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안네 소피 무터& 무터 비르투오지/6.14.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3. 6. 14. 00:30

  

 

멘델스존 현을 위한 8중주/듣기

http://blog.naver.com/miraxkim/10131259643

 

Mendelssohn, String Octet in Eb major

멘델스존 현악8중주

Felix Mendelssohn

1809-1847

펠릭스 멘델스존은 음악사상 모차르트 다음으로 유명한 신동이다. 비록 궁극적인 경지라는 면에서는 모차르트에게 견주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소년 시절까지의 재능과 성취는 모차르트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음악사에서 그만큼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긴 소년 작곡가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는 열두 살 무렵에 이미 능숙한 작곡 실력을 갖추고서 약 70곡의 작품을 써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 시절의 멘델스존.

그런 ‘소년 멘델스존’의 천재성을 대변하는 작품이 둘 있는데, 하나는 1826년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한 해 앞서 탄생한 <8중주 E♭장조>이다. 이 가운데 후자는 소나타 악장 형식을 기반으로 한 고전적인 실내악 양식을 온전히 체득한 16세 소년 작곡가의 조숙한 재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실내악 역사상 굴지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눈부신 작품이다.

조지 그로브 경이 ‘성숙기를 향한 경이적인 도약’이라고 평가한 이 <8중주>는 1825년 10월 15일 베를린에서 완성되었다. 그 해 3월에 멘델스존은 아버지와 함께 파리로 가서 7주 이상 머물렀는데, 거기서 그는 파리 음악원의 원장이었던 루이지 케루비니로부터 ‘천재 인증’을 받았다. 그의 앞에서 <f단조 4중주>를 연주하여 이례적인 칭찬을 받았던 것이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었던 케루비니는 호평에 인색한 것으로 유명했기에, 그의 찬사는 멘델스존이 음악가의 길을 걷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던 아버지 아브라함이 가슴에 품고 있던 노파심을 떨쳐주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바이마르에 들러 괴테를 만난 후 5월 말에 베를린으로 돌아왔고, 그 해 여름 멘델스존 일가는 라이프치히슈트라세 3번지에 새로 마련한 궁전 같은 저택으로 이사했다. 그로부터 몇 해 동안이 그들 가족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훗날 멘델스존의 누이 파니는 그 나날들이 ‘환상적인, 꿈결 같은 삶’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해 가을에 작곡된 <8중주>에 행복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교향곡을 지향한 야심작

소년 멘델스존은 이 곡을 쓰면서 선배 작곡가 루이 슈포어(Louis Spohr, 1784-1859)의 현악 8중주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슈포어가 두 개의 현악 4중주단을 안티폰(antiphon, 교창) 형태로 배치하여 그 대화와 경쟁을 통해서 음악을 진행시키는 ‘2중 현악 4중주’를 썼던 것과는 달리, 멘델스존은 보다 교향악적인 조직과 울림을 내세움으로써 실내악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이 8중주는 모든 악기에 의해 교향곡 스타일로 연주되어야 한다”라고 했으며, 자신이 표시한 강약 지시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준수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런 유의 곡들에서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수준보다 더 예리하게 강조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그처럼 장대한 스케일의 울림을 빚어내는 곡인데도 여덟 대의 악기가 각자 충분한 독립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시 주도권은 제1바이올린에 주어져 있지만, 앙상블 전체를 아우르는 기술적 완성도와 세부 처리의 교묘함, 그리고 확고한 밸런스는 소년 작곡가의 탁월한 역량에 다시금 감탄하게 만든다.

 

제1악장 : Allegro moderato ma con fuoco

이 경이로운 첫 악장에서 우리는 기백으로 충만한 천재소년의 확신에 찬 얼굴을 대하게 된다. 제1바이올린에서 나타나는 분산 3화음에 의한 제1주제와 부드러운 2도 진행을 바탕으로 한 제2주제가 이루어내는 절묘한 대비감, 그것들을 뒷받침하고 확장시키는 다채로운 리듬과 폭넓은 스케일, 그리고 장장 14분여에 걸친 장대한 악장 전체를 시원스럽게 관통하는 번뜩이는 영감과 왕성한 추진력은 그야말로 경탄스럽다.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와 풍부한 독창성이 최고 수준의 장인적 기교로 마무리된 ‘진정한 예술작품’이다.

