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6년)

에셴바흐의 말러 교향곡 1번

나베가 2016. 7. 8. 13:14


서울 시향&에셴바흐의 말러 교향곡 1번





지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Christoph Eschenbach, conductor
피아노
크리스토퍼 박 Christopher Park, piano
 
[프로그램]
R.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R. Strauss,
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
 
슈만, 피아노 협주곡 Schumann,
Piano Concerto, Op. 54
 
말러, 교향곡 1번 Mahler,
Symphony No. 1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낸 에셴바흐와 서울시향의 만남이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성사되었다.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부친이 한국인이고 모친이 독일인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을 협연자로 추천했다. 1987년생인 그는 레프 나토체니와 요아힘 폴크만에게 배워 러시아와 독일의 피아니즘을 두루 잇고 있으며, 여러 음악축제에 솔로 혹은 실내악 연주자로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최근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축제에서 번스타인 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프로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Christoph Eschenbach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는 뛰어난 현장감각과 음악적 해석으로 찬사를 받으며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하우스를 객원지휘하고 있다.
그는 특유의 창조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지휘자이자 젊은 음악인들의 후원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이시대 최고의 음악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지휘자 이전 먼저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1세에 주요 콩쿠르에 입상하기 시작하여 1965년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1등상을 수상하는 등 전후 데뷔한 세대 중 독일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후 멘토였던 지휘자 조지 셀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영향을 받으며 지휘자로서 경력을 시작하였다.
1975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미국 지휘 데뷔 무대를 가졌고 이후 비엔나, 베를린, 드레스덴, 로마, 파리, 런던, 뉴욕, 시카고 등 세계전역의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하우스로부터 초청을 받고 있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1982~1986)와 휴스턴 심포니(1988~1999), 함부르크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1998~2004) 음악 감독을 역임하였으며, 파리 관현악단의 음악감독(2000~2010)으로 10년 동안 활동한 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2003~2008)으로 4년 동안 재직하였다.
2010년 9월 케네디 예술센터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탁월한 음악적 성취에 대해 수여한 문화예술 공로훈장인 ‘코망되르’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비롯하여 2015년 독일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등 수많은 세계적 권위의 상을 수상했다.


크리스토퍼 박Christopher Park 피아노



밤베르크에서 한국계 독일인으로 태어난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은 2014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 축제에서 레너드 번스타인 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상을 수상한 예술가로는 랑랑, 리사 바티아쉬빌리, 마틴 그루빙거 등을 꼽을 수 있다. 같은 해 말 그는 빈의 무지크페라인 브람스홀에서 빈 필하모닉의 단원
들로 구성된 퀴흘 콰르텟과 함께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는 아비 아비탈, 리차드 용재 오닐, 레티시아 모레노, 아돌포 구티에레스 아레나스, 조수미와 협연했으며 존 노이 마이어와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변주곡, 슈만의 어린이 정경, 요한 세바스찬 바흐 모음곡을 연주한 바 있다.
그는 유럽콘서트홀협회(ECHO)의 2016/17 시즌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런던, 암스테르담, 함부르크, 빈, 스톡홀름, 바르셀로나, 부다페스트, 리스본 등 유럽의 유명 콘서트홀에서 활발하게 데뷔 무대를 펼치고 있다.
그와 함께 협연한 지휘자로는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파보 예르비, 세바스티안 바이글, 이온 마린, 드미트리 키타엔코가 있다.
유럽,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한국에서 공연했으며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페스티벌, 바일부르크 성 콘서트, 라인가우 뮤직 페스티벌,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뮤직 페스티벌, 퀸세나 무지칼 데 산세바스티안, 부르고스 인터네셔널 뮤직 페스티벌 등에서 연주를 펼친 바 있다.



