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4년)

서울시향/이브 아벨의 프렌치 콜렉션/7.4.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4. 7. 4. 03:46

이브 아벨의 프렌치 콜렉션

 

 

대중에게 매우 친근한 <윌리엄텔 서곡>과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을 오랜만에 서울시향의 연주로 반갑게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향과 몇 차례 호흡을 같이한 바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안겔리치는 7세에 이미 전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데뷔한 신동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여러 유명 콩쿠르에서 실력을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가 이번 무대에서 연주할 곡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라벨 후기의 걸작 <왼손을 위한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G장조>입니다. 특히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의 작품으로 불안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엄함까지 동시에 느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그램]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Rossini: William Tell Overture
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
Ravel: Piano Concerto for Left Hand in D Major
라벨: 피아노 협주곡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비제: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1번 & 2번
Bizet: L'Arlesienne Suites No. 1 & 2
 
[프로필]
 
지휘 이브 아벨 Yves Abel, conductor

 

2005년부터 7년 간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극장의 주요 객원 지휘자로 활동한 바 있는 지휘자 이브 아벨은 오페라와 교향곡 레퍼토리에 있어 동시대의 가장 설득력있는 지휘자로 입증되고 있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ROH 코벤트 가든, 빈 국립 오페라, 라 스칼라 극장, 파리 국립 오페라 등 수많은 오페라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공연들을 이끈 바 있다. 또한 이브 아벨은 리버풀 왕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볼차노 하이든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했다. 이밖에도 이브 아벨은 르네 플레밍, 토마스 햄슨, 수잔 그레이엄, 파트리샤 프티퐁, 엘리나 가란차 등의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데카,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여러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한편, 이브 아벨은 프랑스 오페라 레퍼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은 업적을 높게 인정받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Lettres)를 수여받았다.

피아노 니콜라스 안겔리치 Nicholas Angelich, piano


1970년 미국에서 태어난 니콜러스 앤절리치는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2년 후에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으로 무대에 섰다. 13세에 파리 고등음악원에 입학하여 알도 치콜리니, 이본 로리오, 미셸 베로프를 사사하고, 피아노와 실내악 부문 1등상을 받았다. 레온 플라이셔, 마리아 주앙 피레스, 드미트리 바시키로프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고 이탈리아 카덴나비아 피아노 재단에 상주했다. 앤절리치는 카자드쥐 콩쿠르,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 등 많은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2003년 레온 플라이셔로부터 '루어 국제 피아노 페스티벌 : 젊은 연주자상'을 받았다. 2010/11 시즌에 앤절리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리사이틀을 가지고, 스테판 드네브의 지휘로 LA필하모닉 무대에 데뷔한다. 2009/10 시즌에 뒤투아 지휘의 로열 필하모닉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황제'를, 네제세겡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앤절리치는 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신시내티 심포니 등과 협연하였다. 고전 및 낭만주의 레퍼토리의 인상적인 해석자로서 베토벤과 리스트의 작품을 프랑스(라로크 당테롱, 툴루즈, 낭트), 독일(루어, 바이어 레버쿠젠), 이탈리아(브레시아), 스페인(빌바오), 미국(워싱턴) 등에서 공연하였다. 또한 20세기 음악의 해석에도 명성을 얻고 있어,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버르토크, 라벨, 메시앙, 슈토크하우젠, 불레즈, 탕기 등의 작품을 활발하게 연주하고 있으며, 피에르 앙리는 그에게 <오케스트라 없는 피아노 협주곡>을 헌정하였다. 앤절리치는 조슈아 벨, 지앤 왕, 카푸송 형제, 이자이 현악사중주단 등과 실내악을 연주하였고, 카푸송 형제와의 브람스 <트리오> 녹음은 독일음반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이외에도 베토벤, 리스트, 라벨, 라흐마니노프 등의 작품을 아르모니아 문디, 리링스, 미라레 레이블로 녹음하였다. 2003년 5월, 앤절리치는 쿠르트 마주어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에 데뷔하였으며, 2007/08 시즌에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는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개막 공연에 초청하였다. 향후 앤절리치는 로테르담 필하모닉, 몬트리올 심포니, 애틀랜타 심포니, 서울시향,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런던 필하모닉(투어) 협연이 예정되어 있다.


 

