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1년)

엘 시스테마 :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2011.10.26.수/이화여대

나베가 2011. 10. 25. 10:21

 

 

 

엘 시스테마 :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기적의 오케스트라를 만나다!

El Sistema : Caracas Youth Orchestra Asia Tour

 

가난, 마약, 범죄의 땅이 되어 버린 베네수엘라

이곳에, 거리 아이들을 위한 음악학교가 세워졌다.

 

기적은 이미 시작되었고, 감동은 계속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음악을 통한 성공의 길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엘 시스테마는 우리에게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줬습니다.”

-LA필 최연소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세계 음악의 미래를 목격했다.”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

 

“어디에서도 이처럼 웅장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연주다!”

-플라시도 도밍고

 

 

 

이것이 엘 시스테마!!

 

가난은 오로지 외로움, 슬픔, 그리고 무명을 뜻하지만

오케스트라는 환희, 열의, 협력, 그리고 성공을 향한 열망을 뜻한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음악 교육 프로그램으로 영어로 system을 의미하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에서 따왔다.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엘 시스테마’는 수십만 명의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침으로써 마약과 범죄의 유혹과 위협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삶의 기쁨과 희망, 공동체적인 관계 맺기의 가치를 심어주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특히, 클래식계의 젊은 거장으로 꼽히는 LA 필하모닉의 최연소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더블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스 등 ‘엘 시스테마’ 출신 젊은 음악가들이 클래식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10 서울 평화상 수상!

모든 기적의 시작, 엘 시스테마의 아버지 ‘아부레오 박사’

 

한 사람의 무모한 아이디어가

베네수엘라 30만 아이들을 꿈꾸게 했다.

 

1975년,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뿐이었던 어느 허름한 차고에 전과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5년 뒤, 차고에서 열렸던 음악 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의 센터로 퍼져나갔고, 11명이었던 단원 수는 30만 명에 이르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오늘을 선물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엘 시스테마’! 그 기적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휘 : 안드레스 리바스 (Andrés Rivas)

 

1990년에 태어난 안드레스 리바스는 3살이 되었을 때 엘 시스테마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는 4년 뒤에 베네수엘라 어린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선정되었고, 2011년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의 제1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3살에는 악장이 되었다. 2009년 그는 마에스트로 아브레우의 지도 아래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하여 후에 마에스트로 에두아르도 마르투레트에게도 지도를 받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바그너, 이베르, ,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같은 해 9월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로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국내 투어 무대의 부지휘자로 초청받았으며, 이 때에 차이코프스키와 바그너 작품으로 직접 지휘를 하기도 하였다. 이후 리바스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으며, 2011년에 그는 두다멜과 함께 음악을 위한 국립 사회 개혁 센터의 새로운 홀 개관과 엘 시스테마의 36주년 기념 무대에서 지휘를 맡았다.

 

 

프로그램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Op. 36, F 단조
마르케즈 단손 2번
히나스테라 에스탄시아 발레 4악장 모음곡 
농부들/밀의 춤/목동들/종막의 춤 – 말람보

 

 

히나스테라 에스탄시아 발레 4악장 모음곡 Kim Kashkashian (viola)

 

 

 

 Kim Kashkashian   viola 
Robert Levin   piano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 슬픈 노래
   Alberto Ginastera - Cancion triste
 

  

 
  엔리케 그라나도스 - 가련한 여인 3번

   Enrique Granados - La maja dolorosa No. 3    



 
  카를로스 구아스타비노 - 장미와 버드나무
 
   Carlos Guastavino - La rosa y el sauce
  

 

 
 
Kim Kashkashian   viola 
Robert Levin   piano
 
 
 
 

Alberto Evaristo Ginastera

히나스테라 /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Alberto Ginastera 1916∼1983

히나스테라 Alberto Evaristo Ginastera 1916∼1983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1928-35년 알베르토 윌리엄즈 음악원(부에노스아이레스), 1936-38 국립음악원9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부, 1937년의 처녀작 발레 음악<파남비(나비)>에 의해 주목을 받고, 1940년까지 국가 대상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상을 받는다. 1946-47 구겐하임 급비생으로서 미국에 간다.

