내게는 귀찮은 것일까? 망설이고 있는 내 마음이여, 어쩔 셈인가? 아무도 네게 불을 붙인 적은 없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는다는, 내가 예전에 몰랐던 기쁨! ... 이 단순한 쾌락만을 좇는 내 생활을 위해 그 기쁨을 무시할 수 있을까? 아, 그 사람인가, 떠들썩한 사람들 속에서도 가끔 외로워지는 내 마음이 신비스런 색깔로 가슴에 그리던 그사람. 그는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어. 그리고 병든 사람의 집에 들어와 또 다른 열을 올리게 만들었어. 내게 참 사랑을 일깨워 주고 그 사랑에 가슴 두근거려 왔어. 온 우주가 신비스럽고 자랑스럽게 고통과 쾌감을 이 마음에 보내고 있어! (잠시 마음을 집중시킨 뒤 다시 말을 잇는다)
어리석은 짓이야! 어리석은! 덧없는 꿈이야! .. 나는 이 파리라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사막안에 홀로 내버려진 불쌍한 여자, 무슨 희망이 있느냐고?.. 무엇을 하면 되지? .. 관능의 소용돌이 속에서 쾌락을 찾으며 죽어가는 거야. 언제나 자유롭게, 쾌락에서 쾌락으로 몸을 맡기고 있어야 해! 나는 인생을 쾌락의 오솔길을 빠져 나가듯이 살고 싶어. 동이 터서 해가 지기까지 온종일 내 생각은 새로운 쾌락을 좇으며 파티를 즐기고 있어."

3.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 내 끓어오르는 마음(Lunge da lei per me.. De'miei bollenti spiriti) [제2막 , 알프레도(테너)]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무슨 일이든 재미가 없다! 벌써 석달이 지났구나. 비올레타가 나를 위해 모두 버렸다. 사치도 명성도 화려한 파티도. 거기서는 언제나 모두가 떠받들어 주고, 그녀의 아름다움의 노예가 된 사내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지. 허나 지금 그녀는 편안한 시골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잊어 주었다. 나는 그녀 곁에 있으면 새로 생겨난 사랑의 입김을 받고 나까지도 새로 태어난 듯이 느끼게 된다. 그녀가 정말로 기뻐해 주므로 나도 모든 과거를 잊을 수 있다. 내 끓어 오르는 마음의 청춘의 정열을 그녀의 온화한 사랑의 미소로 가라앉혀 주었다. 그녀가 '저는 당신에게 정조를 지키며 살아가겠습니다'고 서약한 그날부터, 나는 온 세계의 존재를 잊고 마치 천국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

4. 프로벤짜 네 고향으로(Di Provenza il mar, il suol) [제2막 1장 , 죠르주 제르몽 (바리톤)]

비올레타가 보낸 이별의 편지를 읽고 분노하며 괴로워하는 알프레도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이윽고 다가와 고향과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달랜다. 따뜻한 아버지의 정감이 넘치는 바리톤 아리아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프로벤자의 하늘과 육지를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 버렸느냐?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 버렸느냐, 프로벤자의 하늘과 땅을? 태어난 고향의 눈부신 태양을 어떤 운명이 빼앗아 갔느냐?어떤 운명이 빼앗았느냐, 태어난 고향의 눈부신 태양을? 오, 생각해내 다오. 거기서 너는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음을. 거기라면 네게 평화가 다시 한 번 빛나리라는 것을, 하느님이 어김없이 인도해 주시리라. 아, 나이든 이 아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알리가 없겠지. 나이든 이 애비에게, 네가 없어진 뒤 그 집은 쓸쓸한 모습이 되었다만, 그 집은 쓸쓸한 모습이, 쓸쓸한 모습이 되었다만, 다시 너를 만났으니 아직 희망이 있구나. 명예의 목소리가 네 속에서 아주 완전히 입을 다물지는 않은 셈이니, 하느님이 틀림없이 들어 주시리라."

