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떠졌다.
하얀 창틀...
커튼...
침대...
너무나 오랫만에 보는 문명의 세계에 순간 모든게 생소하게 느껴진다.
잠시 뒤척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산책했다.
그래도 파키스탄에서 이렇게 좋은 온천장이 없다고 했는데...온천을 안하고 간다는게...ㅠㅠ
사실, 어젯밤 늦게 도착해 온천장을 보고는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시설에 그만 실망해서 대충 방에 있는 욕실에서 샤워하고 잤었다.
혹시 옥외 온천장은 어떤 지....
대문밖으로 나가니 히말라야 깊은 산속 지누단다에서 본 야외 온천장과 다를 바 없다.
순간...
아!! 어젯밤 달빛 아래 저 높디 높은 산과 주변 풍광을 바라보며 저기에서 온천하고 잘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런데 그때 온천을 하고 있는 동네 어르신이 보인다.
기겁을 하고 숙소안으로 들어와 스페셜 온천장이라 명명되어 있는 온천장으로 다시 들어가 보았다.
그냥...사방이 타일로 된 사각형의 방에 단 하나의 커다란 정사각형의 욕탕이 있다.
물속에 손을 넣어보니, 아주 따끈한게 기분이 좋다.
그러나 어젯밤에도 그만 실망하고 온천을 포기하고 만것이 배수구가 그 어느곳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K2를 다녀온 우리는 제대로 목욕을 못해서 우리 몸의 상태가 어떠할 지 뻔한데...
저 따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근다는걸 도저히 감당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물이 계속 흘러 들어오는데...배수구가 없다는게 말이 안되었다.
우리는 두눈을 부릅뜨고 배수구를 찾아 보았다.
"아!! 여기 있다 있어~~"
그제서야 탕속 한쪽 구석 위에 물이 계속 흘러나가는 구멍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는 온천 준비를 해서 우리 외에 아무도 없는 탕속으로 들어갔다.
온몸을 파고 드는 따끈함...물방울 튀기는 울림이 메아리 처럼 들려오는 고요....
두 눈을 감고 온 몸을 파고 드는 따끈한 에너지와 고요를 음미하고 있자니 얼마나 좋은 지....
카라코람의 여신이 우리에게 내어준 별장에서의 호사스러움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씻을 차례다.
과연 우리의 생각대로 저 구멍으로 모든게 쉬이 빨려나갈 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몸을 씻고, 샴푸를 한 거품까지도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쉬이 그 구명으로 빠져나가더란 것이다.
물론 손으로 물사레를 쳤지만 말이다. ㅎㅎ
실크처럼 부드러워진 날아갈듯한 몸으로 나와 거실에 차려진 늦은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태도 때문에 우린 어젯밤부터 박장대소를 했다.
마치 지 집 처럼 음식을 서빙해놓고는 옆 의자에 터억 다리를 꼬고 편히 앉아서 우릴 보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엔 잔디밭에 앉아서 그리 바라보고 있더니만....ㅎㅎ
그 모습이 도저히 손님에게 음식을 서빙하는 쿡이나 웨이터라기 보다는 주인장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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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얼마나 강렬한 지, 아침에 세탁을 해서 널은 옷이 금새 마를 정도다.
잔디밭 나무에 빨래줄을 걸고 그동안 쌓아 두었던 침낭과 옷가지들을 모두 꺼내 거풍을 하고, 배터리도 충전하며
살구도 먹고, 드립 커피도 해서 마시면서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냈다.
넓다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자니....
거실 중간의 하얀문에 가득한 흩날리는 나무의 초록빛깔과 햇살이 얼마나 이쁜 지....
거기다 천정에서 돌아가는 커다란 팬과 낡은 벽과 이곳 저곳 벗겨진 하얀 창틀과 낡은 고급 가구들이.....
차라리 운치와 한없는 호젖함을 주는것이 그렇게도 좋았다면...어거지라 말할까...??
근데 왜 어젯밤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이리도 연상이 되는거지??
내용조차 그저 가물 가물한데...왜 이렇게 느낌이 강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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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반에 좀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녹두가 들어간 '달'과 후라이드 치킨, 양파와 밥이 다다.
밥에다 달을 붓고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니 그런대로 맛이 괜찮다.
아니, 생양파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아주 맛나다.
덕분에 생양파만 3접시를 먹었다는....ㅋ~
살구로 디저트를 대신하고 드디어 스카르두로 출발했다.
이제나 저제나 나타날까...혹시 귀곡 산장으로 들어가는건 아닐까....
첩첩 산중으로 한없이 들어가 조바심을 태우며 추트론으로 찾아들때와는 달리 금새 마을로 접어 들었다.
그래도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어제 저녁 빙하가 녹아 사방으로 폭포처럼 흘러들던 물길이 조금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나가는 길은 사방에서 터진 산사태로 익사이팅 그 자체다.