 
Happy Birthday! Mahler! |  에셴바흐의 말러 교향곡 1번

젊은 대가의 도전과 자부심
1월 서울시향의 첫 공식 무대를 이끌었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7, 8일 이틀 동안 같은 프로그램을 펼쳐낸다.
연초 긴급 투입되었던 그의 드라마틱한 브루크너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그는 한국계 독일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퍼 박을 협연자로 추천했다. 최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축제에서 번스타인 상을 수상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864~1949)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1895)

<연주시간: 15분>



뮌헨 출신의 R 슈트라우스는 교향시와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독일 후기 낭만파의 대표 작곡가이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은 슈트라우스가 서른한 살 때 지은 작품인데 그의 교향시들 중에서 가장 경쾌하고 익살맞은 곡이다.

이 곡은 옛 독일의 민담에 등장하는 말썽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틸  오일렌슈피겔(틸)’은 14세기경  브라운슈바이크  지방에서  태어나  홀슈타인  지방에서  죽은  것으로  전해지는  장난꾸러기  모험가의  이름이다. 

그는 플랑드르  지방부터 독일  북서부  지방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온갖 말썽을 피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슈트라우스는 그 ‘틸’의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파란만장한 생애를 재기발랄하고도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무쌍한 음악으로 그려 보였던 것이다.
곡은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오는  은근한  느낌의  선율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마치  재담꾼이
“옛날 옛적에 소문난 장난꾸러기가 살았는데…”라고 운을 띄우는 것처럼 들린다.

 이어서 호른이 유머러스한 주제를 연주하면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 부분은 “그 녀석의 이름은 틸 오일렌슈피겔이라고 했지”에 해당한다.

계속해서 음악은 틸의 짓궂고 익살맞은 성격을 한층 선명하게 부각시킨 다음, 그의 흥미진진한 모험들에 관한 이야기를 차례로 펼쳐나간다.

틸은 시장바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승복을 입고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는가 하면, 기사로 변장하여 아리따운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가씨에게  버림받은  틸은 ‘인류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더욱  큰  말썽과 소동을 벌인다.

그러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음악은 이러한 장면들을 다채롭고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특히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재판정 장면에서 재판관들의 엄포와 그에 맞서는 틸의 익살을 나타낸 부분이 압권이다.

하지만 곡의 마지막 부분으로 접어들면 처음의 선율이 다시 흘러나오는데, 이는 비록 틸은 갔어도 그 유머와 풍자정신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곁에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로베르트 슈만 (1810~1856)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54(1845)

<연주시간: 31분>


이 곡에서 슈만은 자신만의 독자적 피아니즘을 관현악과 결합시켜
새로운 음의 세계를 개척했고, 베토벤의 선례, 특히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장조’의 정신을 계승하여
진정한 ‘낭만적 협주곡’을 창출해냈다


슈만은  클라라와  결혼한  이듬해인 1841년에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A단조’라는
단악장 구성의 협주 작품을 작곡한 바 있다. 1845년에 완성된 그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은
이 ‘환상곡 A단조’를 첫 악장으로 삼고 후반 두 악장을 추가하여 완성된 것이다. 그 해에 슈
만은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자극을 받아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하고 싶
어했다.  완성된  협주곡은  같은  해 12월 4일  드레스덴에서  클라라  슈만의  독주와  페르디난
트 힐러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이후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기 피아노 협주곡으로 자
리매김했다.
이 협주곡은 동시대의 대세였던 ‘비르투오소 협주곡’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비
록  외견상으로는  전형적인 3악장제를  취하고  있지만,  첫  악장  제1주제의  진행형과  동기가
다른 악장들의 주요선율에 교묘히 침투하는가 하면, 후반 두 악장은 쉼 없이 이어서 연주하
도록 되어 있는 등 도처에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기적 구성미가 두드러진다. 이는 이 곡이
기본적으로 ‘환상곡 A단조’에서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으되 전형적인 칸타빌레풍의 제2주제를 두지 않았고 베토벤 식의
전개도  취하지  않았다.  또  카덴차는 제1악장에만,  슈만  자신이  직접  작곡한  것이  붙박이로
삽입되어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슈만은 자신이 의도한 ‘시적  흐름’이 ‘단순한  손재주의
과시’로 인하여 방해받을 위험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곡에서 슈만은 자신만의 독자적 피아니즘을 관현악과 결합시켜 새로운 음의
세계를 개척했고, 베토벤의 선례, 특히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장조’의 정신을 계승하여 진
정한 ‘낭만적 협주곡’을 창출해냈다. 이 ‘피아노 협주곡풍의 낭만적 환상곡’은 그 섬세하고
다채로운,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이 충만한 시정으로 듣는 이를 아름답고 오묘한 환상의 세
계로 이끈다. 그리고 그 바탕에 자리한 것은 역시 ‘필생의 연인’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깊고
뜨거운 사랑일 것이다.