5. 지난날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꿈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bei sogni) [제3막 , 비올레타(소프라노)]

파리의 사육제 날이다. 폐병으로 몸져 누운 비올레타는 죠르주의 편지를 읽고 이제야 진상을 안 알프레도가 달려온다는 글귀에 "너무 늦었어!" 하고 비통하게 뇌까리고, 모든 것은 끝났다며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는 절망적인 마음을 노래한다.

"지난날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꿈이여, 안녕! 장미빛 얼굴도 완연히 창백해지고, 알프레도의 사랑조차도 지금 내게는 없다. 지쳐 버린 영혼을 뒷받침해 주었으련만. 아, 윤락녀의 소원에 미소를 보여 주세요. 이 여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세요, 하느님, 이제 모든 것이 끝입니다. 기쁨도 괴로움도 곧 마지막을 고하고, 무덤은 사람을 이승과 갈라 놓는 경계선이건만, 내 무덤에는 눈물도 꽃도 없고, 내 주검을 덮을 묘비도 없을 겁니다. 아, 윤락녀의 소원에 미소를 보여 주세요. 이 여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십시오. 하느님, 이젠 모든 것이 끝입니다."

 

공연후기....

 

'라 트라비아타'는 아무리 여러번 보아도 가장 기대가 되는 작품중의 하나다.

서곡이 울려 퍼질때 부터 가슴이 에이기 시작하는 건 어쩌면 여러번 보아왔기때문에 더 그럴것이다.

그런면에서 볼때 이번 '서울 오페라 앙상블'이 펼쳐낸 라 트라비아타의 시작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커튼이 오르고.....

어둠속 저 끝부터 아련히 비치는 두 줄의 위험스런 다리 위를 걷고 있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비올레타....

자신의 위험스런 삶과 사랑의 모습....그리고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을 이렇게 짜릿하게 시작하다니....

아!! 하고 신음을 뱉어낼 만큼  강하게 어필하는 순간이었다.

 

서곡이 끝나고  환하게 무대가 밝혀지며 파티는 시작되었다.

투시도법을 활용한 심플한 무대....그리고 예상대로 현대버전으로 갈아탄 의상도 괜찮은 시작을 느끼게 했다.

아~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고....

커다란 실망감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리허설이 충분치 않았을까....아직 목이 풀리지 않았는 지....

아님 첫공연이라서...??

늘상 우리나라 오페라공연에서 백미로 두각되던...특히 베르디 오페라에선 더욱....합창부터 우렁참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멋드러진 '축배의 노래-행복의 잔을 들어 건배하자(Libiam ne'lieti calici)'를 이렇게 힘빠지게 들어본 적은 처음인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알프레도'역의 성량이 너무 작고 답답하여 쭉~ 뻣어나가는 시원함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합창까지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이 실망감은 뒤이어진 이 오페라의 가장 백미인 '비올레타'의 '이상하다,이상해~' '아~ 그이인가...' '언제나 자유롭게...'까지 그냥 아쉽기만 하다.

너무 쟁쟁한 DVD들만 봐와서 그랬을까....

어쩌면 너무나 유명한 오페라라서 ...그동안 너무나 세계적으로 쟁쟁한 가수들의 노래에 익숙해져서 그랬을 수도 있다고 아쉬움을 달래본다.

아무리 그래도 가슴 한켠에선 '안젤라 게오르규'가 부르는... 그리고 최 전성기때의 음반의 조수미 노래소리가 울려대 더욱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1막이 끝나고 2막의 커튼이 올랐다.

실내라고 보기엔 위에서 부터 내려진 액자와 커튼이 너무 거대한 반면 가구가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해 보였다.

어쨋든 '알프레도'의 노래는 여전히 답답했지만, '제르몽'의 등장으로 '비올레타'의 노래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제르몽의 '프로벤짜 네 고향으로(Di Provenza il mar, il suol)' 노래는 좋았고 함께 연기하던 비올레타의 노래도

자연스레 감동으로 이어져갔다.

