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시향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1월 24일(목) 8pm & 25일(금) 8pm 롯데콘서트홀
지휘 티에리 피셔 Thierry Fischer, conductor
피아노 보리스 길트버그 Boris Giltburg, piano
[프로그램]
글린카,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Glinka, Ruslan and Ludmila Overture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Stravinsky, The Rite of Spring
106년 전, 스트라빈스키의 신작 발레 ‘봄의 제전’의 파리 초연은 이내 소란으로 비화했다. 이 곡은 일찍이 들어볼 수 없던 과격하고 원초적인 작품이었다. 한 세기 후 오늘날의 우리도 그 영향력 아래 있다. 한편,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에 있어서 라흐마니노프의 3번 협주곡에 맞먹는 의욕과 기교, 힘있는 감정을 담아낸 작품은 없다. 정밀한 기교를 지닌 러시아 태생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버그가 협연한다. 서울시향 수석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가 폭죽처럼 터지는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서곡을 첫 곡으로 지휘한다.
프로필
티에리 피셔는 2009년부터 유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7년 1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취임하여 시즌 당 4회 이상을 지휘하며 공연기획 등 악단의 발전에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그는 유타 심포니에서 하이든, 말러, 베토벤, 닐센 교향곡 사이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악단 75주년을 기념해 2016년 카네기홀에서 가진 콘서트는 평론계의 격찬을 받았다. 니코 뮬리, 앤드류 노먼, 오거스타 리드 토마스의 신곡 위촉곡을 레퍼런스 레이블로 발매했으며, 말러 교향곡 1번 음반의 호평에 힘입어 모르몬 태버내클 합창단과 말러 8번을 녹음 발매하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2022년까지로 계약이 연장되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는 BBC 웨일즈 국립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하면서 하이페리온, 오르페오 등 주요 레이블로 음반을 내놓았다.
2012년 하이페리온에서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과 녹음한 프랑크 마르탱의 오페라 ‘폭풍Der Sturm’은 인터내셔널 클래시컬 뮤직 어워드(오페라 부문)를 수상하였다.
1984년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보리스 길트부르크는 유년기에 텔아비브로 이주한 뒤 처음에는 어머니로부터, 이후 아리에 바르디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201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5년 낙소스 음반사와 장기 음반 발매 계약을 맺고 베토벤, 슈만, 라흐마니노프 등의 독집 앨범 및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과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카를로스 미구엘 프리에토 지휘 로열 스코틀랜드 국립 관현악단과 협연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등을 발매하였다.
길트부르크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필하모닉, 도이치 카머필하모니, 런던 필하모닉, 오슬로 필하모닉,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볼티모어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였다. 2010년 영국 BBC 프롬스 무대에 데뷔하였고, 이후 남미와 중국에서도 자주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는 사우스뱅크 센터, 위그모어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엘프필하모니 함부르크, 라디오 프랑스, 카네기홀을 비롯한 세계적인 공연장에서 연주회를 갖고 있다
미하일 글린카 (1804-1857)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1837-1842)
누구도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이 미하일 글린카를 대표하는 최고의 인기곡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 음악에 있어 하나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에 해당되는 이 곡은 어쩌면 애초부터 교향악 콘서트의 포문을 여는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로 오케스트라 오프닝 곡으로 더없이 효과적이다.
푸시킨의 문학을 소재로 한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오늘날 전곡으로서는 접할 기회가 드물지만, 오페라의 선율들을 듣기 좋게 배열한 서곡은 친숙한 대중성을 통해 언제나 청중을 즐겁게 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Russlan And Ludmilla (Overture) / Orchestra Of Mariinsky Theatre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Op. 30 (190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처럼 피아니스트에게 체력적으로나 기교적으로 극도의 난곡이 몇 있는데 그중에서도 ‘왕좌’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차지이다. 이 곡은 4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에다 솔로이스트에게 초인적인 힘과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근래 많은 청년 피아니스트의 콩쿠르 도전곡으로 맹렬히 자리 잡아 나가고 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1909년 미국 투어를 위해 작정하고 만든 작품으로, 전작인 피아노 협주곡 2번보다 더욱 도전적이다. 미국의 청중을 유혹하기 위해 자
신의 모든 능력을 곡 안에 과하게 집어넣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4개월 동안 러시아 이바노프카 별장에 틀어박혀 작업에 열중해 마침내 9월에는 작곡을 완수할 수 있었다. 협주곡은 같은 해 11월 28일 월터 담로슈가 지휘하는 가운데 자신의 연주로 초연되었고 이듬해인 1910년 1월 16일에 재공연되었을 때에는 말러가 지휘봉을 잡아 ‘세기의 공연’으로 열리기도 했다.
