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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극장과 연출의 경향 /감상의 기술-/유형종 |

나베가 2008. 1. 14. 00:05
오페라 극장과 연출의 경향
  감상의 기술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오페라를 CD로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새 사정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요즘은 메이저 음반사조차도 CD로 된 오페라 전곡을 거의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옛 명반의 재발매 정도에 그치고 있지요. 적어도 오페라에 관한 한 DVD가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CD를 찾는 경우가 크게 줄었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영상으로 오페라를 보면서 무대장치, 의상, 특히 연출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다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을 쓰는가 하는 것은 지역적 기호나 오페라 극장의 전통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아주 개략적이지만 오페라 연출의 트렌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실험적인 연출은 독일 극장에서!


요즘에는 작곡될 당시 대본가와 작곡가가 상상한 무대나 연출이 아니라 파격적인 재해석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다지 오랜 것은 아니고 1970년대 이후 새로운 경향으로 나타났으며 1990년대 이후에 대세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아주 다양한 트렌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을 꼽으라면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무대, 의상과 무대장치에 있어서 원색의 과감한 사용, 현재 혹은 가까운 근대로 시대를 재설정하는 것, 인간 심리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 섬뜩한 리얼리즘, 원작에 없는 묵역(?役)의 설정 등등이 있겠습니다.
이런 트렌드의 선두권을 형성하는 것은 대체로 독일 쪽 극장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유명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새로운 연출을 선도했다는 점입니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를 위해 지어준 극장인데 오로지 바그너의 작품만 연주합니다. 따라서 겨우 몇 편의 작품만 반복해서 공연해야 하니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연출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그너의 맏손자였던 빌란트 바그너가 연출에 소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1951년 극장이 다시 개관하자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여 이 극장을 일약 새로운 연출의 메카로 만들었습니다. 극장 우두머리가 새로운 실험을 하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당연히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프로덕션들이 나왔지요. 빌란트가 아쉽게도 일찍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 자리를 물려받은 동생 볼프강은 본인이 대단한 연출가는 아니었지만 혁신적인 인물들을 데려다가 끊임없는 화젯거리를 만드는 데 선수였습니다. 특히 파스리스 셰로, 하리 쿠퍼가 연출한 <니벨룽의 반지>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유럽 오페라계가 ‘연출가의 시대’를 구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두 번째 비결은 독일 연극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즘 동구권이 연극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연극의 최강국은 독일입니다. 특히 독일 연극은 인간의 어둡고 뒤틀린 내면과 사회 구조적인 부조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주의를 겪으면서 연출력을 극도로 고도화했습니다. 이 연극연출가들 중에 상당수는 음악적인 이해도 대단한 사람들인데요, 이들이 오페라 연출자를 겸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독일과 쌍벽을 이루는 연극 강국인 영국에서도 상당히 두드러집니다만 그 실험정신은 독일보다 약합니다. 혁신적 연출의 몇 가지 중요한 경향으로 위에 언급한 것들도 알고 보면 연극적인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연극 연출이 오페라에 스며들면서 극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때문에 음악적인 문제가 희생된다는 불평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왕년에 날리던 유럽의 원로 성악가 중에는 요즘 연출이 보기 싫어서 아예 극장에 발을 끊었다고 말한 분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아마 레나타 테발디가 그랬던가요? 한편 독일 오페라 극장에 비하면 같은 독일어권임에도 오스트리아의 극장들은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점도 언급하고 싶군요. 빈 국립 오페라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혁신적인 연출은 아직까지 피하는 편입니다.


이탈리아와 미국의 극장들


이탈리아는 보수적인 연출로 유명했습니다만 새로운 경향이 분명히 보입니다. 다만 연극적인 트렌드보다는 이탈리아의 전통적 강점인 미술과 건축적 요소에 주목하고 싶군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헨델의 <리날도>를 연출한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데요, 그는 원래 건축학도 출신으로서 절제된 톤이면서도 전통적인 권위가 살아 숨쉬는 무대를 만들어내지요. 미술과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하므로 연출자가 무대장치와 의상까지 겸한다는 것도 이탈리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피치 외에 잔 카를로 델 모니코가 그런 연출가로 유명합니다.
미국의 오페라 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로 일류 가수들을 불러오지만 연출은 가장 보수적인 편이었습니다. 물론 이제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역시 미국이다 싶은 것은 영화나 뮤지컬의 아이디어를 오페라에 접목한다는 것입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을 연출한 여류연출가 줄리 테이머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위해 <마술피리>를 만들었다거나 중국의 영화감독 장예모가 역시 메트를 위해 탄둔의 <진시황제>를 연출한 것이 그런 예입니다. 미국과 비슷한 문화가 있는 영국에서도 영화감독이 오페라를 연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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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유형종은 음악 및 무용 칼럼니스트이며, 저서로는 <불멸의 목소리 1,2>가 있다. 현재 월간 <객석>등의 고정필자, 현대백화점 등 문화센터에서 오페라 강의를 맡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의 대표운영위원이다.


 


 





베르디의 <가면 무도회> 중에서 아멜리아의 아리아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