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Beethoven, Symphony No. 6 ‘Pastoral’
베토벤, 교향곡 7번 Beethoven, Symphony No. 7
지휘 정명훈 Myung-Whun Chung, conductor
정명훈 예술감독은 교향악 프로그램의 정수인 베토벤 교향곡의 탁월한 해석으로도 세계에 인정받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창작력의 정점에서 세상에 선보인 기념비적 교향곡 두 편을 하루에 선보입니다.
자연에 대한 감사와 찬미가 순수하게 결정화된 교향곡 6번 ‘전원’, 바그너가 ‘춤의 신성화’라고 표현한, 처음부터 끝까지 다이내믹한 교향곡 7번입니다.
교향곡 7번은 나폴레옹 전쟁의 전상자를 위한 보훈음악회에서 초연된 곡.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살리에리, 마이어베어, 슈포어, 줄리아니 등이 연주에 참여한 기념비적 이벤트였습니다.
[프로필]
지휘 정명훈 Myung-Whun Chung, conductor
프랑스 <르 몽드>지가 ‘영적인 지휘자’라고 극찬한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이 시대의 가장 깊은 존경과 추앙을 받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뉴욕 매네스 음대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1979년 거장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보조지휘자로 경력을 시작하여 2년 후 이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정명훈은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유럽과 미국 등지의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을 지휘하였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파리 바스티유, 라스칼라, 빈 슈타츠오퍼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지휘를 하였다.
1984-1990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87-1992년 피렌체 테아트로 코뮤날레 수석객원지휘자, 1989-1994년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 음악감독을 역임했으며, 1997-2005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및 2001-2010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을 역임했다. 2000-2015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악단을 이끌어 왔으며, 2015년 6월 최초의 명예 음악감독으로 추대되었다. 2012/13 시즌부터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역사상 최초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고문을 시작으로 2006년부터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1988년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선정한 ‘프랑코 아비아티 상’과 이듬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 프랑스 극장 및 비평가 협회의 ‘올해의 아티스트 상’, 1995년 프랑스에서 ‘브루노 발터 상’과 프랑스 음악인들이 선정하는 ‘음악의 승리상’에서 최고의 지휘자 상을 포함 3개 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2003년에 다시 이 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일본의 ‘레코드 아카데미상’,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문화훈장인 ‘금관 훈장’을 수상했으며, 2011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코망되르 레종 도뇌르 훈장’, 2013년 이태리 베니스의 ‘평생음악상’ 등 수 많은 세계적 권위의 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5년에는 1998년에 수상했던 `프랑코 아비아티 상`을 27년만에 다시 수상했다.
1990년부터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수 많은 음반을 레코딩하며 유명 음반상을 휩쓸었다. 특히, 메시앙이 그에게 헌정한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비롯하여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발매한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과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등은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11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아시아 교향악단 역사상 최초로 서울시향의 5년 전속 음박계약 체결을 이끌었으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말러 교향곡 1번, 2번, 5번, 9번 등 서울시향과 지금까지 총 9장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인도주의적 대의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오고 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서 2010년 서아프리카의 베닌을 방문하여 에이즈, 식수 위생 및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였다.
Beethoven, Symphony No.6 in F major 'Pastorale'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Beethoven - 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 Thielemann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은 같은 시기에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베토벤은 교향곡 작곡을 잠시 중단했다가 1807년에 다시 펜을 듭니다. 그해와 이듬해에 5번과 6번 두 개의 교향곡을 동시에 작곡해 1808년 12월 22일, 본인의 지휘로 한꺼번에 초연합니다. 하지만 두 곡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5번이 ‘전투와 승리’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면, 6번은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5번과 6번은 ‘이란성 쌍생아’입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같은 날 태어났지만 생김새가 많이 다릅니다.
