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06년)

NHK심포니 초청공연/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레온 플라이셔. 2006.6.20

나베가 2006. 6. 19. 15:05

 

'거장들의 만남'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레온 플라이셔

그리고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금호 세계 10대 오케스트라 초청 시리즈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세계 10대 오케스트라 초청 시리즈”의 다섯 번째 시리즈로 2006년 6월 20일 일본의 대표 오케스트라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을 기획하여 그 화려한 맥을 잇는다. 총 2회로 이루어진 이번 내한공연 중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주최로 6월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의 1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 공연소개

이번 공연에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지휘자로 변모, 2004년부터 NHK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서 지휘봉을 잡아온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함께 내한,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을 비롯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가로서, 1970년대에 지휘자로 거듭난 후 세계적 지휘자로서의 성공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협연자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는 오른손 마비의 장애를 극복하고 35년간 왼손의 피아니스트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3년 전 다시 양손으로 연주하며 재기에 성공해 세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피아노의 진정한 거장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한국인의 정서에 친숙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계획으로 더욱 기대를 모은다.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 이름만으로도 음악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두 거장과, 아쉬케나지를 지휘자로 영입한 후 더욱 정제되고 유려한 사운드로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거듭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2006년 6월 한국 클래식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 프로그램

Toru Takemitsu_ 토루 타케미츠
From Three Film Scores / 쓰리 필름 스코어 中
-Music of Training and Rest 뮤직 오브 트레이닝 앤드 레스트
-Waltz 왈츠
-Nami no Bon 파도의 접시

Mozart_ Piano Concerto No.12 in A major, K.414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12번

Intermission

J. Brahms_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브람스 심포니 1번 다단조

 

공연후기.....

 

2006년 봄부터 시작된 공연장으로의 출근은 6월에 들어서 연초에 패키지로 예약을 해놨던

LG아트센터의 공연까지 겹쳐져서 극에 달했다.

5월30일부터 시작되어 31, 6/2, 6/3, 6/4, 6/7, 6/8,

6/15, 6/16, 6/17, 6/18, 6/22, 6/23, 6/25, 6/30

더우기 24일은 친정부모님 생신이라서 지방에도 내려갔다 와야 하고....

그래서 20일 (화) 공연이 욕심이 났지만 예매를 포기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공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도 탄탄대로 였던 레온 플라이셔에게 오른손 마비라는 청천 날벼락이 떨어졌지마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한손으로 연주활동을 계속했을 뿐 아니라, 지휘자로서도 우뚝섰고,

교육자로서도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갔던 그였기에....더우기 이젠 40년만에 재기를 해서 두손으로

연주를 하게 된 .....휴먼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인 '레온 플라이셔'

그의 나이를 생각해봐도 이번 내한 연주를 결코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망설이다  보니 VIP,R석만 남고 전석이 매진이 되고 만것이다.

하지만 꼭 사정이 생겨서 포기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란걸 잘 아는 지라,

포기하지 않고 매일 티켓링크에 들어가서 결국은 내 수준에 맞는 티켓을 손에 잡게 되었다.

그의 연주모습이 다 보이는 합창석 H열.1열.

 

의기 양양 기쁨이 넘쳤지만, 지난 주 토요일날 성지순례를 갔다가 허겁지겁..포스코 김현철

콘서트에도 갔었고, 18일 안네소피 무터 공연에, 19일 월요일날은 합창연습후 공연을 앞두고

임원회의가 있어서 집에 1시에 들어왔고, 화요일 오전엔 또 성서공부 봉사자 모임이 있었고,

오후에 레슨....

정말 파김치가 되어 예당에 5분전에 도착해 뛰어 들어갔다.

 

숨도 채 고르지 못했는데...8시가 되자 1분의 오차도 없이 연주자들이 들어왔고,

이내 들어선 아쉬케냐지의 지휘는 시작되었다.

 

이름도 생소한 [토루 타케미츠]....

그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한순간에 나의 피곤함은 사라졌다.

생각밖의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과 그리고 그들 NHK, 아쉬케냐지의 연주였다.

2번째 곡에서는 무슨 올갠(?)같이-소리는 전혀 아닌, 너무나 영롱한 소리였지만- 생긴것을 

아쉬케냐지가 연주를 하면서 지휘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이제 피아노를 움직이느라 무대가 번잡해졌다.

그리고 기다렸던 플라이셔가 들어섰다.

