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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국제 음악제(2005년) -브라디미르 펠츠만

나베가 2006. 5. 15. 03:06
블라디미르 펠츠만과 Stars from Great Mountains - 2005 대관령국제음악제 in Seoul
   
일자 : 20050811~ 20050811
시간 : 8:00 pm
장소 : 호암아트홀
티켓 : S석 4만원, A석 3만원, B석 2만원
Club BALCONY Member ↓20%
 
기획 : 크레디아
 
 
출연 : 블라디미르 펠츠만 (피아노), 존 권 (바이올린), 안드레즈 디아즈 (첼로), 토비 애플 (비올라)
 

  

신비의 러시안 선율의 주인공과 대관령국제음악제 드림팀의 만남!
블라디미르 펠츠만
& Stars From Great Mountains
Vladimir Feltsman & Stars From Great Mountains

  

한국의 아스펜 뮤직 페스티발을 꿈꾸는 대관령국제음악제의 드림팀을 서울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5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출연을 위해 내한한 러시안 피아니즘의 대표적인 거장, 블라디미르 펠츠만이 바이올리니스트 존 권, 비올리스트 토비 애플, 첼리스트 안드레즈 디아즈와 함께 호암아트홀과 대관령국제음악제가 공동주최한 “2005 대관령국제음악제 in Seoul”의 무대를 2005년 8월 11일 호암아트홀에서 꾸밉니다.
호로비츠를 잇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1987년 미국으로 망명이후, 미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특유의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선율과 독특한 색깔로 평단과 음악팬들의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바하와 베토벤, 모차르트의 해석에 탁월한 감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번 무대에는 특별히 대관령뮤직페스티발의 음악감독인 강효의 요청으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선보이는 데, 강효 음악감독은 지난 아스펜 뮤직 페스티발에서 펠츠만의 무소르그스키 연주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특별 요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연주회를 가지게 되는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존 권, 토비 애플, 안드레즈 디아즈와 함께 독주와 실내악을 결합한 다양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거장의 다양한 면모와 그와 함께하는 또 다른 스타들까지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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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펠츠만 Vladimir Feltsman | Piano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비로운 음색과 러시아와 서유럽의 그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한 색깔을 훌륭하게 자아내며 전 세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끊임없는 주목과 사랑을 받은 아티스트이다.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1952년 모스크바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6세 때 피아노를 시작하였고, 11세 때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협연으로 데뷔했다. 1969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주 음악원에 입학, 야곱플리어 교수의 지도 하에 피아노를 공부했고, 1971년 파리의 마르그에리테 롱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소련을 비롯하여 유럽, 일본 등지에서 무섭게 떠오르게 된다.
펠츠만은 이미 10대 때 많은 레퍼토리를 섭렵하였고, 그 때부터 자유롭고 개성있는 해석으로 주목을 받았다.

 

음악적 자유를 위해 선택한 미국으로의 망명, 그리고 성공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바흐 등 서유럽 작곡가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활동을 해왔던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서유럽의 모든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냉전시대의 소련 정부의 독재적인 문화적 통제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1979년 그는 음악적 자유를 위해 소련으로부터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신청한다.
그러나 소련정부는 그에게 공공장소에서의 연주활동이 모두 금지하고 해외활동을 금지하였고, 그 후 8년 동안 그는 비밀리에 망명을 준비하여 1987년 소련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망명은 당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그는 러시안 피아니즘의 특유의 색깔과 그만이 표현해내는 신비로운 선율을 무기로 미국과 유럽 음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방대한 레퍼토리, 그리고 바흐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데, 그의 레퍼토리는 바로크에서부터 20세기 현대음악에까지 방대하다. 특히 펠츠만은 음악적 인생의 대부분을 바흐의 음악을 연구하는 데에 쏟아, 뉴욕의 티쉬센터(Tisch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에서 바흐의 모든 건반음악을 선보이는 “바흐 건반음악 전곡 시리즈 연주회”를 열었는데, 이 기획연주는 4번의 시즌에 걸친 어마어마한 대작업이었다. 그는 바흐에 대한 레코딩 작업도 활발히 벌여 모두 6장의 바흐 앨범을 선보였다. 그 외에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브람스, 메시앙,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음반으로 선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특유의 러시안 피아니즘을 바탕으로 2003년 1월에는 링컨센터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와 함께 쇼스타코비치부터 현시대의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까지 현대 러시아 음악을 파노라마로 선보이는 시리즈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또한 블라디미르 펠츠만은 링컨센터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의 음악감독으로서 활동할 예정이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
미국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부터 정기적으로 초청받는 블라디미어 펠츠만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콘서트 시리즈와 음악제에서 연주하고 있다. 그는 매년 연속으로 라비니아 음악제에, 8월에는 아스펜 음악제에 참가하고 있으며, 가을에는 카네기 홀에서 세인트루크 오케스트라와, 2004년 2월에는 모스크바 버토시의 바흐 전곡을 협연했다. 이 밖에 주목할 만한 2003/4 년 시즌 연주로는 유리 테미르카노프 지휘로 세인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의 협연, 호놀룰루 심포니와의 협연, 카네기 홀 리사이틀 등이 있다.


