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K2bc,낭가파르밧.45일(2014

88.파키스탄 3부/ 칸데마을...수직 절벽의 험란한 지형..감동적인 헤마옛의 저녁 초대

나베가 2015. 4. 5. 05:30

 

 

 

    

  

예상밖으로 이 험준한 지형에 그림같은 리조트가 있었다.

넓다란 잔디밭에 운치있는 야외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울창한 나무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주변 풍광은 단번에 여심을 사로잡을 만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발코니가 있는 방들도 운치가 있었고, 우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로비와 식당도 높은 나무 천정에 샹드리에와 팬이 달려있는게

더없이 근사했다.

 

순간 이곳에 하루쯤 머물고 갔으면 참 좋겠다란 생각이...

그러나 우리가 머물곳은 아니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들린 리조트다.

우린 오늘부터 칸데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이들의 삶속으로 한 발자욱 더 가까이 갈것이다.

하긴 오히려 이곳의 아늑함 보다 그들의 가정에 머물음이 더 기대되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식사가 준비가 안된다는 것이다.

헐!!

이윤즉은 요리사가 아프다는....

 

그래도 양해를 구해서 이 근사한 뜨락에서 우리가 준비해간 과일을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언제부터인가...왜 내가 쿡이 된듯한 느낌이 드는거지??

당연하게 과일 깍는 일도 내 몫이 되어 버렸다. ㅎㅎ

 

40도가 웃돈다는 더위에 가위가 눌려 준비해간 인견 몸빼바지에 셔츠, 모자까지 인견 풀셑...

이동시와 호텔에서 머물면서 내내 더없이 시원하고 편하게 지냈다만, 사진으로 보니, 모양새가 여엉~~ㅋㅋ

 

하긴 돌아와서 남수 하는 말이...

누나, 그 인견 패션은 여엉 아니었어. ㅠㅠ

 

 

 

 

우리네 수박크기 만한 노랗게 익은 메론을 한통을 다 깍아먹고, 망고와 포도까지 먹고나니, 왠만한 점심을 먹은것 보다

배가 더 든든하다.

이때 우리와 헤어져 귀국을 앞두고 있는 알쏭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상에 우리보다 운빨이 쎄서 년중 몇번 안뜨는 비행기를 또 갈때도 기적같이 타고 이슬라마바드로 날아간 그녀는 우리의 탄성과는 다르게

울상이 되어 있었다.

독립 기념일을 발판으로 일어난 데모가 그칠줄을 모르고 이어져 이슬라마바드 호텔에도 가지 못하고

라왈핀디 호텔에 갇혀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구구~~

그렇잖음 하루 번 시간으로 충분하게 라왈핀디와 기타 지역 관광을 할 수 있을텐데....ㅠ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처 트럭 위 우리 짐을 덮을 비닐이 준비가 안된 터라 뷰랴 뷰랴 임티아스와 샤키가 시장으로 비닐을 사러 나갔지만

사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내가 여분으로 준비해간 텐트 바닥깔개와 버럭이의 여분의 비닐로 짐을 완전히 덮을 수 있었으니 그나마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나...준비녀가 확실하구만~

나 없인 아무것도 안될것 같은 이 느낌...ㅋ~~

 

 

 

오늘은 유난히 군용 차량이 많다.

무슨 훈련날이거나 이동하는 날인것 같다만....

우리와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랜 거리를 달리다가 우리가 오프로드 길로 들어서면서 헤어졌다.

 

드디어 마을로 들어섰다.

나...또 마을 풍광에 사로잡혀 카메라 샷 날리느라 정신줄 빼앗긴다.

 

저만치 화려한 빨간색과 파란색 문향의 옷을 입고 보리를 한 짐 지고 오는 소녀들에 포커스가 향하자

재빠르게 소녀들은 몸을 돌려 얼굴을 가린다.

절대 사진을 찍혀서는 안된다는 이 나라 여성들의 관습인것이다.

아마 내 카메라를 보고서 돌렸다기 보다는 관광객 차량이 들어오는거 보고 돌렸을 확률이 더 높다.