제2악장 : Andante

사뭇 사색적인 표정을 띤 완서악장으로, 코렐리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기분이 가미되어 있다. 앞선 악장에서 혈기왕성한 청춘다운 활력과 생동감이 분출되었다면, 이 악장에서는 십대 소년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깊이 있는 감수성과 긴밀한 내적 흐름이 두드러진다.

제3악장 : Scherzo

유명한 g단조의 스케르초 악장으로, 멘델스존 고유의 서명이 각인된 전곡의 심장이라 할 만하다. 멘델스존의 누이 파니는 이 악장이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에 나오는 ‘발푸르기스의 밤’의 한 장면에서 얻은 영감에 기초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것은 ‘오베론과 타티아나의 금혼식’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장면으로, 멘델스존은 그 마지막 연을 음악으로 옮겼다고 누이에게 말했다고 한다. 3악장에 영감을 준 ‘오베론과 타티아나’.

흘러가는 구름과 자욱한 안개가

위로부터 걷히기 시작하는구나.

나뭇잎 사이에 이는 미풍과 갈대 사이로 부는 바람,

모든 것이 자취 없이 흩어졌구나.

제4악장 : Presto

이 강력한 피날레는 푸가토가 딸린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8성부 푸가로 출발하는 이 악장에서 소년 멘델스존은 스승 첼터에게서 받은 엄격한 대위법 수업의 견실한 성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으며, 헨델의 <메시아>에서 가져온 주제를 위시하여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융화시켰다. 또한 종결부에 등장하는 푸가토는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에 바치는 헌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술적 완성도, 강렬하고 복잡한 흐름에 대한 빈틈없는 장악력, 그리고 거침없이 연소되는 영감의 열기 등이 모두 실로 대단한 수준이다.

한편 멘델스존은 이 곡을 친구이자 자신의 바이올린 선생이었던 에두아르트 리츠에게 헌정했다. 이 곡이 완성된 이틀 뒤가 리츠의 스물세 번째 생일이었기 때문인데, 아마도 이 곡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제1바이올린의 비르투오소적인 모습은 그를 염두에 둔 것으로 짐작된다. 작품의 초연은 그 무렵의 비공개 모임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1832년에 이르러 소폭의 개정이 이루어졌고, 공개 초연은 1836년 1월 30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치러졌다.

String Octet in E flat, Op.20
Emerson String Quartet


전악장 이어 듣기

Vivaldi, Le Quattro Stagioni

(The Four Seasons)

비발디 '사계'

Antonio Vivaldi

1678-1741

Federico Agostini solo violin

I Musici orchestra

1988 Recording, Philips

 

비발디 '사계' 중 '봄'

Antonio Vivaldi

1678-1741

I Musici

1959

Complete

비발디의 <사계>(1~13번) 외에 Concerto No.5, RV253 'La Tempesta di Mare'(14~16번)와 Concerto No.6, RV180 'Il Piacere'(17~19번)가 덧붙여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클래식 명곡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는다면 아마도 비발디의 <사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휴대폰 벨소리로부터 대중가요의 전주에 이르기까지 <사계>의 멜로디는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지요. 과연 <사계>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이렇기 인기가 있는 걸까요?

 

비발디의 <사계>는 완전한 편성의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곡이 아니라 현악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작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음악지만 대편성 관현악 못지않은 풍성한 화음과 상큼한 선율로 우리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또 쳄발로라 부르는 옛 건반악기의 챙챙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이 곡을 듣는 재미 중 하나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계>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사계절의 변화를 그려낸 탁월한 묘사 능력이겠지요. 작곡가 비발디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으로도 아주 멋지게 그려냅니다. 비발디가 <사계>에서 표현해낸 새소리와 천둥소리,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계절의 느낌을 떠올리다보면 음악을 듣는 재미가 몇 배로 늘어납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

 

아래 유투브 영상은 위 플레이리스트 음악 영상입니다. 비발디의 ‘사계’에 맞추어 베네치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하네요. 안톤 판 문스터(Anton van Munster)라는 감독의 작품입니다.

 

비발디는 <사계>의 악보를 출판할 당시 각 계절마다 14행시로 이루어진 소네트를 붙였습니다. 이 소네트의 작가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구에 베네치아의 방언이 사용된 점이나 비발디의 편지에 자주 나타나는 베네치아 식 철자법이 사용된 것을 보면 비발디 자신이 이 시를 직접 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바쿠스의 술’과 같이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구절로 보아 이 시를 기존의 문학작품에서 따왔을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유명한 명곡에 시를 붙인 작가가 누구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요.

