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제8번
[Beethoven, Symphony No. 8 in F major op. 93 ]
그토록 역동적이고 열광적인 [교향곡 제7번]을 작곡한 바로 그 베토벤이 이렇게 고전적인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을 들으면서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7번]을 완성한지 6개월이 지난 1812년 10월에 내놓은 [교향곡 8번]에서 마치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기라도 한 듯 3악장에 제대로 된 미뉴에트를 써넣는가 하면 중간 중간 하이든 풍의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대체 이토록 전혀 다른 성격의 [교향곡 7번]과 [8번]을 거의 연달아 내놓은 베토벤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대중적인 인지도로 보았을 때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은 [제7번]에 비해 인기가 없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청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며 압도적인 연주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제7번]을 선택하지 옛 양식으로 되돌아간 듯한 [제8번]을 연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가 아닌 이상 베토벤 [교향곡 8번]을 일반적인 관현악 연주회에서 듣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은 베토벤 당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이 1814년 2월 27일에 초연되었을 때에도 <일반음악신문>의 평론가는 “이 작품은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해 베토벤을 화나게 했다.
과거 양식으로의 회귀를 가장한 ‘대담한 진보’
베토벤은 [교향곡 8번] 속에 유머와 대담한 풍자, 반전의 아이디어를 집어 넣었다. <출처: wikipdedia>
하지만 베토벤 자신은 교향곡 제8번을 더 사랑했다. 누군가 베토벤에게 [교향곡 제7번]이 [제8번]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제8번이 더 낫기 때문이야”라 답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교향곡 8번]을 자세히 들으며 이 음악의 매력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그 기막힌 반전과 풍자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이 교향곡 속에 숨어있는 어마어마한 혁명을 발견해낼 수 있는 음악애호가라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보다 [제8번]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향곡 제8번]을 완성한 후 12년 동안 교향곡 분야에서 아무런 작품을 내놓지 않은 베토벤은 1824년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어간 대작 [교향곡 제9번]을 작곡했다. 교향곡에 성악이 들어가는 [교향곡 제9번]은 교향곡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는 면에서 진정으로 혁명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교향곡 제8번]은 겉보기에도 순수한 기악 교향곡일 뿐 아니라 형식상으로도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세운 틀을 간직하고 있는 교향곡이기에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완성한 ‘정상적인’ 교향곡이며 그다지 혁명적인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교향곡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은 ‘과거회귀’를 가장한 대담한 ‘진보’다. 베토벤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교향곡 속에 앞으로 그가 추구하게 될 새로운 길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고전파 음악을 풍자하는 베토벤의 도발적 시도
베토벤은 [교향곡 8번]에서 교향곡 1악장으로서는 드물게 춤곡 풍의 3/4박자로 설정하고 서주 없이 곧바로 주제를 제시한 후 떠들썩하게 전개시킨다. 언뜻 들으면 [교향곡 제7번]만큼 광포한 느낌은 없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간혹 음악적인 희열이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발전부에서 재현부로 들어가며 다시 주제를 확신있게 재현해야하는 부분에서도 분위기가 지나치게 고조되어 중요한 제1주제의 선율이 어설프게 들린다. 그래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후에 이 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개정해 주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주제의 성격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베토벤의 본래 의도인 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고전주의 음악을 풍자하려 했으리라.
베토벤은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느린 악장에서 위대한 음악성을 드러내곤 했지만 이 교향곡에선 느린 악장을 쓰지 않았다. 느린 악장이 들어가야 할 2악장의 자리에 그는 위트 넘치는 음악적 농담을 선사했다.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에게 감사를 표하려는 듯, 목관악기들은 똑딱거리는 메트로놈의 단조로운 16분 음표 음형을 반복한다. 여기에 현악기들이 귀여운 멜로디를 연주하며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뉴에트로 대체된 스케르초 악장
3악장 미뉴에트는 과거 궁정악사들을 조롱하는 듯 베토벤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출처 : NGD>
베토벤은 [교향곡 제1번]에서 이름뿐인 미뉴에트를 작곡한 것을 제외하고는 교향곡의 3악장의 미뉴에트를 스케르초로 대체해왔다. 그런데 교향곡 제8번에선 그 자신에 의해 다시 미뉴에트로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베토벤은 과거 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이상하게 비틀린 악센트와 과장된 듯한 제스처로 가득한 이 음악을 들어보면 베토벤이 마치 거대한 가발을 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옛 궁정악사들을 조롱하는 듯하다. 귀족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강요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해진 자유음악가 베토벤은 이 미뉴에트를 통해 과거의 음악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4악장에서 베토벤은 빠른 속도와 거친 유머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바이올린이 벌이 윙윙거리듯 빠른 음표들을 연주하면 곧 플루트와 오보에가 맞장구를 친다. 웬일인지 주제선율은 점점 작아져 결국 매우 여린 피아니시시모(ppp)에 이른다. 그러다 돌연 엉뚱한 C#의 음이 돌출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는 곧바로 으뜸조인 F장조의 주제가 크게 연주된다. 전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연주하는 주제 선율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하게 들린다. 바로 직전의 C#의 충격적인 돌출이 주제의 단순함을 조롱하는 듯했기 때문이리라. 이것이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유머를 구사하는 방식이다.