파리의 미국인,
라벨을 연주하다

“니콜라스 안겔리치의 피아노 연주는 건강하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음악의 내부 구조를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안겔리치는 피아노의 가능성을 한계점까지 끌어올린다. 그는 여러 요소들을 풍부하게 혼합하고,
전체를 장악하며, 극도로 예민한 터치를 결합시키는 연주가다.” 프랑스 르 피가로지의 평이다. 안겔리치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안겔리치의 음악세계를 한두 마디로 묘사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가 다른 어떤 피아니스트와도 구별되는,
뚜렷하고 독특하고 민감한 감성의 소유자이며 주목받는 우리 시대의 피아니스트라는 점이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앤절리치,  안젤리치,  안겔리치,  안겔리슈...  파리에서  공부한 미국인인 그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갖가지 한글 표기가
혼재돼 있다. 안겔리치(Angelich)는 몬테네그로 식 성이다.
몬테네그로  표준어인  세르비아-슈토바키안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Angelich’는 안겔리치로 발음된다.
니콜라스  안겔리치는  음악가족에서  태어났다.  먼저  그의 가계를 살펴보자. 니콜라스의 부친 보리보예 안겔리치(약
칭 ‘보라’)는 1933년  유고슬라비아  시절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내이자  니콜라스의  어머니인  클라라는
피아니스트였다. 둘은 음악원 시절 만나 부부가 됐다. 보리보예 안겔리치는 베오그라드 심포니의 악장과 베오그라드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부악장을  지냈다.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악장으로 활동하기도 한 보리보예 안겔리치는 1965
년 신시내티 심포니에 오디션을 봤다. 음악감독 막스 루돌프는 그의 연주를 마음에 들어했고, 보리보예는 신시내티
심포니에 입단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보리보예와 클라라는 1970년 신시내티에서 아들 니콜라스를 얻었다. 니콜라스 안겔리치는 5세 때 어머니 클라라에
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2년 뒤 안겔리치는 7세의 나이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K. 467을 연주하며 첫
콘서트를 가졌다.
13세 때 니콜라스 안겔리치는  미국을 떠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했다. 알도 치콜리니, 이본 로리오, 미셸 베로
프 등 스승에게 배우며 안겔리치는 프랑스 피아니즘을 온몸에 빨아들였다. 재학중 피아노와 실내악을 위한 상을 수상하며,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와 작품 자체의 공감을 공명하는 오늘날의 스타일을 예견케 한 안겔리치는 레온 플라이셔, 드미트리 바쉬키로프, 마리아 조앙 피레스 등의 마스
터클래스에  참가했다.  이탈리아  카덴나비아  국제  피아노 재단의 상주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로베르 카자드쉬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기록했고,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에서는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3년에는 독일 루르 국제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젊은 음악가상을 수상했다. 시상은 레온 플라이셔가
맡았다.1992년부터 2009년까지  안겔리치는  신시내티  심포니와 네 차례 협연했다. 바이올린 섹션에는 단원인 아버지 보리
보예(보라) 안겔리치가 연주하며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줄곧 신시내티 심포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해오던 아
버지 보라는 지난 2012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세상을 뜨기 전까지 보라는 아내 클라라와 금실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
피아니스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음악성


2003년  안겔리치는  링컨센터에서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며 데뷔무대를 가졌다.

2007년~2008년에는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안겔리치를 초청해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오프닝 무대에서 협연

했다.  이외에도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프랑스  국립관현악단, 데이비드 로버트슨과 리옹 국립관현악단, 유다카 사도
와 보르도 국립관현악단, 마티아스 바메르트와 릴 국립관현악단,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와 몬테카를로 필, 알렉산드
르 드미트리예프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심포니, 야프 반 즈베덴, 야닉 네제 세겐과 툴루즈 오케스트라, 크리스티안 차
하리아스와 로잔 체임버, 미하엘 길렌과 바덴 바덴 남서독일 관현악단, 휴 울프와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파보
예르비와 신시내티 심포니 등  세계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최근에는 야닉 네제 세겐, 스테판 드네브 등 젊은
지휘자와의 협연이 인상적이었다.고전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 음악의 인상 깊은 해석으로 이름 높은 안겔리치는 베토벤과 리스트를 유럽과 미국
에서  공연했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바르토크, 라벨, 메시앙, 슈톡하우젠, 불레즈 등 20세기
이후 음악의 해석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특히 작곡가 피에르 앙리는 ‘오케스트라 없는 피아노 협주곡’을 안겔리치
에게 헌정했다.
“16세 때 피에르 불레즈 앞에서 그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죠. 악보에는 참으로 많은 지시가 씌어
있어요. 저는 제 연주를 듣고 불레즈 선생님이 ‘그 부분은 그렇게 말고 다르게 연주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어
요. 하지만 전혀 그런 말씀 없어서 놀랐죠. 대신 그는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악장의 느낌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지휘로 그 부분을 보여주었죠. 불레즈는 탁월한 지휘자입니다. 어쨌든 악보를 보며 많은 것들이 또렷해지고
숨을 쉬기 시작했죠. 그의 조언은 대단했습니다. 현존하는 작곡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환상적인 경험입니다. 엄
청난 특권이죠. 물론 고전음악, 낭만음악처럼 과거로부터 축적된 전통과 해법은 거기에 없지만요 그 대신 모험과 발
견,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학창시절 올리비에 메시앙의 아내
인 이본느 로리오에게 배웠습니다. 메시앙 앞에서도 여러 번 연주했죠. 메시앙은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가식이 없고
따스한 사람이었죠.” 
안겔리치의 레코딩 데뷔는 HMF에서였다. 이후 2004년 미라레(Mirare) 레이블에서 리스트 ‘순례의 해’와 베토벤 소
나타를 발매한다. ‘르 몽드 드 라 뮈지크’의 쇼크상을 받기도 했으나, 이때까지도 그는 한국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
다.  이후 EMI에서  아르헤리치와  친구들  시리즈에  참여해 자신을 알린 안겔리치는 버진(Virgin) 레이블을 통해 르네
카퓌송과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를  발매하고  브람스의 발라드와 파가니니  변주곡을 수록한 초기 피아노 작품집
을 통해 브람스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불레즈, 메시앙 등 동시대 작곡가와의 경험 잊지 못해 일찍이 실내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안겔리치는 드미
트리 시트코베츠키, 조슈아 벨, 제라르 코세, 지안 왕, 폴 마이어, 이자이 4중주단, 프라작 4중주단, 고티에 카퓌송, 르
노 카퓌송 등과 활발하게 연주했다. 특히 카퓌송 형제와 연주한 버진 클래식(현재 에라토) 녹음은 독일 레코드 비평
가상을 수상했다.
카퓌송  형제와의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1~3번 전곡은 프랑스의 향기와 감성을 곁들여 브
람스의 서정미 가득한 실내악의 묘미를 잘 담아내었다. 피아노 트리오 외에도 안겔리치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유독
브람스 연주가 많다. 발라드 Op. 10, 환상곡 Op. 116, 간주곡 Op. 117, 두 개의 랩소디 Op. 79, 카퓌송 형제와의 피아노 3
중주와 4중주, 르노 카퓌송과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프랑크 브레일리와의 헝가리 춤곡 두 대의 피아노 버전, 파보
예르비,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전곡, 8개의 피아노 소품 Op. 76 등등. 특히 예르비와
의 브람스 협주곡에서 안겔리치는 투명하고 상쾌하면서도 강렬한 터치로 작품에 표정을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이끌어
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안겔리치가 브람스를 많이 녹음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점이 그를 매료시켰을까.
“어릴 적부터 브람스 음악과 더불어 살다시피 했어요. 집 안엔 늘 브람스의 음악이 울렸죠. 부모님 덕분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예전에 들었던 음반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빌헬름 박하우스와 카를 뵘, 빈 필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
번이었죠. 그저 놀라운 연주였어요. 또 하나를 꼽자면 에트빈 피셔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지휘 베를린 필과 연주한
1942년 실황입니다.  참  많이  들었어요. 이  위대한  음악을 이상적으로 구현한 듯했죠. 브람스 음악을 처음 연주한건
14세 때 피아노 소나타 F단조였습니다. 브람스를 연주하기엔 꽤 어릴 때였죠.”


