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랑고 타워,울리비아호,네임리스,스몰 트랑고, 트랑고 글래이셔....
수없이 많은 이름을 듣고, 외우고 상기시키며 걷지만, 이름없는 가까이 보이는 암산들의 위용에 더 압도되어 감동하기도 한다.
오늘은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 줄지어 하산하는 나귀부대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그래도 오르는 나귀보다 더 낳은것은 식량들이 담겨있는 저 파란 통속이 비어있을 거란 느낌때문이다.
하긴, 나귀 한 마리가 포터 2명으로 계산되고, 포터 1인당 지는 짐이 정확하게 25kg이니,
저 통속이 비어있든 채워있든 이 나귀들 역시 정확하게 50kg의 짐을 지는걸까...??
ㅠㅠ
이렇듯 가파르며 45도는 족히 될 돌사면 하산길이 훨씬 위험도가 더 높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나 짐승이나 오르막 보다는 내리막이, 그것도 고도가 3,000m대로 내려갈테니 훨씬 낫겠지...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숨가쁨과 발걸음이 무거워질수록 처음 대했던 나귀에 대한 편안한 마음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자꾸 생긴다.
그도 그럴것이 말발굽 주변에 피묻은 말들을 보고 어찌 그런 맘이 생기지 않을까....
말못하는 동물이기에 때론 반항도 해보지만, 그래봤자 돌아오는건 채찍이니...
내 몸 하나 건사하며 걸어도 등산화 사방이 긁히고 밑창이 떨어지건만,
이렇듯 험악한 돌길을 저 50kg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싣고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으려 힘쓰며 걸으니....ㅠㅠ
나귀가 흘린 핏자국이 돌길 군데 군데 묻어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ㅠㅠ
그래도 대규모의 나귀부대가 이렇듯 출현하면
이 카라코람을 찾는 모든 산악인들과 트래커들의 일등공신 같아
레드 카펫의 탑 여배우를 찍듯 카메라 샷 날리기 정신없다.
이제는 갈라진 빙하의 빛깔이 제 색깔을 띠우며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전히 시커먼 빛깔이지만 쫙 쫙 나있는 그 검은 줄 사이로 오묘한 에메랄드빛을 발산하고 있는 그 광경이
빙하라기 보다는 마치 엄청난 에메랄드 광산의 원석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제일 좌측-빠유피크,6610m 중앙-울리비아호타워,6517m >
시간의 흐름은 커녕 존재감도 엊었었는데...배가 슬슬 고파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찾아드는 인간의 본능...
배고픔...
그러고 보니,새벽 4시반에 아침을 먹고 벌써 몇 시간을 걸은 건 지...
일정도 2배인데다 비가 다시 쏟아지기 전에 많이 걷자고...쉬지않고 걸은 것과 속도감을 생각한다면
배고픔을 이제서 느꼈다는 것이 얼마나 카라코라과 발토르의 비경이 우리를 사로잡았는 지를 알수 있다.
그러고 보니, 안치영 대장이 말했던 곳이 바로 거벽이 있던 그곳이었던가 보다.
자기들이 6월에 올라갈때는 없었던 호수가 생기며 길이 끊겨서 1시간 반이상을 돌아서 가야한다고 했던 바로 그곳...
유난히 바위와 돌이 무너져 내려 길이 험했고, 나귀들의 핏자국이 선연했던...
점심장소인 호불체에 도착했다.
4시반에 아침을 먹고 5시 좀지나 출발해서 지금 12시반이니, 무려 7시간을 넘게 걸은거다.
중간에 간식으로 캔디와 에너지바를 먹었어도 얼마나 배가 고프던 지....
눈앞에 거벽이 있고, 그 앞으로 잔잔한 호수가 있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날아다 준 나귀들이 유유자적 여유롭게 있는 풍광이
또 새삼스럽다.
갑자기 힘듦이 싸악 사라지는것도 같고....ㅎ
아침에 지었던 콩밥에다 갖은 야채와 스팸을 넣어 볶아온 점심이 마치 요리처럼 근사하다.
졸라와 빠유에서 전혀 먹지 못했던 점심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 지...
기인 여정과 험준한 길과는 상관없이 내리 쬐던 열사의 길이 아니니 이제서야 제 컨디션을 찾은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전히 아침도 못먹던 알쏭이 그림의 떡 처럼 이 맛난 점심을 먹지를 못한다.
허기가 져서 더 힘들텐데....