베토벤의 유머는 이 악장 전체를 통해 계속된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상한 전조와 예상을 깬 전개방식이 펼쳐지며 순간순간 놀라움을 안겨준다. 이 곡은 마치 하이든 교향곡의 피날레처럼 가볍고 빠른 음악이지만 곳곳에 베토벤이 시도한 가장 위험하고 도발적인 모험이 숨어있다.
추천음반
재치와 풍자와 대담함이 돋보이는 베토벤 [교향곡 8번]은 특히 고악기 연주단체의 산뜻하면서도 과격한 연주로 들을 때 그 맛이 더 잘 살아난다. 존 앨리어트 가디너가 지휘하는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의 긴장감 넘치는 음반(Archiv)도 훌륭하며, 필립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로열 플레미시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산뜻한 연주(Pentatone)는 베토벤 [교향곡 8번]의 고전적이면서도 풍자적인 면을 재치 있게 표현해낸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오케스트라의 음반(Teldec)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며, 그밖에 데이비드 진만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음반(Arte Nova)도 추천할 만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토벤, 교향곡 제8번 [Beethoven, Symphony No. 8 in F major op. 93] (클래식 명곡 명연주)/글:최은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에서 1882년 태어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무렵에 프랑스 파리에서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러시아를 떠나 스위스에 정착했다가(1914~1920) 다시 파리로 귀환합니다(1920~1939). 그가 생애의 마지막을 보낸 땅은 미국이었지요. 1939년 미국에 도착해 1971년에 그곳에서 사망합니다. 중간에 딱 한번, 미국과 옛소련이 극하게 대립하던 1962년에, 그러니까 그의 나이 80세에 48년 만에 고향땅을 밟은 적이 있기는 합니다.
며칠 전에 본 어떤 원고 때문에 그의 생애가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국내의 한 출판사가 머잖아 책으로 출판할 원고인데, 담당 편집자가 한번 읽어보라고 교정지를 건네줬습니다. 1939년 9월에 미국에 도착한 스트라빈스키는 하버드 대학에서 모두 여섯 차례의 강연을 했는데, 제가 건네받은 원고는 바로 그 강연의 내용입니다. 제목은 ‘음악의 시학’이지요.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책인데 그동안 국내에서는 번역본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번에 좋은 번역으로 출판되기를 저도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늘날 많은 이들이 스트라빈스키에 대해 ‘혁신가’ ‘반항아’ ‘이단아’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 않지요. 특히 파리에서 활동하던 젊은 시절에 그가 보여줬던 음악들이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곡들이 세 곡의 발레음악입니다. 당대의 예술기획자였던 디아길레프(1872~1929)의 의뢰로 탄생한 <불새>,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이 던져준 신선함과 파격으로 인해 스트라빈스키는 ‘새로운 시대의 음악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당시 파리의 비평가들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서 전해오는 이국풍(러시아풍)의 낭만성, 원초적인 에너지에 주목해 ‘원시주의’라는 타이틀을 부여했지요. 물론 20세기 초반의 파리 사람들이 이국풍을 열렬히 좋아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 춤 등의 여러 장르에서 그런 경향이 모두 나타나고 있었지요, 앞서 언급한 디아길레프는 그런 파리 사람들의 요구에 발빠르게 부응했던 인물이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났던 파리의 ‘러시아붐’에 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영민한 예술기획자였던 그가 선택한 음악가가 바로 스트라빈스키였던 것이지요.