제1악장:  슈만  특유의  열정과  서정이  어우러지는  환상곡풍  악장.  먼저  관현악의  강렬한  타격에  이어 
피아노의 리드미컬한 강주가 튀어나오는 도입부가 나오고, 곧이어 오보에에서 부드럽고 낭만적인 제1주제
(A단조)가 흘러나온다. 이 악장은 거의 전적으로 이 제1주제에 의존하고 있는데, 즉 악장 전체에 걸쳐 수차
례  되풀이되는  휩쓸려가는  듯한  주요  악구도,  클라리넷이  꺼내놓는  제2주제(C장조)도  모두  제1주제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이후의  전개는  실로  슈만다운데,  다시 말해  베토벤  식의 조직적이고  드라마틱한  흐름보
다는 슈만 특유의 시적 서정성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제와 그 단편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며
다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발전부는 ‘시정의 흐름’을 매우 인상적으로 부각시킨다.


제2악장: 느긋한 목가풍의 간주곡 악장. 차분하면서도 나긋나긋한 흐름과 섬세하고 달콤한 뉘앙스가 두드
러지는 가운데 앞선 악장의 제1주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주제선율(F장조)이 흐르고, 중간부에서는 표정
풍부한 첼로 선율(C장조)이 흘러나와 그윽한 낭만적 정감에 흠뻑 취하게 해준다. 이 악장의 말미는 쉼표 없
이 다음 악장으로 연결된다.

 
제3악장:  이  악장의  시작과  동시에  피아노가  힘차게  연주하는  제1주제(A장조)  역시  첫  악장의  주제와  관
련이 있다. 이 제1주제에 의한 밝고 당당하며 활기찬 흐름이 이어지다가, 쉼표가 교묘하게 삽입된 제2주제
(E장조)가  현에서  리드미컬하게  등장한다.  화려하고  격정적인  발전부에서는  푸가토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새로운 선율(F장조)도 나타나며, 재현부에서는 제1주제가 D장조로 나타나는 슈베르트 식의 변칙도 보인다.
긴  종결부에서는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흐름이  마치  새가  날개짓하며  비상하듯  이어지는  가운데  피아
노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선율이  나타나고,  발전부의  선율도  활용되며  눈부신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후 
마무리된다.



구스타프 말러 (1860~1911)
교향곡 1번 ‘거인’(1888)

<연주시간: 53분>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이 곡을 ‘말러의 베르테르’라 부른 바 있다.
말러가 이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한 것은 1888년,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빈(Wien) 음악원
을 졸업한  말러는  청년기를  오스트리아와  독일  각지의  크고  작은  오페라 극장들에서  카펠
마이스터(지휘자)  경력을  쌓으며  보냈다.  말하자면  훗날  빈  궁정  오페라  극장이라는  최고
지위에 오른 대지휘자의 ‘편력시대’였던 셈이다.
아울러 꽃다운 청춘기에 ‘사랑의 에피소드’가 빠질 수 없다. 카셀 궁정 오페라 시절에 말러
는 요한나 리히터라는 여가수를 열애했으나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그녀 앞에서 속수무책
이었고,  그  실연의  상처를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라는  가곡집에  봉인했다.  또  라이프치
히  오페라  시절에는  유부녀인  마리온  폰  베버에게  구애했으나,  야반도주를  제의하고서  기
차역에서  기다리던  그  앞에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모든  추억들,  험난한  세파를