그나마 그가 가져온 '에너지 구'의 젤이 아주 효과가 좋은 듯 견뎌내고 있다.
호불체는 캠프사이트로 경치만 좋은게 아니라 작은 가게도 있고, 물도 풍성해서 아주 좋은 캠프지로 보인다.
파리떼가 많은것 빼고는...ㅠㅠ
점심을 먹을 그 짧은 시간내에 옷이 마를까....
포터들의 빨래가 여기 저기 돌더미에 널려있다.
점심을 마친 뒤 쉬고있는 우리에게 와서 묻는다.
길이 워낙에 험해서 우리의 컨디션이 걱정이 되었는 지, 오늘 혹시 여기에서 묵을 거냐고...
" Oh~No!! Go to Urdukas!"
의외로 쌩쌩한 우리의 반응에 임티아스도 함박 미소를 짓더니, 포터들의 짐을 먼저 떠나 보낸다.
우리는 오늘도 점심을 먹은 뒤 그늘막인 타프가 쳐진 점심장소에서 1시간을 누웠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잠깐 잠이 들었었나??
인기척에 눈을 떠 부랴 부랴 패딩벗어 배낭에 챙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출발이다.
여지없이 험악한 돌덩이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거의 쉬지않고 걸은것 같다.
황량한 돌길과 엄청난 빙하길의 연속이더만, 간간히 꽃도 보이고...
저 멀리 보이는 암산 위 넓적한 부분에 놀랍게도 초록의 기운이 감돈다.
그 밑으로는 호불체피크에서 흘러 내려온 빙하가 또 엄청나다.
맞은편으로는 오르는 내내 딱 붙은것 처럼 보이며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던 트랑고타워와 캐스트럴 타워 사이로 빙하가 보인다.
둥게 빙하( Dunge Glacier)다.
우르두카스에 거의 다 왔다고 하는거 보니, 이 초록을 머금고 있는 바위산을 돌면 뭔가 나올것만 같다.
왠지 이제까지 우리가 걸었던 곳과는 사뭇 다른 풍광이 펼쳐질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혹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그런 느낌이 아닐까...
호수가 있고...
푸르른 초록이 있고...
왠지 꽃도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좌로부터-빠유피크(6,610m),울리비아호(6,517m),그레이트 트랑고 타워(6,286m>
우르두카스(Urdukas 4,240m)가 지척에 보인다.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면서 둘로 쪼개져 붙었다는 이름...
몇년 전에도 산사태가 나서 바위가 캠프지를 덮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참사가 있었다고 한다.
순간 스쳐지나는 그 당시의 상황이 몸서리를 치게 한다.
그 끔찍한 상상을 순간 사라지게 한것은
집채만한 바위가 널부러져 있는 사이로 놀랍게도 잔잔하고도 너무나 이쁘게 피어있는 야생화들이었다.
흥분하여 카메라를 들이미는 순간 얄궂게도 배터리가 나갔다.
아~~ㅠㅠ
그러고 보니, 오늘 일정이 정말 길기는 했나부다.
핸폰을 꺼내서 몇장 찍었다.
야생화에 사로잡혀 우르두카스 캠프장까지 오르기가 힘들다.
아니, 고개를 들어 캠프장을 바라보니, 다시 몸을 추스려 작은 봉우리 하나 오르려는 맘으로 올라야 할것같다.
제법 커다란 호수를 끼고 거대한 바위산과 꼭대기로 설산을 품고...
야생화에 초록숲까지 품은 우르두카스 캠프장(4,240m)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막판에 새삼스런 고소가 올만큼 오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물도 풍부하고, 화장실에 세면 시설까지 있다.
화장실 또한 우리 캠프사이트에서 얼마나 먼지, 그리고 오르막이라 낑낑대며 올라가다 숨이 막혀올 지경으로 가파른 곳에 있다.
우르두카스는 콩고르디아와 가셔브룸1,2BC 와 함께 가장 전망이 좋은 캠프장이기도 하다.
화창하던 날씨가 캠프에 도착하니 구름이 몰려든다.
잠시 뒤에 한바탕 비가 쏟아져 낼릴것만 같다.
정말이지 오늘은 트래킹하기도, 사진 찍기도 최고의 날씨였는데, 이렇듯 도착하자 마자 구름이 몰려드니
아무리 겸손하려고 해도 참고 있을 수가 없다.