안겔리치는 작곡가가 작품에 만들어 놓은  구조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연주가는 그 위에 박동이 뛰는 듯한 생
동감을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복잡한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하는 것도 연주가의 의무라고 그는 주장
한다. 20세기 이후의 음악도 청중들이 무리 없이 들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건 최종적으로 연주가에게 달렸다는 얘기다.
“작곡가의 구조 위에 연주가가 표현하는 부분은 음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점입니다. 같은 역할을 하더라도
배우들 저마다의 연기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지요. 연주를 할 때 연주가는 자의든 타의든 내면의 여러 요소들을 공개
하게 됩니다. 연주가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게 됩니다. 음악 속에서 음악가
로서의 개성과 성격을 발현하는 것이 바로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쇼맨십과 기교가 놀라운 대신 기복이 있는 연주가들을 많이 본다. 안겔리치는 그와는 정 반대편에 서 있다. 2006년
과 2008년 서울시향과 협연해서 그는 ‘기대’와는 달리 조용한 협연을 보여주었다. 오케스트라에 맞서는 대신 피아
노가 오케스트라와 한 몸으로 녹아드는 듯한 해석이었다.  안겔리치는 그의 협주곡 녹음들 가운데 가장 굵직하다고
할 수 있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했다.  연
주하면서 그는 파보 예르비에게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예르비는 믿기 어렵게 강렬한 음악적인 개성을 가진 지휘자예요. 그러면서도 유연하죠. 녹음하면서 그에게 의지를
많이 했습니다. 제 연주에 자신감이 배가됐고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죠. 협주곡을 연주할 때 나는 홀로 섬에 있는 게 아니죠. 제 일만 딱 끝내고 빠져나올 수도 없습니다. 함께 연주
하면서 시너지가 창출됩니다. 모든 걸 함께 해야죠.”
그의 최근 신보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브람스라는 구조적인 작곡가의 기반을 더욱 튼튼히 다지려고 한
것일까.
“바흐는 제 자신이 열정을 쏟는 작곡가입니다. 바흐는 기반이 되어 주는, 나를 위해 필요한 존재입니다. 바흐는 제 자
신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합니다. 제 예술을 숙성시키기 위해 핵심적인 무언가가 바흐에는 들어있습니다.”라고 안
겔리치는 말했다.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무언가를 잡아당기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어렵지 않게 연주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면서
띄운 공기 같은 음들이 묘하게 듣는 이를 잡아끈다. 수많은 거장들의 녹음이 있는 명곡이다. 그러나 안겔리치의 해석
은 로잘린 투렉, 글렌 굴드, 빌헬름 켐프,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 안드라스 쉬프와는 또 다른 유형으로 파고드는 이
곡의 대표적인 레코딩으로 평가할 만하다. 유년기를 지배한 브람스, 숙성을 도와주는 바흐…
그의 라벨은?
안겔리치는 지난 5월 22일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투간 소키예프가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협연했다.  안겔리치의 라벨 연주에  대해 음악평론가 알란 샌더스는 이렇게 평했다. “…니콜라스 안
겔리치는 엄청난 기교의 소유자였다. 그는 1악장 내내 매력과 위트를 선보이며 무심하게 항해했다. 아다지오의 도
입부인 긴  솔로 악구에서는 극도로 소박하게 연주했으며 사랑스러운 음색과 감질나게 하는 표현도 눈길을 끌었다.
피날레는 격렬한 템포로 시작됐다. 너무 빠른 감이 없지 않았지만 힘에  부쳤던 바순 주자만  빼고 신이  났다.  작품의
느긋한 정서를 조금 희생하기는 했지만 안겔리치  기교의 승리였다.”
7월 4일, 안겔리치는 이브 아벨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연주한다. 기교 뿐 아니라 두터운 음악성으로 주목받는 예측  불허의  연주가 안겔리치. ‘파리의  미국인’  안겔리치가
서울시향의 청중 앞에서 또 어떤 인상적인 라벨을 풀어보일 것인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브 아벨의 프렌치 콜렉션여름밤에 즐기는
프랑스식 만찬


