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19년)

2019서울시향/크리스티안 테츨라프 /2019.1.6.일/롯데 콘서트홀

나베가 2019. 1. 9. 21:18



지휘 마르쿠스 슈텐츠 Markus Stenz, conductor

바이올린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Christian Tetzlaff, violin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제1

Szymanowski, Violin Concerto No. 1, Op. 35

 

------- 휴식 20분 ---------------


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R. Strauss, An Alpine Symphony, Op. 64

  * 총 소요시간: 약 110분(휴식 포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이프와 포크라도 음악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알프스 교향곡에서 그는 바이에른 알프스의 장엄한 산악을 묘사한다.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와 대편성으로 확장된 서울시향이 알프스의 폭포, 빙하, 귀를 찢는 폭풍까지 엄청난 소리의 경관을 선보이며, 거대한 경치 사이에 숨은, 심오한 고요와 아름다움의 순간들까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 곡에 앞서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에 깃든 열정적인 환상을 독일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소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함께한다.




프로필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객원지휘자인 마르쿠스 슈텐츠는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이며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로 재직 중이다. 그는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와 할레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를 지냈다. 쾰른 음대에서 볼터 반겐하임을, 탱글우드에서 번스타인과 오자와를 사사하였으며 몬테풀치아노 페스티벌 예술감독(1989~1995), 런던 신포니에타 상임지휘자(1994~1998), 멜버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1998~2004)로 활동했다.
그는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오페라 지휘자로 데뷔하였으며 한스 베르너 헨체의 오페라 ‘배반의 바다’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푸파’ 등을 세계 초연하였다. 밀라노의 라스칼라, 브뤼셀의 라 모네,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 시카고 리릭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슈트가르트 오페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글라인드번 페스티벌,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 브레겐츠 페스티벌(글라너트의 ‘솔라리스’ 초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세계 주요 오페라 하우스와 페스티벌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지금까지 지휘해온 주요 오케스트라로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뮌헨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베를린 필하모닉,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빈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WDR 라디오 심포니, NDR 라디오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등이 있다. 그가 지휘한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전곡 음반은 욈스 클래식스 레이블로 출시되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2016년 9월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 음반으로 그라모폰 상을 수상하였다.





▮프로필

 

2019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올해의 음악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베를린 필하모닉, 위그모어홀, 카네기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해온 바 있다. 그의 연주는 ‘연주 관행’에 대한 고려나 관습적인 단순화 없이 음악적 텍스트를 깊이 탐구하면서 알려진 작품들을 명확하고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특징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1994년 테츨라프 현악사중주단을 창단하였으며, 이 사중주단은 매년 최소 1회 이상 연주 여행을 하고 있다. 2018/19 시즌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베를린 피에르 불레즈 홀에서 공연한다. 이 사중주단은 2015년 디아파송 황금상을 받았다. 누이인 타냐 테츨라프,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그트와의 트리오는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테츨라프는 2018년 7월 디아파송 황금상, 2017년 미뎀 클래식상, 2015년 독일 음반평론가상 등 여러 음반상을 수상했다.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세 차례 녹음하였으며 최근 음반은 2017년 온딘(Ondine) 레이블로 출시되었다. 그는 2018/19 시즌에 미국에서 보스턴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등과 연주하며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투어를 가질 예정이다.





카롤 시마노프스키 (1882-1937)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Op. 35 (1916)


Violin Concerto No. 1, op. 35/ Christian Tetzlaff


Janine Jansen - Violin Concerto No.1, Op.35 (Szymanowski)

