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협주곡 2번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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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 뉴욕필하모닉 서울공연
L. V. Beethoven
Piano Concerto No.2 in B-flat major,Op.19-3
Arthur Rubinstein (1887 ~ 1982), piano
Daniel Barenboim, cond
London Philharmonic Orcherstra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안톤 브루크너-교향곡 제9번(거룩하신 주님의 사랑)
1. Feierlich, Misterioso (장중하고 신비롭게)
2. Scherzo. (스케르초) Bewegt, lebhaft (가볍고 쾌활하게) - Trio. Schnell (빠르게)
3. Adagio. (아다지오) Langsam, feierlich (느리고 장중하게)
브루크너 교향곡 9번 D단조 작품해설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이 코너의 형식과는 달리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사고의 방향들을 제시하면서 곡의 해설을 대신하고자한다. 먼저 작품에 대한 고찰이 수반된 뒤에 다시 내부적으로 곡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브루크너 교향곡의 의미와 특히 9번이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분명 초기의 교향곡 작품들은 아직 고전주의(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작곡기법)등의 구조들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브루크너의 개성이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개성적인 면들이 작곡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오하게 복잡해져 가는데, 이 과정에서 바그너의 영향이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이해되는 것과 함께 다른 작품 외적인 요소들보다 두드러지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작품 내면 본질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가 역사의 뒤편에서 브루크너를 재평가하면서 어떤 규정이라는 틀 속에 넣기 위한 편리하고도 위험한 도구임을 솔직히 인정해야만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어떠한 음악적 산물이 홀로 독립된 창조물이 아니라 과거의 훌륭한 전통으로부터 이룩되어진다. 그러므로 브루크너 또한 예외가 아니며 다른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추구 방향을 설정하고 독자적인 언어를 통해서 더욱 확대시켰다. 후기로 접어들면서 드디어 이러한 면들은 확실히 브루크너와 일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바그너는 단지 그가 생각하는 진보적인 음악(또한 베를리오즈, 리스트)의 전형으로 간주된다.(이는 형이상학적인 면과 특히 미학에 관한 관점 자체로써 존중했다는 뜻이다.)
그럼 과연 명확하게 어떤 부분이 브루크너와 바그너가 일치하는가에 대해서 간단히 생각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바그너를 우상으로 생각한 브루크너는 실질적으로 바그너 음악 자체와 유사하기보다는 기존의 보수적인 음악(그가 평생토록 배워온 음악들이 바로 이러한 고전적이거나 바로크적인 음악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그너 음악을 접하므로써 새로운 영감과 부딪히게 된다.)과는 다른 방법으로 머리 속의 생각을 음악으로 구체화시켰다. 그래서 엄밀히 말한다면 이러한 표현 방법의 철학 자체만이 바그너와 유사하다는 의미이다. 바그너는 신화, 죽음, 사랑, 증오를 토대로 음악적 언어를 구사한 반면 브루크너는 종교적인 색채의 합창과 신을 배경으로 한 언어로써, 엄격하게 두 작곡가의 음악은 매우 다르다. 우리가 브루크너를 교향곡이란 장르를 베토벤 이후에 더욱 발전시켰다 라는 말은 단순히 그가 곡의 크기만을 부풀렸기 때문에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가 대위법이란 작곡 기법과 소나타 양식에 충실하면서 바그너적인 방법들까지 융화시켜서 금관악기들의 합창곡처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대에서 바라보여지는 부분을 잠시 접어두고 브루크너 당시,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베토벤과 항상 비교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심리적 상황으로 그는 이 곡이 베토벤 9번처럼 마지막 악장은 합창을 수반하는 거대한 곡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그토록 그가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서 고심하던 부분도 바로 이런 점이 이었으며 마지막 미완으로 남겨질 자신의 곡에 대해서 그는 " 테 데움"이 대신 연주되기를 원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브루크너가 합창을 동반한 거대한 곡으로 완성하리라 생각한 이 교향곡은 베토벤 9번과는 음악적 성격이나 주제가 다르다. 음 하나하나를 짙게 눌러서 표현하는 브루크너 음악은 오르간의 음을 연상케 하며, 선율이 점층적이고도 분명하며 반드시 강렬한 투티를 통해 정서적인 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음향 자체도 베토벤보다 더욱 밀도가 높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을 통해서 그가 최종적으로 결말을 짓고 있는 것은 투쟁적이고 혁명적인 면보다는 당연히 종교적인 동화와 아울러 영속적인 평화로 귀의함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역시 그의 마지막 교향곡답게 그를 끝까지 잡고 있던 종교적인 신앙의 고백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2. 이 교향곡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 방향으로 연주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흔히 트럼펫은 종교 음악적인 분위기에는 가장 높이 있는 신을 상징한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음악적 건축물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의미처럼 오케스트라의 최정상(튜티에서 역할을 일컬음)을 차지하는 이 악기의 특색과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될 것으로 안다. 대부분의 지휘자나 연주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특히 브루크너가 항상 투티의 마지막까지 어떤 악기를 고집하고 있던가? 다른 금관악기들은 상당히 장식적인 면이나 음의 집속도를 높이고 고조되는 상승 분위기를 나타낸다. 하지만 최고의 순간에는 반드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 뻗어 나오는 표현의 핵심이 존재한다. 이를 제대로 살려내느냐? 못 내느냐? 하는 부분이 이 교향곡을 바라보는 진정한 시각이 된다. 이는 스코어 상에 지시된 포르티시시모(fff) 말고도 진정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혜안이 있다면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다.
