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C쿰부히말,로왈링트래킹39일(2013

4.쿰부히말,로왈링 롱트래킹/함께한 팀원들...

나베가 2014. 1. 1. 10:12

GHT(The Great Himalaya Trail)는 히말라야 대 종주를 일컫는 알파벳으로 10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의 계획은 이 10구간을 다 종주하는 것이 아니고 그중에서 아름답고 장엄하고 판타스틱한 곳을 선택해서

7구간으로 나누어서 간다는 계획이다.

 

1.에베레스트 로왈링 쿰부 히말....

2.네팔 코사인 쿤드,랑탕, 간자라패스,헬람부 ....

3.마나슬루,틸리쵸,무스탕 하이패스....

4.칸첸충가 남,북 베이스캠프 하이패스..

5.네팔 줌라,Upper 돌포, 좀솜 하이패스...

6.마칼루,셸파니 골,암푸랍차 하이패스...

7.네팔 시미콧트, 힐사,서부 네팔 롱 트래킹....

 

 

이 계획서가 나왔을 처음에는 물론 흥분에 휩쌓였지만 할 수 있을거란 확신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다 해낼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에 또 휩쌓였다.

히말라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찬 생활에 스스로 쇄뇌된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첫 출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가장 절망스러웠던 것은 함께할 일행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계획 일자에 가까워 왔지만,,,여전히 팀원은 나와 친구 둘뿐....

당연히 출발할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장님께서도 아직 가보시지 못한 로왈링에 대한 열망이 크셨고, 또 내 파트너 이풀도 역시 그랬기에

우린 출발을 확정지었다.

우리 둘 포함 대장님께서도 리더겸 대원으로서 ....

이번 여정에 비록 대원은 3명이었지만, 우리와 함께 할 세르파와 쿡, 키친보이, 포터 9명이 합쳐져서 총 12명의 인원으로 움직였다.

 

글쎄~

첫 발은 내 디뎠으나 앞으로의 여정은.....역시 또 불투명하다.

이렇듯 기인 여정에 집안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또 내 컨디션도 지금처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지...

어디 그뿐이겠는가!

나 뿐만이 아닌 친구도 역시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할테니까~

 

기적이나 일어나야 되지 않을까....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제껏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 조차 어쩌면 기적이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 다시는 히말라야에 가지 않겠노라고 타메에서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난 집에 돌아오자 마자 며칠 지나지 않아 이들이 그리워서 눈물을 쏟아냈다.

 

 글쎄~~

아무래도 남편에게 한 약속은 무효가 되지 않을까.....ㅎㅎ

 

 

우리의 대장님 이시다.

작년(2012년) 처음으로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시작으로 만나서 올(2013년) 4월에 안나푸르나BC에 다녀왔고, 7월에 히말라야 라닥 짚 사파리를 또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에 4번째로 대장님의 히말라야 롱트래킹 프로그램의 첫 출발로 '에베레스트 쿰부 히말 로왈링 롱 트래킹'을 다녀왔다.

70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 롱 트래킹을 구상하시고 도전하신 김인섭 대장님....

평생을 히말라야와 함께 하셨다고 봐도 무리가 아닌 우리 산악계의 원로이시기도 한 대단하신 분이시다.

네팔과 인도에서 5년을 사셔서 네팔어와 영어에도 능숙하시다.

 

 

 

 

 

 

 

차마고도 야영 짚투어때 만나 남미 일주,TMB,ABC,히말라야 라닥 짚사파리 그리고 이번 '쿰부히말 로왈링 롱 트래킹'으로

장장 6번이나 함께 한 나의 여행파트너 이풀이다.

남편이외에 가장 함께 잠을 많이 잔 사람....ㅎㅎ

자기 관리에 철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정을 소화해 내는데 조금도 힘들어 하지 않은 강철 여인....

이번 롱 트래킹으로 이제까지 인생중에서 최상의 몸 컨디션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와우!!!!!

 

 

 

 

 

 

 

 

 

대장님과 친구 이풀 덕분에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나...

