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2013 교향악축제 - 울산시립교향악단/김홍재지휘,다니엘 리 협연/4.1.월/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3. 3. 31. 18:58

 

2013 교향악축제 - 울산시립교향악단


 

 

 

[프로그램]
 
베르디 _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
G. Verdi _ Opera < La forza del destino > Overture
드보르작 _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A. Dvorak _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프로코피예프 _ 로미오와 줄리엣 Op.64 (하이라이트)
S. Prokofiev _ Romeo and Juliet, Op.64 (Highlights) (Excerpts from Suite Nos. 1 and 2)
 
[출연자]
 
지휘 김홍재 _ Kim Hong jae, Conductor

지휘자 김홍재
재일 한국인 지휘자 김홍재는 일본 도호음대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 모리 타다시에게 사사하여, 대학시절에 이미 도쿄시티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1978년에 도쿄시티필하모닉의 특별연주회로 프로에 데뷔하였다. 다음해 도쿄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입상과 지휘자 최고의 영예인 <사이토상> 을 동시 수상하며 일본 음악계에 화제인물로 각인되었고. 신일본필하모닉과 요미우리교향악단 전속 지휘자로 활동하며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그 명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31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 최고의 수준을 과시하고 있는 나고야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고, 33세 때 교토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를 지내며 일본 최고의 지휘자 반열에 올랐다.
 
독일 유학에서는 재독 작곡가 윤이상에게 사사를 하여 일본 귀국과 동시에 윤이상의 교향곡 제2번과 제3번 등 수많은 관현악 작품을 일본의 오케스트라들을 통해 성공적인 초연을 거두어 내었고, 1998년 나가노 동계 장애인올림픽에서 개막식을 지휘하는 등, 이러한 그의 지휘 활동은 차세대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우수한 지휘자가 수여받는 와타나베상을 받으면서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클래식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펼쳐오고 있는 지휘자 김홍재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부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의 음악을 작곡한 영화음악감독 히사이시 조로부터 직접 부탁받아 지휘함으로써 영화음악 지휘자로서도 명성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남북한을 아우르는 노래와 음악 그리고 국악 관현악곡 등 우리의 민족음악에도 깊은 호소력을 표현해 내며 남다른 감동과 함께 청중을 압도시키는 지휘자로 평가받아 2006년과 2007년 두 해 동안 국립국악 관현악단과 함께 <겨레의 노래뎐>을 지휘하며 하나 된 조국을 향한 염원을 표현해 내었고, 2007년 또다시 국가브랜드 연주회를 러시아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지휘해 냄으로써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겨레의 지휘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김홍재의 고국 첫 방문은 2000년 ASEM 개최 축하를 위한 세계적인 연주가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KBS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되면서부터였고, 이듬해 2001년에는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코리안 심포니와 함께 <가면무도회>를 지휘, 2004년에는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 윤이상의 오페라 <영혼의 사랑>을 지휘하는 등 수 차례 한국 초청방문을 통한 유수의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어 언론을 비롯한 평론가와 한국 음악 팬들에게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이제, 50여 년 간의 무국적 조선인에서 2005년 대한민국의 국적 취득과 함께 꿈에 그리던 조국의 오케스트라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대한민국 음악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첼로 다니엘 리 _ Daniel, Cellist