3. 연주의 창조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역사는 바로 창조에 대한 시도로 이루어져왔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장르도 이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은 발전이라는 표어 하에서 자행되는 퇴행적인 방향이 아니라 순수한 의도로 빚어내는 진실한 마음과 진리를 추구하여야 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곡에 대한 해석방향도 창조적인 시도나 새로운 의도가 더욱 돋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지 돋보이고 싶어서 남들과 다르기만 하다고 해서 진정한 창조성의 표출인가 하는 물음은 어렵고도 힘든 문제인가? 해답은 간단하게 결코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작곡가의 그 당시 절대적인 진리의 상황을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하지만 이에 근접한 상황을 연주자가 간접적으로나마 진실에 근접하게 표현만 하더라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므로 음악을 듣고 이해함에 있어서 귀중한 것은 이러한 느낌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주가 중요하다. 이런 역할을 소홀히 하는 연주들은 자연스레 훌륭한 연주의 대열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위의 질문에서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브루크너 음악을 낭만주의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고전주의나 바로크로 볼 것이냐 하는 중요한 문제와 접하고 있다. 그는 항상 창조적인 자신의 능력 배양을 위해서 평생토록 공부를 하였다. 그러므로 고전주의에만 안주할 수 없었던 브루크너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작곡가들이 교향곡을 작곡할 나이에도 그는 아직도 더 많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브루크너의 이런 면을 통해서 단순히 그의 음악적 유산이 단순히 고전주의를 계승하였다 라고 보기보다는 낭만적인 내적 갈망(주로 신에 대한 귀의나 평화)을 보다 바그너적인 수법을 통해서 차분하게 낭만주의를 실현하였다 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렇게 종교 음악적인 분위기가 포함된 낭만성이 가득한 음악은 어떠한 흑백논리의 범주 즉 우리의 편의적인 틀에 귀속시키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여기서 다루고 있는 교향곡이란 장르에서는 낭만성이 가득한 음악으로 생각한다.
4. 브루크너 곡을 연주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다른 무엇보다도 각 단원들의 연주실력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물론 지휘자의 역할도 있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일단 곡 자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굉장히 밀도 높은 음색과 특유의 빛깔이다. 브람스의 음악적 색깔과는 판이하게 다른 황금빛이 요구된다. 이런 색채 감각에 가장 적합한 오케스트라는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물음은 쉽게 답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주들의 녹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가장 적격이다. 오케스트라의 바탕색 자체가 회색이나 검은색의 느낌이 강하면 일단 곡이 필요로 하는 뉘앙스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5. 꼭 빈 필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브루크너가 8개의 호른과 3개씩의 트럼펫, 튜바를 쓰면서 같은 악기 종류라도 스코어에서 진행되는 음은 각자 다른 선율을 부르게 된다. 같은 호른 파트이면서도 4가지의 다른 선율이 사용된다. 이를 본다면 단순한 음색의 정갈한 빛깔이 요구되겠는가? 아니면 다양한 음색의 선율이 요구되겠는가? 이에 알맞은 해결책이며 근접한 선택법으로서 빈필이 적임이며 이는 음반으로써도 증명된다. 브루크너 곡에 대해서는 빈필이 필요충분 조건이다. 그리고 브루크너의 음악은 독일, 오스트리아 계통에서만 자주 연주될 뿐 다른 지역에서는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그리고 빈이라는 도시의 색채감은 아주 브루크너적인 영상미를 짙게 함유하고 있다.
6. 마지막으로 브루크너는 어떤 사고의 소유자였는가?
