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돈 크레머 & 뤼카 드바르그 리사이틀
결정적 만남
기돈 크레머 & 뤼카 드바르그 리사이틀
Gidon Kremer & Lucas Debargue Asia Tour in Korea
22년만에 리사이틀로 돌아온 기돈 크레머, 그리고
그가 선택한 2015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문제적 남자 뤼카 드바르그
기돈 크레머가 리사이틀로 돌아온다. 최근 오케스트라 협연으로만 내한했던 기돈 크레머의 골수 팬들에게는 반갑지 않을 수 없는 뉴스다. 특히 그의 파트너는 지난 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자 이상의 대 반향을 일으킨 젊은 피아니스트 뤼카 드바르그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다닐 트리포노프 등 이름만으로도 설명이 되는 슈퍼스타들과 듀오를 이뤘던 기돈 크레머의 선택이기에 더욱 힘이 실리는 리사이틀이다.
기돈 크레머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지난 50년간 장르와 작곡가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항상 특별한 프로젝트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클래식을 비틀고 숨겨진 곡을 발견하며 다른 장르를 재해석하는 모험가이기도 하며, 현대음악과 젊은 연주자들을 소개하는데 기꺼이 빛이 되어주는 아주 드문 음악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10월 내한무대가 진짜 거장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연주였다. 본 프로그램부터 앙코르로 연주한 피아솔라의 망각과 영화 ‘화양연화’의 테마까지, 기돈 크레머의 연주는 오랜 시간 끊임 없이 탐구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예술이었다.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뤼카 드바르그였다. 4위에 올랐지만, 모스크바 음악비평가협회가 예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어 청중과 비평단에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콩쿠르 참가자에게 주는 상은 뤼카 드바르그에게 돌아갔다. 20세까지는 체계적인 교육 없이 독학으로 자유롭게 피아노를 공부했던 이의 수상이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은 심지어 그의 첫 오케스트라 협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선에 이르기까지 매 스테이지마다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은 바로 뤼카였고,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던 연주는 이제 세계 각국에서 실연으로 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열에 올라선 경지란 무엇인지 보여준 기돈 크레머, 정통에서 벗어난 폭발적인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인지가 궁금한 뤼카 드바르그,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시너지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기대 만점의 무대가 6월 우리를 기다린다. 프랑크, 라벨 소나타와 각자의 독주곡이 예정되어 있으며, 이번 공연은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펼쳐지며, 2016 디토 페스티벌의 오프닝 콘서트이다.
프로그램
라벨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장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미정)
프랑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 외
* 위 프로그램은 연주자의 사정에 의해 사전 공지없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
기돈 크레머 Gidon Kremer, Violin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살아있는 거장, 파가니니의 환생으로 불리는 바흐부터 20,21세기 현대음악까지 거의 모든 시대의 음악을 소화해내는 놀라운 바이올리니스트로, 120개가 넘는 음반을 녹음한 이례적인 레코딩 기록 보유 이 중 상당수가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
뤼카 드바르그 Lucas Debargue, Piano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사로잡은 클래식 센세이션!
피아노를 배운 기간은 단 4년, 악보 보는 법도 모른 체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 하여 20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4위를 차지, 청중과 비평단에 가장 깊은 인상을 준 피아니스트. 모스크바 음악평론가협회로부터 평론가상 수상, 현재 세계적인 매니지먼트 CAMI 소속 3월 말 소니 음반 발매 예정
모리스 라벨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 2번 G장조
Maurice Ravel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2 in G Major
Allegretto
Blues. Moderato
Perpetuum mobile. Allegro
VADIM REPIN and VLADIMIR MOGILEVSKY play RAVEL VIOLIN SONATA Nr. 2 in G Major
라벨은 그의 마지막 실내악 곡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1923년부터 1927년에 걸쳐서 작곡했는데,
이렇게 늦어진 이유의 하나로는 <치간>과 <어린이와 마술>의 작곡 때문에 소나타의 작곡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대위법적이고 선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고, 모든 복잡하고 두꺼운 화음을 피하여
전체적으로 간단명료한 구조를 구현하려 했다.