 

<사계> 악보엔 이름 모를 시인의 소네트뿐 아니라 악보 군데군데에 비발디가 쓴 몇 가지 해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펼쳐놓고 악보를 따라가며 음악을 듣다보면 비발디의 재치 있는 메모를 발견하게 되는 기쁨도 있지요. 이를테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묘사한 악구에 ‘주정뱅이’란 말을 적어놓는 식이지요. <사계>를 들어보면 음악으로 표현된 계절의 변화가 무척 인간 중심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봄과 가을은 인간에게 안락함을 주는 계절로, 여름과 겨울은 인간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계절로 그려집니다.

 

다음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악장 해설에 붙인 곡의 연주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Janine Jansen solo violin

Candida Thompson violin / Henk Rubingh violin

Julian Rachlin viola / Maarten Jansen cello

Stacey Watton double bass / Elizabeth Kenny theorbo

Jan Jansen harpsichord

 

(La Primavera)

Concerto No.1 in E major, RV269 'La Primavera'

1악장 : 봄이 왔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한다. 그때 시냇물은 살랑거리는 미풍에 상냥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봄을 알린다. 폭풍우가 가라앉은 뒤, 새들은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봄’을 여는 1악장에서 경쾌한 합주가 울려 퍼지면 세 대의 바이올린으로 묘사되는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명랑해서 이 작품이 봄의 상쾌함을 나타낸 음악이란 설명을 굳이 덧붙이지 않더라도 음악 자체만으로도 봄의 활기를 전해줍니다. 겨울 동안 얼어 있던 시냇물이 녹으면서 마치 중얼거리듯 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변덕스런 봄날답게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는 소리도 들려오지요.

 

2악장 : 여기 꽃들이 만발한 즐거운 목장에서는 나뭇잎들이 달콤하게 속삭이고 양치기는 충실한 개를 곁에 두고 잠들어 있다.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나타낸 2악장에선 춘곤증을 이기지 못한 양치기가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그때 양치기의 옆을 지키고 있는 충실한 개가 ‘멍멍’ 하고 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비발디는 개 짖는 소리는 비올라의 짧고 강한 음향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소리는 마치 타악기 소리 같기도 합니다. 비올라로 개 짖는 소리를 표현한 비발디의 재치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3악장 : 님프들과 양치기들은 전원풍 무곡의 명랑한 백파이프 소리에 맞추어 눈부시게 단장한 봄에 단란한 지붕 아래서 춤추고 있다.

3악장은 봄을 찬양하는 전원무곡입니다.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꽃이 핀 봄의 들녘에서 님프들과 양치기들이 서로 손을 잡고 즐겁게 춤추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름 (L'Estate)

Concerto No.2 in G minor, RV315 'L'Estate'

1악장 : 이 무더운 계절에는 타는 태양도 사람도 가축의 무리도 활기를 잃고 있다. 들조차 덥다.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다. 산비둘기와 방울새가 노래한다. 산들바람이 상냥하게 분다. 그러나 갑작스런 북풍이 싸움을 걸어온다. 양치기는 갑자기 비를 두려워하면서 불운에 떨며 눈물을 흘린다.

거친 폭풍과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여름’을 들어보면 음악이 너무 거칠고 과격해서 비발디가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여름’은 바이올리니스트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여 연주효과가 아주 뛰어난 곡이기도 하지요.

 

1악장 시작 부분을 들어보면 ‘봄’과는 대조적입니다. 너무 더워서 힘이 다 빠져버린 듯 음악도 더위에 지친 것 같지요. 새 울음소리도 어쩐지 분노에 차 있는 듯합니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독주 바이올린의 연주로 표현되는데, 더워서 그런지 불안한 느낌을 주는군요. 빠르게 연주되는 음 중에서 반복되는 음을 제외하고 음높이가 달라지는 부분만 잘 들어보면 ‘뻐꾹’ 소리가 들릴 겁니다.

 

2악장 : 번개, 격렬한 천둥소리, 그리고 큰 파리와 작은 파리. 광란하는 파리 떼의 위협을 받은 그는 피로한 몸을 쉴 수도 없다.

2악장도 역시 더위에 지친 여름을 잘 보여주는 음악입니다. 비발디는 아주 재미있게도 파리가 욍욍거리며 잠을 방해하는 부분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했어요. 독주 바이올린이 여름날 꾸벅꾸벅 조는 주인공의 모습을 가냘픈 선율로 연주하는 동안 이를 반주하는 바이올린들이 파리가 귀찮게 하는 소리를 가벼운 리듬으로 들려줍니다. 잠시 후 비올라와 첼로, 더블베이스가 멀리서 천둥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려주지요.