게다가 그의 음악이 초연되는 극장에서 벌어졌던 한바탕의 소동도 오늘날까지 ‘혁신가’의 이미지를 더욱 부채질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도 마치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되는 장면, 바로 <봄의 제전>이 초연됐던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일어났던 소동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날 관객들은 아주 흥분해서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스트라빈스키 자서전에 따르면, 객석에서 일어난 소동이 점점 번져서 한바탕의 시위로 확산됐고, 무대 뒤쪽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스트라빈스키는 잔뜩 화가 난 안무가 니진스키(1890~1950)가 무대 위로 뛰쳐나갈까봐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러시아 발레단(발레 루스)의 단장이었던 디아길레프는 조명기사에게 극장의 조명을 계속 껐다가 켜도록 지시했다고 하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소동을 진정시키려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날의 소동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라 니진스키의 혁신적 안무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조차도 그날의 소동이 자신의 음악 때문이었던 것처럼 ‘은근히’ 피력하면서 전설을 조장한 측면이 있지요.
물론 오늘날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스트라빈스키=혁신가’의 이미지는 결코 잘못된 판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꼭 기억돼야 할 점이 있는데, 사실은 그가 전통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 음악가였다는 점입니다. 그런 맥락과 관련해, 앞에서 잠시 언급한 1939년의 하버드대학 강의록 <음악의 시학>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초연하고 26년이 흐른 뒤에, 그 음악에 대해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편의상 군데군데 발췌해 소개하는 것을 양해해주기 바랍니다. “나를 무슨 혁명가로 간주한다면 단단히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해요. <봄의 제전> 발표 당시에 그런 얘기들이 참 많이도 나왔습니다.… 나는 졸지에 본의 아니게 혁명가가 되었더랬지요. … (물론) <봄의 제전> 같은 작품에서 오만한 자세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이 작품이 구사하는 언어가 새로운 탓에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요. … 예술은 그 본질상 구성적입니다. 예술은 혼돈의 정반대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센세이션을 일으키려고 분별없는 무질서와 노골적인 욕망에 대담함을 쏟아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말’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가 중요하지요. 60세를 바라보는 스트라빈스키, 새로움을 향한 도전뿐 아니라 이른바 ‘신고전주의’로 불리는 두번째 파리 시기(1920~1939)까지 이미 경험한 그는 이 강연에서 ‘질서’와 ‘구조’를 강조합니다. 말하자면 전통에 기반하지 않은 새로움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얼핏 보수적인 음악관으로의 회귀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강조하려는 것은 단지 음악 형식으로서의 전통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형식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으로 ‘예술가의 진심’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과장해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욕심,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좀더 익숙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려는 태도 같은 것들을 “속물들의 허영심”으로 지칭하면서 단호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중반의 서양음악사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라이벌로 손꼽혔던 쇤베르크(1874~1951)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습니다. 한때는 친밀했지만 미국에서는 불과 5km 거리에 살고 있었음에도 서로 내왕조차 안했을 정도로 불편한 사이였던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에 대해 이런저런 견해들이 있는 줄 압니다. 그의 작품은 종종 과격한 반발이나 빈정대는 웃음을 사기 일쑤였지요. 하지만 정직한 정신과 진짜배기 음악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달에 홀린 피에로>의 작곡가(쇤베르크)가 자신의 작업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아무도 기만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모든 예술가들은 앞 세대의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반발하지요. 같은 세대 안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 감정싸움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예술사에서 비일비재하지요. 그들도 인간이었고, 특히나 예민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이고르(러시아식 발음으로는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의 대음악가였던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의 직계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스승에게 직접 수업을 받는 것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나 가능했지요.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원(음대)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인 표트르 스트라빈스키는 당대의 러시아를 대표하는 성악가였지만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스트라빈스키는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법학과에 다녔습니다. 어찌 보자면 바로크 시대의 헨델과 비슷하지요. 한데 헨델이 그랬던 것처럼 스트라빈스키도 법학에 전혀 흥미가 없었습니다. 법대를 졸업하자마자(1905년)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문하에 정식으로 들어가 수업을 받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것이 음악 공부의 첫걸음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도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제자인 표도르 아키멘코에게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또 대학 시절에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두 아들과 친구가 됐기 때문에, 훗날 스승이 되는 림스키 코르사코르의 60회 생일파티(1905)에서 축하 칸타타를 작곡해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또 아버지가 당대의 유명 성악가였던 까닭에 스승의 집안과 이미 교분이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에서 나고 자랐을 뿐 아니라 스승인 림스키 코르사코르를 통해 ‘러시아적 전통’을 이어받지요. 그래서 그의 음악에서는 러시아의 민속 선율들이 때로는 그대로, 또 때로는 완전히 변형된 형태로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또 20대 후반에 디아길레프의 손에 이끌려 건너간 프랑스에서 그는 바로 앞 세대의 음악가였던 드뷔시의 영향력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파리에서 공연할 발레용 음악을 작곡하면서 드뷔시 풍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의 초기작들이 그렇게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까닭에 본국인 러시아에서는 비평가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은 1911년 작곡을 시작해 1913년 초연됐습니다. 앞서 작곡한 <불새>와 <페트루슈카>보다 더 원숙한 음악으로 평가받습니다. 두 편의 발레음악으로 이미 성공을 얻어낸 스트라빈스키의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 음악은 샹젤리제 극장에서 발레공연으로 초연된 이듬해에 연주회용 버전으로 러시아와 파리에서 다시 연주됐습니다.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는 쿠세비츠키가 지휘했고, 파리에서는 발레 초연의 지휘를 맡았었던 피에르 몽퇴가 지휘봉을 들었지요. 스트라빈스키는 특히 파리 연주회에 대해 흡족한 소감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샹젤리제 극장에서의 소동 이후 <봄의 제전>은 드디어 빛을 발했다. 연주회장은 만원이었다. 음악을 방해하는 무대 장치가 없는 연주회였기 때문에 청중은 집중해 음악을 듣고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작곡가로서 보기 드문 성공이었다.”