또한 라벨은 다른 듀오 소나타와는 달리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독립된 개체임을 강조하며,
두 개의 악기의 대비되는 성격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복조성 속에 민감한 음채와 유연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제1악장은 피아노와 선법적인 주제를 부연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칸타빌레한 노래의 폴리포니가 제시부를 발전부로 진행시키며,
병행5도의 배경 위에서 주요 모티브가 전개된다.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코다 부분에서 각 부분의 앞에서 들려주는 것은 선법적인 주제인데,
이 악장의 주제 설정은 빈 고전파의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에 의한 틀에는 그리 구애 받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 악장이 고전적인 조성에 얽매이지 않고 선법성, 다조성을 뛰어 넘어서 대위법적으로 처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2악장은 기타나 밴조풍의 피아노의 전주로 시작되며 바이올린이 블루스의 랩소디를 연주한다.
고전파 소나타의 느린악장을 1920년대의 모더니즘이 쉽게 블루스로 바꾼 듯한 비범하고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며
블루스의 우수가 악장 전체에 넘치고 있지만 라벨 자신의 작곡기법을 노래하고 있다.
제3악장은 제1악장의 타악기적 동기의 변형으로 시작되며 선행하는 악장들의 재료가 이모저모 쓰여져 있다.
재즈의 영향 또는 재즈 그 자체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이 바이올린 소나타는 피아노협주곡 G장조를 예고하는 듯하다.
출처 ANGELO
Joseph Maurice Ravel
라벨 / 프랑스 작곡가. 시부르 출생
라벨 [Joseph Maurice Ravel 1875∼1937] 프랑스 작곡가. 시부르 출생. 음악애호가인 아버지의 권고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1889, 14살의 나이로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같은 해, 파리세계박람회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국정서(異國情緖)가 풍부한 음악과 접하게 되었는데, 이 경험은 그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바스크인의 피와 맞물려서 그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97년부터 G. 포레에게서 작곡을, A. 제달주에게서 대위법을 배웠다. 이 시기에 라벨은 스승 포레와 E. 사티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 그리고 98년 《귀로 듣는 풍경》을 첫작품으로, 99년에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에스파냐 무용곡의 일종)》 등 이국정서가 넘치는 개성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평가들로부터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로마상 콩쿠르에서는 4차례 모두 대상(大賞)을 획득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이미 신진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낙선 결과는 세론의 표적이 되었으며, 파리음악원 원장의 사직(辭職)으로까지 발전했다. 한편, 이 무렵 그는 《물의 장난(1901)》 《현악 4중주곡(1902∼1903)》을 발표하여 새 세대의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했다. 이 시기에 평생을 두고 존경하게 된 C. 드뷔시와 만났다. 그리고, 드뷔시의 숭배자인 시인 트리스탕 클링그조르의 시에 관현악 반주를 곁들인 가곡 《셰헤라자데(1903)》를 발표했다. 그 후 제 1 차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피아노곡 《거울(1904∼1905)》 《밤의 가스파르(1908)》, 오페라 《에스파냐의 한 때(1907∼1909)》, 디아길레프의 의뢰에 의한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1909∼12)》, 관현악곡 《에스파냐 광시곡(狂詩曲, 1907∼1908)》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1918)》, 가곡집 《박물지(博物誌, 1906)》 등의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후에, I.F.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하다>는 평을 받게 될 정도로 명석하고도 분석적인 구축력, 치밀하고도 미세한 객관성은 이 무렵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우렁차게 소리높여 부르는 것보다는 조용히 말을 건네는 스타일의 그의 가곡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제 1 차세계대전 후에는 활력 넘치는 문화상황에 고무되어 그는 재즈음악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국면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1막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1920∼25)》, 바이올린 소나타(1923∼27) 등을 발표하였다. 