첼로 다니엘 리
세기를 대표하는 연주자로 인정을 받으며 전세계를 무대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첼리스트 다니엘 리(Daniel Lee)의 시애틀 베나로야 홀 리사이틀에 대해 시애틀 타임즈는 "다니엘은 음악과 테크닉의 완벽한 조화를 갖춘 한세기를 놀라게 하고 있는 연주자다" 라고 극찬한 바 있다. 미국 시애틀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6세에 리차드 애론(Richard Aaron)의 사사 아래 첼로 연주를 시작하였다. 11세에는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Curtis Institute of Music)에서 전설적인 거장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의 총애를 받으며 가장 어린 마지막 애제자가 되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내가 15살이 되어서야 연주했던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변주곡을 11살의 다니엘이 더 훌륭하게 연주했다." 라고 했고 이는 아직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커티스 음악원 재학 동안, 다니엘은 올란도콜, 윌리엄 프리스, 피터 와일리에게도 가르침을 받았으며, 14세의 나이에 세계적 레코드사인 데카(Decca Record)와의 독점 레코딩 계약을 하였고, 슈베르트와 브람스로 두 장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클리브랜드 현악사중주단의 폴 캣츠와의 사사와 함께 계속되었고 최고연주자과정으로 졸업을 하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상인 난파상을 수상한 그는 21세에 미국 클래식의 최고 권위의 에버리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시애틀 심포니, 볼티모어 심포니, 신시내티 심포니 등 굴지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무대로 미국무대에서 솔리스트로서 당당히 자리매김 하였고 미국은 물론 일본, 한국에서 수많은 리사이틀을 개최하였다. 2005년부터 미국 역사의 상징인 세인트루이스 심포니의 첼로수석으로 임명되어 오케스트라의 리더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수석인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시즌 개막연주의 협연자로 지목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2011년 세인트루이스 비지니스 저널에서 "40대 미만 40인의 영향력 있는 유명인"(40 under 40)의 한 명으로 선정된 그는 같은 해 체코 필하모닉과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변주곡을 녹음하였고 한국 소니 클래식을 통해 음반이 발매 되었다. 2012년 세인트루이스와의 드보르작 첼로협주곡은 수많은 언론의 호평과 함께 미공영방송(PBS)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이 되었다.
 
울산시립교향악단 _ Ulsan Symphony Orchestra

울산시립교향악단
울산시립교향악단은 지역 문화 발전과 문화예술 창달을 위해 1990년에 창단되었다. 산업도시 울산을 문화와 예술이 함께 하는 도시로 만들어 나가는데 선두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울산시향은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시민들이 보다 윤택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매년 10여회의 정기연주회를 비롯하여, 미술과 음악의 새로운 만남으로 기획된 교양프로그램 화음(畵音)시리즈와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음악적 소양을 고취시킬 수 있는 특별기획프로그램으로 청소년 음악회, 어린이 콘서트, 오페라, 해설이 있는 발레이야기, 문화 소외지역과 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예술단 프로그램 등 다양한 레퍼토리와 새로운 시도로 지역주민들의 문화 향유에 이바지해 왔다. 또한 1992년부터 참가하고 있는 전국 교향악축제와 2010년 통영국제음악제 참가 등을 통해 한국에서 손꼽히는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인정받고 있다.
 
울산시향은 초대지휘자 한병함을 시작으로 제2대 신현석, 제3대 강수일 상임지휘자를 두루 거치면서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어 왔다. 1996년에 제4대 박성완 지휘자를 맞이하여 기존의 2관 편성에서 3관 편성으로 확대 편성하며, 한층 더 다양하고 양.질적으로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제5대 유종 상임지휘자 영입과 함께 활발한 대외 연주활동을 펼쳤다. 서울 예술의전당 초청 연주회 등 다양한 초청기획연주를 통해 울산시향의 음악적 명성을 확인하였다. 제6대 장윤성 지휘자와는 전국 교향악축제의 개막 축하 공연에 초대되어 울산시향의 위상을 높였다. 제100회의 정기연주회를 맞이하였던 제7대 이대욱 상임지휘자는 세계적인 피아노계의 거장 레온 플라이셔와 음악적 조우를 나누며 국내외 음악계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미 뛰어난 음악성과 연주력을 갖춘 오케스트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울산시립교향악단은 2007년 11월 제8대 지휘자로 세계적 명성의 재일 한국인 김홍재를 상임지휘자로 영입하여, 현재 한층 더 높은 수준의 국내 최정상급 교향악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2012년 6월에는 미국 포틀랜드와 캐나다 밴쿠버 해외연주에서 높은 수준의 연주력을 과시, 기립박수를 이끌어내며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으며, 이제 세계 속의 교향악단으로 거듭나고 있다.