곡을 이해하는데는 그 작곡가의 심리적 상황이나 갈등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면 매우 놀라운 감수성을 우리들에게 부여한다. 그래서 단편적인 조각들이나마 브루크너의 그 당시 심리적 상태를 알아 보고자한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인간에 대한 투영은 오류다. 단편적인 조각으로 한 인간 내면까지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단지 외부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유추적인 생각이 전부다.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한번 접근해 보기로 한다. 일단 그는 일반적인 세속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삶 속에서 카톨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착실함이란 외부적인 표정과 내부적으로는 강렬한 끈기나 열정이 도사리고 있는 이원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을 포괄적인 한가지로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에는 여러 가지 부분이 포함될 수 있겠으나 먼저 자신의 음악적 식견을 넓히는 것이나 숭고한 음악을 헌정하는 일로 압축된다. 항상 진보적인 심리적 긴장상태를 유지하다보니 자연스레 건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특히 그를 향해 비난하던 빈의 한슬릭(분명 시대착오적인 형식주의론자이지만 이 때문에 더욱 브루크너의 음악적 견해가 튼튼해질 수 있는 토대가 된다.)을 위시한 브람스 옹호주의자들에 의한 스트레스도 가세한다. 또한 강력하게 반대파에게 논박하지 못한 면과 작곡된 뒤에도 꼼꼼하게 다시 재수정을 가하는 면들을 통해서 상당히 유약한 심성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유약하다면 어떻게 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 9번 교향곡까지 작곡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진실한 음악적 완성을 신과 함께 완성되기를 바랬으며 최종적인 그 결과가 신에게 되돌려지기를 간절히 원하던 천진하면서도 강인한 인간일 뿐이었다.
작곡과 초연 |
브루크너는 마지막 교향곡인 미완성 9번을 위해서, 8번을 작곡한지 6주 뒤부터 죽기 전까지 10년이나 작업했다. 9번은 그의 마지막 최후의 삶에 대한 결정체이다. 숨을 거두는 그날에도 마지막 악장을 잠시 작업하다 숨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굳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신에게 이 곡을 바치고 싶어했었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염원을 간직하고 있다. 이 곡의 음악적인 형상에 대해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점은 그 음의 구성에서 나타나는 생소함과 대담성에 대한 놀라움이다. 선율의 처리 방법은 복음정을 각별히 많이 구사하였으며, 풍부한 하모니는 바그너적인 반음계법이 침투하여, 음의 장대한 흐름은 아주 개성적인 면모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또한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브루크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이제 브루크너는 그의 교향곡을 통해서 더욱 베토벤의 교향곡적인 형식을 발전시킨 셈이 된다.
9번의 최초의 스케치는 63세 때인 1887년 9월이며 그후 병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나이가 들면서 3악장까지 작곡하고 200페이지 분량의 피날레 스케치를 코다까지 남겨둔 상태로 서거하게 된다. 이 피날레를 가지고 브루크너의 의도와 비슷하게 다시 완성하려는 시도는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코다 부분은 브루크너의 영면과 함께 엄숙한 세계로 완결 지어졌기 때문에 굳이 피날레 부분에 손을 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브루크너는 마지막에 이 피날레가 완성되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테 데움이 대신 연주되기를 바랬었다.
곡의 초연은 그의 사후인 1903년 2월 11일 빈에서 Ferdinand Lowe 지휘로 당시 막 창단된 빈 콘체르트페라인 오케스트라 (Wiener Konzertvereinsorchester)에 의해 행해졌다. 이 오케스트라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전신에 해당한다. 뢰베는 작품의 연주를 원활히 한다는 미명하에 브루크너의 악보를 수정했으며 그 수정본이 Doblinger에 의해 이듬해 출판된다. 1934년에야 Alfred Orel이 편집한 오리지날 악보가 출판되게 된다. 크나퍼츠부쉬 (1950)를 비롯해 푸르트벵글러 (1944), 아벤트로트 (1951) 등은 모두 이 오리지날 악보를 쓰고 있다. 반면 현대의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1951년에 출판된 Leopold Nowak판을 이용하고 있는 추세다.
악기편성 |
플루트 3, 오보에 3, 클라리넷 3, 파곳 3, 호른 8, 트롬본 3, 트럼펫 3, 콘트라베이스 튜바(3악장에서는 4개의 호른 대신에 테너 튜바 2, 베이스 튜바 2), 팀파니 3, 현5부
악장구성 |
- 1악장 Feierlich, misterioso, 2/2 박자,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제1 주제 - 제2 주제 - 제3 주제 - 전개부 - 재현부 - 코다 의 형식임.
- 2악장 Scherzo. Bewegt, lebhaft - Trio. Schnell, 3/4 박자, 복합 3부 형식. 트리오는 제1 주제와 제2 주제(A-B-A-B-A)로 구성됨.