이 공연은 라벨에게 바치는 헌정의 무대이기도 하다. 서울시향과 몇 차례 호흡을 함께 한, 미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안겔리치가 모두 40여 분에 달하는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두 곡을 연주한다. 피아노협주곡 두 곡의 앞뒤에는 밝고 즐거운
애피타이저(‘윌리엄 텔’ 서곡)와 디저트(‘아를르의 여인’ 모음곡)도 기다리고 있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조아키노 로시니 (1792~1868)
‘윌리엄 텔’ 서곡 (1829) <연주시간 : 12분>


1829년에 완성된 오페라 ‘윌리엄 텔’은 13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저항하여 스위스 민중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활로 쏘아 맞힌 ‘텔’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로시니는 주로 코믹한 내용의 ‘오페라 부파’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진지한 내용과 장대한 구성의 ‘오페라 세리아’도 다수 남겼으며 이 ‘윌리엄 텔’은 후자에 해당한다.

이 오페라에서 로시니는 한껏 확장시킨 스케일 속에서 대규모 합창단과 앙상블, 열정적인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발레 장면을 포함한 풍
부한 볼거리 등을 한꺼번에 펼쳐 보여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이태리 벨칸토 오페라의 기법에 프랑스 스타일을 가미한 장대한 무대를 연출해 보였다.


이 오페라의 서곡은 일찍이 베를리오즈가 ‘4부로 구성된 교향곡’이라고 칭송했던 것처럼, 서로 확실한 대비를 이루는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단테 템포의 제1부는 고즈넉한 첼로 독주로 시작되며 스위스 산지의 새벽 분위기를 떠올린다.

알레그로 템포로 진행되는 제2부는 로시니 오페라에 ‘극적 전환점’으로서 자주 등장하는 폭풍우 장면을 나타낸다.

제3부에서는 다시 안단테로 돌아가 폭풍우가 지난 후의 목가적 정경이 펼쳐진다. 잉글리시 호른이 평화로운 전원에 울려 퍼지는 목동의 피리소리를 환기시킨다.

제4부는 유명한 행진곡이다. 브라스 합주를 앞세운 스위스 군인들의 용감한 행진과 민중들의 열렬한 환호가 한껏 고양된 분위기 속에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모리스 라벨 (1875~1937)
왼손을 위한 협주곡 D장조 (1930) <연주시간 : 19분>


라벨은 특유의 고전적 형식과 세련미를 바탕으로 까다로운 연주기교가 요구되는 피아노 작
품을 여러 곡 썼는데, 피아노 협주곡은 두 곡을 남겼다. 두 협주곡은 나란히 작곡되었고 공히
재즈의 영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관련이 깊다. 하지만 양손을 위한 ‘G장조 협주
곡’이 다분히 밝고 경쾌한 반면, 왼손만을 위한 ‘D장조 협주곡’은 사뭇 어둡고 진중한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라벨이 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빈 출신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
트겐슈타인의  의뢰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전쟁  중에  오른손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의지와 열정으로 연주활동을 지속했고, 라벨 외에도 브리튼, 힌데미트, 프로코피예프, R. 슈트
라우스 등에게 ‘왼손만을 위한’ 피아노곡을 위촉했다.
1929년에 비트겐슈타인의 의뢰를 받았을 당시, 라벨은 이미 양손을 위한 ‘G장조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층 새롭고 색다른 도전에 더 구미가 당겼던 것일까? 그는 이 ‘D장
조 협주곡’을 ‘G장조 협주곡’보다 한 발 앞서 완성하게 된다. 당시 라벨은 이 곡을 작곡하기
위해서 체르니와 스크리아빈의 고난도 연습곡들과 생상스의 왼손을 위한 연습곡, 그리고 쇼
팽의 연습곡을 왼손용으로 편곡한 고도프스키의 곡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 놀라운 작
품이 탄생했는데, 아마 일반 청중들은 귀로만 들어서는 이 곡이 왼손만으로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 ‘D장조 협주곡’은 단악장 구성이되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렌토 및 안단테 템포로 진행
되는 느린 부분이 앞뒤에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 알레그로 템포로 진행되는 힘찬 행진곡풍
의 중간부가 놓여 있는 것이다. 처음에 나오는 렌토의 도입부에는 중요한 선율적 요소가 두
개 등장하는데, 콘트라파곳으로 연주되는 첫 번째 요소는 점리듬을 특색으로 하고, 호른으로
연주되는 두 번째 요소는 블루 노트와 당김음으로 된 리듬이 재즈의 냄새를 풍긴다. 앞뒤의
느린 부분에서는 길고 화려한 피아노 독주의 카덴차가 등장하여 특히 이목을 끌고, 행진곡풍
의 중간부는 탭댄스를 추는 듯한 경쾌한 리듬과 재즈풍 선율로 장식된다.