194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설립된 국제 현대음악협회 아르헨티나 지부의 부서기장이 되고, 1951년에는 동 협회의 초청으로 서독에 간다. 그 후 국외에서 활약, 1957년에는 코플랜드, 차베스 등과 나란히 카라카스(베네수엘라)에서 거행된 라틴 아메리카 작곡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역임한다.

1971년 이후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가족과 함께 정주. 처음에는 민족적인 기반에서 출발했으나 점차 12음 기법 등 현대적인 수법을 사용하게 되었고, 1960년 경 부터의 작풍은 다분히 전위적이다. 많은 장르에 걸쳐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관현악곡 <협주적 변주곡,1953>,피아노 협주곡 제 1번(1961)또 오페라 <보마르소,1964>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실내악곡과 피아노곡에도 걸작이 있으며 이것들은 자주 연주된다.

Alberto Ginastera (1916,01,11-1983,06,17)

20c의 탁월한 남미 작곡가로 인정을 받는 히나스테라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7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피아노레슨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2세 되던 해에 윌리암스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이론과 솔페지, 피아노, 화성학, 작곡 등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은 1935년 음악원 졸업시 작곡에서 금메달을 수상함으로 증명되었다. 이후 히나스테라는 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아토스 팔머와 화성학을, 호세 길과 대위법&푸가를, 호세 안드레와는 작곡을 공부하였는데 1938년 졸업 당시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편곡>으로 음악원을 최우등 졸업하였다.

히나스테라가 아르헨티나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37년 당시 유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후앙 호세 카스트로가 그의 발레 모음곡<피남비(Pinambi)>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초연하면서부터이다. 1941년에 히나스테라는 국립음악원에 작곡과 교수직에 임용되었으며, 1943년 발레<에스탄시아(Estancia)>의 발표 이후 아르헨티나의 민족주의적 문화와 특징을 음악 안에서 효과적으로 해석하는 작곡가로 꼽히게 되었다.

구겐하임 장학금을 받아 1945년부터 두 해 남짓 미국에 머물면서 그는 미국내 대학들의 음악 프로그램과 음악학교들을 돌아보고 탱글우드에서 열린 코플랜드의 작곡코스에도 참가하는 등 국제적인 안목을 키워갔다.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히나스테라는 1948년, 국제현대음악협회의 아르헨티나 본부가 된 작곡가동맹을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주로 아르헨티나에서 교육과 작곡에 힘쓰는 동시에 다른나라로부터 위촉된 작품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중 1958년 워싱턴에서 열린 미대륙간 음악제(Inter-America Music Festival)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음악제에서 줄리어드 현악4중주단이 그의 <현악4중주 제2번>을 연주하게 되고, 이곡이 굉장한 호평을 받게 되면서부터 히나스테라는 국제적인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그 3년 후에는 <미국을 위한 칸타타(Cantata para America magica)>와 <피아노협주곡 제1번>으로 더욱 유명해져서 미국으로부터 주요작품을 위촉받기에 이르렀다.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1962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고등음악연구소를 창설하여 남니의 음악도들에게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키우고 세계각국에서 방문한 작곡가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힘썼다.

후에 이 기관은 남미에서 작곡공부기관으로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히나스테라는 1964년 7월 그의 그랜드 오페라<돈 로드리고>가 콜론 극장에서 초연된 후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두번째 오페라<보마르초>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71년에는 유럽의 제네바에 머물면서 작곡한 세 번째 오페라가 워싱턴 케네디센터 연주회장의 개관시에 초연되기도 하였다.