- 3악장 Adagio. Langsam, feierlich, 4/4 박자, 변형된 소나타 형식. 제1 주제 - 제2 주제 - 전개부 - 코다로 구성됨.
펌<원글보기/http://pathetick.blog.me/60094812686>
말러와 브루크너.
그들은 모두 19세기 말 교향곡이라는 장르는 새로운 형태로 부흥시킨 위대한 심포니스트였지만, 사실 그 두 사람의 성격이나 음악은 매우 달랐다.
말러의 제자 브루노 발터는 말러와 브루크너의 차이에 대해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고 있다' 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음악적 차이점을 잘 말해준다.
확실히 브루크너의 음악 속에서는 인간적인 고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오르간 사운드를 연상 시키는 객관적인 음향, 집요하게 반복되는 악구. 그의 음악은 그저 초연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신을 찾지 못한 말러의 음악에는 인간적인 고통과 기쁨의 드라마가 끊임 없이 펼쳐진다. 장송행진곡과 천상의 음악이 뒤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음악. 그것이 말러의 바로 교향곡이다.
그런데 그 상반된 성격의 두 사람은 아주 좋은 친구 사이였다. 브루크너는 말러보다 36년 연상이 었지만 워낙 천진난만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참 어린 말러와 세대 차를 뛰 어넘는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877년 12월 16일, 브루크너가 교향곡 제3번을 초연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그날 브루크너는 쓰라린 패배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의 교향곡 초연이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브람스 편에 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한슬릭 일파들이 기라성같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바그너에게 헌정된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의 초연이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었다. 브루크너의 엉성한 지휘에 화가 난 오케스트라, 그리고 한슬릭 일파의 방해 공작으로 공연장에는 썰렁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나마 연주회에 참석했던 몇 안되는 청중들도 연주가 진 행되는 동안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간간이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연주가 끝날 무렵 객석에 는 10명 남짓한 브루크너의 추종자들만이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켰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17세의 청년 구스타프 말러도 끼여 있었다.
비록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의 초연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말러는 이 교향곡에 크게 감명 을 받아 이 곡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 곡으로 편곡하여 이듬해인 1878년에 출판했다. 브루크너 는 말러의 편곡에 아주 만족하여 그 답례로 말러에게 자신의 교향곡 3번의 총보를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 그들은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으며 서로를 열렬히 숭배했다. 브루크너는 항상 자신 보다 한참 어린 말러에 대해서 항상 깊은 존경심을 나타내곤 했다. 그래서 말러가 그를 방문할 때마다 모자를 손에 든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가 이 젊은이를 맞이할 정도였다. 그는 말러를 만날 때마다 그에게 자신의 작품을 연주해 보이며 이 신출내기 음악가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후에 말러는 브루크너와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느 상쾌한 아침, 대학 수업 시간 도중에 그는 나를 강당으로 불러냈다. 그는 먼지가 잔뜩 쌓인 둔탁한 피아노 앞에 앉아 훌륭한 아다지오 테마를 연주해주었다. 지금까지도 이것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그는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유쾌함과 젊음을 지니 고 있었으며 항상 진실했기 때문에 우리는 격의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삶과 이상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가와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나는 나 자신을 그의 '제자'라 부르고 싶다. 또한 언제까지나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할 것이다."
그러나 말러가 실제로 브루크너의 제자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문제는 말러의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말러의 전기작가 슈라이버는, 말러가 비인 음악원에서 공부할 당시 그가 브루크너의 강의를 빠짐 없이 수강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슈테판은 말러가 브루 크너의 강의를 들었는지는 약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미첼은 말러의 편지를 예로 들어 말러가 실제로 브루크너의 제자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말러가 실제로 브루크너의 제자였든 아니든, 말러는 항상 브루크너를 그의 스승으로 생각하며 깊이 존경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후에 말러가 지휘자로서 활동하게 되었을 때 스스 로 브루크너 음악의 전도사임을 자청하며 당시에 잘 연주되지 않던 브루크너의 음악을 자주 연주했던 것을 보면, 브루크너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891년, 말러가 함부르크의 오페라 극장에서 브루크너의 '테 데움'을 성공적으로 연주한 후 브루크너에게 써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드디어 제가 당신의 작품을 연주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쓰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어제 저는 당신의 놀랍고도 강렬한 음악, 테 데움을 지휘했습니다. 연주자들이나 청중들 모두 그 압도 적인 음악과 고귀한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연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청중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채 깊은 감동에 전율하고 있었습니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폭풍과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말러가 브루크너의 음악에 대해 항상 만족스러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휘자로서의 말러는 브루크너의 음악을 세상에 전파하기에 힘썼지만, 작곡가로서의 말러는 브루크너의 음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러는 비엔나 필하모닉 연주회에 서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연주할 당시 자신의 취향대로 브루크너 교향곡의 상당 부분을 삭제 하고 연주하곤 했다.