 
카롤 시마노프스키는 근대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청년 시절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했고,  중년에는  바르샤바  음악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쇼팽 이후 가장 중요한 폴란드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만년의 작품들은 쇼팽 이후 오랜만에 마주르카*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서 폴란드 국민음악의 스타일을 재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것은 신비주의와 인상주의가 오묘하게 결합되어 독특한 이국적 색채와 탐미적  정서를  자아내는  모더니즘  작품들이다.  그의  나이 30대  후반이던 1916년에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그중에서도  풍요로운 창의성과 세련미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명작이다.
이  협주곡이  작곡될  무렵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지만,  어린  시절  다친  무릎 탓에 군 복무를 면제받은 시마노프스키는 전쟁기간의 대부분을 가족의 영지가 있는 티모슈프카에서 평화롭게 보냈다. 그 시기에 그는 비잔틴 및 이슬람 문화와  고대  그리스·로마의  비극,  니체의  철학,  폴란드  근대작가의  문학  등에  열중하며  다수의  작품을  써냈는데,  그중 1915년에  작곡된 ‘신화’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 ‘아레투사의  샘’, ‘나르키소스’, ‘드리아데스와  판’으로  구성된  이 인상주의적  작품은 

그의  독창적  작풍이  본격화한  첫  사례인  동시에  이듬해  작곡하게  될  바이올린  협주곡의  전초전  격이었다.

이 <신화>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면서 시마노프스키는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파베우  코한스키의  도움을  받았다.  코한스키
는  독주부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카덴차도 써주었고, 시마노프스키는 협주곡을 완성한 후 이 고마운 친구에게 헌정했다.
단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흔히 ‘최초의  근대적(모더니즘에  입각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일컬어진다. 이 곡이 19세기의 전통과 장·단조 체계에서 탈피함으로써 이 장르에서 새로운 음향 및 색채의 언어, 참신한 표현성에 도달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곡은 기존의 다른 어떤 바이올린 협주곡의 유형에도 속하지 않으며, 분위기, 감정, 형식 등 여러 면에서 이례적으로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달리 말하자면, 대다수 감상자에게 익숙한 고전 및 낭만 시대의 협주곡을 대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이 작품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난해한  음악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기존의  체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직관과  감각을 개방하여  보다 열린  자세로  다가선다면, 이 지독히도  몽환적이고  관능적이며,  표현주의적이기도  한  협주곡은  생각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편  시마노프스키는  이  곡을  쓰면서  폴란드의  시인  타데우시  미친스키Tadeusz Miciński의 시 ‘5월 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그 시를 그대로 음악으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시마노프스키의 음악과 미친스키의 시는 서로 절묘하게 어울린다.

다음은 미친스키의 시 중 일부이다.


모 든  새 들 이  나 에 게  헌 사 를  바 치 네,
오 늘  내 가  여 신 과  결 혼 했 기 에.
그 리 고  이 제  우 리 는  진 홍 빛  꽃 으 로  물 든  호 숫 가 에  서  있 네,
기 쁨 의  눈 물 을  흘 리 며,  황 홀 함 과  두 려 움 을  느 끼 며,
사 랑 의  불 길 로  타 오 르 고  있 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864-1949) 
알프스 교향곡, Trv 233, Op. 64 (1911-1915)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Bernard Haitink) Richard Strauss's Alpine Symphony PROMS 2012


역사 상  최고의  교 향 시  작 곡 가인  슈 트라 우 스의  마지막  교 향 시인  이  작 품 은 1914년 11월 1일에서 1915년 2월 8일 사이에 집중적으로 작곡되었다. 당시 슈트라우스는 1905년의 ‘살로메’를  시작으로 1909년 ‘엘렉트라’, 1911년 ‘장미의 기사’  등을 내놓으며 이미  창작의  무게중심을  오페라  장르로  옮겨놓은  상태였고, 1911년부터 1916년까지는  후속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를  작업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도중에  한눈을  판  것일까?  그  이유에  관해서는  슈트라우스가  그보다  몇  해  전에  새로  장만한  거처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때는 1908년, ‘살로메’의  성공으로  돈방석에  올라앉은  슈트라우스는  고향인  뮌헨에서  남서쪽으로 8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휴양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에 멋진 저택을 짓고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대에  솟아있는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산이  굽어보는  바이에른 알프스의  한가로운 목초지에서 슈트라우스는 한결 여유로워진 생활과 자연이 선사하는 풍부한 영감을 만끽했다.