1927∼28년에는 미국 연주여행 후에 유명한 《볼레로》를 작곡하였고, 28년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뒤 발레영화로도 제작되었다. Joseph Maurice Ravel (1875∼1937) 드뷔시가 죽은 후에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음악가로 평가되는 작곡가. 빠리음악원에서 베리오로부터 피아노를, 제달즈로부터 대위법을, 포레로부터 작곡을 공부. 라벨은 주로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작품활동에만 전념.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거나 성악가들의 반주를 할 때만이 피아니스트로 활동. 하지만 암스텔담, 베니스, 스웨덴, 영국, 스코트랜드, 미국(1928)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함. 1929년 옥스포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음. 1933년부터 몸에 마비증상이 나타나 작곡활동이 불가능해짐. 라벨은 이미 20세에 나중에「스페인 라프소디」의 제3악장으로 쓰이게 되는 「하바네라」를 작곡한다. 전통적 음악기법에 대한 그의 긍정적 수용현상은 그가 제달즈와 포레로부터 수업을 받던 학창시절부터 이미 잘 나타난다. 라벨의 초기작품활동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쇼팽, 리스트, 샤브리에, 포레, 림스키 코르사코프 등이다. 1890년경에 라벨은 사티의 화성학적 실험들로부터 한동안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드뷔시의 작품 「프렐류드」도 그의 작품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 5인조그룹 중에서는 특히 보로딘이 라벨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드뷔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라벨의 상당 작품들에서는 프랑스 로코코의 목가풍이 반영되어 있다(예, 라모에 근접된 양식). 쿠프랭과 라모 이상으로 라벨의 흥미를 끈 것은 스카를랏티의 기교적 측면이었다. 이것은 이미 리스트에 가까운 그의 작품 「물의 희롱」(Jeux d'eau)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리스트의 역동적인 기교주의와는 다르게 라벨의 기교적 작품들은 세밀한 음향구성에도 강하게 집착하는 면을 보여준다. 라벨의 음악에는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러운 멋,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등이 잘 조화되어 있다. 라벨의 멜로디는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한 선을 가진다. 화성에서는 높은 3도층들이 즐겨 사용된 반면 증3화음이나 온음음계 등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폴리포니적 작곡경향은 현악사중주나 피아노삼중주의 파싸칼리아 등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복조성도 가끔씩 발견된다. 라벨의 작품에서는 또한 오스티나토 기법 등이 곡의 뼈대로 자주 사용된다. 예로써 G장조 피아노 콘체르토의 중간악장은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오스티나토 기법을 연상시킨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당시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볼레로」역시 멜로디와 기본음향은 변하지 않으면서 음색만이 바뀌는 특징을 보인다. 이곳에서는 한개의 오스티나토 리듬과 두개의 오스티나토 선율이 많은 악기들이 점차적으로 참여하면서 도취적인 ff로 상승한다. 라벨은 이 곡에서 단순성을 이용하여 의식적(儀式的) 효과를 거둔다. 즉, 모티브작업도 없고 섬세한 형식도 없으며, 전조조차 하지 않다가 끝에 가서야 E장조로 전조한다. 라벨은 오랫동안 심도있게 숙고를 하는 반면 빠르게 악보를 써내려가는 작곡방법을 가졌다. 작품을 위해 쓰여진 스케치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라벨의 주요 작품들: 물의 희롱(1901), 현악사중주 F장조(1902-03), 소나티네(1903-05), 거울(1904-05), 밤의 가스파르(1908), 스페인 라프소디(1907-08), 스페인의 시간(1911), 감상적이고 고상한 왈츠(1911), 다프니스와 클로에(발레곡, 1909-12), 피아노삼중주(1914), 쿠프랭의 무덤(1917), 왈츠(1920), 치가느(1924), 어린이와 요술(오페라, 1925), 피아노콘체르토 G장조(1929-30), 볼레로.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프랑크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가장조
프랑크가 쓴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 이 곡을 가리켜 뱅상 댕디는 ‘최초이자 가장 순수한 순환 주제의 소나타’라 했지만 순환형식이 그리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작곡가 자신은 서로 연관되는 선율을 가리켜 ‘사촌들’이라 했고, 이것이 작품 전체에 통일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4악장 구조. 신비적인 첫번째 주제가 그렇듯이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환상곡풍의 무드가 지배적이며 이따금 강렬한 정열이 표출될 때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오이겐 이자이에게 헌정된 곡이다. 베토벤, 브람스의 작품과 더불어 바이올린 소나타의 걸작으로 꼽힌다.