히나스테라의 작품들은 대략 1960년까지의 민족주의적 경향을 띤 곡들과 그 이후 더욱 현대적이며 진보적인 작곡어법을 사용하여 쓴 작품들로 구분된다. 그러나 히나스테라 자신은 좀더 세분화된 작곡스타일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3단계로 나누어 객관적인 민족주의, 주관적인 민족주의, 그리고 신표현주의라고 명칭하였다. 그의 객관적인 민족주의는 아르헨티나의 민속적인 특성과 주제가 직접적이고 명백한 방법으로 조성적인 선을 지니고 나타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히나스테라는 민속적인 특성 중 특히 크리올라 음악(musica criolla)이라고 알려진 민요와 춤의 리듬과 멜로디 모델로 삼았다. 이 시기의 히나스테라 음악에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은 바르톡, 화야, 스트라빈스키 등이다. 히나스테라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발레 모음곡<피남비(Pinambi)>, <에스탄시아(Estancia)>, 피아노 곡으로는 <아르헨티나 춤곡(Danzas Argentinas)>과 <크리올라 춤 모음곡(Suite de danzas criolla)>등을 들 수 있다.

히나스테라의 주관적 민족주의는 그의 <현악4중주 제1번>으로부터 시작되어 6년간 지속된 작곡 경향을 말한다. 그는 "이 <현악4중주 제1번>에는 팜파스 음악의 리듬, 멜로디, 동기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것들이 명백하게 보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피아노 소나타 제1번>에서도 히나스테라는 이곡의 주제적 구조, 리듬과 멜로디, 동기들 사이의 표현적 긴장감이 뚜렷한 아르헨티나의 악센트를 지닌다고 했다. 그러나 이 표현적 긴장감은 작곡가의 자신에 의해서는 감지되지만 청중에 의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며, 이것이 바로 히나스테라가 말하는 '주관적(subjective)'인 민족주의인 것이다. 이 주관적인 민족주의 시기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팜페아나(Pampeana)제3번>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엄격한 구성력과 작곡가 개인의 음악적 정수가 가장 이상적으로 혼합되는 시기는 신표현주의라고 불리는 제3기이다.

1958년작 <현악4중주 제2번>으로 시작되는 이 시기는 12음기법의 샤용, 다조성, 1/4음과 다른 미분음정의 사용, 우연성, 그리고 기악과 성악적 자원의 확대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이 시기에 히나스테라는 초자연적이며 환상적 암시를 지닌 마법적인 요소를 중요시했는데, 이 요소는 그의 <현악4중주 제2번> 'Presto magico'악장과 <피아노협주곡 제1법>중 'Scherzo allucmate' 그리고 <피아노5중주 op.29>중 'Scherzo fantastico'에서 나타난다. 히나스테라는 그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의 마지막 악장에 초현실적인 요소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 악장에서 제시되는 11음으로 이루어진 주제는 쇼팽의 <피아노소나타 bb minor>의 끝부분에서 유래되었으며 이것은 그의 협주곡의 비극적이며 환상적인 성격을 암시한다고 한다. 히나스테라는 자신의 작곡일생을 통해 전통적인 형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표현의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면서도 유럽의 위대한 고전, 낭만의 전통에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전통적인 형식이나 악기들이 부활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특히 소나타 형식을 좋아했으며 중요한 구조적 요소로 사용되는 카덴차와 변주곡 형식도 많이 사용하였다. 한 예로 <현악4중주 제2번>의 마지막 악장은 카덴차의 형태를 지닌 주제와 3개의 변주이며, <피아노협주곡 제2번>의 제1악장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의 제4악장에서 발췌된 음들로 만든 화음(F-A-D-C#-E-G-Bb)을 가지고 작곡한 32개의 변주이다.

히나스테라는 강한 리듬을 선호하였는데 이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에서 유래한 리듬 패턴의 사용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리듬의 형태는 아르헨티나의 카우보이인 가우초(gaucho)가 자주 사용한 말람보(malambo) 리듬이다 이 리듬은 헤미올라와 같은 형태로 겹박자에서 2박과 3박의 패턴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수법을 의미한다. 즉 첫째 마디는 1-2-3-4-5-6, 둘째 마디는 1-2-3-4-5-6으로 진행된다. 이 리듬은 곡이 절정에 이르는 부분에 주로 사용되었다.(참고:아르헨티나 춤곡 제3번) 히나스테라는 이 리듬을 악보의 첫 부분에 3/4=6/8=6/16의 이중박자 기호로 자주 표시해놓곤했다.(참고:피아노소나타제1번4악장) 그외에 리듬의 악센트를 변화시키기 위한 당김음의 사용, 오스티나토 음형, 수시로 바뀌는 변박자들을 사용함으로써 전통적인 박자 구성에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그의 선율 및 화성 역시 리듬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아르헨티나의 민속음악인 잉카(Inca)와 크리올(Creole)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교회선법적인 화성에 근거를 둔 잉카 음악의 선율은 대부분 우울하고 애조를 띠는 반면, 크리올 음악의 선율은 밝고 빠른 성격을 지니고 주로 병행3도의 형태를 지니면서 제시되곤 한다.