율리우스 슈미트(1854-1935)가 그린 ‘산책하는 베토벤’이라는 그림을 기억하시나요? 정장 차림의 베토벤이 뒷짐을 진 채 숲속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아마 기억나실 겁니다. 물론 베토벤의 실제 모습은 아닙니다. 베토벤이 산책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그린 그림이겠지요. 하지만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베토벤에게 산책은 매우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귓병에 시달리며 유서까지 써야 했던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을 거의 날마다 거닐었습니다. 요제피네를 향한 열정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다시금 교향곡 작곡에 손을 댔을 때도, 그는 여전히 숲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연과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당시의 베토벤에게 크나큰 위안이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가 불편할 정도로 귀가 안 들리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생전의 그는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숲 속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렇게 베토벤에게 위안을 줬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은 이제 ‘베토벤 산책로’라는 이름으로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산책하는 베토벤
위안이 되었던 숲길에서 영감을 얻다
교향곡 6번은 바로 그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곡입니다. 교향곡 5번에 ‘운명’이라는 별칭을 붙인 것은 후대 사람들(주로 일본인들)이었지만, 교향곡 6번에 ‘전원’(Pastorale)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베토벤 자신이었지요. 뿐만 아니라 베토벤은 이 곡의 5개 악장에 저마다 ‘표제’를 달아 놨습니다. 1악장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천둥, 폭풍우’, 5악장은 ‘목가(牧歌),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감사와 기쁨’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교향곡 6번을 ‘표제음악’(Program Music)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표제음악이란 작곡가가 ‘어떤 대상’을 표제로 내세우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 ‘어떤 대상’은 자연이나 풍경이 될 수도 있고, 특정한 줄거리나 사상 같은 관념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音)의 순수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절대음악’(Absolute Music)과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예컨대 비발디의 <사계>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표제음악입니다. 이렇듯 어떤 사물이나 풍경, 혹은 줄거리나 관념을 묘사하는 표제음악은 19세기 이후의 낭만주의에서 특히 성행합니다. 문학과 음악이 하나로 뒤엉키던 질풍노도의 시대였지요. 대표적인 곡이 베를리오즈의 광기 넘치는 대작 <환상 교향곡>입니다. 물론 리스트도 ‘교향시’라는 장르를 통해 표제음악을 여러 곡 썼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자신의 여섯 번째 교향곡이 ‘표제음악’으로만 규정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곡과 관련해 “정경 묘사는 불필요하다. 음악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말하자면 음악적 화자(話者)의 감정과 심리 상태가 ‘풍경’이라는 이름의 객관적 외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좀 더 곱씹어본다면, 베토벤이 매우 근대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주체의 관점에 따라 사물은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이제 음악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숲으로 막 들어섰을 때의 즐거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입니다. 현악기들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집니다. 바이올린이 오스트리아 시골마을에서 불리던 민요의 가락을 첫 번째 주제로 밝고 환하게 제시합니다. 두 번째 주제도 역시 바이올린이 제시하고 목관이 이어받습니다. 나뭇잎을 흔드는 상쾌한 바람소리, 곳곳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
이어서 시냇가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Andante molto mosso). ‘느리게, 매우 생동감 있게’라는 뜻입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의 현악기들이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의 흐름을 끊임없이 묘사합니다. 부드럽고 청량한 화음이 가슴을 적셔주는 악장이지요. 그렇게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와 더불어,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1악장에서도 새들이 지저귀지만 2악장에서는 더 많은 새소리들이 등장합니다. 플루트는 꾀꼬리를, 오보에는 메추리를, 클라리넷은 뻐꾸기의 지저귐을 그려냅니다. 이렇게 숲에서 들려오던 소리를 오선지에 옮기던 그때, 베토벤은 귀가 거의 안 들리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3악장: 알레그로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 템포의 3악장에는 활달한 기운이 넘칩니다. 즐겁고 유머러스한 스케르초 풍의 악장이지요. 현악기들이 톡톡 튀어 오르는 짧은 음형을 빠르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이 인상적인 악구는 곡이 진행되면서 여러 차례 반복해 등장합니다. 때로는 현악기가, 때로는 관악기가 연주합니다. 유럽의 시골마을 풍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이 발걸음을 함께 맞추며 춤을 추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습니다. 얼근하게 한잔 걸친 농부들의 춤은 때때로 격렬해지기도 합니다. 아울러 오보에와 파곳 등의 관악기가 익살스런 악구를 연주하면서 흥겨움을 배가시키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호른이 마치 팡파르를 터뜨리듯이 힘찬 연주를 한 차례 선보인 후, 곧이어 4악장으로 ‘중단 없이’ 넘어갑니다.
