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츠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과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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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어
- 쓰라린 고통으로
- 육신은 상하셨다.
- 예수께서 하신 일곱 말씀을
- 너희는 가슴에 되새기어라.(서곡 합창 중에서)
소년 알토의 낭창은 가슴을 저미도록 비통하고 애절한 음성이었다. 아니었다, 그 소리는 너무도 깊고 아련하여, 육신의 슬픔을 정화하는 경건한 음성처럼 느껴졌다. 마음 상한 이에게는 위로가 되고 기뻐하는 이에게는...
- 그러나 내가 언제 기쁨을 이야기할 여유를 가진 적이라도 있었던가, 나의 마음은 늘 차갑고 냉소에 가득하여. 길을 가다가도 문득 그 노래들이 떠오르고 나는 이미 그 선율을 읊조리고 있었다
Da Jesus an dem Kreuz stund...
Darnach als Jesu wusste, dass schon alles vollbracht war...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며 지냈다.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단순하였지만 깊이를 잴 수 없을 것 같은 빼어난 선율,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의 절창, 그리도 가슴을 흔들던 소년 알토의 경이적인 비장함과 순수함. 아니면 가사가 갖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희망. 과연 무엇이 그토록 그리고 여전히 내게서 마음을 사로잡아 가두어 두었던 것일까. 이로부터 나는 쉬츠를 생각하면 먼저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고 또한 쉬츠와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을 떼어 생각할 수 없었다.
- 드레스덴은 쉬츠가 평생 동안 칸토르로 봉사했던 독일 음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도시의 성 누가 교회의 십자가 합창단(Dresdner Kreuzchor)은 루돌프 마우어스베르거가 쉬츠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끌며 독특한 개성을 풍기는 합창단으로 성장시켰다. 페터 슈라이어와 테오 아담이 이 합창단에서 마우어스베르거에게 훈련을 받았고 올라프 베어도 이 합창단에서 교육을 받았다.
- 드레스덴은 중세로부터 라이프찌히와 함께 독일 문화와 음악의 중심지였다. 쉬츠는 이 도시의 성 누가교회에서 독일 음악의 전통을 세웠고 바하는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독일 교회 음악의 전통을 마련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쉬츠의 전통을 이어 받아 성 누가 교회의 칸토르로서 토마스 교회를 제치고 독일 교회음악의 전통을 지켜온 이가 마우어스베르거이다.
- 마우어스베르거가 이끄는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은 옛 동독 지역의 교회 합창단의 전통을 대표했고 쉬츠의 연주에 모범을 보여주었다. 음색은 다소 거칠고 기교를 배제한 듯한 소리이지만 소년들 특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애상적인 음조를 띄어 매우 개성이 뚜렷한데, 비슷한 음색의 다른 합창단을 찾을 수 없다.
- 빈 소년 합창단이나 퇼쯔 소년 합창단처럼 예리하고 철저히 훈련된 세련미를 찾기 힘들고 영국의 코리스터들처럼 맑고 아름다운 두성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듯한 발성 속에서 심금을 울리는 깊이를 보여준다. 이는 당연히 마우어스베르거의 출중한 감각이 빚어낸 산물이었으며, 누구도 범접키 어려운 경지였다.
- 마우어스베르거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의 쉬츠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은 이 곡의 가장 모범적인 연주라 할 수 있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 베이스 네 독창자가 복음사가를 낭창하고 예수가 테너로, 좌우의 강도가 베이스와 알토로 등장하며 서곡 합창과 종곡 합창이 나오고 간주곡이있는 매우 소박하지만 깊이는 측정하기 힘든 아름답고 비장한 곡이다. 소프라노와 알토의 복음사가도 소년의 목소리인데 특히 알토를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에서는 투박한 가운데서도 잊기 힘든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소년의 목소리에서도 그런 깊이 있는 가창이 나온다는 데서 경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독창자들의 목소리 하나하나도 흠잡을 데 없고 특히 페터 슈라이어가 예수역을, 테오 아담이 오른편 강도 역을 하는 것이 눈에 띈다.
쉬츠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은 성 주간의 곡이라서 자주 접하기에는 제약이 있고 세속의 즐거움이 중시되는 요즈음이라서 더욱 외면되는 곡이다. 게다가 화려함도 없으니 레퍼토리로 선호되기 힘들다.
- 국내에는 얼마전 'Berlin Classics' 레이블로 소개되었는데, 같이 실린 무지칼리쉐 엑스크비엔(장송 음악)도 쉬츠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빼 놓을 수 없는 주요한 곡이다. 그 외에 국내에 소개 되었던 음반으로 'Musicalische Company'의 연주가 있다.(Dabringhaus und Grimm) 이 음반에서는 두 곡의 5성(SATTB)합창을 5명이 부르는데, 2명의 카운터 테너와 2명의 테너, 베이스가 노래한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 곡의 소프라노 음역이 E음을 넘지 않아서인지 카운터 테너가 소프라노를 부르는데 소프라노를 맡은 데이빗 코르디에의 음성이 완벽한 소프라노의 음색을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지 덧붙인다면 일전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 '파리넬리'에서 파리넬리의 낮은 음역을 불렀다고 알려진 카운터 테너 데릭 리 래진이 합창의 알토를 부른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드레스덴 십자가합창단의 연주보다 현대적 감각이 느껴지며 감정의 절제와 단순함을 강조하고 있다.
- 또 하나의 음반으로 '끌레망 잔느깽 앙상블'의 연주를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로 만날 수 있다. 이 연주는 '무지칼리셰 콤파니'의 연주와 같은 스타일이다. 여성 소프라노가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며 부드러운 분위기가 주조를 이룬다. 카운터 테너 도미니끄 비스의 개성 강한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져서 호감이 가지 않는다. 연주는 비교적 평이하고 긴장감이 없어 별 감흥을 전달하지 못한다. 독일어 텍스트로 된 쉬츠의 음악을 뚜렷한 개성도 없이 이러한 스타일로 부른다는 것은 고려해야 할 일인 듯 하다.(1995년)
- 필/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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