 

 

 

 
모리스 라벨 (1875~1937)
피아노 협주곡 G장조 (1931) <연주시간 : 23분>

 


라벨은 한 인터뷰에서 “협주곡은 유쾌하고 화려해야 하며, 심각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겨냥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이 ‘G장조 협주곡’에 잘 들어맞는데, 라벨은 이 곡을 “모차
르트와 생상스의 정신에 입각하여 작곡한, 가장 엄밀한 의미의 협주곡”이라고 불렀다. 이 곡
의 바깥 악장들은 극도로 쾌활하고 유희적이며, 그 사이에 조용하고 서정적인 느린 악장이 놓
여 선명하고도 오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편 라벨은 이 곡을 작곡하기 직전에 스페인을 방문했는데,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의 바스크

 지방은 그의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했다. 이 곡에 바스크적인 색채가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제1악장 : 전반적으로 생동감 넘치며 다채로운 첫 악장은 특이하게 ‘채찍 소리’로 시작된다. 피아노의 아르
페지오 위에서 피콜로로 제시되는 제1주제는 복조적인 효과를 내는 민요풍 선율로, 바스크 지방의 축제 분
위기와 시골악사의 연주를 연상시킨다. 반면 템포가 늦춰진 가운데 피아노 독주로 제시되는 제2주제는 재즈
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제2악장 : 서른세 마디에 걸친 무반주 피아노 독주로 문을 여는 느린 악장은 라벨식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준
다. 지극히 섬세하고 감미로우며 낭만적 운치로 가득한 이 야상곡 풍의 악장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곡’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3악장 : 마지막 악장은 다시 쾌활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마치 서커스나 사육제의 퍼레이드를 보는 듯 익살
스런 표정과 흥겨운 몸짓이 두드러진다. 다시 한 번 바스크적인 분위기로 넘쳐나는 흥미진진한 악장이다.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Maurice Ravel

1875-1937

Jean-Yves Thibaudet, piano

Philippe Jordan, conductor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Royal Albert Hall, London

Proms 2013

Jean-Yves Thibaudet/Philippe Jordan/GMJO -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프랑스 피아니즘의 진수를 들려주는 장-이브 티보데의 연주 실황을 처음 소개합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가 끝난 뒤 지휘자의 요청으로 24분 23초부터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을 앙코르로 연주합니다.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작곡가들은 우리에게 많은 양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남겨주었지만 라벨이 남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외에는 상당수가 잊힌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작곡가에게 인상주의 스타일을 배제하며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게 된 도화선과 같은 작품으로, 음악사적인 관점에서 이 두 작품이 갖고 있는 중요성과 그 형식에서의 완전함에 비견할 만한 후대 프랑스 피아노 협주곡은 드물 정도다. 더 나아가 이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보들레르적인 댄디즘과 강박증에 가까운 모더니즘, 순결함과 뜨거움의 혼합이 주는 패러독스한 아름다움은 20세기 프랑스 음악 가운데 무릇 군계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29년부터 1931년 사이에 작곡한 라벨이 작곡한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즉 피아노 협주곡 G장조와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는 그의 후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볼레로>를 통해 상상을 뛰어넘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게 된 직후 작곡가가 자신감과 의지에 넘쳐 있을 당시에 탄생했다. 이 두 작품은 그 태생부터 신고전주의적이다. 모차르트를 숭배했던 라벨은 고전주의적인 형식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신바로크적인 <쿠프랭의 무덤> 등을 작곡하여 18세기의 형식과 리듬, 음색의 잔향, 음영의 조화 등등을 20세기에 맞게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협주곡에 이르러서 규칙적인 프레이징과 음악적 요소들의 절묘한 균형감을 통합하여 신고전주의적인 양식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결합을 비로소 완성한 것이다.

세련된 신고전주의적 결정체 ‘피아노 협주곡 G장조’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빠름-느림-빠름의 전형적인 고전주의 협주곡 스타일로, 선명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스페인적인 취향과 동양적인 취미에서 기인한 개성 강한 판타지, 이국적인 리듬감과 색채감, 한층 분명하게 그 모습을 보인 재즈의 이디엄, 정교한 세공력과 이전 세기의 음악들에 대한 오마주 등등이 말년의 원숙한 라벨의 손끝에서 어우러진 독자적인 음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비르투오소적인 요소와 패러독스한 요소를 사랑했던 라벨은,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리스트의 저 맹렬한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하는 듯한 기분을 청중들 앞에서 발산하고자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50대의 나이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라는 주위 친구들의 만류와 설득에 굴복하여 할 수 없이 연주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작곡가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모차르트와 생상스의 정신에 입각하여 작곡했으며, 특히 2악장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2악장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협주곡이란 화려하고 경쾌한 마음의 음악이어야지 어떤 극적인 효과나 심오한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라는 자신의 모토를 구현하고자 했던 작곡가는, 원래 이 작품에 ‘디베르티시망’이라는 제목을 붙이고자 했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음색으로, 라벨은 이전 시대보다 훨씬 세련되고 풍부한 효과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드뷔시적인 인상주의 오케스트레이션의 풍부함을 거부하고자 크롬 색에 가까운 결벽증적인 음향을 추구한 것과는 대조된다. 자신의 취향을 바꾸는 것에 훌륭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라벨은 삶의 마지막까지 이질적이지만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음색의 블록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쌓고 무너뜨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Kun-Woo Paik/Paavo Järvi/Orchestre de Paris -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Kun-Woo Paik, piano