감미롭기 그지없는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12번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12번은 처음 들어봤지만, 모짜르트의 음악은 거의가 낯설지 않다.

여전히 감미롭고, 밝다.

 

나도 모르게 그의 손에서 시선이 떠나질 않으며 몰두하게 만들었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피아노를 칠수 없었던 그의 오른손에...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에 잠시 천진무구했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비춰졌던 

모짜르트의 젊은날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그의 밝은 심성과 웃음...이토록 아름답고 밝은 음악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나를 감쌌다.

어느새 연주는 끝이났다.

앵콜연주를 들을 수 없어서 좀 서운했지만...

인간 승리의 연주자의 연주를 그렇게도 가까이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인터미션에 잠깐 나가 커피를 한잔 마시느라 또 헐레벌떡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109명의 NHK연주자들이 꽉 들어찼고, 드디어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빈틈없이 꽉 들어찬 느낌...

너무나 웅장한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소리가 나를 압도했다.

 

피아니스트로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아쉬케냐지...

더우기 70이 되어버린 나이...

그래서 사실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그 파워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 지...

그의 표정 하나 하나와  힘에 넘치는 지휘모습...

무엇보다 연주가 ....

정말 감동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주가 끝나자 마자 기립하여 열광했다.

기다릴것도 없이 두어번의 커튼콜에 금방 앵콜곡으로 답례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클래식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한 곡...

그러나 그 연주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 한바탕 쓸고 지나칠 정도로 대단했다.

너무나 깊고 풍부한....

두번째 곡은 '아리랑'을 연주했는데, 외국인인 그들이 어찌 그리 우리정서를 잘 표현해 내는 지...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나는 기립하여 열열히 박수를 보냈다.

 

아쉬케나지도 플라이셔도 나이가 너무 많고, NHK심포니도 그리 큰 기대를 안했었는데..

정말 상상외로 기대이상...아니, 정말 감동이었다.

그리고

정말 너무도 잘 선택했다는....감동까지...

 

발코니 식구를 만나 까페 모짜르트에 들러서 커피를 한잔마시고, 감동을 잠깐 추스리고

예당을 나섰다.

 

오늘 음반으로 다시 들었지만, 어제의 그 소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 풍부한 소리가 가슴 속 가득히 차올라 요동을 치는 듯 하다.

 

2006.6.21

베가.

 

 

  연주자 프로필


지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Vladmir Ashkenazy)
(1937. 7. 6. ~ 현재 / 고르키(Gor’kiy) 태생)

 

 



1955년 제5회 쇼팽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인 베네뎃티 미켈란젤리가 1위와 2위의 순위에 항의하여 사퇴를 한 사건이 있다. 이 때의 2위가 바로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이다. 이때 1위의 아담 하라셰비치와 그 후의 활동과 예술적 성과를 비교한다면 순위의 부당성이 스캔들처럼 아쉬케나지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는 1937년 7월 6일 모스크바 서쪽의 도시 고르키에 있는 음악가의 집에서 태어났다. 6세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7세 때에는 학생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하이든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9세 때에는 모스크바 음악원 부속의 중앙 음악 학교에 입학, 산베티안에게 사사했다. 1955년 18세때 이 10년제의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쇼팽 국제 콩쿠르에 출장 2위에 입상하였고,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명피아니스트인 레프 오보린에게 사사했다. 이듬해인 1956년 벨기에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 출장하여 당당히 1위로 우승하였고, 이로 인한 연주회에서 경이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후로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1960년에 음악원을 졸업했다. 1961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유학중이던 아이슬랜드의 여류 피아니스트와 결혼하였고, 그 이듬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출장하여 영국의 존 오그던과 함께 공동 1위로 입상하였다.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대회 참석을 망설였는데, 소련 당국의 반강제적 협박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련측은 안방 잔치 임에도 불구하고 1회 대회에서의 우승을 미국의 반 클라이번에 빼앗긴 복수로 아쉬케나지의 출전을 동요했다고 했다.
아무튼 이로서 아쉬케나지는 완전히 세계적으로 제 1급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계속되는 소련정부의 간섭과 통제에 반발하여 63년 서방으로(영국)으로 망명하게 되고 이후 아쉬케나지의 피아니즘은 더욱 활짝 피어 국제적인 대가의 위치에 올랐다. 1968년 부터는 아이슬랜드의 레이캬비크에서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있다. 그는 아이슬랜드에서 2년마다 열리는 음악제의 고문이 되었고, 1969년 조국 소련에 귀국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1974년 소련 국적을 버리고 아이슬랜드 국민이 되었다.