복많은 여인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이번 '쿰부히말,로왈링 롱 트래킹'을 위하여 26년 동안이나 길었던 기인 머리를 미련없이 싹뚝 잘랐다.

사람들이 다시 기를거냐고 묻는다.

글쎄....

아직 히말라야에 갈곳이 너무 많잖아~ㅎㅎ

 

 

 

 

 

텡보에 머무르는 동안 우린 롯지 뒤편에 있는 5~6m높이 수직 암벽에서 대장님과 세르파와 함께 암벽타기 하강 연습을 했다.

타시랍차 패스를 넘고 로왈링으로 들어서는 구간에 15m 정도의 매우 위험한 설벽을 하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완전 무장을 하고 연습을 나가기 전 한껏 포즈를 취해보았다.

정작 험한 구역에선 누가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는가~ㅠㅠ 

 

 

 

30일 동안 우리에게 음식을 해 주었을뿐만 아니라 대장님의 수석 비서와 우리의 가이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준 우리의 쿡-'왕다'

천성적으로 타고난듯한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

사실 이번 여정에서 타메에서 합류한 세르파 '총바'를 제외하곤 로왈링을 다녀온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까...

팀원중 가장 바람같이 거친 히말라야를 날아다녔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번 여정이 얼마나 힘이 들었었던 지, 트래킹 후미의 사진이 같은 인물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추위와 어려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씩씩하고 쾌활하게 우리의 음식을 해주고, 분위기를 파악해가며 밝게 이끌어 갔다.

 

왕다는 처음부터 쿡은 아니었다.

우리와 7월에 라닥에 갔을때도 보조 쿡으로서 함께 했듯이 이번 여정에서도 역시 보조 쿡이었었다.

그러나 새벽 첫 비행기를 타야하는 스케줄에서 그만 펑크를 내고 만것이다.

이윤즉은 이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에 꼭두새벽에 택시가 있을 리 만무했던 것.

허둥 지둥 공항에 도착해 그 이후의 비행기를 탔으나 가까스로 먼저 왕다가 도착했고, 그 이후부터 무려 사흘간이나 루크라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해서 쿡이 합류하지 못하게 된것이었다.

트래킹 중 대장님께 우리 음식을 더 배우면서 날로 음식 솜씨가 늘었고 갸륵한 충성심(?)에 트래킹 여정중 쿡으로 진급하게 된것이다.

 

지금도 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곤 한다.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먹는 우리 곁에 서서 '미토 차??' 하고 묻곤 했던... 

물론 맛있게 요리 하기도 했지만, 연일 그 음식이 그 음식이었던 식사에 뭐 그리 맛있었겠냐만 ....

까맣게 탄 얼굴에 눈을 반짝거리며 곁에 서서 묻는 그에게 어찌 '미토 차이나' 하겠는가~

당연히 덧 붙여서 '데레 미토차' 를 수없이 해주었지~

('미토차'는 맛있다는 뜻의 네팔어. '미토 차이나'는 맛없다는 뜻이고, '데레'를 붙이면 매우 맛있다는 뜻이다.)

 

 

 

 

우리 팀원중 대장님을 빼고 가장 나이가 많은 대장님의 짐을 지었던 포터 '파상'이다.

나이가 많아 그렇잖아도 무거운 짐을 지는 모습이 안타까웠거늘 팀원중 옷까지 가장 허술해서 늘상 맘이 쓰였던 파상이었다.

그런데 트래킹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제서야 두툼한 하얀 점퍼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알고 보니, 일정을 거의 마친 포터들끼리 서로 물물교환 내지는 중고 판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박물 장수가 수시로 롯지를 순회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재밌고 신기함 마저 들었었는데, 이렇듯 포터들끼리 서로 사고 파는 모습을 보니, 더욱 재밌기도 하고

나름 꽤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는....

암튼 뒤늦게라도 따듯한 옷을 입은 그를 봐서 그제서야 맘이 편했다고나 할까....

