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서유럽 (2003.12~2004.1)

13.스위스-하이디산

나베가 2010. 2. 9. 09:37

어제 파리투어는 지난 여행과 거의 코스도 같았을 뿐만 아니라 전날 밤 우리끼리의 몰래 야밤 도주하여 꿈같이 재밌는 시간을 보낸 터라,

베르사이유 궁전을 제외한 다른 코스는 신바람이 나기 보다는 좀 지친여정이었다.

날씨도 너무나 추웠고, 사람들도 너무나 많아서 추위에 줄서서 기다리다 지쳐버려 기쁨을 빼앗겨 버린 형국이랄까.....

 

하긴....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 가는 곳이었다면 아마 추위쯤은 아랑곳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파리에 갔을때 그  놀라움과 감동을 생각한다면...ㅎㅎ

 

 

 

스위스 루째른으로의 여정이었다.

나는 지난 여행때의 루째른에서의 감동이 아직도 그대로 생생하여 그와 똑같은 곳을 또다시 돌아다녀볼 생각에 맘이 꽁딱거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코스가 바뀐단다.

루째른 시내에서 투숙하고 담날 아침에 하이디산을 오를예정이었는데, 눈이 오는 관계로 아예 하이디 산 중턱 숙소로 오늘 옮긴다는 것이었다.

아~~ ㅠㅠ 

밤 늦도록, 그리고 담날 새벽에 일어나서 지난 여정처럼 새벽시장도 보고, 안개낀 루째른 호수도 보고....

근처 성당에 가서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연주소리도 들어보고.......

머릿속에 가득 그려졌던 나의 일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섭섭함은 잠깐.....하이디 산을 오르면서 살포시 내리는 눈발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눈꽃과 설경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한 복판에서 잠을 잔다니....그저 나는 어느 순간 소설속 주인공이 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린 주변을 산책했다.

호텔 근처에 성당이 있다해서 우린 그곳에 잠깐 들렀다.

그리고 담날  유미씨와 함께 새벽미사에 참례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여행에서 잠자는것 만큼 아까운게 없는터라 난 기꺼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까지 마치고 유미씨 방을 두두렸다. 그러나 깊은 잠에서 채 헤어나지 못한 유미씨....'언니 혼자 가세요~'한다.

헉!!

 

 

 

 

 

 

잠시 주춤했지만.....'그래~ 혼자 가는거야~' 하고 당당히 호텔을 나섰다.

헉!! 이상하다??...새벽미사가 있다면 그래도 성당주변에 불도 밝혀있어야 하고 사람들도 있어야 할텐데....

도대체 사람의 기척은 커녕 주변은 칠흙같이 까맸다.

'새벽미사가 없나?? 그래도 한번 가보는 거야~'

용기를 내서 깜깜한 어둠을 뚫고 성당앞까지 갔다.

갑자기 뒷머리가 땡겨오면서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돌아갈까?? 그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여기까지 나왔는데....한번 성당에 가보기나 하자~"

 

어둠을 뚫고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올랐다.

계단 양옆으론 밑에서부터 성당 정문앞까지 무덤이 주욱~~

더구나 무덤앞엔 빨간불이 좌아악 켜져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두려움....아니, 공포...."

나는 계단 중간까지 올랐다가 미사가 없는게 확실하다고...결론짓고 정신없이 달려내려왔다.

ㅠㅠ

 

 

에잇~ㅠㅠ

공포심에 호텔앞까지 단숨에 달려내려왔지만 그대로 들어가기가 섭섭하여 쇼윈도우를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멀찌감치서 말을 건넨다.

돌아보니 호텔 발코니다.

 

"한국 사람 맞지요? 어디갔다 오시나요?"

"네~성당에 새벽미사 갔다가 무서워서 도로 내려왔어요~"

"그럼...제가 보디가드 해줄까요? 나는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이예요~"

 

ㅎㅎ

그렇게 해서 아저씨는 내 보디가드가 되어 성당에 다시 올랐다.

그 사이에 어둠은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아마 미사가 없을겁니다. 그냥 여기서 기도하고 가지요~"

우린 성당을 한바퀴 돌고 성모동굴 앞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우린 새벽데이트(?)를 했다.

아저씨는 미국에 사시고 한국에 교환교수로 잠시 오셨다가 시간이 있어 여행길에 오르셨다고 한다.

자상한 아저씨와의 새벽데이트는 아저씨도 평생 처음이라고 하셨고, 나역시 처음....ㅋㅋ

1시간여를....깜깜한 어둠이 어슴프레하게 걷히는 그 순간까지... 그림같이 아름다운 하이디산 자락을 산책했다.

어둠이 걷히면서 구름인줄 알았던 설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은...그야말로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아저씨네 팀은 우리보다 일정이 한시간이 빨랐기에 헤어지고, 난 좀 더 여유롭게 산책을 계속했다.

시간이 되어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팀도 하이디 산으로 갔다.

헉!! 그런데 우리보다 1시간이 빠른 일정으로 움직였던 그쪽 팀도 같은 시간에 하이디 산 입구에서 만나다니...

어느 순간 아저씨는 사람들을 뚫고(??ㅋㅋ) 내 옆자리에 서계셨다. ㅋㅋ

그렇게 해서 우린 외국인 2명과 함께 리프트에 올랐다.

아저씬 자상하게도 외국인에게 양해를 얻어가며 굳이 리프트에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ㅎㅎ

 

 

 

리프트를 타고 그림같이 펼쳐진 산아래를 내려다 보니 까마득히 아래엔 수많은 스키어들이 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스키를 탈줄 모른다고 하자....스키를 배워서 즐기라고 조언을 하셨다.

얼마나 멋지냐고.....

아닌게 아니라 적어도 이 순간엔 저 새하얀 눈위를 쾌속질주하고 있는 스키어들 만큼 부러운 사람은 없었다.

 

 

 

새하얗다 못해 눈이 부신....푸르른 형광빛에 마음까지 시릴정도였다.

처마엔 고드름까지 주렁 주렁 매달려있을 만큼 추운날씨였지만....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맘이 들떠 이곳 저곳을 누비며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가 연신 찍어주신 사진들....ㅋㅋㅋ

 

 

 

 

 

 

 

 

 

 

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
Bach Cantata BWV 82a
Ich habe genug 나는 만족하나이다
Europa Galante
Conducted by Fabio Bio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