그의 피아노 음은 선명하면서도 산뜻한 기교가 도처에서 찬연하게 빛나고 있는데, 종소리처럼 투명한 약음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을 띠고 고조하는 최강음까지 다양하고 세밀한 음색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런 테크닉을 무기로 그는 레카토의 선율과 화려한 피아노적 패시지, 정열적인 화음을 교차시킨다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그는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지휘자로서의 활동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데, 이는 피아노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음악적 발로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자신의 음을 피아노보다 더 큰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려는 그의 뛰어난 능력은 인정을 받아 국제적인 지휘자로 인정받고 있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수석 객원 지휘),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음악감독),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수석 객원 지휘자), 베를린 독일 심포니 오케스트라(상임 지휘자 및 음악감독) 등을 역임하였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블라드미르 아쉬케나지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2001년에는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여 말러 7번을 연주하였다. 2002년에는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콘서트 홀에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휘 및 협연을 하였는데 1960년대 서방 망명 이후 조국 러시아에서 갖은 첫 피아노 연주여서 화제를 낳기도 하였다.

블라드미르 아쉬케나지는 2005/2006 시즌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여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아이스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명예지휘자를, 유럽 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협연: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cher)

 



“나는 갑자기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손으로 연주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음악 그 자체였습니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교육자로 널리 알려진 레온 플라이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4세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8세 때 첫 독주회를 가진 그는 9세 때 당대 최고의 독일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의 애제자가 되었으며, 16세인 1944년 이르러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며 화려하게 데뷔 무대를 가졌다. 플라이셔는 5대에 걸친 베토벤의 제자인데, 이는 플라이셔의 스승 슈나벨이 폴란드 피아노의 거장 테오도르 레셔티츠키를 사사했고, 레셔티츠키는 베토벤을 직접 사사한 카를 체르니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플라이셔는 “슈나벨에게 배운 것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닌 ‘열정’ 이었다.”고 말한다.

1952년 벨기에의 저명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미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플라이셔는, 그 후 약 12년간 세계 정상의 피아니스트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는 세계를 무대로 연주 활동을 펼쳤고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들과 협연하였으며, 세계 각지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조지 셀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베토벤, 브람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등 수없이 많은 명연과 명반을 남겼다.(현재 이 음반들은 모두 CD로 발매되어 있다)

플라이셔는 1965년 갑자기 그의 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는 마비 증세를 맞는다. 갖가지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결국 37세 때 그는 연주생활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근육긴장이상증’이라고 알려진 이 신경계통의 증상은 삶의 절반 이상 동안 그를 괴롭혔으며, 최근 새로운 치료법의 도움으로 증상에서 해방되어 재기하기까지 그의 연주생활의 전환점이 되었다. 증세가 호전된 후 수년간 그는 가끔씩 양손으로 연주했고, 40년 만에 양손으로 연주하여 출시한 음반 를 발매했다. 이 음반은 바하와 스칼라티 부터 쇼팽, 드뷔시의 곡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슈베르트의 기념비적인 피아노 소나타 Bb 장조가 수록되어 있다.

오른손 마비로 인해 연주자로서의 경력에 갑작스런 타격을 입은 후 약 40년 동안, 그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레퍼토리를 익히며 왼손 피아니스트로 더욱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쳤다. 플라이셔는 “지난 3,40년간 나는 어떤 곡을 연주하든지 간에, 손의 숫자나 손가락의 숫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음악 그 자체로서의 개념에만 충실했다. 다시 말해서, 기악 편성은 중요하지 않게 여겼고, 음악의 본질과 내용이 그 자리를 대신하도록 했다.”라고 회고한다. 그는 1967년부터 지휘를 시작했고, 지휘자와 교육자로서 새로운 명성을 쌓아가는 한편 양손 연주의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플라이셔는 1967년 케네디 센터에 <시어터 챔버 플레이어스>를 설립하고, 1970년 아나폴리스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갔다. 1970년 뉴욕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발>에서 지휘자로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73년 볼티모어 심포니의 부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보스톤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몬트리올 심포니,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매 시즌 뉴 저팬 필하모닉의 콘서트 시리즈를 지휘하며 상임지휘자로 지속적으로 활동해왔으며, 유럽 챔버 뮤직 오케스트라와 구스타브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교육자로서의 활동은 레온 플라이셔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명망높은 교육자로서 그는 1959년부터 피바디 음악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과 토론토의 로얄 콘서바토리에서 교직원으로 재직 중 이다. 1986년에서 1997년까지 그는 탱글우드 뮤직 센터에서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아스펜, 루체른, 라비니아, 베르비에 페스티벌 등에서 세계 각지의 음악 학도들에게 교육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또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파리 음악원, 생 장드 뤼즈의 라벨 아카데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학교, 예루살렘의 미슈케노트, 그리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꾸준히 마스터 클래스를 가졌다.