 

멀미를 매우 심하게 해서 장거리 버스를 타지 못해 중간에 내려 그의 집이 있는 지리까지 걸어서 가는데 7일정도 걸려 가야 한다니,

전세계 어디를 가든 하루를 넘기지 않고 갈 수 있는 세상에 참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몇십년 전으로 돌아간 삶의 모습인 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답답하다는 생각대신 이들의 여유있는 삶의 모습이 떠올랐으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기인 여정으로 한달 동안 일해 받은 두둑한 보수와(사실 형편없는 임금이었지만, 이들에게는 몇달을 살 수 있는 큰 돈이라고 한다.) 

우리가 챙겨준 팁과 선물을 받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어린 천사처럼 헤맑게 웃던 파상이 그립다.

 

 

 

 

26살의 포터-이풀의 짐을 30일간 짊어진 '텐진 쿵가'다.

대체적으로 체격이 작은 포터들과는 달리 체격도 좋았을뿐만 아니라, 공부도 많이 해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영어나 우리말을 배우는데 있어서도 적극적이고 매우 쉽게 터득해 물어보니 그렇다.

씩씩하고 남자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착하고 동료들에게도 배려를 많이 하는 모습이 참 좋게 보였던 기분좋은 청년이다.

밝고 순수하며 매사에 총명함이 돋보였던 착한 모습으로 가득했던 텐진 쿵가....

치통으로 고생을 했지만 친구가 처방해준 약 덕택으로 여정을 끝까지 고통스러워 하지않고 잘 끝낸....

쿵가의 환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내 짐을 30일간 짊어진 '팸파' 다.

어렸을 적에 조실 부모하여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해 문맹인 가엾은 포터다.

그러나 비록 자국어인 네팔어 조차 글을 모르지만,머리가 매우 좋아서  영어도 가장 잘했고 모든걸 기억력에 의존한 일머리도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조금은 지나쳐 보인 손님에 대한 충성심이 동료들간에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트래킹 끝 무렵에 드디어 쿡인 왕다와의 작은 마찰이 있기도 했다.

포터로서 왜 쿡의 범주까지 뛰어 들어 오버를 하느냐는게 왕다의 입장이었고, 팸파는 자기가 대장님과의 일을 가장 먼저 했었다는 것에서

조금은 우월한 입장으로 최선을 다 했다는데 그러냐는 것...

서로 너무 잘하려다 보니....

하긴 우리에게 너무 잘하려는 모습이 보여서 안스러운 맘이 들기도 하였던 포터다.

암튼....쿰부에서의 숙소 선정과 에베레스트 BC, 칼라파타르뿐만 아니라 타메에서도 가이드 역할을 톡톡이 하며

매 순간 도와주며 풍광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려 애썼던 포터였다.

 

 

 

 

언젠가는 '쿡'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키친보이-노래하는'푸리'다.

19살의 나이로 로왈링의 시작점 타메에서 합류한 '도루치' 다음으로 어리다.

어려서 일까....천성일까....

조금은 천방지축인 장난 끼 많고 늘 기분이 좋아 노랫가락이 멈추지 않았던 소년...(사실 19살이면 청년인데, 워낙  덩치가 작아서 더 어려보인다.)

 

뜨겁게 끓인 밀크 티를 타가지고 늘상 뒤처져 가던 우리를 마중 나왔던 푸리....

꽁마라 패스를 넘을때 맨손인 푸리를 보고 내 모직 털 장갑을 주었는데, 그 이후 잘 끼지 않고 아끼는것 같더니만

알고보니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ㅎㅎ

어쩐 지 푸리의 손엔 수시로 통화하는 핸폰이 쥐어져 있었고 늘 행복해 보였다.(네팔은 핸폰 요금이 무척 싸다.)

처음엔 엄마에게 주려나 보다...했는데 아주 어렸을 적에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재혼해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듯 밝고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어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처음에 루크라 공항에서 만났을 적만 해도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가장 친근감을 느끼게 한 착하고 성실한 키친 보이-다와파상 이다.

30일 동안 우리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허드렛 일은 거의 맡아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

칼에 손을 배어 치료를 해 주면서 모성 본능까지 강하게 느끼게 했던 다와파상...

