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2015년)

KBS 700회 특별정기 연주회/말러2번'부활'/2015.11.20.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5. 11. 19. 00:00

 

 

KBS교향악단(사장 고세진)이 ‘부활’해 화려한 옛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

KBS교향악단은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700회 정기 연주회의 작품으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선택했다. 2014년 여덟 번째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이 된 요엘 레비가 말러 전문가인 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2012년 법인화 과정에서 겪은 내홍의 상처를 씻고 재도약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레비 감독은 취임 후 말러 교향곡 1번 ‘거인’(2014년 1월), 5번 교향곡(5월)을 선보였다. 1시간 20분 걸리는 ‘부활’을 악보 없이 암보로 지휘할 예정이다.  

말러의 2번 교향곡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처럼 합창과 함께 연주한다. 고양시립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등 120명이 무대에 올라 웅장한 합창의 묘미를 들려준다. 여기에 소프라노 카롤리나 울리히, 메조소프라노 다그마르 페츠코바가 ‘부활’의 매력을 전해준다.  

‘부활’은 호른 11대, 트럼펫 8대가 들어가는 특이한 구성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91명의 KBS교향악단 단원 외에 객원 단원을 투입한다. 피날레에서 부활의 거룩함을 상징하는 교회 종소리를 위해 국내에서 여러 종을 빌려 놓은 상태로 레비 감독이 청아한 느낌의 종소리가 나는 것을 고를 예정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황무지>(The Wasteland)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슴을 억누르는 이 무거운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분함입니다. 지금 우리는 슬프고 분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 숨을 거뒀을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노라면 참담한 슬픔이 몰려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아직까지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국가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합니다.

죽음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부활을 꿈꾸는 음악

지난주에는 황망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이 칼럼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펜을 듭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입니다. 독일의 시인 클로프슈토크(1724-1803)의 ‘부활’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라, 다시 일어나/ (중략) /가혹한 사랑의 투쟁 속에서/ 나는 솟구쳐 오르리라/ (중략)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나/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죽음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부활을 꿈꾸고 있는 음악입니다.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인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러는 스물여덟 살이던 1888년에 첫 번째 교향곡 ‘거인’을 완성하고 곧바로 이 두 번째 교향곡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완성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1830-1894), 말러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이 지휘자가 세상을 떠난 1894년에 그의 추도식에서 영감을 받아 마지막 악장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스케치에서 완성까지 6년의 세월이 걸린 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기말의 작곡가 말러는 전작인 교향곡 1번 ‘거인’(Titan)의 연장선상에서 이 곡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말하자면 교향곡 1번의 음악적 화자였던 ‘거인’이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곡이지요. 물론 말러는 훗날(1896년) 1번 교향곡에서 ‘거인’이라는 표제를 아예 없애 버렸지만, 2번 ‘부활’의 첫 번째 악장을 작곡하던 무렵에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구상은 여전히 ‘거인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지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말러는 베토벤의 아홉 번째 교향곡 ‘합창’,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의 합창을 자신의 음악적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말러가 흠모했던 작곡가 바그너도 마찬가지였지요. 바그너는 음악과 문학이 혼연일치된 종합예술을 추구했고, 말러도 자신의 교향곡에서 그런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초기 교향곡들을 일종의 ‘교향시’로 간주했습니다. 물론 말러는 훗날 자신의 음악이 표제 없이 연주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적어도 두 번째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의 말러는 문학적 언어를 합창으로 표현해내는 일종의 ‘칸타타 심포니’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1789-1855)의 시에서 착상을 얻어 단악장의 교향시를 작곡했고, 그 곡에 ‘장례식’(Todtenfeier)이라는 제목을 달았지요. 그것이 바로 교향곡 2번의 1악장입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되었을까요? 말러는 교향시 ‘장례식’을 작곡한 이듬해에 잇따른 슬픔을 겪습니다. 같은 해 2월에는 아버지가, 10월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떴습니다. 이어서 여동생 레오폴디네가 뇌종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장면은 훗날(1904년) 말러가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완성하고 3년 뒤에 실제로 장녀 마리아를 잃었던 상황과 오버랩되지요. “인생과 예술은 별개가 아니다”라고 믿었던 말러에게 애통한 운명이 잇따르면서,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곁에서 노상 서성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1907년에 썼던 아홉 번째 교향곡을 ‘9번’으로 칭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명명했던 것도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심장병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는 베토벤과 브루크너가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일종의 터부로 받아들였고, 그 운명의 화살을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요. 하지만 애써 피하려는 자에게 운명은 더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일까요. 말러는 ‘대지의 노래’ 이후 작곡한 교향곡에 결국 ‘9번’이라는 번호를 붙였고 불길한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9번은 말러가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입니다.