 

오케스트라: NHK 교향악단 (NHK Symphony Orchestra)



1926년 10월 5일 일본 최초의 전문오케스트라인 “뉴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발족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이후 “저팬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개칭하였다가 후에 모든 재원을 NHK(일본방송협회)로부터 출자 받게 되면서 1951년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올해로 탄생 80주년을 맞이하는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로서, 음악감독 조셉 로젠스톡와 함께 1927년 2월 20일 첫 연주를 시작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조차도 연주를 멈추지 않으며 꾸준히 그 행보를 지속해왔다.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현재 총 109명의 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60년 이래 정기적으로 해외 무대에서의 오페라, 해외순회 공연, 여러 장르의 위촉 공연 외에 메이저 레코딩 회사들과의 음반 녹음 작업, NHK 라디오 및 텔레비전에 출연 등을 통해 그들의 존재감을 널리 알려왔다. 또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로브로 폰 마타치치와 같은 세계 정상의 지휘자들을 초청함으로써 수 많은 기념비적인 연주를 해오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NHK홀과 산토리 홀에서 열리는 54회의 시즌 정기 연주회를 포함하여 연간 약 120 여 회의 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모든 공연들은 NHK World Service의 NHK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유럽, 북미 및 남미, 아시아 전역에 걸쳐 중계되고 있다.

2005-06 시즌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음악감독)는, 1998년부터 부임한 음악감독 샤를 뒤투아(명예 음악감독), 볼프강 자발리쉬(명예 지휘자), 오트마르 주이트너(명예 지휘자), 호르스트 슈타인과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를 비롯, 상임 지휘자 히로유키 이와키, 유조 도야마, 히로시 와카스기 등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세계적 입지를 한층 더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넬로 산티, 스타니슬라브 스크로바체브스키, 준 마클, 파비오 루이지(Fabio Luisi)와 같은 뛰어난 객원 지휘자들을 꾸준히 초청, 연주해 오고 있다. 
 

◈ 프로그램 노트

Toru Takemitsu/토루 타케미츠
From “Three Film Scores”/ “쓰리 필름 스코어”中
  -Music of Training and Rest /뮤직 오브 트레이닝 앤드 레스트
  -Waltz / 왈츠
  Nami No Bon /파도의 접시

1930년 도쿄 태생의 타케미츠는 서양영화, 일본영화, 장르를 불문하고 일년에 200-300 편 정도를 보았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관심이 가졌다. 그는 영화의 스토리 전개 자체보다는 영상과 음악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구성되어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대사의 뜻을 알기 힘든 외국영화를 보더라도 “화면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타케미츠에게 영화음악이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나까히라 감독의 작품 ‘미친 과실’을 비롯하여 그의 일생 동안 100편 가량의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타케미츠는 1995년 스위스에서 열린 영화음악페스티벌에서 제1회 테마 작곡가로 선발되었으며 그 시절, 미리 작곡해 두었던 영화음악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곡이 바로 이 3개의 영화음악이리는 곡이다. 말년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전위음악의 관능성을 회복시킨다”는 생각을 가진 타케미츠는 자신의 음악에 ‘노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다. 그는 호흡이 통하는 멜로디야말로 음악의 궁극적 즐거움이라 생각하였고 이 세 개의 곡을 듣고 있노라면 ‘노래’를 사랑했던 작곡가의 모습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번 초청공연에는 이 가운데 첫번째 곡과 세번째 곡이 연주 된다. 세개의 영화음악은 1995년 5월9일 구스타트 영화음악제에서 윌리암 부톤의 지휘로 영국관현오케스트라가 초연하였다. 이 중 첫번째 곡은 1959년 제작된 일본의 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 사용되었던 음악으로 브루스 풍의 그네를 타듯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느낌을 표현하며 특히 스윙하는 듯한 낙상의 느낌을 주는 선율의 흐름이 이 곡의 특징이다.) 타케미츠는 영상이 가지고 있는 엄격한 표정에 “부드러움을 더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제3곡은 1966년에 개봉된 한 영화의 ‘타인의 얼굴’에 삽입된 곡이다. 귀족적인 분위기를 갖는 다소 고전적인 왈츠의 리듬을 타고 페이소스가 있는 느낌의 단조로 이어져 나가는 분위기라 이 곡을 주도한다.  1983년 작 나미 노 봉(파도의 접시)은 NTV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작곡된 곡이다. 하와이에 사는 일본계 이주민 1세대와 2세대가 태평양 전쟁의 체험을 통해 느끼는 삶의 갈등에 대해 그린 드라마로 드라마의 내용은 약간 무거우나 오히려 음악은 느긋하며 여유로운 분위기로 작곡되어 있다.