너무나 그리운 아이다.

 

 

 

 

아이구우~~

이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로왈링부터 함께 한 애기같은 17살의  천막 포터-'도루치'다.

우리의 텐트 2개와 일종의 키친이며 다이닝 룸이고 포터들의 텐트가 된 커다란 천막텐트까지 3개의 천막을 짊어진 어린 천하장사.

처음 타메에 도루치가 나타났을때 눈을 의심했다.

저 애기가 어찌 그 무거운 천막을 짊어 진다는 것인 지....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체력이 천하장사 라는 것.

 

하는 짓도 얼굴에서 느껴지는 표정도 영락없는 애기라서 나는 도루치를 볼때 마다 피같이 아꼈던 초콜릿을 주었다.

아니 내 방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면 초콜릿을 안 줄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 내가 먹은 초콜릿은 사실 얼마 안되고 나머지는 애들과 도루치에게 다 주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도루치의 그 모습과 표정이 아른거려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 지....

당장 눈앞에 있다면 봉지채 초콜릿을 줄텐데 말이다. ㅠㅠ 

 

 

 

 

워낙에 말도 없고 우리들 앞에도 나타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서 존재감 조차 못 느꼈던 키친 보이- '락파' 다.

트래킹이 시작되고도 한 참이 지나서야 락파의 존재감을 느꼈고 그의 이름이 익숙해지는데도 가장 시간이 걸렸다.

다와파상과 함께 대장님께 최고의 성실성을 인정받은 키친보이 락파다.

 

 

 

 

너무나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살인 미소에 50이 넘은 이 나이에도 그만 넋 다운이 된 우리의 세르파-26살의 총바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여해 써밋까지 올랐던 등반 전문 세르파로서

로왈링에서부터 항상 뒤 처져 걸으시는 대장님과 앞서 가던 우리 둘 뿐만 아니라  훨씬 앞서가던 포터들까지 힘든 구간에서의 안전을 도우느라

그야말로 동분 서주했던 세르파다.

 

우리와 합류하기 직전에도 임자체(아일랜드 피크 6189m) 등반을 돕고 오느라 우리의 일정이 하루 더 늦춰지기도 했었다.

물론 그가 도왔던 임자체 등반은 폭설로 인해서 실패했다 한다.

우리가 렌조라 패스를 넘을때 부터 만났던 야르주와 딱 맞아 떨어지는 시기였으니까...

 

에베레스트 원정대 세르파를 하면서 동료 세르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난 뒤부터는 원정대 써밋 세르파는 그만두고, 일반인들의 피크 등반을 도우는

세르파로 일한다고 한다.

 

등반 세르파는 살이 찌면 절대 안된다고 고기류는 거의 먹지 않고 소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적지않게 놀랐다.

사실 아주 조금 먹는 모습을 처음 보고는 저걸 먹고 어찌 힘을 쓰겠나~ 했었기에. ㅎ~~

한국에 파견되어 일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다.   

 

 

 

 

콩마라 패스를 넘을 때 잠시 쉬던 팸파와 푸리의 모습이다.

역시 언제나 즐거운 천진난만한 푸리다.

 

 

 

포스가 작렬한 왕다...ㅎ~

사진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듯한....ㅋㅋ

이때는 보조 쿡에서 쿡으로 승진한 뒤의 모습으로 짐을 매지않고 자신의 배낭만을 맸다.

쿡은 상당히 지위가 높아서 학교 선생님 보다도 수입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로 자신의 짐 외에는 짐을 지지 않는다.

 

 

 

새벽에는 추쿵의 날씨가 그리 좋아 선명한 설산의 자태를 보여주더니만, 8시 즈음부터 몰려오던 구름에 완전 뒤덮인 추쿵...

급기야 꽁마라 패스에 들어섰을땐 진눈개비가 퍼 부어서 일정을 멈추고 이곳에서 캠프를 쳤다.

원래 목적지인 꽁마라 패디까지는 훨씬 못미친 이곳에 캠프를 치게되는 바람에 추쿵에서부터의 하루 천막 포터만 신바람이 났을게다.