교향곡 2번 ‘부활’의 작곡은 더딜 수밖에 없었지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겪어야 했을 뿐더러 지휘자로서의 공적 활동도 바빴던 탓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창작의 영감이 찾아온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894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러가 그 ‘영감의 번갯불’을 맞았던 장소 역시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식장(장례식장)이었습니다. 당시 독일 음악계의 가장 영향력 있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가 그해 2월 12일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망했고, 3월 29일에는 독일 함부르크의 미하엘리스 교회에서 추도식(장례식)이 치러졌지요. ▶둑일 고전주의 문학의 선구자 클로프 슈토크(Friedrich Gottlob Klopstock, 1724-1803). 그의 시 ‘부활’이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 5악장의 작곡에 큰 영감을 주었다.

물론 말러도 그날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침내 “번갯불 같은 영감”과 조우합니다. 식을 진행하던 중에 울려 퍼진 클로프슈토크의 ‘부활’이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는 기록을 말러는 이렇게 남겨 놓고 있습니다. “오르간 연주대에서 합창단이 클로프슈토크의 ‘부활’을 노래했다. 그것은 번갯불처럼 나를 때렸다. 내 영혼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분명하고 뚜렷해졌다. 모든 예술가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교향곡 2번 ‘부활’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5악장은 그렇게 태어났지요. 말러는 클로프슈토크의 가사를 일부 수정해 자신의 음악 속으로 끌어들였고, 마침내 ‘부활’(독일어로는 ‘Auferstehung’, 영어로는 ‘Resurrection’)이라는 이름의 칸타타적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특히 이 곡의 마지막 가사는 말러 스스로 쓴 것입니다. “나는 날아가리/ 살기 위해 죽으리/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서/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나는 날아가리. 살기 위해 죽으리.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서라. 어서 일어서라!”

Mariss Jansons/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Mahler, Symphony No.2 'Resurrection'

Ricarda Merbeth, soprano

Bernarda Fink, mezzo-soprano

Netherlands Radio Choi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Mariss Jansons, conductor

Concertgebouw Amsterdam

2009.12.03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매우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1악장은 알레그로 마에스토소(Allegro maestoso, 빠르고 장엄하게). 음을 떠는 트레몰로 주법의 도입부가 강렬합니다. 이어서 저음의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첫 번째 주제가 등장합니다. 연주가 점점 강렬하게 고조되다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부드러운 느낌의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하지요. 말러 스스로 “첫 번째 교향곡의 영웅을 무덤에 묻고 그의 생애를 맑은 거울에 비춰본 것”이라는 술회를 남기고 있는 악장입니다. 말하자면 ‘거인(영웅)의 장례’인 셈이지요.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여유 있게. 서두르지 말고’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1악장이 끝나고 안단테 모데라토(Andante moderato, 보통으로 느리게)의 템포로 흘러가는 2악장은 목가적입니다. 이 두 개의 악장은 매우 대조적인 성격을 보여줍니다. 말러는 두 번째 악장에 대해 “거인의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회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중반부에서 잠시 어두운 색채를 드러내다가, 현의 피치카토가 등장하는 악장의 후반부에서 다시 온화한 분위기로 돌아오지요.

3악장: (스케르초) ‘부드럽게 흘러가는 움직임으로’

3악장은 템포에 대한 별도의 지시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움직임으로’라는 지시가 독일어로 적혀 있는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팀파니의 타격으로 시작해서 스케르초 악장다운 어릿광대 풍의 연주가 펼쳐집니다. 인생의 희비극, 기괴함, 그리고 익살맞음이 뒤섞인 악장입니다. 말러의 특유의 통속적 선율이 빈번히 등장하기도 합니다. 혼란스럽게 뒤틀린 우리의 삶, 때로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삶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4악장: “태초의 빛”. ‘매우 장엄하지만 소박하게 - 합창하는 느낌으로’

하지만 말러는 이어지는 4악장에서 한 줄기 빛을 불러옵니다. ‘태초의 빛’(Urlicht)이라고 명명한 악장이지요. 알토 독창이 “O Roschen rot!(오 붉은 장미여!)”라고 노래하면서 시작합니다. “Der Mensch liegt in gro?ter Not! 인간은 큰 위기에 처해 있구나! Der Mensch liegt in gro?ter Pein! 인간은 큰 고통에 빠져 있구나! Je lieber mocht‘ ich im Himmel sein. 나는 차라리 하늘(천국)에 머물리라”라는 가사가 이어집니다.