‘알프스 교향곡’은 아마도 자신에게 안락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대자연에 대한 그의 애정과 찬미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리라.
이 곡은 만 하루 동안 진행되는 등산과 하산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등산객이 마주치는  갖가지  풍경들과  상황들을  그리고  있다.  작곡  당시  슈트라우스는  건강상의 이유로 무리한 등산은 삼가야 했지만, 그 대신 소년 시절에 이 곡에서 그린 것과 유사한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1878년 8월, 14세의 슈트라우스는 뮌헨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사이에  있는  무르나우에서  출발하여  근처  산을  올랐는데, 약 12시간이 소요된 여정에서 그는 길을 잃기도 하고 비바람을 만나기도 하며  꽤나  고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튿날  그는  자신이  전날  목격하고  체험한 장면들과 사건들을 음악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피아노 앞에 붙어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그의 마음속 깊이 심어졌던 씨앗이 3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구체화되어 하나의 장대한 교향시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전곡은 모두 22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소곡(장면)들의 매끄러운 연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소곡들을  등산의  단계에  따라  보다  큰  그룹으로  묶으면  대략  다섯 부분으로 정리된다.

 

먼저 도입부는 등산에 나서기 전의 정경을 그린다. 제1곡 ‘밤’에서는 파곳과 약음기를 단 현에서 고즈넉히 흐르는 ‘밤의 동기(B♭단조)’에 이어 금관에서 중후하게 울리는 ‘산의 동기’가 출현한다. 이후 차츰 음악의 윤곽이  선명해지며  주위가 여명이 터오는  상황을 암시하고,  그 정점에서 ‘태양의  동기(A장조)’가 강렬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제2곡 ‘해돋이’로 넘어간다.


제1부는 등산의 과정을 그린다. 잠깐 동안의 휴지에 이어 제3곡 ‘등산’으로 나아가면  저현부에서  힘차게  부각되는 ‘등산의  주제’가  나타나서  전개되고,  금관이 우뚝 솟은 ‘암벽’을, 무대 밖에 위치한 브라스밴드가 숲 속에서 들려오는 사냥꾼들의 뿔피리 소리를 암시한다. 장엄한 총주와 함께 진입하는 제4곡 ‘숲으로
들어감’에서는  숲의  일렁임을  묘사하는  듯한  현의  움직임  위로  호른과  트롬본의 폭넓은 선율과 계속되는 등산의 주제가 떠오른다. 제5곡 ‘시냇물을 따라 걷기’에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여유롭게 나아가는 모습이 그려지다가,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제6곡 ‘폭포(에서)’에 이른다.  목관과  바이올린,  하프와 첼레스타의 미묘한 음률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이어지는 제7곡 ‘환영’에서  등산객은  잠시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본다.  그 말미에서는 호른이 목가적인 느낌의 새로운 주제를 떠올리고, 등산의 발걸음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서  온갖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제8곡 ‘꽃이 핀 초원’과 제9곡 ‘알프스의 목장’을 지나간다. 목장에서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울음소리와 워낭 소리, 새소리도 들려온다. 상쾌한 기분에 취해서 걷던 등산객은  언젠가부터 ‘덤불 속에서 길을 잃어(제10곡)’  버린다.  그가  당황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복잡한  푸가로  표현되고,  다음  순간 제11곡 ‘빙하(에서)’와  마주친다.  여기서  음악은  한  차례  비상하듯  솟구치고,  등산객은
발이 미끄러지고 낙석이 구르는 제12곡 ‘위험한 순간’을 이겨내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다.