Paavo Järvi, conductor

Orchestre de Paris

Korean Art Centre Concert Hall

2011.12.03

1악장 알레그라멘테는 명확한 소나타 형식으로 풍부한 음악적 소재와 다채로운 악상이 극적으로 펼쳐지고, 저 유명한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는 무반주 피아노 솔로가 우아하게 시작하는 3부 형식으로, 색채감과 분위기는 중립적이지만 그 감수성이 최고조로 고양되며 감동을 자아낸다. 3악장은 벌레스크 풍의 화려한 프레스토로, 피아노와 타악기가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아이러니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이 작품은 1932년 1월 14일 파리에서 열린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라벨 특별연주회에서 작곡가의 지휘와 마르게리트 롱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다. 라벨은 마르게리트 롱 여사를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다고 밝히며 2악장 솔로 피아노의 피아니시모 부분에 트릴이 등장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세부적 조언을 그녀로부터 얻었다고 하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작품의 헌정자이고 초연자이자 최초 녹음자로서, 롱의 연주가 이 작품에 관한 가장 확고한 권위를 갖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페드로 데 프리타스의 지휘로 1932년 4월에 진행된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라벨은 지휘자나 피아니스트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테이크를 수십 번 이상 반복하게 해 연주자들을 완전히 지치게 했다고 한다.

롱 여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새벽 3시쯤이었어요. 녹음이 끝났다고 생각해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더니 라벨은 냉정한 목소리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더군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이 회고담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듯이, 라벨의 참관 하에 녹음한 롱의 레코딩은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레코딩과 더불어 일종의 해석의 출발점이자 불변의 기준으로서 그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4.11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4797

 

조르주 비제 (1838~1875)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1번 (1872) <연주시간 : 17분>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2번 (1872) 中 1, 4악장 <연주시간 : 10분>

 

오페라 ‘카르멘’과 더불어 비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아를르의 여인’은 ‘별’, ‘마지막 수업’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랑스의 문호 알퐁스 도데의 동명 희곡에 의한 연극에 붙인 음악
이다. 1872년에 희곡으로 개작된 후 비제의 음악과 함께 상연되어 유명해졌다. 전 3막 5장으
로 구성된 이 작품은 남프랑스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아를르의 여인’으로 불리는 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프로방스 지방의 유서 깊은 농가의 장남인 프레데리는 몇 달 전 아를르의 투우장에서 만난 매
혹적인 아가씨, ‘아를르의 여인’과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늙은 하인 발타자르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그녀의 과거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하고, 그런 와중에 그녀
가 자신의 연인이라고 주장하는 목장지기 미티피오까지 나타나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번
민하던 프레데리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이웃마을 소녀 비베트와 결혼하기로 한다. 하지만 비베트와의 약혼 축하연이 벌어지던 날, 프
레데리는 ‘이제 아를르의 여인은 나의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떠벌이는 미티피오의 말에 자
극받아 질투와 욕정에 휩싸이고, 결국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곡물창고의 높은 창에서 정원으
로 뛰어 내렸다가 죽고 만다.
연극 ‘아를르의 여인’은 1872년 10월 1일 파리의 보드빌 극장에서 막을 올렸으나, 평이 좋지
않아 불과 21회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연극이 부활한 것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885
년 오데옹 극장에서였는데, 이때는 대성공을 거두어 이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상연되고 있다.
이 연극이 새삼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상당 부분 ‘카르멘’으로 대성공을 거둔 비제의 음악 덕
분이었다. 사실 도데의 ‘아를르의 여인’은 이야기의 창의성보다는 남프랑스의 풍토와 풍광에

 관한 뛰어난 세부묘사로 주목받았는데, 무대에서 비제의 음악이 그런 면을 잘 보완해주었던
것이다. 비제의 음악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프로방스 지방의 수려한 풍광을 마치 한 편의 음
악적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펼쳐 보이고 있다.
원래 비제가 연극 ‘아를르의 여인’에 붙인 음악은 극장용의 소편성 관현악과 혼성합창을 위
한 것으로 모두 27곡이다. 비제는 그중 4곡을 골라 대편성 관현악용으로 편곡했고, 연극이 막
을 내린 직후인 1872년 11월 10일 파들루 콘서트에서 발표했다. 이것이 ‘제1 모음곡’이고, ‘제
2 모음곡’은 나중에 비제의 친구이자 파리 음악원 교수였던 에르네스트 기로가 새로 편집한
것이다. 역시 4곡으로 구성된 ‘제2 모음곡’에는 ‘아를르의 여인’ 외에 비제의 오페라인 ‘아름
다운 페르트의 아가씨’에서 가져온 곡이 하나 포함되었다. 두 모음곡의 구성 및 내용은 다음
과 같다.

