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라나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BEATRICE RANA PLAYS TCHAIKOVSKY
베아트리체 라나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BEATRICE RANA PLAYS TCHAIKOVSKY
9월 29일 (금)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September 29 – 8PM, Friday / Lotte Concert Hall
지휘 샤오치아 뤼 Shao-Chia Lü, conductor
피아노 베아트리체 라나 Beatrice Rana, piano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0번
Shostakovich,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소련 작곡가 동맹은 이 작품을 ‘낙관적 비극’이라 일컬었고, 쇼스타코비치는 단순히 ‘나의 열 번째 교향곡’이라고 불렀다. 어두움과 긴장감, 비밀 메시지로 둘러싸인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0번 이야기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섬뜩한 스케르초는 독재자 스탈린의 음악적 초상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 작품이 20세기 최고의 교향곡 중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이다. 하노버 니더작센 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낸 대만 지휘자 샤오치아 뤼에 대해 평론가들은 ‘뉘앙스의 대가’라고 평가했다. 쇼스타코비치 작품의 내적 의미를 찾아낼 적임자일 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신예 피아니스트 베이트리체 라나가 차이콥스키의 인기작인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의 풍성한 기복을 표현해내는데 도움을 줄 적임자라는 뜻도 된다. 라나는 뛰어난 피아니즘과 부드러움으로 러시아 낭만주의 시대의 인기곡인 이 협주곡을 선보인다.
샤오치아 뤼Shao-Chia Lü 지휘자
대만에서 출생한 지휘자 샤오치아 뤼는 먼저 타이페이에서 공부를 한 후에 미국의 인디애나음대와 오스트리아의 빈국립음대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세 개의 메이저 국제 지휘 콩쿠르(프랑스 브장송 지휘콩쿠르, 이탈리아 트렌토의 안토니오 페드로티 지휘콩쿠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키릴 콘드라신 지휘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한 매우 드물고 놀라운 경력을 갖고 있다.
1995년 베를린 코미셰 오퍼의 제1 카펠마이스터로 본격적인 지휘 경력을 쌓기 시작한 지휘자 샤오치아 뤼는 시드니 오페라,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 브뤼셀 라 모네 극장, 오슬로 노르웨이 오페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함부르크 오페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베를린 도이체 오퍼 등 세계 유수의 극장들에서 지휘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98년에는 독일 라인주의 코블렌츠 극장과 코블렌츠 라인 필하모니 모두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하노버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임하면서 베르디의 <아이다>, <에르나니>, <피가로의 결혼>, 야나체크의 <예누파>,< 마르코풀로스 사건>, 베토벤의 <피델리오>, 푸치니의 <투란도트>, <나비부인>, <토스카>,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방황하는 화란인>, 베르크의<보체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엘렉트라>, <살로메> 등 방대한 레퍼토리의 오페라들을 지휘하였다. 특히 2004년 그가 지휘한 하노버 오페라가 비엔나와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공연했던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는 국제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외에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 야나체크의 <카티야 카바노바>, 푸치니의 <토스카>, 슈투트가르트에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 베를린 코미셰 오퍼에서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 <토스카>, <라 보엠> 등을 지휘하였다.
샤오치아 뤼는 오페라 지휘자로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콘서트 무대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1994년 거장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대신 공연 직전에 독일 정상의 오케스트라인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처음 지휘하였는데, 이 때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비롯한 어려운 프로그램을 변경 없이 그대로 지휘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후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물론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로부터 초청이 이어졌다.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노르웨이 방송교향악단, 스웨덴방송교향악단,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열 리버풀 오케스트라,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예테보리 심포니,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슈트트가르트 남서독일방송교향악단,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이마르 슈타츠카펠레 등 유럽 정상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였다. 드디어 2011년에는 그라모폰지 선정 세계 오케스트라 랭킹 1위에 빛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까지 지휘하였다. 또한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같은 일본 정상의 오케스트라들도 지휘하였다.
2010년부터 대만국립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샤오치아 뤼는 2014/15 시즌부터 남덴마크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까지 맡아 활동 반경을 더욱 넓히고 있다.