 

3악장 : 아아, 그의 두려움을 얼마나 옳았던가. 하늘은 천둥을 울리고 번개를 비치고 우박을 내리게 하여 익은 열매나 곡물을 모두 쓸어버린다.

격정적인 3악장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여름의 잔인성을 보여줍니다. <사계> 중에서 가장 격렬하면서도 멋진 음악입니다.

 

가을 (L'Autunno)

Concerto No.3 in F major, RV293 'L'Autunno'

1악장 :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복된 수확의 즐거움을 축하한다. 바쿠스의 술 덕택으로 떠들어댄다. 그들의 즐거움은 잠으로 끝난다.

‘가을’에서는 ‘여름’을 지배하고 있던 자연과의 투쟁이 사라지고 다시 유쾌하고 즐거운 축제 분위기로 바뀝니다. 1악장에선 마을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가을축제를 벌입니다.

 

풍요로운 가을의 축복에 취해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린 ‘주정뱅이’도 등장해 흥미롭습니다. 주정뱅이를 묘사한 부분을 들어보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실감납니다.

 

2악장 : 일동이 춤을 그치고 노래도 그친 뒤에는 조용한 공기가 싱그럽다. 이 계절은 달콤한 잠으로 사람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2악장에 이르면 1악장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던 주정뱅이들이 만취한 상태로 곤한 잠에 빠집니다. 비발디는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을 약음기를 낀 현악기의 꿈결 같은 소리로 표현해냈습니다. 소리를 약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약음기를 낀 탓인지 현악의 음색은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쳄발로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려옵니다.

 

3악장 : 새벽에 사냥꾼들은 뿔피리와 총, 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선다. 짐승은 이미 겁을 먹고 총과 개들의 소리에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를 입어 떨고 있다. 도망칠 힘조차 다하여 궁지에 몰리다가 끝내 죽는다.

3악장이 시작되면 먼저 경쾌한 사냥 음악이 3박자의 경쾌한 음악으로 펼쳐집니다. 이윽고 실감나는 사냥 장면이 음악으로 묘사됩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동물들의 긴박한 음악을 연주하면 응답하는 현악기들은 총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냅니다.

 

겨울 (L'Inverno)

Concerto No.4 in F minor, RV297 'L'Inverno'

1악장 : 차가운 눈 속에서 얼어붙어 떨고, 격심하게 부는 무서운 바람에 쉴 새 없이 발을 구르고 달린다. 너무 심한 추위에 이가 덜덜 떨린다.

‘겨울’에서 자연은 또다시 무섭고 차갑게 표현됩니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짧은 음표들은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지요. 중간에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달리는 모습도 실감나는 음악으로 효과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악장 : 불 곁에서 조용하고 만족스런 나날을 보내는 동안 밖에서는 비가 만물을 적신다.

자연의 잔인성으로 일관하는 ‘여름’과는 달리 ‘겨울’에는 추운 겨울 따뜻한 방안에서 불을 쬐며 느끼는 만족감을 표현한 음악도 있습니다. ‘겨울’ 2악장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바로 그것이지요. 대중가요에 인용되어 더 익숙한 이 멜로디는 아주 편안하고 유쾌한 느낌을 줍니다.

 

3악장 : 얼음 위를 걷는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느린 걸음으로 주의 깊게 발을 내딛는다. 난폭하게 걷다가 미끄러져 아래로 쓰러진다. 다시 얼음 위를 걸어, 격렬하게 달린다. 이것이 겨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겨울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3악장은 사람들이 조심스레 빙판길을 걷는 모습을 담은 짧은 음표들로 시작합니다. 이윽고 발을 헛디뎌 빙판 위로 미끄러지는 모습도 재미나게 표현되지요. 하지만 어디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남풍의 선율이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듯합니다. 남풍의 주제는 <사계> 전체의 결론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합니다.

 

비발디는 ‘겨울’ 에 정겨운 남풍의 선율을 넣어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 순환하는 계절의 자연스런 흐름을 표현하려 했는지도 모르지요. ‘겨울’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사나운 겨울의 북풍으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따스한 남풍의 선율로 봄의 희망과 계절의 순환을 강하게 암시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