그나마 처음 시작의 실망감이 조금은 가라앉으며 인터미션이 와서 다행이다.

 

인터미션이 끝나고....시작된 2막 2장....

파티가 한참 벌어지고 있는 플로라의 집....

자그마한 외제 자동차에 화려하고 섹시한 여성들로 가득한 무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제서야 목이 풀린것일까...

내가 집중력이 생긴것일까....

어쨋든 1막에서 보다는 주역을 비롯해 합창까지 훨씬 좋아졌다.

특히 '알프레도-이찬구'의 목이 확실히 풀린것 같아 다행이다.

비올레타-나탈리아 보론키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또한 그에 어울리는 미성을 가지고 있어 화려한...그리고 더없이 나약한 비올레타 역에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오페라에 점점 빠져들면서 2막2장이 끝나고 3막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간주곡이 가슴을 파고든다.

처음 시작과 똑같은.... 두개의 나무만으로 이어진 위험천만한 다리위를 1막의 섹시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헝클어진 머리의 비올레타는 걷는다. 그러다 갑자기 사라진 비올레타는 무대의 불이 환화게 켜지며 침상에 누워있다.

외롭고 비참한 투병생활이 그녀의 모습과 노래에 절절히 베어있어 가슴을 적신다.

특히 제르몽의 편지를 받아들고 부르는 아리아....

'안녕, 지난날의 찬란한 추억이여'는 가장 기대했던 1막의 백미의 아리아...'이상해, 이상하다...' '아~그이인가...' '언제나 자유롭게...'보다 훨씬 가슴을 잔잔하게 적시며 감동으로 전해졌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부른 이 아리아는  '너무 늦었다'고 오열하며 부르는 비올레타의 아리아와 함께 오늘 공연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제르몽도 오고, 알프레도도 오고....

그렇게 알프레도의 가슴에 묻혀 생을 마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이게 여자의 심정일까....

 

커튼이 내려오고....

출연진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갑자기 처음 시작의 '축배의 노래'를 다시한번 앵콜로 멋드러지게 불러주었으면....

하고 뜬금없는 바램이 생긴다.

아무래도 이 오페라의 백미인 이 곡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 컸기때문일까....??

이제서야 목이 풀린 테너 이찬구의 노래가 너무나 아쉬워서일까....??

'피찌'감독의 오페라에서 피날레로 이 '축배의 노래'를 멋드러지고 신명나게 앵콜을 불러주었던 그때의 기억때문일까.....

암튼 앞서 보았던 두편의 오페라-<리골레토>와 <아이다>보다는 아쉬움이 컸던 오페라였다. 


 

베르디 오페라 춘희 중 아! 그이였던가

Verdi, G. Francesco(1813~1901) 이탈리아 

E strano e strano - Ah fors e lui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제르몽의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
Giuseppe Verdi (1813 - 1901) / 'Di provenza il mar, il suol'
from La Traviata (Act 2)

비올레타가 보낸 이별의 편지를 읽고 분노하며 괴로워하는 아들 알프레도를 지켜
보던 아버지가 다가와 고향과 가족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아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한다. 따뜻한 아버지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아리아이다.
멜로디 음정의 전개가 그리 넓지 않으면서도 정교한 작품이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비올레타의 아리아
'안녕, 지난날의 찬란한 추억이여'
Giuseppe Verdi (1813 - 1901) / '
from La traviata (Act III)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Aldo Ceccato



파리의 사육제 날이다. 폐병으로 몸져 누운 비올레타는 죠르주의 편지를 읽고
이제야 진상을 안 알프레도가 달려온다는 글귀에 "너무 늦었어!" 하고 비통하게
뇌까리고, 모든 것은 끝났다며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는 절망적인 마음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