 
제1 모음곡
제1곡/전주곡 : 연극의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곡으로 행진곡 주제에 의한 일련의 변주로 이루어진 1부,
조용한 분위기에 색소폰 솔로가 흐르는 2부, 바이올린에서 나타난 선율이 격렬하게 고조되는 3부로 구성된
다. 처음에 목관, 호른, 현악이 투티로 행진곡 주제를 힘차게 연주하는 부분은 프로방스 민요 ‘세 왕의 행렬’
에서 취한 것으로 극의 배경을 나타낸다. 2부의 색소폰 선율은 극중 주인공의 백치 동생을 나타내는데, 그
지방에는 백치 아이가 집안의 불행을 막아준다는 미신이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이
아이는 제 정신을 찾아가며, 이것이 불행한 결말을 예고하는 일종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한편 3부에서 나타
나는 고뇌에 찬 선율은 주인공 프레데리의 비극적 정서를 암시한다.
제2곡/미뉴에트 : 축제일을 배경으로 한 제3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곡. 활기찬 무곡 리듬이 토속적인 정
서를 환기시키며, 클라리넷, 색소폰, 바이올린 등이 다채로운 선율을 꺼내 놓는다.
제3곡/아다지에토 : 제3막 제1장에서 과거 연인사이였던 발타자르 노인과 이웃마을의 노파 루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흐르는 곡. ‘아다지에토’는 ‘아다지오 빠르기의 소곡’이라는 의미로, 약음기를 단 현악 4부의
합주로 단순하고 우미한 음률이 차분히 흐른다. 십수 년 만에 만난 늙은 연인이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며 나
누는 대화가 은은하고도 애틋한 감명을 자아낸다.
제4곡/카리용(종) : 제3막 제1장의 축제일 장면에 나오는 곡. 종소리를 모방한 음형이 반복해서 울리는 가
운데 축하연이 벌어질 농가의 정원에서 사람들이 활기차게 오가는 모습, 비베트와 함께 나타난 루노 할머니
가 프레데리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등이 그려진다.

 
제2 모음곡

제1곡/목가 : 제2막의 첫 장면을 장식하는 곡. 따뜻하고 풍성한 느낌의 선율이 유유히 흐르며 프로방스의 전
원풍경을 펼쳐 보이는 듯한 1부, 프로방스 전통북(긴 북)이 연주하는 무곡풍 리듬 위에서 목관이 경쾌한 선
율을 노래하는 2부, 다시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가는 3부로 구성된다.
제4곡/파랑돌 : 제3막에 등장하는 춤곡과 민요선율을 합쳐놓은 곡. 먼저 극중에서 합창으로 나타나는 민요
‘세 왕의 행렬’ 선율이 단조로 나타나 현악, 목관, 호른에 의해서 카논으로 진행된다. 이어서 프로방스 북의
단순한 리듬을 두들기는 가운데 목관이 빠르고 경쾌한 ‘파랑돌(프로방스의 민속춤곡)’ 주제를 연주한다. 이
것이 수차례 반복되며 고조되어 가는 가운데 행진곡 주제가 장조로 가세하며, 두 주제가 교대로 나오다가 합
쳐지며 장쾌한 코다에 이른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현대에 뛰어든
명징한 고전성

라벨이 만년에 남긴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은 20세기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성과이다.
“18세기 형식과 리듬을 20세기에 맞게 새롭게 탄생시켰다”는 분석이 유효하다. 신고전주의 피아니즘의 기원과도 같은 두 작품.
현대 협주곡의 ‘프렌치 콜렉션’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두 번 생각할 이유도 없이 들어가야 할 걸작들이다.
글 조은아 (피아니스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콘체르토 : 두 개의 음향체
협주곡은 본디 ‘경쟁’과 ‘협동’이라는 이원적 가치를 설파하는 장르이다. 콘체르토의 어원인
‘concertare’마저 이원적인데, 라틴어로는 ‘싸우다, 경쟁하다’란 의미지만 이탈리아어는 ‘조
화시키다, 동의하다’란 뜻을 갖는다. 음량과 음색이 확연히 다른 두 개의 음향체, 즉 독주악기
와 오케스트라는 동적인 제1주제나 서정적인 제2주제로 그 차이를 드러내는가 하면, 빠름-느
림-빠름 등 악장 간 템포 대비 등의 외부 장치를 통해서도 이원적 가치를 강화해왔다. Solo(독
주)와 Tutti(합주)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동일한 음악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한다. 작곡가의
역량을 가늠할 바로미터는 바로 이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라벨이 피아노를 위해 남긴 단 두 곡의 협주곡은 모두 생의 만년(1929-1931)에 작곡되었다.
작곡기법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그의  작품  목록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데,  특히
‘신고전주의’적 경향을 엿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신고전주의는 전통을 새롭게 인식하려
는 예술사조를 일컫지만, 라벨은 ‘전통’을 과거의 유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전통의 진정한
가치란 ‘현재를 자극하고 가르치는 살아있는 힘’에 있다고 주장했다. 정밀한 세공에 능했던
라벨의 작곡경향을 상기하자면, 주관과 감정에 침잠하는 당대의 표현주의보다는 밝고 명징
한 신고전주의에 더 이끌렸을 법도 하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연주자는  한손으로
연주하지만, 청중의 입장에서는 한손의 결핍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라벨 스스로도
밝혔듯, ‘양손을 위한 곡보다 가볍게 들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두터운 텍스쳐를 설계’했기 때
문이다. 피아니스트의 왼손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오른손에 비하면 천덕꾸러기와도
같다. 이 협주곡에선 우둔한 왼손이 극 전개의 모든 것을 관장해야 한다. 저음역에 번쩍, 고음
역에 번쩍, 이리저리 날뛰자면 몸뚱어리의 균형이 와르르 와해될 지경이다. 그러니 라벨과 동
시대에 살던 명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는 이 곡을 양손을 위한 버전으로 얍삽하게 편곡
해버렸다. 피아니스트들은 환호했다. 허나 작곡가는 노발대발 격노하며 출판도 연주도 금지
시킨다. 코르토가 이를 무시하며 연주를 계속하자, 라벨은 파리의 지휘자들에게 일일이 편지
를 보내 간청한다. “코르토와 절대 협연해주지 말 것!”
왜 웅장한 협주곡을 천덕꾸러기 왼손에게 맡겼을까
작곡가의 절친이었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자 루트비
히 비트겐슈타인의 두 살 터울 형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중 큰 부상을 입고 오른팔을 절단
하는 수술을 받았다. 절망에 빠져 신음하는 연주자를 위해 동료 작곡가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라벨 외에도 브리튼과 슈트라우스, 힌데미트 같은 당대 작곡가들이 비트겐슈타인의 왼손을
위해 여러 작품을 헌정했다. 불구가 된 피아니스트는 좌절을 딛고 그중 라벨의 곡을 가장 즐
겨 연주했다.
모리스 라벨과 파울 비트겐슈타인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에서 오른손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왼손의 ‘엄지’ 손가락이
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한 손의 결핍을 감쪽같이 감추는 영리한 장치는 저음역과 고음역
의 광활한 사용이다. 단 두 마디 동안 무려 7옥타브를 롤러코스터로 내려오듯 직활강할 때도
있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피아노 의자 한 귀퉁이를 오른손으로 꽉 잡아 지탱해
야 한다. 물론 악기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작곡가답게 피아니스틱한 실마리가 곳곳에 주어져
있긴 하다.
이 협주곡의 카덴차는 전체 곡의 1/5에 해당될 정도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보통의 카덴
차라면 피아니스트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기계적 음형을 나열하겠지만, 이 협주곡은 이제
껏 등장했던 테마들을 유기적으로 쌓아 올리며 정밀한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특별하다. 피아
노(P)로 시작한 첫 음은 카덴차의 기나긴 크레센도(crescendo)를 거치며 포르티시모(ff)의 정
점을 향해 서서히 올라간다. 정상에 이르는 능선의 비탈은 완만하지만, 산의 몸집 자체는 거
대하다. 피아니스트가 홀로 카덴차의 2/3를 관통하며 포르티시모의 정점에 올랐을 때, 오케
스트라가 어슬렁 어슬렁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시 기나긴 크레센도를 통해 피아노의 턱밑까
지 치올라온 오케스트라는 단말마와 같은 네 번의 절규를 토해내며 이 독특한 협주곡을 종결
짓는다.