차라리 몸을 돌린 이 사진이 이들의 삶의 모습을 더 역력히 보여주는것 같아 더 맘에 든다.

 

 

 

마을엔 유난히도 남자 어르신들이 많았다.

 

뭔일이 있나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온것만 같은데....??

 

생각해 보니,오늘은 금요일...

이슬람 국가로서는 바로 주일인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마 교회를 다녀오는 길인것 같다.

 

 

 

 

겨울에 심은 보리가 지금 한 여름이 수확기인 지, 동네 곳곳엔 타작한 보리짚단과 타작할 보리가 수북이 쌓여 있다.

추트론에서 나올때 코끝을 자극했던 보리짚단의 냄새가 코끝에 닿으면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초등학교 시절이니 벌써 40년을 훨씬 웃돌게 넘은 세월이다.

보리밭과 벼밭을 누비며 이삭주어 학교에 내던 일...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이었어~ 지금 생각하니....

그런데 세상에~ 까마득히 잊었던 추억을 이 머언 타국-파키스탄에 와서 떠올리다니....

참으로 우습군.

  

 

 

 

 

 

마을을 빠져나오니, 다시 험란한 지형의 아스꼴리 못지않은 오프로드 길이 이어졌다.

언제 무너져 내릴 지 모르는 돌이 박힌 수직 흙벽 길의 연속이었다.

아니, 직전에도 무너져 내린것 같은 험준한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다시 시작이구나!

 

아니, 시작이 아니라 잠시 꿈을 꾼것 같이 이제까지 우리가 달렸던 환상의 랠리구간이 순간 또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너무나 험준하여 아스꼴리에서 처럼 감히 카메라를 꺼내 들 수 조차 없었다.

얼만큼을 또 그렇게 숨을 죽이며 온 몸에 힘을 주고 달렸을까...

 

 

 

아!! 그런데 이건 또 뭐야~~

눈앞에 펼쳐진 판타스틱한 풍광에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경사도 80도 정도 될까...??

아니, 달리며 보자니 그냥 수직 절벽인듯 보인다.

그제서야 우리가 그리도 넘기를 간절히 바랐던 '곤도고로라'의 형상이 눈에 그려진다.

거의 수직 절벽을 천미터나 내려와야 한다고 했었지~

 

아!! 저런 벽이었던게야~

눈앞에 보이는 날카로운 암산의 수직 절벽에 그만 가위가 턱 막혀 버렸다.

 

 

 

사실, 곤도고로라 퍼밋이 나오면 가셔브룸2 에서 알리캠프를 지나 곤도고로라를 넘어 이곳 칸데로 넘어오는 코스였었다.

험준하지만 곤도고로라에서의 내려다 보는 비경이 장관이고, 또 일정이 확연히 줄어들어서 차라쿠사를 들릴 수도 있었던 일정이었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하산 중 떨어져 죽는 사고가 비일 비재하여 외국인에게는 퍼밋이 나오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니는 인적이 없으니 길은 훨씬 더 위험해졌으리라는건 당연지사다.

내국인에게는 퍼밋없이 고개를 넘을 수 있으나, 우리가 준비중에도 몇명이나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글쎄...인간의 본능이기도 한걸까...

위험에 노출되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럴수록 더욱 도전하고 싶은 건...

모두들 곤도고로라를 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사실 난 그것이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었기에 퍼밋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에 차라리 속이 후련했다고 할까....

나중에 만난 '김미곤' 대장에게 곤도고로라 얘길 꺼냈더니, 거긴 너무나 위험해서 모든 장비를 완벽히 갖추고 셰르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펄쩍 뛰었었다.

 

<칸데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보이는 셀레브락,4,500m. 벽의 높이:1,500m>

 

 

치명적 위험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기막힌 풍광에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는다.

저곳에...

또 그림같은 마을이 있다는 것이...

바로 칸데다.

 

 

 

 

써밋 카라코람사 사장인 익발의 집에 가기 전

첫번째 마을인 올드 칸데에 들어섰다.