 
헤치며 인생을 개척해 나가던 한 풋풋한 젊은이의 초상이 바로 이 교향곡에 아로새겨져 있
다. 한 때 말러가 이 곡에 장 파울(Jean Paul)의 소설 제목을 따서 ‘거인(Titan)’이라는 표제
를 붙인 것도 그러한 ‘성장과정’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리라.
이 교향곡은 말러의 가장 대담한 작품이자 여러 면에서 다분히 치기 어린 작품이다. 여기서
말러는 4관 편성을 기본으로 호른 파트를 보강한 거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사용했고, 자신의
초기가곡에서  가져온  선율들,  선배  작곡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티브와  이미지,  민속음
악  요소  등  다양한  음악적  소재들을  끌어다  활용했다.  그  결과로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말러 음악의 순수한 원천이며, 나아가 그 모든 요소들을 다분히 내러티브적 맥락에서
조합하고 배치한 한 편의 서사적 드라마이다. 무엇보다 말러는 여기서 이후 자신의 작품에
서 지속적으로 등장시키게 될 ‘영웅적 주인공’을 처음 선보였다. 그 주인공은 “삶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운명에 대항하는 거인”이자,  말러 자신의 영혼과 진실이 투영된 ‘음악적 자아’
이기도 하다.


 


제1악장: 현의 하모닉스로 시작되는 느린 서주는 신비로운 자연의 이미지, 정겨운 뻐꾸기 소리, 멀리서 들
려오는  군악대의  팡파르  등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고향의  숲으로부
터 들판으로 걸어 나온다. 주부에 흐르는 상쾌한 주제선율은 말러의 연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에서  두  번째  곡인 ‘아침  들판을  거닐면’에서  가져온  것이다.  신선한  대기를  호흡하며  주인공의  발걸음은
차츰 활기와 열기를 더해가고, 그 절정에 이르러 그는 보다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온다.


제2악장: 오스트리아의 민속무곡 리듬을 바탕으로 한 스케르초 악장. 주부는 시골풍의 렌들러로, 트리오는
도회적인  왈츠로 진행된다.  지방과  대도시를  오가며  패기만만하게, 때론  유희도  즐기며  자신의  삶을  개척
해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연상된다.


제3악장: ‘칼로풍의 장송행진곡’으로 명명된 이 완서악장은 ‘숲 속 동물들이 사냥꾼의 장례식을 치른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유명한 돌림노래 ‘마르틴 수사(자크 형제)’의 선율을 단조로 옮겨 클레츠
머 밴드(유대인 민속악단)의 우스꽝스러운 리듬과 어우러지도록 만든 양단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놓인 중간부에서는 슬픈 동경으로 가득 찬 선율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 역시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
래’ 중 마지막 곡인 ‘내 연인의 푸른 두 눈동자’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악장은 실연의 고통에 빠
진 주인공이 스스로를 자조하는 패러디 음악이다.


제4악장: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요란한 굉음과 강렬한 불협화음으로 출발되는 이 악장에서 주인공은 가혹한
운명이  자신에게  덧씌운  시련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감행한다.  처음에 그 고통은 마
치 지옥과도 같고, 그 비애는 통절하기 짝이 없지만, 주인공은 굳건한 의지와 신념을 바탕으로 차츰 그것을
극복해 나간다. 기나긴 투쟁과 성찰의 과정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마침내 그는 젊은 날의 위기를 딛고 일어
서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간다.  그  가슴  벅찬  행진곡이  펼쳐지는  노정에서  말러는 7명의  호른
주자를 기립하도록 하는 상징적 행위를 지시하여 ‘청춘의 승리’를 더욱 힘차고 뜨겁게 선언했다! 