 

베르디 / 운명의 힘 서곡

 

 

드보르작 / 첼로 협주곡 B단조 Op.47 - 피에르 프르니에(첼로)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듣기

http://blog.naver.com/yashicakid/40136290486

 

 

Opera 'Romeo & Juliet' (Romeo et Juliette 로미오와 줄리엣)

작곡 : Charles-Fran?ois Gounod 샤를 프랑스와 구노

 

W. 셰익스피어의 희곡 예술의 〈로미오와 줄리엣〉(1594~95)으로 가장 유명하다. 두 남녀주인공의 집안인 몬터규가(家)와 캐풀렛가는 화해할 수 없는 원수관계였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불행한 연인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공감을 얻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이 희곡을 쓰는 데 사용한 주요자료는 영국의 시인 아서 브룩이 쓴 서술체 장편시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극적 이야기 The Tragicall Historye of Romeus and Juliet〉(1562)이다. 브룩은 이탈리아의 작가 마테오 반델로(1485~1561)가 쓴 이야기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토대로 이 시를 썼다. 셰익스피어는 배경을 7월의 베로나로 삼았다. 캐풀렛가의 줄리엣과 몬터규가의 로미오는 캐풀렛가의 가면무도회에서 만나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로미오는 그녀 방의 발코니로 찾아가 서로 사랑을 고백한다. 두 귀족가문은 원수지간이므로, 그들은 로런스 신부의 주선으로 비밀결혼을 한다. 그러나 캐풀렛가의 티벌트가 말다툼 끝에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를 죽였고, 로미오는 티벌트를 죽였기 때문에 만토바로 추방된다. 한편 줄리엣의 아버지가 패리스 백작과의 결혼을 강요하자 그녀는 로런스 신부와 상의한다. 신부는 사람을 죽은 듯이 보이게 만드는 비약(秘藥)을 그녀에게 주고 그것을 마시면 로미오가 구출하도록 하겠다고 제안한다. 줄리엣은 그 제안을 실행에 옮긴다. 이 계획을 모르는 로미오는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로나로 돌아온다. 그는 패리스를 죽이고 지하무덤에서 줄리엣을 발견하고 최후의 키스를 한 후 음독자살한다. 줄리엣은 깨어나서 죽은 로미오를 발견하고 자살하게 된다. 그뒤 두 가문은 모든 것을 알게 되고 화해한다.

이 이야기는 합창교향곡(엑토르 베를리오즈, 1839), 오페라(샤를 구노, 1867), 오케스트라 전주곡(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1869, 1870, 1880), 발레(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1935~36), 영화(1908, 1936, 1954, 1968) 등 많은 작품으로 재구성되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로미오와 줄리엣은 벤다를 필두로 달라이라크, 칭가렐리, 바카이, 벨리니, 마르케티, 구노, 찬도나이, 주터마이스터, 블라허 등이 오페라로 작곡하였으며, 또 뉴욕의 유대인 집안과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민 온 흑인 집안 사이의 비련으로 각색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를 번안한 것이다.
또한 오페라 외에도 많은 관현악곡들도 있다. 베를리오즈의 장대한 <극적 교향곡>이 있는가 하면, 차이코프스키의 <환상 서곡>이 있고, 프로코피에프의 <낭만 발레>도 있다.
그러나 이 많은 <로미오와 줄리엣>들 중에서도 단연 정상의 자리에 있는 최고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바로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구노의 오페라에 이어서 많이 공연되는 것은 이탈리아의 작곡가 벨리니가 쓴 <카풀레티 가와 몬테키 가> 정도일 것이다.

샤를 프랑소와 구노(1818-1893)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로서, 그가 남긴 몇 개의 오페라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명한 <파우스트>와 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섬세함과 우아함은 귀족스러운 품격을 가지고 있으며, 듣는 이를 감동시키는 비장미(悲壯美)까지 갖춘 놓칠 수 없는 수작(秀作)이다. 흔히 듣는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달리 우아하고 매혹적인 선율과 독특하게 환상적인 분위기 그리고 아련하게 피어나는 관현악의 세련된 기법 등은 상당히 뛰어나고 인상적이다.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두에 나오는 유명하고 경쾌한 아리에타 <꿈속에 살고 파라>에서부터 가득히 느껴지는 발랄함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자신들도 모르게 비장함과 중후함 속으로 이끌어가며 변화시킨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두 남녀 주인공의 노래와 연기가 아주 중요하다. 단 두 사람이 나오는 대목만 떼어서 듣는다 하여도 내용과 음악의 손상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 오페라에서 두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체 5막 중에서 각 막에서 각각 한 번씩을 만나가 되니, 도합 다섯 번을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들 중에서 네 번의 아름답고 훌륭한 2중창을 부르는 것이다.
이 네 곡의 2중창들이야말로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백미(白眉)이자 오페라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대목들이다. 처음 음반으로 이 오페라를 감상한다면, 이 2중창 대목들만 들어도 될 정도다.