Stravinsky- Rite of Spring "Opening" /피나 바우쉬 발레
피나 바우쉬/봄의 제전
Stravinsky: Le sacre du printemps / The Rite of Spring - Jaap van Zweden - Full concert in HD
음악은 태양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러시아 이교도들의 태고(太古) 의식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모두 2부(Part1, Part2)로 나뉘어 있지요. 1부에는 ‘대지에 대한 경배’(L’Adoration de la terre)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서주로 시작해 ‘봄의 징조, 젊은 처녀들의 춤’ ‘유괴의 유희’ ‘봄의 론도’ ‘서로 다투는 부족들의 유희’ ‘현자의 행렬’ ‘대지에의 찬양’ ‘대지의 춤’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말하자면 이런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원시의 들판에서 남녀들이 춤을 추다가 짝을 찾고, 부족 사이에 대결이 등장했다가, 부족의 장로들이 이를 진정시키고 대지를 경배하는 의식을 치르면서 춤을 춥니다.
‘희생’ 혹은 ‘제물’(Le Sacrifice)로 제목을 번역할 수 있는 2부는 서주로 시작해 ‘처녀들의 신비한 모임’ ‘선택된 처녀에 대한 찬미’ ‘조상의 혼을 불러옴’ ‘조상들의 의식’ ‘희생의 춤, 선택된 처녀’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이교도들의 제물 의식이 차례로 치러지는 것이지요.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의 초기작들이 대개 그렇듯이, 관악기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음악입니다. 에너지의 응집과 분출이 대단히 강렬하게 펼쳐지지요. 1부의 막을 여는 신비로운 파곳 선율, 이어지는 호른과 플루트의 선율이 프랑스적 인상주의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합니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원시적인 생명력이 넘치는 변박자의 리듬, 아울러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더해져 20세기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강렬하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글/문학수
서곡 「에그몬트」 Op.84
Egmond Overture Op.84
Beethoven: Egmont Overture – Wiener Philharmoniker, Christian Thielemann (HD 1080p)
11곡이 있는 베토벤의 서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명곡이며, 괴테의 비극 『에그몬드』에 감격하여 1809년부터 1810년에 걸쳐 「에그몬트」서곡을 만들었다.
‘이 서곡은, 물결치는 심장의 고동과 공포의 예감에 앞선 망막한 두려움의 결정(結晶)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또 리스트는 ‘베토벤이 대시인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그려낸 최초의 한 예이다’라고 말했다. 곡은 두 개의 주제와 환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애국의 열화로써 불타는 것처럼 연주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곡 「에그몬트」 Op.84 (최신명곡해설 & 클래식명곡해설 - 작품편)
루째른 페스티발&리카르도 샤이 연주 보기.....
Riccardo Chailly and the Lucerne Festival Orchestra - Symphony No. 8, "of a Thousand" - Mahler
루째른 페스티발&안드리스 넬손스 연주 보기.....
Andris Nelsons, Lucerne Festival Orchestra - Lucerne Festival 2015 - Gustav Mahler no.5
Accentus Music - new on DVD and Blu-ray - May 2016: Andris Nelsons conducted the Lucerne Festival Orchestra for the third time in August 2015, the orchestra’s second summer without founder and guiding spirit Claudio Abbado. The first half of his concert was already highlight: the baritone Matthias Goerne
루째른 페스티발&클라우디오 아바도 연주 보기.....
Mahler - Symphony No.5 - Abbado - Lucerne Festival Orchestr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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