말러 vs R 슈트라우스
같은 시대 두 영웅의 이야기


작곡과 지휘 양 분야 모두에 정통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을
지휘했던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지휘자로서 상대방의 작품을 세밀히 분석했던 경험은

서로의 음악세계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1860년 7월 7일, 보헤미아의 작은 마을 칼리슈톄에 위치한 여인숙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구스타프 말러. 이 여인숙을 운영하던 그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궁핍하지 않았지만, 상류층의 교양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소수집단에 불과했던,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태인들이었다.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가족은 인근의 보다 큰 도시인 이글라우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양조장과 술집을 운영했고, 술집을 드나들었던 여러 무리들의 다양한 노래와 인근 병영에서 흘러나오는 군악, 그리고 유태인들의 전통음악인 클레츠머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그의 음악적 재능은 나날이 무르익어갔다.
글 이종선(음악 칼럼니스트)


말러가 태어난 지 4년 뒤인 1864년 7월 11일, 뮌헨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의  아버지  프란츠는  당대  독일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하나였던  뮌헨 궁정악단(현재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수석 호른연주자였고, 음악교사와 작곡가로서도
명망이 높았다. 어린 리하르트는 이러한 아버지로부터 체계적이고도 집중적인 음악교육을 받으며 위대한 음악가로서 위상을 서서히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오스트리아인들  중에서는  보헤미안,  독일인들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  세계에서는 유태인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방인이요,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스스로 이렇게 회고했다시피 말러는 비주류의 영역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더구나 나치 치하에서는  유태인  음악가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그의 이름이  철저한  부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슈트라우스는  독일  음악의  적통이었다.  젊어서는  스스로  바그너의  후계자를
자처했고, 늙어서도 후기낭만음악의 위대한 전통을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산증인이었다. 당대 독일음악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라는 세간의 평판에 부응하여 나치는 그에게 제국음악성(Reichsmusikkammer)의 총수를 맡겼고, (본의는 어떠했을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그 자리를 수락함으로써 씻지 못할 자신의 흑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성장배경만큼이나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다분히 감성 지향적이고 신경이 예민했으며  시간만  나면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고독을  즐겼던  말러와 달리,  슈트라우스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었으며 틈나는 대로 동료음악가들과 카드노름을 즐길 정도로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서로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실제 삶 속에서도 이들은 막역한 관계였다.


두 사람은 1887년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만난 이후, 말러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긴밀한 교분을 나눴다. 알마 말러는 두 사람 사이를 이렇게 회고했다.

“두 사람이 길고도 열띤 토론을 나누는 동안, 나와 파울리네(슈트라우스의 아내)는 미용사, 블라우스, 최근에 읽은 소설 등등을 소재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야 했다. 그들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 마냥 계속해서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작곡과 지휘 양 분야 모두에 정통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을 지휘했던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말러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정교향곡’, ‘영웅의 생애’, ‘돈 후안’과 같은 슈트라우스의 초·중기 관현악 걸작들을 수차례 지휘했고, 슈트라우스 역시 말러의 교향곡 2번과 교향곡 3번을

콘서트 무대에 올렸다. 지휘자로서 상대방의 작품을 세밀히 분석했던 경험은 서로의 음악세계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말러와 슈트라우스는 독일계 후기낭만음악의 마지막 정점을 쌓아올린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지휘자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방대한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했던 관현악법의 명수들이었고, 그와 반대로 시에 담긴 순수한 서정을
섬세하게 풀어놓았던 리트의 대가들이기도 했다. 낭만음악의 전통을 기반으로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세계를  예비했다는  측면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말러는  슈트라우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슈트라우스와 나는 하나의 산을 각기 다른 비탈에서 오르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다.”