첫 번째 만남(제1막)이 두 젊은 남녀가 처음 만나는 ‘무도회 장면'/'무도회에서의 만남'으로서, 세련되고 조용한 마드리갈로 진행되는 음악은 지극히 조심스럽고 부드럽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도 모르는 채 무도회 한 쪽에서 눈에 띄어 멀리서 들려오는 마드리갈에 맞추어 만난다. 둘의 마음속에서는 꺼트릴 수 없는 사랑의 불꽃이 불붙는다.
두 번째(제2막)는 무도회가 끝난 그날 밤 줄리엣의 창문 앞에서 벌어지는 ‘발코니 장면’이다. 줄리엣이 원수 집안의 딸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녀를 잊지 못하여 방문 앞으로 찾아간 로미오는 발코니에 나온 줄리엣과 조우한다. 두 남녀는 여기에서 이미 평생을 함께 할 부부가 될 약속을 한다. 이 대목의 음악은 참으로 극적이고 열정적이다.
세 번째 장면(4막)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두 연인이 자기들끼리 몰래 첫날밤을 치른 직후다. 줄리엣의 방에서 함께 잔 두 사람은 이제 새벽이 다가와서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 흔히 ‘신혼의 장면’/'첫날밤 장면'으로 부르는 이 2중창은 이 오페라 중 최고로 아름답고 격정적인 2중창이다. 노래하는 두 남녀의 심정은 눈물 없이는 듣기 어려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슴을 때린다.
마지막(제5막)은 오페라의 피날레로서, 줄리엣이 진짜로 죽은 것으로 알고 로미오가 무덤으로 찾아간다. 원작에서 두 사람은 여기서 엇갈리며 죽지만, 구노는 불쌍한 두 연인이 몇 분 만이라도 함께 노래하게 만들어 준다. 두 남녀는 ‘피날레 장면’/'최후의 장면' 에서 함께 짧은 2중창을 부른다. 둘은 숨을 거두면서도 안타깝게 서로의 마지막 키스를 갈구한다. 이 대목은 보는 사람의 심장을 칼로 도려낸다.

          

 

때 : 14세기

곳 : 베로나

초연 : 1867. 4. 27. 파리의 라릭극장

 

등장인물

 

로미오(몬타규의 아들(T))·줄리에트(캐플레트 딸(S))·티발(캐플레트의 조카T))·제르트루드(줄리에트의 유모(MS))·벤볼리오(로미오의 집 하인(T))·머큐시오(로미오의 친구(Br))·스테파노(로미오의 하인(S))·캐플레트(귀족(B))·그밖에 파리스·그레고리오·로렌스 신부·손님들·친척들 등

 

배경 - 『로미오와 줄리에트』를 제재로 작곡한 사람 중에는 벨리니·차이코프스키 등 여러 작곡가가 있지만, 특히 구노의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잘 살렸다는 것으로 인정되어 1867년 파리에서 초연을 한 후 90회 이상의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구노의 작품의 『파우스트』가 이것보다 더 나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곡 - 프롤로그

 

오케스트라의 서곡의 흐르면 셰익스피어의 프롤로그 내용을 합창으로 설명해 준다. 즉 몬타규 가와 캐플레트 양가의 대대로 내려오는 싸움은 끈나지 않고 서로 적대시 하는 두 집안의 나이 어린 숙명적인 두 애인의 비운을 설명한다.

 

제1막 캐플레트 가의 무도회장 

 

줄리에트의 생일을 축하하는 무도회장에서는 가면을 쓴 손님들의 춤과 함께 음악이 흥겹게 연주되고 있다. 줄리에트의 사촌 오빠 티발이 줄리에트에게 청혼한 파리스를 대동하고 나타나 대화를 나눈다. 캐플레트가 그의 딸 줄리에트를 이끌고 손님들 앞에 나와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손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딸의 앞날을 축복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몬타규 집안의 아들 로미오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등장한다. 친구 중 머큐시오가 여기서 한번 이 집 사람들과 대결해 보자고 말하지만, 로미오가 만류하자, 그는 괴로움을 주는 「꿈의 여왕」이란 노래를 부른다. 한편 로미오가 줄리에트의 아름다움에 황홀해하고 있을 때, 줄리에트의 유모는 신랑감인 파리스를 칭찬하지만 줄리에트는 못들은 척하며 「나를 황홀하게 하는 꿈속에 살고파」라는 아리엣타를 부른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로미오는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을 고백을 하자, 줄리에트 또한 호감을 표시하며 2중창을 부른다. 이때 티발이 나타나 가면을 쓴 로미오의 목소리를 알아내고 복수할 것을 다짐하고 나간다. 첫 눈에 사랑을 느낀 줄리에트는 "우리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죽음의 무덤이 결혼의 침대가 될 것이다."고 말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의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 피로연으로 안내한다.