헌정의 영예는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이 안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헌정을 받은 당사자는 이 곡을 연주하기에 라흐마니노프와 달리 손의 크기가 작은 편이었으며 작품을 철저히 외면했다.
작곡가 당대에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었던 피아니스트는 소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는 라흐마니노프 자신도 압도될 정도의 실력을 보유했던 블라디
미르 호로비츠가 있다. 호로비츠는 분명 오늘날 이 곡의 높은 명성에 크게 기여한 피아니스트임에 틀림없다.
1악장 allegro ma non tant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곡은 마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연장선인 것처럼 으뜸음과 인접한 2도음과의 진동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부분을 보아도 전형적인 피아노 협주곡의 시작 방식은 아니다. 약음기를 낀 현악의 중얼거림에 어우러지는 저음의 4도 진행은 흡사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의 도입 부분을 떠올리게 하고 피아노 또한 슈베르트 피아노 듀오 곡에서 아마추어가 치기 좋게 작곡된 듯 왼손과 오른손의 옥타브로 진행된다.
이후 피아노 파트는 오른손과 왼손의 재빠른 교차를 요하는 빠른 악구로 이행하고 점점 테크닉의 규모를 키워나간다.
발전부 부분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최대한의 힘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일대 파국을 형성하고 거의 재현부 전체를 장악하는 카덴차가 이어진다. 카덴차는 웅대하고 긴 버전과 경묘하고 짧은 버전 두 가지가 있어 연주자가 양자택일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긴 버전은 연달아 터지는 웅장한 화음이 마치 대성당의 종소리와 같은 음향을 뿜어내어 피아니스트를 신격화하는 반면, 짧은 버전은 요정의 희롱 같은 지분거림으로 영롱한 색채감을 보여주어 저마다 각자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RCA 레이블에서 녹음한 자작시연에서 오리지널 카덴차에 해당하는 짧은 버전을 선택했고 호로비츠도 언제나 짧은 버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악보에 Ossia(옵션 악구)라고 기재된 큼직큼직하게 연주되는 긴 버전이 더욱 선호되는 추세이다.
2악장 intermezzo. adagio 간주곡. 느리게 관현악만으로 연주되는 도입주제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에서 종종 발견되는 동양적인 요소로 채워져 있다. 서양음악의 전형적인 음계와 차별화되는 이국적인 선법에 오보에의 음색이 결합되어 멜랑콜리의 오리엔탈리즘화를 이루는 것이다.
피아노가 마치 “이런 음악이 아니오!”라고 선언하며 무너지는 듯한 악구를 연주하며 곡은 이전과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훗날 미국 시절에 작곡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18변주의 ‘사자후’라 할 수 있는 D♭장조의 달콤한 섹션이 마침내 끈적한 클라이맥스를 구축해낸다. 곡이 잦아들 것으로 기대하는 청중에게 피아니스트는 일탈적인 섹션으로서 요정의 춤처럼 경묘한 왈츠를 선보인다. 이는 마치 ‘조커 카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도입주제가 곡의 말미에 대칭적인 형식미를 부여하듯 다시 한 번 연주되며 이후 피아노의 짧은 카덴차를 통해 제3악장으로 휴식 없이 이어진다.
3악장 finale. alla breve 피날레. 2분의 2박자로 관현악의 행진곡 리듬에 도입되어 피아니스트는 이전까지의 기교를 더욱 넘어서는 거인적 명인기를 선보인다. 까다로운 반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행진곡 주제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 울리는 작은 종들의 합주를 연상케 한다.
피아니스트는 리스트풍으로 흰건반을 빠르게 훑는 주법과 연속적인 화음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쉼 없이 펼치다가도, 발전부에 해당하는 부분부터는 이완된 템
포 속에서 제1악장의 부주제를 ‘한여름 밤의 꿈’으로 변용시켜 소환하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작곡가는 비록 형식적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론도 양식에서 벗어나 독창적으로 변용된 소나타 형식을 추구하고 있지만 전작의 성공 방식을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다. 달콤한 부주제를 마지막에 신격화된 모습으로 부풀린다든지, 자신의 이름 ‘라흐마니노프’를 외치듯 단호하게 끝맺는 시그니처 엔딩은 여전하다.
Boris Giltburg performs Rachmaninov Concerto No. 3 (Queen Elisabeth finals, 2013)
Sergei Rachmaninov -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 Daniil Trifonov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1882-1971)
봄의 제전 (1911-1913, 1947년 수정, 1967년 신판 버전 연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13년에 초연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20세기 음악의 혁명적 아이콘이 되었다. 작곡가의 언급과 제목처럼 내용상으로는 제물로 지목된 젊은 여성이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태고의 제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 곡은 마치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클럽 댄스뮤직처럼 들린다. 선사 시대에 재즈나 로큰롤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형태였을 것이며 이 곡은 영원히 젊은 음악으로서 앞으로도 그 명성을 이어나갈 것이다.