부연하자면 표면적인 스타일이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적인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말러는 ‘작곡을 부업으로 하는 지휘자’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포디움  위에  우뚝  선  마에스트로  말러에게는  열광하였지만, 

그가  바쁜  일정을  쪼개어가며 틈틈이  작곡했던  교향곡과  가곡들에는  그다지  열렬한  환호를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말러는 자신의 작품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질 때가 올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언 아닌 예언은 결국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실현되었다.


슈트라우스는 생전에 이미 작곡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그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중의  취향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였고, 

그들의  기호에  부응하는  음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라는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제3제국과 2차대전을 거치는 동안, 나치 부역자라는 오명과 함께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수구적인 작곡가의 대표인물로 여겨지면서 그의 음악세계가 평가 절하되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위상은 오래지 않아 복원되었다. 그리고 탄생 150주년이었던 2014년을 전후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그의 작품들이 세계 각지에서 널리 연주되고 있다.


한 시대를 공유하면서 라이벌이자 동료로서 서로를 아꼈던 두 작곡가가 30대 전후에 완성
했던 초기 대표작들이 한날 같은 무대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은 슈트라우스가 31세 되던 해인 1895년에 완성되었다. 대략 15분 정도의 연주시간을 요하는 이 작품은

작곡가의 다른 대규모 관현악 걸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품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관현악 편성에 있어서는 8대의 호른과 6대의 트럼펫, 그리고 다양한 타악기군이 수반된 4관 편성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는

당당한 스케일의 작품이기도 하다. 중세 독일 민담의 주인공인 틸 오일렌슈피겔의 천방지축 행각을 바그너 풍의 라이트모티프를 사용하여 자유로운 론도형식으로 표현한 표제음악으로, 여린 바이올린 서주에 이어서 호른에  의해  호기롭게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주인공 틸  오일렌슈피겔을 나타내는

라이트모티프다. 틸은 말을 타고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성직자를 조롱하고, 마을 처녀에게  지분거리는  등의  난장을  벌이다가 

결국  붙잡혀서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결국 틸은 교수대에서 최후를 맞이하지만, 그와 같은 악동은 또 다시 등장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작품이 마무리된다.


말러는 28세 되던 해인 1888년에 자신의 첫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그의 원래 의도는 교향곡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이듬해  부다페스트에서 ‘2부의  교향시’라는  무미건조한  타이틀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그 후 1893년 함부르크에서 다시 연주되었는데, 말러는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설명들을 덧붙였다.

즉 1부 ‘청춘의 날로부터/ 꽃들-, 과일- 그리고 가시덤불’을 구성하는 3개의 악장에는 각각 ‘봄과 끝없음’, ‘블루미네(꽃)’, ‘순풍에 돛을 달고’라는

설명을 덧붙였고, 2부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2개의  악장에는 ‘좌초’와 ‘지옥에서  낙원으로’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그리고  장  폴의  소설에서 따온

‘거인’이라는 제목을 작품에 전체에 부여하였다.

하지만 1896년 베를린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말러는 대대적으로 작품을 다시 손보았다.

먼저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던 2악장 ‘블루미네’를 과감하게 삭제했으며, 각 악장에 붙였던 설명들과 ‘거인’이라는 작품 타이틀도 모조리 생략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4악장 체제에 걸맞은 교향곡 D장조라는 지극히 순음악적인 작품명으로 이를 무대에 올렸다.


 말러는 이후의 공연에서도 이 4악장 버전만을 계속 고집했다. 1966년 영국의 저명한 음악관련 저술가인 도날드 미첼에 의해 ‘블루미네’ 악
장이  재발견되면서,  이후  공연이나  레코딩에서 ‘블루미네’가  포함된 5악장  버전을  선택하
는 지휘자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말러의 의도에 보다 충실한 4악장 버전이 여전히 대세를 이루고 있다.

<펌/SPO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