 

제2막(1장) 줄리에트 방 밖

 

달빛이 교교한 정원 옆으로 줄리에즈의 방이 보인다. 여기에 로미오가 나타나 "밤이여, 나를 잘 보호해 주오."라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머큐시오가 로미오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다. 로미오는 줄리에트 방의 높은 창문을 쳐다 보며 「그대의 사랑은 나를 괴롭힌다」라는 레시타티브로 시작해서 「태양아 솟아라」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마침내 줄리에트 나타나 원수의 이름을 버리지 못하겠거든 돌아가라고 하지만 두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다짐한다. 이대 하인들이 나타나 "몬타큐 집 사람들이 보였는데....."하면서 찾아 다닌다. 유모는 그들에게 잘 감시하라고 하면서, 줄리에트에게도 밤이 깊었으므로 빨리 들어가 자라고 말하며 사라진다. 숨었던 로미오가 다시 나와 서로 사랑을 이야기한 후, "헤어짐이란 달콤한 괴로움"이라는 극적인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2장: 로렌스 신부의 지하실(새벽)  

 

로미오가 찾아온 것을 본 로렌스 신부는 또 사랑의 고민이 있느냐고 하며 "아직도 로잘린과의 사랑이 계속되고 있는가?"하고 묻는다. 이 말에 로미오는 고개를 자우로 흔들며 줄리에트의 이름을 댄다. 잠시 후 유모와 함께 온 줄리에트를 본 로미오는 기뻐하며 자기들의 결혼을 이루게 해달라고 당부한다. 그리하여 로렌스 신부는 이들의 결혼이 두 집안의 오랜 싸움을 화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하여 식을 거행한다.

 

3장: 캐플페트 집 앞 거리  

 

어젯밤부터 보이지 않는 주인 로미오를 찾으러 다니던 하인 스테파노는 "아직도 원수 집앞에서 꾸물거리시오"하며, 산비둘기가 독수리의 집에 있다고 비유하는 노래를 부른다(구노는 원작에 없는 하인을 여자로 등장시켰다). 줄리에트의 집에서 뛰쳐 나온 하인들 중 그레고리오 두목과 스테파노가 결투를 벌이게 된다. 이때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가 나타나 남자답게 싸우라고 그레고리오에게 충고하는데, 이어 줄리에트의 사촌오빠 티발이 나타나 엉뚱하게도 티발과 머큐시오에게로 싸움이 연결지며 불행하게도 머큐시오에게 티발이 살해된다. 뒤이어 나타난 로미오는 분개하여 티발을 찔러 넘어 뜨리는데, 캐플레트가 그곳에 뛰어 나오자 그에게 복수해 달라고 부탁하며 숨진다.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로미오는 영주로부터 국외로 추방하라는 명령을 받고 양가의 화해를 서약하라는 분부를 받지만, 캐플레트 집의 사람들은 원수 갚을 것을 더욱 굳게 다짐한다.

 

제3막(1장) 줄리에트의 방

 

로미오의 위험을 무릅쓰고 줄리에트를 찾아온다. 그들은 첫사랑의 그날을 회상하며 사랑의 2중창을 부른다. 그리하여 서로 포옹한 채 새벽까지 사랑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 후, 헤어지기 싫은 괴로움을 안고 억지로 이별한다. 얼마 후 아버지가 찾아와 줄리에트에게 파리스 백작과 결혼하기로 했다고 전하면서 나간다. 그리하여 줄리에트는 아버지와 같이 왔던 신부에게 도와 달라고 애원하자, 신부는 "죽음도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겠는가?"하고 물으며, 잠자는 약을 먹여 죽은 것 같이 하고 있는 동안 로미오를 데려놔 줄터이니 깨어나는대로 곧 둘이서 도망치라고 이르고 나간다. 다시 들어온 아버지가 파리스 백작과의 기쁜 결합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할 때, 줄리에트는 약기운으로 혼몽해지며 쓰러진다.