5악장: 스케르초의 빠르기로. ‘거칠게 폭발하듯이’

5악장은 마침내 이 칸타타적 심포니의 절정입니다. 종말, 혹은 최후의 심판이 대지를 뒤덮는 광경을 관현악이 묘사합니다. 말러 스스로 “절망의 울부짖음”이라고 칭했던 불협화음으로 막을 엽니다. “계시의 트럼펫”이 울려 퍼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은 심판의 날을 알리면서 부활을 암시합니다. 플루트와 피콜로는 나이팅게일처럼 지저귀면서 “지상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마지막 메아리”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자와 천사들의 노래가 등장하지요. “일어나라, 그래 일어나/ (중략)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으리라 /네가 바란 것이 네 것이 되리, 그래 네 것이 되리/ 네가 사랑했던 것이 네 것이 되리/ (중략)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 시절에는 음악을 멀리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출처: 문화웹진 채널예스>칼럼>음악>‘내 인생의 클래식 101’ 2014.04.28

http://ch.yes24.com/Article/View/2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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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향곡 2번 c단조 “부활”

     

말러, 교향곡 2번 c단조“부활”

 

글 :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말러의 두 번째 교향곡은 일명 ‘부활 교향곡’이라 불린다. 이 명칭은 종악장에 나오는 합창의 텍스트로 클롭슈토크(18세기 독일의 시인)의‘부활 찬가’가 사용된 데 기인한다. 그런데‘부활’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자연스레 형이상학적 사유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은‘예수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러의 <부활 교향곡>도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종악장에서‘영생에 대한 신의 약속’과 그 약속에 기댄 인간의 ‘초월을 향한 의지’가 노래될 때 선명히 주목받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부활’이란 일상적인 수사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인간이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죽음’과‘부활’을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말러는 이 작품에서 바로 그러한 인류 보편의 화두를 다루고자 했던 것이다.
<부활 교향곡>은 말러로서는 드물게 오랜 시일을 소요한 노작이다. 말러가 이 곡에 착수한 것은 라이프치히에서 지휘자로 일하던 1888년 초였는데, 완성한 것은 부다페스트를 거쳐 함부르크 가극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인 1894년 말의 일이었다. 1888년에 말러는 일단 제1악장의 원형인 <장례식 Totenfeier>이라는 제목의 교향시를 작곡했다. 그러나 후속 작업이 재개된 것은 1893년 여름에 가서였다. 지연의 사유로는 지휘자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빴던 탓도 있지만, 한편으로 <장례식>이 존경하는 선배이자 유력한 후원자인 한스 폰 뷜로에게서 혹평을 받은 데 대한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교향곡의 완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도 한스 폰 뷜로였다. 말러는 1893년 여름에 슈타인바흐에서 제2·3·4악장을 빠른 속도로 작곡해 나갔는데, 이 가운데 제3·4악장에는 그 사이 작곡해 두었던 가곡집 <어린이 신기한 뿔피리>의 일부를 재활용했다. 그러나 그 직후 말러는 벽에 부닥치게 된다. 피날레의 합창 부분에 적합한 텍스트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강국면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는 얼마 전 타계한 뷜로를 기리는 추도식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년 합창단이 노래한‘부활 찬가’를 듣고 영감을 받아 마침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말러는 전작인 <교향곡 제1번>에서 등장시켰던‘영웅’을 다시금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삶에 대한 거대한 투쟁’에서 패배하여 죽음에 이르렀다가 부활하기까지의 과정을 다섯 악장에 걸친 장엄한 음악적 드라마로 펼쳐 보였다.