제2부는  정상에서의  시간을  그린다. 제13곡 ‘정상에서’는  먼저  눈앞에  펼쳐진  광막한 풍경과 그것을 등산객이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그려지고,  이어서  트롬본이 ‘정상의  주제’를  엄숙하게  꺼내놓으며  장엄한  대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신의 음성을 부각한다. 이후 음악은 더욱 고조되어 최정점에 이르고,  벅찬  감격과  희열을  맛본 인간은 계속되는 제14곡 ‘환영’에서  지나온 여정을 회상한다. 이번에는 오르간의 초월적인 음률까지 더해져 위대한 대자연과 왜소한  인간의  대비가  더욱  심도  있게  그려진다.  어느덧  절정의  시간은  지나가고 갑자기 ‘안개가 일어남(제15곡)’에  따라 ‘태양이 점점 희미해지고(제16곡)’,  등산객은 우울한 기분에 빠져 ‘비가(제17곡)’를 읊조린다.


제3부는  하산의  과정을  그린다.  급기야 제18곡 ‘폭풍 전의 고요’에서  안개는  짙어지고 주위는 어두워지며 불길한 정적이 흐른다.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드디어 엄청난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제19곡 ‘악천후와 폭풍, 하산’에서  올라올  때와  같은  길로  산을  내려가는  과정이  급속하고  긴박하게  그려지는데, 그 과정에서 제1부에서 만났던 장면들이 반대 순서로 스치듯이 지나간다.


종결부는  하산  후의  정경을  그린다.  산을  내려와  한숨  돌린  등산객의  눈앞에 제20곡 ‘해넘이’의  광경이  장려하게 펼쳐지고, 제21곡 ‘종음’에서는 저녁의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오르간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등산객은 감회에 젖어 지난  하루의  여정을  찬찬히  돌아본다.  이제  다시 ‘밤(제22곡)’이  찾아오고,  장엄하고도 다채로웠던 여정은 조용히 마무리된다.


이처럼  대자연의  모습,  또는  그에  대한  인상을  폭넓게  담아낸  만큼,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곡  연주에 50분  정도가 걸리며 4관을  기본으로  확대  편성한  관현악의  규모도  방대한데, 1915년 10월 28일  베를린에서  슈트라우스가  지휘한  드레스덴  궁정관현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을 때는 무려 130여 대의 악기가 동원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에는 통상적인 관현악곡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악기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목가적인 정경이 펼쳐질 때 울리는 ‘워낭(소방울)’, 폭풍우 장면에 사용되는 ‘윈드 머신(바람 소리를 내는 큰 원통형 장치)’과 ‘선더 시트(천둥 소리를 내는 큰 철판)’ 등이 흥미롭다. 또 호른 주자들이 바꿔 들고 연주하는 ‘바그너 튜바’와 베이스 오보에의 일종인 ‘헤켈폰’도 사용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아름다움은 표현의 적이다


서울시향 2019 ‘올해의 음악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팬이라면 지난 그의 세 번째 바흐 음반 재킷 사진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짧은 커트 머리에 와이셔츠를 입고 안경을 낀 그의 모습은 단정하면서도 학구적인 댄디보이였다. 음악 또한 외모가 풍기는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 온딘 레이블에서 출시된 세 번째 바흐 음반 커버에서 그는 긴 수염에 곱슬머리를 풀어헤치고 캐주얼한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가죽 재킷을 즐긴다는 후문이니 영락없는 로커의 모습이다. 음악은 어떠할까? 외모만큼 파격적으로 변했을까?
글/ 노승림(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일단 세 번째 바흐 음반에 한해서는 20세기에 녹음한 연주보다 훨씬 폭넓은 자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깊어진 음색과 더욱 구체적으로 깎아내린 다이내믹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선명하게 전달한다. 첫 번째 바흐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아폴론적인 이성의 설명문이라면 세 번째 바흐는 같은 틀 안에 감정이 실린 디오니소스적인 웅변이다.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 연주자의 부단한 진보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2010년 불레즈가 지휘하는 빈 필과 협연한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듣는 이를 아찔한 관능미로 사로잡는다.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브람스 협주곡 협연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와 전화 인터뷰를 기회 삼아 그의 신변의 변화와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캐물어 보았다.