 

 

 

해발 5535m의 콩마라 패스 정상에서....

우리를 마중나와 우리의 배낭을 매고 갈 락파와 다와파상과 함께.

 

 

 

내 배낭을 매고 칼라파타르에 함께 올랐던 쿡 왕다다.

검게 탄 얼굴과 때묻은 그의 푸르딩딩한 복장이 광할하고 장엄한 에베레스트 생추어리 앞에서 차라리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멋진 포즈의 파상...

 

 

 

사실 이들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광활한 히말라야를 걸어 오르는 모습을 보면 ....

그런 모습은 히말라야외에 전세계 어디서든 볼 수 없는 장면이므로 최고의 비경을 담듯 정신없이 달려들곤 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들도 무거운 짐을 진 힘든 모습이 아닌 자신들의 멋진 모습을 담고 싶어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이풀은 앞 다투며 이들의 멋진 모습을 담아주기 시작했다.

 

헤맑은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사진 찍는것을 좋아했다.

그리곤 자신들이 찍힌 카메라 액정의 모습을 보면서 두 손을 불끈 세우며 멋지다는 사인을 보였다.

우린 그렇게 30일 동안 거칠고 광활한 장엄한 히말라야를 걸으며 매 순간 한 식구 처럼 정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나를 마중나와 내 배낭을 매고 가던 도루치...

스틱까지 들고 있는 모습이 여지없는 히말라야를 찾아 온 여행자...히말라야의 순례자 같다. ㅎㅎ

 

 

 

 

쿰부 히말에서 남체 바자르 다음으로 큰 타메에 머무를 때다.

이층에 있던 우리 방 창으로 들어 온 재미난 풍광....

바로 박물장수였다.

우리식구들 파상과 다와파상, 도루치가 달려들어 뭘 하나라도 건져볼까... 뒤적이던 모습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이미니

애교스런 포즈를 취해주는 다와파상과 천사 처럼 환하게 웃는 파상이 더없이 즐거움을 주던 순간이었다.

 

 

 

 

이제는 모두의 얼굴에서 까맣다 못해 구리빛 반짝임까지 느끼게 하는 로왈링의 여정....

온통 하얀 빛깔에서 이들의 얼굴도 선그라스 마저도 더 검게 느껴진다.

해발 5600m고지 설산에서 이들의 쉼이 그 어떤 여정에서 보다도 자주 눈에 띈다.

 

 

 

 

 

이미 까맣게 타버린  얼굴에 뒤늦게 하얗게 썬크림을 바른 파상의 이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음이 터졌던 지....

사실 5750m의 험란한 여정... 타시랍차 패스의 로왈링에 들어서서는 모두들 그 긴장감으로 사고 없이 잘 오르기만을 생각했을 터였다.

더구나 그때의 상황이 어땠는가~

타시랍차 패스를 밤새 넘어온 일본 팀들의 포터 5명이 손가락,발가락 동상으로 그 부분을 자르러 황급히 카투만두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해발 5000m가 넘는 설산에서 우리 짐과 자신들의 짐까지 합하고 5~60%밖에 안되는 산소속에서 그 무게감은 30kg의 무게보다도 훨씬 더 무거워졌을 텐데,

작렬하는 태양이 눈에 반사되어 이글거리듯 타오르는 복사열은 또 얼마나 뜨거웠는가~

빈몸으로 올라도 숨이 턱까지 턱 턱 막혀오는 이 오르막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자니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단 며칠 사이에 모두의 얼굴은 흑인 처럼 새까맣게 타 버렸고, 작은 화상 마저 입기까지 했다.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힘든 로왈링의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여유를 찾고 발견했을 즈음..

이들이라고 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았을까!

비단 파상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마치 삐에로 처럼 하얗게 분칠하듯 썬크림을 바르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때....

안스러운 맘이 이는 한편 그제서야 찾아든 그들의 맘의 여유가 얼마나 또 다행스럽고도 우스웠는 지....

우린 박장대소 했다.