 

제1악장 : 영웅의 죽음과 장례식_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때로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는 투사이자 영웅이기를 꿈꾼다. 말러가 이 곡에서 내세운 주인공은 바로 그런 영웅,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은 빠르고 강렬하며 긴장된 표정의 제1주제에 투영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온화한 제2주제는 영웅에게 위안과 휴식을 제공하는 반려자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이 악장에서 주인공은 운명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그는 잠시 승리를 거두기도 하지만, 결국 패배하여 처절하게 쓰러진다. 반려자는 애도의 비가를 노래하고, 마지막엔 음산한 장송곡이 울려 퍼진다. 말러는 이 악장을 연주한 후 최소 5분 이상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는데, 그동안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악장은 나의 첫 번째 교향곡의 영웅을 무덤에 묻고 그의 생애를 맑은 거울로, 말하자면 보다 높은 위치에서 비춰본 것이다. 동시에 이 악장은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왜 사는가? 어찌하여 당신은 고통받는가? 인생이란 단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농담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는 계속 살기를 원하든 죽기를 원하든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아울러 말러는 우리의 인생이 과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묻고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을 마지막 악장에서 제시하겠다고 했다. 따라서 이후의 세 악장은 그 해답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단계라고 볼 수 있겠다.

 

제2악장 : 아름다웠던 지난 날_주인공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먼저 좋았던 과거를 회상한다. 아름다운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르고,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이내 시간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버린,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솟아오른다,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사랑, 열정, 순수…. 그는 지금 자신의 처지에 씁쓸한 비애를 느낀다. 말러에 의하면 이 악장은 ’영웅의 일생에 잠시 비추었던 햇살이자 목가적인 간주곡’이다.

 

제3악장 : 악몽 같은 현실_이번에 주인공은 현실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얻은 것은 모순과 허위로 가득 찬 현실에 대한 실망과 회의, 그로 인한‘분노의 절규’뿐이다. 말러가‘몽환적이고 유령 같은 에피소드’라고 불렀던 이 기묘한 스케르초 악장은 말러 자신의 가곡-물고기에게 설교하는 파두아의 성 안토니우스-을 관현악곡으로 개작한 것이다. 그 노래는‘성자가 교회에 가서 설교하려 했으나 사람이 없어서 물가로 갔더니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그것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했다, 성자는 훌륭한 설교를 했고 물고기들은 경청했지만, 설교가 끝나도 물고기들은 전혀 달라진 게 없더라.’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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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악장 : 영원한 평안과 행복을 향한 갈망 (알토 독창)_이제 미련과 혐오에 지친 주인공은 태초의 빛, 지고지순한 구원의 빛을 부른다. “오, 붉은 장미여!”그리고 그는 인생의 고난을 토로하고 천국에 있고 싶은 소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천사는 그에게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는 계속해서 구원을 갈구하고, 음악은 은은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간다. 이상을 향한 인간의 동경과 갈망을 절절하게 노래한 이 신비롭고 감명 깊은 악장도 앞선 악장처럼 말러 자신의 가곡집 <어린이 신기한 뿔피리>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만, 제3악장과는 달리 원곡을 그대로 전용한 점이 돋보인다.

 

제5악장 : 부활, 또는 일상으로의 복귀 (합창, 알토, 소프라노)_갑자기 저현부가 소용돌이치듯 솟구치고 관악부와 타악부에서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온다. 일견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종악장 도입부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앞서 스케르초 악장에서 나타났던‘분노의 절규’의 재현이다. 말러가 첫 악장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는 종악장은 이렇게, 인간을 겁박하고 엄습하는 현실에 대한 직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장장 30여 분에 걸쳐 진행되는 이 장대한 악장의 주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제1부에서는 광야를 방황하며 번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갖가지 모티브들이 나열되는 장이다. 이어지는 제2부에서는‘심판의 날’의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진다. 무대 뒤에 배치된 브라스 밴드까지 가세하여‘대지가 떨고 무덤이 열리며, 죽은 자들이 일어나 최후의 심판대로 행진하는’모습을 오싹하게 묘파한다. 제3부에서 음악은 먼저 신비로운 고요 속으로 침잠해 간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완전한 정적 속에서 무반주 합창이 ’부활 찬가’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전체 8절로 이루어진‘부활의 합창’가운데 첫 두 절은 앞에서 언급한 클롭슈토크의 시를 차용한 것이고, 나머지 여섯 절은 말러의 창작이다. 그는 우리에게 영생에 대한‘신의 약속’에 의지하여 삶을 긍정하고 믿으라고 호소한다. 음악은 점진적으로 상승하며 우리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이상 두려워 말고 삶을 준비하라!’,‘ 나는 쟁취한 날개를 달고 드높이 날아오르리라!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부활하라, 나의 마음이여!’숭고한 오르간 소리와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며‘부활’을 축복하는 가운데 전곡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