이제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한국에 다시 찾아오는 것을 환영한다. 나는 사실 당신의 매우 오랜 팬 중 한 명이다.

당신의 첫 번째 무반주 바흐 소나타 및 파르티타 레코딩을 듣고 팬이 되었다. 당신은 그 중 일부를 한국에서도 연주할 예정이다.

이후 당신은 같은 레퍼토리를 두 번 더 녹음했다.
첫 번째 리코딩은 대단히 이성적이고 금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후 리코딩은 가면 갈수록 자유로워지다 못해 관능적으로 변해가는 해석을 느꼈다.

작품에 대한 관점이 변한 것인가?

내 해석은 대체로  보면  크게 변한 게 없다.  작품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읽어내고자  했으니까.  변한  것이 있다면  내가  좀  더  늙었고,
바이올린  연주를  더  많이  즐기게  되었다는  점뿐이다.  아,  머리도 기르기  시작했는데  아내가  지금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웃음).
여러모로  젊은  시절보다  원하는  바를  더  쉽고  깊이  있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르게 들리는 건 리코딩 조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온딘 레이블에서 제공한 리코딩 환경이 만족스러워 원하는 바를 모두 구현할 수 있었다.



해석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같은 작품을 세 번이나 녹음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기교적으로 더 진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을 더 즐겁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에 도전했던 작품들을 지금의 나의 연주력으로 더 훌륭하게 완성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다.


 
1월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서울시향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꼭 당신과 연주하길 희망했던 곡이라고
한다. 나도 당신과 불레즈의 리코딩을 매우  좋아한다. 당신의 바이올린 선율은 매우 관능적으로 다가오는데, 이 곡을 연주하며 무엇을 상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 작품은 다른 협주곡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사운드를 지닌 보석  같은  명곡이다.  질문대로  바이올린  선율이  지극히  관능적이다 못해 에로틱하기까지 하다. 독주 악기가 동반하는 오케스트레이션 또한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작품에 영감을  준 원작 시를 떠올리기도  하고 최대한 에로틱한  환상과 기이한 동물들을  상상하곤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특출한  기교보다  듣는  이를  빨아들일  만큼  압도적인  스태미나와 관능적인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음표 하나하나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져야  하는데,  어떤  음악가들은  이  작품을  마냥 육중하고  화려하게만  연주하려고  든다. 

전적으로  틀린  접근이다.
예전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이 작품은 트리스탄의 근육질의 아리아보다는 살로메의 베일의 춤에 가깝다.



시마노프스키는 아프리카 여행과 폴란드 시인 미친스키의 시에서 영감
받아 이 협주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실제 원작 시를 읽는 것이 작품 해석
도움이 되는가? 꼭 이 협주곡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해석하는 당신만의
근방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시는 물론 읽어봐야 한다.(12페이지  참조) 하지만 시의 한 행 한 행을그대로 음악으로 옮긴 협주곡은 아니다. 여름밤의 정경과 흥분되고 즐거운 분위기가 전반적인 인상으로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작품 해석 방식은 내 경우는 한결같이 작곡가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는  다른 이들의 연주나  음반,  심지어 내  음반도  들으면  방해가 되고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악보를  직시하고,  작곡가  본인이  남긴  코멘트만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러면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스토리가  하나  남는데 그  스토리를  발견하는  순간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나의 연주는청중에게 그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다.



오는 9월 서울시향과의 두 번째 공연에서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주한다. 지난 인터뷰에서 당신은 이 곡이 지금까지 가장 자주 연주한 협
곡이라고 했다. 또 이 작품을 너무 예쁘게만 연주하려 드는 풍조를 비판
 며 “아름다움은 표현의 적beauty is the enemy of expression”이라 말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금까지 330번  이상  연주했다.
나를 섭외하는 세계의 모든 오케스트라가 1순위로 제안하는 레퍼토리이다(웃음).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전쟁을  담고  있다. 