중기에는 히나스테라의 개성이 표출된 주관적인 방식의 선율들이 점차 나타났고 후기에 이르면 12음 기법에 의한 도약이 심한 선율들이 주를 이루었다. 복조성과 병행화음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초기의 화성은 <현악4중주 제2번> 이후에는 12음기법의 사용으로 인해 증4도를 중심으로 구성된 화음들과 복화음, 그리고 군집화음(cluster chord)의 사용으로 대치되었다

 

Symphony No.4 in F minor, Op.36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4번

Pyotr Il'ich Tchaikovskii 1840∼1893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6개의 교향곡 가운데에서 가장 변화가 많고 또한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뚜렷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순음악형식을 취하면서도 표제악적인 요소가 짙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고뇌하여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며 인간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치는 운명의 마수이어서 처참한 느낌을 듣는 사람에게 던져준다. 극도의 멜랑콜리한 감성과 광분적인 정열사이의 갈등, 또는 회환과 낙관적인 마음간의 갈등은 차이코프스키의 본성이었다. 마음 깊은데서 우러나온 패배의식뿐만 아니라 불같은 열정의 분출은 차이코프스키의 창작열에 불씨를 당겼다. 차이코프스키의 독특한 특성인 선율의 어두운 아름다움과 구성의 교묘함, 그리고 관현악의 현란한 묘기등이 이 곡의 가치를 한층 드높여준다.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친구 작곡가 타네에프에게 "제 4교향곡의 한 마디라 할지라도 내가 진실히 느낀 것을 표현시키고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한 나의 깊게 숨겨진 마음을 반영 안하는 것이 없다"고 써보냈다. 또한 성 페테스부르크에서 1878년 2월 22일의 연주를 마친 뒤 자신의 친구에게 "이곡은 내가 작곡한 작품중 최고"라는 말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불행한 결혼에 괴로워하던 시대의 산물로 그 괴로움이 무척 리얼하게 반영되어있어서 차이코프스키의 "운명 교향곡"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1악장 - Andante sostenuto - Moderato con anima

 

서주는 안단테 소스테누토, F단조, 3/4박자, 소나타형식이다. 호른과 파곳만의 최강주로 격렬하게 나오는 선율은 전곡의 주된 테마인 운명을 나타내며 이것이 반복되면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인다. 주부로 들어가서 모데라토 콘 아니마 F장조, 9/8박자 ("원무곡의 움직임으로")로 바뀌며 현으로서 시름에 잠긴 듯한 괴로움을 표현하는 제1주제와 감미로우면서 서정적인 2주제가 클라리넷의 달콤한 소리로 이어진다.이어 제1주제의 변형인 3주제가 뒤를 잇고 다시 주상선율이 나와 전개부로 들어가며 다시 주상선율이 재현부, 마지막으로 주상선율이 나와 종결부로나아간다. 위와같이 2개의 주제가 여러갈래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괴로움과 이와는 상반된 꿈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에게 직접 쓴 1악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의 교향곡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주는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과 정수이며 주상입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즉, 행복에의 추구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막고 평화와 위안이 성취되지 않는 것이나 하늘에는 언제나 그름이 끼어 있는 것을 질투, 깊게 주장하고 있는 숙명적인 힘입니다. 머리위에 언제나 달려있는 다모레스크의 칼처럼 흔들려, 영혼에 끊임없이 독을 부어넣는 힘입니다. 이 힘은 압도적이며 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에 복종하여 잠잠히 불운을 슬퍼할 길밖에 없습니다 (제 1주제). 절망은 깊어집니다. 도피하여 꿈속에 잠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 2주제). 얼마나 즐거운 것이겠습니까. 달콤하고 부드러운 꿈이 나를 포옹합니다. 밝은 세계가 나를 부릅니다. 영혼은 꿈 속에 젖어 우수와 불쾌함을 잊습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나 꿈일 뿐입니다. 운명은 우리들을 참혹하게 일깨워 일으킵니다 (주상 선율). 우리들의 생활은 괴로운 현실과 행복한 꿈과의 교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전한 도피처는 없습니다. 인생의 물결은 우리들을 삼켜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2악장 - Andantino in modo di canzona