베아트리체 라나 BEATRICE RANA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는 스물 세 살의 나이에 이미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사로잡았으며 세계 전역의 저명한 공연 기획자 및 지휘자, 그리고 평론가와 관객으로부터 주목 받고 있다.
그녀는 2015년 가을 워너 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차이콥스키(지휘 안토니오 파파노, 연주 샅나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오케스트라) 작품집을 발매했으며, 이는 그라모폰 에디터 초이스와 BBC 이달의 음반에 선정되며 세계적으로 극찬 받았다. 그녀가 최근 녹음한 두 번 째 음반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집은 올해 상반기 워너 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베아트리체 라나는 2015년 가을부터 BBC 신세대 아티스트 프로젝트(BBC New Generation Artist Scheme)에 선발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듬해 4월에는 보를레티 뷔토니 펠로우십 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녀는 2016/17 시즌에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집 발매를 기념하여 위그모어 홀, 샹젤리제 극장,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미니애폴리스 쇼팽 소사이어티 등 세계적인 콘서트 홀에서 투어 무대를 가졌다. 그녀는 또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리카르도 샤이),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파비오 루이지) 등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친데 이어 쾰른 필하모니, 뮌헨 헤라클레스 홀, 도쿄 토판 홀 등 주요 무대에서 연주 한 바 있다.
2017/18시즌 그녀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메인 홀과 루체른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데뷔 무대를 가지며,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오스모 밴스케, 임마누엘 크리빈, 미하일 유로프스키와 같은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한다.
2013년 6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은상(2위)과 청중 상을 수상한 베아트리체 라나는 이를 계기로 음악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그녀는 열여덟 살 때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1위와 각종 특별상을 당당히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베르비에르 페스티벌, 라디오 프랑스 몽펠리에 페스티벌, 토론토 여름 음악제, 그리고 통영 국제 음악제 등 세계 각국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콘서트 시리즈와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활동했다. 또한 그녀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트레스덴 필하모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시향 등 권위 있는 오케스트라에 협연자로 초청 받았다.
베아트리체 라나는 2014년 오르페움 재단이 영재 음악가 발굴을 위해 취리히 톤할레에서 진행한 국제 음악 축제에서 협연자로 발탁되어 거장 주빈 메타의 지휘로 마지오 무지칼레 피오렌티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친 바 있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그녀는 무치오 클레멘티 콩쿠르, 산마리노 국제콩쿠르, 그리고 뱅앤올룹슨 피아노라마 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수상 해왔다. 그녀는 현재 로마에서 베네데토 루포에게 피아노를 사사하고 있다.
1993년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베아트리체 라나는 아홉 살 때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협연자로서 처음 데뷔 하였다. 네 살 때 음악 공부를 처음 시작한 그녀는 모노폴리에 소재한 니노 로타 음악원에서 베네데토 루포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Marco della Sciucca에게 작곡을 사사하기도 했다. 그녀는 열두 살 때 이탈리아 교육부에서 지급하는 최우수 장학금을 수여 받는 등 어릴 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Sergei Prokofiev - Concerto per Pianoforte e Orchestra n. 2 - Beatrice Rana (pf.)
Seong-Jin Cho -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2011)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Pyotr Il'ich)는 일생동안 3곡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다.
1875년에 op23의 1번, 1880년에 op44의 2번(G장조), 그리고 op75의 E플랫장조의 세 번째 피아노협주곡은 1893년에 작곡되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이라고 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1번이며
다른 두 곡의 협주곡은 녹음이나 연주되는 경우가 무척 드물다.
슈만이나 쇼팽, 브람스의 협주곡들은 비록 그 수는 적지만 그 수준이 매우 높아 연주되는 기회도 매우 많았고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은 대중적인 인지도에 있어서 앞의 협주곡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정말 대중적인 의미에서는 1악장의 도입부만이 인지도가 높다고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4대의 호른으로 시작하는 포르티시모의 충격적인 느낌, 그리고 러시아의 토속적인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서주 주제의 친근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사실 이 서주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매우 개성적이고 완성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1악장이 다소 산만한 것은 논외로 하고)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것도 사실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도입부가 충격적인 것이 많은데 - 리스트, 슈만, 차이코프스키,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들을 생각해 보면 -
그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적이고 화려한 시작을 보이는 것이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이다.