César Franck - Janine Jansen, Kathryn Stott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프랑크 자신이 작곡해놓고 자화자찬하지 마지않았던 바로 그 소나타.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 멋들어지게 연주하리라 덤벼보는 바로 그 곡이지만, 애석하게도 실력이 좀 있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여지껏 쌓아올린 점수를 깎아먹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 아마도 프랑크의 소나타가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악기가 가진 그 美麗함의 한계가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특유의 몽환적이고 귀족적인 이미지가 자칫 지나치게 표현되었다가는 단박에 '퇴폐'로, 부족하게 표현되었다가는 곧 '싸구려'로 느껴진다. 여지없이 이 곡은 위대한 곡이지만, 연주자가 누구든 작품이 가진 그 자체의 위대함 때문에 언제나 감동을 주는 여타의 곡들과 달리, 좋은 연주자를 만나야만 빛을 발하는 특별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이 곡을 잘 연주해 내려면 이 결점을 채워 줄 지능과 함계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성이 있어야 한다. 위대한 연주자들이 가진 그 '무엇'이라고 표현되는 재능을 말이다.
명반 중에 가히 태양과 같은 독보적인 존재가 있으니 바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환갑 기념 실황 음반이다. 그의 환갑을 축하해 주기 위해 스뱌토슬라프 리히터가 피아노를 연주했고, 이 둘 간의 대화는 정말 기가막히게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또 감동적이다. 4악장의 불꽃튀는 에너지와 인생을 달관한 맘씨좋은 아저씨가 베푸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용서'는 더 없는 감동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자아낸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연주요, 그래서 이 음반은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다.
Franck / Oistrakh / Richter, 1968, Moscow: Sonata in A major for Violin and Piano, Complete, Indexed
David Oistrakh, 1908~1974
1908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오데사 태생이며 197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한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1908~1974)는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 1901~1987)와 함께 바이올린 연주로 세계 음악계를 뒤흔든 대단한 연주자입니다.
당시 음악계에서 하이페츠의 등장으로 당대의 많은 바이올린 주자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까지 합니다. 독설가로 이름높았던 버나드 쇼조차 하이페츠가 19세 되던 1920년, 런던 데뷔무대를 보고 그에게 편지를 보내 '제발 잠들기 전, 기도 대신 아무곡이나 서툴게 연주해라. 인간으로 태어나 그렇게 신처럼 완벽하게 연주하다간 자칫 하느님의 시기로 요절할지도 모른다'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얼마전 라디오 FM의 클래식 시간에도 해설자가 들려주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하이페츠와 동시대에 살아 그의 연주를 실황으로 들어야 했던 연주자들에게는 하이페츠와 한 시대를 함게 한 자체가 정말 불운했던 시기라고밖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그런 시기에 역시 그 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연주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였습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살아 생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하이페츠에 버금가는 '2인자'이기만 했을까? 지난 96년 3월호 '객석'의 집중 탐구기사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세계'를 보면, 음반부분에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을 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의 투표로 선정한 것을 볼 수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으로는 샤를르 뮌슈 지휘, 하이페츠 연주의것 (보스턴 심포니, RCA)이 선정되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오이스트라흐(클뢰탕스-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 EMI)이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도 역시 하이페츠의 연주(라이너- 시카고 심포니,RCA)가 오이스트라흐(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CBS)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람스 협주곡에서는 하이페츠가 아닌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콘드라신-필하모니아,EMI)가 명반으로 선정되었고, 오이스트라흐(클렘페러-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는 그 다음이었다. 이들 모두는 다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음반이지만 오이스트라흐는 불행하게도 어느 하나에서건 윗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협주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선 아직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만한 것을 찾아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이스트라흐는 하이페츠같이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 연주의 완숙도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이페츠는 '너무 완벽해 차갑다'는 평을 자주 들었으나 오이스트라흐는 그 반대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친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위에서 말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도 하이페츠의 것을 '불타는 빙산'에 비유한다면 오이스트라흐의 것은 '얼음기둥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헤엄쳐 다니는 금빛 물고기'에 비할수 있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내향적, 사념적이고 절제미가 돋보이며, 폭 넓은 레가토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하이페츠의 연주특성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모든 면에서 하이페츠에 뒤지는 오이스트라흐의 변호를 위해 누군가가 지어내 준 것은 절대 아니다. 음악은 언제나 치열하고 숨가쁘게 몰아붙여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이스트라흐의 미덕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발하며 그만의 개성으로 자리잡을수 있었다.