2악장 - Andantino in modo di canzona
NBC Symphony Orchestra / Guido Cantelli, Cond

내림 B단조, 2/4박자, 세도막형식이다. 이 악장에서는 그의 독특한 애상, 그러나 밝고 북방적인 전원 무곡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적적한 기분과 아울러 피로에 지쳐있던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오보에가 외로운 으뜸선율을 내고 이것이 발전되어 흥분에 가득찬 부선율로 이어지는대 으뜸선율은 여전히 쓸쓸함을 드러내자 F장조의 피우모소의 거칠은 농민무도 혹은 러시아 무곡이라고 할만한 소박하면서 쾌활한 주제가 중간부를 이루며 거칠고 단단한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그러나 다시 주부에 돌아가서 으뜸선율은 교대로 여러 가지의악기로 되풀이되며 느리고 목가적인 주제로 표현된 어두운 색조를 표현해주면서 조용히 마친다.

2악장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제 2악장은 비애의 다른 일면을 보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것은 일에 지쳐 쓰러진 자가 밤중에 홀로 앉았을 때 그를 싸고 도는 우울한 감정입니다. 읽으려고 든 책은 그의 손에서 떨어지고 많은 추억이 샘솟습니다. 이렇게도 많은 여러 가지들이 모두 지나가 버렸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이겠습니까. 그래도 지난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과거를 슬퍼하며 그리워합니다만 그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와 의지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생활에 지쳐버렸습니다."

3악장 - Scherzo - Pizzicato o stinato


3악장 - Scherzo - Pizzicato o stinato
NBC Symphony Orchestra / Guido Cantelli, Cond

알레그로, F장조, 2/4박자. 제 1부는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데 현악기 전부는 피치카토를 계속한다. 으뜸 선율은 초조해있으나 몽상적이면서 황막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제 2부분은 A장조로 현악기는 침묵하여 목관악기만이 러시아 민속무용을 허물은 것 같은 유쾌한 가락을 탄다. 그것이 ff로 나아가 멈추고 제 3부분은 내림 D장조로 변하여 금관만이 pp로 행진곡모양의 고른음을 낸다. 목관은 도중에 들어와 제2부분과 오버랩된다. 제 4부분은 제 1부분과 같이 현악기만이 피치카토로 으뜸선율을 내며 제 5부에서는 목관이나 금관이 참여하여 여태까지의 선율을 단편적으로 전개시켜 pp로 마친다.

"3악장은 이렇다 할 뚜렷한 정서나 확정적인 표출도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들뜬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술을 마시고 얼근히 취했을 때에 우리들의 뇌리에 스며들어 오는 어렴풋한 모양입니다. 그 기분은 명량하거나 혹은 비탄에 빠지기도 하여 빙빙 돌아갑니다. 별달리 생각하는 것도 없이 공상을 제멋대로 달리게 하면 놀라운 선의 교착에 의한 화면이 즐겨집니다. 갑자기 이 공상속에 취한 농부와 흙냄새 풍기는 노래와의 화면이 뛰어 들어옵니다. 먼데서 군악대가 주악하여 지나가는 울림이 들립니다. 이것은 모두 잠자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헝클어진 그림인 것입니다.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분간할 수 없는 혼란입니다."