 

2장: 줄리에트의 무덤  

 

로렌스 신부의 전갈을 받고 뛰어 온 로미오는 잠자는 줄리에트가 정말로 죽은 것으로 알고 가지고 온 독약을 마신다. 몽롱해지는 로미오의 눈 앞에 다시 깨어나는 줄리에트의 자태! 로미오를 본 줄리에트의 기쁨의 환성을 울리며 영원한 결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사랑의 주님! 이 두사람에게 축복을 내리소소(Dieudo bonte !)」를 노래한다. 점점 정신을 잃어가는 로미오와 지난날 주고 받던 "밤 꾀꼬리"라는 대화 한 토막을 되풀이하던 줄리에트는 운명하는 그에게 마지막 키스를 하고, 마실 약이 없자 품었던 칼로 자결하며 신에게 용서를 비는데 막이 내린다.

 

Ange Adorable 고귀한 천사 (Act 1)


로미오:
고귀한 천사,
감히 손을 대어 내 불결한 손은 죄를 범하려 하는구나.
아무도 접근할 권리가 없다 여겨지는 이 성스러운 손, 
지금 내가 할것은 고해성사라 생각되나 그것은 가치 없는
나의 손자국을 입맞춤으로 지우는 것이리라.

줄리엣:
그대여 불안을 진정하시라.
사랑으로라면 성자들도 무릅 꿇는 순례자의 억센 손잡음를
용서한다지만,
(그녀의 손을 빼며)
하지만, 입술을 만지는 그 손의 키스로 청하는 황홀한
애무는 조심스럽게 거절해야만 하리라.
  
로미오:
그렇지만 성자들의 장미 빛 입술은....

줄리엣:
단지 기도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오.

로미오:
그래도 그들은 자비의 선포로 들려지는 음성은 듣지 않는가요?

줄리엣:
사랑의 기도를 허락한다 하여도 그것이 그들의 가슴은
움직이지는 않는다오.

로미오:
그렇다면 나의 이 기도를 허락하고 그대의 빨개진 얼굴을
움직이지 않도록 하오.
(로미오, 줄리엣의 손에 키스한다)

줄리엣:
(미소하며)
어쩌는 수가 없도다!
내 스스로가 죄를 범하였구나!

로미오:
그대의 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 죄를 내게 되 돌려 주시려오?

줄리엣:
아니오, 내가 이미 받은 것이라오, 내게 남겨 두세요.

로미오:
그대가 내게서 가져간 것, 그 죄를 내게 돌려 주오.  

Placido Domingo / Ruth Ann Swenson

 

Ah! Je Veux Vivre Dans Ce Reve 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 (Act 1)

 

화려함을 극대화 하여 소프라노의 기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리아,

일명 '줄리엣 왈츠'라 불리는 경쾌한 아리아 "꿈 속에 살고 싶어라".

  

아!

나는 살고파라

나를 취하게 만든 이 꿈속에서

오늘도 또한,

달콤한 불길이여,

나는 당신을 나의 영혼안에 간직하네

마치 하나의 보석처럼! 

이 취기

젊음은

단지, 아아, 하루만 지속되네!

그리고 때가 오리라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때가,

마음이 사랑에 양보하네,

그리고 행복은 달아나네 돌아오지 않고.

 

나는 살고파라,

우울한 겨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놔두오 내가 잠자도록

그리고 냄새를 맡네 한송이 장미를

꽃잎을 따기 전에

 

아!

달콤한 불길이여,

머물러라 나의 영혼안에

마치 한 달콤한 보석처럼

오래오래!