다시 호젖한 마을로 들어섰다.
창으로 들어오는 시골향기가 그 어떤 매혹적인 허브 향기보다 코끝을 자극한다.
역시 시골 출신이라 추억의 강렬함 때문이겠지?
잔뜩 쌓아둔 밀짚 냄새와 타작함에서 더욱 강해진 지푸라기 냄새가 이리도 좋다니....
어제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도 동네 사람들이 길섶에 나와 앉아 있더니만, 지금은 마을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한 낮의 뜨거운 햇살과 더위 때문에 그런것 같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벽에 가득 씌어진 낙서들이 왜 이렇게 정겹게 보이는 걸까...
뜻모를 낙서이지만 낙서라기 보다는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것 같은 느낌이랄까....
남미 여행중에 만난 수많은 벽에 가득한 낙서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기는 하지만 낡은 건물과 목재가 주는 느낌과 주변 풍광이 어우러져 정겨움 마저 느껴진다.
마을을 잠시 벗어나면 이렇게 또 황량한 암산과 흙더미 사막산과 그 아래로는 믿기 힘들만큼 또 푸른 초원이다.
어제보다는 훨씬 수월한 길 상태여서 어느새 스카르두로 가는 다리에 들어섰다.
사방을 떼운 낡은 목재에 철근으로 매달아 만든 출렁 다리 대신 튼튼한 시멘트 다리를 보자니, 왠지 이곳 황량한 파키스탄과는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
서운함 마저 들었지만 앞으로는 점점 이런 교각으로 다 바뀌게 될것 같고 어쩌면 또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기막힌 도로포장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초록 숲이 강가를 가득 메운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이런 매혹적인 길이라면 얼마든지...지구 끝까지 달려도 좋지 않을까...뭐 이런 느낌 마저 ....
도로가 좋으니 순식간에 풍광은 또 바뀌었다.
우리가 스카르두를 떠나 처음으로 맞딱뜨렸던 흥분된 순간의 길....
눈앞에 펼쳐진 사막.... 가파른 암산의 구불길을 마치 하늘끝까지 닿을 듯 치솟아 올라갈때의 그 풍광...
질주의 쾌감까지 더해져 환호성을 지르며 흥분속에 빠져들었다.
흥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스카르두로 들어섰다.
아니, 또 다른 흥분의 연속이었다고 할까....
마침 거리에는 '독립 기념일'을 맞은 퍼레이드로 시끌법적 난리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펼쳐지는 데모와는 달리 이곳은 그야말로 축하 퍼레이드....
그야말로 이색적인 풍광에 한바탕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지난번과는 사뭇 다르게 길섶 가득한 가게엔 그야말로 없는게 없는것 같은 온갖 물품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리를 사로잡는건....싱싱한 과일....
노오랗게 익은 망고와 커다란 노오란 메론....
얼마나 그립고 그리웠던 망고란 말인가~~
나는 임티아스와 내려 커다란 망고를 맘껏 골랐다.
무려 12개, 그리고 크고 잘익은 메론 1개와 포도까지 샀다.
이 물가 싼 나라에서 무려 1500루피(1$=900 루피)
한국에서도 맛보기 힘든 이 호사스런 과일을 한 보따리 들고 마셔브룸 호텔로 들어서는 우리의 모습은 의기 양양 했다고나 할까...
K2를 성공리에 마치고 들어서서가 아니라 이 먹거리 때문에....ㅋㅋ
오늘도 호텔은 각각 싱글룸을 사용했다.
얼마만에 도심에 들어서 문명을 만끽하고 있는 건 지....
가장 먼저 침대에 벌렁 누워 카톡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가족 모두가 4개국에 흩어져 있는 식구들과의 카톡....그리고 K2 단체방,초반 여행을 같이 했던 남수와 요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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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깍아 먹고, 맘껏 세탁을 해서 발코니에 매단 2줄의 빨래줄에 가득 널었다.
이곳 스카르두에서는 그중 나은 식당인 지, 여전히 같은 중국 식당으로 가서 별반 다르지 않은 메뉴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
그런데 룸으로 들어가며 창밖을 보니, 넓직한 마당 한켠에서 '독립 기념일' 이라고 바베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손님은 역시 일본인...
흑::
여기서 저 바베큐 먹으려면 아주 비싼가??
우리도 오늘만이라도 중국집서 치킨 말고 저 바베큐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ㅠㅠ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를 피해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내일 제 3부 여정을 위해 짐을 꾸렸다.
그리고 가족과 까지끝 카톡 수다.....
시간이 멎은것만 같다.
Felix Mendelssohn
Sacred choral music
hymn for soprano, chorus & organ or orchestra in G major
O, for the Wings of a Dove
비둘기의 날개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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