세계적인 연주자에서 스승으로.
현재 뉴욕 주립대 (뉴팔츠) 피아노과 학과장이며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펠츠만의 음반은 소니 클래식, 뮤직매스터스, 멜로디야, 얼테스트 레이블을 통해 출시되었다. 바흐 클라비어 곡으로 구성된 여섯장의 음반,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다섯곡,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브람스, 메시앙 피아노 독주곡, 바흐, 쇼팽,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등을 포함한다. 
* Homepage: www.feltsman.com

 

 

존 권 Joan Kwuon | Violin
바이올리니스트 존 권은 우아한 무대매너와 정열적인 음악성으로 청중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카네기홀,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독주자로 연주했다.

 

미주 지역에서 떠오르는 한국의 젊은 비르투오소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로메테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도쿄의 NHK 심포니, 모스크바 국립 라디오 심포니, 부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의 지바스킬라 신포니아와 협연하면서, 앙드레 프레빈, 하인즈 월버그, 세르기 콘드라쉐프, 샤샤 괴젤, 패트릭 갈로이스 등 지휘자들과 연주했다. 그의 연주무대는 앨리스 털리 홀, 록펠러 대학, 크래너트 센터, 호암아트홀, 조지 메이슨 대학, 우스터 칼리지, 드류대학 등을 포함하고, 시카고의 Live from WFMT의 객원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시테 데 라 뮤지크 앤드 칸스넌트, 프라하의 여름 페스티벌, 라호야 섬머 페스트, 뉴욕의 바지뮤직에서 연주했다. 칼리히슈타인-라레도-로빈슨 트리오, 줄리아드 현악 사중주단, 브라이트 쇙, 링컨센터의 토니 베넷 재즈와 함께 연주했다.
그녀는 젊은 여성들의 유방암 퇴치를 위해 힘써온 그는 연구와 환자치료를 위해 기금을 조성하기 위한 비영리단체인 Artists for Breast Cancer Survival, Inc.를 창설하기도 했다. 로스 앤젤레스 태생으로 인디애나 대학, 클리블랜드 음악원,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재직중이다.

 

 

토비 애플 Toby Appel | Viola
미국을 대표하는 비올리스트이자 인기 해설자
13세 때 맥스 아로노프의 지도로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한 비올리스트 토비 애플은 1975년 그가 위촉한 3대 비올라를 위한 곡들을 모두 단독으로 연주한 것이 CBS-TV를 통해 미전국에 방영되어 화제가 된 미국의 대표적인 비올리스트이다.
또한 토비 애플은 독주자, 실내악 연주자, 교육가, 또한 미 공영 라디오의 '오늘의 공연'이란 프로그램에서 해설자로도 활약하며 많은 인기를 모았다.
애플은 1980년에는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에 선정된 이후, 버미어, 알렉산더, 맨하탄 현악사중주단의 객원연주자로 활동하였으며, 링컨센터 챔버뮤직 소사이어티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재즈음악가 칙 코리아, 게리 버튼과도 함께 재즈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모스틀리 모짜르트, 산타페, 시애틀, 브라보! 서북 실내악, 다 카메라 휴스턴, 말보로 등 미국 전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핀란드, 그리스, 한국 등지의 음악제에서 연주와 교육자로 활약했다.
그는 미 주정부가 주관하는 순회 공연 일환으로 유엔과 백악관에서 공연했고, 실내악과 독주곡 음반은 콜럼비아, 델로스, 테스토, 코호인터내셔널, 오퍼스 I, 뮤지컬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등의 레이블로 출시됐다. 타시, 레녹스, 오드번 콰르테츠 맴버로 활약 했고, 현재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비올라와 실내악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피츠버그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안드레즈 디아즈 Andrés Díaz | Cello
"강한 개성과 비전이 느껴지는 해석" (The New York Times)
"그의 풍부하고 상상력 넘치는 연주는 관객을 놀라게 한다.”(The Boston Globe)

1986년에 열린 남부르그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한 이후, 안드레즈 디아즈는 그의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로 비평가들과 청중들을 매료시켜 왔다.