'우린 전생에 지구를 구한자들...복덩이....' 라는 말...ㅋㅋ
피곤해서 텐트에 들어가 에어매트도 불지않은 채 그냥 깔고 누워 있었다.
해발고도가 4,200m가 넘어서인 지, 늘 타오는 땡쥬스가 오늘은 따듯한 쥬스로 타왔다.
사실, 피곤하긴 해도 그리 힘든 줄은 모르고 걸었는데...
판타스틱한 풍광에 사로잡혀 그런건가??
아침을 준비하다가 해마옛이 손가락을 크게 베었었다.
출발직전이라 약과 상비품을 큰 카고백에 다 쌓서 이풀이 항생제와 연고를 바르고 대일밴드로 붙여 주었었는데,
도착하자 마자 의료함을 가지고 나가 소독하고 연고 바르고 거즈를 대고 완벽하게 드레싱을 한 다음
의료용 고무장갑과 제법 크고 두툼한 1회용 장갑을 여러장 주었다.
곁에서 내 의료함과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미르자가 신기해 죽으려 한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아졌다.
약국과 병원을 순례하며 약품준비하느라 시간과 돈이 들었지만, 지난 쿰부 로왈링 여정에서도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뜻깊고 보람되었던 것처럼 행복감 마저 들었다.
갑자기 피곤함 마저 싸악 사라지는것 같다.
저녁이 생각외로 빨리 준비되었다.
아직까지는 원정대서 얻은 한식과 내가 해간 반찬과 먹거리가 풍성하니 연일 만찬이다.
후식으로 파인애플 통조림을 가지고 온 임티아스가 한마디 한다.
우리보고 매우 잘 걷고, 체력들도 매우 좋다고....ㅎㅎ
지난 팀은 밤 9시가 되서야 겨우 죽어가면서 도착했단다.
힘들어 죽는 시늉으로 걷는 제스처를 취하면서...ㅎㅎ
우린 호불체에서 점심식사후 늘처럼 1시간 오수를 즐기다 내려왔어도 5시가 채 안되어서 도착했다.
이틀 일정 2-스테이지를 11시간 반만에 도착한 것이다.
그것도 호불체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2시간 남짓을 체류하고서도...아니, 올 6월 이후 난 산사태로 길이 끊겨 1시간 반 이상을 더 돌아 걸었는데..
그러고보니, 우리가 생각해도 지독한 사람들이다.
K2시작전 이미 10일이 넘는 트래킹을 소화해 내고 와서도 매일 이처럼 쌩쌩하니....ㅎㅎ
오늘은 모두들 2-스테이지를 뛰며 고생을 해서 특별 팁으로 500루피씩을 주었다.
새벽에 비가 와서 카고백을 비닐주머니로 쌌지만, 오늘 단 하루 사용만에 다 걸레가 되었다.ㅠㅠ
그래도 앞으로의 일정이 창창하니 버릴수가 없다.
찢어진대로 잘 싸서 보관해둘 밖에....
새벽에 세여자의 6개의 짐을 일일이 들어서 비닐 주머니에 담아 묶어 주느라 고소가 올려고 한다고 했었던 버럭이....
매번 짐이 도착하면 혹시라도 말벼룩이 카고백에 묻어 들어올까봐 일일이 방충 스프레이를 다 뿌려주고,
몇번 사용에 벌써 지퍼 여닫는 쪽 실밥이 다 터져 늘어진 텐트의 실밥도 다 잘라내 주고,
잠자기 전에도 슬그머니 텐트 주변을 다시 한번 훑으며 들뜬 곳이 없나 살피며 돌로 잡아주고....
시간이 흐를수록 감동지수가 올라간다.
귀찮다고 자기 물을 배낭에 넣은 채 우리 물과 캔디...등을 뺏어먹는...
초등학교 시절 여자들의 고무줄 놀이 고무줄을 끊곤하던 영락없는 장난꾸러기 같지만,
50대의 나이에 어쩌면 이리도 순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지....
어쩌면... 여행이란 진정 이런 모습을...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내 가슴에 남아 나를 깨워줄까...
순수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게....
저녁때 해마옛이 포터를 데리고 왔다.
치통이 너무 심하단다.
약사인 이풀의 처방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염진통제를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도록 주었다.
이렇게 작은 일이나마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으니 흐믓한 마음에 행복한 마음까지 든다.
<하산하던 날 찍은 우르두카스 캠프장의 풍광...>
'파키스탄·K2bc,낭가파르밧.45일(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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