4악장: 알레그로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쉬지 않고 연주됩니다. 음악 용어로는 ‘아타카’(attacca)라고 합니다. 휴지부(休止符) 없이, 다음 악장을 계속 연주하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3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터져 나오는 호른 소리를 잘 염두에 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곧바로 새로운 악장이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악장은 ‘천둥, 폭풍우’라는 표제가 암시하듯이, 악장의 변화를 금세 감지할 수 있습니다.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몰려오는 장면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음의 현악기들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천둥소리를 그려낸 다음, 피콜로와 트롬본 등의 관악기, 거기에 타악기인 팀파니까지 가세해 폭풍우를 묘사합니다. 교향곡 6번에서 풍경 묘사적인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하강음형과 상승음형을 반복하면서 급박한 위기감을 그려내기도 하지요. 하지만 악장의 후반부에 이르면 다시 환한 햇살이 서서히 비추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플루트가 담당합니다. 그리고 쉼 없이 5악장으로 넘어갑니다.
5악장: 알레그레토
5악장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 알레그로보다 약간 느리게)는 클라리넷과 호른이 목가적 선율을 연주하면서 문을 엽니다. 마치 목동의 뿔피리 소리처럼 들려옵니다. 바이올린이 그 목가를 부드럽게 이어받습니다. 두 번째 주제도 역시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연주합니다. 베토벤이 스스로 붙여 놓은 표제처럼, 안식과 감사의 느낌으로 충만한 악장입니다. 일이 잘 안 풀려 짜증이 나거나 피곤할 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베토벤의 ‘전원’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좀 편안해지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베토벤처럼 숲이나 산을 직접 찾아가는 것도 좋겠지요.
Karl Böhm/Wiener Philharmoniker - Beethoven, Symphony No.6, Op.68 'Pastorale'
Karl Böhm,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Großer Saal, Musikverein, Wien
1971.05
추천음반
1.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1958, Sony. 1악장과 2악장의 템포가 빠른 탓에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는 녹음이다. 말하자면 숲 속에 들어섰을 때의 푸근함과 여유로움이 약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래도록 교향곡 6번 ‘전원’의 필청반으로 회자돼 온 녹음이다. 여든이 넘은 명지휘자 발터(1876-1962)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컬럼비아 심포니를 지휘한 ‘말년의 녹음’이다. 물론 일부 평자들이 지적처럼 너무 달려 나가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처럼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을 구사하면서도 물결치는 현악기군의 풍성함을 보여주는 녹음은 별로 없다. 발터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에서 베토벤이 마음속에 품었음직한 ‘안식에 대한 희구’ 속으로 육박해 들어가려는, 낭만적이고도 인문적인 지휘를 펼쳐낸다.