에버리 피셔 그랜트와 피에르 메이어 메모리얼 어워드를 수상한 클래식계의 무서운 라이징!
아메리칸 심포니와 카네기홀에서 협연했고, 아틀란타, 미워키, 시애틀, 시카고, 로체스터 교향악단과 협연했으며, 보스턴 팝스, 에스플라나데, 내셔널 심포니 교향악단의 독주자로 무대에 섰었다. 1998년 그는 세계적인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했으며, 수잔 로즈 음악기금으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라호야, 말보로, 라비니아, 스폴레토, 탱글우드와 같은 여름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특히, 탱글우드 페스티벌을 통해 뛰어난 현악연주자에게 주어지는 ‘피에르 메이어 메모리얼 어워드를 수상’했다. 미국, 남미, 멕시코, 캐나다 등지에서 디아즈 현악 삼중주단과 열정적으로 연주활동을 했으며 디아즈 트리오는 아이작 스턴의 초청으로 카네기홀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에 참가했다.
칠레 산티아고 태생인 그는 5살에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여,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로렌스 레서와 콜린 카를 사사했다. 보스턴 대학에서 5년동안 교수로 첼로를 가르쳤으며, 보스턴 대학의 탱글우드 인스티튜트 사중주 프로그램의 공동 감독으로 재직했다. 그는 1698년에 제작된 마테오 고프릴러 첼로로 연주하며, 그의 아버지인 마뉴엘 디아즈가 제작한 활을 사용하고 있다.

 

 

<참고자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모든 것을 거부하는 자유


 

 


말레이시아 필하모닉 취재차 방문한 콸라룸푸르에서의 또 다른 수확은 건반 위의 기인 블라디미르 펠츠만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말레이시아 필하모닉의 초청으로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공연을 위해 이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개성 넘치는 연주만큼이나 시니컬하고 독특한 행동은 아직도 여전했다.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동안 공연 도중 울리는 휴대폰의 주인을 냉큼 째려볼 정도로 직선적인 그의 성격에 말레이시아 청중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기분에 따라 인터뷰 시간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도 그의 장기. 인터뷰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불쾌할 때는 ‘예’ ‘아니오’ 혹은 ‘노 코멘트’로 일관해 기자들을 무안하게 만들곤 하던 그다. 다행히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등이 좀 아픈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OK”라던 그는 내내 재기 넘치는 말주변으로 자유롭게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 콸라룸푸르는 이번이 첫 번째 방문인가?
“아쉽게도 그렇다. 아시아 지역은 웬만큼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일본, 중국은 모두 가본 경험이 있다. 이곳은 참으로 흥미로운 도시이다. 좁은 듯했는데 너무 넓어서 모든 시장과 백화점을 아직 다 돌아다니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웃음). 인종도 다양하고 문화도 다양하다. 이런 곳에 오케스트라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오케스트라야말로 서양 문화의 근본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매개체니까. 다양한 문화에 길들여져 있어서인지, 내가 연주한 레퍼토리들이 범상치 않은 것인데도 청중들의 반응은 아주 능동적이었다. 오케스트라 실력도 유럽 어느 오케스트라와도 어깨를 겨눌 수 있을 만큼 수준급이었다. 한마디로, 보람찼다.”

 

--- 서울은 언제 방문했나?
“몇 년 전 서울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간 적이 있다. 그 밖에도 한국과는 인연이 질긴 편이다. 그 동안 미국에서 가르친 제자 중에 한국 출신이 꽤 많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기교와 빼어난 미모(?)로 나를 감동 시켰다. 오랫동안 매우 다양한 세대의 한국인 제자를 길러냈는데, 한결같이 다른 인상을 경험했다.”

 

(중략)

 

바흐는 아방가르드적 인물
---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면, 과거 바흐 음악에 매우 몰입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의 음악을 녹음하는가?

“물론이다. 상당히 많은 바흐의 건반음악 작품들을 녹음해왔다. 그 가운데에는 아직 발매되지 않은 것도 있다. 출판된 연주로는 ‘평균율’ ‘골트베르크 변주곡’ ‘푸가의 기법’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 등이 있고 이미 녹음했지만 발매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는 ‘파르티타’ 전곡과 ‘프랑스 모음곡’, 그리고 ‘음악의 헌정’ 등이 있다. 이들은 바흐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데 있어 전공 필수 과목과 다름없다. 이들 모두 조만간 멕시코 레이블인 ‘Urtext’에서 펠츠만 에디션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계속 바흐를 녹음할 예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이니.”