 

Diana Damrau



Nino Machaidze, Je veux  MachaidzeVivre, Salzburg 2 August 2008

Nino Machaidze, Je veux  MachaidzeVivre, Salzburg 2 August 2008



Sop. 박지현 - 루치아노 파바로티 서거 3주년 기념음악회에서

 

Anna Netrebko  

 

Maria Callas 

 

Charles-Fran?ois Gounod 샤를 프랑스와 구노 (1818.6.17~1893.10.18)

 

구노는 파리에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제도공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어머니가 구노의 첫번재 피아노 선생이었다. 어머니의 지도 밑에서 구노는 첫 번째로 그의 음악적 재능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어머니에게서 초보의 문학·미술·음악을 배운 구노는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서 작곡가인 알레비에게서 사사했다. 그는 1839년 그의 칸타타인 《페르디난드》(Ferdinand)로 로마 대상을 수상하였다. 구노는 그 결과로 이탈리아로 가서 작곡가,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을 공부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옛 종교 음악을 연구하였으며, 독일·오스트리아를 거쳐 파리로 되돌아왔다. 처음에는 교회 음악에 뜻을 두었으나, 슈만 베를리오즈를 사귀고는 세속 음악으로 전향하여 가극을 시작하였다.

구노는 1851년 그의 첫 번째 오페라인 《사포》를 썼지만, 괴테의 극본을 기초로 한 《파우스트》(1859년)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파우스트》는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기초로한, 낭만적이고 멜로디성이 강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1867년에 초연되었으며, 이 역시 정기적으로 공연되고 음반이 녹음된다. 매력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1864년의 《미레이유》는 전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1870년부터 1875년까지 구노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중에 잉글랜드에 거주하면서, 현재 왕립 합창단 (Royal Choral Society)이라 알려진 곳에서 첫 번째 지휘자가 되었다. 그 당시의 대부분의 구노의 음악은 자연히 성악이거나 합창이었다.

후기에 구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1권의 첫 번째 서곡을 기초로 《아베 마리아》같이 주로 종교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심정의 깊이보다는 극적 효과에 차 있다. 구노는 사중주 현악을 위한 실내악에 헌선하였다.

구노는 1893년 프랑스의 생클루에서 사망하였다.

구노의 마리오네트의 장례 행렬(1873년)이 1950년대 미국의 TV프로그램인 '알프레도 히치콕 프레젠트'에서 사용되었다.

 

Balle 'Romeo & Juliet'

Sergei Sergeyevich Prokofiev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Tamara Rojo & Carlos Acosta - Act I, Scene 2 (Dance of the Knights)

1막  'Dance of the Knights' - 초대받지 않은 카플렛가의 무도회에 참석한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하는 장면.

 

Carlos Acosta and Tamara Rojo

1막 마지막의 유명한 발코니 Pas de Deux (2인무) 장면 


Tamara Rojo & Carlos Acosta

3막 첫 날밤 후 떠나야하는 로미오와 'Morning Pas de Deux' 안타까운 2인무



Tamara Rojo - Juilet takes the potion

줄리엣이 로렌스 신부가 준 비약을 마시는 장면



Death scene - Lauren Cuthbertson & Federico Bonelli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피날레 장면.

 

Nureyev

Ballet de l'Opera National de Paris - Monique Loudi?res - Manuel Legris

 

Alessandra Ferri

 

Sergei Sergeyevich Prokofiev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1891-1953) Russia

 

예카테리노현 손초프카(현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출생. 아버지는 유대인 대지주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해져 5세 때 《인도풍(風)의 갤럽》을, 9세 때 피아노반주가 딸린 오페라 《거인》을 작곡하였다. 1904년 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 입학, A.K.리아도프, A.N.체레프닌, N.A.림스키코르사코프 등에게 사사하여 작곡 ·음악이론 ·피아노 ·지휘 등을 배우고 1914년에 졸업하였다.
이 사이에도 《제1피아노협주곡》을 비롯하여 많은 곡을 작곡하였으며 또 1908년에는 ‘현대음악의 저녁’이라는 모임에 참여하여 이때부터 유럽 근대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런던에서 S.P.디아길레프에게 발레음악 작곡을 권유받아 귀국 후 《알라와 롤리》를 작곡하였으나 이 작품은 상연되지 않은 채 《스키타이모음곡》으로 개작되었다.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1918년 미국에 망명,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 등을 발표한 다음 유럽으로 건너가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제3번》을 포함한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1933년 소련의 여러 차례에 걸친 귀국 종용으로 조국으로 돌아가 당국의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알렉산드르 네프스키》《교향곡 제5번》 등을 완성하고, 스탈린의 사망과 같은 해에 죽었다. 작풍은 초기의 원시적인 격렬함에서 점차 고전적 경향으로 이행하여 감미롭고 간소한 스타일을 취하였다. 8개의 오페라, 7개의 발레, 각 10곡의 교향곡과 협주곡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