2. 카를 뵘(Karl Böhm),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1, DG. 뵘(1894-1981)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베토벤 교향곡 전집 녹음에 나섰다. 이 역시 ‘말년의 녹음’이다. 그중에서도 6번 ‘전원’은 특별한 명연으로 손꼽힌다. 현의 풍성함이나 선율을 밀어붙이는 힘은 발터 쪽이 한층 강렬하지만, 그에 비해 빌 필하모닉의 현악기들은 좀 더 우아하고 찰진 느낌을 전해준다. 게다가 관악기들이 발군의 실력을 뽐내면서 ‘역시 빈 필하모닉’이라는 찬사를 들을 만한 연주를 펼쳐낸다. 특히 ‘천둥, 폭풍우’라고 이름 붙은 4악장에서 관악기들이 보여주는 연주력은 가히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전원’의 교과서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오스트라아 빈의 고전적 격조가 살아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전원’의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3.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00, DG. 아바도는 두 종의 베토벤 교향곡 녹음을 남겨 놓았다. 1980년대에 빈 필하모닉과,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일련의 베토벤 교향곡들을 녹음했다. 빈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거함’을 이끌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두 차례 완주해낸 지휘자는 현재까지 아바도뿐이다. 흔히 전자를 ‘구녹음‘, 후자를 ‘신녹음’이라고 얘기하는데, 구녹음보다 신녹음 쪽이 더 많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6번은 호평을 받는 연주다. 아바도가 펼쳐내는 ‘전원’의 풍경은 온건하다. 숲길을 거니는 여유로움이 잘 살아 있다. 아바도는 과도한 해석을 배제한 채 정직하고 명확한 연주를 펼쳐낸다. 오래 거닐어도 물리지 않는 ‘전원’이다. 2000년대의 신뢰할 만한 녹음으로 추천한다.
글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문화웹진 채널예스에 음악 칼럼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서울시향의 기관지 SPO에 ‘20세기 음악 산책’ 등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에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돌베개, 2013), <더 클래식: 바흐에서 베토벤까지>(돌베개, 2014)가 있다.
출처: 문화웹진 채널예스>칼럼>음악>‘내 인생의 클래식 101’ 2013.01.07
http://ch.yes24.com/Article/View/21235
Beethoven,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베토벤 교향곡 7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Iván Fischer, conduct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Concertgebouw Amsterdam,
2014.01.09
Iván Fischer/RCO - Beethoven,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일찍이 베토벤은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쿠스(디오니소스)이며 그렇게 빚은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의 교향곡 7번이야말로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특히 리듬의 역동성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으로 리스트는 이 교향곡을 가리켜 ‘리듬의 신격화’라 표현하기도 했다. 강박적인 리듬의 반복을 통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원초적인 리듬 충동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베토벤 음악 인생에 길이 기억될 초연 연주회
베토벤이 교향곡 7번을 완성한 1812년은 그의 작품 활동이 주춤하기 시작한 시기다. 1802년부터 1809년까지 7년간 베토벤은 다섯 곡의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 등의 걸작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1809년에도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와 현악 4중주 Op.74, 피아노 소나타 ‘고별’ 등 걸작들을 계속 발표하며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의욕을 과시했으나 1810년부터 차츰 작곡의 속도를 늦춰 갔다. 그러던 중 1812년 4월 13일에 드디어 4년간의 교향곡 공백기를 깨고 몇 곡의 음악을 다 합쳐 놓은 것만큼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담은 교향곡 7번을 완성해내면서 교향곡 작곡가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이루어진 7번 교향곡의 초연 무대는 베토벤의 경력에 있어 길이 기억될 만한 연주회였다. 연주 당시 부악장을 맡았던 작곡가 슈포어가 남긴 증언을 보면 7번 교향곡을 지휘할 당시 베토벤은 이미 청력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날 공연은 베토벤의 공연들 가운데도 기억에 남을 만한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연주 당일 베토벤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관객들이 환호한 작품은 교향곡 7번이 아니라 그날 공연에서 함께 연주된 <웰링턴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흔히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하는 <웰링턴의 승리>는 메트로놈의 발명가 멜첼이 고안한 ‘판하르모니콘’이란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으로, ‘전쟁’과 ‘승리’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팡파르, 군대의 호출, 대포 소리, 전쟁 장면 등이 단순하게 묘사되고 마지막 종결부의 압도적인 클라이맥스로 인해 대중들은 이 작품에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웰링턴의 승리>보다 교향곡 7번이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했던 베토벤은 청중의 이런 반응에 실망했고, 빈 신문에서 교향곡 7번을 가리켜 <웰링턴의 승리>의 ‘들러리 작품’이라 칭한 것에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 청중이 교향곡 7번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특히 장송 행진곡 풍의 2악장에 열광해, 베토벤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2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디오니소스적 충동, 술의 향연을 떠올리게 할 만큼 리듬의 역동성과 광란의 느낌이 가장 잘 표현된 곡이다. 