 

 피아니스트는 곳곳에서 악기를 타악기처럼 다룬다.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두드리는 화음의 연타는 마치
방망이로 구김을 펴는 ‘다듬이질’과도 닮았다


가벼운 질주, 체르니 연습곡을 꺼내들라
“라벨을 연주하려는가? 그렇다면 우선 체르니를 꺼내 연습하라.” 20세기 프랑스 피아노 학
파의 가장 위대한 교육자라 손꼽히던 마담 무니에는 이렇게 충고했다. 라벨이 악기를 다루는
메카닉(역학)은 리스트와 베토벤을 거슬러 올라 체르니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주장이었다. 반
면 같은 인상파의 맞수라 할 드뷔시는 그 원류를 쇼팽과 모차르트에게서 찾아야한다고 덧붙
였다.   
라벨의 또 다른 협주곡 G장조는 날렵하고 민첩한 손놀림이 특징이다. 두텁고 웅장했던 D장
조 협주곡과는 전혀 다른 악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잽싸게 달리며 날렵히 다이어트한 음형
은 둔중한 기름기나 과부하를 용납치 않는다. 게다가 호흡이 긴 성악적 선율 대신 짧고 단속
적인 기악적(기계적) 음형이 난무하는데, 이 가벼운 질주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된 체르니류
의 훈련이 유익할지 모른다. 1악장의 빠른 속도감과 동적 에너지는 남국의 태양처럼 구김없
이 밝디 밝다.   
규범을 교란하는 짜릿한 자유
피아니스트는 곳곳에서 악기를 타악기처럼 다룬다.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두드리는 화음
의 연타는 마치 방망이로 구김을 펴는 ‘다듬이질’과도 닮았다. 반복음 연타는 심장박동과 같
은 동력을 부추기고, 허를 찌르며 엇박에 물린 강세는 단위박의 권위를 흩뜨려 놓는다. 피아
니스트가 타악기를 다루듯 ‘리듬’에 몰입할 때, 관악기 파트는 ‘선율’을 탐미적으로 드러낸
다. 특히 슬라이드를 밀고 당기며 음과 음사이를 글리산도로 미끄러지는 트럼본의 활약이 눈
부신데, 선율을 스윙하듯 띄웠다가 스타카토로 흩뿌리며 하강하는 악절은 작곡가가 재즈 기
법마저 진취적으로 아우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규범을 교란시키는 짜릿한 자유를 부
각시키는 또하나의 중요한 조력자는 타악기의 다양한 멤버들이다. 보통의 협주곡이라면 팀
파니가 대표 주자를 자임하겠지만, 이 협주곡엔 큰북과 심벌즈, 탬버린과 트라이앵글, 심지어
채찍과 우드블록까지 등장해 재치 있고 기발한 음색을 들려준다.    
라벨의 두 협주곡을 한 자리에 앉아 듣는 것은 흔치않은 기회이다. 앞서 언급한 기술적 난제
를 극복하면서 작곡가가 정밀히 설계한 다채로운 악상을 전달하는 것은 연주자에게는 상당
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안겔리치가 펼쳐낼 프랑스 피아니즘의 현재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3 - Nicholas Angel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