오늘날 교향악 콘서트의 메인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봄의 제전’은 본래 발레로서 종합예술의 형태로 초연되었다. 시나리오, 무대, 의상은 고대의 것에 관심이 많았던 미술가 니콜라스 뢰리히가 맡았다. 거의 몸 전체를 가리는 무거운 플란넬 원단을 사용한 헐렁한 의상을 디자인하여 무용수들의 적지 않은 저항이 있었다. 게다가 발레의 원칙을 뿌리부터 뒤흔든 니진스키의 안무는 당시의 관념으로는 ‘난센스’에 해당했다. 고전적 발레 기본을 무너뜨리는 데다가 점프는 무용수들의 무릎 연골을 고려하지 않는 거칠고 난폭한 몸짓이었다.
‘봄의 제전’은 당시로서 너무나 곡이 새롭고 복잡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피아노 반주를 동반한 100회 이상의 발레 리허설과 17회의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수반되어야 했다. 이는 초연이라는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상당히 높은 강도의 리허설이었다. 이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지휘한 사람은 희대의 흥행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였다. 그는 1912년 몬테카를로에서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질겁한 지휘자 피에르 몽퇴에게 이렇게 말했다.
“몽퇴, 이 곡은 걸작이지. 진정 음악을 혁신시키고 당신을 유명하게 만들 곡이야. 자네가 이 곡을 지휘할 거니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디아길레프는 결국 이 곡의 운명을 점지한 셈이 되었다. 막 개장한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몽퇴의 지휘로 1913년 5월 29일에 거행된 초연은 하나의 야만적인 ‘전설’로 남게 되었다. 소위 ‘파리의 엘리트’라는 관객들은 음악의 내용처럼 그들 스스로 원시시대의 카오스로 되돌아간 듯 고함과 야유를 질러 댔으며 청중 사이에 서로 멱살을 잡고 다투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찰까지 출동하여 극장을 진압한 희대의 난투극이자 스캔들로서, 작곡가는 이 같은 소동을 상상조차 못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회고에 의하면 드레스 리허설 때 수많은 배우와 화가, 음악가, 작가 등 최고 수준의 교양을 갖춘 유명인사를 초대했고 모든 것이 평온하게 진행되기에 이 같은 혼란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청중의 이 같은 전례 없는 소동은 어쩌면 음악보다도 니진스키의 난폭한 안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동안 명맥이 끊겼다가 근래에 복원된 초연 당대
의 안무로 공연된 영상물을 보면 당시 청중의 당혹스러움에 대해 일말의 이해가 되기도 하다. 아마도 청중은 극장과 예술가들이 결탁하고 자신들을 조롱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봄의 제전’의 높은 명성은 거대한 ‘푸닥거리’와 같았던 악명 높은 초연의 전설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다.
흡사 색소폰 소리를 연상케 하는 바순의 빅 솔로로 시작되는 1부 ‘대지에 대한 예배’는 도입부, 봄의 소식-젊은 처녀들의 춤, 유괴의 의식, 봄의 론도, 적대적인 부락의 게임, 현자의 행진, 대지에의 찬양, 대지의 춤의 순서로 진행된다.
스트라빈스키에 있어서 오케스트레이션의 핵심은 독일 교향악 음악에 있어 계급상 최고봉을 의미하는 바이올린군을 한낱 리듬악기로 전락시키고 빅밴드 뮤직처럼 관악기를 중요한 악기군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2부 ‘희생’은 1부에 해당하는 날 해가 저문 뒤 한밤중이 지난 시점을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년과 소녀들이 신비스러운 게임을 하다 신에게 바치기로 지목된 ‘그녀’를 찬미하고 갈채를 보낸다. 선조들은 기원의 대상이 되고 증인으로 떠받들어진다. 인류의 현명한 선조가 희생을 지켜본다.” 연관성 없는 2개의 화음을 진자의 흔들림처럼 다루는 드뷔시의 영향이 느껴지는 도입부에서 젊은 처녀들의 신비로운 원무, 선택된 자에 대한 칭송, 조상의 초혼, 조상의 의식 행진, 신성한 춤(선택된 자)의 순서로 진행된다. ‘신성한 춤’에서 오케스트라는 어지러운 변박자로 취기 어린 비틀거림을 보이면서 절정과 파국을 향해 돌진한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춤을 추게 되는 여성은 마침내 제물로서 생을 마감하고, 둔탁하게 내리 꽂히는 마지막 화음을 통해 자연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계속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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