1900년 1월 28일에 열린 제 6회 필하모닉 콘서트에서 말러가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의 2악장과 4악장의 몇 군데를 삭제하고 연주하자, 당시 비인의 브루크네리안들은 심한 반발을 하고 나섰다. 그들의 대표자 격인 테오도르 헬름은 '말러가 자기 멋대로 템포와 다이내믹을 고치고 악센트를 과장했으며 파렴치하게도 작품에 가위질을 해 시적이며 음악적인 이 작품을 조각조각 잘라버렸 다'고 비난했다. 항상 새로운 스캔들을 찾았던 비인의 음악계에서 말러의 '배은망덕'은 좋은 가십거리가 되었다. 졸지에 배은망덕한 음악가라는 낙인이 찍힌 말러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의 리허설에서 브루크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브루크너에게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의 인품과 작품 모두를 열렬하게 숭배 하는 사람입니다...나는 나의 방식대로 브루크너를 기념하려 했고,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가능한 한 모든 존경심을 담아 이를 연주하여 영광스럽게 하려 한 것입니다."
문제는 말러가 '그의 방식대로' 브루크너를 존경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브루크너의 음악을 사랑했지만 브루크너 음악의 어떤 악구와 주제들은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말러가 보기에 브루크너의 음악은 어떤 면에서 논리적 구조가 결여된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말러에게 고통을 주었고, 어떻게든 브루크너 음악의 '공허하고 부적절한 부분'을 삭제하고 연주하려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스를 대지 않고서는 브루크너 음악을 연주할 수가 없어요. 원래 상태로는 브루크너를 절대 레퍼토리에 포함시킬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시 평론가들은 말러의 이런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브루크너의 제자인 체 하지만 브루크 너의 천재성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말러가 브루크너의 음악을 '그의 방식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브루크너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브루크너와는 전 혀 다른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말러와 브루크너. 그들은 서로를 존경하고 숭배했으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극단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그토록 존경 하고 숭배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열망하므로
참고로 말러는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을 초연했습니다.
요즘들어 말러와 브루크너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 작곡가의 작품을 열렬히 연구되고 그리고 녹음되고 연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매니아 층도 생겨났죠. 이들의 추종자들을 "말러리안" "브루크네리안"이라고 부릅니다.
세기말의 정서를 삶과 죽음이라는 고뇌로 표현한 말러, 엄숙하고 경건함속에 장중함을 추구했지만 누구보다 외로웠던 브루크너,, 저는 후세사람들을 고생시키는 이 두 작곡가들이 너무 얄밉습니다. 초보수준에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공통점을 살펴보기로 하죠.. 교향곡을 본다면 흔히 알려진 9번까지 작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말러는 미완성인 10번이 있고, 교향곡이라고 불러도 되는 대지의 노래가 있습니다. 브루크너는 9번이 미완성입니다. 3악장까지 완성이 되었는데, 4악장은 자신의 테데움으로 대체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습작교향곡이라고 부르는 0번과 00번(?)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작인 교향곡 이외에 말러는 가곡, 부르크너는 가톨릭 종교음악(미사,모테트,테데움)이 유명합니다.
또 작품에 많은 수정을 한 작곡가입니다. 부르크너는 한 교향곡에 2번 이상을 자기 스스로 수정해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어디서 나온 버젼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출판사가 수정을 한 작품도 있죠.)
그들의 교향곡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기본이 1시간) 지휘자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등은 가장 필요한 것이 체력과 집중력입니다. 말러 교향곡 6번 4악장이나 브루크너 교향곡 8번 3악장은 거의 30분정도 소요됩니다.
살아생전 그들의 작품이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한것도 공통점입니다. 특히 말러의 작품은 너무 시대를 앞서나간 탓이 크다고 봅니다. 둘다 천재작곡가이지만 말러는 뛰어난 지휘자로서 인정을 받았고, 부인과 자식까지 두었지만, 브루크너는 40넘은 나이에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교향곡 7번이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어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때에는 그는 너무 늙었습니다.
말러는 평생동안 삶과 죽음 문제에 집착했다면, 브루크너는 수도원에서 오르간 주자로 활약하면서 신에 대한 신앙생활에 온평생 다바쳐서 살았습니다. 아마 벨기에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인 세자르 프랑크가 브루크너처럼 살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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