길가에 만나는 이가 다 아는 사람이라 인사를 나누느라 차가 달릴 수가 없다.

아니,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다 친척이다. ㅎㅎ

그러니 벌써 한달 가까이 집을 떠나 있다가 고향에 돌아왔으니 모든 이와 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가 없는거다.

 

우리 눈에도 익숙한 이가 많다.

김미곤팀에 합류했다가 아스꼴리에서 만났던 '모신'도 눈에 띄고....

 

우리는 한참을 더 달렸다.

익발을 비롯해 우리 스텝들이 모두 사는 마을-바로 뉴 칸데로 들어선 거다.

이름이 이리 갈려진 것은 얼마 전, 올드 칸데에 아주 큰 산사태가 일어나서 마을을 다 쓸어 버린것이다. 바로 익발을 비롯한 이곳 뉴 칸데로 이주한 사람들이 사는 곳...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하지만, 이들이 다시 이곳에 정착하기 까지는 얼마나

맘과 몸고생을 했을 지 눈에 선하다.

 

이곳 뉴 칸데에서 익발의 위치는 거의 대표급에 가까웠다.

아니, 결국 올 2015년 드디어 마을 프레지던트가 되었단다.

프레지던트란 말을 쓴다는게...이 마을에서의 그의 절대적인 지위와 책임감을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그림같은 마을에 드디어 차는 섰다.

골목길을 올라 익발의 집에 들어섰다.

하얀 벽에 모자이크 장식물이 있는 예쁜 집에 탄성이 먼저 인다.

뜨락에는 놀랍게도 한국에서 가져온 것인 지, 상추가 자라고 있었고, 파키스탄이라면 집에 한그루씩은 있는 살구나무엔 노오란 살구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방에 들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테리어에 우린 또 한번 탄성을 터뜨렸다.

하얀 회벽이 발라져 있는 벽에는 조화로 장식을 해놓았고, 전체적인 카펫이 깔려있는 바닥엔 또 하나의 카펫과 보료로 안락하게 장식되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활짝 열게 되어있는 창이 운치가 있었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식탁대신 비닐을 바닥에 깔고 다과가 차려졌다.

그동안 헤어졌던 헤마옛, 미르자를 보니 얼마나 반가운 지....

거기다 아스꼴리에서 잠깐 만났던 올람과 모신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손님들 주변엔 궁금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서성이는 아이들이 있다.

모두 스텝들 자녀다. ㅎㅎ

 

 

 

 

 

 

 

손님들...

특히 외국인들이 손님으로 와 있으니 아이들의 궁금증이 얼마나 클까....

문지방을 떠나지를 못한다. ㅋㅋ

 

 

 

 

 

 

오늘부터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한 모든 스텝들 집에 초대되어질 예정이다.

오늘은 그 첫 시작으로 우리의 쿡인 '헤마옛'의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다.

 

 

 

익발의 집을 나서니,거대한 암산의 위용이 눈을 사로잡는다.

보기엔 언제 또 굴러떨어질 지 모를 커다란 바위들이 위태스럽게 자리하고 있기도 하였지만,

이색 풍광의 한 가운데 들어서 있음이 또 한편으로 마음을 더없이 들뜨게 만들기도 하였다.

 

 

 

 

 

예쁜 색깔로 페인팅하고 아기 자기한 장식물까지 덧대어진 마을의 집들은 한결같이 이뻐 눈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것이 새로 이주하여 모두 예쁘게 집을 지었기때문이다.

이제서야 스텝들이 모두 우리들을 자기 집에 초대를 한다는 이유를 알아 차렸다.

이쁜 집에 손님을 초대하고 싶은건 모든 사람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한결같은 맘일테니까...

이런 이들의 맘을 알아차리고 나니, 헤마옛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헤마옛의 집이 아니라

헤마옛 동생의 집이었다.

이윤즉은 헤마옛의 집이 아직 건축중이었기 때문이다.

 

이곳도 익발의 집과 구조는 거의 같았다.

