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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프로포즈

나베가 2008. 4. 20. 11:06
김지연의 프로포즈
  김지연바이올리니스트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린 콘체르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해요. 제가 애용하는 (그리고 아마도 가장 외교적일지도 모르는) 답변은 “모두 좋아하지만, 꼭 하나를 꼽으라면, 지금 이 순간 제가 연습하고 연주하고 있는 콘체르토”라는 답변입니다.
다가오는 핀란드와 미국(달라스)에서의 공연을 위해서 요즘 준비하고 있는 콘체르토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외 프로코피에프 #2, 브람스 더블과 모차르트 #3)과 몇 곡의 실내악 그리고 리사이틀 프로그램이에요.


처음 차이코프스키의 콘체르토를 접했을 때가 생생히 기억나요. 저는 10살이었어요.
한국일보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되었고, 김남윤 선생님의 지도하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 후입니다. 큰 언니는 그 당시 미국 유학 중이었고 여름방학, 겨울방학이면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오곤 했어요. 귀국하면서 동생들의 선물을 챙겨 왔었죠. 귀국하는 언니에게 제가 처음으로 받은 선물은 멘델스존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핀커스 주커만이 연주하는 LP였어요. 구레나룻이 있는(!) 어린 주커만의 사진이 커버에 붙어 있는 LP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의 소리는 그 깊이, 진함과 열정이 인상적이어서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아 어요. 차이코프스키의 콘체르토에는 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 중에서도 특히 2악장은 요즘도 들을 때마다 감동에 젖어 눈물이 고여요. 그 때는 아직 콘체르토를 배우지 않았을 때였지만 하루 빨리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 2악장을 듣고 또 들었어요. 목관 악기와 솔로 바이올린 의 대화, 잠시 숨을 죽인 뒷배경의 현악기가 이루는 조화는 천재적이에요. 화려함과 상상력을 모두 갖추고 있지요! 지금도, 클라리넷 솔로와 함께 첫 번째 테마로 곡이 다시 돌아오는 부분을 들으면 소름이 끼쳐요.
저의 다른 언니는 발레를 공부하고 있었고 언니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어요. 특히,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을 보러 갈 때 가장 신이 났는데 두 작품 모두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했잖아요.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작곡하기 딱 일년 전에 <백조의 호수> 초연이 열렸어요. 어쩌면 그래서 차이코프스키의 콘체르토, 특히 목관 악기가 등장하는 2악장이 <백조의 호수>와 같이 유난히 동화 속 분위기를 뿜어내는지도 몰라요. <호두까기 인형>의 러시아 민속춤도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마지막 악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차이코프스키는 스위스 제네바 호숫가의 클라랑이라는 한 리조트에서 그간 시달리던 우울증이 치유될 무렵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작곡했어요. 밀유코바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차이코스프키는 사실 동성애자라서 밀유코바와의 결혼은 단지 의무감에 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차이코프스키가 클라랑에 도착한 다음 날, 모스크바 콘서버토리에서 공부하고 있던 요제프 코텍이라는 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를 방문했어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도움으로 차이코프스키는 콘체르토를 순식간에 완성할 수 있었지요. 2악장 안단테를 칸조네타로 바꾸는 과정을 포함해서도 콘체르토의 초안을 준비하는 데는 한 달도 채 안 걸렸어요. 그때 삭제한  ‘Meditation’라는 제목의 안단테 부분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부작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 의 도입 부분이 되었고요. 작곡을 할 때와는 달리 콘체르토가 완성된 후에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쳐왔어요. 새 작품을 선보여야 했는데 아직 명성이 높지 않은 요제프 코텍은 적절한 연주자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차이코프스키는 헝가리 출신 솔로이스트 레오폴드 아우에르에게 콘체르토를 바쳤지만 아우에르는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라며 거절했어요. 그 후로도 몇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차이코프스키는 마침내 아돌프 브로드스키를 설득해 콘체르토를 처음 무대에 올리게 되었어요. 브로드스키의 연주는 크게 나무랄 데 없었지만 초연을 비판하는 리뷰도 많았어요. 영향력 는 비엔나 출신 평론가 에두아르드 한스릭도 공연을 비난한 사람 중 하나였고요. 한스릭은 초연을 천박하고 불쾌한 공연이라고 묘사했어요.


차이코프스키는 위와 같은 좋지 않은 리뷰를 연주자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브로드스키에게 아름다운 연주를 해주어 감사의 표시를 전하며 콘체르토를 아우에르가 아닌 브로드스키에게 바쳤어요.
수많은 비난을 뒤로하고 차이코프스키는 용감하게 작업을 계속해서 그 후로도 심포니, 오페라, 발레 등을 작곡하고 호평을 따냈어요.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비난했던 한스릭도, 비록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후였지만,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칭찬했지요. 콘체르토의 연주를 거절했던 레오폴드 아우에르도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작곡가를 찾아가 작품을 잘못 평가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고 해요. 아우에르는 뒤늦게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본인의 레퍼토리에 추가했고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들로도 꼽히며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하이페츠와 밀스타인에게도 이 작품을 가르쳤다고 해요.


차이코프스키는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모두 드러냈어요. 현악기와 함께 시작하는 도입 부분에서부터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까지, 차이코프스키는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열  어린 소녀의 마음에도 깊은 감동을 주는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하지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David Oistrakh (violin)

Franz Konwitschny (conductor)

Staatskapelle Dresden


 

 

 

1악장 : Allegro moderato (18'56)

 

 

 

2악장 : Canzonetta : Andante 

 


 3악장 : Finale : Allegro vivacissimo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