--- 당신이 바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을 가능한 한 표현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당신이 음악가라고? 그런데도 아직 바흐를 연주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동안 인생을 낭비한 거요!”

--- 당신이 ‘골트베르크’ 변주곡 녹음은 참으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글쎄? 그 작품을 나는 한번도 독창적으로 추구한 적은 없다. 나로서는 매우 편안한 음악이었고, 음악 또한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아마도, 다양한 여러 ‘골트베르크’ 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않을까? ‘골트베르크’ 악보는 하나지만,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골트베르크’ 연주가 존재한다. 반복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사이즈가 달라지고, 강약을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지고, 모던 피아노로 연주하는가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는가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바흐 음악이다. 바흐는 아방가르드 정신의 살아있는 창조물이다.”

--- 원전악기로 전통적인 주법에 의거해 연주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가?
“악기는 그렇다 치고, ‘전통적인 스타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내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아마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악기는 복제할 수 있지만 스타일에 ‘전통’이니 ‘원전’이니 하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넌센스다. 물론 나는 원전 연주자들의 활동을 존경하며, 때로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바흐’라고 말하는 것은 금물이다. 로열티는 바흐 자신에게 있지 악기에 있지 않다. 바흐 자신도 자기의 작품에 확신을 가졌는지 의문일 텐데 – 알다시피 그는 위대한 작곡가이자, 자기 작품을 악기에 따라 여러 차례 개작했던 편곡의 대가이기도 했다. 악기는 연주에 따라 달라지지만, 음악은 그 자체로 중요하고 절대적이다.”

--- 러시아 아티스트들이 연주하는 바흐는 또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듯하다. 당신은 어떤 편인가?
“확실히 러시아 음악인들이 연주하는 바흐는 서유럽 연주가들의 그것과 다르다. 하지만 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현재 나는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미국 시민이니까(웃음). 나는 러시아도 서유럽도, 아메리칸 스타일도 아닌 나만의 개성을 추구할 뿐이다.”

--- 연주에 있어 러시아만의 독특한 전통이 존재했음을 인정하는가?
“제한된 의미에서 긍정한다. 그리고 그 전통은 위대하며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계승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 그 색깔이 진하다. 사운드부터 독특하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선배들의 외모까지 계승하려고 노력한다. 곱슬거리는 더벅머리에 넓은 어깨를 가진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당신도 사진으로 많이 보았을 텐데?”

--- 그런 위대한 전통의 러시아 악파를 계승하는 것을 거부하는 까닭은?
“나는 그 어떤 것도 ‘거부’라지 않는다. 나는 러시아 악파를 비롯해 나를 가르쳤던 러시아계 스승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러나 전통은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전통에 대한 존중은, 그 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독창성을 발견하는 데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다. 제자를 자신의 복제품으로 만들지 않고 제자 그 자신으로 만드는 사람이 진정한 스승인 것처럼.”

 

러시안도, 아메리칸도 아닌 나는 나 자신일 뿐
--- 음악적으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인물은?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다 말할 수 없다. 작곡가 피아니스트 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음악가들한테 영향을 받았다. 당신처럼 젊었을 때는 성악가들을 매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음반도 굉장히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운전할 때 졸음을 쫓기 위해 듣는 것을 제외하고는 음반을 거의 듣지 않는다.”

--- 프로필을 살펴보니 지휘자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휘와 피아노를 병행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는 피아노를 공부했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일리아 무친한테 지휘를 배웠다. 1992년 안타깝게 돌아가신 위대한 인물이다.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발레리 게르기예프나 한국에서 활동 중인 드미트리 키타옌코, 그리고 유리 테미르카노프, 세묜 비슈코프가 내 클래스메이트였다.”

--- 피아노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지 않는가?
“물론이다. 마침 지난 주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백야 페스티발에서 지휘를 하고 왔다. 키로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는데, 오! 정말 멋진 순간이었다.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는 피아노에 비해 훨씬 광할하고 또 여러 악기를 한꺼번에 울려야 하는 만큼 복잡다단하다.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 지휘자로서 즐기는 레퍼토리는?
“모차르트와 말러,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베토벤을 좋아한다.”

--- 오페라에는 관심이 없는가?
“아직 한번도 지휘해본 적이 없다. 만약 하게 된다면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가 내 오페라 데뷔작이 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진정한 음악가가 되고자 하는 당신의 제자에게 한마디.
“너 자신이 되어라! (Be Yourself!)”

--- 나디아 블랑제가 피아졸라에게 한 말 같은데(웃음). 다른 하고픈 말은?
“충분하지 않은가? 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내가 도와주지 못할 터이니 구제불능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