Mozart_ Piano Concerto No.12 in A Major, K.414
모짜르트_ 피아노협주곡 제12번 가장조, K.414

  Allegro in A Major, 협주풍의 소나타 형식
  Andante, in D Major,
  Allegretto, in A Major, 론도 형식

이 곡은 1782년에 비엔나에서 작곡이 되었으며 모짜르트의 비엔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의 최초의 시리즈(K.413, K.414, K.415)중에서 모짜르트가 1783년 부활절 음악회에서 초연한 곡이다. 가장 순수하고 우아하고 발랄한 선율. 이 곡의 특징은 바로 이것이다. 모짜르트 또한 그의 편지에서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중간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주화려하고 듣기에 좋으며 공허함이 없는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1악장은 특별한 테크닉보다는 주제의 아름다움 자체가 악장 전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 1주제에 등장하는 섬세한 리듬과 2주제의 반음계적 진행은 이 곡의 주제에 우아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2악장은 요한 크리스찬 바하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모짜르트는 그의 부고를 듣고 바하의 작품으로부터 멜로디를 차용하여 사용한다. 이 악장은 같은 해에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의 최초의 시리즈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악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악장은 가볍고 사랑스러운 주제와 차분하고 진지한 주제의 대조로 곡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주제 자체는 모짜르트로서는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주제간의 대조를 이용하여 연속적인 통일성을 만들어내서 자연스럽게 곡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역시 모짜르트라는 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J. Brahms_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브람스_ 교향곡 제1번 C단조, 작품68
 
  Un poco sostenuto – Allegro
  Andante sostenuto
  Un poco Allegretto e grazioso
  Finale: Adagio – Piu Andante – 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

브람스는 당시 낭만파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조류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신고전악파’ 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그는 단 4개의 교향곡만을 남겼는데 그것만으로도 베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데 부족함이 없는 명작들이다. 그 전설의 시작이 바로 21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통해 빗어낸 제 1번 교향곡인 것이다. 이 곡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걸린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곡 전체를 통해 인간미 넘치는 삶에 대한 투쟁과 고뇌 그리고 체념의 깊고도 깊은 성찰이 느껴진다. 1867년 드디어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그의 막역한 친구이자 위대한 지휘자 한스 본 뷜로우(Hans von Bűlow)는 이 곡을 그간 발표된 베토벤의 9개 교향곡에 필적할만한 곡이라며 ‘제 10번 교향곡’으로 칭했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격렬한 생사의 현장 한 가운데 놓인 듯 휘몰아치는 듯 하면서도, 어느 순간 곁에 다가온 화해의 목소리가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하게 만드는 1악장 Un poco sostenuto – Allegro, 이어 Andante sostenuto 2악장은 1악장에서의 미묘한 기운을 E장조의 가볍고 발랄한 악보에 담는 동시에 스산한 기운을 고상하게 그려내며 앞 악장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3악장은 일반적으로 스케르쵸 등의 구성을 답습했던 당 시대 곡들과는 차별화된 구조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안식과 평온함에 둘러싸여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듯한 웅장한 끝맺음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 교향곡은 제1악장과 제4악장에 완만한 서주부를 갖고 있는데 이는 곡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가 함축되어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당시 교향곡 작곡법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3악장에서는 브람스가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전반적으로 고전악파의 구성을 선호하면서도 그만의 새로운 감각으로 채색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곡은 응당 ‘제 10번 교향곡’이 아닌 ‘브람스 제 1번 교향곡’으로 불려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