4악장 - Allegro con fuoco


4악장 - Allegro con fuoco
NBC Symphony Orchestra / Guido Cantelli, Cond

피날레, F장조, 4/4박자. 자유스러운 론도형식으로 힘찬박력과 빛나는 색채감이 나는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전합주의 ff로 숨막히는듯한 강렬한 제1주제가 나오고 이어지는 제2주제는 러시아민요에 의한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나온다. 다시 1주제가 격렬하게 등장하고 난무 (亂舞)와 같은 제 3주제가 나타난다. 이 세주제는 서로 교대로 나와 각각 서로 얽혀 발전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제 1악장의 서주에 나온 주상선율이 안단테를 위협하듯이 나타나 다시 원래의 알레그로로 돌아가서 세 개의 주제에 의한 강렬함이 극도에 달한 종결부를 형성한다.

"제 4악장. 당신이 자기 자신속에 환희를 찾지 못한다면 주위를 살펴보는 곳이 좋습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즐거워 하고 환락에 몸을 던지는 가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민중의 축제일의 묘사.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우리들이 자기를 잊혀지느냐 잊혀지지않느냐 할 때, 패배하지 않는 운명은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그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관심을 갖지않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돌아다 보지 않고 또한 우리들이 외롭고 슬프다는 것을 보기위해서 발을 멈추려 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그들은 유쾌하며 즐거운 것입니까! 그들의 감정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세상은 비애에 빠져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단순하고 소박한 행복은 아직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기뻐하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더욱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작곡과 초연

1876년 말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36세의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마음에 내재되어있는 동성애적인 기질에서 벗어나고자 한 오페라 여가수에 사랑에 빠지지만 매몰찬 거절을 당한다. 그리고 나서 1877년 한 음악원 제자의 권유로 28세의 안토니아 이바노브나 미류코바라는 음악원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는 푸시킨의 오네긴에 나데지나 피라레토브나 폰 메크 나오는 결혼과정과 이야기가 흡사한데 다른 점은 오네긴은 그 여인을 거절함으로 평생을 후회한 것이고 차이코프스키는 받아들임으로서 평생을 후회하게끔 되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폭풍같은 정열은 그를 당황하게 하였고 결국 7월 18일에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여자였고 차이코프스키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내적인 동성애의 본능이 정신적 문제를 일으켜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가에 투신자살까지 시도하였으나 사람들의 극적인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한 에피소드까지 일으키고 말았다.

정신적 재충전을 위해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나 Clarence에서 Venice로, 다시 San Remo에서 Florence로 옮겨 다니면서 그의 걸작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과 4번 교향곡의 작곡에 전념하였다. 그의 실패한 결혼 2달전인 1877년 5월에 착수한 4번 교향곡은 1878년 요양 여행중이던 1878년 1월 7일에 이탈리아 북서부의 해안 산모레에서 이 교향곡의 관현악 편성을 완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다시 작곡에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데에는 또 다른 여인의 힘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철도 갑부의 미망인인 나데지나 피라레토브나 폰 메크부인이었다.

폰 메크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고 연간 6천 루불이라는 막대한 연금을 제공하여 차이코프스키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후원을 하였다. 이러한 후원은 무려 15년동안 (1876년부터 1890년까지)이나 계속되었다. 이 두 사람은 편지의 왕래만으로 끝까지 서로 한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편지는 무척 장황한 내용이었으며 그들의 편지에서 "우리의 교향곡"이라고 표현한 4번 교향곡의 자세한 설명이 의미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차이코프스키는 4번교향곡의 작곡도중 편지로 "저는 이것을 당신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 속에 당신의 가장 절친한 생각과 느낌이 반영된 것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믿습니다."라고 적었다. 4번 교향곡의 표지에는 "나의 가장 좋은 벗에게"라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폰메 크 부인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초연은 1878년 모스크바의 러시아 음악협회 연주회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행해졌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때 이탈리아 여행중이어서 피렌체에 체재하고있었고 그에게 전보로 이 초연의 성공이 전해졌다.

<글, 음원출처: www.goclassic.co.kr>

 

아르뚜로 말께즈 단손 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