그림은 디오니소스 축제를 그린 17세기 화가 니콜라 푸생의 작품.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 광란의 춤곡
1악장: 포코 소스테누토 - 비바체
매우 길고 복잡한 서주로 시작된다. 1악장의 서주는 그때까지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들어볼 수 없었던 가장 거대한 서주로, 신비로운 화음과 계속되는 음계, 목관악기에 의해 반복되는 단순한 모티브가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독특한 부점 리듬 형을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템포는 매우 빠른 비바체로 바뀌고 마치 춤곡과도 같은 리듬 형이 강박적으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대개 4/4박자로 되어 있는 일반적인 교향곡의 1악장과는 달리 교향곡 7번의 1악장은 바로크 춤곡 ‘지그’(gigue)를 연상시키는 6/8박자로 되어 있어 특별하며, 여기에 팀파니까지 리듬의 향연에 가세해 집요하게 같은 리듬을 반복하면서 광포함을 더한다. 그야말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이라 할 만한 광란의 춤곡이다.
2악장: 알레그레토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라는 애매한 템포로 설정된 2악장은 장송곡 풍의 독특한 음악으로 초연 당시 청중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이다. 2악장이 시작되면 목관악기의 불안정한 화음에 이어 저음 현악기들이 장례 행진을 연상시키는 리듬 주제를 연주한다. 저음현의 어두운 음색이 침통한 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어느새 제2바이올린 파트가 끼어들어 주제를 연주하고, 저음현은 또 다른 선율을 연주하면서 제2바이올린과 조화를 이룬다. 새로운 악기들이 끼어들 때마다 감정의 깊이는 더욱 강해지며 청중을 음악 속으로 끌어들인다. 2악장 중간 부분에서 클라리넷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잠시 위안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저음 현악기들은 계속해서 장송 음악의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3악장: 프레스토
베토벤 음악의 역동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한 스케르초라 할 수 있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만으로 흥분을 일으키며 그 과격한 리듬은 21세기 청중에게도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준다. 때때로 강한 악센트와 제2호른의 갑작스런 돌출 등 예상치 못한 반전에서 베토벤 특유의 블랙유머도 느낄 수 있다. 반면 3악장의 중간에 등장하는 트리오 부분에선 현악기가 지속음을 연주하는 사이 목관악기들은 한층 이완된 리듬을 선보이며 역동적인 스케르초 부분과 대비된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한 트리오 부분에선 출렁이는 목관악기의 움직임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4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처음부터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와 강렬한 리듬으로 충격을 준다. 마치 완벽한 기계장치가 돌아가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의 합주에서는 어느 정도 규칙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악장에선 특히 약박을 강조하는 규칙적인 악센트와 반음 모티브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저음현의 독특한 움직임에 주목해보자. 다른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거칠고 사나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4악장은 베토벤의 가장 자극적인 교향곡을 마무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압도적인 결론이다.
Beethoven Symphony No 7 A major Mariss Jansons Bayerischen Rundfunks
추천음반
1. 옛 거장들의 역사적인 명연을 비롯해 수많은 명반이 존재하며 4개만을 꼽기엔 어려움이 많은 작품이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역동적인 리듬감을 느끼고 싶다면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반(DG)을 추천하고 싶다.
2. 2악장의 진지함을 느끼고 싶다면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의 음반(BBC)도 추천할 만하다.
3. 그 밖에 귄터 반트가 지휘하는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음반(RCA)과,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음반(Teldec)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글 최은규 (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과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기악합주>교향악 2 010.09.01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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