 진군을  알리는  팀파니와  기묘한  화성이  듣는  이를 진중하게 압도한다. 그 위에 걸쳐진 바이올린 솔로 선율은 어린아이가  부르는  노래처럼  천진난만하고  단순하다. 

전쟁의 거친 이면을 생략한 채 마냥 순진하고 예쁘게만 이 협주곡을 연주했다가는 이 작품이 지닌 진짜 스토리를 상실하고 만다.

스토리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내가  아름다움을  표현의  적이라  말한  것은 스토리의  다른  요소들을  모두  망각한  상태의  아름다움을  의미한
다. 인간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슬픔, 고통, 분노, 추함도 존재하고, 가장 아찔한 순간에 느끼는 인간의 감정적인 삶을 선명하게 드러낸 것이 음악이다.

아름다움이란 적절한 순간에 표현될 때에만 빛을 발하는 법이다.


다른 음악가들이 어린 시절 세상과 단절되어 강박적으로 연습에 매달린 데
비해 당신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매우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들
었다. 그러한 과거가 지금 당신의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지금 나의 음악과 내 인격은 어린 시절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음악을  연주해도  나는  혼자  연습하기보다는  청소 년  오케스트라나  실내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이러한  활동은  지금도  내게  음악가로서  중요한  동기를  부여한다. 꽤 많은 연주자가 인생의 많은 시간을 연습으로 스스로 혹사시키며 살아가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고립되어 있다가는  음악  이외의  중요한  것들,  이를  테면  인간관계라든가  사랑을 상실한다. 

이러한  경험들도  음악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들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바이올린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라고 보면 될까.
아니. 무엇보다 생존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한 도구이다(웃음). 하지
만 당신 말대로 세상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 언
어보다 심오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도구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악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드물게도 페터 그라이너가 제작한 모던 악
기를 사용하는데, 이 악기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페터 그라이너와는 영국 위그모어 홀 근처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때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페터는  자신이  제작한  바이올린을 누가 시험 삼아 연주해보지 않겠냐고 권했고 내가 해보겠다고 자원했다. 활을 그어보고 나서 바로 매료되어 그 악기를 구입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그 다음 주 공연에서 나는 이미 이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고 있었다. 내 무척 이상적인 동반자인데 특히 D현과 E현  소리가  마음에  든다. D현이 깊고 어두운  소리를  충분히 낸다면 E현은 정반대로 재기발랄하다. 이 두 현을 한꺼번에 그을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



옛 악기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가? 연주자의 영향력에서 악기의 퀄리티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는가?
그라이너를 구입하고 나서는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처분했다. 더 이상적인 악기를 찾았으니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악기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연주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사람들의 귀는 다 천차만별로 반응한다.

어떤 이는 스트라디를 좋아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현대 악기 소리가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직도 아이들 때문에 긴 연주여행을 자제하는 편인가?
물론이다.  위로  두  명은  각각 24살, 22살로  다  커서  상관없는데 막내가  지금 2살이다.  오늘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브람스  협주곡 협연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3주  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한 뒤에 서울로 가서 여러분을 만날 것이다.


아이들이 음악을 한다면 적극 권하겠는가?
이미 첫째와  둘째가 각각  오보에와 첼로  주자로  활동  중이다. 막내는 어떤 선택을 할지 두고 보려고 한다. 내 부모도 내게 음악을
강요하지  않았다.  열두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바이올린을  하루에 1시간 이상 연습한 적이 없었다. 15세  때  처음 3시간 연습시간을 채우고 뿌듯해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1시간을 최적의 연습량으로 생각한다. 재능이 있다면 그 정도만 연습해
도  충분하고  재능이  없다면  그  이상  연습해도  소용없다.  오랜  연습은 아이들에게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음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모두  험난한  삶을  살고있는  가운데  스스로  선택한  위로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영혼을  구제하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이  종교를  찾는데,  종교는  사람들을  더욱  의존적으로만든다. 하지만 소통과 격려의 수단으로 우리가 음악을 선택하는것은 순수한 우리고유의 의지이다.

얼마나 멋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