아마 이전에 베토벤의 5번 협주곡이 화려한 피아노의 카덴짜로 시작된 것 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 작곡과 초연 ]
이 곡이 작곡된 것은 1874년 12월 무렵이다. 이 해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있어서 비교적 조용했던 시절로, 1월에 현악 4중주 2번을 작곡했고,
6월부터 3개월정도 오페라인 '대장장이 바쿨라'에 전념하였다.
그 후 당분간 창작활동을 하지 않던 차이코프스키는 12월 부터 약 1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 이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하였으나,
초연은 의외로 1년 가까이나 지난 1875년 10월 25일 보스턴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 얽힌 일화는 영화나 여러 문헌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당시 모스크바음악원 교장이며 차이코프스키의 친구였던 니콜라이 루빈시타인(1835-1881)과의 불화에 의한 것이다. 니콜라이 루빈시타인은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스승이었던 안톤 루빈시타인(1829-1894)의 동생으로형 못지 않은 상당히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곡을 완성한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첫번째 협주곡인 이 곡의 피아노 파트에 조언을 듣기 위해 12월 24일 밤에 루빈 시타인과 프베르트( 당시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를 초청하여 이 곡을 직접 연주하여 들려 주었다.
차이코프스키는 피아노 파트의 완성도와 곡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을 기대했었지만
루빈시타인은 그 자리에서 혹독한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이 부분은 동석했던 프베르트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1877년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은 차이코프스키가 이 때 받은 심적인 충격을 어느 정도 보여 주고 있다
'나의 피아노협주곡은 연주가 불가능한 듯이 보였으며,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 곡을 구성하는 패시지들은 어색하고 서투른 것이어서 구제불능이었다. 작품 자체가 좋지못하고 천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의 작품을 그대로 사보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이 협주곡은 두 세 페이지만을 건질 수 있을 뿐 나머지는 완전히 다시 써야 했다.' 이러한 평가를 받고 격분한 차이코프스키는 방을 뛰쳐나갔고 당황한 루빈시타인은 뒤따라 나가서 몇몇 부분을 수정하면 자신이 연주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단 하나의 음표도 고칠 수 없다'고 고집을 세웠으며, 당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떨치던 한스 폰 뷜로에게 이 곡의 초연을 의뢰하였다. 한스 폰 뷜로는 이 곡을 살펴보고 매우 만족해 했으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보스턴에서 가진 초연은 뷜로의 확신대로 대 성공을 거두었으며 뷜로는 이 사실을 전보를 통해 모스크바에 있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알렸다 (모스크바와 보스턴 사이의 최초의 전보가 바로 이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모스크바에서의 초연은 루빈시타인이 지휘를 맡아 1878년 3월 22일에 이루어 졌다.
Lang Lang plays Tchaikovsky :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us 23 [HD]
P. I. Tchaikovsky -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 Martha Argerich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E단조 작품번호 93
Shostakovich - Symphony No.10 in E minor, Op.93
쇼스타코비치(Dmitri Dmitriyevich Shostakovich, 1906~1975)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 러시아의 작곡가이다. 그는 소비에트 정부와 복잡한 관계 속에서 그의 두 작품이 공개적인 경고를 받기도 했으며, 종종 그의 작품에 대해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비에트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자, 여러 개의 표창과 상을 받기도 했으며, 소비에트 최고 회의 위원이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전통적인 음악분석가들의 혼동을 유발시켜 그의 교향곡들을 폄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유는 그의 음악적 구조가 순수 음악이라기보다는 자주 상황에 따른 극적인 사고에 의해 구상되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10번>은 그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작곡된 교향곡 제7번과 제8번에서 스탈린에 대한 추앙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래서 교향곡 제9번에서도 스탈린과 공산당은 기대가 컸다.
