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이스라엘(2010.3)

97.이스라엘/하이파-1

나베가 2010. 6. 2. 22:09

하이파 [Haifa]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로 인구 25만의 이스라엘 3대 도시중 하나이다. 북쪽 도시의 심장부로 지중해 가까이 솟은 석회암의 지루산지()인 카르멜산() 산록에 전개된 시가지는 ㅏ연적으로 생성된 만을 끼고 있어 그 경관이 뛰어나다. 금세기에 들어와서 유대인() 이민의 유입과 함께 급격히 발달하였으며, 이스라엘 독립 전에는 이라크키르쿠크 유전과 송유관으로 이어져, 정유·석유 적출기지로서 발전하였다. 이스라엘 독립 후에도 공업중심지가 되어 정유·철강·섬유·자동차·시멘트 공업 등이 발달하였으며 해운활동도 활발하다.  1100년에는 십자군에 점령을 당하였으며, 1517년에는 터키에 의해 정복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686년 독일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의 3대 도시로 성장하였다.

공과대학·박물관·미술관 및 바하이교() 본산 등이 있다. 2008년에는 하이파와 갈릴리 서부 지역의 바하이교 성지가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으로 지정되었다.

 

 

 

 

 

 

하이파와 갈릴리 서부 지역의 바하이교 성지 [Baha’i Holy Places in Haifa and Western Galilee]

 

아코(Akko)와 하이파의 11개소에 흩어진 26개 건축물·기념물·장소로 이루어지며, 이슬람교 시아파() 계열인 바하이교의 성지이다. 아코에 바하이교의 창시자인 바하 알라 사당이 있고, 1844년 바브교(Bābism, 이슬람교 시아파의 한 분파)를 창시한 미르자 알리 무함마드(일명 바브)의 거대한 바브 무덤(Mausoleum of the Báb)도 보존되어 있다. 그밖에 주택·정원·공동묘지가 있으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여러 채의 현대식 건물들은 행정·공문서 보관소·연구센터로 사용된다. 

2008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핵심 면적은 62.58ha, 완충면적은 254.7ha이다.
<출처:네이버 백과>

 

 

 

바하이 교

바하 알라는 바브교의 개조인 미르자 알리 무하마드(1820∼1850)의 제자로서, 바브가 ‘신의 현현()’을 알리다가 처형된 뒤, 그가 창시한 종교를 인계받아 바브교 본부를 바그다드로 옮기고, 1863년 자신을 바브가 예언한 ‘신의 현현’이라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종교인 바하이교를 창시하였다. 그 교의()는 이슬람 신비주의평화주의박애주의를 가미한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보이며, 이슬람교의 지하드()를 부정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최종목표로 하고 있다. 1868년 바하 알라는 오스만투르크 정부에 의해 아코 거주를 명령받아, 이 곳에서 《성스러운 책》 등 많은 책을 저술하고, 거기에서 죽었다. 그의 장남인 압둘 바하(1844∼1921)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1910년부터 세계적으로 포교를 하였다. 그가 죽은 뒤 하이파(현재의 이스라엘)의 바브 묘릉() 근처에 매장되어 이곳이 바하이교 본부가 되었다. 이란 및 영국 ·미국 등지에 교도가 있으며, 교전() 즉, 경전이 각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1966년 한국 바하이 전국정신회()가 구성되었다.

 

바하이 가르침

  • 모든 형태의 편견 버리기
  • 양성간의 완전한 평등
  • 세계의 위대한 종교들의 원천과 그런 종교들의 근본적인 일체성에 대한 인식
  • 빈부격차 제거
  • 범세계적인 의무교육의 실시
  • 각 개인의 독자적인 진리탐구에 대한 권리와 의무
  • 세계 연방 체제 성립(세계 공통어 제정)
  • 종교와 과학의 진정한 조화 인식

바하울라 [1817.11.12~1892.5.29]

