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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오페라의 대부
헨리 퍼셀
영국의 오페라 무대에 무조건 정적만이 감돌았던 것은 아니었다. 17세기에 들어와서 젊은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이 무심코 내놓은 오페라 Dido and Aeneas(디도와 이니아스)는 영국 오페라의 판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계오페라 연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디도와 이니아스’는 퍼셀이 그저 단순히 시골여학교 학예회를 위해서 간단하나마 작곡했던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대부분 학예회 공연작품이 그렇듯이 이 ‘디도와 이니아스’도 비교적 짧은 작품이었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것이었다. 노래 부르기도 아주 쉽게 작곡되었다. 시골여학교 수준에 알 맞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당시 도시에서의 귀족적이며 화려하고 환상적인 음악 형태와는 달리 퍼셀은 단순하고 통속적이며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음악을 만들었다. 그는 자기 오페라에 뱃사공들이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부르는 노래, 마녀들이 중얼거리며 부르는 노래, 젊은이들의 사랑의 비탄에 젖어있는 노래를 인용하였다. 특히 젊은 디도가 부르는 비탄의 아리아는 오늘날 까지도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다.
퍼셀은 당시 폭발적 인기를 모았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하여 ‘연구해서 남주나!’라는 생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 중에서 흥미 있는 요소만을 빌려왔다. 예를 들면 레시타티브였다. 퍼셀은 좀 기다리기로 했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영국 스타일로 변환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다. 풍부한 재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 헨델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국화에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퍼셀은 어린 시절 왕실교회의 성가대원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변성기가 되어 더 이상 노래 부르기가 어렵게 되자 왕실 악기 관리자 조수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퍼셀은 오르간과 바이올린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가 20세의 약관일 때에 웨스트민스터사원의 오르간 주자로 임명된 것만 보아도 알수있다. 퍼셀은 21세인지 22세인지, 하여튼 그 때에 결혼했고 그 이후부터 다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작곡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왕실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제임스2세와 윌리엄3세의 대관식을 위해 오르간 음악을 작곡해서 헌정했고 1695년 초에는 메리여왕의 장례식 음악을 작곡했다. 퍼셀은 메리여왕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퍼셀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퍼셀은 생전에 5편의 오페라 작품만을 남겼다. 첫 오페라는 그가 30세 때였다. 퍼셀도 다른 천재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36세에 요절하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 작품을 완성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었다. 결국 5년간 5편의 오페라를 만든 셈이다.
'요정의 여왕'
퍼셀의 오페라 수첩
● Dido and Aeneas(1869. 대본: Tate Nahum) ● The Fairy Queen(1692. 셰익스피어 원작) ● The Indian Queen(1695. 대본의 마지막 손질은 퍼셀 자신이 함) ● The History of Dioclesian(1691-94.
1 Suite - 1. First Music- Prelude
Le Concert des Nations / Jordi Savall,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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