 

 

 

 

절벽아래서 우리들의 점심 만찬(야채를 듬뿍 가미한 네팔식 라면...ㅋ~)을 준비하고 있는 즐거운 푸리...

짖궃은 장난끼가 발동한 푸리는 대장님의 헬멧을 쓰고 요리를 했다.

아~ 그럼 이 모습을 또 카메라에 담아줘야지~

그래야  푸리의 장난끼가 먹혀들어 갔다고 더욱 즐거워 할것이 아닌가~

 

 

 

쿰부 히말의 기인 여정이 끝나고 로왈링으로 들어서자 우리가 익숙해 졌는 지...

마치 엄마인 양 재롱 마저 피는것 같다.

그런 모습이 또 더없이 귀엽다.

 

 

 

 

카메라를 들이밀자 저만치서 도루치가 얼음덩이를 들고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ㅋ~

얼른 달려가 푸리도 함께 한다.

 

 

 

 

 

해발고도 5600m...경사가 50도는 족히 되는(체감으로는 70도도 넘게 느껴졌던) ...이 곳을...

무거운 짐을 지고 이 눈밭을 올라야 했던, 포터들에게는 최악의 코스 중 하나였던 타시랍차 패디 오르는 길이다.

 

 

 

 

 

 

텡보에서 드디어 타시랍차 패스를 오르기 위해 들어선 골레가는 길....

하얀 눈밭에서 반사되는 복사열은 마치 사막을 걷고 있는 듯한 견디기 힘든 코스였다.

아! 그런데 총바는 쟈켓은 벌써 벗어 버리고 얇은 셔츠마저 가슴까지 걷어 부치고 눈밭에 앉아있다.

모자도 벗어 던졌다.

불과 몇시간 사이에 총바의 얼굴에서도 구리 빛 검은 반짝임이 보인다.

그래도 검게 탄 그의 모습이 멋지기만 하다.

우린 더워 죽을 거 같은데도 얼굴이 까맣게 타게 둘 수 없다고 모자에 수건까지 둘둘 말은 채 헉헉 거리며 오르고 있거늘....

아!! 젊음과 패기가 넘 멋지고 부럽군!!

 

 

 

 

 

대장님을 '할배'라고 부르면서 마치 자신의 할아버지인 양 편히 대하던 도루치...

대장님 팔에 안긴 모습이 영락없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이다.

 

 

 

햐아~ 멋진 총바...

역시 세르파는 확실히 포스가 느껴지는 구만~

 

 

 

 

 

 

로왈링의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젠 위험한 구간도 없고, 왕다와 총바는 내 앞을 휘익 지나쳐 날아가듯 사라졌다.

사라지기 직전에 한 컷....ㅎ~

 

왕다는 입술이 다 부르트고 얼굴도 반쪽이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어 패스를 넘을때 마다 힘들어 하셨던 대장님을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붙어 다니며 보필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날아서 롯지에 훨씬 일찍 도착해 식사 준비를 했고, 에베레스트BC와 칼라파타 오를땐 우리의 가이드로서 우리의 배낭을 지고

사진까지 찍어주며 1인 3역을 족히 해냈다.

어찌 입술이 부르트지 않을까.... 

왕다 역시 옷이 부실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도 역시 여정이 끝날 무렵 두툼한 패딩 쟈켓을 중고로 구입해서 입고 나타났다.

아이고~~ 이젠 더워서 입던 패딩도 벗어야 할 판인데...ㅋㅋ

 

 

 

 

내가 히말라야를 기억하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왕다, 총바,팸파, 텐진 쿵가, 파상,다와파상, 락파,푸리, 도루치....

모두 모두 너무나 그립고 보고싶다.

 

어쩌면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광보다도 30일간 이들과 함께 하며 애태우고, 반가워하고, 고마워하고, 서로 사랑하며 최소한의 것으로 최고로 지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그립고 내 가슴에 오래 남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 그럴것이다.

내가 이들 얘기를 꺼낼때 마다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에 눈물이 그렁 그렁 맺혀왔음을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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