그리고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과 예쁘게 장식해 놓은것이 얼마나 정갈한 지 ...

그리고 집을 장식하고 있는 것들이 나름 여유도 있어 보인다.

알고보니, 헤마옛의 동생은 이곳에서 학교 선생님이었다.

나름 직장도 탄탄하고 농사도 짓고 있으니...

 

헤마옛의 집이 건축중이니, 지금은 부모님을 비롯해 혜마옛 식구들까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모양새다.

도대체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조선시대의 삶의 모습이랄까...

 

와이프에게 준비한 선물도 줄겸 가족들도 볼겸 식구들 모두가 모여있는 곳으로 안내되어 갔다.

놀랍게도 집안 식구들 모두가 한곳에 다 모여있었다.

혜마옛의 아내와 여동생, 아이들(아들 3명, 딸 1명)....

헤마옛 동생의 아내와 아이들....

초라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인 지...그 모습에 우린 탄복을 하며 '이쁘고 아름답다'란 말을 수없이 해주었다.

 

나는 급조하여 만든 선물 꾸러미-파쉬미나 스카프를 헤마옛 아내에게 주었다.

얼마나 행복해 하던 지,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연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씩 우리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이쁘던 지....

짧은 순간의 만남이었지만 이들의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가슴에 깊이 박힌 감동의 시간이었다.

 

아놔~ 아이들 줄 사탕을 준비하지 못한게 얼마나 민망스럽던 지....

 

 

 

 

여자들은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아쉬움이 정말이지 컸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기에....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있는 모습과 와이프, 여동생의 미모...

아!! 아이들의 커다랗고 너무나도 똘망 똘망하여 똑 떨어져 버릴것 같던 눈동자와 수줍은 미소는 천사의 모습이었다. 

 

다시 거실로 들어와 아버님과 헤마옛과 그 동생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가족 사진이랄까....

 

 

 

오호~~

테이블 셑팅이 예사롭지 않다.

빨간 카펫 위의 펄이 박힌 초록색 비닐식탁도 그려려니와 꽃병까지 센터피스로 놓여있다.

 

와우~

그뿐만이 아니다.

드디어 상차림이 시작된 메뉴도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대로 튀겨내어진 감자튀김과 후라이드 치킨, 요구르트 드레싱이 곁들어진 샐러드,양파와 치킨 숲, 오이무침, 짜파티, 밥, 살구....

 

아버님을 포함한 남동생과 우리 스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어느때 보다도 맛있고 행복한 식사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온 식구가 모인것같은 착각이 들 만큼 감동적이었고, 그 정성스러움에 또 감동을 먹은 순간이었다.

 

이 순간...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이라는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의 삶은 풍요로와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아마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감동적인 초대였고 훌륭한 식사로 남을 것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건축중인 헤마옛의 집에 들렀다.

뼈대는 완전히 다 지어졌고, 내부 장식만 되면 완성되어질 터였다.

아마 올 우리들과의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 건축작업으로 들어갈 것이다.

내년에 혹시 '차라쿠사'를 오기위해 다시 우리가 이곳에 온다면 그땐 헤마옛의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을까....

 

 

 

 

어두워져서야 다시 익발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의 일정은 이들이 K2여정 내내 '그린 필드의 천국' 이라고 말하던 밍글로 블록(Mingro Brok)으로 간다.

짐가방을 꾸리고....

이곳에서나 있을...한방(거실)에서 지멋대로 편한 곳에서 우린 각자의 침낭을 펴고  혼숙을 했다. ㅋ~~ 

아니, 이미 우리도 이들처럼 칸데의 한 가족이 되어 조금도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남녀혼숙이라니...청천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뭐..버럭이가 남자였던가?? ㅋㅋ

 

한참을 박장대소를 하며 웃다가 누가 먼저 잠이 든것인 지...적막감이 방안을 덮었다.

창밖의 살구나무 흩날리는 소리가 마치 파도소리 같아 평온함을 준다.

 

 

Monika Martin - Du warst da (Don`t forget to remember)

독어 버전의 Don`t Forget to Remember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