그러나 <교향곡 제9번>은 그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이었다. 이 곡에서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신랄한 투쟁의식과 스탈린에 대한 일종의 반항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후 스탈린의 측근들과 동료 작곡가들로부터 `형식주의자'로 신랄한 비판과 심한 고초를 당하게 된다.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줘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스탈린에 대한 찬양이 포함된 오라토리오〈숲의 노래〉등 `정권 접대용' 작품들을 만들어 비난의 소용돌이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 외에도 체제 선전성과 거리가 먼 순수음악 계통의 곡들도 조용히 작곡하거나 구상했고, 이들 작품은 스탈린 사망 후에 발표되었다. <교향곡 제10번>도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한 후에 무서운 속도로 쓰기 시작해 그 해 가을에 완성했다.
1953년 12월 17일, 레닌그라드에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쇼스타코비치의 열 번째 교향곡이 공개되었다. 그로써 쇼스타코비치는 베토벤이 멈춰 섰고 말러가 주저했던 ‘10번’이라는 벽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교향곡 10번>는 ‘혁명’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교향곡 5번 d단조>와 더불어 그의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목록에서 ‘10번’의 등장은 전작인 ‘9번’ 이후 무려 8년 만의 일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0번>는 `9번째 교향곡의 저주'에서 회복되어 그의 명성을 되찾을 뿐 아니라 그의 제2의 작품세계를 여는 계기도 되었다. 이 교향곡 후부터는 좀 더 내면적으로 침잠해가면서 개인적인 사색이 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즉 교향곡 제9번 이후 짓눌린 그의 힘겨운 삶의 긴 터널의 끝에서 빠져나오는 듯 새롭게 충만한 정신적 느슨함이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삶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곡으로, 인생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한 관념적 비극성을 깊이 있게 묘사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Shostakovich -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 Gergiev
제1악장 Moderato 00:00
연주에 25분 정도가 소요되는 장대한 스케일로 전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악기들의 나지막한 연주가 끝나면 클라리넷 솔로가 내성적이고 섬세한 분위기로 바꿔가며 줄기차게 반복한 후 흐름이 가라앉고 나면 플루트 솔로가 나지막하게 심한 도약이나 강약 대비 없이 비교적 담담한 형태로 연주한다.
이것이 다른 악기들로 옮겨가서 다시 고조되고, 그동안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던 금관악기들과 타악기들도 등장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장에서 자신의 가곡집 <푸시킨의 시에 의한 4개의 모놀로그>의 두 번째 곡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 노래의 제목은 ‘당신을 위한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이다.
제2악장 Allegro 25:15
스탈린과 연관성이 짙은 악장으로서 비교적 가라앉고 내성적인 분위기였던 제1악장과는 상극을 이루는 빠르고 과격한 악장으로 특정한 형식보다는 스피드와 악상의 굴곡을 강조하는 환상곡 스타일이다.
짜릿한 스릴과 쾌감, 현기증과 공포감 등을 함께 유발하는 음악으로 풍자적인 기운도 감지되며, 현악기들의 거친 연주 바로 뒤에 나오는 목관악기들의 선율을 이리저리 변형시키면서 계속 끼워 넣고 있다. 한편 이 악장의 주요 주제는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서주에서 가져온 것이다.
제3악장 Allegro Largo 30:12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바이올린이 저음의 짤막한 악상을 제시하며 시작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제1악장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편이지만, 악상 사이의 강렬한 대비나 율동의 가미로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바이올린이 제시한 악상에 이어 플루트와 피콜로가 두 번째 주요 악상을 제시한다. 말러의 교향곡 7번에 등장하는 ‘밤의 음악(Nachtmusik)’을 연상케 하는 춤곡 풍 악장으로 다채로운 흐름을 지니고 있다.
제4악장 Andante Allegro 42:57
안단테의 서주로 출발해서 알레그로의 주부로 이행하는 피날레 악장이다. 서주에서는 어둡고 우울한 선율이 흐르지만, 주부로 넘어가면 밝고 상쾌한 선율이 활기차게 흐르기 시작한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우울한 느낌의 악상을 조용히 켜면서 시작한 후 목관악기들의 솔로 연주로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클라리넷에 의해 우크라이나 전통 춤이자 춤곡인 고파크 스타일로 속도가 빨라지고 분위기도 비교적 밝게 변하면서 활기찬 선율과 리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친다.
흥미로운 것은 곡 전반에 쇼스타코비치 이니셜 악상들이 간간히 나타나면서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작성자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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