오데사 태생의 오이스트라흐는 렝폴드 아우어의 제자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오데사 음악원의 또 다른 명교수 스톨리알스키에게 배운 그는 아우어파와는 다른 러시아 바이올린 인맥을 형성했다. 물론 테크닉은 하이페츠를 제외한다면 최고의 수준이었다. 1935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 2위, 1937년 이자이 국제 콩쿠르 우승 등으로 구소련 밖에서 알려졌고, 길렐스의 경우와 비슷하게 구소련이 정책적으로 서구에 소개하는 연주가로 지목되어 많은 혜택을 누렸다.
레프 오보린과 리흐테르와의 트리오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 활동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이루어져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만년에는 지휘대에도 서는 모습을 보였으나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오히려 교육분야에선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할 수 있겠다. 기돈 크레머와 올레그 카간 등이 그가 길러낸 제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는 그의 아들이다.
세자르 프랑크 (Cesar A. Franck, 1822-1890)
프랑스 작곡가. 벨기에 출생. 1833년 리에제음악원을 졸업하고 35년 파리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으며, 르보르느에게 대위법(對位法)을, P.L.L. 베누아에게 오르간을 배우고 각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한때 벨기에로 건너갔으나, 43년 이후 파리에서 생활하였다. 경건한 가톨릭신자로서, 58년에는 생 클로틸드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서 널리 알려졌다.
72년 파리에서는 롯시니·마이어베어·오베르의 오페라음악원의 오르간과 교수를 지냈다. 당시 파리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러한 풍조 속에서도 J.S. 바흐의 대위법에 의한 오르간 음악을 강조하여 절대적인 음악의 이상을 설파하였다. 초기의 가곡·실내악곡·피아노곡 및 중기의 종교음악 작품은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90년 《현악 4 중주곡》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음악은 프랑스와 독일의 전통음악을 조화시켰으며, 화성(和聲)에서는 대담한 전조와 반음계를 자유로이 구사해 새로운 어법을 창조, 실내악곡·교향곡의 각 악장을 하나의 테마로 통일하는 순환형식을 발전시켰다. 또한 교육에도 역점을 두어 댕디·E. 쇼송·G. 피에르네·P. 피달르 등을 배출하였다. 작품으로는 오라토리오 《속죄(1871∼72)》 지복(至福)》을 비롯해 《교향변주곡(1885)》 바이올린소나타(1886)》 《현악 4 중주곡 D장조(1889)》 《3개의 중창곡》 등이 있다.
화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프랑크는 12세의 나이로 리에주 음악원을 졸업하고 연주여행을 다녔을 정도로 조숙한 천재였다. 15세 되던 해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푸가, 대위법, 작곡, 오르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오르간 연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이던 그는 여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를 전전하다가 1858년에 성 클로틸드 교회의 합창장이 된 그는 이어 그 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이 즈음 그의 오르간 연주를 들은 리스트는 프랑크를 두고 "바흐 이후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며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프랑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명망과 존경을 받았다. 1872년엔 파리 음악원의오르간 교수가 되어 루이 비에른, 가브리엘 피에르네, 에르네스트 쇼송, 앙리 뒤파르, 뱅상 댕디 등을 가르쳤으며, 프랑스 국민음악협회의 일원으로 프랑스 작곡가들을 지도했다. 그의 작품들은 베토벤과 바그너풍의 풍부한 화음들로 가득차 있다. 그 중에서도 <교향곡 D단조>, 피아노곡 <전주곡, 코랄과 푸가>, 교향시 <저주받은 사냥꾼>,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등이 대표적이다.
Gidon Kremer plays Franck 1/2 : Sonata for Violin &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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