바하이 신앙의 창시자는 아랍어로 '신의 영광'을 뜻하는 바하울라라는 칭호를 얻게 된 페르시아 테헤란 귀족 미르자 호세인 알리(Mīrzā useyn Alī Nūri.1817~1892)이다.   바브교() 교주의 수제자로서 활약하였으나, 교주가 처형된 후 2파로 갈라진 1파를 지도, 바하이교를 창시하였다. 이 교파의 운동이 혁명적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오스만투르크 정부의 박해를 받자, 바그다드로부터 콘스탄티노플로 근거지를 옮기고 팔레스티나의 아코에 가서 본부를 설치하는 등 각지를 전전하며 투쟁 ·교세확장에 힘쓰다가 아코에서 사망하였다. <출처:네이버, 위키백과>

 

 

바하올라 영묘와 테라스, 정원....

1987년 바하이 세계본부는 캐나다 건축가 '파리보즈 사바'를 선임하여 전 세계 바하이들의 가장 성스러운 순례지 중 하나인 바압의 영묘에 이르는 길을 18계단으로 된 기념비적 테라스로 설계하도록 하였다.

테라스의 계단들은 산 위쪽으로 1KM에 이르며 계단의 높이는 225M에 달한다. 또한 조경된 정원들의 폭은 60M에서 거의 400M가 되기도 한다. 산 기슭에서 정상까지 보행자 통로를 연결하기 위하여 여러 다리와 지하도가 설치되어서 <예페노프거리>, <하지눋대로>, <아바스거리>를 건널 수 있게 되어있다.

 

테라스와 정원들은 종교적의미는 갖지않고 독특한 양식을 띄며 유미주의적 관점에서 지어졌고, 빛과 물이라는  자연적인 요소가 주로 쓰였다.

가뭄에 잘 견디는 토종나무와 야생화를 심는등 산의 환경과 수원을 보존하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였다.

<출처: 팜플릿>

 

 

 

 

아래 사진에서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 건물들은 모두 그림같은 까페들이다.

얼마나 도심이 깨끗하고 이쁜 지,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는데, 모두 흔들려서리.....

그런데 버스는 계속해서 언덕배기를 오르고 있는것이었다.

그림같은 광경의 연속이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 버스가 서는것이었다.

 

헉!! 이게 뭐야~~~

눈앞에 펼쳐진 장관앞에 할말을 잊었다.

그리고 올라오면서 정신없이 눌렀던 사진은 모두 삭제......

피사체가 너무 장관이라 앵글을 어디에다 놔도 그대로 그림엽서가 되었다.

모두들 사진 찍느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순간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스라엘의 또 다른 면....

 

사실 예루살렘은 엄격히 말해서 이스라엘이 아니다. 한 교회안도 여러나라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스라엘하면 오로지 예루살렘,,,그것도 Old Sity만을 생각하게 된다는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일인가!!

하긴 예루살렘 Old Sity 투어를 마치고 나와서 한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

"나는 십자가의 길이 예수님 돌아가셨을때의 그 모습....영화속에 나오는 그대로인 줄 알았어~

 그랬더니 온통 가게로 꽉 차있네 그려~ " 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다.

어쩌면 그 어르신 말고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나도....ㅎㅎㅎ

 

 

바하이 영묘 테라스와 정원도 장관이지만, 멀리 보이는 바다까지 이어져 더욱 환상적이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배까지도....한폭의 그림으로 연출된다.

날씨가  좋아서 더욱 !!

 

 

 

 

 

 

 

 

 

 

 

 

 

 

한참 위에서 사진 찍느라 정신 못차리다가 드디어 슬금 슬금 밑으로 내려가서 포즈를 잡는다.

그리고 카메라맨은 위에서 소리친다.

찍는다~~~ 하나, 둘,셋!!

 

 

 

 

 

 

 

 

 

 

 

 

햇살이 좋아서인 지, 꽃색깔이 죽여준다.

한참 감탄하고 있는데, 문득 이쪽으로 다가서는 아랍여인들.... 

이 여인들이 쓴 히잡이 꽃과 어우러져서 또 한폭의 그림이다.

빨강, 파랑, 흰색. ....

검정색, 빨강색 의상까지....

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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